변혁과 진보 (2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전 속의 쎅트, 현실 속의 쎅트
1948년 8월 20일 문우인서관이 서울에서 발간한 '사회과학대사전'이 있다. 백남운, 전석담, 이석태를 비롯한 당시 쟁쟁한 진보적 지식인 37명이 공동집필한 사전이다. 그 사전에 쎅트(sect)라는 문항이 있다. 좀 길지만,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쎅트는 종파로 번역된다. (줄임) 그러한 쎅트주의적 조직과 정책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발생한다.
첫째는, 대중 속에서 공작하는 경험이 부족하여 대중의 상태와 이익과 요구와 기분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하고, 그것에 따른 공작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둘째는, 전략과정을 잘못 규정하여 대중보다 너무 급진하였거나 너무 낙후된 데서 발생한다.
셋째는, 소뿌르죠아들이 공산주의자란 가면을 쓰고 나온 데 있다. 그의 계급적 본능과 감정은 신민주주의운동과 무산계급의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뿌르죠아적 지위욕, 관료욕을 충족시키는 데 최대의 주의를 돌리고, 아첨자, 추세자를 등용하고, 유능인, 직설자를 기피한다. 따라서 전 대열에는 만족한 소뿌르죠아들과 불평한 소뿌르죠아들로 충만하고, 그 비위에 알마진(알맞은-옮긴이) 지위를 획득하기와 그것을 쟁탈하기에 정력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을 때, 대중은 그들로부터 피리(避離)하여 갈 것은 필연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쎅트주의와 그 조직은 형성된다."
63년 전에 나온 오래된 해설이지만, 쎅트의 해악을 명백하게 설파한 글이다. 쎅트라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종파라 하는데, 종파라는 말은 남측에서는 쓰지 않고 북측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비방딱지를 붙이려는 세력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판이므로, 북측에서 쓰는 종파라는 말을 놓아두고 이 글에서는 하는 수 없이 쎅트라는 외래어를 쓸 수밖에 없다.
60여 년 전,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때, 그 투쟁동력을 안으로부터 갉아먹고 진보정치운동을 결국 분열과 좌절의 낭떠러지로 끌어간 치명적 요인들 가운데는 미군정과 극우세력의 극렬한 탄압만이 아니라 쎅트의 준동도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이 땅의 정치현실에서 쎅트의 해악이 얼마나 심하였으면, 8.15 해방 직후 처음으로 펴낸 사회과학사전에서 쎅트의 해악에 대해 그처럼 긴 해설을 달아놓았을까.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쎅트가 추구하는 목적은 진보정치운동의 이익을 훼손하여 개인의 이익 또는 자기 분파의 이익을 거머쥐는 것이다. 쎅트는 공명심과 출세야욕에 사로잡힌 소수파에 의해서 형성된다. 쎅트는 입으로는 진보를 부르짖으면서도 진보정치운동을 자기들의 출세야욕과 직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쎅트의 활동방식은 주도권 쟁탈, 이간분열, 음해모략, 파벌대립이다. 쎅트의 해악은 연대연합을 반대하는 것이고, 심한 경우에 적대세력과 공모결탁하여 진보정치운동을 파멸로 끌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진보정치운동에 쎅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진보통합당 건설이 난항을 겪고 있는 요즈음 통합 분위기를 해칠까봐 어떤 특정한 인사들을 쎅트라고 지목하기를 자제하고 있지만, 쎅트의 존재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쎅트는 현존하는 어느 특정정당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어느 특정정당 안에 존재하는 소수파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현존하는 특정정당과 쎅트를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우리 진보정치운동에 쎅트가 존재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진보정치운동이 쎅트의 준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 더 이상 강화발전되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만일 쎅트의 준동을 뻔히 보면서도 못 본 척 침묵하면서 진보정치운동의 강화발전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것은 몸 안에 암세포가 생긴 중환자가 자기의 발병사실에 대해 쉬쉬하면서 건강한 척하는 어리석음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 시기 진보정치운동에 나타난 쎅트 현상들
명백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 진보정치운동에는 쎅트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쎅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쎅트 현상은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운동에 음으로 양으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쎅트는 우리 진보정치운동에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위에서 지적한 대로, 쎅트의 가장 큰 해악은 정치연합을 반대하는 것이다. 정치연합을 반대하는 쎅트 현상은, 이러저러한 구실을 내걸면서 반이명박 연합정치를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 대중의 공분이 겹쌓이고 있는 지금, 그 정권을 반대하는 다양한 '색깔'의 정치세력들이 폭넓은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여 투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그처럼 이해하기 쉬운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반이명박 연합정치를 실현하면 진보정당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된다느니 민주당이 설치해놓은 틀 속에 진보정당이 갇히게 된다느니 하는 알쏭달쏭한 반대론을 꺼내들고 반이명박 연합정치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정치운동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켜 존재감 없는 소수집단으로 가두어놓으려는 해악이 아니면 무엇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땅의 쎅트가 반이명박 연합정치를 반대하는 진짜 원인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고수옹호하려는 선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범야권 정치연합체로 결집하는 경우, 그 정치연합체 안에서 쎅트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 있다.
개울에서 사는 송사리가 강에 나가서 살지 못하는 것처럼, 쎅트는 개울에서 벗어나 진보와 개혁이 만나 흐르는 강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앞으로 언젠가는 자기들이 사는 개울로 강물이 흘러들어오리라는 망상을 품고 산다.
쎅트는 진보와 개혁이 만나 정치연합을 강화발전시키면 자기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기는커녕 자기 존재감마저 잃어버리게 되므로,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공명정대한 대의를 이러저러한 구실을 내걸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둘째, 정치연합을 반대하는 쎅트의 해악은, 반이명박 연합정치 실현을 반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하는 당면한 요구에 대해서도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 진보정치운동을 분열시킨 상처를 다시 건드리지 말고 진보양당이 먼저 통합하여 중심을 잡고 나서, 통합된 진보양당이 다른 진보정치세력들과 손잡고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분명한데도, 통합문제를 양자회담이 아니라 8자회담으로 끌고 가서 통합과정을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땅의 쎅트가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기 위한 양자회담을 자꾸 회피하면서 8자회담을 고집하는 까닭은, 통합문제를 8자회담으로 끌고 가야 통합과정의 주도권을 자기들이 장악하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쎅트에게 있어서는 주도권 장악이 최우선 과제이고, 진보통합당 건설은 어쩌다 되면 좋고 안 되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쎅트 현상이 아닌가.
셋째, 이 땅의 쎅트는 진보정치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기들의 경쟁상대에게 비방딱지를 붙여놓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피와 땀과 눈물을 배신했고,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염원을 조롱했다. 그 핵심원인이 종북파에게 있다"고 단죄하고, "진보정당이라는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회계문제 등 온갖 문제점을 사회와 대중 앞에 남김없이 폭로하면서, 그 주도세력을 전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진보정치운동을 분열시킨 쓰라린 경험은 쎅트의 해악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친노인사들이 민주당과 결별할 때, 그들은 민주당에게 어떤 비방딱지를 붙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쎅트는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할 때, 민주노동당을 '종북파'가 주도하는 '종북당'이라는 흉칙스러운 비방딱지를 붙였다. 친북이라는 말 자체를 불온시하는 반북세력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친북 수준을 넘어서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적대행위인지는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정적인 한나라당도 민주노동당을 '종북'이라고 비방하는 악선전을 감히 하지 못했는데, 쎅트는 '종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서 민주노동당을 '종북파'가 주도하는 '종북당'이라고 낙인 찍었다.
반북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이 혹시 친북적인 행위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만 하나, 그 당의 정치활동을 '종북'으로 낙인 찍는 일은 상대의 정치생명을 끊어놓으려는 적대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과거 상처를 건드리지 말고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할 오늘에 와서도 쎅트의 '종북문제' 제기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쎅트와 손잡고 진보통합당을 건설한다고 해도, 통합당 안에 들어간 쎅트가 '종북문제'를 들고나와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넷째, 쎅트의 해악은 남북관계를 대결국면으로 끌어가려는 한나라당이나 극우세력과 똑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평화통일운동을 가로막는 것이다. 평화통일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혹은 북측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 그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북측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 될 것이고, 공개석상에서까지 북측을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 땅의 쎅트는 마치 한나라당과 입을 맞춘 듯이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 가능성을 열어놓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독재세습'이니 '군사봉건왕조'니 '북한 인권문제'니 하는 따위의 극우적인 망언을 진보의 이름으로 남발하고 있다. 이 땅의 쎅트가 그처럼 대북 비방망언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 스스로를 한나라당의 '2중대'로 전락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는 쎅트의 준동으로 망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연합정치의 원칙은, 단결과 투쟁의 양면성을 지닌다. 그런데 연합정치를 실현한다고 해서 쎅트의 해악을 어물어물 방관하거나 쎅트에게 양보나 하면서 덮어놓고 타협과 단결만 추구한다면, 본의 아니게 쎅트의 준동을 용인하게 되고, 그 결과는 연합정치의 최종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쎅트의 준동을 억제하는 반쎅트투쟁은 현 시기 연합정치의 실현을 보장하는 중요한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새삼스러운 말로 들릴지 몰라도, 진보의 탈을 쓴 쎅트는 우리 진보정치운동이 안고 있는 불행이다. 수구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것은 비과학적인 말이다. 수구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쎅트의 준동으로 망한다고 해야 과학적인 언사가 될 것이다.
쎅트는 진보정치를 망하게 하는 자해요인이므로, 진보정치운동이 쎅트의 준동을 방관하는 것은 진보정치운동사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착오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은 마땅히 진보양당 통합을 실현해야 하지만, 통합대상 안에 존재하면서 사실상 진보양당 통합을 반대하는 쎅트와도 통합해 보려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양당 통합과 반쎅트투쟁을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개울은 강보다 더 맑고 깨끗하지만, 개울에 사는 것은 잉어가 아니라 송사리다. 잉어는 송사리가 사는 물에서 살지 않는다. 맑고 깨끗한 개울에는 계급적 원칙과 진보정당의 독자성이 흐르지만, 그것은 이 땅의 근로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낱 송사리의 심리적 자기위안을 위한 것이다. 계급적 원칙과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거스르는 험상궂은 바위들이 강물 곳곳에 버티고 있지만, 잉어는 그런 험한 강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무심히 흐르는 물결은 바위에 부딪쳐 부서져도,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잉어는 결코 바위에 부딪치는 일이 없다.
강이 싫어 개울에서만 살려는 쎅트는 그들이 소원하는 대로 맑고 깨끗한 개울에서 살면 될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지 10년이 되었어도 아직 개울을 벗어나지 못한 민주노동당은 송사리와 결별하고 강으로 나아가야 힘센 잉어로 자랄 수 있다. (2011년 2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