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4

선제공격에 궤멸된 미육군 극동공군과 미해군 2개 함대

[한호석의 개벽예감](150)
자주민보 2015년 02월 2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필리핀 바탄반도에 고립되어 혹심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던 미국-필리핀연합군 76,000명은 1942년 4월 9일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미국극동군총사령관 맥아더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친 뒤로 마지막 지탱점인 커리지도어 지하기지에 남아서 승산 없는 전투를 지휘하던 미국-필리핀연합군 사령관 조너던 웨인롸이트도 1942년 5월 6일 휘하병력 13,000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군군은 '세계 최강'이 아니라 오합지졸이었다.     © 자주민보


오합지졸로 전락한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과 미해군 아시아함대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역사 가운데는 1941년 12월부터 1942년 5월까지 필리핀과 하와이에서 일본과 격돌하며 겪었던 패전경험도 있다. <사진 1> 당시 일본군은 필리핀과 하와이를 선제공격하여 그 두 지역에 주둔하던 미국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당시 일본은 선제공격으로 대승을 거두었으나, 군사전략적 한계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미국으로부터 반격을 받고 결국 패망하였다. 1941년 12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지속된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반격을 받은 일본이 3년 9개월 만에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격돌한 미국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제국주의국가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만 제국주의국가였다고 생각하고, 당시 미국은 제국주의국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오다. 명백하게도, 태평양전쟁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무력침공을 노리던 두 제국주의국가들이 충돌한 식민지쟁탈전이었다. 태평양전쟁의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조선을 침공하여 갑오농민전쟁(1894년)과 항일의병전쟁(1895-1909)을 살육무력으로 진압하였고, 1910년에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였으며, 조선을 발판으로 삼고 아시아대륙을 침략할 기회를 노렸다. 그에 뒤질세라 미국도 1898년 하와이왕국을 병합하였고, 필리핀-미국전쟁(1899-1902)이 막판에 들어선 1900년에는 서둘러 필리핀을 식민지로 강점한 뒤에, 필리핀을 발판으로 삼고 아시아대륙을 침략할 기회를 노렸다. 당시 미국이 식민지로 강점한 필리핀에 주둔하면서 중국침공을 노린 침략선견대의 역할을 수행한 무력이 바로 미해군 아시아함대(Asiatic Fleet)다.

1899년부터 1900년까지 기간에 ‘중국문호개방(Open Door in China)’이라는 미국판 아시아침략정책의 설계자는 제37대 국무장관 존 헤이(John Hay, 1838-1905)였고,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일본판 아시아침략정책의 설계자는 제34대 내각총리대신 고모에 후미마로(近衛文麿, 1891-1945)였다.  
1905년 7월 27일 일본 도쿄에 나타난 미국 전쟁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 1857-1930)와 일본 내각총리대신 가츠라 다로(桂 太郞, 1848-1913)가 합의한 밀약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강점하고,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기로 이미 합의한 바 있었으나, 미국의 아시아침략정책과 일본의 아시아침략정책은 중국을 누가 강점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중국강점문제를 놓고 두 제국주의국가의 상호대립이 차츰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한 뒤 북진을 계속하여 1934년에 만주국을 세우고 1937년에는 중국을 침공하였다. 미국이 눈독을 드린 중국을 일본이 먼저 침공하자 미일관계는 적대적으로 돌변하였다. 미국은 강력한 경제제재와 외교고립의 고삐를 틀어쥐고 일본을 압박하였다.

일본의 숨통을 조이려는 미국의 압박공세는 석유수출중단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은 석유수요량의 80%를 미국에서 수입하였으니, 미국의 석유수출중단이 유발한 일본의 유류난은 일본의 산업가동률과 전쟁수행력을 급속히 저하시켰을 뿐 아니라, 차츰 일본의 국가적 생존마저 위협할 지경이었다. 그런 생사존망의 갈림길에서 일본의 선택은 동남아시아 유전지대를 강점하여 석유자원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동남아시아 유전지대를 강점한다고 해도, 미해군 아시아함대와 태평양함대가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해상수송로를 차단해버리는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석유를 수송할 방도가 없었다. 동남아시아 유전지대를 강점하려던 일본은 미해군 아시아함대와 태평양함대부터 무력화시켜야 하였다. 당시 일본은 필리핀에 주둔하는 미해군 아시아함대와 하와이에 주둔하는 미해군 태평양함대를 힘껏 밀어붙이면 그 두 함대가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로 퇴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해상수송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한편, 북태평양의 해양패권까지 장악하게 되리라고 타산하고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그로써 태평양전쟁은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겉으로는 압박공세로 일본에게 호령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일본과 막후협상을 벌여 전쟁을 피해보려고 하였다.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자국의 오래된 외교문서를 인용한 <아사히신붕> 2013년 3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군이 필리핀과 하와이를 동시에 공격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41년 12월 7일(일본 현지 날짜) 정오에 일왕에게 보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미국 대통령의 친서가 도쿄중앙전신국으로 타전되었는데, 그 친서에는 전쟁을 피하자는 제안이 담겼다고 한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 당시 미국은 공군을 별도의 군종으로 창설하지 못했고, 육군 산하에 공군부대를 두었다. 미육군 극동공군(Far East Air Force) 산하에는 제5공군, 제7공군, 제13공군이 편성되어 있었는데, 제5공군과 제13공군은 필리핀에 전진배치되었고, 제7공군은 하와이에 배치되었다.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는 필리핀에 주둔하는 미육군 극동공군 주력부대였다. 1941년 12월 8일 오후 12시 40분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96식 육상공격기’ 27대로 편성된 폭격편대가 당시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대만에서 이륙하였다. 그 폭격편대는 필리핀 루손섬(Luzon Island)에 있는 미육군 극동공군 클락비행장(Clark Airfield)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였고, 거의 동시에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1식 육상공격기’ 54대로 편성된 폭격편대의 공습이 필리핀 아이바비행장(Iba Airfield)을 강타했다. 잠시 후,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1식 육상공격기’ 26대로 편성된 폭격편대가 2차 폭격으로 클락비행장을 또 다시 파괴하였다.

당시 일본군의 공습에 사용된 폭격기는 전범기업 미쯔비시(三菱)가 생산한 두 종류의 프로펠라형 단엽기였다. ‘96식 육상공격기’는 최고비행속도가 시속 375km이고, 항속거리는 4,400km이며, 폭탄 800kg을 실었다. ‘1식 육상공격기’는 최고비행속도가 시속 428km이고, 항속거리는 2,852km이며, 폭탄 800kg을 실었다.

1941년 12월 8일 오후 약 45분 동안 계속된 일본해군항공대 폭격편대의 두 차례 기습폭격을 받은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은 전투기와 폭격기 절반을 잃었고, 그 이후 이틀 동안 계속된 일본해군항공대의 추가폭격으로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은 거의 궤멸되었다. 기습폭격 개시일로부터 사흘째 되던 12월 11일 미육군 극동공군은 필리핀 방어를 포기하였고, 간신히 살아남은 프로펠라형 중폭격기 B-17 14대를 챙겨 오스트레일리아로 황급히 달아났다.

일본해군항공대가 클락비행장과 아이바비행장을 맹폭하던 시각, 일본육군 제14군 보병부대는 루손섬에서 북쪽으로 190km 떨어진 바탄섬(Batan Island)에 상륙하였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미일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선제공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미국에게는 연속퇴각과 집단투항의 치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커리지도어(Corregidor)지하기지로 피신했던 당시 미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는 1942년 3월 12일 자기 아내를 비롯한 측근 몇 사람을 어뢰정 4척에 태우고 탈출하여 필리핀 남쪽 민다나오(Mindanao)로 줄행랑을 쳤고, 거기서 폭격기 B-17로 갈아타고 4,000km나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쳤다. 극동군 총사령관이 저 혼자 살겠다고 다른 나라로 멀리 도망쳐버렸으니, 그 휘하의 군대가 집단투항으로 궤멸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필리핀 바탄반도(Bataan Peninsula)에 고립되어 혹심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던 미국-필리핀연합군 76,000명은 1942년 4월 9일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맥아더가 도망친 뒤로 마지막 지탱점인 커리지도어 지하기지에 남아서 승산 없는 전투를 지휘하던 미국-필리핀연합군 사령관 조너던 웨인롸이트(Jonathan M. Wainwright)는 1942년 5월 6일 휘하 병력 13,000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그 날 일본군에게 사로잡힌 웨인롸이트는 필리핀, 대만, 만주의 포로수용소들로 끌려다니다가 만주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8월 16일 소련군에 의해 석방되었다.

필리핀 주둔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이 궤멸되는 바람에 항공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필리핀 주둔 미해군 아시아함대의 운명도 처참하였다. 미해군 아시아함대는 개전 나흘 뒤인 1941년 12월 12일 인도네시아 자바(Java)로 황급히 퇴각하였는데, 폭격기와 잠수함을 동원한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당시 미해군 아시아함대 소속 전투함선들 가운데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격침되거나 파손된 전투함선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미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랭글리호(USS Langley),  중순양함 휴스턴호(USS Houston), 구축함들인 엣설호(USS Edsall), 포프호(USS Pope), 피어리호(USS Peary), 필스베리호(USS Pillsbury), 포함들인 애쉬빌호(USS Asheville)와 오하우호(USS Oahu), 군수보급함 페코스호(USS Pecos)가 격침되었다. 구축함들인 스투어트호(USS Stewart)와 패럿호(USS Parrott), 잠수함모함 캐노퍼스호(USS Canopus)는 대파되었다. 치욕스러운 참패를 당한 미해군 아시아함대는 1942년 2월에 결국 해산되었다. 

▲ <사진 2> 이 사진은 1941년 5월 8일 필리핀 주둔 미국군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던 커리지도어 지하기지가 함락되어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5개월 동안의 미일전쟁에서 미국은 전사자 25,000명, 부상자 21,000명, 포로 100,000명을 내고 패퇴하였다.     © 자주민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벌어진 150일 동안의 격전에서 미국군 전사자는 25,000명, 부상자는 21,000명, 포로는 100,000명이었고, 일본군 전사자는 9,000명, 부상자는 13,200명, 실종자는 500명이었다. 150일 동안의 전투에서 미국군이 100,000명이나 포로로 붙잡힌 것은 그들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 오합지졸이었음을 말해준다. <사진 2>

미국군과 일본군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벌인 전투는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다. 주목하는 것은,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과 미해군 아시아함대의 무력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싸운 일본군보다 훨씬 더 우세했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고 대패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서 확인하는 것은, 현대전의 승패가 우세한 무력보다 선제공격 성공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 <사진 3>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힉컴공군기지에 주기된 미육군 제7극동공군 소속 전투기들이 일본해군항공대 폭격편대의 선제공격을 받고 파괴된 모습이다. 하와이에 주둔하던 미육군 제7극동공군과 미해군 태평양함대는 선제공격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거의 궤멸되고 말았다.     © 자주민보


선제공격에 궤멸된 미육군 제7극동공군과 미해군 태평양함대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50분 일본해군 항공모함 6척에서 일제히 이륙한 쌍발함상폭격기 189대가 미국 하와이를 동시다발기습공격으로 파괴하였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쌍발함상폭격기 161대의 2차 공습이 하와이를 또 다시 강타했다. 

태평양전쟁에 등장한 일본의 폭격기는 항공모함에 이착륙하는 함상폭격기와 육상비행장에 이착륙하는 육상공격기로 대별되는데, 그 종류는 12종이나 되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빠른 폭격기는 최고속도 시속 660km로 비행하는, 태평양전쟁 후반부에 자폭공격에 내몰린 ‘영식 함상전투기’였고,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가는 폭격기는 항속거리 5,370km를 비행하는 ‘15식 폭격기’였고, 가장 많은 폭탄을 실은 폭격기는 폭탄 2,900kg을 적재한 ‘4식 폭격기’였다.

일본의 육상공격기는 중국침공에 동원되었고, 일본의 함상폭격기는 필리핀-하와이침공에 동원되었다. 일본이 필리핀-하와이침공에 동원한 함상폭격기에는 항공어뢰(areal torpedo)가 1발씩 실렸다.

일본산 ‘93식 항공어뢰’는 미국산 어뢰 ‘마크(Mark) 14’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세하였다. ‘마크 14’의 최장사거리는 7km밖에 되지 않았는데, ‘93식 항공어뢰’의 최장사거리는 36km나 되었고, 폭약도 ‘마크 14’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내장되었다. 함상폭격기가 타격목표 2km 전방에서 투하한 항공어뢰는 해수면 위 7m의 저고도까지 내려가 타격목표를 향해 돌진하였다. 

1941년 12월 7일에 2시간 20분 동안 계속된 일본해군항공대의 하와이 선제공습으로 진주항 해군기지(Pearl Harbor Naval Base), 캐너해군항공기지(Kaneohe Naval Air Station), 윌러공군기지(Wheeler Air Force Base), 이와공군기지(Ewa Air Force Base)가 파괴되었다. 당시 미육군 제7극동공군의 각종 전투기 402대 가운데 155대가 이륙하지도 못하고 공습을 받았다. 402대 가운데 188대는 지상에서 완파되거나 공중에서 격추되었고, 159대는 지상에서 반파되거나 공중에서 격상되었다. 그에 비해, 선제공습에 동원된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함재기 414대 가운데 29대가 격추되었는데 첫 번째 공습에서 9대, 두 번째 공습에서 20대를 잃었을 뿐이다. 지상포화를 맞고 격상된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함재기는 74대였다. <사진 3>

미육군 제7공군은 일본해군항공대의 선제공습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대전의 승패가 무력우세보다 선제공격 성공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미국 하와이의 진주항 해군기지에 주둔하는 미해군 태평양함대에 대한 일본군의 선제공격은 기습폭격과 어뢰공격을 배합한 공중-수중동시공격이었다. 당시 일본해군 지휘부는 ‘어뢰특공대’의 어뢰공격으로 미해군 태평양함대를 타격하기로 결정하고, 작전명을 ‘하와이작전’으로 정했다.

그런데 진주항 해군기지의 수심이 너무 얕아 일본해군의 3,500t급 잠수함은 그 해군기지 안으로 수중침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해군 지휘부는 46t급으로 특수제작한 초소형 2인승 침투잠수정을 3,500t급 잠수함에 싣고 하와이 인근해역으로 가서 내려놓으면, 초소형 잠수정이 진주항 해군기지 안으로 수중침투하여 전함들을 어뢰로 파괴하는 어뢰특공전법을 생각해냈다. ‘하와이작전’에 동원된 일본해군 잠수함대는 2인승 침투잠수정을 각각 1척씩 실은 3,500t급 잠수함 5척으로 편성되었다.

▲ <사진 4> 이 사진은 진주항 해군기지 앞바다 수심 365m 해저에서 2002년에 발견된 일본해군 잠수정 잔해를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 나타난 2인승 침투잠수정 잔해는 1941년 12월 7일 진주항해군기지를 기습하기 위해 진주항 앞바다에 들어가 수중매복하고 있었던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침투잠수정 5척 가운데 하나다. 이 침투잠수정은 일본해군항공대 소속 함상폭격기들이 진주항해군기지를 공습하기 직전 진주항 앞바다를 순찰하던 미해군 태평양함대 소속 소해정에게 해수면 위로 내놓은 전망탑 상층부가 포착되는 바람에 매복위치가 노출되어 미해군 구축함 워드호의 폭뢰공격으로 격침되었다.     © 자주민보

1941년 11월 19일 새벽 2시 15분 ‘어뢰특공대’를 실은 일본해군 잠수함 5척이 일본 히로시마(廣島)현 쿠레(吳市)항에서 비밀리에 출항하여 하와이로 향했다. 12월 7일 진주항 해군기지에서 약 10~20km 떨어진 바다밑으로 접근한 그 잠수함들에서 침투잠수정 5척이 일제히 분리배출되었다. 그 침투잠수정들에는 어뢰가 2발씩 실렸다. <사진 4>

태평양전쟁에 등장한 일본의 ‘95식 어뢰’는 사거리가 12km이고, 무게 405kg의 고폭탄두를 장착하였고, 최저속도 시속 83km, 최고속도 시속 94km로 타격목표를 향해 돌진하였는데, 그런 어뢰를 척당 2발씩 탑재한 잠수정 5척은 공중-수중동시공격시각을 대기하며 수중매복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어뢰공격이 개시되었을 때, 작전능력이 뒤떨어진 침투잠수정들은 공격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해군 ‘어뢰특공대’ 소속 침투잠수정 5척 가운데 4척은 격침되었고, 1척은 좌초되는 바람에 미해군에게 나포되었다. 5척 침투잠수정 가운데 단 1척만 어뢰 2발을 쏘고 격침되었는데, 1발은 31,000t급 전함 애리조나호(USS Arizona)에 명중하였고, 다른 1발은 33,000t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호(USS West Virginia)에 명중하였다.
어뢰 1발과 폭탄 4발을 맞은 애리조나호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였고, 어뢰 1발, 폭탄 2발, 항공어뢰 6발을 맞은 웨스트버지니아호도 침몰하였다.  

▲ <사진 5>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항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던 미해군 태평양함대 소속 31,000t급 전함 애리조나호는 일본해군항공대 폭격편대가 투하한 폭탄 4발과 일본해군 침투잠수정이 발사한 어뢰 1발을 맞고 대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였다. 그날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은 하와이 주둔 미국군은 거의 궤멸되었다.     © 자주민보

그것만이 아니었다. 33,000t급 전함 테네씨호(USS Tennessee)가 파손되었고, 32,000t급 전함 캘리포니아호(USS California)가 침몰하였고, 32,000t급 전함 매릴랜드호(USS Maryland)와 31,000t급 전함 펜실배니아호(USS Pennsylvania)가 각각 파손되었고, 27,000t급 전함 오클라호마호(USS Oklahoma)는 전복되었고, 27,000t급 전함 네바다호(USS Nevada)와 23,000t급 퇴역전함 유타호(USS Utah)는 각각 좌초되었다. 경순양함들인 헬레나호(USS Helena)와 랠레이호(USS Raleigh), 구축함들인 쇼우호(USS Shaw)와 캐씬호(USS Cassin)가 각각 파손되었고, 구축함 다운스호(USS Downes)는 곁에 있던 피격 구축함들에서 불이 옮겨 붙었다. 기뢰부설함 오글라라호(USS Oglala)는 좌초되었고, 정비함 비스틀호(USS Vestal)는 불탔고, 항공지원함 커티쓰호(USS Curtiss)는 파손되었다. 그 전투에서 미국은 사망자가 2,403명, 부상자가 1,178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다. <사진 5>

미국군과 일본군이 하와이에서 벌인 전투는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다. 주목하는 것은, 미육군 제7극동공군과 미해군 태평양함대의 무력이 하와이를 공격한 일본군보다 훨씬 더 우세했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고 대패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서 확인하는 것은, 현대전의 승패가 우세한 무력보다 선제공격 성공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 <사진 6> 1942년 9월 15일 미해군 19,000t급 최신형 항공모함 와스프호가 일본해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6발을 맞고 화염에 휩싸여 침몰하고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항공모함도 잠수함 어뢰공격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 자주민보


전반부에 대승을 거둔 일본은 후반부에 왜 항복하였을까?

태평양전쟁 전반부에 필리핀과 하와이를 강타한 일본군의 동시선제공격은 ‘세계 최강’이라던 미국군에게 치욕스러운 참패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후반부에 가서 일본군은 미국군의 거센 반격을 받고 패배를 거듭하다가 결국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태평양전쟁 전반부에 대승을 거두었던 일본군은 왜 후반부에 전세가 역전당하여 항복하였을까? 일본군의 패인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군의 패인은 전략적 실수에 있었다. 태평양전쟁 전반부에 일본군은 필리핀에 주둔한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과 미해군 아시아함대, 하와이에 주둔한 미육군 제7극동공군과 미해군 태평양함대를 거의 궤멸시켰으나, 미해군 함대의 주력을 제거하지 않고 철수해버린 실수를 저질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해군 함대의 주력은 항공모함이다. 미해군 항공모함을 격침시켜야 태평양전쟁에서 완승할 수 있었으므로 일본의 대미공격은 무엇보다도 항모공격에 집중되었어야 하였다. 1941년 12월 당시 하와이에 배치된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들은 25,000t급 엔터프라이즈호(USS Enterprise), 36,000t급들인 렉싱턴호(USS Lexington)와 쌔라토가호(USS Saratoga) 3척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이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하기 이틀 전에 항공모함 렉싱턴호는 그 해군기지에서 출항하여 서쪽으로 항해하였는데, 일본군이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할 때, 그 항공모함은 하와이에서 2,100km 떨어진 미드웨이섬(Midway Island)에서 동남쪽으로 930km 떨어진 해상에 있었다. 일본이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할 때, 항공모함 쌔라토가호는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의 최남단 쌘디에고(San Diego) 해군기지에 입항하였다. 그러므로 일본이 진주항 해군기지를 공격할 때, 하와이 인근에 남아있었던 항공모함은 엔터프라이즈호밖에 없었다.

이런 정황에서 일본해군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추적하여 공격해야 하였으나, 그들은 항모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일본해군이 항모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한 것은, 태평양전쟁 전반부에 패하였던 미해군이 전투력을 차츰 복원하여 반격에 나설 수 있게 허용한 전략적 실수였다. <사진 6>

둘째, 일본군의 패인은 미국군이 하와이에 건설한 대형조선소, 선박수리시설, 유류저장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철수한 것에 있었다. 당시 ‘하와이작전’에 참가한 일본해군항공대 지휘관들은 3차 공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했는데도, 일본해군제독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1887-1944)는 3차 공습을 명령하지 않았다. 그들이 대형조선소, 선박수리시설, 유류저장시설을 파괴하지 않은 것은, 미해군이 나중에 하와이를 거점으로 전투력을 차츰 복원하여 반격에 나설 수 있게 허용한 전략적인 실수였다.

셋째, 일본군의 패인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필리핀과 하와이는 미육군 극동공군과 미해군 아시아함대 및 태평양함대의 전략거점들이지만,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전진배치거점들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완승하려면, 전진배치거점들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해야 하였다. 만일 당시에 일본군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장거리타격력을 갖고 있었다면, 전세는 일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에게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타격수단이 전혀 없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사용한 가장 위력적인 타격수단은 폭탄과 어뢰였고, 그것의 운반수단은 항속거리가 짧아 미국 본토의 심장부까지 날아가지 못하는 쌍발폭격기였다. 당시 일본해군의 잠수함은 미국 본토 해안까지 접근할 수는 있었으나, 수중에서 어뢰를 발사하는 대함공격력밖에 없었다. 일본군의 폭탄과 어뢰는 미국 본토의 심장부를 공격할 타격수단이 아니었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력을 갖지 못한 일본군의 군사전략적 한계가 미국의 반격과 일본의 패망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으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보유한 최강의 무기는 노래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미국의 팔과 다리만 공격하고 급소는 공격하지 못한 채 미국의 반격을 받고 패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그런 식으로 끝난 때로부터 어느덧 70년 세월이 흐른 오늘, 미국은 자기의 명줄을 쥐고 흔드는 새로운 강적을 만났다. 그 강적은 미국에게 이미 최후결전을 선포해놓고 총공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선포한 최후결전은 70여 년 전 일본군의 원시적인 폭탄-어뢰공격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최첨단 공중-수중동시공격으로 전개될 것이다. 조선인민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사람들은 조선이 선포한 최후결전에서 최첨단 공중-수중동시공격이 전개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과대망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은 미국군에게 참패를 안겨주기에 충분한 선제공격력을 갖추었다. 조선이 말하는 선제공격력이란 전술핵탄과 정밀타격수단의 결합을 뜻한다.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 보도에서 밝혀진 것처럼, 조선은 핵탄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를 완성하였다.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는 조선의 지하발사기지들 안에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전술핵탄이 정밀타격수단과 결합되어 24시간 격발대기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전술핵탄미사일들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을 뚫고 들어가는 각개조준다핵탄두(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Nuclear Warheads)가 장착되었다.

조선이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거점들을 동시기습하기에 충분한 선제공격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난 2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조선의 대미핵공격력과 미국의 대북전쟁기획자들’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9384

물론 미국도 조선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전쟁계획을 작성해놓고, 그 전쟁계획에 의거하여 다양한 실전연습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언제가도 해결하지 못할 난제는 그들이 조선을 선제공격하기 전에 조선이 그들의 공격징후를 먼저 포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하군사기지들 안에서 최후결전의 총공격명령을 대기하는 조선인민군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동시다발 초탄발사로 교전상대의 급소를 기습타격할 빨찌산식 핵전법을 연습하는데, 그런 그들을 상대할 미국군은 항모타격단(CSG) 같은 방대한 무력을 시차별로 동원하는 정규군식 핵전법밖에 모른다. 정규군식 핵전법은 공격징후를 노출할 수밖에 없으며, 현대전에서 공격징후노출은 선제공격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된다.
  
둘째, 조선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거점들을 파괴할 선제공격력만 보유한 게 아니라, 조선의 대미선제공격에 뒤따라올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하기에 충분한 전략핵무력도 보유하였다. 미국의 심장부를 파괴할 대미핵공격력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밖에도 더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3종의 탄도미사일과 3종의 발사장비가 바로 그러한 전략핵무력의 실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은 수직갱발사대에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로이동식 8축16륜 자행발사대(TEL)에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4,000t급 공격잠수함에 탑재한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한 충분한 핵억지력을 보유한 것이다.

조선이 위와 같은 전략핵무력을 보유함으로써 대미핵공격력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대해 미국은 자기들이 파악한 비밀정보를 통해 진작부터 알았으면서도, 그와 관련된 민감한 군사정보를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대북군사정보은폐는 조선의 핵무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소평가를 유발하였다.

그런데 아시아태평양지역 군사전략거점들에 대한 조선의 선제공격을 받은 미국이 만일 상황을 오판하여 조선에게 보복핵공격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은 위에 열거한 강력한 전략핵탄들을 발사하여 미국 본토를 그야말로 ‘불바다’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선은 자기 영토에 불꽃 한 점이라도 떨어지면 미국 본토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는데, 그것을 허풍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선의 핵무력과 핵사용의지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소평가가 유발한 착각이다.

조선이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하기에 충분한 핵공격력을 갖추었으므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산재한 자기의 군사전략거점들이 조선인민군의 빨찌산식 핵전법으로 파괴되어도 발만 동동 구를 뿐 감히 반격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것이 조선의 최후결전이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이라는 나의 거듭되는 주장의 논거다.  

셋째, 이전에 각종 자료를 분석하여 쓴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지금 조선은 전쟁의 격렬화, 장기화를 피하고 매우 짧은 시간에 ‘순간충격전법’으로 전쟁을 끝내면서 전쟁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초단기속결전의 준비와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다. 조선에서는 이것을 ‘싸움준비 완성’이라 하는데, 조선인민군은 이미 자기의 싸움준비를 완성하였다. 지난해부터 그들은 “싸움준비를 더욱 완성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 <사진 7> 조선인민군의 특징은 '노래하는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조국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들의 정신세계가 '최후결전의 노래' 속에 응축되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인민군의 '최후결전'에 등장할 최강의 무기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이 사진은 2014년 3월 1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관람하는 가운데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예술선전대경연의 한 장면이다.     © 자주민보

넷째, 조선인민군의 특징은 ‘노래하는 군대’라고 할 수 있다. <사진 7> 물론 다른 나라 군대들도 군가나 유행가를 부르지만, 다른 나라들에서 군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상적인 군사복무생활이 아니라 특별한 계기에만 주어진다. 그런데 조선에서 나온 관련자료들을 보면, 조선인민군 각급 단위들에서는 군인예술선전대의 순회노래공연과 병사들의 화면반주음악 노래부르기가 일상화되었을 뿐 아니라, 군인들, 군인가족들, 후방가족들이 일상생활에서 ‘일심단결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불타는 포연 속에서도 ‘화선공연’을 열고 ‘승리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심지어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순간에도 ‘신념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에서 노래는 음악애호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전군, 전민의 사상정신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선은 그들이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자기들이 부를 노래가 핵탄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정신적 폭발력을 분출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조국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들의 정신세계가 ‘최후결전의 노래’ 속에 응축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무기의 대결 이전에 사상정신의 대결이라고 보는 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독특한 전쟁관이며, 사상정신의 대결에서 이겨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전승의 비결이다. 조선인민군의 ‘최후결전’에 등장할 최강의 무기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세계 최강’의 자아도취에 빠진 미국의 극동공군, 아시아함대, 태평양함대는 일본군의 선제공격을 받고 연속퇴각과 집단투항으로 궤멸되었지만, 오늘날 아시아태평양지역 곳곳에 배치된 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상상을 초월한 선제공격을 받는 경우 연속퇴각과 집단투항이 아니라 무조건 항복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선제공격에 궤멸된 치욕스런 과거경험을 망각하고 오늘도 여전히 ‘세계 최강’의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자기들이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 조선의 최후결전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후결전을 선포한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세계 위에 군림하는 아메리카제국은 그런 착각 위에 세워진 거대한 모래집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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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7

조선의 대미핵공격력과 미국의 대북전쟁기획자들

[한호석의 개벽예감](149)
자주민보 2015년 02월 1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 사진은 2015년 2월 8일 신미국안보센터가 펴낸 보고서의 표지를 촬영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선의 핵능력 진전을 중지시키거나 되돌릴 아무런 방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의 신임 국방장관이 한반도의 제한전쟁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국방부를 준비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위의 사진에 나온 인물이 이번에 신임 국방장관에 취임할 애쉬튼 카터다.     © 자주민보


상황을 역전시킨 조선의 대미핵공격력
 
지난 1월 2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행된 <유투브(You Tube)> 관계자와의 대담에서 “(조선은) 가장 고립되고,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가장 단절된 나라”이며, “요즘 세상에서 그렇게 잔혹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극히 힘들다. 조선은 잔혹하고 폭압적이며, 조선정권은 인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독재체제와 똑같은 체제가 지구 위에서 다시 생겨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이 조선에 침투하여 시간이 지나면, 조선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미관계가 날카로운 적대감에 휩싸인 판인데, 미국 대통령이 위와 같은 비난발언으로 조선을 자극하였으니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지난 1월 3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을 지도한 훈련장에서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전체주의>요 뭐요 하면서 걸고들고 우리 인민이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는 삶의 터전인 사회주의제도를 그 무슨 <변화>의 방법으로 붕괴시킬 것이라고 공공연히 짖어대는 미친개들과는 더는 마주앉을 용의가 없다”고 말하였다.

조선과 미국의 대결분위기가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조선인민군은 공중타격연습(1월 23일), 도하공격연습(1월 26일), 항모격침연습(1월 30일), 대함미사일발사연습(2월 6일, 2월 8일)을 연속 실시하였다. 요즈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표출되는 상호적대감이 조미전쟁위험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층 더 고조된 조미전쟁위험과 관련하여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가 입을 열었다. <사진 1> 지난 2월 8일 그 연구기관은 ‘행동을 향한 생각: 제25대 국방장관을 위한 몇 가지 제안들(Ideas to Action: Suggestions for the 25th Secretary of Defens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는데, ‘아시아: 현실화되는 재균형에 대한 보장(Asia: Ensure the Rebalance Becomes Real)’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조미관계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었다. 서술대목을 인용하면, “조선의 핵위협과 미사일위협은 (미국이) 제어할 수 없는 치명적 위험으로 커지고 있”는데도, “오늘 미국의 (대북)정책은 조선의 핵능력 진전을 중지시키거나 되돌릴 아무런 방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서술내용에 대해서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거듭 논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또한 그 보고서는 “조선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량과 종류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조선이 진행하는 핵관련) 연구, 개발, 그리고 운반수단실험은 조선이 생존가능한 핵능력(survivable nuclear capability)을 확보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하였다. 그 보고서가 언급한 조선의 ‘생존가능한 핵능력’이란, 조선이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는 경우 조선의 국가적 생존을 유지시켜줄 핵무력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핵무력에 관한 정보를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미국 민간연구기관이 그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그 보고서는 조선이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는 경우 자기의 국가적 생존을 유지시켜줄 핵무력을 가졌다는 식으로 서술하였으나, 그런 서술은 조선의 핵무력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로 생겨난 오류다. 조미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이 생사존망위기에 빠지는 게 아니라, 미국이 생사존망위기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조선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무력을 아직 갖지 못했던 지난 시기에는 조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인 핵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지만, 조선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무력을 가진 이후부터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을 보유한 미국이 핵무력에서 조선을 압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겉만 훑어보고 속은 들여다보지 못한 피상적 인식이다. 물론 물량적 측면을 살펴보면, 미국의 핵탄보유량은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압도한다. 하지만 핵전쟁에서 핵탄사용을 평가하는 기준은 재래식 전쟁에서 화력사용을 평가하는 기준과 완연히 다르다. 핵전쟁의 승패여부를 가르는 요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인 기술자들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수직갱발사대에 곧추세우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오늘날 핵탄을 소형화하고, 핵타격수단을 정밀화하는 기술이 고도화됨으로써 핵전쟁에서 민간부문이 입는 피해는 재래식 전면전쟁에서 민간부문이 입는 피해보다 더 적어지게 되었다. 그 만큼 핵전쟁이 일어날 위험도 더 커졌다.     © 자주민보

핵전쟁에서 교전쌍방은 각각 자기의 핵탄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전부 사용할 필요도 없다. 2014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핵탄보유량은 7,300개를 기록하였지만, 실제로 핵전쟁에서 그 많은 핵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도시들에 핵탄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핵융단타격으로 도시주민 수백 수천만명이 한꺼번에 몰살되고 결국 지구가 멸망한다는 1960년대식 핵참화씨나리오는 반핵론자들이 그려낸 지구종말의 상상도이지 2010년대식 핵전쟁씨나리오가 아니다. 오늘날 핵탄을 소형화하고, 핵타격수단을 정밀화하는 기술이 고도화됨으로써 핵전쟁에서 민간부문이 입는 피해는 재래식 전면전쟁에서 민간부문이 입는 피해보다 훨씬 더 적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핵전쟁이 일어날 위험도 더 커졌다. <사진 2>

재래식 전쟁에서는 교전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화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지속하느냐 하는 문제가 승패여부를 결정하지만, 핵전쟁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교전상대의 급소를 기습강타하여 제압하는 것이 재래식 전쟁과 다른 핵전쟁의 ‘묘리’이기 때문이다. 핵전쟁의 승패여부는 교전상대의 급소를 불과 몇 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에 기습강타하는 급소타격력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다. 핵전쟁의 또 다른 승패여부는 급소방어력에 의해 결정된다. 핵공격으로부터 자기 급소를 지킬 방어력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제압하고 핵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위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핵무력과 미국의 핵무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한지 판별할 수 있다. 조선은 전술핵탄과 정밀타격수단으로 미국의 급소를 기습강타하여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는 핵전쟁의 ‘묘리’를 체득하였고, 급소기습전법에 강력한 핵타격을 결합시킨 특유의 빨찌산식 핵전법을 개발하였다. 빨찌산식 핵전법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는 장점을 지닌다.

물론 미국도 조선을 강타할 핵공격력을 가졌지만, 시간대별로 공중과 해상에서 방대한 무력을 총동원하는 정규군식 전쟁교리에 집착해왔기 때문에 핵전쟁의 ‘묘리’인 빨찌산식 핵전법을 외면한다. 그렇게 비대한 몸집을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미국이 핵탄과 타격수단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한들, 실전에서 조선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급소타격력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급소방어력에서도 조선과 미국의 격차는 현저하다. 핵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은 자기 급소를 방어할 능력을 가진 반면, 미국은 그런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대공감시망과 대공방어망을 구축해놓고, 주요군사시설과 주요산업시설을 공중타격으로부터 안전한 지하요새로 건설했으며, 전군과 전민이 핵전쟁대비훈련에 익숙하다. 그에 비해 미국은 요격능력이 실전에서 아직 입증되지 않은 미사일방어망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또한 미국의 거의 모든 군사시설과 산업시설은 무방비상태로 전면 노출되었고, 전군과 전민이 참가하는 핵전쟁대비훈련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급소타격력과 급소방어력에서 조선과 미국의 격차가 그처럼 현저하기 때문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조선의 핵무력을 전 세계가 다 인정해도 미국은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 미국에게 남은 선택은 조미전쟁 가능성을 억제하는 것인데, 그들이 말하는 전쟁억제라는 것은 북침전쟁연습에 집착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으로 조미전쟁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생각은 오산이다. 미국의 북침전쟁연습은 조미전쟁 가능성을 억제해주기는커녕 조선을 심히 자극하여 조선의 반미결전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조선이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한 사연

위에서 논한 신미국안보센터 보고서는 “안전한 억지력으로서 조선의 핵능력은 핵전쟁위험이 없이도 제한전쟁(limited war)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조선에게 확인시켜주는 전략문제를 (미국에게) 제기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조선과 미국의 제한전쟁씨나리오는 두 가지 극단적인 예상들인 전면전에 대한 예상과 조선의 붕괴에 대한 예상 사이에 파묻혔으나, 미국의 신임 국방장관은 “한반도의 제한전쟁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국방부를 준비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서술내용은 조선과 미국의 제한전쟁이 불가피해졌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조미전쟁 불가피성에 관련한 미국 정부의 정보은폐와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대다수 미국인들은 조미전쟁의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이를테면, 지난 2월 13일 미국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는 미국인들이 미국에게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을 이슬람국가(IS)의 테러(84%), 이란의 핵개발(77%), 조선의 군사력(64%), 러시아의 군사력(49%),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49%),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44%), 중국의 경제력(40%) 순으로 손꼽았다고 한다. 신미국안보센터 같은 연구기관은 조선과 미국의 제한전쟁 불가피성에 대해 우려하는 판인데,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런 우려를 느끼지 못하는 안보불감증에 걸린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신미국안보센터 보고서가 언급한 제한전쟁이라는 개념이다. 그 보고서가 언급한 제한전쟁은 전면전쟁과 대비되는 개념이므로, 교전범위가 한반도에 국한되는 지역전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전상태의 조미관계에 쌓이고 쌓인 적대감이 결국 폭발하여 조선과 미국이 다시 전쟁을 하는 경우, 교전범위가 한반도에 국한되는 지역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한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주한미국군과 한국군만 동원해서는 조선과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이 전쟁을 하는 경우,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무력을 전선에 인입하는 문제는 확정적이다.

전시에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방대한 무력이 한반도로 집결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선이 전쟁에서 이기는 전략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무력을 기습타격으로 제거하는 길밖에 없다. 만일 조선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무력을 기습타격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격렬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 전역과 미국 본토와 일본 열도가 모두 혹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된다. 자기가 혹심한 전쟁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공격을 개시할 나라는 없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한 미국의 무력을 ‘순간충격’으로 제거할 기습타격력을 증강하는 사업에 자기의 국가역량을 그토록 장기적으로,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강력한 기습타격수단을 보유하는 문제야말로 조선의 국가존망에 관련된 중대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태양절 100주년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화성-10호를 촬영한 것이다.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기지가 있는 괌을 타격할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이 조선에 작전배치되었다는 사실이 한국 언론에 처음 보도된 때는 1994년 3월 22일이고, 조선이 그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때는 1993년 5월 30일이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그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로 개량하였다는 점이다. 조선이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를 세상에 처음 공개한 때는 당창건 경축 군사행진이 진행된 2010년 10월 10일이다.     © 자주민보

조선의 기습타격수단은 미국이 필리핀해 동쪽의 괌(Guam)에 구축한 군사전략거점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다. 조선에서 괌에 이르는 비행거리는 3,500km다. 조선이 그런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보유하였다는 사실이 한국 언론에 처음 보도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1994년 3월 18일 서울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보도한 <연합뉴스> 1994년 3월 22일부 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함경북도에서 발사하면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당시에 이미 보유하였다. <사진 3> 조선의 미사일능력을 형편없이 과소평가해온 낡은 관념을 깨뜨리는 그런 놀라운 정보를 21년 전의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사람은 1990년 9월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인민무력부 핵화학방위국 산하 반핵반원자분석소에서 계산수로 군사복무를 하던 중 1993년 겨울 조선을 등졌다는 탈북자다.

그런데 그의 기자회견 발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기자회견 시점보다 약 10개월 앞선 1993년 5월 30일에 있었던 조선의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다. 시험발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미국의 북침전쟁의지를 꺾어버리기 위한 억제력 시위였다.

지난날 소련에 유학하여 공학을 전공한 뒤에 조선으로 귀국하여 미사일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신동아> 2015년 2월호 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이 1998년 8월 31일 첫 인공위성을 발사한 직후 관련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보낸 감사문에서 미국이 요격을 시도하는 경우 탄두가 분리되어 탄두 한 발은 원래 조준해놓은 목표를 타격하고 나머지 다른 탄두들은 요격미사일기지를 타격하는 다탄두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미사일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다탄두중거리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는데, 그들이 만든 미사일은 탄두부가 고깔모자처럼 뾰족하지 않고 우유병 꼭지처럼 뭉툭하게 생긴 다탄두중거리미사일이다.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의 다탄두중거리미사일 실물을 처음 포착한 때는 2003년 9월 초였다. 조선이 다탄두중거리미사일 18발을 이란에 수출한 때는 2005년이고, 다탄두중거리미사일로 무장한 사단급 미사일부대를 창설한 때는 2007년이다. 조선이 대량생산하여 작전배치한 다탄두중거리미사일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때는 당창건 경축 군사행진이 진행된 2010년 10월 10일이다. 6축12륜 자행발사대 16대에 실려 대거 등장한 화성-10호가 바로 그 다탄두중거리미사일이다.

▲ <사진 4> 이 사진은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거점인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나란히 주기된 B-52 전략핵폭격기를 촬영한 것이다. 이 전략핵폭격기들은 조선에 대한 공중핵타격에 동원될 것이다. 미국은 실제로 그 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으로 출동시켜 조선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2013년에 그 섬에 건설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뚫고 들어가는 조선의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가 발사되면, 그 섬의 모든 군사전략기지들은 사라질 것이다.     © 자주민보

미국의 관영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 2010년 10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tol)은 조선이 화성-10호 200발을 이미 작전배치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화성-10호의 뭉툭한 탄두부에는 소형화된 핵탄이 여러 발 탑재되었으므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미사일은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이다. 전시에 조선이 다핵탄두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를 발사하면, 그 미사일은 괌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괌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ir Force Base)에는 길이가 48m, 날개길이가 56m인 B-52 전략핵폭격기가 여러 대 들어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격납고가 있는데, 그 넓이는 4.7㎢나 된다. 다핵탄두를 운반하는 화성-10호는 괌에 구축된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갈 것이고, 2013년에 그 섬에 건설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비롯한 모든 군사전략기지들은 사라질 것이다. <사진 4>
 
 
아직 공개되지 않은 조선의 공격잠수함

전시에 조선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무력을 기습타격으로 제거하는 경우 조선은 미국의 보복공격을 받게 된다. 미국의 보복공격은 핵공격이다. 따라서 조선은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막아내는 억제전략에 자기의 국가역량을 장기적으로,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하는 방도는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의 군사전략거점들을 파괴할 다핵탄두미사일을 미국 본토 인근 바다 속에서 발사하는 공격잠수함(attack submarine)을 보유하는 길밖에 없다.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의 공격잠수함이야말로 그런 억제전략의 유력한 수단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이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공격잠수함을 보유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조선의 국가존망에 관련된 중대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은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공격잠수함을 개발하는 사업에 자기의 국가역량을 장기적으로,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공격잠수함 개발에 성공하였다.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한 제2차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에서 조선의 잠수함이 잠대지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에 대비한 전쟁씨나리오가 검토된 때는 2012년 12월이고, 미국 정찰위성이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조선의 신형 잠수함을 포착한 때는 2014년 1월이다. 

조선의 신형 잠수함은 어떤 잠수함일까? 이 신형 잠수함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정이 엇갈리는데, 1,500t급 잠수함이라는 추정도 있고, 3,000t급 잠수함이라는 추정도 있다. 미국의 대북정보전문 웹사이트 <38 노스(North)> 2014년 10월 19일부 분석기사는 당시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에 나타난 조선의 신형 잠수함이 900~1,500t급이라고 추정하였고, 나는 2014년 11월 3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잠수함은 왜 신포조선소 정박장에 나타났을까?’에서 한국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4년 11월 2일 보도에 의거하여, 조선의 신형 잠수함이 2,500~3,000t급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  <사진 5> 위의 두 사진은 2015년 1월 3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등장한 두 종류의 잠수함을 각각 촬영한 것이다. 위쪽 사진에 나타난 잠수함이 1,500t급 신형 잠수함이고, 아래쪽 사진에 나타난 잠수함이 1,830t급 잠수함이다. 1,500t급 신형 잠수함은 사거리가 1,420km인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다. 조선은 위의 두 잠수함보다 더 큰 공격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하였다. 바다 속에서 다핵탄두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공격잠수함을 작전배치함으로써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에서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타격력을 갖추게 되었다.    © 자주민보
 

그런데 지난 1월 3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그 신형 잠수함이 참가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5> 그 날 군종타격훈련 후반부에 있었던 잠수함연합부대 기동타격연습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1,830t급 잠수함이 533mm 어뢰를 가상표적으로 정해진 무인도를 향해 발사하는 장면을 보도하면서, 해수면 위로 떠올라 항해하는 신형 잠수함의 모습도 함께 보도하였다. 그 보도사진을 살펴보면, 조선의 신형 잠수함이 1,500t급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아시아경제> 2015년 2월 9일 보도기사도 그 신형 잠수함이 1,500t급이라고 하였다.

<해군공학(naval-technology)> 2014년 11월 24일 자료에 따르면, 조선이 보유한 1,500t급 신형 잠수함은 사거리가 1,420km인 준중거리잠대지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데, 조선은 이 신형 잠수함을 개량하여 중거리잠대지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더 큰 잠수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하지만 그런 예견은 정보부족에서 오는 착오다.

지금 조선은 중거리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공격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이 잠수함은 1993년에 소련에서 수입한 3,500t급 골프급(Golf-class) 잠수함을 해체하고 역설계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자체 기술을 가지고 더 좋은 성능으로 설계, 건조한 자국산 공격잠수함이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는 2014년 11월 2일 보도기사에서 그 공격잠수함이 골프급 잠수함보다 조금 작은 2,500~3,000t급이라고 추정하였고, 나는 2014년 11월 3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잠수함은 왜 신포조선소 정박장에 나타났을까?’에서 그 공격잠수함이 골프급 잠수함보다 조금 큰 4,000t급이라고 추정하였다. 내가 그렇게 추정한 까닭은, 골프급 잠수함을 원형으로 하여 개발된 조선의 새로운 공격잠수함이 당연히 골프급 잠수함보다 조금 더 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공격잠수함, 미국이 로미오급(Romeo-class)이라 부르는 1,830t급 잠수함, 그리고 미국 군사전문가가 신포급(Shinpo-class)이라는 임시명칭으로 부르는 1,500t급 신형 잠수함이 모두 조선의 자체 기술로 건조되어 작전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30일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잠수함부대라는 명칭이 아니라 ‘잠수함련합부대’라는 명칭을 쓴 까닭은, 공격잠수함, 1,830t급 잠수함, 1,500t급 신형 잠수함 등 다양한 등급의 잠수함들이 배속된 잠수함연합부대가 동해함대사령부 휘하에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 바다 속에서 다핵탄두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공격잠수함을 작전배치함으로써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 <사진 6> 이 사진은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맥딜공군기지 안에 있는 미국 특수작전사령부 청사를 촬영한 것이다. 2015년 1월 마지막 주에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주재한 '코리아전략세미나'가 그곳의 모의전쟁센터에서 진행되었다. 그것은 세미나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전쟁기획자들이 집결한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였다. 제1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는 1997년에 있었는데, 그로부터 18년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 참석한 전쟁기획자들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대응하는 대북전쟁씨나리오를 검토하였다.     © 자주민보


18년 만에 또 다시 미국 특수작전사령부 모의전쟁센터에 집결한 전쟁기획자들

동해에서 조선의 잠수함연합부대가 기동타격연습을 진행하고 있었을 때, 미국의 전쟁기획자들은 미국 특수작전사령부 모의전쟁센터에 집결해 있었다. <워싱턴자유횃불(WFB)> 2015년 1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월 마지막 주에 커티스 스커패로티(Curtis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주재한 ‘코리아전략세미나(Korea Strategy Seminar)’가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Tampa)의 맥딜공군기지(McDill Air Force Base) 안에 있는 미국 특수작전사령부 모의전쟁센터(Wargame Center)에서 진행되었다. 그 모의전쟁센터에서는 컴퓨터모의전쟁연습, 작전개념검토, 전쟁기획 같은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미나라는 명칭을 내건 그 자리는 미국 국방장관실 고위급 관리들을 비롯한 전쟁기획자들이 대북전쟁씨나리오를 검토한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였다. <사진 6>

이번에 열린 고위급 군사전략회의는 제2차 회의다. 제1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는 빌 클린턴(Bill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결정서 제56호(Presidential Decision Directive-56, PDD-56)를 채택한 것을 계기로 하여 1997년에 열린 바 있는데, 그로부터 18년 만에 제2차 회의가 열린 것이다. 제1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가 열렸던 1997년은 조선이 ‘고난의 행군’으로 시련을 겪던 시기였으므로, 당시 미국은 조선에서 정권붕괴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그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올해는 무엇에 대비하여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를 진행하였을까?

미국 국방부 관리들이 <워싱턴자유횃불>에 전해준 바에 따르면, 지금 스커패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조선의 군력증강추세와 제2코리아전쟁(second Korean War)을 촉발할 조선의 군사도발위험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한 ‘제2코리아전쟁’이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뜻한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조선문제전문가 데이빗 맥스웰(David S. Maxwell)은 위의 보도기사에서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을 “평양의 통제 아래서 코리아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조선의 군사공격”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의 전쟁기획자들이 18년 만에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 집결한 목적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 대응하는 대북전쟁씨나리오를 검토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서 전쟁기획자들이 검토한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는 ‘조선의 무력증강추세’도 있다.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1월 26일부 기사에 나오는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서 전쟁기획자들은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특수군, 싸이버공격을 동원하는 전쟁씨나리오를 검토했고, 미국이 특수작전군을 동원하여 조선의 대량파괴무기와 보관시설을 파괴하는 모의전투과정도 검토했으며, 조선의 싸이버공격에 대응하는 보복싸이버공격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언론보도에 나오지 않았지만,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서 전쟁기획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다룬 문제는, 미국 본토의 미사일방어망을 뚫는 다핵탄두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의 공격잠수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자유횃불>은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잠대지미사일 발사연습시설에 대해 보도하였고, <38 노스>도 같은 날 조선의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에 대해 보도하였다. 그 두 언론매체는 서로 약속한 것처럼 같은 날 조선의 잠수함작전능력에 대해 보도한 것이다. 그런데 <문화일보> 2014년 11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위의 두 언론매체가 조선의 잠수함작전능력에 대해 보도한 바로 그 날 대잠작전에 동원되는 미국 해군의 최신형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Poseidon) 한 대가 주일미해군항공기지에서 이륙하여 한국에 급파되었고, 한국 해군 잠수함부대와 합동으로 기동연습을 실시하는 매우 이례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런 이례적인 군사행동은 미국이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의 공격잠수함에 대해 매우 긴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1월 마지막 주에 진행된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에서 전쟁기획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조선의 공격잠수함에 대응하는 군사전략문제를 검토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제2차 고위급 군사전략회의가 끝난 직후인 지난 1월 30일, 미국 해군이 6,200t급 핵추진잠수함 올림피아호(SSN 717)를 진해해군기지에 급파하여 한국 해군 잠수함과 합동으로 기동연습을 실시한 것만 봐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연합뉴스> 2015년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과 한국군은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제4차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을 실시하였다. 미국 국방부는 핵미사일방어 부차관보와 동아시아 부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참가단을 그 연습에 보냈고, 한국 국방부는 국방정책실장을 대표로 하는 참가단을 그 연습에 보냈다. 제4차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에서도 잠대지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의 공격잠수함에 대응하는 문제가 검토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방부가 지난 2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제출한 업무자료에 따르면, 지금 군사부문에 대한 정력적인 현지지도를 이어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싸움준비를 하루빨리 완성하라고 군부대들에게 지시하는 중이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 2015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의 싸움준비를 올해 10월까지 완성할 데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문건이 각급 군사지휘관들에게 하달되었는데, 그에 따라 조선인민군은 대대급 전투준비계획을 다시 작성했으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군부대 당조직들과 청년동맹 당조직들이 올해 10월까지 싸움준비를 무조건 완성하겠다는 내용의 맹세문과 결의문을 채택하도록 조치하였다고 한다.

요즈음 조선과 미국에서 각각 나타나는 위와 같은 심각한 움직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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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0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 연습한 북의 항모격침결사대

[한호석의 개벽예감](148)
자주민보 2014년 02월 0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미해군 핵추진항공모함은 무력침공에 돌격대로 앞장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쟁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미국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니미츠급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을 10척이나 가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5년 1월 30일 조선은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을 격침하는 전법을 연습하였고, 그 연습현장을 세상에 공개하여 미국과 추종국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 날 조선이 공개한 항모공격전법은 중국의 항모공격전법과 판이하게 달랐다.     © 자주민보
 
조선의 항모공격전법과 중국의 항모공격전법, 서로 어떻게 다를까?
 
2015년 1월 31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에 따라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이 진행된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조선에서 말하는 적해상목표는 미국이 ‘무적함대(invincible fleet)’로 내세우는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을 뜻하며, 조선에서 말하는 군종타격훈련은 항공군과 해군이 협동으로 진행한 공중-수중타격훈련을 뜻한다. 그 날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와 해군 잠수함대는 협동으로 항모공격전법을 연습하였던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항모공격전법을 연습해오면서도, 그 전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이 자기의 항모공격전법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추진항공모함은 아메리카제국의 전쟁승리를 담보해준다는 최강의 무력수단이자, 세계의 바다를 자기들이 지배한다는 해양패권의 상징이다. 그런 까닭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행해온 무력침공의 유혈현장들에는 예외 없이 그들의 항공모함이 돌격대로 앞장섰던 것이다. <사진 1>

항공모함들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니미츠급 핵추진항공모함(Nimitz-class nuclear-powered aircraft carrier)은 가압경수로 두 기를 가동하는, 만재배수량 97,000t급 초대형 항모(supercarrier)다. 핵추진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프랑스뿐인데, 프랑스는 만재배수량이 니미츠급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는 42,000t급 샤를드골호(Charles de Gaulle R91) 한 척밖에 갖지 못했다.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들에는 F/A-18E 쑤퍼호넷(Super Hornet) 전폭기, 씨호크(Seahawk) 대잠헬기, 아스프리(Osprey) 수직이착륙기 등 각종 함재기 90대가 실리고, 병력 5,680명이 탑승한다. 그런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 한 척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1억6,000만 달러나 된다. 미국은 그런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을 10척이나 가졌는데, 2008년 8월 이후 일본 요코스카해군기지에 상시배치되어 북침공격기회를 노리는 핵추진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1월 30일 조선은 미국의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법을 연습하였고, 그 연습현장을 세상에 공개하여 미국과 추종국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항모공격전법을 연습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두 나라뿐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을 자극할까봐 자기의 항모공격전법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은 세계가 보란 듯이 당당히 자기의 항모공격전법을 공개하였으니, 미국과 추종국들이 어찌 놀라지 않았겠는가. 조선이 세계해군사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항모공격전법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요즈음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앞두고 승리의 신심을 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조선이 공개한 항모공격전법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려면, 조선인민군의 항모공격전법과 중국인민해방군의 항모공격전법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미국 공군의 용역을 받고 연구하여 2007년 4월에 발표한 보고서 ‘용의 소굴로 들어가기: 중국의 반접근전략과 그것이 미국에 주는 영향(Entering the Dragon's Lair: Chinese Antiaccess Strategies and Their Implications for the United States)’에서 중국의 항모공격전법을 엿볼 수 있다. 그 보고서에 서술된 중국의 항모공격전법은 미사일구축함 25척, 미사일호위함 40척, 전폭기 100대, 무인타격기 54대, 잠수함 8척을 동원하여 항공모함을 집중공격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중국인민해방군은 지상의 자행발사대(TEL)에서 발사하는 항모타격미사일을 2010년에 작전배치하였다. 사거리가 1,500km인 둥펑(東風)-21D가 바로 그 미사일이다. 마하 10의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이 다탄두미사일은 미해군 항공모함이 중국 영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강력한 타격수단이다.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가 2013년 3월 11일에 펴낸 보고서 ‘항모의 가격에 대하여(At What Cost a Carrier)’에서 미해군 함재기 조종사인 헨리 헨드릭스(Henry Hendrix)는 척당 135억 달러나 하는 미해군 핵추진항공모함이 대당 1,100만 달러밖에 하지 않는 중국의 항모타격미사일 둥펑-21D로부터 위협을 받는다고 지적하였고, 2015년 2월 3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국방정보국(DIA) 빈슨트 스투워트(Vincent Stewart) 국장은 중국의 항모타격미사일 둥펑-21D가 미해군 항공모함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된다고 인정한 바 있다.

위의 서술내용이 말해주는 것처럼, 중국의 전법은 대규모 화력을 집중하여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달리 이번에 조선이 세상에 공개한 전법은 유격전식 선제기습으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공격하는 것이다. 총동원식 화력집중전법과 유격전식 선제기습전법이라는 양자의 뚜렷한 차이가 눈길을 끈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선제기습전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전투행동으로 될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초단기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나의 거듭되는 예상발언은, 조선인민군이 유격전식 선제기습타격으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격침하는 경우 전쟁이 불과 하루 이틀 만에 너무 간단히 끝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북왜곡선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조선인민군이 통일대전에서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격침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1.30항모격침연습은 이제껏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한 항모절대우세론을 깨뜨려버렸다. 분석적 고찰을 통해 그 사연을 하나씩 밝히노라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장면들이 펼쳐진다. 
 
 
선제기습타격능력에 장거리습격능력을 추가한 새로운 항모격침전법

1.30항모격침연습은 조선 동해에 있는 무인도를 미해군 항모타격단으로 가정하고 실시되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우리나라의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기도하며 남반부작전수역에 기여든 미제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연습이 실시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이 인용구에서 주목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미해군 항공모함을 북반부작전수역이 아니라 남반부작전수역에서 공격하는 연습을 실시하였다고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1953년 정전 이후 조선인민군의 항모공격전법 개발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인민군이 지상만이 아니라 해상과 공중에서도 쏠 수 있는 강력한 대함미사일을 작전배치하여 항모공격력을 보유하기 전에는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강원도 원산 앞바다까지 접근하여 조선을 위협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 조선의 항모공격전법은 미사일고속정과 고속어뢰정으로 편성된 항모격침결사대가 돌진하면서 대함미사일과 중어뢰를 무더기로 발사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전법을 군집전술(swarming tactics)이라 한다. 그런데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조선인민군의 군집전술 작전반경을 벗어난 남반부작전수역에서 북침전쟁연습을 실시하면서부터 조선의 기존 군집전술로는 항모타격단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타격범위를 남반부작전수역까지 확장한 새로운 항모타격전법이 조선인민군에게 필요하였다. 

위의 인용구에 나오는 남반부작전수역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그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작전통제에 따라 한국 해군이 관할하는 작전수역을 뜻한다. 지난날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감행했던 일련의 북침전쟁연습을 살펴보면, 그들의 동해작전수역은 경상북도 울릉도 인근이었고, 서해작전수역은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1년 11월 1일 조선인민군은 새로운 항모공격전법을 연습하였다. 그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 밑에 공군연합부대가 항모공격전법을 연습했는데,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공군 제447군부대에 배속된 추격기들이 연습에 참가하였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날의 연습상황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미그-29와 미그-23으로 편성된 공중습격편대가 동해의 남반부작전수역에 진입한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선제기습타격으로 격침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그 날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 관해서는 2011년 11월 2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미일연합함대 위협한 북측 공군연합부대’에서 논한 바 있다.

2011년 11월 1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서 주목하는 것은, 해군 함대가 아니라 공군 비행대가 항모격침결사대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 날 미그-29와 미그-23으로 편성된 추격기편대가 불시에 동해 상공으로 출격하여 당시 울릉도 인근수역에서 대북전쟁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미해군 항공모함을 선제기습타격으로 격침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법을 연습한 것이다. 그 날의 항모격침연습은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전법이 해상무력 중심의 기존 전법에서 항공무력 중심의 새로운 전법으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2> 조선인민군 항공군 추격기비행사들은 항모격침연습에 출격하기 직전에 맹세문을 쓴다. 위의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23 비행사들이 출격 직전에 맹세문을 낭독하면서 결사의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 최고사령관기가 나부끼고 있다. 그들이 맹세문을 쓰고 출격한 것은, 그들이 연습하는 항모격침전법이 결사의 각오로 비행해야 하는 고난도전법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을 항모격침결사대라고 부른다.     © 자주민보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447군부대 소속 추격기비행사들로 편성된 항모격침결사대는 출격 직전에 맹세문을 썼다고 한다. <사진 2> 추격기비행사들이 맹세문을 쓰고 출격하는 것은 일상적인 전투비행훈련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맹세문을 쓰고 출격한 것은, 그들의 새로운 항모격침전법이 결사의 각오로 비행해야 하는 고난도전법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이 항공무력 중심의 새로운 항모격침전법을 연습한 것을 알게 된 미해군은 항모작전수역을 울릉도 인근에서 훨씬 더 남쪽으로 끌어내려 제주도 인근으로 이동시켰다. 그만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남방작전수역으로 물러선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주도 남방작전수역은 조선인민군이 공격하기에 매우 힘든 곳이다.

조선인민군이 남방작전수역을 공격하려면, 1,000km의 항로를 돌파하는 장거리습격능력을 갖춘 새로운 전법을 개발해야 한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1.30항모격침연습에 수상함대가 참가하지 않고 추격기편대와 잠수함대가 참가한 것은, 1,000km나 떨어진 남방작전수역까지 가닿을 장거리습격능력을 선제기습타격능력에 추가하는 새로운 항모격침전법이 개발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3> 항모격침전법을 연습하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항법장치, 레이더, 무선교신장치를 모두 꺼놓고 무전파상태에서 비행한다. 그렇게 하면 추격기편대에서 전파가 전혀 발신되지 않으므로, 항모타격단은 전파탐지기로 그 추격기들을 탐지하지 못한다. 위의 사진은 1.30항모격침연습에 출격한 조선인민군 근위항공사단 추격기편대의 미그-29 두 대가 동해 상공을 무전파비행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민보

무전파비행과 해수면밀착비행으로 항모타격단의 방공망 뚫는 추격기편대

지난 1월 30일 아침 조선인민군 근위항공사단 추격기편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가상한 무인도를 향해 출격하였다. 출격한 기종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보유한 기종들 가운데 항속거리가 긴 미그-29와 미그-23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날, 남방작전수역을 향해 동해 상공과 서해 상공으로 동시출격한 추격기편대들이 거대한 반원형 습격항로를 따라 비행하며 항모격침공격에 나서게 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강력한 방공망을 어떻게 뚫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1.30항모격침연습에는 추격기편대가 항모타격단의 방공레이더망을 뚫는 침투비행연습이 포함되었는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미제침략군 항공모함을 엄호하는 각종 적함선들의 반항공망을 가상하여 항공 및 반항공군 안의 여러 기종의 전파탐지기구분대들이 가적으로 행동하며 아군추격기편대의 습격항로를 포착하기 위하여 하늘과 바다를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항모격침결사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망을 뚫을 두 가지 침투방도 가운데 하나는 추격기편대의 무전파비행(radio-free flying)이다. 무전파비행이란 추격기가 항법장치, 레이더, 무선교신장치를 모두 꺼놓고 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추격기편대에서 전파가 전혀 발신되지 않으므로, 항모타격단은 전파탐지기로 그 추격기들을 탐지하지 못한다. <사진 3>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무전파비행으로 자기에게 날아오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를 탐지할 수 있는 방도는, 탐색레이더가 쏜 전파가 날아오는 추격기 기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반사전파를 포착하여 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격기가 항모타격단 탐색레이더의 전파발신영역 밖에서 비행하는 경우 탐색레이더마저 무용지물로 된다.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해수면에 바짝 붙어 초저공으로 비행하면, 탐색레이더 전파발신영역 밖에서 비행하는 것이 되므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바다 상공으로 탐색레이더를 아무리 쏘아대도 그들의 비행항적을 탐지하지 못한다. 평소에 초저공침투비행을 꾸준히 연마해온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무전파비행과 해수면밀착비행(sea-skimming flying)으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전투기조종사들이 저공비행(nap-of-the-earth flying)을 연습한다. 이를테면, 숙련된 미공군 조종사의 저공비행은 지표면으로부터 60m 고도에서 시속 800km로 느리게 비행하는 것인데, 바다에서는 해수면으로부터 15m 고도까지 내려가 느린 속도로 초저공비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미공군 조종사의 저공비행은 지형추적레이더(terrain-following radar)를 작동시키며 비행하는 것이므로, 무전파비행이 아니다. 미공군 주력전투기 F-16을 타고 저공비행에 나선 조종사는 지상근접경보체계(ground proximity warning system)에 의존하는 것이다. 

▲ <사진 4> 미공군 조종사들이 지형추적레이더에 의존하면서 아음속저공비행을 하는 것과 달리,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모든 전파발신장비를 꺼놓은 무전파상태에서 초음속-초저공비행을 한다. 해수면을 스치듯이 날아가는 그들의 무전파초저공비행고도는 해수면으로부터 10m다. 위의 사진은 2015년 1월 30일 항모타격전법을 연습하는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인 미그-23 두 기가 해수면으로부터 10m 고도에서 무전파초저공비행을 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물체는 추격기편대와 함께 항모격침전법을 연습하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해수면 위로 전망탑을 드러낸 모습이다.     © 자주민보

미공군 조종사들이 지형추적레이더에 의존하여 속도가 느린 저공비행을 하는 것과 달리,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모든 전파발신장비를 꺼놓은 무전파상태에서 속도가 빠른 초저공비행을 한다. 날렵한 바다새처럼 해수면을 스치듯이 날아가는 그들의 무전파초저공비행고도는 해수면으로부터 10m다. 

해수면밀착비행기능을 가진 대함순항미사일의 초저공비행고도는 해수면으로부터 5m이고, 해수면밀착비행기능을 가진 무인항공기(UAV)의 초저공비행고도는 해수면으로부터 7m인데, 항모격침연습에 나선 조선인민군 추격기비행사들은 해수면으로부터 10m 고도로 비행하였다. <사진 4> 

그런데 위의 보도사진들에서는 미그-29와 미그-23이 각각 두 대씩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공군 전투기들은 삼각편대비행을 하는 것이 공식이므로, 마치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것처럼 5대 또는 3대가 삼각형으로 비행하는데, 항모격침연습에 나선 조선인민군 추격기는 삼각편대비행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습격비행은 추격기 4대로 제한된다. 왜냐하면 무전파초저공비행이라도 삼각편대비행은 초계비행 중인 적기 조종사의 육안관측으로 포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2일 동해 상공에서 미공군 전략전자정찰기 RC-135S를 공중나포 또는 격추하려고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돌진하였던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도 미그-29 두 대와 미그-23 두 대로 편성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그-29의 최고비행속도는 마하 2.25이고, 미그-23의 최고비행속도는 마하 2.32인데,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는 그런 최고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비행속도가 마하 1.25 수준으로 떨어져 시속 1,500km로 날아간다. 해수면을 스치듯이 마하 1.25의 속도로 날아가는 무전파초저공비행은 비행사가 육안식별과 비행감각에 의존하여 조종하는 것이므로, 고속도로에서 한 쪽 눈만 뜨고 방향감각에 의존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는 행동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전파초저공비행은 추격기비행사의 비행감각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찰나 해수면에 충돌하는, 극도의 위험을 돌파해야 하는 고난도비행이다. 전시에 항모격침결사대로 나선 추격기편대가 남방작전수역에 포진한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공격하려면 원산비행장을 출격기점으로 약 1,000km의 습격항로를 따라 약 40분 동안 극도의 위험을 돌파하는 고난도비행을 해야 한다. 추격기비행사들이 항모격침연습에서 출격하기 직전에 맹세문을 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미해군 항모타격단에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30초의 대응시간

조선인민군 전파탐지기부대들은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무수히 발신하는 전파를 탐지하여 그들의 항적과 위치를 찾아낼 수 있지만, 미해군 항모타격단은 원산비행장에서 출격하여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수평선 너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의 비행을 알지 못한다. 미국군이 사용하는 초수평선레이더(over-the-horizon radar)의 탐색거리는 3,000km나 되지만, 설비규모가 너무 커서 항모타격단에 싣지 못하고 지상기지에만 설치한다.

바다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30~45km에 이르는데,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날아가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수평선을 넘어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발견하는 순간 비행속도를 더욱 높여 돌진비행을 하게 되므로, 초저공비행의 마지막 단계는 약 30초 만에 끝나게 된다. 따라서 미해군 항모타격단에게 주어지는 대응시간은 약 30초로 제한된다. 그 30초 동안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항모타격단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공격하려면 무선교신장치를 켜고 추격기들끼리 상호교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해군 항모타격단은 추격기편대의 무선교신전파를 포착하고 즉각 대공방어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미해군 항모타격단은 자기에게 주어진 대응시간 30초 동안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를 요격할 수 있을까?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자기들의 코앞에 다가온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에 맞설 무기는 근접방공무기다. 미해군 항모타격단에 탑재된 근접방공무기는 사거리 14.5km의 씨스패로우(Sea Sparrow) 함대공미사일, 대함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사거리 9km의 회전식 동체미사일(Rolling Airframe Missile), 사거리 3.6km의 20mm 페이랭스(Phalanx) 속사포다.

이 근접방공무기들은 추적레이더로 타격목표를 포착하여 자동발사하는 무기인데, 근접방공무기에 연동된 추적레이더는 해수면으로부터 25~50m 높이에 설치되었다.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해수면으로부터 10m 고도에서 초저공비행으로 돌진해오는데, 해수면으로부터 25~50m 이상의 허공으로 전파를 쏘는 추적레이더가 그처럼 낮은 비행고도를 탐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사진 5>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가상한 무인도를 향해 공대함미사일과 유도폭탄을 연속발사하고 비행고도를 높여 급상승하는 도약습격기동을 연습하였다. 거대한 타격폭풍이 무인도 지표면 위로 높이 솟구친 것은, 추격기들이 화력이 센 고성능유도폭탄을 발사하였음을 말해준다. 실전에서 추격기편대는 장갑관통능력을 가진 공대함미사일과 유도폭탄을 집중발사하여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위와 같은 사실을 생각하면, 미해군 항모타격단이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에 맞설 근접방공무기는 수동으로도 사격할 수 있는 페이랭스 속사포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페이랭스 속사포는 360도 회전하고, 수평각으로부터 -25도 아래쪽으로 저고도사격까지 할 수 있는데, 3.6km밖에 되지 않는 짧은 사거리가 치명적인 약점이다.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향해 초저공비행으로 돌진하는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에 탑재된 장갑관통 공대함미사일과 장갑관통 유도폭탄의 사거리는 10~15km에 이르고, 전파교란을 뚫고 비행하는 성능까지 지녔다.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는 항모타격단을 가상한 무인도를 향해 공대함미사일과 유도폭탄을 페이랭스 속사포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연속발사하고 비행고도를 높여 급상승하는 도약습격기동을 연습하였다. <사진 5>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30항모격침연습 중에 “전투비행사들은 초저공으로 바다우를 스칠듯 날으며 그물같이 촘촘한 <적>의 반항공망을 과감히 뚫고 적항공모함으로 접근하여 적들이 손쓸 사이 없이 도약습격기동을 진행하였”고, 감시소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김정은 제1위원장은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고 한다.

▲ <사진 6> 이 사진은 제주도 남방작전수역에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해오는 미해군 7함대 핵추진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비행갑판에 우뚝 솟은 사령탑을 촬영한 것이다. 탐색레이더, 추적레이더, 항법장치, 무선교신장치, 출격통제장치 등이 집결된 항모사령탑은 항공모함의 뇌다.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망을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뚫고 들어가 타격하려는 목표는 항모타격단의 사령탑들이다. 사령탑이 파괴된 항모타격단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 자주민보

니미츠급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의 높이는 지상건물 22층 높이에 맞먹는 77m이고, 해수면 위의 함체높이는 64m다. 넓은 비행갑판에는 높이가 46m이고, 폭이 6m인 우람한 항모사령탑(island)이 솟아있다. 탐색레이더, 추적레이더, 항법장치, 무선교신장치, 출격통제장치 등이 그 항모사령탑에 집결되었으므로, 항모사령탑은 항공모함의 뇌라고 할 수 있다. 항모호위함대도 그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진 6>

뇌에 강타를 맞으면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처럼, 사령탑에 불의의 강타를 받은 항모타격단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의 타격점은 근접방공무기로 추격기편대를 요격하지 못해 허둥거리는 항모타격단의 사령탑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투비행사들은 적항공모함의 중추요소들에 대하여 불의적이며 련속적인 타격을 들이대여 적항공모함타격단이 작전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전투리탈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인용문에 나온 중추요소가 바로 사령탑인 것이다.
1.30항모격침연습은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해수면을 스치듯 날아가는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장갑관통 공대함미사일과 장갑관통 유도폭탄으로 항모타격단의 ‘뇌’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공중기습타격전법을 연습한 것이었다.
 
 
항모타격단의 대잠탐색망 뚫고 바다 속에 매복하는 스텔스잠수함대

추격기편대가 선제기습타격으로 항모타격단의 사령탑들을 파괴하면 항모타격단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지만, 공대함미사일이나 유도폭탄의 파괴력으로는 몸집이 비대한 핵추진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을 격침시키지는 못한다. 항모타격단을 바다 속으로 격침시켜버리려면, 잠수함대가 발사하는 중어뢰의 강력한 파괴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조선인민군 항모격침결사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방공망을 뚫고 타격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도 가운데 하나는 위에 서술한 추격기편대의 무전파초저공비행이고 다른 하나는 잠수함대의 저소음침투잠항이다.

전시에 남방작전수역에 포진하고 북침명령을 대기하는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공격할 조선인민군 항모격침결사대는 추격기편대와 잠수함대로 편성되는데, 이제는 잠수함대의 수중기습타격전법을 살펴볼 차례다.

전파도 햇빛도 가닿지 않는 캄캄한 바다 속에서 은밀히 항해하는 잠수함을 탐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수상함, 대잠초계기, 대잠헬기에 설치한 수중음향탐지기로 바다 속의 잠수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전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수중음향탐지기로 잠수함을 찾아내는 것은, 백사장에 떨어진 바늘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확률을 가진다. 예컨대, 2013년에 한국 해군이 실시한 비공개 대잠훈련이 그런 탐색확률에 대해 말해준다. 한국 해군은 그 대잠훈련에 최신형 대잠탐색장비를 총동원하였는데도, 탐색확율은 25%를 밑돌았다. 모든 조건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설정된 대잠훈련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니,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속출하는 실전상황에서 잠수함탐색확율은 영에 가까운 것이다.  

▲ <사진 7> 조선의 항모격침전법은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이다. 따라서 항모격침결사대는 추격기편대와 잠수함대로 편성된다. 위의 사진은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소속 잠수함들을 촬영한 것이다. 실전에서는 바다 속에서 저소음침투잠항으로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대잠탐색망을 뚫고 제주도 남방작전수역에 들어가 매복하게 되는데, 이번에 1.30항모격침연습 중에 조선의 사진기자들이 잠수함을 수중에서 촬영하기 힘들었으므로, 보도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해수면 위로 떠올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잠수함은 모두 세 척이다. 이것은 항모격침작전에 나서는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잠수함 세 척으로 편성될 것임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가 모든 전파발신장치를 끄고 출격하기에 앞서,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먼저 출항하게 된다.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잠수함대는 잠수함 세 척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잠수함들은 함체에 부도체 음향판을 부착한 스텔스잠수함들이다. 조선이 잠수함에 적용하는 스텔스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소식이 한국 언론에 처음 보도된 때는 2010년 4월이었다.
원산잠수함기지에서 출항한 잠수함대는 남하해류를 타고 습격항로를 따라 저소음침투항해술로 스텔스잠항을 하게 된다. 그 잠수함대는 미해군 항모타격단의 대잠탐색망을 뚫고 타격목표를 향해 바다 속에서 은밀히 접근하는 것이다. <사진 7>

원산비행장에서 출격한 추격기편대가 항모작전수역에 도달하려면 약 40분이 걸리는데 비해, 원산잠수함기지에서 출항한 잠수함대가 거기에 도달하려면 약 40시간이 걸린다. 저소음침투잠항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그처럼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격기편대가 출격하기에 앞서 먼저 출항한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항모작전수역에 도착하여 바다 속에서 매복하면서 추격기편대와 협동으로 공격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잠수함대가 미해군 항모타격단을 가상한 무인도를 향해 어뢰를 발사한 곳은 “수중매복구역”이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대는 추격기편대보다 먼저 항모작전수역에 도착하여 바다 속에서 매복하면서 항모타격단에 배속된 핵추진잠수함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가, 추격기편대가 선제기습타격으로 항모타격단의 사령탑들을 파괴하는 순간 핵추진잠수함을 향해 어뢰돌격을 개시하게 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4년 6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잠수함훈련에서 조선인민군 해군 제167군부대는 어뢰돌격을 연습하였는데, 그것은 매복 중인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미해군 핵추진잠수함을 향해 여러 방향에서 어뢰를 연속발사하며 돌격하는 매복공격연습이었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단독으로 수중기습타격을 하지 않고, 추격기편대와 함께 협동으로 공중-수중기습타격을 하는 까닭은,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하면 잠수함의 위치가 금방 노출되어 항모타격단의 대잠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잠탐색망을 뚫고 은밀히 접근하여 바다 속에 매복하던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미해군 핵추진잠수함을 먼저 격침한 직후, 바다 위에 떠 있는 항모타격단을 향해 돌격하며 중어뢰를 연속발사해도, 이미 사령탑이 파괴되어 ‘뇌사상태’에 빠진 그들은 어뢰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피격당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인민군 잠수함대가 ‘뇌사상태’에 빠진 항모타격단을 향해 어뢰를 집중발사하면 사실상 항모격침작전은 그것으로 모두 끝나게 된다. 

▲ <사진 8> 이 사진은 1.30항모격침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잠수함이 미해군 항모타격단으로 가상한 무인도를 향해 533mm 중어뢰를 발사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직격으로 일어난 폭발물기둥이 무인도 상공 위로 매우 높게 솟구쳐올랐다. 파괴력이 그처럼 강한 중어뢰를 발사해야 몸집이 매우 비대한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을 격침할 수 있다. 전시에 추격기편대의 공중기습타격으로 항모사령탑이 파괴되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핵추진항공모함은 잠수함대의 어뢰공격을 받고 거대한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려 마침내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2015년 1월 30일 항모격침결사대가 연습한 새로운 항모격침전법은 선제기습타격, 장거리침투기동, 수중매복공격을 결합시켜 완성한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이었다.     © 자주민보

항모격침작전에 나서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에는 533mm 어뢰 16발이 탑재되었는데, 어뢰발사관이 함수에 6문, 함미에 2문 설치되었다. 이것은 전시에 잠수함 세 척이 항모타격단을 향해 533mm 어뢰 48발을 집중발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어뢰들은 항모타격단의 수중음향유인장치에 유인되지 않고 타격목표를 향해 곧장 시속 74km 이상의 고속으로 돌진한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잠수함련합부대들이 비행대타격에 얻어맞고 얼이 나간 놈들에게 수중매복구역에서 련속적인 어뢰공격을 들이댔다”고 한다.

추격기편대의 공중기습타격으로 항모사령탑이 파괴되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니미츠급 초대형 핵추진항공모함은 잠수함대의 어뢰공격을 받고 거대한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마침내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물론 함재기 90대와 탑승병력 5,680명도 항공모함과 운명을 같이하며 최후를 맞을 것이고, 항모호위함대도 곧바로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사진 8>

2011년 11월 1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서는 추격기편대가 공중기습타격을 하였는데, 2015년 1월 30일에 진행된 항모격침연습에서는 추격기편대와 잠수함대로 편성된 항모격침결사대가 공중-수중기습타격을 연습하였다. 지난 1월 30일 항모격침결사대가 연습한 새로운 항모격침전법은 선제기습타격, 장거리침투기동, 수중매복공격을 결합시켜 완성한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이었다. 

물론 미해군은 항모방어훈련을 실시한다. 2011년 10월 31일 미국 해군 제7함대 공보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일연합함대는 적국의 공중공격, 해상공격, 수중공격으로부터 항공모함을 방어하는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것은 항공모함이 10~20분 사이에 공중, 해상, 수중에서 기습공격을 받는 상황을 가정하여 실시한 방어훈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항모방어훈련은 잘못된 가정 위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실전상황에서는 항모방어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미해군 항모타격단에게 주어질 방어시간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30초밖에 되지 않을 것인데, 미해군이 항모방어시간을 10~20분으로 설정한 것부터 오산이다. 그들이 예상한 항모방어시간 20분은 조선인민군 항모격침결사대의 공중-수중기습타격을 받은 항모타격단이 바다 속에 가라앉는 침몰시간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30항모격침연습을 직접 지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적의 허점을 잘 알고 빨찌산식 전법으로 적의 중추를 호되게 답새기기 위한 전법을 부단히 연구, 완성한다면 항공모함도 얼마든지 수장해버릴 수 있다”고 하면서 “미해군 력사에 수치스러운 한 페지를 우리 세대가 또 한 번 써주자”고 말하였다.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시작된지 약 40분 만에 추격기편대와 잠수함대가 협동으로 펼치는 공중-수중기습타격으로 미해군 ‘무적함대’의 운명은 종말을 고하고, 그로써 조선인민군의 초단기속결전은 사실상 결속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1.30항모격침연습에 대한 분석적 고찰에서 그런 예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국이 오는 3월에 감행하려는 ‘키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을 앞두고 조선이 자기의 항모격침연습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전쟁위험을 격화시킬 북침전쟁연습을 그만두라고 미국에게 통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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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사이버 피습 위험에 노출된 세계 최대 해킹범죄국

<민중의 소리> 2015년 02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소니 해킹은 북의 소행이 아니다?
 
“나는 (소니 해킹사건과 관련하여) 그들(미국 연방수사국을 뜻함-옮긴이)이 틀렸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해커들이 누군지 밝히지는 않지만, (그 사건은) 예술을 제약하고 제한하는 음악산업과 영화산업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 시민적 자유론자(civil libertarians)들의 소행이었다.”
이 인용문은 영국 언론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International Business Times)> 2015년 1월 15일부 보도기사에 나온 존 맥카피(John McAfee)의 발언이다. 소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그대로 믿어온 사람들의 기존관념을 깨뜨리는 폭로발언이다.
소니 해킹사건에 관한 미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폭로발언의 주인공 존 맥카피는 누구일까? 미국과 영국의 이중국적자인 그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 컴퓨터백신프로그램회사들을 창업하고 운영해온 정보기술보안업계의 저명한 전문가이자 기업가인데, 이전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IT보안을 위해 자문역할을 맡아본 경력도 있다. 그런 그가 소니 해킹사건의 범인은 북이 아닌 해커들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소니 해킹
소니 해킹ⓒ자료사진
   

맥카피의 견해에 따르면, 자신들이 소니 해킹을 하였노라고 스스로 밝힌 ‘평화지킴이(Guardians of Peace)’는 시민적 자유론을 신봉하는 해커들이다. 소니 해킹사건의 범인을 북이라고 지목한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을 부정한 IT보안전문가는 비단 존 맥카피만이 아니다.
소니 해킹이 누구의 소행인지 기술적으로 밝힐 수 없다는 해명불가론을 제기한 수많은 IT보안전문가들 가운데 미국 언론보도에 등장한 미국인 전문가를 열거하면, IT보안업체 ‘트러스팃쎅(TrustedSec)’ 최고경영자(CEO) 데이빗 케네디(David Kennedy), IT보안업체 ‘태아이어 글로벌(Taia Global)’ 최고경영자 제프리 카아(Jeffrey Carr), IT보안업체 ‘파이어아이(FireEye)’ 최고경영자 케빈 맨디아(Kevin Mandia), IT보안업체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전문가 마크 로저스(Marc Rogers), 국제적으로 소문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 출신 헥터 먼씨거(Hector Monsegur), IT보안전문가 스캇 보그(Scott Borg) 등이다.
거기에 더하여, 소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소니 해킹은 그 영화제작보급사에서 해고당한 IT담당직원 6명이 자기들을 해고한 회사측에 불만을 품고 저질렀다는 내부범행설을 제기한 사람도 있는데, 그는 IT보안업체 노스(Norse)의 선임부회장 커트 스탬버거(Kurt Stammberger)다. 2014년 12월 29일 이 IT보안업체는 내부범행설에 관한 자기들의 독자적인 조사결과를 소니 해킹사건수사를 담당한 미국 연방수사국에 설명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생각하면, 소니 해킹은 북의 소행이 아니라는 정보기술보안전문가들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소니 해킹사건을 수사한 미국연방수사국의 발표내용을 보아도 논리적 설득력을 찾을 수 없다. 이를테면, 지난 1월 7일 뉴욕에서 진행된 사이버안보국제토론회에 초청연사로 출연한 미국 연방수사국 제임스 카미(James B. Comey) 국장은 소니 해킹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해커들이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가짜 써버를 사용했지만, 북이 사용하는 인터넷프로토콜(IP)주소로 여러 차례 접속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그들이 실수로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소니 해킹이 누구의 소행인지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위에 인용한 제임스 카미 국장의 발언은 억지주장으로 들린다. 원래 해커들은 해킹을 감행한 자기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마치 다른 해커들이 접속한 것처럼 접속흔적을 조작하는 법인데, 소니 해킹사건에서는 접속흔적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하고 실수로 접속흔적을 몇 차례 남겨 결국 꼬리가 밟혔다는 것이니, 그런 주장을 어리석게 믿어버릴 IT보안전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소니 해킹이 북의 소행이 아니라는 IT보안전문가들의 견해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왜 북을 소니 해킹범이라고 지목하였을까?
지난해 11월 24일에 일어난 소니 해킹사건은 정체불명의 해커들이 소니영화사 전산망에 침투하여 엄청난 분량의 비공개전자정보자료(data)들과 당시에는 아직 공개상영되지 않았던 영화필름을 빼돌렸고, 그 영화사의 전산망을 일주일 이상 마비시켰으며, 하드드라이브(hard drive)까지 파괴해버린 사건이다. 그것은 이제껏 미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해킹사건들 가운데서 가장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소니 해킹사건이 미국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월 7일 뉴욕에서 진행된 사이버안보국제토론회에 초청연사로 출연한 미국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국장은 소니 해킹이야말로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이버공격”이라고 개탄하였다.
소니 해킹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기업체 한 곳에 국한된 사이버공격이었지만, 만일 사이버테러조직이 미국 전역의 주요산업부문 및 사회간접자본의 전산망을 집중공격하여 파괴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적 손실과 피해가 발생하여 미국이 존망위기에 내몰릴 판이다.
미국이 소니 해킹사건으로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느꼈다는 사실은 미국 국방부가 취한 긴급조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소니 해킹사건 직후인 2015년 1월 초 ‘국방부의 사이버작전을 위한 임무분석(Mission Analysis for DoD Cyber Operation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외부적대세력의 사이버공격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2016년 말까지 사이버사령부 전문인력을 지금보다 3배 증강된 6,200명으로 증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2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행된 <유투브(You Tube)> 관계자들과의 대담에서 “해킹은 순식간에 진행된다. 해킹을 하는데 장비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가 북이 한 것으로 믿는 소니 해킹 역시 그다지 정교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소니 해킹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국가체제 전반이 외부적대세력의 사이버공격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심각한 국가안보위험을 감지하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예컨대, 2013년 11월 18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WSJ)> 경영협의회 연차회의에 참석한 미국군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는 “우리는 취약하다. 실수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미국이 외부적대세력의 사이버공격위험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그보다 조금 앞선 2013년 10월 3일 미국 국방부는 일본 방위성을 참가시킨 미일사이버방위협의체를 창설하기로 일본측과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이 이처럼 사이버피습위험을 직감하고 그에 대비한 방어태세를 갖추게 되었다고 발표한 직후에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사이버공격을 받았으니 미국의 체면이 ‘처참하게’ 구겨진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만일 미국이 그처럼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소니 해킹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넘어가는 경우, 미국의 사이버안보능력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도는 회복할 수 없는 파산지경에 빠질 것이며, 미국에게 자국 안보를 내맡긴 수많은 동맹국들과 추종국들까지 무기력한 미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불안에 떨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소니 해킹사건은 단순한 기업체 해킹으로 끝난 게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사이버참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이버참사의 충격과 불안에서 한시바삐 벗어날 위기탈출구가 미국에게 절박하게 요구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니 해킹범인을 밝혀낼 능력도 없는 미국이 그 사건의 범인을 북이라고 지목하고 ‘진화 작업’을 서둘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추악한 정체 드러낸 세계 최대 해킹범죄국
2013년 10월 15일 미국의 유력한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국가안보국의 새로운 암호파괴자들(The NSA's New Code Breakers)’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은 1,500명에 이르는 암호분석가들, 수학자들, 과학자들, 기술자들 컴퓨터전문가들을 모집하여 암호분석실무반을 조직하였는데, 그 비밀조직은 약칭 S31이라 부르는 ‘암호분석 및 개척업무실(Office of Cryptanalysis and Exploitation Service)’, 그리고 약칭 TAO라 부르는 ‘맞춤형접근작전실(Office of Tailored Access Operations)’이다. 이 비밀조직들은 세계 각국에 있는 80,000개 이상의 전산망에 침투하여 정탐장치(spyware)를 심어놓고 엄청난 분량의 비밀정보를 빼냈다.
 
국가안보국의 새로운 암호파괴자들(The NSA's New Code Breakers) [Foreign Policy
국가안보국의 새로운 암호파괴자들(The NSA's New Code Breakers) [Foreign Policyⓒ출처 : Foreign Policy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 정탐장치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컴퓨터보안장치로는 찾아내지 못할 만큼 특수하게 제작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수 백 개에 이르는 외국정부기관의 전산망에 침투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빼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05년 이후부터는 러시아정부 전산망과 중국정부 전산망에 침투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빼냈다고 한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이집트,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의 정부전산망에 침투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빼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주요동맹국들인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유럽연합의 정부전산망들에도 침투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빼냈다.
위의 기사에 서술되지는 않았으나, 미국 국가안보국이 청와대를 비롯한 한국정부 전산망에도 침투하여 기밀정보를 빼낸 것은 불문가지다. 국가안보국이 극비리에 자행해온 그런 전산망침투공작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미국 국방정보국(DIA), 미국 국무부가 ‘공범’으로 연루되었음은 물론이다. 국가안보국이 80,000개 이상의 외국정부기관 컴퓨터에 침투하여 자행한 희대의 불법정탐범죄는, 2013년 6월 초 하와이에서 홍콩으로 도피한 뒤 러시아에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우든(Edward Snowden)이 그 내막을 세상에 폭로하기까지, 2001년 9.11 사태 이후 무려 12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외교정책> 기사에 서술된 위와 같은 경악할 사실은, 국가차원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과 전문인력을 집중투입하여 전 세계를 상대로 해킹범죄를 자행한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 해킹범죄국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세계 최대 해킹범죄국인 미국이 소니 해킹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건의 범인을 북이라고 지목하고 그에 따른 대북제재조치까지 추가로 발동한 것이 얼마나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모략소동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이버피습 위험에 노출된 세계 최대 해킹범죄국
위에 인용한 <외교정책> 2013년 10월 15일 기사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이 세계 각국의 전산망에 침투하여 국가기밀정보를 빼냈지만, 침투에 실패하여 손을 대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있다고 한다. 그 나라가 바로 미국의 최대 적대국인 북이다.
그런데 지난 1월 18일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전산망에 자주 침투하곤 하였던 미국 국가안보국이 북의 해커들이 사용하는 말레이시아의 인터넷을 우회하여 2010년에 북의 전산망에 직접 침투한 적이 있었다는 보도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의 그런 보도내용은 위에 언급한 <외교정책>의 기사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북은 세계적 범위의 전자통신망인 ‘월드와이드웹(WWW)’에 연결된 인터넷(internet)도 사용하고 있고, 국가내부적으로만 구축한 인트라넷(intranet)인 ‘광명’도 사용하고 있다.
 
북한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에 학생들이 컴퓨터로 전산 수업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원래 부모가 일제와 싸우다 숨진 투사들의 후예들을 위해 지난 1947년 설립됐다.(자료사진)
북한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에 학생들이 컴퓨터로 전산 수업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원래 부모가 일제와 싸우다 숨진 투사들의 후예들을 위해 지난 1947년 설립됐다.(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북의 유일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스타 조인트 벤처(Star Joint Venture)는 북의 체신성과 태국의 락슬리 퍼시픽(Loxley Pacific)이 공동투자로 설립한 합작회사인데, 중국의 국영통신회사인 차이나유니컴(China Unicom)과 국제전기통신위성기구(INTELSAT)에서 전자통신서비스를 받아 북과 국제사회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준다.
북에서 운영되는 인트라넷은 ‘광명’만이 아니다. 북의 국가안전보위부는 인트라넷 ‘방패’를, 조선인민군은 인트라넷 ‘금별’을, 인민보안부는 인트라넷 ‘붉은검’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물론 ‘월드와이드웹’과 북의 인트라넷은 서로 단절되어 있다. 북은 미국 국가안보국을 비롯한 적대적 해커집단들이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호벽도 설치해놓았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국가안보국이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하려면, 북에 잠입시킨 간첩이 인트라넷에 연결된 어느 컴퓨터 안에 정탐장치를 심어놓고 북의 대외용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빼돌려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그런 식으로 잠입하여 정탐활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북의 대외용 인터넷을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므로 그 간첩은 북측 당국의 역추적에 의해 곧바로 적발, 체포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미국 국가안보국이 2010년에 북의 전산망에 직접 침투한 적이 있었다는 미국 정부관리들의 주장은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북의 대외용 인터넷에 침투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의 대외용 인터넷은 평양주재 외국대사관들이나 외국인과 해외동포들이 숙박하는 호텔들에 설치되었는데, 북이 등록한 인터넷프로토콜 주소는 2014년 말을 기준으로 1,024개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직접 침투하였다고 주장한 대상은 그런 곳들 가운데 어느 한 곳이었을 것이니, 해킹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의 사이버전능력은 최상위에 도달하였다. 한국군 당국의 정보를 인용한 2014년 12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1990년대부터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 가운데서 컴퓨터영재를 조기발굴해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전문인력을 육성해왔다고 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안대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4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유능한 해커들이 해마다 300명씩 배출된다고 한다.
2012년 8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민군 전략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북이 사이버사령부라는 명칭 앞에 ‘전략’이라는 말을 앉힌 것은, 사이버전능력을 전술공격수준에서 전략공격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북의 전략사이버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해커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한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뉴스1> 2014년 1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전략사이버사령부에 근무하는 해커병력이 3,000명에서 5,9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신동아> 2013년 5월호 기사에서 임종인 교수는 북의 해커병력을 12,000명으로 추산했다. 그에 비하여, 한국군 사이버사령부 해커병력은 600명이고, 미국군 사이버사령부 해커병력은 2,400명이고, 일본자위대 사이버방위대 해커병력은 90명이고, 중국인민해방군 인터넷기초총부 해커병력은 13,000명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사이버사령부가 북의 인트라넷에 침투할 방도를 갖지 못한 것과 달리, 북의 전략사이버사령부는 상부에서 공격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미국의 주요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에서 컴퓨터공학박사였다는 탈북자가 2011년 8월 4일 <연합뉴스> 취재기자에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북의 국방과학원은 과학기술발전 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2012년까지 빛-자기변환시스템을 완성할 예정이었는데, 북이 그 기술을 개발하면 인터넷에 연결된 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내부전산망에도 침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과 미국의 사이버전능력은 극적으로 대조되는 비대칭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비대칭현상은 북과 미국이 사이버전으로 맞붙는 경우, 미국이 참패를 당하게 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지난해 12월 17일 미국 존스합킨스대학 국제대학원 부설 미한연구소(U.S-Korea Institute)에서 진행된 토론회에 참석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제임스 루이스(James A. Lewis) 국장은 북이 앞으로 5년 안에 스턱스넷(Stuxnet)을 이용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이버공격을 미국에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는데, 그런 강력한 사이버공격를 막아낼 방어기술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개발되지 못했고, 그런 사이버공격을 사전에 억제할 방도마저 없기 때문에 미국은 북의 사이버공격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AP
 
2010년 3월 또는 4월의 어느 시점에 개시된 스턱스넥공격은 이란, 인도네시아, 인도,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로 퍼져나갔는데,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모하여 이란을 상대로 펼친 스턱스넷공격은 보안장치가 튼튼하다는 이란의 우라늄농축시설 전산망에까지 침투하여 원심분리기 1,000기를 파괴할 정도로 정교하고 강력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방비상태에 있는 미국의 주요산업시설이 그처럼 강력한 사이버공격을 받는 경우, 미국의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미국은 피습당한 뒤로 불과 5~15분 만에 초토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우리는 북에 대한 압박을 계속 증가시켜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이 그 나라(북을 뜻함-옮긴이)에 침투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정보가 북에 흘러들어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니, 이것이 우리가 계속 가속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대북적대발언은 북과 미국의 사이버전 구도가 미국에게 얼마나 불리하게 형성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북을 자극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으로 들린다. 미국 대통령의 무지와 오판은 미국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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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공중기습전법 연습하는 북의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

[한호석의 개벽예감](147)
자주민보 2015년 02월 0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1.23비행전투훈련은 종전의 비행전투훈련과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실시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훈련 직전에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을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불러 직접 비행항로와 자표들을 찍어주고 비행전투훈련의 진행순차와 방법 등 비행전투임무를 하달하였다. 이러한 훈련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은, 도식화된 훈련계획에 의존하면서 긴 시간 동안 준비절차를 거쳐야 했던 종전의 군사훈련방식이 퇴출되고, 최고사령관이 명령을 내리는 즉시 실전을 방불한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근위항공사단 비행연대들의 탐색비행연습과 기습타격연습
 
지난 1월 24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근위 제1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기연대와 폭격기연대의 비행전투훈련을 지도한 소식을 일제히 실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비행전투훈련소식을 보도한 날이 1월 24일이었으니, 훈련은 그보다 하루 전인 1월 23일에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1월 23일 ‘20시 보도’에 따르면, 당일 조선의 날씨는 전반적으로 맑았고, 기온도 평년보다 섭씨 5도 정도 높았으니, 겨울철 비행전투훈련에 알맞은 날씨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23비행전투훈련을 지도하기 며칠 전에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였다. 그 시찰소식은 1월 13일에 보도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에서 근무하는 지휘관들에게 “실전과 무관한 훈련은 백날, 천날을 해도 필요가 없다. 한 가지 훈련을 하여도 내용과 형식, 방법이 현대전의 양상에 맞는 훈련, 실전환경과 접근된 훈련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 당의 의도”라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와 같은 의도에 따라 1.23비행전투훈련은 현대전의 양상에 부합되는 실전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근위 제1항공 및 반항공사단은 어떤 부대인가? 간혹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조선의 언론보도에서는 조선인민군 군부대의 정식명칭을 표기하지 않고 제123군부대라는 식으로 표기하는데, 그런 명칭을 단대호라 한다. 그런데 이번에 1.23비행전투훈련을 보도할 때는 단대호로 표기하지 않고, 공식명칭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인민군 군부대들 가운데 ‘근위’라는 명칭을 수여받는 부대는 이미 6.25전쟁 때 전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정전 이후 오늘까지 60여 년 동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를 받으며 자기의 전투력을 강화해온 최정예부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근위항공사단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내세우는 최정예부대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근위제1항공사단 관하 비행연대들은 평안남도에 주둔한다. 제35비행련대는 평안남도 개천시 인근의 개천비행장에 주둔하고, 금성친위제55비행련대는 평안남도 순천군에 있는 순천비행장에 주둔하고, 제57비행련대는 평안남도 온천군에 있는 온천비행장에 주둔하고, 제60비행련대는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북창비행장에 주둔한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기본전투단위는 연대이며, 1개 항공사단은 6개 비행연대, 3개 반항공연대, 2개 탐지레이더연대로 편성되었다. 1개 비행연대에 4개 비행대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1개 비행연대가 1개 비행장을 사용하며, 1개 비행연대에는 전투비행사 70명이 배속되었다.
조선인민군 최정예 항공사단 관하 비행연대들이 참가한 1.23비행전투훈련은 종전의 비행전투훈련과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실시되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첫째,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1.23비행전투훈련 직전에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을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불러 “직접 비행항로와 좌표들을 찍어주시며 비행전투훈련 진행순차와 방법 등 오늘 진행할 비행전투임무를 하달하시였다”고 한다. <사진 1>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에게 직접 비행전투훈련임무를 하달한 것은, 항공군 참모부가 비행전투훈련계획을 작성하고, 항공군 사령관이 그 계획을 승인하고, 그 계획을 전달받은 항공군부대들이 비행전투훈련을 준비하는 절차를 밟아가는 준비시간을 크게 단축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불시에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을 불러 비행전투훈련임무를 하달하였을 뿐 아니라, 오전 몇 시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도록 준비시간까지 정해주었다. 그렇게 되면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은 즉시 군부대로 달려가 최고사령관으로부터 하달받은 비행전투훈련임무를 전달하고 분초를 다투는 훈련준비에 돌입하는 것이며, 지정된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고사령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요즈음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하는 조선인민군 군사훈련에 관한 기사들을 종합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비단 항공군만 그렇게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군을 그런 방식으로 훈련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훈련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은, 도식화된 훈련계획에 의존하면서 긴 시간 동안 준비절차를 거쳐야 하였던 종전의 군사훈련방식이 퇴출되고, 최고사령관이 불시에 명령을 내리는 즉시 실전을 방불한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1.23비행전투훈련 중에 군지휘관들에게 “훈련에서 형식주의, 고정격식화를 배격하고 내용과 형식을 끊임없이 개선하며 훈련의 질을 높이는데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 <사진 2>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초단기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상한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사훈련에서 훈련진행속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의 사진은 2014년 4월 2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681군부대 관하 포병부대가 실시한 포사격훈련장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로 훈련진행속도를 직접 측정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 포병부대는 자행포들을 최고사령관이 지정해준 사격지점으로 이동시키고 포사격을 개시하기까지 기동전개시간이 오래 걸렸고, 사격지점에서 진행한 연속포사격속도도 빠르지 못해 실격하였다.     © 자주민보

이전에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거듭 논한 것처럼,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미상불 초단기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견되는데, 그런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고속으로 전개하는 작전속도에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군사훈련에서 무엇보다 훈련진행속도를 중시한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군사훈련장에 나가서 자신의 손목시계로 훈련진행속도를 직접 측정한다.

그런데 훈련진행속도를 중시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판정기준에 미달하여 실격된 군부대도 있다. 예컨대, 2014년 4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진행된 포사격훈련에서 조선인민군 제681군부대 관하 포병부대가 실격된 사례가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포병부대의 실격사유는 최고사령관이 지정해준 사격지점으로 자행포들을 이동시키고 포사격을 개시하기까지 기동전개시간이 오래 걸렸고, 사격지점에서 연속포사격을 진행한 사격속도도 빠르지 못한데 있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구분대가 맡겨진 전투임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게 산악극복능력을 강화하고 기동전개시간을 단축하며 전투사격속도를 높이기 위한 훈련을 잘하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구분대의 싸움준비가 잘되지 않았다고 엄하게” 질책하면서, “오늘 진행한 포사격훈련이 잘 되지 않은 것은 훈련에서의 형식주의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하였고, “반미대결전을 눈앞에 둔 지금 싸움준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며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는 오늘 못하면 래일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 <사진 3> 이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1.23비행전투훈련을 지도하면서 군지휘관들과 함께 비행장활주로를 이륙하는 미그-29 두 대를 바라보는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 땅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시선이 쏠린다. 1월 23일 평양의 일출시각은 오전 7시 42분이었는데, 당일 그처럼 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23비행전투훈련이 오전 8시쯤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훈련임무를 하달한 시각으로부터 훈련이 시작된 시각까지 길어야 약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근위항공사단은 불시에 출격명령을 하달받는 경우 1시간 안에 사단 전체가 전투에 돌입할 격동적인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자주민보

둘째,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월 24일에 보도한 <사진 3>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도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을 수행한 군지휘관들과 함께 비행장활주로를 이륙하는 미그-29 두 대를 바라보는 모습을 촬영한 것인데, 땅 위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시선이 쏠린다. 1월 23일 평양의 일출시각은 오전 7시 42분이었는데, 당일 그처럼 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23비행전투훈련이 오전 8시쯤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비행전투훈련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비행전투임무가 그 근위항공사단에 하달되었는지 보도하지 않았으나,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으로부터 비행전투훈련임무를 하달받은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급박한 한 초 한 초가 흐르는 속에” 그 임무를 근위항공사단에 “신속히” 하달하고 “훈련조직과 지휘를 짜고들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에게 훈련임무를 하달한 때로부터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훈련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름을 받고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가서 비행전투훈련임무를 하달받는데 걸린 시간, 비행전투훈련임무를 하달받은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이 사단지휘부로 달려가 연대급 지휘관들에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정해준 비행항로와 타격좌표, 비행전투훈련 진행순차와 방법을 알려주고 비행편대들의 출격준비를 다그친 시간,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신을 수행한 군지휘관들과 함께 당중앙위원회 청사를 출발하여 군비행장으로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 등을 모두 계산하더라도,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훈련임무를 하달한 시각으로부터 훈련이 시작된 시각까지 길어야 약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다시 말해서, 근위항공사단은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으로부터 불시에 출격명령을 하달받는 경우 1시간 안에 사단 전체가 전투에 돌입할 격동적인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 근위항공사단이 그처럼 격동적인 전투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비행전투훈련준비를 약 1시간 만에 끝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전군은 그들의 최고사령관이 불시에 통일대전 총공격명령을 내리면 불과 1시간 만에 모든 전투준비를 끝내고 초단기속결전에 돌입할 준비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1.23비행전투훈련 준비과정에 대한 이러한 분석적 고찰은,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이 한미연합군이 예기치 못한 시각에 사전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시작될 것으로 보는 나의 예견을 뒷받침해준다.

셋째,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23비행전투훈련이 시작될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준비를 끝낸 근위항공사단의 “결심을 청취”하고 비행연대들에게 출격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훈련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서술하지 않고, 왜 그들의 결심을 청취하였다고 서술하였을까?

보고와 결심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보고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끝냈음을 상부에 알리는 행동이고, 결심은 어렵고 힘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갖추는 사상정신적 준비를 뜻한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어렵고 힘든 임무를 수행하라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으면 그것을 완수할 사상정신적 준비부터 먼저 갖춘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결심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준비완료보고는 임무완수결심 뒤에 따라오는 실무절차다. 작전에 돌입하기 전에 보고보다 결심을 더 중시하고 앞세우는 것, 바로 이것이 자기들의 전통적 군풍이라고 조선에서는 말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정해준 비행항로와 타격좌표들은 그 근위항공사단 전투비행사들이 이제껏 연습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었다. 평소에 자주 추격기와 폭격기를 몰고 날아가던 항로로 출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익숙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건만, 비행해보지 못한 장거리 항로로 출격하여, 육안으로 미지의 목표를 찾아내 기습타격하라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았으니 전투비행사들이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겠는가. 

▲ <사진 4>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근위항공사단 추격기들이 주일미공군기지, 주일미해군항공기지, 주일미해병대항공기지, 주일미해군기지를 가상한 타격목표, 그리고 순양함, 구축함, 프리깃함, 상륙강습함으로 편성된 한미연합함대를 가상한 타격목표를 탐색하고 기습타격으로 파괴하였다. 위의 사진은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추격기들이 타격목표를 향해 기습타격을 퍼붓는 장면이다.     © 자주민보


1.23비행전투훈련에 등장한 미그-29, 미그-23, 수호이-25

지난 1월 23일 먼동 트는 신새벽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항공군 사령관과 참모장을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불러 비행전투훈련의 순차와 방법까지 미리 정해주었다. 그처럼 세심한 지도는 비행전투훈련 전반에 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23비행전투훈련은 그들의 최고사령관이 정해준 순차와 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1.23비행전투훈련의 첫 순서는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의 탐색비행연습과 기습타격연습이었다. 전투비행사들은 미지의 타격목표를 찾아가는 탐색비행을 하였고, 타격목표를 발견한 순간 지체 없이 강력한 기습타격을 퍼부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미지의 타격목표를 찾아가는 탐색비행이다. 만일 그 전투비행사들이 계기판에 항로를 현시해주는 위성항법장치와 탐지레이더를 보면서 타격목표를 찾아갔다면, 그것은 탐색비행이 아니다. 조선에서 말하는 탐색비행이란 위성항법장치, 탐지레이더, 무선교신장치를 모두 꺼놓은 무전파공중기동 중에 전투비행사들이 육안으로 항로를 식별하면서 미지의 타격목표를 찾아가는 고난도비행이다. 선뜻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은 비행훈련을 그렇게 한다.

그들이 1.23비행전투훈련에서 탐색비행연습과 기습타격연습을 실시한 것과 관련하여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기도하는 적공중비적들의 해외발진기지와 적함선집단을 가상한 목표에 대한 탐색과 강력한 타격이 짧은 시간 안에 련속적으로 진행되였다”고 서술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주목하는 것은,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가 ‘적공중비적들의 해외발진기지와 적함선집단을 가상한 목표’를 타격하였다고 서술된 대목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적공중비적’이란 미공군부대, 미해군항공부대, 미해병대항공부대를 통칭하는 말이고, 해외발진기지란 주일미국군항공무력 및 해상무력이 집결된 군사기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근위항공사단 추격기들이 주일미공군기지, 주일미해군항공기지, 주일미해병대항공기지, 주일미해군기지를 가상한 타격목표를 탐색하고 기습타격으로 파괴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4>

조선에서 이륙한 추격기가 왕복비행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沖繩)를 제외하고,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에는 다음과 같은 주일미국군기지들이 있다. 각 군종별 항공무력이 집결된 기지들은 미사와(三澤)공군기지, 아츠기(厚木)해군항공기지, 이와쿠니(岩國)해병대항공기지이고, 각 병종별 해상무력이 집결된 기지들은 요코스카(橫須賀)해군기지와 사세보(佐世保)해군기지다. 강원도 원산비행장을 발진기점으로 하여 항속거리가 가까운 순서로 위의 기지들을 열거하면, 이와쿠니해병대항공기지까지 왕복거리는 1,400km, 사세보해군기지까지 왕복거리는 1,600km, 아츠기해군항공기지까지 왕복거리는 2,280km, 미사와공군기지와 요코스카해군기지까지 왕복거리는 각각 2,400km다. 

▲ <사진 5> 이 사진은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미그-29가 기습타격을 마치고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우수기종인 미그-29의 항속거리는 왕복 2,100km다. 미그-29는 동해 또는 서해에서 한미연합함대를 기습공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원도 원산비행장에서 출격하는 장거리비행으로 이와쿠니해병대항공기지와 사세보해군기지도 기습공격할 수 있다. 한미연합군은 언급을 회피하지만, 현재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미그-29를 약 300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미연합공군을 압도하는 것이다.     © 자주민보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보유한 여러 기종들 가운데 위에 열거한 미국군기지들까지 왕복으로 비행할 수 있는 두 기종은 미그(MiG)-29와 미그(MiG)-23이다. 특히 야간전투능력이 뛰어나고 속력이 매우 빠르며 핵탄적재능력까지 갖춘 미그-29는 미공군 주력기종인 F-16보다 성능이 더 좋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최우수기종이다. <사진 5>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1989년에 소련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한 미그-29 30대를 보유하였는데, 1993년부터 평안북도 태천과 곽산에 있는 제7기계공업국에서 자체기술로 미그-29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한국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1995년 7월 8일 보도에 따르면, 1994년을 기준으로 제7기계공업국의 미그-29 연간생산능력은 14대라고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1월 현재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자국산 미그-29 약 270대, 소련산 미그-29 30대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 수준의 최우수기종인 미그-29를 300여 대나 보유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한미연합공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한미연합군은 이 놀라운 정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 <사진 6> 이 사진은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미그-23 비행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미그-23 항속거리는 왕복 2,820km다. 미그-23은 동해 또는 서해에서 한미연합함대를 기습공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원도 원산비행장에서 출격하는 장거리비행으로 아츠기해군항공기지, 미사와공군기지, 요코스카해군기지도 기습공격할 수 있다.     © 자주민보

조선의 언론보도사진들에 나오는 미그-29들은 두 종류로 도색되었는데, 진록색으로 도색된 것은 소련산이고, 그보다 연한 색으로 도색된 것은 조선산이다. 1.23비행전투훈련에는 당연히 조선산 미그-29들이 참가하였다.
미그-29 항속거리는 왕복 2,100km이고, 미그-23 항속거리는 왕복 2,820km다. <사진 6> 그에 비해 미그-21 항속거리는 좀 짧아서 왕복 1,400km다. 1.23비행전투훈련에 미그-29와 미그-23은 참가하였는데, 항속거리가 짧은 미그-21이 참가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23비행전투훈련에서 미그-29와 미그-23를 조종한 추격기편대 비행사들은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기도하는 적함선집단을 가상한 목표”를 탐색하고 기습타격으로 파괴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 말하는 ‘적함선집단’이란 순양함, 구축함, 프리깃함, 상륙강습함 등으로 편성된 한미연합함대를 가리키는 말인데, 추격기편대가 한미연합함대를 가상한 타격목표를 “짧은 시간 안에 련속적으로” 탐색,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미그-29에는 무게가 1,000kg이나 되는 대형유도폭탄이 4발이나 탑재된다.

▲ <사진 7> 이 사진은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수호이-25 비행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수호이-25 편대는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자주포, 다련장로켓포 등으로 구성된 한미연합군 기갑무력을 기습타격으로 파괴하는 연습을 진행하였다. 이 기종은 대형로켓포 32발로 중무장한다.     © 자주민보

1.23비행전투훈련에 참가한 기종들 가운데는 수호이(SU)-25 폭격기도 있다. <사진 7> 한국군에서 근접지원기(close-support aircraft)라 부르는 이 폭격기의 항속거리는 왕복 1,500km다. 이 폭격기는 길이 1.4m, 무게 5kg인 로켓포 32발로 중무장한다. 
1.23비행전투훈련에서 수호이-25 편대는 “<적>기계화부대 집결처에 대한 항공정찰”과 기습타격을 연습하였다. 조선에서 말하는 ‘적기계화부대’란 최전방에 배치된 한미연합군 기갑부대를 뜻한다. 수호이-25는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자주포, 다련장로켓포 등으로 구성된 기갑무력을 기습타격으로 파괴하는 우수기종이다.

▲ <사진 8> 이 사진은 주일미국군 해외발진기지와 한미연합함대를 가상한 타격목표로 설정된 동해의 어느 무인도가 조선인민군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의 기습타격을 받은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섬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 편대들이 "멸적의 비행운을 새기며 <적>목표를 무자비하게 죽탕쳐놓았다"고 묘사하였다. 기습타격연습은 성공적이었다.     © 자주민보

1.23비행전투훈련에 나선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가 진행한 탐색비행연습과 기습타격연습은 성과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추격기편대와 폭격기편대가 “멸적의 비행운을 새기며 <적>목표를 무자비하게 죽탕쳐놓았다”는 것인데, 그것을 바라본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근위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지적해준 항로를 따라 정확한 시간에 생소한 목표를 탐색하고 습격을 맵시있게 해제꼈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고 한다. <사진 8>

▲ <사진 9> 1.23비행전투훈련 중에 아군기와 가상적기가 격돌한 자유공중전투에서 공중경계와 공중매복비행임무를 수행하던 아군추격기들은 가상적기들을 먼거리에서 포착하고 재빠른 기동으로 속도, 고도, 방향을 부단히 바꾸며 꼬리를 사리는 가상적기들을 따라물고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공중매복전법은 이미 베트남전쟁에서 미해군 전투기를 완전히 제압하고 그 우월성을 입증한 매우 위력적인 전법이다.     © 자주민보


추격기편대가 연습하는 공중매복전법의 위력

1.23비행전투훈련의 두 번째 순서는 추격기들의 기종별 자유공중전투연습이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의 령공을 침입한 <적>공중비적들을 격추하기 위한 기종간 자유공중전투가 (1.23전투비행훈련 중에) 진행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자유공중전투라 하고, 한국에서는 근접공중전(dogfight)이라 한다.

여러 대의 추격기들이 서로 뒤엉켜 혼전을 벌이는 자유공중전투에서는 공대공미사일을 쏘고 싶어도 쏠 수 없다. 공대공미사일에는 최장사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최단사거리도 있는데, 자유공중전투는 최단사거리 안에서 혼전양상으로 전개되므로 공대공미사일이 무용지물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공중전투에서는 추격기에 장착된 탐지레이더도 쓸 수 없다. 전투비행사가 육안으로 적기를 포착하고 재빠른 회전기동으로 적기의 꼬리를 물고 기관포를 쏘아 격추하는 것이 자유공중전투의 전개양상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추격기들에는 아군기와 적기를 구별하는 피아식별장치를 장착할 필요가 없다. 자유공중전투에 나서는 전투비행사에게는 고도의 비행술이 필수적인데, 강한 담력, 예민한 비행감각, 행동의 민첩성을 가져야 고도의 비행술을 발휘할 수 있다. 복잡한 전자장비를 장착한 미국군 전투기들은 그런 비행술을 훈련하기보다는 전자장비에나 의존하므로 실제 근접공중전에서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에게 패하기 십상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23비행전투훈련 중에 아군기와 가상적기가 격돌한 자유공중전투에서 “공중경계와 공중매복비행임무를 수행하던 아군추격기들은 <적>의 전투폭격기들을 먼거리에서 포착하고 재빠른 기동으로 속도, 고도, 방향을 부단히 바꾸며 꼬리를 사리는 <적>기를 따라물고 치렬한 공중전투를 벌리였다”고 한다. <사진 9>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공중경계비행은 한국군에서 말하는 초계비행과 같은 뜻인데, 공중매복비행은 무엇일까? 매복이란 적의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숨었다가 적이 나타나면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전투행동을 뜻하므로, 원래 매복전을 수행하는 부대는 지상군부대들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보병부대만 지상매복전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항공부대도 공중매복전연습을 한다. 조선에서 말하는 공중매복이란 추격기의 위성항법장치, 탐지레이더, 무선교신장치 등을 모두 꺼놓은 무전파공중기동으로 저공비행을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적의 공중조기경보기가 사용하는 전파탐지기와 추적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아 공중매복이 가능하다. 적의 공중조기경보기를 따돌리고 공중매복에 들어간 추격기가 적기를 발견하면 급상승비행으로 비행고도를 높이면서 적기의 꼬리를 따라잡고 30mm 기관포를 쏘아 격추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공중매복전법은 이미 여러 차례 실전경험을 통해 그 우월성이 입증된 바 있다. 이를테면, 지난 베트남전쟁 시기 베트남에 파병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공중매복전법으로 미해군 전투기들과 근접공중전을 벌였다. 조선은 1967년 초에 2개 비행연대를 베트남전선에 보냈다. 조선인민군 비행연대는 1972년까지 6년 동안 6개월마다 다른 비행연대와 교체되는 방식으로 참전하였는데, 그로써 전투비행사 640명이 미국군을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들은 미그-19 추격기를 몰고 하노이 상공을 방어하면서 미해군 전투기들과 맞붙은 근접공중전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적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이를테면 1969년 5월 28일 미그-17 8대를 몰고 출격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미해군 전투기 F-105 12대를 한꺼번에 격추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아음속기종인 미그-17이 자기보다 거의 2배나 빠르게 비행하는 초음속기종인 F-105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공중매복전법의 덕이었다. 그 날 대승을 거둔 조선인민군 비행대대는 ‘5.28공중전’ 승리를 기념하여 대대명칭을 제528대대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6년 5월 23일 미그-19를 몰고 월남한 전투비행사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중에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미국군 전투기 약 100대를 격추하였다고 한다. 윌리엄 모마이어(William W. Momyer) 당시 미공군사령관은 1978년에 출판된 자기 회고록 ‘세(3) 전쟁에서의 공군력(Airpower in Three Wars)’에서 베트남전쟁 중에 격추된 미해군 전투기들은 거의 모두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한 미그-17에게 당했노라고 서술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베트남전선에서 공중매복전법으로 적기를 격추한 경험을 살려 동해 영공에서도 미정찰기를 격추하였다. 함경남도 함흥시 인근의 덕산비행장에 주둔하는 제2항공사단 관하 근위제56련대 전투비행사들은 1969년 4월 15일 미그-21을 몰고 나가 동해 영공을 침입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정찰기 EC-121을 동해에서 격추하였는데, 그때도 그들은 공중매복전법을 썼다.  
또한 2003년 3월 2일 조선에서 출격한 미그-29와 미그-23 편대가 동해 영공을 침입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전략전자정찰기 <RC-135S>에 기습적으로 접근하여 공대공미사일을 쏘겠다고 위협하며 공중에서 나포하려고 하였을 때도, 그들은 공중매복전법을 썼다.

▲ <사진 10> 이 사진은 1.23전투비행훈련 중에 실시된 특수기교비행연습에서 미그-29가 고난도기교동작을 펼쳐보이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그들은 배면비행, 90도측면비행, 횡전, 초저공비행, 급상승비행, 급강하비행 등을 연습하였다. 이런 고난도비행술은 전시에 한반도 상공에서 벌어질 근접공중전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 자주민보

1.23비행전투훈련의 세 번째 순서는 추격기들의 특수기교비행연습이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특수기교비행연습에 나선 추격기들이 “배면비행, 90도측면비행, 횡전, 초저공비행 등 기교동작들을 펼쳐보였다”고 묘사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그들은 급상승비행과 급강하비행도 펼쳐보였을 것이다. <사진 10>

배면비행은 기체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상태에서 날아가는 비행술이고, 90도측면비행은 기체를 90도 각도로 세워놓은 상태에서 날아가는 비행술이고, 횡전은 날카로운 각도로 회전기동하는 비행술이고, 초저공비행은 기체를 지표면 또는 해수면에 바짝 붙인 상태에서 날아가는 비행술이다. 이러한 특수기교비행술은 묘기에 가까운 고난도비행술인데, 무전파공중기동으로 진행되는 탐색비행, 공중매복비행에서 요구된다. 추격기를 타는 조선의 전투비행사들이 위와 같은 고난도비행술을 연습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평소에 고난도비행술을 꾸준히 연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3비행전투훈련의 마지막 순서는 여성추격기비행사들의 단독비행훈련이었다. 조선에서 첫 여성비행연대가 창설된 때는 1993년 2월이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민군 여성비행사들이 조종하는 기종은 폭격기, 직승기(작전헬기), 저고도침투기 등 비행속도가 비교적 느린 항공기들이다.

▲ <사진 11> 이 사진은 1.23전투비행훈련에 참가한 두 여성비행사들이 조종하는 미그-17이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기종은 아음속추격기이지만, 지난날 베트남전쟁에서 미해군 전투기들을 완전히 제압한 전설적인 전승기종이다.     © 자주민보
▲ <사진 12> 1.23비행전투훈련의 마지막 순서는 여성추격기비행사들의 단독비행훈련이었다. 이 사진은 2014년 11월 27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미그-17을 조종하는 단독비행훈련을 마친 여성추격기비행사 조금향, 림설에게 최상의 평가를 안겨주고, 그들의 훈련성과를 축하하여 직접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준 다음 그들과 함께 미그-17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앞으로 조선에서는 조금향, 림설의 뒤를 이어 추격기비행사들이 되겠다고 자원하여 입대할 여학생들을 보게 될 것이다.     © 자주민보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여성비행사들인 조금향, 림설 두 사람이 미그-17을 타기 시작하였다. 그 두 여성비행사들은 왜 미그-19를 타지 않고, 미그-17을 탔을까? 미그-19는 초음속추격기이고, 미그-17은 아음속추격기다. 비행훈련을 막 시작한 여성비행사들이 처음부터 초음속추격기를 조종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아음속추격기를 탔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들의 선배들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근접공중전에서 미해군 전투기를 완전히 제압한 전승기종 미그-17을 자기들의 첫 훈련기종으로 택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사진 11>
장장 70년에 이르는 조선항공군역사에 여성추격기비행사들이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여성추격기비행사들이 조선의 언론에 처음 등장한 때는 2014년 11월 28일이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비행장활주로에 나가 여성추격기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직접 지도하면서,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의 딸, 인민의 장한 딸들이며 불굴의 녀성혁명가들”이라는 최상의 평가를 안겨주었다. <사진 12>

정신적, 신체적 부담이 매우 큰, 고된 훈련과정을 오랜 기간 동안 거쳐야 추격기비행사가 될 수 있는데, 그 두 여성도 그런 고된 훈련과정을 끝내고 조종간을 잡았을 것이다. 이제껏 남성들만 조종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추격기를 여성들이 조종하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조선 전역에 퍼져나갔을 때, 전체 군인들은 전투훈련을 위해 더욱 분발하였을 것이고, 그에 따라 전군의 사기는 높아졌을 것이다. 앞으로 조선에서는 조금향, 림설의 뒤를 이어 추격기비행사가 되겠다고 자원하여 입대할 여학생들을 보게 될 것이며, 세계항공군사에서 처음으로 여성추격기연대가 창설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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