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6

한반도 군사정세 바꿔놓은 북의 전술로케트탄 18발

[한호석의 개벽예감](127)
자주민보 2014년 08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 사진은 2014년 8월 14일 북이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폭음과 화염을 내뿜으며 창공으로 솟구치는 장면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사진을 위와 같이 확대하였더니, 탄체에 둘려쳐 칠해진 흰색 띄 세 줄이 선명하게 보이고, 방향조종날개도 보인다. 기존 전술로케트탄 화성-11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탄종임을 알 수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사진 한 장이 깊은 사연 말해준다
 
<사진 1>은 지난 8월 1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현장에서 직접 지도하는 가운데 시험발사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북이 진행한 로케트탄시험발사는 한 두 차례가 아니었건만, 지난 8월 14일에 진행된 시험발사는 한반도 군사정세 변동을 촉발시킨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서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관련용어들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북에서 말하는 로케트탄은 미사일을 뜻한다. 영어권에서 밋슬이라고 발음하는 외래어 낱말을 두고 북에서는 미싸일이라 읽고, 남에서는 미사일이라 읽는다. 북의 발음체계에서는 경음화현상이 비교적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요즈음 북에서는 미싸일이라는 용어보다 로케트탄이라는 용어를 더 널리 쓰는 듯하다. 북에서는 때로 로케트라는 용어도 쓰는데, 유도무기만이 아니라 방사포 같은 비유도무기나 위성운반로켓도 모두 로켓범주에 속하므로, 유도무기를 특정할 때는 로케트탄이라고 해야 적확하다. 미싸일(missile), 로케트(rocket), 유도탄(guided missile) 등으로 혼용되는 용어를 이 글에서는 편의상 로케트탄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쓴다.
 
나는 지난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96’에서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에 대해 논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지난 6월 27일에 진행된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에 관한 보도내용만 읽었을 뿐, 시험발사의 전모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채 쓴 것이다. 그래서 시험발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보완한 글을 다시 집필할 요구가 제기되었다.
 
북이 이제껏 언론에 공개한 로케트탄발사장면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진 1>에 나타난 장면이 가장 근접촬영된 것으로 하여 ‘희소가치’를 지닌다. 그 근접촬영사진을 들여다보면, 방향조종날개 모양을 식별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탄체에 둘러쳐 칠해진 흰색 띠 세 줄도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북의 언론매체들이 위의 사진을 보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군 합참본부는 북이 300mm 신형 방사포를 시험발사해왔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예컨대 <연합뉴스> 2014년 6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이번 발사체는) 우리 군이 가진 현황 및 데이터와 딱 맞는 것이 없다”고 밝히면서 “다만 날아가는 속도와 고도를 봤을 때 가장 유사한 것은 ‘KN-09’으로 불리는 300mm 신형 방사포”이므로 그 발사체를 300mm 신형 방사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에서 남측에 떠도는 300mm 방사포 발사설이 한국군 합참본부가 퍼뜨린 소문이라고 지적하고 그와 관련된 몇 가지 논거를 제시한 바 있는데, 300mm 방사포 발사설이 남측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는 바람에 국민들은 그런 소문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까닭은, 미국군 정보당국이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300mm 신형 방사포라고 우겨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이 2013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 동안 연속적으로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로케트탄 여섯 발을 놓고 한국군 정보당국의 판단과 미국군 정보당국의 판단이 서로 엇갈렸는데, <동아일보> 2013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국군 정보당국은 ‘KN-02’ 개량형이라고 판단하였고, 미국군 정보당국은 300mm 신형 방사포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미국군은 북의 전술로케트탄 화성-11호를 ‘KN-02’라고 제멋대로 부르고, 북의 300mm 대구경방사포를 ‘KN-09’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놓고 미국군 정보당국과 한국군 정보당국이 그처럼 서로 엇갈린 판단을 내렸는데, 최종적인 정보판단은 언제나 미국군 정보당국이 내리고 한국군 정보당국은 그들의 최종판단을 따라야 하므로, 300mm 방사포 발사설이 남측 언론에 알려져 터무니없는 오보를 낳았던 것이다.
 
위와 같은 정보오판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 정보당국은 미국군 정보당국이 로케트탄을 방사포라고 우기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하는 처지에 있다. 예로부터 병서에서 이르기를 무릇 적을 모르면 백번 싸워 백번 진다고 했거늘, 미국군과 한국군의 대북군사정보부문에서 오판과 착오가 빈번하게 드러나는 것은 너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군사정보부문만 봐도, 싸우기 전에 승패가 결정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지난 8월 14일에 진행된 신형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에 대해 서술한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측) 국방과학부문과 군수공장의 일군들, 과학자, 기술자들은 여러 차례의 시험발사를 통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주신 과업을 빛나게 관철하였다”고 한다. 이 보도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은 그 동안 신형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를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몇 차례나 진행하였을까? 북이 지난 8월 14일에 진행한 시험발사는 제4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였는데, 제1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2013년 5월 18일에 진행되었다. 이런 사정은 북이 지난 1년 2개월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시험발사를 진행함으로써 마침내 신형 전술로케트탄 개발을 완성하였음을 말해준다.

전술로케트탄부문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북이 이번에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개발하기 위해 1년 2개월 동안 네 차례나 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런 특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술로케트탄부문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섰다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 도달한 전술로케트탄부문의 첨단기술수준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전술로케트탄 개발을 완성해야 하였기 때문에 북은 그처럼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시험발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 <사진 2>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8월 14일 신형 로케트탄시험발사장에 나가 시험발사 전과정을 지도하였다. 탁자 위에 LCD평면액정현시대 세 대가 놓였는데, 오른쪽에 놓인 것은 표적타격현장을 비춰주는 것이고, 왼쪽에 놓인 것은 발사지점을 비춰주는 것이고, 가운데 놓인 것은 한반도 지도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전술로케트탄 비행궤적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0km 이상 날아가는 전술로케트탄의 비행궤적을 실시간으로 현시해주는 것인데, 이것은 시험발사장에 설치된 현시대(monitor)가 탐지레이더를 가동하는 조선인민군 반항공군기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 <사진 3> 북이 지난 8월 14일에 진행한 제4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장면이다. 시차를 두고 쏜 다섯 발은 동북쪽으로 200-220여km 날아갔다. 이 신형 전술로케트탄은 3축6륜 자행발사대(TEL)에 실려 발사현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북측 언론에 보도된 여러 장의 현장사진들 그 어디에서도 자행발사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행발사대가 연기 속에 휩싸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보도사진에 자행발사대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땅을 파고 자행발사대를 지표면보다 낮은 데에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북은 최첨단전술로케트탄을 개발하면서 그에 걸맞게 무인-지능화된 최신형 자행발사대도 함께 개발한 것일까?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신형 전술로케트탄 탄종은 기존 전술로케트탄 탄종과 다르다
 
이 글에서 나는 북의 전술로케트탄 개발기술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논거로 제시하고 그것을 정밀분석하면서 북의 전술로케트탄 개발기술수준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다.
 
북의 전술로케트탄 개발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입증할 객관적 사실은 북측 언론보도보다 남측 언론보도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다.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내용을 인용한 일련의 남측 언론보도에는 북이 지난 1년 2개월 동안 진행해온 네 차례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북은 네 차례 시험발사에서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모두 18발 쏘았다. 제1차 시험발사에서 여섯 발, 제2차 시험발사에서 세 발, 제3차 시험발사에서 네 발, 제4차 시험발사에서 다섯 발을 각각 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북의 제1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2013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진행되었다. 사흘 동안 신형 전술로케트탄 여섯 발을 동북쪽 동해상으로 연속하여 쏘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3년 5월 18일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4시에 각각 한 발씩 쏜 전술로케트탄 세 발과, 5월 19일 오후에 쏜 전술로케트탄 한 발은 120여km를 날아갔고, 5월 20일 오전 11~12시에 쏜 한 발, 오후 4~5시에 쏜 한 발은 각각 150여km를 날아갔다. 제1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남측 언론에만 보도되었다.
 
북의 제2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2014년 6월 27일 오후 5시에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진행되었다. 25분 동안 동북쪽 동해상으로 세 발을 연속하여 쏘았는데, 각각 190km를 날아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2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지도하였고, 그 사실은 북측 언론에 보도되었다. 
 
북의 제3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2014년 7월 30일 평안북도 묘향산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동북쪽 동해상으로 네 발을 쏘았다. 그 날 북은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오전 7시 30분에 두 발, 오후 5시 50분에 두 발 쏘았다. 오전에 쏜 두 발은 발사 직후 몇 초 뒤에 한국군 탐지레이더에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오후에 쏜 두 발 가운데 첫 번째 전술로케트탄은 210여km를 날아갔고, 두 번째 전술로케트탄은 130여km를 날아갔다. 제3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는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남측 언론에만 보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장지도에 따라 제4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가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진행되었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동북쪽 동해상으로 다섯 발을 쏘았다. 그 날 북은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오전 9시 30분, 오전 9시 40분, 오전 9시 55분, 오후 12시 56분, 오후 1시 5분에 각각 한 발씩 쏘았다. 신형 전술로케트탄 다섯 발은 동북쪽으로 200~220여km를 날아갔다.
 
위에 열거한 네 차례의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과정을 일괄하면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기존 전술로케트탄인 화성-11호와 전혀 다른 최신탄종이라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였는데, <연합뉴스> 2014년 8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소식통은 북이 지난 8월 14일에 시험발사한 전술로케트탄이 “우리에게 정보가 있는 KN-02 단거리미사일(화성-11호를 뜻함-옮긴이)은 더욱 아닌 것으로 분석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2014년 8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다른 한국군 소식통은 북이 지난 8월 14일에 시험발사한 전술로케트탄이 “독사(화성-11호를 뜻함-옮긴이)와도 모양이나 발사체의 비행특성이 다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형 전술로케트탄은 화성-11호를 개량한 전술로케트탄이 아니라 화성-11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탄종의 전술로케트탄인 것이다.
 

탄도를 임의로 조절하며 쏘는 최첨단전술로케트탄이 등장하다
 
북이 이번에 개발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성능은 어느 수준에 도달하였을까?

첫째, 북이 네 차례 신형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에서 쏜 18발의 비행거리는 120km, 130km, 150km, 190km, 200km, 210km, 220km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같은 탄종의 전술로케트탄을 18발 쏘았는데 비행거리가 왜 그처럼 일곱 가지로 나타난 것일까? <뉴스1> 2014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당국은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 비행거리가 그처럼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추정은 빗나간 것이다. 북은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시험발사할 때 탄도를 조절하여 쏘았기 때문에 120km에서부터 220km까지 무려 100km나 차이를 둔 비행거리편차가 생겼던 것이다. 그런 사실은, “(제4차) 시험발사를 통하여 각이한 탄도에서 전술로케트탄의 조종성이 최신군사과학기술적 요구에 완전히 도달하였다는 것이 검증, 확인되였다”고 지적한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첨단 조종성능이 없으면, 전술로케트탄의 탄도를 임의로 조절하지 못한다. 화성-11호는 사전에 지정된 탄도만을 따라 비행하는 전술로케트탄이지만, 신형 전술로케트탄은 탄도를 임의로 조종하여 쏘는 최첨단전술로케트탄인 것이다. 그래서 <중앙일보> 2014년 8월 19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소식통은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비행특성”이 화성-11호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던 것이다.
 
둘째, 북이 개발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최장사거리는 얼마나 긴 것일까? 남측 언론보도에서는 북이 제4차 시험발사 중에 전술로케트탄이 가장 멀리 날아간 비행거리 220km를 최장사거리라고 보았으나, 그것은 탄도를 조종하여 쏜 비행거리이므로 그 전술로케트탄의 최장사거리가 220km라고 말할 수 없다.
 
북이 이번에 개발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사거리가 220km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선제타격에 쓰이는 유도무기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2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직접 지도하면서 “정확한 선제타격에 의한 주도권을 확고히 쟁취할 수 있는 고도로 정밀화된 전술유도무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인용문에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선제타격에 쓰이는 유도무기임을 알 수 있다. 선제타격에서 중요한 것은 타격시간을 되도록 짧게 줄여 초탄피격을 입은 적이 보복타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적을 압도하는 것인데, 전술로케트탄의 경우 비행시간을 되도록 짧게 줄여야 선제타격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220km를 날아간 것은 탄도를 조절함으로써 비행시간을 짧게 줄여 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2014년 6월 26일 보도기사에서 북이 시험발사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비행속도 및 고도가 300mm 대구경방사포의 비행속도 및 고도와 비슷하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방사포 비행고도만큼 낮은 고도로 날아갔음을 말해준다. 전술로케트탄이 낮은 비행고도로 날아가는 경우 비행거리가 그에 비례하여 짧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최장사거리를 300km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셋째, 북이 개발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은 초정밀화된 전술로케트탄이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지난 6월 27일에 진행된 제3차 시험발사에 관해 보도한 기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발기와 세심한 지도 속에 개발, 완성된 초정밀화된 우리식의 위력한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가 진행되였다”고 서술한 바 있다.
 
▲ <사진 4> <조선중앙통신> 온라인판에 실린 이 보도사진은 지난 8월 14일 시험발사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200-220여km를 날아가 동해의 어느 무인도에 설치된 표적에 명중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은 표적이 설치된 무인도에 바짝 접근한 관측선박에서 촬영된 것이다. 관측선박이 위험을 무릅쓰고 탄착점에 그처럼 가까이 접근한 것은 그 로케트탄의 타격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누구나 아는 것처럼, 초정밀개념은 정밀개념보다 한 급 더 높은 것이다. 로케트탄 명중률을 표시하는 원형공산오차(CEP)라는 지표를 가지고 설명하면, 정밀로케트탄은 반경 10m 이내의 작은 표적을 맞출 수 있는 타격정밀도를 지닌 것이고, 초정밀로케트탄은 반경 1m 이내의 더 작은 표적을 맞출 수 있는 타격정밀도를 지닌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사진 4>는 지난 8월 14일에 시험발사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동해의 어느 무인도에 설치된 아주 작은 표적에 명중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을 찍은 촬영각이 바다쪽에서 무인도의 표적을 향해 설정된 것을 보면, 무인촬영기를 무인도 안에 설치해놓고 촬영한 것이 아니라 무인도 바로 곁에 관측선박을 대놓고 선상에서 근접촬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초정밀타격시험이 아니었다면, 관측선박이 탄착점에 그처럼 가까이 접근하여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안전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그런 초정밀타격성능을 가졌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지난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이 이번에 개발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그런 초정밀타격성능만 지닌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4년 8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군사전문가가 “북한이 공개한 미사일의 외형을 보면 일명 독사로 불리는 KN-02(화성-11호라는 뜻-옮긴이)와 유사하지만 사거리가 기존 것에 비해 50~60km 늘어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평가는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화성-11호보다 더 경량화된 전술로케트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군 정보당국은 화성-11호의 사거리를 170km라고 추산하였고, 나의 추산으로는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사거리가 300km이므로, 신형 전술로케트탄의 사거리는 화성-11호에 비해 50~60km가 늘어난 게 아니라 130km나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형 전술로케트탄은 정밀화와 경량화를 실현한 것 이외에 무인화와 지능화까지 실현한 그야말로 최첨단전술로케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7일에 진행된 제2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를 보도한 북측 언론의 기사에서 “(제2차 시험발사에 등장한) 초정밀화된 전술유도무기는 무장장비의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를 실현할 데 대한 당의 방침관철에서 우리의 국방과학기술자들과 군수공업부문 로동계급이 이룩한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라고 자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에 관련된 북측 언론보도나 남측 언론보도에서 그 전술로케트탄이 무인화, 지능화되었음을 말해주는 정보는 아직 찾지 못하였으나, 신형 전술로케트탄이 시험발사되는 장면을 촬영한 보도사진들에서 이상하게도 3축6륜 자행발사대(TEL)가 보이지 않은 것이 관심을 끈다. 3축6륜 자행발사대는 평양에서 군사행진이 진행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였고, 이번에도 바로 그 3축6륜 자행발사대가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싣고 지하기지에서 발사지점으로 이동하였던 것이 분명한데, 현장보도사진들에서는 왜 자행발사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사진촬영각을 조절하여 자행발사대가 보이지 않게 촬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무인전투함을 만든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북이 만일 이번에 무인-지능화된 자행발사대도 만들었다면, 외부에 공개되는 보도사진에 그 실물을 담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무인-지능화된 자행발사대에 대해 아직 확실한 정보가 없고 막연히 추정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에 관한 서술은 여기서 멈춘다.

▲ <사진 5> 이 사진은 신형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가 진행된 때로부터 하루가 지난 8월 15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좌담회 모습이다.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좌담회 진행을 맡은, 북에서 유명한 방송인이고, 왼쪽에 앉은 사람은 좌담회에 출연한 제2자연과학원 로케트탄연구실 김인용 실장이다. 북의 로케트탄연구에 참여한 주요인사가 시험발사 이튿날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시험발사에 대해 발언한 것은 북에서 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이러한 공개활동은 북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기들이 개발한 최첨단전술로케트탄의 위력에 대해 설명한 그의 좌담회 발언에는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있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백두산 병기창’에서 완성된 신형 전술로케트탄 개발의 의의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14일에 진행된 제4차 신형 전술로케트탄시험발사에 “제2경제위원회와 제2자연과학원을 비롯한 국방과학부문과 군수공장의 일군들, 과학자, 기술자들”도 참가하였다고 한다. 제2경제위원회와 제2자연과학원은 무슨 일을 하는 기관들일까?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은 지난 시기 정무원(현재 내각) 안에 분산돼 있던 군수공업관련기관들을 통합하여 1970년대에 조선로동당 군수공업부 산하에 제2경제위원회를 신설했다고 하며, 제2경제위원회 4총국이 로케트탄개발을 추진하고, 제2자연과학원 로케트탄연구실이 로케트탄을 연구한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선로동당 군수공업부는 각종 무기개발을 총괄적으로 지도하는 기관이고, 제2경제위원회는 각종 무기개발을 실무적으로 추진하는 기관이고, 제2자연과학원은 각종 무기개발을 연구하는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동신문> 2010년 11월 13일부에 실린 ‘정론’에는 “위력한 첨단무기들을 꽝꽝 만들어내는 백두산 병기창도 보여주어 원쑤들의 눈알이 뒤집히게 하고 싶지만 이것은 최후의 항복서를 받아내고 나서 볼 일”이라고 서술되었는데, 제2경제위원회와 제2자연과학원이 바로 그 ‘백두산 병기창’인 것이다.
 
그런데 ‘백두산 병기창’에서 로케트탄을 연구하는 실무책임자가 지난 8월 15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좌담회에 직접 출연하였다.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제2자연과학원 로케트탄연구실 김인용 실장이다. 좌담회에서 그는 “첨단전술로케트의 사거리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였”고, “발사의 정확성과 로케트의 조종성이 완벽하다는 것이 다시금 검증되였”고, “타격의 명중성과 위력의 효과성이 남김없이 과시되였다”고 자신감에 넘쳐 말하였다.
 
북이 이번에 완성한 초정밀화-경량화된 전술로케트탄 개발사업이 주는 군사적 의의는 무엇일까?
첫째, 북이 만들어내는 모든 탄종의 로케트탄의 명중률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지난 6월 27일에 진행된 제2차 신형 전술로케트탄 시험발사에 관한 북측 언론보도는 “이번 시험발사를 통하여 우리 인민군대는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는 단거리 및 중장거리유도무기들을 비롯한 모슨 타격수단들을 세계적 수준에서 초정밀화할 수 있는 관건적인 열쇠를 가질 수 있게 되였으며 타격의 명중성과 위력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게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 지적은 단거리로케트탄만이 아니라 중거리로케트탄과 장거리로케트탄도 초정밀타격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좌담회에서 김인용 실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으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전투적 명령을 받아안았다”고 하면서, “이제 곧 보다 새로운, 초정밀화된 최신로케트탄 시험발사가 연이어 단행되게 된다”고 말했다.
 
둘째, 북은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화력타격망을 완성하게 되었다. 북의 각종 방사포, 로켓포, 화성-11호는 60~200km 범위에 도달하는 타격수단들이고, 화성-5호와 화성-6호 같은 전술로케트탄은 300~700km 범위에 도달하는 타격수단들인데, 200~300km 범위에 도달할 타격수단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이 200~300km 범위에 도달할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개발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화력타격망이 완성된 것이다. 
 
셋째, 북에서 말하는 ‘경핵병진노선(편집자 주:경제와 핵무력 병행 건설 노선)’에 따라 핵무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전술핵탄의 사용범위가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초정밀화-경량화된 신형 전술로케트탄에 전술핵탄을 장착하여 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전시에 민간지역에서 부수적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초정밀한 선제핵타격을 개시하여 순간타격 한 방으로 주한미국군기지를 거대한 구덩이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날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서술이 과장이 아니라는 점은 미국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미국 온라인매체 <WMD> 2013년 4월 7일 보도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집중포격을 개시하면 최전방에 배치된 주한미국군은 “거의 모두 죽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는데, 이제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의 선제집중포격을 받는 게 아니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초정밀한 선제핵타격을 받게 되었으니 “거의 모두 죽게 될 것”이 아니라 아예 흔적도 없이 소멸될 수 있는 것이다. 
 
전시에 북이 전술핵탄으로 공격할 대상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이고, 한국군기지들은 북의 핵타격대상에서 제외되고 비핵타격대상으로 규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지난 7월 26일에 진행한 로케트탄발사훈련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로케트탄발사훈련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기지들의 현 배치상태와 그를 타격소멸할 수 있게 가상하여 세운 발사계획을 보아주신 다음 로케트발사훈련을 지도하시였다”고 보도하였는데, 한국군기지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넷째, 북의 신형 전술로케트탄 개발은 한반도 군사정세 변동을 촉발시켰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만일 ‘최후 결전’이 벌어지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초정밀전술핵탄을 장착한 신형 전술로케트탄을 불시기동-기습타격방식으로 발사하여 주한미국군기지들을 모두 초탄에 날려버릴 것으로 예견되는데, 그 초탄발사시간을 이전에 비해 최대 48분의 1까지 줄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는 지난 5월 28일에 펴낸 보고서 ‘안심하기에는 너무 가까워진 핵무기 사용의 임박한 사례들과 정책대안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발사명령을 내리면 1~2일만에 핵탄두가 미사일에 장착되어 무기화될 것으로 예견했지만 그것은 오산이고,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전술핵탄을 쏘는 초탄발사시간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28일부에 실린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 총책임자 압둘 칸(Abdul Q. Khan)의 회고담에 따르면,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산에 있는 지하시설을 방문하였을 때, 북측 관계자들은 소형핵탄두 세 발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그 핵탄두들이 1시간 안에 로케트탄에 장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바로 그 1시간이 지나면, 이 땅의 모든 주한미국군기지들이 전술핵탄의 거대한 폭음과 화염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려면 전시에 일본, 괌, 하와이, 알래스카, 미국 본토에서 출동할 전시증원군의 핵타격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전시증원군이 핵타격수단을 사용하기 전에 조선인민군의 초정밀전술핵탄은 주한미국군에게 궤멸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전시증원군의 핵타격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한미연합군이 초정밀전술핵탄의 선제타격력을 갖춘 조선인민군과 싸워서 패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해준다.
 
다섯째, 북이 초정밀한 전술핵타격력을 보유하기 이전에 발표한 몇몇 글들에서 나는 전시에 남진갱도를 통해 주한미국군기지들에 은밀히 접근한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기습포위공격으로 그 기지들을 불시에 점령할 것이고, 거기서 용케 살아남은 미국군을 포로로 붙잡을 것이라는 ‘최후 결전 시나리오’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초정밀한 전술핵타격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군사작전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다만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남진갱도를 통한 기습포위공격 시나리오는 주한미국군기지들이 아니라 한국군기지들에게 적용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 이후 북측 언론매체들이 군사상황과 관련하여 보도한 일련의 기사들을 분석하면,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성하였음을 말해주는 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징후들이란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이 전투기조종, 실탄사격, 장거리행군, 바다수영에 직접 참가한 사상 초유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처럼, 군대의 사상정신적 준비를 끝마친 징후를 뜻한다. 또한 각 군종, 병종별로 불시기동-기습타격, 초정밀선제타격, 항모타격단공격, 기습점령 등 다방면적인 작전준비를 완성하는 연습을 연속적으로 진행한 조선인민군의 최근 움직임이 말해주는 것처럼, 군대의 전략전술적 준비를 끝마친 징후를 뜻한다.
 
그런데 그처럼 ‘조국통일대전’ 개전준비를 끝마치고 최고사령관의 진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에 맞서기 위해 지금 이 시각 미국군은 한국군 5만명 병력을 참가시킨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진행하는 중이다. 지난 8월 18일에 시작된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에는 주한미국군 병력이 모두 동원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증원군 역할을 맡은 미국군 3,000여명이 별도로 동원되었다. 이런 사정만 봐도,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이 신속억제전력(FDO)→전투력증강전력(FMP)→시차별 부대전개전력(TPFDD)으로 이어지는 전시증원군 전개계획에 따른 미국식 전쟁연습임을 알 수 있다. 요즈음 미국군이 자주 언급하는 ‘맞춤형 억제전략’도 그런 미국식 전쟁연습에 의거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일부 미국 군사전문가들마저 실전에서는 써먹지도 못할 도상계획이라고 비판하는 미국식 전쟁계획은 한반도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미국식 전쟁은 조선인민군이 초정밀전술핵탄을 아직 갖지 못했던 지난 1980년대에나 통할 수 있는 낡은 방식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8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규탄하는 성명에서 미국식 전쟁이 “잘못 택한 시기에 잘못 정한 장소에서 잘못 고른 상대에 대해 잘못 저지른” 전쟁으로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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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북의 핵개발사 다시 쓰기와 ‘최후 결전 ’ 예견

[한호석의 개벽예감] (126)
자주민보 2014년 08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이 사진은 평안북도 녕변군 핵시설단지에 있는 흑연감속로 시설의 일부를 오래 전에 촬영한 것이다. 요즈음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미국은 쉬쉬하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지만, 녕변핵시설단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게 확장되고 일신되어 왕왕 돌아가고 있다. 거기서 무기급 핵물질이 얼마나 생산되는지 외부에서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원래 북은 1961년에 녕변핵시설단지 공사에 착공하였고, 같은 해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북의 핵무기개발을 담당한 1세대 핵과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인 도상록 교수는 "조선이 원자력분야에서 실험과 개발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놀랍게도,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북의 핵개발사는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 자주민보


1960년대 후반 북은 이미 핵보유국이었다
 
분단 40년을 맞은 1985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대에 핵개발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단호한 결심이다.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 이 인용문은 1985년 당시 평안북도 녕변핵시설단지 우리늄정련공장 기동예술선전대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일하면서 ‘핵으로 조국통일의 대문을 열자’라는 제목의 합창시를 창작했다는 탈북자가 2004년 2월 28일 <미래한국> 기자와 대담한 기사에 들어있다. <사진 1>

북의 기동예술선전대 작가가 어떻게 북측 최고영도자의 대외비발언에 대해 알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북의 작가들이 북측 최고영도자의 사상과 의도를 인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은 최고영도자의 지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위의 인용문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 담긴 깊은 뜻을 알려면 북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심층정보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핵탄을 만들려면 고폭실험을 실시해야 하는데, 북이 고폭실험을 실시한 때는 언제였을까? <연합뉴스> 2013년 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고폭실험을 실시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북이 1980년대 후반에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은 그 무렵에 이미 핵탄을 만들어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루취코프(Vladimir Kyuchkov)가 1990년 7월에 진행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8차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 ‘#363-k’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보고서에서 북이 “첫 원자폭발장치(first atomic explosive device)를 완성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 보고서에서 언급한 북의 ‘첫 핵폭발장치’는 핵탄미사일 탄두부에 장착하는 핵탄두(nuclear warhead)가 아니라, 초기형태의 핵탄이었다. 초기형태의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야 핵탄두를 만들게 되는데, 북은 언제 핵탄두를 완성하였을까?

미국의 조선인민군 연구가인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는 ‘제인스정보평론(Jane's Intelligence Review)’ 1999년 7월호에 실린 글에서 북이 1993년 10월 20일 평안남도 평원군 석암리 염소골에서 핵탄두 기폭장치를 실험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전스 프랑스 프레스(AFP)> 1994년 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위관리 블라디미르 쿠마체프(Vladimir Kumachev)는 북이 핵탄두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종합해보면, 북은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를 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위관리가 북의 핵탄두 보유사실을 언급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1999년 당시 파키스탄 핵개발을 지휘한 총책임자였던 압둔 카디르 칸(Abdul Q. Khan)이 방북하였을 때, 북은 그에게 핵탄두 실물까지 보여주며 핵탄두 설계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이에 관해서는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28일부에 실린 칸의 회고담에서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을 방문 중이던 칸이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산 중의 지하시설을 방문하였을 때, 북측 관계자들은 그에게 “완성된 핵탄두(finished nuclear warheads)” 세 발의 부품들이 담긴 상자를 보여주면서 그 핵탄두들은 한 시간 안에 미사일 탄두부에 장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북측 관계자들은 칸에게 핵탄두 설계법에 관해 설명해주면서 핵탄두 핵심부품들이 들어있는 상자 6개를 더 보여주었고, 핵탄두 한 발에 설치되는 “64개의 뇌관/기폭장치들”이 들어있는 또 다른 상자 6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다른 공업제품들과 마찬가지로, 핵탄두도 제조기술수준에 따라 저급핵탄두로부터 고급핵탄두에 이르기까지 차등으로 분류되는데, 1999년에 북이 칸에게 실물을 보여준 핵탄두는 어느 등급이었을까?

어느 나라에서나 핵개발은 국가기밀사항에 속하므로, 북의 핵개발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외부인으로서 북의 핵탄에 관한 정보를 가장 자세히,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압둘 카디르 칸의 회고담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2011년 9월 1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 온라인판에 칸의 ‘자백서(Confession)’ 전문이 실렸는데, 그 ‘자백서’에 따르면, 북은 칸 자신과 미르자 박사(Dr. Mirza)에게 파키스탄 핵탄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완벽한(perfect)” 핵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에서 핵개발을 이끄는 최고 수준의 핵과학자들이 북의 핵탄을 직접 관찰하고 그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자기들이 만든 핵탄과 비교하여 북의 핵탄이 완벽하다고 평가했으니, 북의 핵탄제조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정보를 살펴보면, 북은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였던 1985년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완벽한 기술로 제조된 핵탄두를 다량 보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이 핵개발에 착수한 때로부터 불과 10년 남짓한 기간에 숱한 과학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완벽한 핵탄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칸의 ‘자백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백서’에는 칸이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에게 핵개발기술을 전수해준 북의 핵공학기술진 대표자와 여러 차례 만나 협의하는 장면이 서술되었는데, 칸은 그 대표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강 장령(Gen. Kang)”이라고만 적었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7월 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칸이 만난 그 장령은 강태연(Kang Tae Yun) 소장이다. (Yun은 윤으로도 읽을 수 있으므로 강태윤일 수도 있다.) ‘자백서’ 원문의 그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강 장령의 상관에 따르면, 북은 코리아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러시아로부터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받아 핵무기 몇 발(a few weapons)을 제작하였다.”

위의 인용문이 들어있는 문맥을 앞뒤로 읽어보면, 강태연 소장의 상관이 칸을 직접 만나 위와 같은 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고, 강태연 소장이 자기 상관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칸에게 말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북과 파키스탄은 핵개발부문에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북은 파키스탄 핵과학자들을 초청하여 핵탄두 실물을 보여주고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해주었고, 파키스탄은 자기 영토에서 북이 비공개핵실험을 실시하도록 허용하였을 만큼 서로 협조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에 파견된 북의 핵공학기술진 대표자와 파키스탄 핵개발 총책임자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핵관련 비밀정보를 교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1955년경에 소련으로부터 무기급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받아 핵탄을 만들었다는 위의 인용문은 사실로 보인다. 무기급 핵물질과 핵무기 설계도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핵기술지원에는 비밀합의 체결절차가 따르는 법인데, 1955년경 북과 소련도 그런 내용의 비밀합의를 체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던 시기에 그 사업을 지휘한 네룽전(聶榮臻) 중국인민해방군 원수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소련측과 ‘새로운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생산과 종합적인 원자력산업 발전에 관한 합의’를 채택한 때는 1957년 10월이었다. 이 비밀합의를 채택함으로써 중국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57년부터 소련의 핵기술지원을 받으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중국이 22킬로톤급 핵탄을 터뜨린, 자국의 첫 핵실험을 실시한 때가 1964년 10월 16일이었는데, 중국보다 조금 앞선 1955년경부터 소련의 핵기술지원을 받으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북도 1960년대 중반에 핵탄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 북에서 핵탄을 만들었던 핵전문가들은 1956년부터 소련의 모스크바공학물리연구소, 바우만고등기술대학, 모스크바에너지연구소에서 각각 공부하고, 두브나(Dubna)와 오브닌스크(Obninsk)에 있는 핵과학연구시설들에서 현장실습까지 마친 300여 명 이상의 우수한 북측 1세대 핵과학자들이었다. 조셉 버뮤디즈가 ‘제인스정보평론’ 1994년 2월호에 실린 글 ‘북코리아의 핵기반시설(North Korea's Nuclear Infrastructure)’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함경북도 길주군에 ‘원자무기훈련소’를 설치한 때는 1958년 1월이었는데, 그 때 벌써 핵탄사용훈련을 실시하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주목하는 것은, 1955년경 소련으로부터 무기급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입수한 북이 그것을 가지고 핵탄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북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 40kg으로 핵탄 약 10발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그런 계산범에 따르면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핵탄 약 50발을 보유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1960년대 후반 북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핵보유국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북의 핵개발사는 고쳐 쓰여야 한다.

1997년 뉴욕에서 출판된, 미국의 역사학자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책 ‘코리아의 양지 바른 곳(Korea's Place in the Sun)’에 따르면, 1957년 8월 백악관은 ‘국가안보문서 5702/2호’에서 미국 핵무기를 남측에 배치하는 조치를 결정하였으며, 1995년 뉴욕에서 출판된, 미국의 분석가 마이클 마자(Michael J. Mazaar)의 책 ‘북코리아와 핵탄(North Korea and the Bomb)’에 따르면, 미국은 1958년 초부터 남측에 핵포탄, 핵탑재미사일, 핵폭탄, 핵지뢰를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미국의 집중적인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서 북이 자체 기술로 제작한 핵탄 약 50발을 보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1969년 미국군 정찰기 격추사건이 일어났을 때, 만일 미국이 북에게 핵공격을 감행했더라면, 북도 주한미국군기지들과 주일미국군기지들을 핵보복공격으로 파괴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북이 1960년대 후반에 소련의 기술지원으로 제조한 핵탄 약 50발은 북이 1999년에 칸에게 보여준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가 아니라 1950년대 핵기술로 만든 크고 무거운 핵탄이었다. 2001년 11월 1일 미국의 분석가 대니얼 핑크스턴(Daniel A. Pinkston)이 청취한 탈북자의 진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66년 또는 1967년에 미사일 탄두부에 장착할 핵탄두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미국의 분석가들인 로벗 노리스(Robert S. Norris), 윌리엄 아킨(William N. Arkin), 월리엄 버(William Burr)가 공동집필하여 ‘원자과학자휘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1999년 11월/12월 합본호에 발표한 ‘그것이 있었던 곳(Where They Were)’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1967년 중반 미국은 핵탄 약 3,200발을 태평양지역에 배비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약 2,600발은 남측과 오키나와에 배비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이 압도적인 핵무력으로 대북핵공격을 노리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으로부터 그처럼 집중적인 핵위협과 핵공갈을 받던 북이 그에 맞서 1960년대 후반에 이미 핵탄개발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기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한 핵탄두개발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분단 40년을 맞은 1985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려 한다”는 “단호한 결심”을 표명하면서 언급한 핵개발은 1950년대 핵기술로 오래 전에 만들었던 핵탄과 다른, 새로운 핵기술로 신형 핵탄을 개발한다는 뜻이었고, 그런 신형 핵탄을 만들어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다는 뜻이었다.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핵보유국이었으므로, 1985년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완벽한 기술로 제조된 신형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파키스탄 펀잡(Punjap)주의 카후타(Kahuta)에 있는 핵연구단지인 칸연구소 정문을 촬영한 것이다. 그 곳의 지명을 따서 카후타연구소라고도 불린다. 바로 이 곳에서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 총책임자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책사업을 지휘하였고, 바로 이 곳에서 파키스탄 핵과학자들은 1993년과 1994년 사이에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으로부터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중국과 같은 시기에 핵개발에 착수한 북은 다른 핵보유국에게 관련기술을 전수해줄 만큼 세계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1990년대에 미국의 감시를 따돌리고 북으로부터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받아 파키스탄의 핵무력을 증강시킨 압둘 칸은 미국의 미움을 받고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가택연금을 당했고, 당시 핵무력 증강의 군부책임자였던 무샤라프도 나중에 미국의 미움을 받고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반역죄로 법정에 끌려나갔다.     © 자주민보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현지에서 가르친 북의 핵공학기술진 
 
1950년대 중반부터 오랜 기간 극비로 추진되었던 북의 핵개발에 관해 정보를 거의 갖지 못한 국제사회는, 녕변핵시설단지에 건설한 흑연감속로를 가동하여 추출한 무기급 핵물질로 플루토늄핵탄 약 10발을 만든 북이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라늄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그 원심분리기를 설치한 우라늄농축시설을 녕변핵시설단지에 건설하여 현재 가동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정보부족에 빚어낸 착오다. 국제사회가 알지 못하는 것은, 북이 처음부터 두 종류의 핵탄을 동시에 만들기 위한 핵무기 개발에 달라붙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종류의 핵탄이란 우라늄핵탄과 플루토늄핵탄이다.

북은 2009년 6월 13일에 발표한 외무성 성명에서 우라늄농축이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북측 외무성이 그 성명을 발표한 시점보다 조금 앞선 2009년 5월 초순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는 미국 정보기관 일부인사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북의 우라늄농축은 그런 공식발표내용과 달리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미래한국> 2006년 10월 21일부에 실린 탈북자의 회고담에 따르면, 그가 1985년 8월 인민군에서 제대하여 기동예술선전대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작품창작을 위해 열람하였던 핵개발과 관련된 대외비문건들 가운데는 “북의 핵개발에서 가장 큰 성과가 우라늄농축기를 주체화한 것”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평가가 들어있는 문건도 있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회고담은 북이 이미 1985년 이전에 우라늄농축 원심분리기를 자체 기술로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북은 1985년 이전에 언제쯤 우라늄농축 원심분리기를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는 자료는 찾을 길 없지만, 북이 1962년 1월 소련으로부터 받은, 고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쓰는 2메가와트급 실험용 원자로를 녕변핵시설단지에 설치하는 작업을 끝마친 때가 1965년 6월 중순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북은 1967년 이후 그 우라늄원자로의 성능을 4메가와트급으로, 8메가와트급으로 차츰 강화시켜나갔는데, 이것은 북이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1960년대 후반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보유하였던 북은 그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1990년대 중반에 기존 우라늄핵탄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전된 신형 우라늄핵탄을 제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압둘 카디르 칸의 ‘자백서’에 따르면,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기간 중 어느 시점에 북이 파키스탄에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이 파키스탄 핵연구단지에 머물렀는데, 북의 핵공학기술진은 그곳에서 원심분리기와 그 부품들을 제작, 조립하는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가르쳤다(instruct)”는 것이다. <사진 2>

당시 파키스탄의 우라늄농축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은 이전에 P-1 원심분리기를 자체로 제작하였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신형 P-2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이 그처럼 높은 수준의 우라늄농축기술을 가진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현지에서 가르쳤다면, 이미 그 무렵 북의 우라늄농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28일 보도기사와 압둘 카디르 칸의 ‘자백서’ 내용을 종합하면,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기간 중 어느 시점에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은 파키스탄이 만든 P-1 원심분리기 20기와 P-2 원심분리기 4기를 달라고 요청하여 귀국할 때 가져갔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 주목한 미국의 분석가들은 북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기술을 전수받고 나서 우라늄농축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지만, 그런 추정은 빗나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위에서 언급한 칸의 ‘자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백서’에 따르면, 당시 파키스탄에 파견된 북의 핵공학기술진은 무기급 핵물질을 만드는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고농축우라늄 생산설비 설계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파키스탄이 만든 원심분리기만 귀국할 때 가져갔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고농축우라늄 생산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은 북의 핵공학기술진이 귀국할 때 이상하게도 원심분리기만 가져간 것은, 북이 자체로 만든 원심분리기 성능을 개량하여 경수로에 들어가는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북의 핵공학기술진이 파키스탄 원심분리기를 가져가기 훨씬 전에 북은 이미 독자적으로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였으며,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우라늄핵탄도 만들었다.

미국의 분석가인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는 2010년 10월 19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압둘 카디르 칸과 은밀히 핵거래를 해오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포섭된 스위스 기술자 프리드릭 티너(Friedrich Tinner)와 그의 두 아들이 2004년 5월 스위스에서 사법당국에 체포되었을 때, 스위스 당국자들은 그 피체자들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에서 아주 정교하게 작성된 신형 핵탄 설계도를 발견하였는데, 그 설계도가 어느 나라에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신형 핵탄 설계도는 1999년에 방북한 칸에게 북이 실물로 보여준 바로 그 핵탄의 설계도인 것이다. 북으로부터 신형 핵탄 설계도를 받은 칸은 자기의 핵거래 대상자인 티너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가 스위스 사법당국에게 압수당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이 파키스탄에게 제공한 신형 핵탄 설계도가 우라늄핵탄 설계도라는 사실이다. 1998년 5월 30일 북이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사막 핵실험장에서 비공개핵실험을 실시할 때 사용한 핵탄은 플루토늄핵탄이었는데, 파키스탄에게는 우라늄핵탄설계기술을 전수해준 것이다. 북은 그 동안 우라늄핵탄만 만들어온 파키스탄에게 더욱 발전된 우라늄핵탄설계기술을 전수해주었던 것이다. 
 
 
핵개발로 통일의 전환국면 열어놓으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은 절반 정도 실현되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외비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측 언론매체들은 북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미국의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설 강력한 억제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핵무기를 가져야 했다는 대응적 핵개발론을 거론해오고 있지만, 이미 30여 년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의 핵무력이 미국의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서는 억제력이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런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의 인용문에서 명백히 밝힌 것처럼 북의 핵무력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공세력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핵무력을 보유하게 된 근본목적이 한반도 통일 실현이라는 점에서, 북의 핵무력은 러시아나 중국의 핵억제력과 성격을 달리 하는 핵공세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핵공세력을 갖게 된 북은 그 힘을 가지고 한반도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였을까?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5년에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언급한 비공개발언에는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는 핵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려 한다”고 말했다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지만,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는 말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의미심장한 뜻을 지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북의 핵개발이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일으켜 한반도 정세가 통일실현단계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 가운데 첫 번째 정세변화는, 미국이 다른 핵보유국에 대해 감히 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북이 핵개발로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의지를 꺾어놓는 변화를 뜻한다.  

그러나 북의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의지를 억제할 수는 있었으나 완전히 꺾어놓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의 핵무력만 믿고, 대북핵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감행해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북의 핵무력이 자기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정보를 파악한 뒤에도, 그런 사실을 극구 숨기는 한편, 북의 핵무력을 속으로 두려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얕보는 척하는 기만술을 펼치고 있다. 핵대국의 체면을 유지하여야 자기의 추종국들을 거느릴 수 있는 궁색한 처지에서 미국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진 3> 이 역사적인 사진은 2000년 10월 23일 오후 3시 7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머물던 평양의 백화원초대소에서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회담은 중간에 10분 휴식시간을 두고 세 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회담에서 "두 나라 사이에서 논쟁이 없이, 모든 게 다 잘 되었습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특사로 2010년 10월 10일 백악관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가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회담한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하였다. 당시 10월 12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각각 발표된 조선-미국 공동성명에 미국 대통령의 방북일정이 명기될 만큼 북미관계는 격동적 전환국면에 도달해 있었다. 만일 미국 내부의 방해세력들이 클린턴의 방북을 극력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요구한 북미담판이 2000년 말에 성사되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6.15 공동선언이 실현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     © 자주민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 가운데 두 번째 변화는 북미핵협상을 추진하는 것이다. 북은 자기가 핵개발을 추진하는 경우, 핵확산금지를 가장 중대한 과업으로 여기는 미국이 북의 핵개발에 크게 자극을 받아 대북핵협상에 응할 것이고, 일단 미국이 북미핵협상에 응하면 그 협상기회를 이용하여 미국을 북미담판까지 끌어갈 수 있으리라고 예견하였던 것이다. <사진 3>  
그러나 북의 핵개발이 북을 상대조차 하지 않던 미국을 북미핵협상으로 끌어내는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으나 북미담판까지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북이 요구하는 북미담판에 끌려나가는 것은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북미담판을 요구한 북의 초강경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속 없는 각종 다자회담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북미핵협상을 끊임없이 공전시키다가 결국 9.19 공동성명마저 외면하고 말았던 것이다.

원래 북은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하여야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판단은 일제식민지강점기에 이룩된 반제민족해방운동의 오랜 전통을 지닌 북에서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인정되었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기 북은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북미담판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시기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최후 담판’에서 승리하여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북이 미국을 북미핵협상에 끌어내고 ‘최후 담판’에로 끌어가려고 하였던 정책전환의 배경에는 급격한 정세변화가 놓여있었다. 1990년대에 북에 휘몰아쳤던 세계사회주의진영 붕괴의 파장과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하였던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강행군’의 연속적인 시련이 그것이다. 그처럼 극도로 불리한 정세 속에서 북의 핵무력이 수행해야 하였던 당면목표는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수호전’의 승리였고, ‘사회주의수호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북은 대미협상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북이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은 북이 ‘사회주의수호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였기 때문에 대미협상기조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음을 말해주는 사변이었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핵개발로 한반도 통일의 전환국면을 열어놓으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은 절반 정도 실현되었고, 나머지 절반을 가득 채워 한반도 통일위업을 완성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이 추진해온 제1방도와 제2방도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외비발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북이 핵무력으로 한반도 통일의 실현과정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북에서 나온, 통일방도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면, 북이 두 가지 통일방도를 추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추진해온 두 가지 조국통일방도들 가운데서 제1방도는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한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들이 추진해온 두 가지 조국통일방도들 가운데서 제2방도는 북이 ‘최후 결전’까지 가지 않고 북미담판에서 승리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킨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제1방도는 북미전쟁을 통한 통일방도라고 볼 수 있고, 제2방도는 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핵확산금지를 가장 중대한 과업으로 여기는 미국은 북이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크게 자극을 받아 다급한 김에 덜컥 대북핵협상에 응하기는 하였지만, 북이 요구하는 북미담판에 끌려나가는 것이 북에 대한 정치적 굴복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기 때문에 북미담판을 요구하는 북의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실속 없는 각종 다자회담을 늘어놓으며 북미협상을 끊임없이 공전시키다가 결국 9.19 공동성명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따라서 북이 추진해오던 제2방도(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는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한반도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2009년 7월 16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말한 것은 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를 더 이상 추진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발언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추진할 통일방도는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한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제1방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음이 자명해진다. 

제1방도를 실현하려는 북이 세계 최대 핵대국인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하려면, 미국 수도권을 비롯한 미국 본토 전역을 각종 핵타격수단으로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첨단핵무력을 가져야 하였다. 북이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사하는 핵타격미사일,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전자기파(EMP)공격체계 같은 각종 핵타격수단을 가져야 미국 수도권을 비롯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그런 강력한 핵무력을 가져야 미국의 핵공격의지를 꺾어놓을 수 있는 것인데, 북이 이미 그런 첨단핵무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상세히 논증한 바 있다.

2012년 1월 1일 북에서는 새로운 최고영도자가 이끄는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었는데, 한반도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시대’는 북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통일방도인 제1방도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최후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에게 넘겨준 제1방도를 실현하기 위한 ‘최후 결전’을 2012년 10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기간에 실제로 단행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한 선군절 경축연회가 열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경축연회 연설에서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사상 처음 공식 언명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조선인민군은 발사명령, 돌격명령만 내리면 즉각 전 전선에 걸쳐 전면타격을 개시할 수 있는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은 2013년 4월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추진하였던 제1방도와 제2방도 가운데 제2방도 추진과정이 미국의 거부로 중지된 가운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방도를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에 '최후 결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 자주민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에서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결전을 위한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최후 결전’을 단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조선인민군은 실제로 준전시태세에 돌입하였다. <사진 4>

이와 관련하여 남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 것은 미국의 관영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이었다. 2012년 11월 7일 그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10월 20일경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고, 11월 3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공동명의로 작성된 준전시상태에 관한 명령서가 북측 전역에 하달되었다고 한다.

당시 북에서 선포한 준전시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2년 8월 ‘준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였는데, 미국과 남측이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경우, 대북군사도발을 감행한 경우, 북의 최고이익을 침해한 경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다고 규정했다고 한다. 그런 규정에 따라 북은 ‘최후 결전’에 즉각 돌입할 수 있는 준전시상태를 2012년 11월 3일에 선포하였던 것이다.

만일 사태가 준전시상태보다 더 악화되는 경우 북은 즉각 전시상태로 넘어가게 되는데, 전시상태 선포에 관해서는 북이 2004년 4월에 제정하고 2012년 9월에 개정한 ‘전시사업세칙’에 밝혀져 있다.

그런데 당시 미국과 남측은 북이 2012년 10월 20일경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고, 11월 3일에는 준전시상태를 공식 선포하였다는 정보를 은폐하였기 때문에 남측 국민들은 알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당시 대선열기에 휩싸인 남측 국민들의 눈에는 긴박한 군사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선열기에 휩싸인 남측 국민들이 긴박한 군사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것과는 대비적으로, 미국군과 한국군은 준전시상태에 돌입한 북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다급한 군사행동을 연이어 취하였다. 이를테면, 2014년 10월 24일 미국은 자국 잠수함들 가운데 가장 큰, 수중배수량 18,000t급 핵추진잠수함 오하이오호(USS Ohio)를 부산항에 급파하였고,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군산공군기지에서는 ‘맥스 썬더(Max Thunder)’라는 명칭의 한미공중연합훈련을 이전보다 더 강화하여 실시하였다. 11월 27일 청와대에서는 전군 지휘관회의가 진행되었고, 같은 날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전군 작전지휘관회의가 진행되었다. 12월 6일과 7일 미국은 남측 정부관리들을 참가시킨 가운데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이라는 명칭으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준비태세를 점검하는 도상훈련(tabletop exercise)까지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은 2013년 4월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일정한 잠복기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에 전쟁위기상황이 어떻게 재발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2014년 8월 이후 북에게는 ‘최후 결전’을 단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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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2

2014년 8월 이후 북의 마지막 선택

[한호석의 개벽예감] (125)
자주민보 2014년 08월 1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고 밝혔다. 가오리처럼 생긴 이 폭격기는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에 동원된다. 미국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폭격기들을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남측 국민들은 심각한 상황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 자주민보


 미국은 왜 느닷없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전진배치하였을까?
 
지난 8월 7일 미국 국방부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서태평양의 미국령 괌(Guam)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ir Force Base)에 전진배치했다고 밝혔다. 미국 본토 미주리주에 있는 와이트먼공군기지(Whiteman Air Force Base)에 고정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를 겨냥한 서태평양출격기지에 전진배치된 것이다. <사진 1>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다는 말은 격납고에 들어가 출격명령을 대기하는 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중타격연습을 계속 실시한다는 뜻이다. 2009년 3월 12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 공식매체인 <태평양공군(PAF)>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훌륭히 준비하기 위해 마치 실전상황처럼 작전(연습)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난 8월 7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세계항공보(Global Aviation Report)>는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숙달훈련(familization training)’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무엇을 숙달한다는 뜻인가?

한 번 이륙하면 6시간마다 한 차례씩 공중급유를 받으며 11,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심층관통핵타격(deep-penetrating nuclear strike)에 동원되는 폭격기다. B-2 스텔스전략폭격기는 공중에서 투하되어 지하 61m까지 파고들어가 폭발하는, 무게가 14t이나 나가는 지하관통폭탄 GBU-57A/B 두 발을 실을 수 있고, 340킬로톤급 폭발력을 지닌 B-61핵폭탄 또는 1.2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B-83핵폭탄을 실을 수 있다. 1.2메가톤급 핵폭탄은 일본 히로시마를 파괴한 핵폭탄보다 75배나 더 강한 폭발력을 가졌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번에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는 심층관통핵타격을 숙달하는 연습을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었을 때 선제핵타격연습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적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공중침투할 수 있는 스텔스기능을 갖춘 것만 보더라도, 그 전략폭격기가 전쟁징후를 포착한 즉시 선제핵타격을 개시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최근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지난 8월 7일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여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곳은 한반도다.

요즈음 친러시아세력과 친서방세력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사태에 대비하여 중무장한 러시아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집결한 공격징후가 보이는데도, 미국은 그에 대처하여 B-2 스텔스전략폭격기 편대를 서유럽에 전진배치하지 않았고, 순양함 한 척을 흑해에 전진배치하였을 뿐이다. 오늘 우크라이나 상황과 한반도 상황을 비교하면,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가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징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한반도에서 인식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이 보기에 조선인민군의 군사동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가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어 북을 겨냥한 선제핵타격, 심층관통핵타격을 연습한 때는 2009년 1월 중순이었는데, 당시에도 미국은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런 연습을 감행한 것이다. 2009년 1월 중순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사상 처음으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까닭은, 그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난 2009년 5월 25일에 밝혀졌는데, 북이 그날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북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넉 달 전에 그 실험이 실시될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2008년 10월 9일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ABC> 텔레비전 방송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당국이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에 있는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무렵 두 주간 동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대형케이블선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08년 10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09년 1월 중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네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B-2 스텔스전략폭격기가 앤더슨공군기지에 두 번째로 전진배치된 때는 2013년 1월이다. 당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되었다. 또한 2013년 3월 28일에는 와이트먼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10,400km를 비행하여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폭격연습장까지 날아가 핵타격연습을 실시하고 와이트먼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처럼 2013년에는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의 서태평양 전진배치와 대륙간장거리이동을 석 달 간격으로 연거푸 감행할 만큼 상황이 매우 심각하였다. 

북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준비는 이미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의 <합동통신(AP)> 2012년 4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당시 4월 초에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판독하였더니, 그 곳에서 굴착작업과 토사운반광차 이동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이미 2012년 4월부터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상황을 주시해오다가 2013년 1월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두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8월 7일 미국이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도 북의 지하핵실험 준비동향과 관련된 것일까? 지난 4월 21일 오전 9시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의 제4차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시켰다. 이튿날 남측 국방부는 북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들이 말한 여러 가지 활동이란 각종 계측장비를 현장에 설치하고, 계측장비와 통제소 사이에 통신선을 연결하고, 굴착한 갱도를 되메우는 움직임 등이다. 당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언제든지 결정만 하면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명령만 내리면 조선인민군은 언제든지 제4차 지하핵실험을 즉각 실시할 모든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지난 4월 21일부터 북의 지하핵실험에 대비한 통합위기관리실무반을 가동하고 있는데, 미국이 그로부터 약 3개월 반이 지난 뒤에 B-2 스텔스전략폭격기 세 대를 앤더슨공군기지에 전진배치한 것은, 2009년 1월이나 2013년 1월과는 달리, 이번에는 북의 지하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를 포착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7월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한,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난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화성-6호를 동원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세 차례 실시하였는데, 미국은 그 연습을 전쟁징후에 준하는 매우 심각한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7월 중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실시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관해서는 지난 7월 2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927)에서 논한 바 있다.

둘째, 북이 ‘운명적인 7월’이라고 했던 지난달 20일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이미 1월의 중대제안과 공개서한을 통하여 그리고 6월의 특별제안과 7월의 공화국정부성명을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나라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다.”

이 인용문은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 정세를 한 마디로 말해준다. 인용문을 남측 서술방식으로 바꿔 다시 적어보면, 북은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건만, 미국과 남측 정부는 북의 그런 노력을 선의로 대하기는커녕 항모타격단을 비롯한 방대한 무력을 동원한 합동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니 2014년 8월 이후 북에게는 마지막 선택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2014년 8월 이후 어느 시점에 북이 단행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최후의 선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위의 인용문에 나온 ‘최후의 선택’이라는 말은 ‘최후 결전’을 뜻한다. 북에서 말하는 ‘최후 결전’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언급한 ‘판가리결전’ 또는 ‘조국통일대전’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에서 인용한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문에 들어있는 “이제 (북에) 남은 것은 최후의 선택뿐”이라는 문장은 2014년 8월 이후 북에 남은 것은 ‘조국통일대전’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전 이후 분단10주기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 표명한 북의 최고영도자들
 
2013년 10월 24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런민대 교수는 기밀해제된 중국 외교부 문서인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의 담화기록’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1965년 당시 주조중화인민공화국 대사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한반도 분단문제-옮긴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선은 조만간 전쟁을 할 것이며 이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전쟁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 군대를 파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 <텅쉰핑런(騰迅評論)>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에 따르면, 1965년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던 양융(楊勇)에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한 번 더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짐을 후대에게 물려주면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 반드시 더 잘한다는 법도 없다. 경험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질테니 당신들과 함께 싸워보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의 인용문은 ‘조국통일대전’이 한반도 분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중국측에 표명하였음을 말해준다. 1965년은 분단 20년이 되던 해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65년 4월 27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미그-17 두 대가 동해 상공에 나타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격하였는데, 기습공격을 받고 기체손상을 당한 그 정찰기는 일본 요코다공군기지로 간신히 대피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69년 4월 14일 북의 전투기들은 동해상공에서 미국군 정찰기 EC-121을 공대공미사일 한 발로 격추하였고 거기에 타고 있던 미국군 31명이 몰살당했다. 1968년 1월 21일에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고, 이틀 뒤에는 조선인민군 해군이 동해에서 대북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첩보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면서 승조원 83명 전원을 생포하였고,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기간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전 부대가 경상북도 울진과 삼척에 각각 기습상륙하여 교전을 벌였으며, 1969년 3월에는 조선인민군 최전방 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주한미국군 7명이 죽었고, 11월에는 주한미국군 4명이 또 죽었다.

조선인민군이 1965년부터 1969년 사이에 그처럼 집중공격을 가해 미국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힌 것은 김일성 주석이 1965년에 중국측에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베트남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북의 집중공격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선인민군은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사진 2>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던 1965년 당시 미국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대지미사일 어네스트 존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미사일에 전술핵탄두가 탑재된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 자주민보

만일 당시 북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하였더라면, 미국은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였을지 모른다. 미국의 핵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2005년 9월 28일 미국과학자연맹 전략안보블로그(FAS Strategic Security Blog)에 발표한 자료 ‘남코리아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사(A History of U.S. Nuclear Weapons in South Korea)’에 따르면, 1967년에 미국은 11종의 핵탄 950발을 남측에 배비하고 있었다. 핵탄 950발 가운데는 지대지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 각각 탑재하는 핵탄두는 말할 것도 없고, 핵지뢰도 있었고, 203mm포와 280mm포에서 발사하는 핵포탄도 있었다. <사진 2>

그런데 각종 핵탄 950발로 무장한 주한미국군은 당시 핵탄 한 발도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이 자기들에게 근 5년 동안 집중공격을 퍼부었는데도 대북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은 비핵국가였던 북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북에게 포 한 발 쏘지 못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재래식 무기밖에 없었던 북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서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이 각종 핵탄 950발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비해놓고 대북핵공격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북이 몰랐기 때문에, 1965년부터 근 5년 동안 미국군을 집중공격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북은 미국의 핵위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실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분단 30년이 되던 197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다. 1975년 5월 6일 베이징 주재 동독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14년 만에 중국 방문길에 오른 김일성 주석은 4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지도부의 환영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적들이 무모하게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전쟁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줄 것이며 침략자들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조국의 통일입니다.”

분단 40년이 되던 1985년에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지를 말해주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북이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였던 1985년에도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을 실현해야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분단 50년이 되던 1995년에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김영환 국가정보대학원 교수가 ‘대국민 안보보고서’라는 제목의 논문을 2009년 1월 인터넷에 공개하여 남측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는데, 현역 군인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그의 글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4월 인민무력부 작전지휘관들에게 “우리 인민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공격을 개시, 순식간에 남조선을 점령해 아침에 깬 인민들이 남조선점령상태를 확인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분단 60년이 되던 2005년에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2003년 1월 일본 언론매체가 입수하여 번역, 게재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무력으로 적들을 소멸하고 남조선을 단숨에 타고 앉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며 이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무력통일관입니다”고 말하면서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음을 알려주었다.
 
▲ <사진 3>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지난해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언은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민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은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다. <사진 3> 2013년 8월 9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펴내는 <우리민족끼리>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국통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최대의 절박한 과제이며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필생의 념원이고 유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8일 남측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3년 이내에 무력통일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실현하겠다는 강렬한 통일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북의 최고영도자들은 6.25전쟁 이후 분단 10주기를 맞을 때마다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표명하였으니, ‘조국통일대전 유업’을 계승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그 유업을 실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은 아직 핵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북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핵위협을 받았던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였는데,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강력한 핵무력을 보유하고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다고 하는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는 더욱 강렬한 것으로 생각된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의지표명에 관해 보고한 때로부터 사흘 뒤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 후보자는 북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방위태세로 볼 때 (그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 날 국회 국방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가운데 누가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합참의장 후보자에게 질의했는지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그 시나리오는 북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글 ‘3일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 서술된 나의 추론이다. 그 글이 <자주민보>에 실린 날로부터 14일이 지난 3월 30일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특별성명’에서 “우리의 조국통일대전은 3일 대전도 아니며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 없이 단숨에 남조선 전지역과 제주도까지 타고 앉는 벼락같은 속전속결전”이라고 지적하면서 내가 추론하였던 ‘3일 단기속결전 시나리오’를 사실상 부인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과 한국군의 사상정신상태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사흘 만에 끝날 것인가 아니면 하루 만에 끝날 것인가 하는 전쟁속결속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그처럼 상상을 초월한 초고속으로 ‘조국통일대전’을 끝낼 수 있는가 하는 그들의 전쟁준비태세에 대해서도 응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조국통일대전’이 사흘까지 가지 않고 그 이전에 급속히 끝나게 될 것이라는 북의 공식언명은 전쟁기간이 짧을수록 그만큼 피를 적게 흘리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발언인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할 때 그들에게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는 적군와해공작이다. 위에 인용한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결정적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군의 내부문건이다. ‘조선인민군 학습제강’은 “현대전에서 적군와해공작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더 커져가고 있습니다”고 지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상대측을 사상심리적으로 와해시키는 일이 커다란 힘이 된다”고 인정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는 조선인민군이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투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곧이어 적군와해공작을 전개함으로써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을 초고속으로 결속하려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의 적군와해공작은 한국군의 사상무장이 허술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상무장이 든든한 군대에게는 와해공작이 먹혀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
 
▲ <사진 4> 최근 남측 언론매체들이 날마다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각종 군부대 사건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한국군에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자명해진다.     © 자주민보

한국군의 사상무장은 잘 되어 있을까? 얼마 전 일어난 육군 제22사단 총기난사-무장탈영사건과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에는 사상무장은커녕 입에 담지 못할 가혹한 폭행과 변태적 학대행위, 정신질환과 범죄가 만연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4>

지난 8월 6일 한국군 육군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에서 일어난 폭행 및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는 1,100건이고, 징계건수는 6,095건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수치는 이번에 제28사단 폭행치사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빙산의 일각’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지난 4월 7일 육군 제28사단에서 폭행치사사건이 일어나자 군당국이 4월 한 달 동안 전체 부대를 대상으로 가혹행위에 관한 긴급조사를 실시하여 3,900여 명의 가혹행위 가담자를 적발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3,900명의 가혹행위 가담자가 적발되었는데, 한 해 동안 가혹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건수가 1,100건밖에 되지 않고, 징계건수가 6,09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폭력으로 통제되는 한국군은 전쟁이 터지면 아군끼리 서로 총을 겨눌 것이라고 우려한 <문화일보> 2014년 8월 8일부 보도기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14년 8월 6일 국군의무사령부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3년 동안 19개 군병원들에서 정신질환을 치료한 경험을 보면, 한국군 정신질환자는 19,066명이고, 정신질환진료는 66,481건이나 되었다. 2013년 9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장애에 걸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군인의 비율이 13.9%에 이른다. 2011년 9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에서 자살사건이 증가하는 바람에 2011년 7월부터 9월 22일까지 인성검사를 실시했는데, 그 검사를 받은 중사와 상사 60,038명, 위관급 장교 29,130명을 포함해 모두 89,168명의 피검사자들 가운데 10.2%에 이르는 9,131명이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하거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8월 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군검찰 자료를 인용해 밝힌 바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군검찰이 의법처리한 군인범죄는 7,530건이나 되었는데, 교통법위반범죄, 폭력범죄, 성범죄, 추행범죄, 사기 및 공갈범죄, 절도 및 강도범죄, 횡령 및 배임범죄, 기밀누설범죄, 탈영, 마약, 도박 등으로 다종다양했다.

이처럼 폭력과 학대가 만연되고, 정신질환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범죄율이 높은 군대가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조선인민군은 전군이 전우애로 똘똘 뭉쳐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했다는데, 한국군은 사상정신적으로 와해될 위험에 빠졌으니 그런 사실을 아는 남측 국민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군이 스스로 와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길 지경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이 적군와해공작을 왜 그처럼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적군와해공작은 적군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군조직을 와해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한 전쟁이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과 장거리남진갱도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조선인민군이 중시하는 적군와해공작은 기습타격과 불시점령에서 일차적으로 승리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북의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기습타격이란 전략군이 초정밀전술유도탄으로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거점들을 파괴하고,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는 것을 뜻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기습타격에 동원할 타격수단들 가운데 하나인, 원형공산오차가 1m 이내인 초정밀전술유도탄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30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화성-11호 능가하는 북의 경이적인 전술유도탄(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696)’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제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의 불시점령에 대해 논할 차례다.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불시점령을 위해 지상과 지하, 해상과 수중 그리고 공중에서 입체적으로 침투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한 지하침투다. 이에 관한 정보는 지난 7월 15일 서울에서 출판된 책 ‘여적의 장군들’에 서술되었다. 한국군 공군과 합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10년 1월에 예편한 예비역 소장인 저자는 그 책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꺼내놓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수맥이나 광맥을 찾는 전문가와 함께 청와대 주변을 돌아다니며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그 일대에 지하갱도가 벌집처럼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가 탐침한 청와대 주변의 지하갱도를 보면, 청와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최소 84개, 삼청동 총리공관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6개, 청와대 주변도로 밑에 뚫려있는 지하갱도가 3~6개, 경복궁 밑으로 뚫려있는 지하연결통로가 5개 이상이다. 또한 그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이 방어하는 서부전선 최북단 땅속을 탐침하였더니 지하갱도가 최소 36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 책에서 밝혔다. 
 
▲ <사진 5> 1975년 3월 19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근동면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를 촬영한 사진이다. 토사와 버럭을 운반하는 광차가 오간 궤도가 보이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관이 바닥에 놓인 것도 보인다. 너비가 2.1m이고, 높이가 3m이며 지하 50-160m에 굴설된 이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이므로 길이는 3.5km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 이 남진갱도를 차단하는 작업에 투입된 한국군 7명이 조선인민군이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사망하였다. 최전방에 침투하는 단거리남진갱도는 이제껏 네 개 발견되었으나, 서울을 비롯한 남측 후방에 깊숙이 침투하는 장거리남진갱도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자주민보

또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붕괴를 막기 위해 격실형태로 굴설된 남진갱도들은 대체로 깊이 10m 정도에 뚫렸는데, 그 가운데는 언제든지 갱도출구를 파내고 즉각 지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표면 가까이 2m에 뚫린 곳도 있다고 한다. <사진 5>

그가 탐침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국방부가 있는 서울 용산기지 일대 땅속에도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이고, 미국군과 한국군의 지하전쟁지휘소들이 있는 청계산과 관악산에도 조선인민군의 남진갱도가 뚫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서울 중심부까지 60km에 이르는 장거리남진갱도를 굴설하는 경우 5t 화물차 140,000대가 실어 나를 엄청난 토사와 버럭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대규모 굴설작업이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위와 같은 주장은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국방부 대변인이 알지 못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군정조직 하마스(Hamas)가 가자지구에 지하갱도를 수백 개나 굴설하였다는 사실이다. 하마스가 2000년대 초반부터 불과 10여 년 동안 초보적인 굴착기술로 건설한 지하갱도가 수백 개 되는데, 조선인민군이 1953년 8월부터 60년 동안 고도의 굴착기술로 건설한 남진갱도가 얼마나 길고 얼마나 많은지 추정하기도 힘들다.

조선인민군이 굴설한 남진갱도는 단거리남진갱도와 장거리남진갱도로 구분되는데, 단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최전방부대들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방기지들을 불시에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고, 장거리남진갱도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후방거점들을 불시에 점령하기 위한 시설이다. 

1990년대에 남측 국방장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북의 남진갱도에 관한 제보가 들어오면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맡았던 윤여길 공학박사가 2013년 5월 17일 <뉴스한국> 취재기자와 진행한 대담에 따르면, 3개조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공병대 군인 24명이 하루에 지하갱도를 20m 정도 굴설할 수 있다고 하는데, 1953년 8월부터 오늘까지 60년 동안 그런 굴설속도로 남진갱도를 계속 파들어갔다면 그 길이는 438km에 이르게 되어 남측 어느 지역 땅속이라도 통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폭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는 경우 그 폭탄이 벽에 부딪쳐 튕겨나가도록 지하갱도입구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고도의 기술을 북이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미국 과학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산악지대가 없고 거의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힘든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하마스가 굴설한 지하갱도를 정찰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스라엘군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녔는데도 겨우 23개밖에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지하갱도입구를 은폐하기 아주 쉬운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조선인민군이 고도의 기술과 위장술을 동원하여 굴설한 남진갱도를 탐사작업에 열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군이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남측 국방부 탐지과는 북의 남진갱도가 22~24개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남측에서 발견된 북의 남진갱도 네 개는 모두 단거리남진갱도들이다. 
 
▲ <사진 6> 이 사진에 나온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특수군이 아니라 정찰병인 것으로 보인다.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는 경우 장거리남진갱도를 통해 남측으로 침투할 조선인민군 특수군은 한국군 복장을 입고 위장할 것이다. 한국군 복장을 입은 조선인민군 특수군 병력 200,000명이 갱도출구 400개를 열고 불시에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조국통일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 자주민보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조선인민군 저격병여단에서 군사복무를 할 때 지하갱도적응훈련을 받았다는 탈북자의 회고담을 인용한 <뉴스한국>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땅속에 여러 갈래로 뚫린 남진갱도를 통해 침투한 ‘폭풍군단’이라 부르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1개 여단 6,000~8,000명이 갱도출구를 파내고 지상으로 나와 곳곳에서 동시에 출동하면 서울은 순식간에 점령당할 수 있고, 24시간 안에 충청남도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한다. <사진 5>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 중에 윤여길 공학박사가 언급한 추산법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출구를 각각 20개씩 낸 장거리남진갱도를 20개 굴설하였다고 가정하는 경우 모두 400개의 갱도출구가 있는 것이고, 그 갱도출구들에서 병력이 500명만 지상으로 나와도 30분이면 200,000명이 남측 각지에서 갱도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견한 것처럼, 조선인민군 20만 대병력이 서울을 비롯한 남측 각지에서 불시에 나타나 핵심거점들을 무혈점령하면 피를 적게 흘리는 특수전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나게 될 것이다. 다만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지키고 있는 최전방에서는 피를 흘리는 격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윤여길 공학박사는 위에 인용한 언론대담에서 “북한이 3일 만에 (남측 전역을) 점령한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를 남겼던 것이다. 그가 남긴 충고를 새겨들으면, 2014년 8월 이후 마지막 선택만 남은 북에게 분단 70년이 되는 운명적인 2015년이 차츰 다가오는 현실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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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극궤도 타고 미본토 상공에 은밀히 접근할 북의 극강 타격무기

[한호석의 개벽예감](124)
자주민보 2014년 08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사진 1> 2014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 61돐'을 맞은 북에서는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조선인민군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국제사회가 그 걸의대회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이 그 결의대회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북의 7.27 전군결의대회

요즈음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살육만행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유럽연합-일본의 제재소동에 관한 보도에 주목하는 바람에 매우 중대한 소식을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그 중대한 소식은,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북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 61돐’을 맞은 지난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조선인민군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결의대회’가 진행된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의 7.27 전군결의대회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이 그 대회를 통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명백하게 천명했기 때문이다.

북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이번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처음 천명한 것은 아니고, 이전에도 그와 같은 의지를 천명한 바 있는데, 그럴 때마다 미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은폐하기 위해 북의 그런 의지천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기만적인 반응을 보이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은폐술과 기만술에 속아 넘어가면 착시현상이 일어나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북이 이번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또 다시 천명한 것을 대미위협발언의 반복으로 보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상황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이번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연설을 통해 “만약 미제가 핵항공모함과 핵타격수단들을 가지고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려든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악의 총본산인 백악관과 펜타곤을 향하여, 태평양 상에 널려있는 미제의 군사기지들과 미국의 대도시들을 향하여 핵탄두로케트들을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이 발언을 이전에 있었던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발언과 비교하면 이번 발언의 속뜻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도 2012년 3월 7일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는 “조국통일대전의 출발진지를 차지한 인민군 장병들은 방아쇠에 손을 걸고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미 타격목표를 확정한 대륙간탄도미싸일들을 비롯한 각종 미싸일들은 경량화, 소형화되고 다종화된 핵탄두들을 장착하고 대기상태에 있습니다. 누르면 발사되게 되어있고 퍼부으면 미제국주의의 아성이며 악의 본거지인 워싱톤은 물론 그 추종세력들의 소굴까지도 불바다로 타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7월 27일에 있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연설과 2012년 3월 7일에 있은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연설을 비교하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공통점 이외에 아래와 같은 차이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첫째, 발언계기에서 커다란 차이가 보인다. 2014년 7월 27일 연설은 육-해-공-전략군 결의대회 연설이고, 2012년 3월 7일 연설은 평양시 군중대회 연설이다. 전군결의대회 연설이 군중대회 연설보다 훨씬 더 큰 정치군사적 비중을 갖는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연설자의 지위에서 커다란 차이가 보인다. 2014년 7월 27일 전군결의대회에서는 차수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연설하였고, 2012년 3월 7일 군중대회에서는 상장인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연설하였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전군결의대회 연설이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군중대회 연설보다 훨씬 더 큰 정치군사적 비중을 갖는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셋째, 2012년 3월 7일 군중대회에서는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만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하였는데, 2014년 7월 27일 전군결의대회에서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에 이어 김락겸 전략군사령관도 토론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하였다. 전략군사령관은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침략의 아성은 물론 도처에 널려진 미제침략군기지들을 향하여 분노의 탄도로케트들을 발사하”여 “침략의 근원을 초토화해버림으로써 미제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정치국장과 전략군사령관이 전군결의대회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함께 천명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넷째, 발언강도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보인다. 이를테면, 2012년 3월 7일 군중대회 연설에서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와 “그 추종세력들의 소굴”을 핵타격대상으로 지목하였는데, 2014년 7월 27일 전군결의대회 연설에서는 백악관, 펜타곤, 태평양지역의 미국군사기지들, 미국의 대도시들을 핵타격대상들로 지목하였다. 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직접 전략군의 핵타격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이다.

이번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총정치국장은 “만약 미제가 핵항공모함과 핵타격수단들을 가지고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려든다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고, 전략군사령관은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초대형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타격단을 한반도 근해에 출동시키고 전략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킨 것은 북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조금 건드린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위협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총정치국장과 전략군사령관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이 대북핵전쟁연습을 감행하여 북을 자극할 때마다 북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략겸 전략군사령관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발언이 요즈음 북에서 전개되는 조선인민군의 비상한 군사행동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발언과 비상한 군사행동들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조선인민군이 비상한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 ‘평온한’ 상황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전략군사령관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하였다면, 그것은 위협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이 비상한 군사행동들을 연이어 펼치는 긴장된 상황에서 총정치국장과 전략군사령관이 전군결의대회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것은 단순한 위협발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 <사진 2> 2014년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군결의대회에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연설하고 있다. 연설에서 그는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하면서 전략군의 핵타격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이것은 북이 대미핵공격준비를 완성하였음을 말해준다. 북이 말하는 '최후의 결전'은 그런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백악관과 펜타곤을 전략군의 핵타격대상으로 지목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이번에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하면서 “백악관과 펜타곤”을 전략군의 핵타격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시에 전략군이 백악관과 펜타곤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평양을 향해 핵탄미사일을 겨누고 있는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북도 백악관과 펜타곤을 향해 핵탄미사일을 겨누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워싱턴 디씨에 대한 핵공격의지를 천명한 공식발언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전시에 백악관과 펜타곤을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공격하겠다는 서슬 퍼런 공식발언은 이번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핵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열핵탄으로 미국의 핵위협에 맞설 북의 단호한 결심을 총정치국장의 이번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북의 그런 결심은 전시에 백악관과 펜타곤을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공격할 실전능력을 가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몇몇 글들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보유한 각종 핵타격수단들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만 작전배치한 것이 아니라, 화성-13호를 작전배치하기 전에 화성-13호보다 사거리가 더 긴 목성 계열의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들도 작전배치하였음을 논증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이 워싱턴 디씨를 공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지 못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그런 허위사실이 언론보도를 타고 국제사회에 퍼져나가 마치 ‘정설’처럼 굳어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사거리 6,000km의 제한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limited-range ICBM, LR-ICBM)과 사거리 10,000km 이상의 완전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full-range ICBM, FR-ICBM) 두 종류로 갈라놓고, 화성-13호를 제한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제멋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탄길이가 21.9m이고 탄지름이 1.9m인 러시아의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토폴(Topol)-M의 사거리는 10,500km인데, 탄길이가 22m이고 탄지름이 2m인 북의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의 사거리가 6,000km밖에 되지 않는다는 미국의 주장은 궤변이다. 2014년 5월 5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워싱턴자유횃불(WFB)>이 미국 국방부 전략분석관, 국방장관실 군사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한 마크 슈나이더(Mark Schneider)가 지난 4월 28일 군사전문지 ‘비교전략(Comparative Strategy)’에 발표한 글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이 미국 서부지역에 도달하는 핵탄미사일을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은폐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 미국 서부지역에 도달하는 북의 핵탄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뜻한다.

그렇다면 북의 핵탄미사일이 도달하는 미국 서부지역이란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는 서부해안도시들이므로, 서부지역이라고 하면 그 두 도시들보다 더 동쪽으로 들어간 내륙지방을 뜻하는 것이다. 그 내륙지방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군사전략거점이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다. 함경북도 북부 산악지대에서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까지 거리는 9,400km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핵탄미사일이 도달할 미국 서부지역에 있는 타격목표라고 하면, 미국이 은폐한 정보만 보더라도 화성-13호의 사거리는 6,000km가 아니라 최소 9,400km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화성-13호의 실제 사거리는 그보다 1,100km가 더 긴 10,500km에 이른다.

그렇다면 미국 군부는 왜 화성-13호의 사거리가 6,000km밖에 되지 않는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린 것일까? 만일 북이 미국 군부가 말하는 사거리 6,000km의 제한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함경북도 북부 산악지대에서 쏜다고 가정하면, 그 미사일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밖에 타격하지 못한다. 함경북도 북부 산악지대에서 앵커리지까지 거리는 5,500km이고, 하와이주 호놀룰루까지 거리는 7,000km이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까지 거리는 9,000km이고, 워싱턴 디씨까지 거리는 10,500km다. 여기에 열거한 측정거리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만일 화성-13호가 미국의 주장대로 제한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면, 그 미사일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변방인 알래스카주밖에 타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군부는 화성-13호를 제한사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제멋대로 규정한 허위사실을 퍼뜨렸던 것이다.

북이 인공위성을 탑재한 은하 계열의 위성운반로켓들을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간접적으로 입증한 바 있고, 더욱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2012년과 2013년에 진행된 군사행진을 통해 두 차례나 공개했는데도 미국 군부가 퍼뜨린 위의 허위사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만일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연습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더라도 그 미사일을 대서양으로 날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고, 발사각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사거리를 크게 줄여 쏘아야 하는데, 그렇게 조절하여 쏘면 모의탄두가 태평양 한 복판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은 북이 사거리를 일부러 줄여 쏜 사실을 숨기고 그 미사일은 사거리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또 다시 허위사실을 조작하여 퍼뜨릴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북은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우주개발사업을 진척시키는 한편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도 과시하는 ‘부수효과’를 거두는 방도를 또 다시 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북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상상을 초월한 증축공사와 위성발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최신 정보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놀라운 정보는 지난 7월 29일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 닉 핸슨(Nick Hansen)이 미국 웹사이트 <38 노스(North)>에 발표한 글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닉 핸슨의 글에 따르면, 지난 7월 4일에 촬영된 서해위성발사장 위성사진을 분석하였더니 길이가 50~55m에 이르는 로켓발사탑 증축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4월 13일과 12월 12일에 각각 발사된 은하-3호의 길이는 30m를 넘지 않았는데, 지금 북은 은하-3호보다 길이가 거의 두 배 정도 더 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 올리려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서해위성발사장 대규모 증축의 놀라운 실상에 대해서는 좀 더 분석적으로 고찰해야 하므로, 그에 관한 서술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 <사진 3> 이 사진에서 보이는 중국의 위성운반로켓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창전-3호(1984년), 창전-3A호(1994년), 창전-3B호(1996년), 창전-3C호(2008년)다. 지금 북의 서해위성발사장 로켓발사탑 증축공사가 거의 끝나가는데, 그 로켓발사탑은 높이가 50--55m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북은 길이가 50m가 되는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험을 보면, 길이가 50m가 조금 넘는 위성운반로켓은 달궤도로 쏘아올리는 로켓이다.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북이 서해위성발사장을 대규모로 증축하면서 초대형 위성운반로켓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향에 대해서는 2014년 1월 13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완성단계에 이른 북의 초대형 우주발사체’에서 논한 바 있는데, 북이 다음번에 쏘아올릴 위성은 지구궤도를 벗어나 달궤도에 진입하는 달위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예상하는 근거는,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2009년 3월 1일 중국이 달궤도를 향해 쏘아올린 위성운반로켓 창정(長征)-3A의 길이가 52.5m인데, 지금 북이 증축공사를 거의 끝낸 서해위성발사장 로켓발사탑의 높이가 50~55m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머지않아 북이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쏘아올리면, 북의 우주개발사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너무 짧아 워싱턴 디씨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나 도달할 것이라는 미국의 허위선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난 7월 전략군이 실시한 화성-6호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은 대미핵공격준비 완성했다는 뜻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7.27 전군결의대회 연설 중에 대미핵공격의지를 천명하면서 “태평양 상에 널려있는 미제의 군사기지들”을 전략군의 핵타격대상들로 지목한 것은, 요즈음 전략군이 실시하는 연속적인 미사일발사연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지난 7월 31일 국가정보원 원장 및 관계자들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이 올해 2월부터 7월 사이에 연속적으로 발사한 미사일은 여덟 종이고, 총발사수량은 250여 발이며, 소요비용은 6,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북의 미사일생산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또한 북의 갱도미사일기지들마다 얼마나 많은 미사일들이 준비되었기에 그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량발사연습을 실시하는 것일까? 그 어떤 미사일강국도 따라가지 못할 방대한 규모의 미사일발사연습을 연속 실시하는 북의 군사행동이 비상한 군사행동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북이 지난 2월부터 7월 사이에 실시한 미사일발사연습들 가운데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현장에 나가 직접 지도한 미사일발사연습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의 최고영도자가 현장에 나가 직접 지도한 미사일발사연습은, 그렇지 않은 다른 미사일발사연습들과 달리 북에서 가장 중시하는 미사일발사연습인 것이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실시된 미사일발사연습들을 날짜순으로 열거하면, 지난 7월 9일 황해북도 평산군 멸악산 뒤쪽에 있는 린산비행장 인근에서, 7월 13일 개성 북쪽 국사봉 인근 계곡에서, 7월 26일 황해남도 룡연군 장산곶 인근 바닷가에서 각각 실시된 미사일발사연습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일본의 4대 해군기지들 가운데 하나인 사세보해군기지를 촬영한 것이다. 이 해군기지는 한반도 유사시에 동원될 미국 해군 7함대와 일본해상자위대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긴급출동하는 매우 중요한 군사전략거점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최근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 여러 차례 동원하여 발사한 핵탄미사일 화성-6호는 바로 그 사세보해군기지를 조준하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지난 7월 한 달 동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실시된 미사일발사연습에서 전략군 소속 서부전선 타격부대들이 쏜 미사일은 모두 사거리가 700km인 핵탄미사일 화성-6호다. 이에 대해서는 2014년 7월 21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6927)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핵탄을 장착하고 쏘는 화성-6호가 타격할 대상은 일본 사세보해군기지다. 일본의 4대 해군기지들 가운데 하나인 사세보해군기지는 “한반도 유사시”에 동원되는 미국 해군 7함대와 일본해상자위대가 한반도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긴급출동할 매우 중요한 군사전략거점이다.

<사진 4>에서 보는 사세보해군기지에는 2008년에 17,000t급 상륙수송함 덴버호(USS Denver)가, 2011년에 16,000t급 상륙함 저먼타운호(USS Germantown)가, 2012년에 40,000t급 상륙강습함 반홈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가, 2013년에 17,000t급 상륙함 애쉴랜드호(USS Ashland)가 고정배치되었고, 1,300t급 소해함 네 척과 3,300t급 구난함 1척도 그 해군기지에 고정배치되었으며, 미국군 병력 및 군무원 5,600명이 그 해군기지에 상주한다. 원산만 기습상륙전에 동원할 미국 각종 전투함들이 그처럼 사세보해군기지에 집결된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그 해군기지가 원산만 기습상륙을 노리는 발진기지로 크게 강화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미국이 대북전쟁을 개전하기 직전 사세보해군기지에는 대북기습공격을 노리는 각종 전투함들과 잠수함들이 집결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화성-6호를 동원한 전략군의 불시기동-기습발사연습이 왜 지난 7월 중에 세 차례나 실시되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7.27 전군결의대회에서 대미핵공격에 대해 언급하면서 핵타격대상으로 지목한 “태평양 상에 널려있는 미제의 군사기지들” 가운데는 사세보해군기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남측과 일본 각지에 있는 미국군기지들은 물론이고, 괌과 하와이에 있는 미국군기지들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된다. 그 모든 미국군기지들은 예외 없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핵탄미사일 타격좌표로 조준하고 있는 1차 타격대상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7.27 전군결의대회 연설 중에 핵타격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7월 중에 핵탄미사일 화성-6호를 동원한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을 세 차례나 실시한 것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장에 나가 그 연습을 직접 지도하면서 “싸움준비완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핵전쟁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아서 핵전법이 전시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전경험을 가진 나라는 없지만, 평시에 핵전법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맹렬히 연습하며 핵공격준비를 완성한 나라가 핵전쟁에서 이기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면 교전쌍방이 모두 공멸할 것이라는 ‘상호확증파괴설’은, 핵전법이 전시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하지 못한 미국이 전쟁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면서 꾸며낸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런 가설과 달리, 핵전쟁은 전술핵탄을 쓰는 전쟁이기 때문에 교전쌍방의 공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쪽에게는 최후의 승리로, 다른 한 쪽에게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굴욕적 패배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핵공격준비를 완성한 쪽은 북인가 미국인가?

2014년 1월 북이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개칭하였고, 같은 시점에 전략군사령관의 군사칭호를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시켰고, 그 이후 화성-6호 핵탄미사일발사연습을 계속 실시한 것은, 북이 핵무력을 확대, 개편하여 핵공격준비를 완성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처럼 핵공격준비를 완성한 북에 맞선 미국은 핵전쟁준비태세를 어떻게 갖추었을까?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핵무기 정책 및 절차에 대한 1급 보고서’를 인용한 2008년 7월 2일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핵탄이 100발 이상 배비된 핵탄미사일기지를 통제하는 미국군사령관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핵탄을 다뤄본 경험이 없고, 지난 17년 동안 경계경보가 한 차례도 발령되지 않아 핵전쟁준비태세에서 심각한 퇴보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핵탄미사일 부품 네 개가 부주의로 엉뚱한 곳에 전달된 사건, B-52 폭격기가 핵탄이 탑재된 것도 모른 채 미국 본토 상공을 장시간 비행한 사건, 핵탄미사일 관리요원들이 핵탄미사일 발사장치를 켜놓은 채 근무 중에 잠을 자다가 군당국에 발각된 사건, 핵탄미사일 통제권을 가진 지휘관들 가운데 통제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고위지휘관 17명이 한꺼번에 파면당한 사건 등 그야말로 만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충격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은 미국의 핵전쟁준비태세가 엉망진창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2008년 11월 15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잃어버렸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한 핵탄만 해도 11발이나 된다는 것이다. 국가운명을 좌우할 전략무기인 핵탄을 무려 11발이나 잃어버린 군대에게 핵전쟁준비태세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 본토가 극강의 비밀무기로 공격당할 확률은 100%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7.27 전군결의대회 연설 중에 전략군의 핵타격대상들을 열거하면서 “미국의 대도시들”까지 포함시킨 것은 세인의 예상을 뛰어넘은 뜻밖의 발언이다. 도시거주인구가 200만명 이상인 미국의 4대 도시들은 840만명이 거주하는 뉴욕, 388만명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 271만명이 거주하는 시카고, 219만명이 거주하는 휴스턴이다. 만일 북과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는 경우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의 4대 도시들을 향해 핵탄미사일을 동시다발로 쏘면, 1,718만명이 한꺼번에 몰살당하게 될 것이다. 미국 본토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처럼 국제사회에 알려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는 사전에 입력된 정보자료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므로, 어느 순간에 어느 방향에서 날아들지 모르는 불시기동-기습타격 핵탄미사일에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쟁이라 해도 북이 미국의 4대 도시들을 향해 핵탄미사일을 발사하여 그처럼 수많은 인명을 몰살시킬 이유는 전혀 없다. 만일 미국이 평양을 핵탄공격으로 파괴하면 그에 상응한 보복 차원에서 북도 미국의 4대 도시들을 핵탄공격으로 파괴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전쟁상황이라면 북이 비전투원 1,718만명을 몰살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7.27 전군결의대회 연설 중에 열거한 전략군의 핵타격대상들에 “미국의 대도시들”이 포함된 것은 위에 언급한 네 도시들에 사는 시민들을 핵탄공격으로 몰살시키겠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핵탄공격이 아니라면, 대도시를 공격하는 방도는 직접적인 인명살상을 일으키지 않는 핵탄전자기파공격(nuclear EMP attack)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군사행진에서 공개한 이후 미국에서는 북의 핵탄전자기파공격 위험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북이 미국 본토에 핵탄전자기파공격을 실행할 위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미국인들 가운데서 요즈음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람은 제임스 울시(R. James Woolsey)와 피터 빈센트 프라이(Peter Vincent Pry) 두 사람이다. 미국 해군장관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차례로 역임한 제임스 울시는 현재 ‘민주주의수호기금(FDD)’ 의장이고, 연방의회 산하 전자기파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을 역임한 피터 프라이는 현재 ‘국가 및 국토안보 실무단(TFNHS)’ 실행총무다.

위의 두 사람은 2013년 11월 2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가족안전문제(Family Security Matters)’에 발표한, 공동집필한 장문의 글에서 미국 연방의회 전략태세위원회를 비롯한 몇몇 연방정부기관들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탄전자기파공격을 “실존적인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인정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지난 시기 소련이 개발한 비밀무기인 부분궤도폭격체계(Fractional Orbital Bombardment System, FOBS)가 미국 본토에 대한 “기습적인 전자기파공격”에 사용될 위험이 실재한다고 밝혔다. 울시와 프라이가 공동집필한 위의 글에 따르면, 부분궤도폭격체계라는 비밀무기는 대륙간탄도마시일에 탑재되어 고도 500km의 극궤도에 진입한 뒤에 궤도비행을 하는 핵탄이 미국 본토 상공에 이르러 지정된 시각에 폭발하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위의 글에 따르면, 미국의 미사일조기경보체계는 북극상공을 통과하여 미국 본토로 날아가는 미사일만 감시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에 남극상공을 통과하여 미국 본토로 날아가는 미사일은 포착하지 못하고, 따라서 부분궤도폭격체계는 미국의 미사일조기경보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 본토가 전자기파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심각한 상황은 지난 5월 초 미국 연방하원 사이버안보 및 기반시설보호, 기술보안 소위원회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정보는 제임스 울시가 지난 7월 23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언급되었다. 답변서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러시아의 두뇌유출이 북의 전자기파무기개발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인데, 그가 답변서에서 지적한 전자기파무기가 바로 부분궤도폭격체계인 것이다. 놀랍게도, 울시의 답변서는 북이 이미 10년 전에 부분궤도폭격체계를 개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울시와 프라이가 공동집필한 위의 글에서 지적한 놀라운 사실은, 2012년 12월 12일 북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가 고도 500km의 극궤도를 타고 비행하였다는 것이며, 극궤도비행에 성공한 것은 북이 부분궤도폭격체계를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9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월드 넷 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부는 미국 국방부를 위해 작성한 비공개보고서에서 북이 전자기파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고 한다. 북이 부분궤도폭격체계를 개발하고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그 극강의 비밀무기가 이미 완성되어 조선인민군 전략군에 작전배치되었다는 것은 더 논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현재 미국에 맞서 부분궤도폭격체계를 운용하는 핵강국은 북, 러시아, 중국이다.
▲ <사진 5> 극강의 비밀무기인 부분궤도폭격체게로 극궤도에 쏘아올린 핵탄이 미국 본토 중앙에 있는 캔서스주 400-500km 상공에서 지정된 시각에 폭발하는 경우, 미국 본토 전역에서 각종 전자-전기장치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전력공급이 끊겨 사회기반시설이 전반적으로 붕괴될 것이다. 미국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패망하게 될 부분궤도폭격체계 공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준비한 대미핵공격방도들 가운데 하나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울시와 프라이가 공동집필한 위의 글에 따르면, 부분궤도폭격체계로 극궤도에 쏘아올린 핵탄 한 발이 미국 본토 중앙에 있는 캔서스주 400~500km 상공에서 지정된 시각에 폭발하는 경우 반지름이 약 2,200km나 되는 방대한 지역이 가공할 전자기파로 뒤덮이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본토 전역에서 각종 전자-전기장치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전력공급이 끊겨 사회기반시설이 전반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북의 전자기파공격 위험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관해서는 2011년 6월 27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북미대륙 뒤덮을 거대한 전자구름’에서 논한 바 있다.

백악관과 펜타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이 7.27 전군결의대회 토론 중에 대미핵공격에 대해 언급하면서 “침략의 근원을 초토화해버림으로써 미제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은 부분궤도폭격체계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북보다 훨씬 더 많은 핵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이 북보다 더 많은 핵탄을 가졌다고 해서 미국의 핵무력이 북의 핵무력보다 더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적국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절대무기’인 핵탄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핵전법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핵강국보다 핵탄을 더 많이 가진 나라가 핵전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울시와 프라이가 공동집필한 글이 지적한 것처럼, 부분궤도폭격체계로 핵탄 한 발만 쏴도 미국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패망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백악관과 펜타곤은 핵탄으로 무장하는 항모타격단을 한반도 근해에 출동시키는 위험천만한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며 북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백악관과 펜타곤이 핵전쟁준비태세가 엉망진창인 미국군을 대북전쟁연습에 계속 내몰아 극도의 긴장을 조성할수록 그에 대응하여 북도 핵탄미사일 발사연습을 계속하게 될 것이며, 극강의 비밀무기인 부분궤도폭격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뉴스맥스>가 2011년 2월 17일 미국 연방수사국(FBI) 대량파괴무기국 부국장 바힛 마지디(Vahid Majidi)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본토가 대량파괴무기로 공격당할 확률은 100%라고 한다. 그는 미국 본토의 대량파괴무기 피격확률에 대해 언급하면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부분궤도폭격체계를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북이 대미핵공격준비를 완료한 오늘 미국 본토가 북의 핵공격을 받을 확률은 100%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 백악관과 펜타곤에게 전하는 경고는, 그들이 대북핵공격이라는 자멸적 망상장애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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