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의 개벽예감] (41)
자주민보 2012년 12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백악관이 거역자로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
1970년대에 폭압만행과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악명 높았던 독재자 세 사람이 있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왕 히로히도에게 충성혈서를 쓴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박정희(1917-1979)다.
피노체트는 1998년 10월 17일 신병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인권유린죄로 전격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미국의 비호로 2000년 3월 3일에 간신히 귀국한 뒤에도 복잡한 재판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2006년 11월 28일 또 다시 가택연금형에 처해지자마자 12월 10일 자연사하였다.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필리핀 민중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자 미국이 하와이로 피신시켜 망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 9월 28일 하와이에서 자연사하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여성 연예인들이 술시중을 드는 비밀주연에서 양주잔을 기울이다가 자기 부하 김재규가 쏜 총탄에 비명횡사하였다. 이것을 10.26 사태라 한다.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다른 두 독재자와 달리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자기 부하가 쏜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하였다.
독재자 박정희의 비명횡사에 깔려있는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세상에 알려진 대로,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결국 피살된 것이다. 그에 얽힌 과거사 내막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박정희의 극비지령을 받고 핵개발 총책으로 일했던 오원철이 2010년 1월 12일에 발간된 <주간조선> 2089호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미 1970년 중반에 핵개발을 결심하였고, 1972년 초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과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자신을 집무실로 불러 핵개발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오원철의 회고담에 따르면, 박정희는 자기 서재 뒤쪽에 들여놓은 풍금 크기만 한 철제금고 속에 핵문제에 관련된 비밀문서를 보관하면서 핵개발에 집착하였는데, 그렇게 7년 동안 미국의 감시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한 끝에 10.26 사태 직전에는 핵물질 생산기술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박정희는 비서실장 김정렴, 경제수석 오원철, 국방장관 서종철, 국방과학원(ADD) 책임자를 집무실로 불러, 핵물질을 무기화하라고 지시하였다. 박정희는 1979년 1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면서 자기 비서관에게 1981년 봄에는 핵무기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정희가 개발하려고 하였던 핵무기는 제국주의무력침공으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정의의 무기가 아니라 동족인 북에 대한 핵공격으로 민족의 존립 자체를 파괴하려는 간악한 범죄의도를 품은 반민족적인 무기였다. 그런데도 박정희의 반민족적인 핵개발을 엉뚱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것은 민족주의를 배반한 가짜 민족주의자의 궤변이다.
박정희의 핵개발은 그처럼 극악한 반민족적인 범죄였을 뿐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철저히 금압해온 미국의 핵정책과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일으킨 자살행위로 되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핵개발을 중단하라고 설득도 하고 압박도 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끝내 고집하였다. 핵문제를 놓고 발생한 미국과 박정희의 정면충돌은 박정희를 백악관이 비호하는 친미독재자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정희의 핵개발이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1979년에 미국은 박정희의 핵개발을 설득과 압박으로는 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1967년부터 1994년까지 대외정보를 수집하는 첩보업무를 맡아보았던 남측 경찰청 정보책임자가 <신동아> 2008년 4월호에 실은 회고담에 따르면, 1979년 6월 29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방한했을 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박정희 제거공작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비밀회의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H. Gleysteen)과 부대사, 정치과장이 참석하였고,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서 지부장 로벗 부르스터(Robert G. Brewster)와 부지부장이 참석하였다. 그들 5명은 미국이 다른 나라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은 위법이므로 자기들이 나서서 제거공작을 벌이지 않고 한국 중앙정보부에게 미국의 박정희 제거의사를 전하여 그들이 제거공작을 대행하게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카터가 방한할 때 서울에 증파된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 250명은 10.26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4개월 동안 서울에 집단체류하며,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5인 비밀회의 결정을 행동에 옮기기 위한 비밀공작을 벌였다.
박정희 제거공작이 5인 비밀회의에서 결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자의적으로 박정희 제거공작을 결정한 게 아니었고, 백악관의 극비지령을 현지에서 집행한 것뿐이었다. 명백하게도, 박정희 제거는 백악관의 결정이었다.
피노체트나 마르코스 같은 친미독재자는 미국의 비호를 받다가 자연사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미국의 제거공작으로 비명횡사하였다. 10.26 사태는, 피노체트나 마르코스 같은 친미독재자들과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박정희에 대한 백악관의 쓰디쓴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한 독재자, 그래서 미국이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거역자로 백악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다.
두 여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
2012년 제18대 대선에 집권당 후보로 출마한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백악관의 심기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미국이 33년 전에 ‘거역죄’로 제거한 기형적 독재자 박정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박근혜 후보가 친미성향을 드러내며 백악관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 봐도, 그런 행동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쓰디쓴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며, 미국이 제거한 거역자의 딸이 권좌에 오를 경우 거역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거역자의 딸을 바라보는 백악관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보급망을 가진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2년 12월 7일 아시아판 최신호 인터넷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고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권력자의 딸(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지칭한 좀 이상한 표제를 달아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권력자’라는 말을 들으면, 거칠고 난폭한 통치자(harsh ruler)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권력자라는 말에는 독재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당의 대선후보가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하였다고 좋아하던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는 표제를 읽어보고 그만 기겁하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은 표제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황급히 취재진에게 내돌리며 부산을 떨었는데,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에 관해 논란이 일어나자 <타임>지 편집국은 특집기사 제목을 아예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의 고의적인 오역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서 친미성향의 여성 정치인으로 미국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도 1947년 7월 19일 당시 미얀마 총리가 보낸 테러단의 총격으로 비명횡사한 미얀마 건국영웅 아웅산(Aung San, 1915-1947)의 딸이다. 그런데 2011년 1월 10일 <타임>은 아웅산 수치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면서, ‘투사(Fighter)’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버마의 아웅산 수치는 자유 없는 나라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와 달리, <타임>은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켜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박근혜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등장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고 써넣었다. 그 물음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의 과거를 넘어서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문구로 읽힌다.
아웅산 수치에게 ‘자유의 투사’라는 미국식 칭찬을 보낸 <타임>이 박근혜 후보에게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미국식 비난을 보낸 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를 각각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그처럼 대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을 거역한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쓰디쓴 기억이 박근혜 후보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타임>지 표제 아래 쓰여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controversial past)’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임>은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라는 말을 유신독재의 과거라는 뜻으로 서술하였지만, 그것은 <타임>의 시각이다. <타임>과 달리, 백악관은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제거당한 괘씸한 독재자의 33년 전 과거로 인식하는 것이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을 불과 12일 앞둔 매우 민감한 시점에,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지칭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백악관의 불편한 심기를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우회적으로 대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김재규가 대행한 박정희 제거공작의 배후조종자가 백악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백악관도 자기들이 추진한 박정희 제거공작의 배후조종자가 누구였는지를 박근혜 후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백악관이 박근혜 후보에게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묘한 긴장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세론’으로 표현되어오던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대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막판 추격전은,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불편한 시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의 맹렬한 막판 추격전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선거일 직전에 어느 쪽으로 쏠리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남, 북, 미 삼각관계에 복잡하게 얽힌 사연
2012년 12월 10일 헤리티지 재단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맨스필드 재단 이사장 고든 플레이크(L. Gordon Flake)는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정동영 후보가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했고, 2002년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가 반미주장을 내놨지만, 지금은 그런 후보가 없다. 한미동맹은 이번 선거에서 주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한미동맹 강화론을 주장하는 친미성향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어서 2013년 이후 미국의 대남정책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백악관은 문재인 후보가 지난 대선시기 노무현 후보, 정동영 후보와는 달리 친미성향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제18대 대선에 출마한 두 후보가 똑같이 한미동맹 강화론을 말하는 바람에 백악관은 2013년 이후 자기의 대남정책과 관련하여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지만, 백악관의 대북정책에서는 그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뚜렷이 감지된다. 거기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미국 연방하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된 에드 로이스(Ed Royce)는 북이 위성발사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2012년 12월 12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실패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상상력이 부족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고 비판하였다.
북미관계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로이스는 오바마 정부가 북의 위성발사를 저지하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대북정책 실패를 거론한 것이지만,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 북의 위성발사와 무관하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미 오래 전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12월 10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대담한 조엘 위트(Joel Witt) 전 미국 국무부 대북담당관의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위트는 대담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북미 대결에서 “실제로 북한이 이겼다”고 논평하였다.
오바마 정부 이전에도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모조리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지금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 실패 이후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은, 집권 2기에 곧 들어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제18대 대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위의 대담에서 조엘 위트는, 제18대 대선 이후에 등장할 남측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면, 미국은 그 기회에 이미 실패한 대북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은 우리에게(오바마 정부에게라는 뜻 - 옮긴이)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조엘 위트의 이 발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의 분위기를 그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통해 엿보는 백악관의 분위기는, 제18대 대선에서 북과 대화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똑같이 한미동맹 강화론을 꺼내든 조건에서, 백악관이 2013년 이후 자기의 대북정책에서 선호하게 될 후보는 북과 대화할 수 있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문재인 후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 붕괴설’과 ‘북한 정권교체설’을 미신처럼 믿으며 극도로 반북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보이며 맹비난을 퍼부어 왔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을 의식해서 말조심을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북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북도 그런 박근혜 후보를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백악관과 박정희 사이에서 정면충돌을 일으켰던 핵문제는 33년 전 10.26 사태로 끝난 게 결코 아니며, 오늘 박근혜의 대선출마로 다시 살아났다. 2000년 1월과 2월에 고농축우라늄 실험에 성공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만들었던 핵개발 능력이 남측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고삐를 더욱 세게 틀어쥐고 남측의 핵활동을 계속 감시할 것이며, 핵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박정희의 과거사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 북미대결사를 되돌아보면, 백악관이 북의 초강경 대미압박에 정치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패배국면들마다 백악관은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하였고, 백악관의 그런 정치적 굴복을 바라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땅의 수구세력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는 식의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2013년 이후 백악관이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백악관의 ‘대북양보’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하려는 수구세력의 강한 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백악관이 박근혜의 대선출마와 관련하여 심히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 2013년 이후에 조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들은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렸을까?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에 이중적으로 얽힌 이런 복잡한 사정을 헤아려보면, 지금 백악관이 거역자의 딸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이 글의 논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부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방대한 공작망을 총가동하여 벌이는 대선개입공작이 제18대 대선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생각하면, 백악관이 거역자의 딸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어떤 선거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33년 전 과거사를 완전히 망각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격변의 급류를 타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기에는 정치적 지능지수가 한참 떨어지는 수구파 소굴 새누리당은, 자기들의 대선후보를 잘 못 뽑아놓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할 만큼 너무 우매하다.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동안 대선후보 지지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이수성, 정운찬, 문국현, 박주선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핵심부에 자주 얼굴을 내밀던 윤여준, 김덕룡, 김현철까지 줄줄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상한 상황전개는, 안철수가 열어놓은 문이 더 활짝 열리고 있는 느낌을 안겨준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2012년 12월 14일)
1970년대에 폭압만행과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악명 높았던 독재자 세 사람이 있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왕 히로히도에게 충성혈서를 쓴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박정희(1917-1979)다.
피노체트는 1998년 10월 17일 신병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인권유린죄로 전격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미국의 비호로 2000년 3월 3일에 간신히 귀국한 뒤에도 복잡한 재판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2006년 11월 28일 또 다시 가택연금형에 처해지자마자 12월 10일 자연사하였다.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필리핀 민중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자 미국이 하와이로 피신시켜 망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 9월 28일 하와이에서 자연사하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여성 연예인들이 술시중을 드는 비밀주연에서 양주잔을 기울이다가 자기 부하 김재규가 쏜 총탄에 비명횡사하였다. 이것을 10.26 사태라 한다.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다른 두 독재자와 달리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자기 부하가 쏜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하였다.
독재자 박정희의 비명횡사에 깔려있는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세상에 알려진 대로,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결국 피살된 것이다. 그에 얽힌 과거사 내막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박정희의 극비지령을 받고 핵개발 총책으로 일했던 오원철이 2010년 1월 12일에 발간된 <주간조선> 2089호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미 1970년 중반에 핵개발을 결심하였고, 1972년 초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과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자신을 집무실로 불러 핵개발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오원철의 회고담에 따르면, 박정희는 자기 서재 뒤쪽에 들여놓은 풍금 크기만 한 철제금고 속에 핵문제에 관련된 비밀문서를 보관하면서 핵개발에 집착하였는데, 그렇게 7년 동안 미국의 감시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한 끝에 10.26 사태 직전에는 핵물질 생산기술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박정희는 비서실장 김정렴, 경제수석 오원철, 국방장관 서종철, 국방과학원(ADD) 책임자를 집무실로 불러, 핵물질을 무기화하라고 지시하였다. 박정희는 1979년 1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면서 자기 비서관에게 1981년 봄에는 핵무기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정희가 개발하려고 하였던 핵무기는 제국주의무력침공으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정의의 무기가 아니라 동족인 북에 대한 핵공격으로 민족의 존립 자체를 파괴하려는 간악한 범죄의도를 품은 반민족적인 무기였다. 그런데도 박정희의 반민족적인 핵개발을 엉뚱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것은 민족주의를 배반한 가짜 민족주의자의 궤변이다.
박정희의 핵개발은 그처럼 극악한 반민족적인 범죄였을 뿐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철저히 금압해온 미국의 핵정책과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일으킨 자살행위로 되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핵개발을 중단하라고 설득도 하고 압박도 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끝내 고집하였다. 핵문제를 놓고 발생한 미국과 박정희의 정면충돌은 박정희를 백악관이 비호하는 친미독재자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정희의 핵개발이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1979년에 미국은 박정희의 핵개발을 설득과 압박으로는 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1967년부터 1994년까지 대외정보를 수집하는 첩보업무를 맡아보았던 남측 경찰청 정보책임자가 <신동아> 2008년 4월호에 실은 회고담에 따르면, 1979년 6월 29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방한했을 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박정희 제거공작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비밀회의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H. Gleysteen)과 부대사, 정치과장이 참석하였고,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서 지부장 로벗 부르스터(Robert G. Brewster)와 부지부장이 참석하였다. 그들 5명은 미국이 다른 나라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은 위법이므로 자기들이 나서서 제거공작을 벌이지 않고 한국 중앙정보부에게 미국의 박정희 제거의사를 전하여 그들이 제거공작을 대행하게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카터가 방한할 때 서울에 증파된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 250명은 10.26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4개월 동안 서울에 집단체류하며,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5인 비밀회의 결정을 행동에 옮기기 위한 비밀공작을 벌였다.
박정희 제거공작이 5인 비밀회의에서 결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자의적으로 박정희 제거공작을 결정한 게 아니었고, 백악관의 극비지령을 현지에서 집행한 것뿐이었다. 명백하게도, 박정희 제거는 백악관의 결정이었다.
피노체트나 마르코스 같은 친미독재자는 미국의 비호를 받다가 자연사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미국의 제거공작으로 비명횡사하였다. 10.26 사태는, 피노체트나 마르코스 같은 친미독재자들과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박정희에 대한 백악관의 쓰디쓴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한 독재자, 그래서 미국이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거역자로 백악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다.
두 여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
2012년 제18대 대선에 집권당 후보로 출마한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백악관의 심기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미국이 33년 전에 ‘거역죄’로 제거한 기형적 독재자 박정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박근혜 후보가 친미성향을 드러내며 백악관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 봐도, 그런 행동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쓰디쓴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며, 미국이 제거한 거역자의 딸이 권좌에 오를 경우 거역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거역자의 딸을 바라보는 백악관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보급망을 가진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2년 12월 7일 아시아판 최신호 인터넷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고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권력자의 딸(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지칭한 좀 이상한 표제를 달아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권력자’라는 말을 들으면, 거칠고 난폭한 통치자(harsh ruler)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권력자라는 말에는 독재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당의 대선후보가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하였다고 좋아하던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는 표제를 읽어보고 그만 기겁하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은 표제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황급히 취재진에게 내돌리며 부산을 떨었는데,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에 관해 논란이 일어나자 <타임>지 편집국은 특집기사 제목을 아예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의 고의적인 오역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서 친미성향의 여성 정치인으로 미국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도 1947년 7월 19일 당시 미얀마 총리가 보낸 테러단의 총격으로 비명횡사한 미얀마 건국영웅 아웅산(Aung San, 1915-1947)의 딸이다. 그런데 2011년 1월 10일 <타임>은 아웅산 수치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면서, ‘투사(Fighter)’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버마의 아웅산 수치는 자유 없는 나라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와 달리, <타임>은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켜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박근혜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등장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고 써넣었다. 그 물음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의 과거를 넘어서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문구로 읽힌다.
아웅산 수치에게 ‘자유의 투사’라는 미국식 칭찬을 보낸 <타임>이 박근혜 후보에게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미국식 비난을 보낸 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를 각각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그처럼 대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을 거역한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쓰디쓴 기억이 박근혜 후보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타임>지 표제 아래 쓰여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controversial past)’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임>은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라는 말을 유신독재의 과거라는 뜻으로 서술하였지만, 그것은 <타임>의 시각이다. <타임>과 달리, 백악관은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제거당한 괘씸한 독재자의 33년 전 과거로 인식하는 것이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을 불과 12일 앞둔 매우 민감한 시점에,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지칭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백악관의 불편한 심기를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우회적으로 대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김재규가 대행한 박정희 제거공작의 배후조종자가 백악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백악관도 자기들이 추진한 박정희 제거공작의 배후조종자가 누구였는지를 박근혜 후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백악관이 박근혜 후보에게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묘한 긴장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세론’으로 표현되어오던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대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막판 추격전은,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불편한 시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의 맹렬한 막판 추격전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선거일 직전에 어느 쪽으로 쏠리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남, 북, 미 삼각관계에 복잡하게 얽힌 사연
2012년 12월 10일 헤리티지 재단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맨스필드 재단 이사장 고든 플레이크(L. Gordon Flake)는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정동영 후보가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했고, 2002년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가 반미주장을 내놨지만, 지금은 그런 후보가 없다. 한미동맹은 이번 선거에서 주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한미동맹 강화론을 주장하는 친미성향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어서 2013년 이후 미국의 대남정책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백악관은 문재인 후보가 지난 대선시기 노무현 후보, 정동영 후보와는 달리 친미성향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제18대 대선에 출마한 두 후보가 똑같이 한미동맹 강화론을 말하는 바람에 백악관은 2013년 이후 자기의 대남정책과 관련하여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지만, 백악관의 대북정책에서는 그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뚜렷이 감지된다. 거기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미국 연방하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된 에드 로이스(Ed Royce)는 북이 위성발사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2012년 12월 12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실패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상상력이 부족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고 비판하였다.
북미관계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로이스는 오바마 정부가 북의 위성발사를 저지하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대북정책 실패를 거론한 것이지만,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 북의 위성발사와 무관하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미 오래 전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2년 12월 10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대담한 조엘 위트(Joel Witt) 전 미국 국무부 대북담당관의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위트는 대담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북미 대결에서 “실제로 북한이 이겼다”고 논평하였다.
오바마 정부 이전에도 역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모조리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지금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 실패 이후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은, 집권 2기에 곧 들어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제18대 대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위의 대담에서 조엘 위트는, 제18대 대선 이후에 등장할 남측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면, 미국은 그 기회에 이미 실패한 대북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은 우리에게(오바마 정부에게라는 뜻 - 옮긴이)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조엘 위트의 이 발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의 분위기를 그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통해 엿보는 백악관의 분위기는, 제18대 대선에서 북과 대화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똑같이 한미동맹 강화론을 꺼내든 조건에서, 백악관이 2013년 이후 자기의 대북정책에서 선호하게 될 후보는 북과 대화할 수 있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문재인 후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 붕괴설’과 ‘북한 정권교체설’을 미신처럼 믿으며 극도로 반북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보이며 맹비난을 퍼부어 왔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을 의식해서 말조심을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북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북도 그런 박근혜 후보를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백악관과 박정희 사이에서 정면충돌을 일으켰던 핵문제는 33년 전 10.26 사태로 끝난 게 결코 아니며, 오늘 박근혜의 대선출마로 다시 살아났다. 2000년 1월과 2월에 고농축우라늄 실험에 성공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만들었던 핵개발 능력이 남측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고삐를 더욱 세게 틀어쥐고 남측의 핵활동을 계속 감시할 것이며, 핵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박정희의 과거사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 북미대결사를 되돌아보면, 백악관이 북의 초강경 대미압박에 정치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패배국면들마다 백악관은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하였고, 백악관의 그런 정치적 굴복을 바라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땅의 수구세력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는 식의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2013년 이후 백악관이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백악관의 ‘대북양보’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하려는 수구세력의 강한 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백악관이 박근혜의 대선출마와 관련하여 심히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 2013년 이후에 조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들은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렸을까?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에 이중적으로 얽힌 이런 복잡한 사정을 헤아려보면, 지금 백악관이 거역자의 딸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이 글의 논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부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방대한 공작망을 총가동하여 벌이는 대선개입공작이 제18대 대선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생각하면, 백악관이 거역자의 딸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어떤 선거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33년 전 과거사를 완전히 망각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격변의 급류를 타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기에는 정치적 지능지수가 한참 떨어지는 수구파 소굴 새누리당은, 자기들의 대선후보를 잘 못 뽑아놓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할 만큼 너무 우매하다.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동안 대선후보 지지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이수성, 정운찬, 문국현, 박주선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핵심부에 자주 얼굴을 내밀던 윤여준, 김덕룡, 김현철까지 줄줄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상한 상황전개는, 안철수가 열어놓은 문이 더 활짝 열리고 있는 느낌을 안겨준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2012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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