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8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한호석의 개벽예감](441)

자주시보 2021년 04월 2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미국 전쟁실록에 수록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

2. 하동전투와 마산방어선 돌파전

3.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4. 고속기동군의 비대칭전법과 속결전씨나리오

 

 

1. 미국 전쟁실록에 수록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

 

모란봉악단이 2014년 9월 3일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신작음악회를 열었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종목 가운데는 2014년에 창작된 노래 ‘근위부대자랑가’도 있었다. 모란봉악단 성악가수들이 경쾌한 곡조로 부른 ‘근위부대자랑가’는 6.25전쟁 시기 근위칭호를 받은 8개 전투부대들의 군공에 관한 가사를 담았다. ‘근위부대자랑가’에서 일곱 번째로 나오는 근위부대가 바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6.25전쟁에서 어떤 군공을 세웠기에 근위칭호를 받았으며, 7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부대명칭이 대중가요에 오를 만큼 유명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15년 2월 7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개성과 연안, 강령과 옹진반도, 김포, 인천 등지를 해방하였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 경상남도를 종횡무진하면서 령활무쌍한 전술과 전법으로 남조선의 많은 지역들을 해방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락동강도하전투에서 무적의 공훈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8월 29일 근위칭호를 수여받았고, 6.25전쟁에서 특출한 군공을 세운 수십 명의 공화국 2중영웅과 공화국영웅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6.25전쟁에서 조선인민군과 격전을 벌인 미국군도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군공을 인정했다. 미국 육군역사연구소(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가 역사학자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1961년에 펴낸 전쟁실록의 제목은 ‘남으로 낙동강까지, 북으로 압록강까지(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인데, 이 전쟁실록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전투기록이 서술되었다. 전쟁실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코리아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기동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실록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미육군 제8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전투부대를 재배치해야 했고, 미국 극동군사령부와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자기들의 전쟁계획을 변경해야 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어떤 군공을 세웠기에 미국 육군역사연구소가 그처럼 높이 평가한 것일까? 6.25전쟁 초기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작전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월 25일 개성, 옹진 점령

6월 28일 한강하구 도하, 김포반도 점령

7월 3일 서울 영등포 점령

7월 4일 경기도 인천 점령

7월 8일 충청남도 천안 점령

7월 11일 충청남도 온양, 예산, 홍성 점령

7월 19일 전라북도 군산 점령, 금강 도하

7월 20일 전라북도 이리, 전주, 김제 점령 

7월 22일 전라북도 고창 점령

7월 23일 전라남도 영광 점령

7월 24일 전라남도 나주, 목포, 남원, 구례 점령

7월 25일 전라남도 순천, 여수 점령, 섬진강 도하

7월 26일 경상남도 하동 점령

7월 30일 경상남도 진주 점령

7월 31일 경상남도 마산 근교로 진격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개전 당일 개성을 점령하고 그로부터 한 달 만에 목포를 점령한 것은 매우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전개했음을 말해준다. 어떻게 그처럼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었을까? 다음에 열거한 사실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한국군을 압도하는 강한 무장력을 갖추었다. 6.25 전쟁 시기에 조선 주재 군사고문단 단장이었던 울라지미르 라주바예브(Vladimir N. Razuvaev)가 작성하여 소련군 총참모부에 보고한 문서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무장장비는 땅크 4대, 자행포 16문, 견인포 64문, 반땅크포 48문, 박격포 99문이었다.

 

2) 6.25전쟁 시기에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진격한 한강 이남 서부전선에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없었고, 경찰대만 있었다. 사실상 무방비상태였다. 경찰대는 조선인민군이 땅크를 앞세우고 진격해온다는 소문만 들어도 줄행랑을 쳤다. 이런 사실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교전을 거의 하지 않고 전진하는 기동전을 전개하였음을 말해준다.  

 

3) 6.25전쟁 시기에 미국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한강 이남 서부전선을 기동전으로 신속히 돌파한 뒤, 남부 해안지대에서 우회기동하여 부산으로 진격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군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전라남도 목포를 거쳐 경상남도 하동을 점령할 때까지 그들이 언제 어디로 기동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적진의 가장 약한 취약지대를 기동전으로 신속히 돌파하여 허를 찔렀음을 말해준다. <사진1>

 

▲ <사진 1> 위의 사진은 1950년 7월 20일 대전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조선인민군이 땅크를 앞세우고 대전 시내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대전전투에서 미국군 제24보병사단은 사단장 윌리엄 딘(육군 소장)이 조선인민군에게 생포되고, 1,15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궤멸적 타격을 입고 대전 이남으로 패주했다.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 제4보병사단, 제105땅크사단이 대전을 포위하고 미국군 제24사단을 격파한 바로 그 날,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전라북도 이리, 전주, 김제를 연속점령했다. 1950년 7월과8월 당시 조선인민군은 부산을 향하여 파주지세로 진격하고 있었다.  

 

 

2. 하동전투와 마산방어선 돌파전

 

한강 이남 서부전선에서 교전을 거의 하지 않고 남진하여 목포를 점령하고 부산을 향해 우회기동하던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7월 25일 경상남도 하동에서 처음으로 교전다운 교전을 벌였다. 위에 인용한 미국 육군역사연구소의 전쟁실록 ‘남으로 낙동강까지, 북으로 압록강까지’에 하동전투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고 부산을 방어하던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선인민군 전투부대가 하동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다급한 정찰보고를 받았다.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마산방면에 배치된 제29독립보병련대를 1950년 7월 24일 하동방면으로 출동시켰다. 

 

그런데 하동방면으로 이동하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 제3대대 대대장 해롤드 무어(Harold G. Moor, jr.) 중령의 뒤를 한국군 지휘관 한 명이 따라다녔다. 그가 바로 채병덕이다. (서울방어전에서 대패하고 한강 이남으로 패주한 채병덕은 한국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영남관구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전투부대가 없는 허수아비 사령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군 중령의 뒤를 따라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 제13련대는 하동의 어느 야산에 매복하고 있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에 불의의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미국군 대대장의 뒤를 따라가던 채병덕은 머리에 기관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고, 미국군 전투원들은 많은 전사자와 무기를 버려두고 황망히 패주했다.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계속 추격해오자 미국군 패주병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들이 입고 있던 군복과 신고 있던 전투화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거의 벌거숭이로 물에 뛰어들어 내를 건넜다. 내를 건너는 동안 수영을 하지 못하는 많은 패주병들이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미국군 패주병 60~70명이 약 2.5km를 허겁지겁 도주하다가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능선에서 불쑥 나타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또 다시 그들의 머리 위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위에 인용한 전쟁실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집중사격을 또 다시 받은 미국군 패주병들은 “놀란 꿩들이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 그들은 군화도 신지 못한 맨발로 어둠 속을 밤새 걸어 이튿날 아침 미국군 제19보병사단 전초선에 간신히 도착했다. 살아남은 패주병은 10명이었다.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는 하동전투에서 38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부상하고, 313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부지기수가 실종되었다. 사상자들 가운데는 현장지휘관들이 많았다. 그래서 미육군 제8군 사령부는 제29독립보병련대를 개편해야 했다. 이런 정황은 제29독립보병련대가 하동전투에서 패하여 사실상 궤멸되었음을 의미한다. 

 

하동전투에서 미국군 보병련대를 궤멸시킨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파죽지세로 진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했다. 그들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한 최후의 돌격전에 앞서 전렬을 정비했다. 

 

마산역에서 부산역까지 직선거리는 45km밖에 되지 않는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보유한 각종 견인포들 가운데 122mm 견인곡사포가 가장 멀리 포탄을 날려보낼 수 있었는데, 그 사거리는 20km였다. 그러므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5km만 더 전진했더라면, 122mm 곡사포로 부산 도심을 타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전쟁사가들은 당시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부산을 점령하기 위한 측면돌파전을 벌이고 있었던 1950년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개월 기간이야말로 6.25전쟁 중에 미국군이 최악의 패전위기에 몰렸던 위급한 시기였다고 지적했다.  

 

위급한 상황에 몰려 패전공포에 사로잡힌 미국군과 한국군은 낙동강에 의지하여 불퇴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의 도하작전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당시 도하장비가 없는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과 제4보병사단은 급히 통나무로 떼를 무어 낙동강을 건넜으나, 항공무력의 화력지원을 받은 미국군과 한국군의 격렬한 저지선을 뚫지 못한 채 많은 사상자를 냈다. 낙동강전투는 격전 중의 격전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탄우는 햇빛을 가렸고, 사상자들의 핏물은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미국군 제25보병사단은 마산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1950년 8월 2일부터 9월 14일까지 무려 34일 동안 미국군 제25보병사단을 계속 공격하면서 마산방어선을 뚫고 나가기 위한 돌파전을 벌였다. 만일 마산 근교까지 진격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측면에서 돌파했더라면,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 직전에 전쟁을 결속하고 부산에서 8.15해방 5주년을 맞았을지 모른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1950년 7월 25일 전투가 벌어진 경상남도 하동을 미국군 정찰기가 공중에서 촬영한 것이다. 하동전투에서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 제13련대는 미국군 제29독립보병련대에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하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파죽지세로 진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마산 근교까지 진격했다.미국군 제25보병사단은 마산방어선을 구축하고,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의 진격을차단했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은 34일 동안 마산방어선 돌파전을 벌였다. 만일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을 점령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측면에서 돌파했더라면, 조선인민군은 1950년 8월 15일 직전에 전쟁을 결속하고 부산에서 8.15해방 5주년을 맞았을지 모른다.  



3. 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과 공병정찰조의 변모된 모습

 

격전의 포성이 정전으로 멈춘 뒤에 조선인민군은 부산 인접지역까지 진격했으면서도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한 피의 교훈을 되새겼다. 조선인민군이 6.25전쟁에서 얻은 피의 교훈은 무엇인가? 

 

만일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더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벌였다면, 그들은 부산으로 후퇴하는 미국군과 한국군보다 먼저 부산에 도착했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제6보병사단이 마산 근교까지 진격하기까지 1개월이 걸린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한강하구, 금강, 섬진강을 도하할 때 부교가 없어서 신속한 도하작전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민군 제3보병사단과 제4보병사단도 부교가 없어서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미국군 증원무력이 부산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신속히 결속하려면 진지전이 아니라 기동전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강과 하천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기동전을 하려면 도하작전능력과 상륙작전능력을 비상히 강화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6.25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얻은 피의 교훈이었다. 

 

피의 교훈은 정전 이후 오늘까지 70여 년 동안 조선인민군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지난 날 도하장비가 없어 떼에 올라타 강과 하천을 건너야 했던 그들은 오늘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을까? 

 

조선인민군의 무장장비는 고속기동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맞춤형 무장장비로 변화되었다. 2020년 10월 10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과 2021년 1월 14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열병식에 각각 등장한 각종 무장장비들은 고속기동전에 적합하게 경량화되고, 차량화되고, 장갑화된 첨단무장장비들이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도하작전, 상륙작전, 고속기동전에 참가하는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조선인민군이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는 사실은 2017년 1월 11일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16 국방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15개 군단을 17개 군단으로 증편했다고 한다.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2개 군단을 증편한 것은 사회안전성(당시 인민보안성)에 소속된 공병총국(제7총국)과 도로총국(제8총국)을 국방성(당시 인민무력성) 소속 2개 공병군단으로 개편한 조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1개 전연군단(전방에 배치된 군단)에 공병련대가 1개씩 배속되었고, 1개 기계화군단에 도하공병대대가 1개씩 배속되었고, 1개 차량화보병려단에 공병중대가 1개씩 배속되었는데, 그와는 별도로 2개 공병군단이 더 증설된 것이다. 조선인민군 1개 군단의 병력수는 63,000명이므로, 2개 공병군단에 배속된 공병은 총 126,000명이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증강하였음을 보여준다. 

 

조선인민군의 공병무력이 엄청나게 증강되었다는 사실이 한국 국방부의 ‘2016 국방백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이 진행되었다. 그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 공병군단 소속 전투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장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조선인민군 공병군단의 장비가 얼마나 질적으로 발전했는지를 현실로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2016년의 그들 모습과 2020년의 그들 모습을 비교해보자.  

 

2016년 3월 19일 조선인민군은 강원도 원산만에서 상륙 및 반상륙방어연습을 진행했는데, 그날 연습에 공병정찰조가 참가했다. 그들은 바다와 개펄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공기부양정을 타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풍 같이 달려가 해안 모래사장에 신속히 상륙했다.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는 상륙구역에 은밀히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상륙구역 해안에 설치된 용치(龍齒) 같은 차단물을 폭파하여 상륙돌격로를 열어놓는 작전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공병군단 소속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차단물을 폭파하고, 진격로를 열어놓는 공병정찰조인 것이 분명하다. 

 

주목되는 것은, 지난 5년 사이에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의 장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2016년 3월 19일 원산만에서 진행된 상륙연습에 참가한 공병정찰조는 얼룩무늬전투복을 입고, 방탄모가 아닌 군모를 쓰고, 어깨에 자동보총과 배낭을 메고, 손에 삽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열병식에 참가한 공병정찰조 및 공병도하조 열병종대가 행진하는 장면이다. 열병종대 전반부의 공병정찰조는 무인정찰기 또는 무인로봇을 조종하는 전자장비가 들어있는 특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메었고, 열병종대 후반부의 공병도하조는 고성능폭약이들어있는 방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메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삽자루를 손에 들고 상륙연습에 참가했던 공병정찰조가 5년 뒤에 미래전을 수행할 최신형 전자장비를 어깨에 메고 열병식에 나타났으니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인민군은 고속기동전에 참가할 공병무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그런데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가한 공병정찰조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그들의 모습은 매우 특이하게 보였다. 이를테면, 그들은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신형 자동보총을 들었고,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신형 위장무늬전투복을 입었으며, 5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탄조끼를 입었다. 

 

그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열병종대 전반부는 투명한 얼굴가리개(면갑)가 부착된 방탄모를 머리에 썼고, 검은색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멨고, 열병종대 후반부는 보안경이 부착된 방탄모를 머리에 썼고, 구명조끼를 입었고, 방수야전배낭을 어깨에 멨다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투명한 얼굴가리개가 부착된 방탄모를 쓴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는 공병정찰조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안경이 부착된 방탄모를 쓰고, 구명조끼를 입은 전투원들은 전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고, 강이나 하천에 부교를 설치하는 공병도하조다.   

 

그렇다면 공병정찰조가 어깨에 멘,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은 무엇이며, 공병도하조가 어깨에 멘 방수야전배낭은 또 무엇인가?

 

그 야전배낭에 얽힌 궁금증을 풀려면, 2017년 1월 27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 도하공격전술연습에 관한 언론보도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그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도하공격전술연습을 현지에서 지도하면서, “공병정찰기재의 현대화, 무인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데 대한 문제”를 제시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화되고, 무인화된 정찰기재로 공병정찰조를 장비시킬 과업을 제시한 것이다. 그 과업을 받은 조선국방과학연구원 산하 공병연구소가 기술적 난제를 자력으로 극복하면서 연구, 개발한 첨단정찰기재가 바로 접시형 물체가 달린 특수야전배낭이다. 접시형 물체는 안테나이므로, 그것이 달린 특수야전배낭 속에는 무인정찰기 또는 무인로봇을 조종하는 전자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공병정찰조는 적진 상공에 무인정찰기를 은밀히 침투시켜 적정을 정찰하거나 적진에 무인로봇을 침투시켜 무인총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날 열병식에 참가한 공병도하조가 어깨에 멘 방수야전배낭 속에는 적진에 설치된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는 고성능 폭약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공병도하조는 적진에 침투하여 고성능 폭약으로 각종 차단물을 폭파하고 부교를 부설하는 것이다. 

 

5년 전에 삽자루를 손에 들고 상륙연습에 참가했던 공병정찰조가 5년 뒤에는 미래전을 수행할 최신형 전자장비를 어깨에 메고 열병식에 나타났으니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4. 고속기동군의 비대칭전법과 속결전씨나리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으면, 동서로 24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이 조국강토를 갈라놓은 가슴 아픈 모습이 보인다.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으로 구분되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은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각각 배치했다. 그런 한국군의 배후에는 태평양을 건너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한 미국군이 상시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쟁이 언제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정전상태에서 그처럼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동원하여 첨예하게, 그리고 그처럼 오랜 기간 동안 대치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군사분계선 인접지대밖에 없다. 조미협상과 남북협상이 모두 중단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사라진 지금, 우리나라 안팎에 조성된 긴장된 정세는 바로 그 지대에서 전쟁이 재발할 위험이 차츰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을 집필한 동기는 그런 정세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각각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군사분계선 중앙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한국군 제7기동군단은 중부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할 기세로 배치되었고, 조선인민군 땅크군단과 기계화군단도 중부전선을 돌파하여 남진할 기세로 배치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경기도 파주, 동두천, 연천에서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인제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모양의 작전지대에서 최대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6.25전쟁 시기에도 바로 그 지대에서 최대 격전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은 한국군과 다르다.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이 갖지 못한 강점과 특징을 가졌는데, 그것이 바로 비대칭전법이다. 남측에서는 비대칭전법이라 하고, 북측에서는 주체전법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전법이란 적진의 가장 약한 작전지대에 불의의 공격을 집중하여 방어선을 신속히 무너뜨리고 고속기동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비대칭전법에 따라 공격을 집중하여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고속기동전에 돌입하게 될 작전지대, 다시 말해서 한국군 방어선에서 가장 약한 작전지대는 어디일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가장 약한 작전지대는 쌍방의 방대한 무력이 대치한 군사분계선 중앙부에서 벗어난 익측지대다. 익측지대 두 군데가 보인다. 군사분계선 서단에 있는 김포반도와 군사분계선 동단에 있는 강원도 해안지대가 익측지대다. 

 

그러면 조선인민군이 익측지대에서 비대칭전법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예상해보자. 전시에 익측지대에서 비대칭전법을 수행할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는 고속기동군이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려단, 방사포려단,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되는데, 화력타격력, 장갑방호력, 고속기동력에서 가히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기동군은 익측지대에서 어떤 비대칭전법을 수행할 것인가?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개성시 개풍구역에서 한강합수부(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수역)를 도하하여 김포반도에 상륙한 다음, 인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남진하는 고속기동전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고속기동전씨나리오가 근거 없는 전쟁소설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아래에 서술된 내용이 말해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한강합수부를 도하하여 김포반도에 상륙하려면, 다음과 같은 작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1) 조선인민군 공병정찰조가 김포반도에 침투하여 그 지역을 방어하는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의 움직임을 정찰하게 된다. 공병정찰조가 김포반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한다는 말은 잠수복을 입은 공병정찰조가 어둠이 깔린 한강합수부에서 수중으로 침투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식의 수중침투는 옛날이야기다. 공병정찰조는 한강합수부 강바닥 아래 깊은 곳에 건설된 하저갱도를 타고 김포반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다. 개성 인근에서 한강합수부를 건너 김포반도까지 이어지는 하저갱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980년 6월에 월남한 탈북자의 진술을 담은 <월간조선> 1992년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저갱도를 통해 김포반도 곳곳에 침투한 공병정찰조는 무인정찰기를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의 머리 위로 날려 그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정찰영상을 조선인민군 전선지휘부에 실시간으로 전송하게 된다.       

 

2) 실시간 정찰정보를 받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와 항공군 비행대는 즉시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에 대한 정밀타격을 개시하게 된다.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가장 먼저 공격할 전투단위는 조선인민군에서 최강 포병부대로 알려진 독립포병려단이다. 독립포병려단은 5개 방사포대대로 편성되었다. 1개 방사포대대는 3개 방사포중대로 편성되었는데, 1개 방사포중대가 운용하는 방사포는 9문이다. 그러므로 독립포병려단에는 방사포 135문이 배치된 것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독립포병려단 3개를 동원하여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공격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이것은 대구경방사포 405문이 상상을 초월한 화력타격을 퍼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경방사포의 집중타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은 황해남도 태탄군에 있는 태탄비행장에서 이륙한 수호이(Sukhoi)-25 지상공격기, 무장헬기, 습격기의 순차적인 파상공습을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인민군 독립포병련대가 한국군 해병대 제2사단을 정밀조준하여 대구경방사포를 사격하는 순간,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한미련합군 공군기지들과 방공기지들을 정밀조준하여 조종방사포를 사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련합군 공군기지들과 방공기지들은 조종방사포 공격을 받고 30분 만에 전부 파괴될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들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공습작전을 벌이게 된다.  

 

3) 전시에 조선인민군 공병도하조는 한강합수부에 도하구역을 확보하고, 부교를 설치하게 된다.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려단, 방사포려단,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부교도하, 잠수도하, 수상도하로 한강합수부를 신속히 건너 김포반도와 인천을 점령하게 된다. 고속기동군은 인천에서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로 진격하게 된다. 

 

4)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고속도로를 타고 매우 빠른 진격속도로 기동전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전시에 수많은 차량들이 밀려나와 고속도로가 꽉 막히면, 운전자와 탑승자들이 자기 차량을 버리고 떠나버리게 된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버려진 차량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진격하려면, 그 차량들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도로정비작전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전시에 도로정비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전투단위를 창설했으니, 그것이 바로 이름도 생소한 도로군단이다. 

 

2017년 1월 11일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16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2개 공병군단을 증설했는데, 그 중에서 1개 공병군단이 도로군단이다.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은 도로건설부대가 아니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전시도로정비작전을 수행하는 공병부대다. 도로군단의 존재는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날 열병식에 20번째로 등장한 열병종대는 주철희 륙군소장이 지휘하는 도로군단 소속 공병들이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고속도로에 버려진 차량들을 밖으로 밀어내며 고속기동군의 진격로를 열어놓게 된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17년 1월 27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조선인민군 땅크장갑보병련대 겨울철도하공격전술연습의 한 장면이다. 근위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 제1련대가 주력부대로 이 연습에 참가하였다. 도하공격전술연습은 공병정찰조가 가상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정찰하고, 가상적진을 불의에 기습점령하고 종심으로 이동하고, 화력타격과 공습타격으로 가상적진의 거점들을 파괴하고, 공병도하조가 도하구역의 얼음을 폭파하여 부교를 설치하고, 땅크와 장갑차들이부교로 도하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위의 사진은 공병도하조가 설치한 부교 위를 장갑차들이 건너는 장면이다. 수륙량용도하차량은 부교로 도하하지 않고 수상도하를했고, 땅크와 수륙량용장갑차도 부교로 도하하지 않고 잠수도하를 했다. 부교도하, 수상도하, 잠수도하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도하해야 더 많은 무장장비와 전투병력이 신속히 도하할 수 있으며, 도하장비가 경량화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강원도 고성군을 방어하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 방어선을 돌파하고, 속초를 점령한 다음 곧바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진격하는 고속기동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들의 고속기동전씨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인민군 제1군단이 강원도 고성군을 방어하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을 전방에서 공격하는 동안, 조선인민군 산악보병사단은 한국군 제22보병사단 후방 산악지대에 진출하고, 조선인민군 륙전대는 한국군 제22보병사단 후방 해안지대에 상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은 포위망에 들어갈 것이다. 원래 한국군 제22보병사단은 군기가 해이하여 경계작전실패사건을 주기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약골부대이므로, 조선인민군의 포위공격을 받으면 몇 시간 견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 땅크사단, 기계화사단, 자행포련대, 방사포련대, 차량화보병려단으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은 한국군 제22보병사단 방어선이 무너진 동부전선 해안지대로 진격하여 속초를 점령하게 된다. 고속기동군은 속초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하게 된다. 서해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동해고속도로에서도 조선인민군 도로군단이 고속기동군의 진격로를 열어주게 된다. 

 

목포를 점령한 고속기동군과 부산을 점령한 고속기동군은 각각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우회진격하여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경계선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속기동전을 완료한 조선인민군은 동해, 서해, 남해의 해안지대를 따라 남측 전역을 포위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법은 주력부대가 전선중앙에서 남진하는 동안, 익측의 고속기동군이 동부해안지대와 서부해안지대에서 각각 진격하는 전법이다. 

 

조선인민군 고속기동군이 동해, 서해, 남해 해안지대에서 기동전을 종료하는 것과 함께 내륙에서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전략갱도를 타고 지하로 침투하고, 수송기와 습격기와 헬기를 타고 공중으로 침투하여 서울, 춘천, 대전, 광주,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들을 신속히 점령하게 된다. 시가전을 거의 하지 않고 신속히 점령할 것이므로 무혈입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쟁피해를 최소화하고, 개전 72시간 만에 신속히 결속되는 초단기속결전은 그렇게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1/04/21

자해의 불뭉치 들고 대만해협 화약고에 다가서는 미국

 [한호석의 개벽예감](440)

자주시보 2021년 04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바이든, 미국 국방부에 임시특별기구 설치했다

2. 차츰 더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력대치 

3. 대만해협위기가 대만통일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까닭

4. 미국 전략사령부가 예상한 조중미 3자전쟁씨나리오

 

 

1. 바이든, 미국 국방부에 임시특별기구 설치했다

 

2021년 4월 14일 미국 연방상원 정보위원회는 ‘세계적 범위의 위협(Worldwide Threats)’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청문회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미국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에이브릴 헤인스(Avril D. Haines)는 지금 중국이 여러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중국문제를 “비할 바 없는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동석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크리스토퍼 뤠이(Christopher A. Wray)는 중국보다 더 심각한 위협을 미국에 안겨주는 나라는 없다고 하면서, 연방수사국이 중국 정부와 관련된 혐의가 있는 2,000건이 넘는 사건을 내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중국위협론이 거론되기 며칠 전인 2021년 4월 9일 미국 국가정보국장실은 ‘미국 정보계의 연간위협평가서(Annual Treat Assessment of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이 평가서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들이 중국, 로씨야, 이란 조선이라고 지목하면서, 특히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보았다. 평가서에서 그들은 로씨야, 이란, 조선이 각각 ‘도발적인 행동’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서술한 데 비해, 중국은 ‘세계적인 강국 지위를 추구’함으로써 미국을 더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서술했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실이 위협평가서에서 서술한 것처럼, 지금 중국은 전방위적 도전으로 미국의 세계지배체제를 뒤흔들고 있으며, 미국은 전대미문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백악관은 중국의 도전과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다.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그에 대한 대책을 서둘렀고, 2021년 4월 16일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첫 외국정상으로 백악관에 초청하여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도전과 위협에 어떻게 공동으로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2021년 2월 10일 미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로이드 오스틴(Lloyd J. Austin III) 국방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1) 대중국군사전략을 검토할 중국문제실무단(task force)을 미국 국방부 산하 임시기구로 설치할 것. 

 

2) 미국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방장관실, 각 전투사령부들, 국가정보기관에서 차출한 15명 전문관료들로 중국문제실무단을 구성하고, 오스틴 국방장관의 특별보좌관 엘리 래트너(Ely S. Ratner)를 책임자로 임명할 것. 

 

3) 중국문제실무단은 경제문제, 정치문제, 외교문제를 담당한 연방정부기관들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미중관계에 제기된 전략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4개월 안에 정책건의안을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 

 

중국문제실무단이 2021년 2월 중순으로부터 4개월 안에 정책건의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5월 말에서 6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정책건의안을 완성할 것이다. 이런 추진일정을 보면, 중국문제실무단이 정책건의안을 작성하는 작업은 2021년 4월 하순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위와 같은 지시를 내리기 하루 전인 2021년 2월 9일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제9항모전투단과 항공모함 니미츠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제11항모전투단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다층적 군사훈련’을 진행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전략을 중심에 두고 중국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 그에 따라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정치대결과 무력도발을 계속 감행하면서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21년 2월 1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함께 회의실로 걸어가는 장면이다. 그날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문제실무단을 국방부 산하 임시기구로 설치할 것을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 중국문제실무단은 미중관계에 제기된 전략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4개월 안에 정책건의안을 작성하게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된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는 정치대결과 무력도발을 계속 감행하면서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2. 차츰 더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력대치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력대치상태는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아래에 서술한 상황일지는 2021년 3월 1일 이후 미국과 중국의 무력대치가 차츰 더 격화되어온 심각한 양상을 보여준다.   

 

3월 1일 

중국인민해방군은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가상적인 적국 함대와 교전하는 실탄사격훈련을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실탄사격훈련은 2~3일 동안 계속되었다. 

 

3월 7일 

미국군 무인정찰기가 사상 처음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출동하여 정찰비행을 했다. 미국군 무인정찰기의 해상정찰비행은 전시에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함대를 공격하는 작전을 준비하기 위한 정찰활동으로 보인다. 무인정찰기를 출동시켜 적국 함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반함선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다.   

 

3월 15일 

중국인민해방군 무인정찰기가 사상 처음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출동하여 정찰비행을 했다. 중국은 미국군 무인정찰기의 출동에 대응하여 이날 자국의 무인정찰기를 같은 해역 상공에 출동시켰다. 그러자 미국은 정찰비행강도를 높이면서 중국을 더 심하게 자극했다.  

 

3월 22일 

미국군 정찰기 RC-135U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중국 광둥성(廣東省)과 푸젠성(福建省) 인근의 영해선으로부터 47km 떨어진 상공까지 접근하여 정찰비행을 했다. RC-135U는 적국 레이더가 발신하는 전파를 탐지한다. 이전에 미국군 정찰기는 중국 본토 영해선으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상공까지만 접근하여 정찰비행을 해왔는데, 그날은 47km 떨어진 상공까지 바짝 접근하여 도발적인 정찰비행을 감행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미국군 정찰기가 중국 광둥성과 푸젠성에 있는 공군기지들과 방공기지들의 레이더전파망을 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3월 26일 

미국의 도발적인 정찰비행에서 심한 자극을 받은 중국은 대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공중타격전을 연습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작전기 20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 대만 남부지역을 동남서 3면에서 포위하는 공중타격전을 연습한 것이다. 각종 작전기 20대가 한꺼번에 대만 해역으로 출동한 것은 당시로서는 최다 기록을 세운 것이다.  

 

3월 27일 

주일미해군 제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 커티스윌버가 동중국해에 출동했다.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9항모전투단이 인디아 해군 함선들과 함께 인디아양 동쪽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해상합동훈련을 진행했다. 

 

3월 29일 

미국-인디아 해상합동훈련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중국인민해방군 작전기 10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출동시켰다. 

 

3월 30일 

주일미해군 제7함대 지휘함인 블루리지호와 일본해상자위대 미사일구축함 곤고호가 동중국해에서 해상합동훈련을 진행했다. 그로써 미국은 미국-인디아 해상합동훈련과 미국-일본 해상합동훈련을 연속적으로 벌이며 중국을 심하게 자극한 것이다.

 

4월 3일 

주일미해군 제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 머스틴호가 중국 저장성(浙江省) 앞바다 저우산(舟山)군도에서 50km 떨어진 해역까지 접근했고, 그런 도발적 행동에 대응하여 중국은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동중국해로 출동시켰다. 

 

4월 5일부터 7일까지 

미국군, 일본군, 오스트레일리아군, 인디아군이 프랑스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인디아양 동쪽 해상에서 다국적 해상합동훈련을 진행하여 중국을 심히 자극했다. 

 

4월 5일 

미국의 주도로 진행된 다국적 해상합동훈련에서 자극을 받은 중국은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대만 동쪽 해역에 출동시켜 해상기동훈련을 했고, 작전기 15대를 대만 남부 방공식별구역에 출동시켰다. 

 

4월 7일 

주일미해군 제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 존 맥케인호가 대만해협을 통과하여 남하했다. 

 

4월 9일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9항모전투단은 40,000t급 상륙강습함 메이킨 아일랜드호와 함께 남중국해에 출동했고, 그런 도발적인 행동에 대응하여 중국은 작전기 11대를 대만 남부 방공식별구역에 출동시켰다. 

 

4월 10일 

중국은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남중국해에 출동시켰다. 그로써 중국 항모전투단과 미국 항모전투단이 남중국해에서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4월 12일 

중국인민해방군 작전기 25대가 대만 남부 방공식별구역에 출동했다. 각종 작전기 25대가 한꺼번에 대만 인근 해역에 출동한 것은 사상 최다출동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위에 서술한 상황일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최근 대만 인근 해역과 남중국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출동하는 중국인민해방군과 미국군은 출동회수를 차츰 증가시키고, 군사장비수량을 차츰 증가시키고, 상호접근거리를 차츰 더 가깝게 줄이는 첨예한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양측이 우발적 충돌을 일으키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전쟁을 불사하는 첨예한 대결양상이 벌어진 2021년 4월 4일 미국 해군 정보실은 홈페이지에 이상한 사진을 실었다. 그 사진은 주일미해군 제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 머스틴호 함장 로벗 브릭스(Robert J. Briggs)와 부함장 리처드 슬라이(Richard D. Slye)가 각각 방역마스크를 착용한 채 머스틴호 함상에서 부근을 지나가는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멀건이 바라보는 장면이다. 회전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함장은 두 다리를 꼬아 앞의 난간에 올려놓았고, 부함장은 그 곁에 서 있는 장면이다. 만일 함장과 부함장의 손에 커피잔이 들렸더라면, 한가하게 휴가를 보내는 유람선 여행객을 찍은 장면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21년 4월 4일 미국 해군 정보실이 홈페이지에 실은 사진이다.주일미해군 제7함대 미사일구축함 머스틴호 함장과 부함장이 함상에서 부근을 지나가는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멀건이 바라보는 장면이다. 함장과 부함장은 마땅히 조타실 안에서 작전통제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함상관측병 배정석에서 쌍안경을 목에 걸고 중국 항공모함을 멀건이 구경한 것은 의도적인 연출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2020년 6월 4일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미국 해군 미사일구축함 럿셀호 조타실에서 해군 소위가 쌍안경으로 전방을 관측하는 장면이다. 2021년 4월 3일 상하이 앞바다에 살짝 들어갔다가 필리핀해 서북해역으로 도망쳐나온 머스킨호는 이튿날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으로부터 50km 이상 떨어진, 함포사거리 밖에서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감시하고 있었다. 문제의 사진은 바로 그런 정황 속에서 연출된장면을 담은 것이다.  


미국 해군 정보실이 그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뜨리자,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르는 문외한들은 용맹한 미국 해군이 중국 항공모함을 깔보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벅적 고아댔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다르다. 

 

문제의 사진은 머스틴호에 탑승한 미국 해군 정보실 소속 3급 대중통신전문가(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아서 로즌(Arthur Rosen)이 촬영한 것이다. 해군 정보실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는 미국 해군이 막강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촬영하여 대외선전을 하는 것이다. 그런 임무를 맡은 대중통신전문가가 촬영했으므로, 문제의 사진도 당연히 미군 해군이 막강한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장면을 찍은 것이다. 그런데 아서 로즌은 해군에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 3급 대중통신전문가여서, 중학교 사진반 학생처럼 매우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문제의 사진은 머스틴호가 동중국해에서 벗어나 필리핀해를 항해하고 있었던 2021년 4월 4일에 촬영되었는데, 촬영시각은 당일 오전 8시 22분 58초다. 그보다 하루 앞선 2021년 4월 3일 머스틴호는 중국 저장성 앞바다 저우산군도에서 50km 떨어진 근접해역까지 들어갔고, 그런 도발적인 행동에 대응하여 중국은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동중국해로 출동시켰다. 상하이(上海) 남동쪽 앞바다에 있는 저우산군도에서 필리핀해 주변부 북서해역까지 직선거리는 800km이고, 머스틴호의 최고항해속도는 시간당 56km다. 그러므로 머스틴호는 저우산군도 앞바다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중국 해군과 대치한 게 아니라, 저우산군도 앞바다를 살짝 스쳐가면서 전속력으로 그곳을 벗어나 안전해역인 필리핀해 북서해역으로 달아나는 겁쟁이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이 대만 동쪽 해역으로 접근하기 위해 필리핀해 북서해역을 지나는 도중에 그곳으로 달아난 머스킨호와 조우하였다. 조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머스킨호가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으로부터 50km 이상 떨어진, 함포사거리 밖에서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랴오닝호 항모전투단을 감시하고 있었다. 문제의 사진은 바로 그런 정황 속에서 촬영된 것이다.    

 

2) 문제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스틴호 함장은 쌍안경을 목에 걸고, 함상관측병 배정석에 나가 있는 모습이다. 함장과 부함장은 마땅히 조타실 안에서 작전통제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함상관측병 배정석으로 나가서 중국 항공모함을 멀건이 구경한 것이야말로 의도적인 연출장면이다. 더욱이 항모전투단이 머스틴호에 근접한 거리에서 항해하는 시각에 맞춰 문제의 사진을 찍었다. 중학교 사진반 학생이 연출한 것처럼 너무 어색한 장면이다. 좀 더 그럴듯하게 연출하려면, 함상관측병 배정석에 나가 회전의자에 앉아 멀건이 구경하는 모습이 아니라, 조타실 안에서 쌍안경을 손에 틀어쥐고 중국 항공모함을 노려보는 모습으로 연출했어야 한다. 만일 문제의 사진이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면, 미국 해군사령부는 작전통제임무를 소홀히 한 함장과 부함장을 군기해이로 처벌해야 하며, 군기가 빠진 지휘관들의 모습을 담은 수치스러운 사진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대만해협위기가 대만통일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까닭

 

중국이 대만을 해방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지난 72년의 세월을 지내온 근본원인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성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준비가 부족했다는 말은 두 가지 작전력량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는 미국 항모타격단의 대만접근을 먼 거리에서 차단하는 강력한 작전력량, 그리고 대만을 사면에서 전격 포위하고 대만해안에 상륙하는 강력한 작전력량을 마련하기까지 70여년이 걸린 것이다. 

 

중국이 그런 두 가지 작전력량을 갖지 못하였음을 보여준 사례는 제3차 대만해협위기다. 제3차 대만해협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는 1996년 3월 8일부터 15일까지다. 대만통일전쟁에 필요한 두 가지 작전력량을 확보하는 절실한 과제를 중국에 가르쳐준 제3차 대만해협위기를 되돌아보자.    

 

1996년 1월에 선거로 집권한 리덩후이(李登輝)를 우두머리로 하는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은 미국의 사촉을 받으며 국가분렬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리덩후이는 일제의 대만강점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일본군 육군 소위로 임명되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가담한 친일파였으며, 일제가 패망한 뒤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친미파로 변신한 대표적인 반중인사였다. 그런 그가 정권을 잡았으니, 국가분렬세력이 더욱 광분하게 되었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리덩후이의 집권으로 기세가 등등해져 광분하자 중국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중국은 국가분렬세력의 준동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중국인민해방군은 ‘해협 961’이라는 작전명칭으로 불린 대규모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군사작전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해협 961’ 군사작전은 1996년 2월 4일 대만과 마주한 해안지대에 150,000명의 전투병력과 방대한 규모의 군사장비를 공격형으로 전진배치하는 포진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그처럼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대만과 마주한 해안지대에 집결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미국군 정찰위성은 그들의 동향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 

 

대만해협에 전운이 감돌던 1996년 3월 8일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은 둥펑(東風)-15 탄도미사일 3발을 대만 앞바다로 발사했다. 3발을 연속발사한 위력시위사격이었다. 제1탄은 대만 남부의 주요항구도시 가오슝(高雄) 앞바다에 떨어졌다. 제2탄은 리덩후이가 있는 타이베이(臺北) 상공을 넘어가 타이베이에 인접한 대만 북부의 주요항구도시 지룽(基隆)에서 30km 떨어진 앞바다에 떨어졌다. 제3탄은 또 다시 가오슝 앞바다에 떨어졌다. 

 

둥펑-15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군 지하전쟁지휘소와 공군기지를 파괴할 때 사용하는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2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고 900km를 날아가며, 타격정밀도는 15~20m에 이른다. 만일 중국이 핵탄두를 장착한 둥펑-15를 대만 상공으로 쏘아올려 30km 고도에서 터뜨리면, 엄청난 핵전자기파(NEMP)가 대만 전역을 휩쓸며 모든 반도체와 전기장치를 파손시키고, 그에 따라 대만은 미증유의 마비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정은 중국이 둥펑-15를 연속발사하는 선제타격으로 대만의 전쟁수행력을 30분 만에 제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연속발사한 둥펑-15 탄도미사일 3발이 대만 앞바다에 떨어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은 전쟁공포에 빠져들었다. 해외로 대피하려는 엄청난 인파가 타오위안국제공항과 가오슝국제공항으로 밀려들었고, 대만의 고속도로는 안전지대로 대피하려는 엄청난 차량대렬로 마비되었다. 공포와 혼란은 대만의 전쟁의지를 꺾어놓았다. 대만군은 인명손실이나 군사시설피폭 같은 물리적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는데도 정신적 공황에 빠진 대만주민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미사일 3발로 대만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린 중국은 1996년 3월 12일 대만과 마주한 둥산다오(東山島)와 난아오다오(南澳島)에서 실탄을 사용하는 기습작전을 연습했다. 또한 중국은 1996년 3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 핑탄해협(平潭海峽)과 대만에서 멀리 떨어진 하이난성(海南省)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육해공군무력을 동원하여 대만상륙을 상정한 실전급 상륙강습훈련을 각각 진행했다. 잠수함대, 구축함대, 수호이(Sukhoi)-27 전투기편대가 상륙강습훈련에 참가하였다. 중국이 대만에서 멀리 떨어진 하이난다오에서 상륙강습훈련을 진행한 까닭은 그 섬의 해안지형이 대만의 해안지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99년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참가한둥펑-15 탄도미사일을 촬영한 것이다. 대만해협에 전운이 감돌던 1996년 3월 8일 중국인민해방군 로켓군은 바로 그 미사일 3발을 대만 앞바다로 연속발사했다. 둥펑-15탄도미사일 3발이 대만 앞바다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은 걷잡을 수 없이전쟁공포에 빠져들었다. 공포와 혼란은 대만의 전쟁의지를 꺾어놓았다. 대만군은 인명손실이나 군사시설피폭 같은 물리적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는데도 정신적 공황에 빠진대만주민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중국이 이처럼 대만통일전쟁을 상정한 대규모 실전훈련을 전개하고 있었던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1998년 6월 21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장문의 보도기사가 당시 클린턴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전해준다.  

 

대만 인근 해역에 일찌감치 들어가 중국인민해방군의 동향을 감시하던 미국 공군 RC-135 정찰기와 미국 해군 9,800t급 순양함 벙커힐호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발사한 둥펑-15 탄도미사일 3발이 대만 앞바다로 날아가는 비행궤적을 추적한 다음, 미국 합참본부 작전상황실에 즉각 보고했다. 1996년 3월 8일 아침, 당시 미국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는 국방장관 회의실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윌리엄 페리를 위시하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레이크(William Anthony K. Lake),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Warren M. Christopher), 중앙정보국장 존 도이취(John M. Deutch), 합참의장 존 섈리캐쉬빌리(John M. Shalikashivili)가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했다. 합참의장 섈리캐쉬빌리가 대만해협의 군사동향에 관한 정보를 설명했다. 

 

회의에서 그들 5인방은 두 가지 대응조치를 결정했다. 대만에서 320km 떨어진 해역에 이미 배치된, 주일미해군 제7함대 소속 인디펜던스호 항모타격단을 대만 동쪽 앞바다로 진입시키기로 결정했고,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항공모함 니미츠호 항모타격단을 전속력으로 항해하게 하여 대만 서쪽 대만해협에 진입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두 개의 항모타격단을 대만의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에 각각 출동시켜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예방적으로 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 항모타격단이 대만해역에 출동한 것은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을 금지한 유엔헌장 제2조 7항을 위반한 불법적인 군사행동이었고, 분노한 중국을 더욱 자극하여 전면전을 일으킬 수 있는 무력도발이었다. 

 

미국의 무력도발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설 중국이 아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미국의 두 개 항모타격단이 대만의 동서쪽 바다에 각각 진입한 상황에서 중국은 대규모 실탄사격훈련과 대규모 강습상륙훈련을 연속 진행하면서 미국의 무력도발에 정면으로 맞섰다.   

 

1998년 6월 21일 <워싱턴포스트> 보도기사에 따르면, 1996년 3월 8일 아침 미국 국방장관 회의실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합참의장 섈리캐쉬빌리는 당시 중국 해군의 전투력이 대만에 상륙할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중국의 실전훈련이 대만통일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회의참석자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1996년 당시 중국은 대만해방에 필요한 두 종의 전략자산을 아직 갖지 못했다. 대만상륙작전을 수행할 항공모함과 상륙강습함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4. 미국 전략사령부가 예상한 3자전쟁씨나리오

 

그로부터 어느덧 25년 세월이 흘렀다. 리덩후이가 유학했던 바로 그 미국 대학교(코넬대학교)에서 유학하고, 친미반중세력의 대표자로 등장한 대만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은 25년 전 리덩후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분렬책동에 광분하는 중이다. 차이잉원이 이끄는 국가분렬세력의 준동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중국은 그들의 준동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중이다. 

 

주목되는 것은, 제3차 대만해협위기에서 군사적 교훈을 찾은 중국이 지난 25년 동안 자기의 군사적 장점을 더욱 보강, 확대하고, 자기의 군사적 결점을 극복, 해소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이다. 그 노력은 다음과 같은 성과를 가져왔다. 

 

1) 1958년 8월 23일 제2차 대만해협위기가 조성되었던 때, 미국은 10~15킬로톤급 전술핵폭탄을 탑재한 함재기를 실은 항공모함을 중국 푸젠성 샤먼(廈門) 앞바다로 들이밀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미국 군부의 핵공격 건의를 수락하지 않았지만, 제2차 대만해협위기를 전후로 하여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핵공격계획을 수립했고, 그에 따라 괌(Guam), 대만, 일본 오끼나와, 필리핀, 그리고 한국에 각종 전술핵탄을 다량배치하고 핵공격준비를 완료했다. 이런 경험은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미국의 핵공격을 예방할 핵억제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는데, 1996년 제3차 대만해협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할 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했다.    

 

2) 중국은 2개 항모전투단을 보유했다. 중국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핵추진 잠수함 2척, 구축함 4척, 호위함 12척, 보급함 1척으로 편성되었다. 그에 비해, 미국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핵추진 잠수함 2척, 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보급함 1척으로 편성되었다. 무력편성을 비교하면, 중국 항모타격단이 미국 항모타격단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2개 항모전투단은 전시에 대만을 포위하고, 미국 항모전투단의 대만접근을 차단할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중국은 2개 항모전투단을 보유했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항공모함은 랴오닝호다. 중국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핵추진 잠수함 2척, 구축함 4척, 호위함 12척,보급함 1척으로 편성되었다. 미국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핵추진 잠수함 2척, 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보급함 1척으로 편성되었다. 무력편성을 비교하면, 중국 항모타격단이 미국 항모타격단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통일전쟁이 일어나면,중국의 2개 항모전투단은 대만을 포위하고, 미국 항모전투단의 대만접근을 차단할 것이다.  ©

 

3) 2021년 3월 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보도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군력을 보유했다고 한다. 미국 해군 정보실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255척이었던 중국의 군함은 2020년 말까지 360척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미국의 군함건조기간은 3년인데, 중국의 군함건조기간은 6개월이므로, 군함건조속도에서 미국은 중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해군력은 지난 20년 동안 3배나 장성했는데, 양적 증대만이 아니라 질적 발전도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 해군이 2020년에 실전배치한 13,000t급 055형 구축함은 미국 해군이 보유한 9,800t급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보다 화력타격력이 더 강하며, 스텔스기능, 미사일요격능력, 전자전능력, 대잠수함작전능력을 두루 갖췄다. 중국 해군력이 이처럼 급속히 증강된 것은 대만통일전쟁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요인이다. 

 

4) 중국은 대만상륙에 필요한 각종 상륙함선을 다음과 같이 보유했다.

- 25,000t급 071형 상륙수송함 8척 

- 30,000t급 075형 강습상륙함 3척

- 4,000t급 072형 상륙함 3척 

- 4,800t급 072A형 상륙함 15척 (이 상륙함은 기존 130mm 함포를 떼어내고, 200mm 전자가속포[railgun]를 장착했다. 최첨단 무기인 전자가속포를 실전배치한 나라는 중국과 미국밖에 없다.)  

- 공기부양상륙정 50척

- 6,000t급 815형 전자정찰선 8척

 

5) 중국은 대만상륙전에 참가할 륙전대를 대폭 증강했다. 중국 륙전대는 지난 시기 2개 여단에 10,000명이었는데, 오늘에는 6개 독립려단에 35,000명으로 늘었다. 중국 륙전대는 100대의 작전헬기와 무인항공기를 장비했으며, 항공병려단과 공중돌격대대도 새로 편성했다. 중국의 상륙작전능력이 이처럼 증강된 것은 대만상륙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6) 제3차 대만해협위기에서 중국이 절감한 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가로막은 미국 항모전투단을 격침시킬 결정적인 타격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대만 인근 해역으로 접근하는 미국 항모전투단을 격침할 타격수단과 타격전법을 개발하는 데 힘썼다. 중국이 항모격침무기로 개발한 것은 사거리가 4,000km인 둥펑-26B 반함선탄도미사일과 사거리가 1,800km인 둥펑-21D 반함선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은 2020년 8월 이 두 종의 지대함미사일을 시험발사하여 수 천 km 떨어진 남중국해에서 이동하는 표적선박을 한 방에 격침시키는 놀라운 타격력을 과시했다. 이 반함선탄도미사일은 구축함에 장착되어 미국 항모전투단의 대만접근을 차단하게 된다. 

 

2008년 5월 13일 미국의 핵무력분석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은 ‘대만위기 속의 핵무기(Nukes in the Taiwan Crisi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전략사령부가 1994년에 작성한 2개의 중국전쟁씨나리오다. 2개의 중국전쟁씨나리오 중에서 첫 번째 씨나리오는 미국이 중국과 조선을 동시에 상대하여 싸우는 조중미전쟁씨나리오이고, 두 번째 씨나리오는 미국이 중국만을 상대로 싸우는 중미전쟁씨나리오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중국과 조선을 동시에 상대하여 싸우는 3자전쟁씨나리오가 미국 전략사령부에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중미 전쟁씨나리오를 조선과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선의 조국통일전쟁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나는 2개 전쟁 씨나리오로 보인다. 

 

미국 전략사령부가 작성한 조중미 3자전쟁씨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자전쟁씨나리오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에게 “적합하게 계획된 대응(adaptively planned response against NK)을 하고, 중국에게 대규모 공격이 아닌(not a full scale attack against China) 제한적인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3자전쟁씨나리오에 따르면,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중미 3자전쟁에서 전술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시 말해서, 미국 전략사령부는 조중미 3자전쟁에서 조선과 중국에게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재래식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미국 전략사령부가 조중미 3자전쟁에서 사용할 것으로 예정한 재래식 무기는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토마호크순항미사일이다.  

 

요즈음 중국과 미국이 대만문제를 놓고 무력대치국면을 차츰 격화시켜가고 있는 군사상황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조선의 조국통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뚜렷한 징후로 보인다. 미국 전략사령부도 조중미 3자전쟁씨나리오에서 그런 징후를 예상한 바 있다. 

2021/04/14

정면충돌 앞두고 있는 두 개의 조약

 [한호석의 개벽예감](439)

자주시보 2021년 04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두 개의 조약, 정면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 

2.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제3조에 대한 해석

3.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제2조에 대한 해석

 

 

1. 두 개의 조약, 정면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 

 

지금 두 개의 조약이 정면충돌을 앞두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두 조약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그 두 조약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진다.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기에 각각 체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되었고,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1961년 7월 11일에 체결되었다. 

 

미국은 6.25전쟁이 종전으로 끝나지 않고 불안정한 정전상태로 전환된 직후, 전쟁의 포연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시기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미국이 그 조약을 체결한 배경에는 정전 직후 북침전쟁을 도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깔려있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10월 30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핵무기를 다른 재래식 무기들처럼 사용하겠다고 결정했고(NSC 162/2), 1956년 11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와 안양에 핵무기를 각각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에 따라 1958년 1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주한미국군기지에 반입되었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직후, 전시핵무기사용문제를 결정하고, 주한미국군기지에 전술핵무기를 반입한 것은,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방위조약’이라는 위장명칭을 내걸었으나, 실제로는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북침전쟁을 도발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조선과 중국이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배경에는 두 가지 엄중한 사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1차 사태는 1960년 1월 19일 미국과 일본이 상호협력안보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선과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1951년 9월에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했던 미국이 1960년에 1월에 또 다시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을 체결한 것은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조선과 중국이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배경에는 미국의 북침전쟁도발위험에 대응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제2차 사태는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한국 군부의 친미극우집단이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강탈하고 4.19민중항쟁과 조국통일운동을 짓밟은 것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미국의 제국주의대결정책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반제민족해방운동을 폭력으로 짓누르고 반미민주정권을 친미극우정권으로 대체하는 극악한 양상을 드러냈는데, 1961년 5.16군사정변도 그런 사례들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 2001년 10월호에 실린 분석기사에 따르면, 1961년 여름 미국의 전쟁기획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밀한 선제핵타격계획을 작성하여 대통령 존 케네디(John F. Kennedy)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간 1961년의 정세를 조선과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은 기시 노부스께(岸 信介) 친미극우정권과 박정희 친미극우정권을 앞세워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북침전쟁도발책동을 저지, 파탄시키려는 조선과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을 추동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언젠가는 정면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으로 생각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조약이 체결된 이후 지난 68년 동안 한미관계, 조미관계,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는 오늘, 그 조약은 중미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남북관계, 조미관계, 중미관계에서 대화와 협상이 완전히 중단되고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는 오늘,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3월 18일 토니 블링큰(Anthony J. Blinken)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Lloyd J. Austin) 미국 국방장관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그들이 서울을 방문한 목적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우선주의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미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다시 중대한 관심사로 추켜세우려는 데 있었다. 그들이 서울방문 중에 발표한 한미외교-국방장관회담 공동성명에는 “양측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을 방어하고, 한미연합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호 노력할 것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되었다. 

 

다른 한편,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그 조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60년이 되었지만, 조선이 자주로선을 견지해온 것으로 하여 그 조약이 조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를테면, 지난 60년 동안 조선과 중국이 진행한 수많은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에서 그 조약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한미정상회담이나 한미고위급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반드시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데 요즈음 중미관계가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는 오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지난 60년 동안 조중관계에 매우 제한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남북관계, 조미관계, 중미관계에서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 그 조약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2021년 3월 22일 베이징에서 회동한 리룡남 중국 주재 조선대사와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련락부 부장을 통해 구두친서를 교환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시진핑 총서기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정형을 통보하면서 “조선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진지하게 연구, 분석한 데 기초하여 국방력 강화와 북남관계, 조미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립장을 토의결정한 데 대하여 심도 있게 통보하시면서,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책동에 대처하여 조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총비서의 구두친서에서 특별한 강조점은 조선이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책동에 대처하여” 중국과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에 찍혀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과 중국이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김정은 총비서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정형을 통보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하면서 “새로운 형세 하에서 조선 동지들과 손잡고 노력함으로써 중조관계를 수호하고, 훌륭히 공고히 하며, 훌륭히 발전시킬 (중략)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심각히 변화되고 있는” 국제 및 지역정세 속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를 표명했다. 시진핑 총서기의 구두친서에서 특별한 강조점은 조중관계를 수호하고, 더욱 공고히 하며, 훌륭히 발전시키는 문제에 찍혀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중관계를 수호하고, 더욱 공고히 하며, 훌륭히 발전시키는 문제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021년 3월 22일 김정은 총비서와 시진핑 총서기가 교환한 구두친서에서 조중관계를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문제를 강조한 것은 2021년 7월 11일에 맞이하게 될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0주년에 즈음하여 조중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의견교환으로 생각된다. 2021년 4월 1일 <동아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외교국방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021년 3월 18일 서울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조선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2021년 7월 11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0주년에 즈음하여 조중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는 조미관계와 중미관계에 조선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처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1953년 8월 8일 서울 경무대에서 당시 외무장관 변영태와 당시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조인하는 장면이다. 이 조약은 미국군의 남한점령을 무기한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다. 아래쪽 사진은 2015년 12월 10일 경기도 연천에 있는 한탄강에서 한국군과 미점령군이합동도하작전을 연습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도하작전은 대북방어전이 아니라 북침공격전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된 이후 68년 동안 미국군의 무기한 남한점령과 한미련합군의 북침전쟁연습을 합리화,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사용되면서, 한미관계, 남북관계, 조미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정면대결로치닫고 있는 오늘, 그 조약은 중미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반도 및동북아시아 정세는 70년 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정세격변기에 우리는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주체력량으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2.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제3조에 대한 해석

 

남북관계, 조미관계, 중미관계에서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는 오늘,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제3조가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당사국은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중략) 본 조약을 실현하고 그 목적으로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이 인용문은 영어로 작성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조항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어색한 번역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의역해야 그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이 무력공격으로 한국의 정치적 독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 미국은 한국과 협의하고, 본 조약을 실행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한국과 협의하고 합의하여 취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 조항이 미국의 자동적인 무력개입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자동적으로 무력개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가 미국의 자동적인 무력개입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다면, 제3조는 미국의 즉각적인 무력개입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다음과 같다.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합의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 상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이 인용문도 영어로 작성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조항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어색한 번역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의역해야 그 문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조선의 무력공격, 그리고 한국이 앞으로 미수복지역을 수복하는 경우에 있을 수 있는 조선의 무력공격이 미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미국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 조항이 미국의 즉각적인 무력개입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즉각적인 무력개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연방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여기서 미국 연방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전쟁선포권을 가진 미국 연방의회가 다른 나라의 전쟁에 대한 무력개입문제를 의결하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미국 연방의회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의결하면, 미국은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도 한반도 전선에 파병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전쟁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도발하여 중국을 침략했을 때, 미국 연방의회는 주전파와 불개입파로 갈라져 10년을 논쟁하다가,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주 해군기지가 일제의 공습을 받았을 때 비로소 대일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개시한 바 있다.  

 

그런데 논리적 모순이 보인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정전 직후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전략적 의도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그처럼 호전적인 미국이 남북무력충돌에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그 조약에 집어넣었으니, 모순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모순되는 행동이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주한미국군이 무기한으로 주둔하고 있고, 한국에 근 2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체류하기 때문에,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미국이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무력개입을 하는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둘째,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와 제3조는 미국이 남북무력충돌에 무력개입을 하는 문제를 규정한 조항들이므로, 미국이 단독으로 북침전쟁을 도발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무관하게 북침전쟁을 도발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던 1953년의 정세와 판이하게 다른 2021년의 정세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만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만을 수복하기 위한 통일전쟁준비를 완료하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는 중이고, 그런 사정을 간파한 미국은 강력한 무력시위로 중국의 통일전쟁의지를 가로막아보려고 광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개전하면, 미국은 대만을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중국을 공격할 것이다. 이것은 중미전쟁이 일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미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중국대륙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배치된 주한미공군 전투기들을 서해 상공으로 즉각 출동시킬 것인데, 그렇게 되면 주한미공군 전투기들과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전투기들이 서해 상공에서 치렬한 교전을 벌이게 되고, 중국인민해방군 전략군은 미사일을 연속발사하여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즉시 타격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여 한국군을 중미전쟁에 참전시킬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2021년 3월 18일 서울을 방문한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장관과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정의용 외무장관과 서욱 국방장관을 만나 2+2 회담을 진행하고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서울방문 중에 발표된 한미외교-국방장관회담 공동성명에는 "양측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을 방어하고, 한미연합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호 노력을 것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되었다. 지금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홀시했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중시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 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보다 미일상호협력안전보장조약을 훨씬 더 중시하게 되었다.  



3.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제2조에 대한 해석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서술되어 있다. 

  

“맑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또한 국가주권과 령토완정에 대한 호상존중, 호상불가침, 내정에 대한 호상불간섭, 평등과 호혜, 호상원조 및 지지의 기초 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형제적 우호협조 및 호상협조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며 량국 인민의 안전을 공동으로 보장하며 아세아와 세계평화를 유지, 공고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는 국가주권에 대한 상호존중의 원칙, 내정에 대한 상호불간섭의 원칙, 평등과 호혜의 원칙이 명시되었다. 이러한 3대 원칙은 그 조약의 제5조에 다시 명시되었다. 

 

최근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는 남북관계, 조미관계, 중미관계와 관련하여,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서 특별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제2조다.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체약 쌍방은 체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의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조선과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과 대만은 각각 주권국가가 아니라 미해방지역이므로, 위에 인용한 조항은 남북무력충돌이나 양안무력충돌 같은 내전과는 무관하고, 미국이 남북무력충돌이나 양안무력충돌에 무력개입을 감행할 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인용한 제2조에 따르면, 미국이 남북무력충돌에 무력개입을 감행하여 대규모 증원부대를 보내면, 중국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조선에 군사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힘을 다하여”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말은 중국이 한반도 전선에 파병하여 조선인민군과 함께 항미원조전쟁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북무력충돌로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 다시 말해서 남북무력충돌이 조선의 조국통일전쟁으로 전환되면, 중국은 한반도 전선에 파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이 남북내전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명시된, 내정에 대한 상호불간섭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초기에 중국은 조선에 파병을 제의했지만, 조선은 남북내전에 외국군대가 참전하는 것이 내정불간섭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중국의 파병제의를 받지 않았고, 미국이 한반도 전선에 지상군을 파병하여 남북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한 이후에 중국의 파병제의를 받아들였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조선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여 김정은국무위원장이 마련한 국빈만찬에서 담소하는 장면이다. 리설주 여사와 펑리위안 여사가 국빈만찬에 동석했다. 국빈만찬은 2019년 6월 20일 평양에 있는 목란관에서 진행되었다.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은 조선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강화, 발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1년 7월 11일 조선과 중국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조약체결 60주년에 즈음하여 조중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조선과 중국에 대한 적대행동의 강도를 높여갈수록 조선과 중국은 단결과 협력을 더욱 강화, 공고화하면서 각자 통일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려고 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시기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도, 6.25전쟁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남북무력충돌로 내전이 일어나면, 조선은 미국이 증원부대를 한반도 전선에 파병하여 무력개입을 감행하기 전에 ‘72시간 전쟁계획’에 따라 통일전쟁을 신속히 결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인민해방군을 한반도 전선에 파병하여 항미원조전쟁을 재개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의 양안무력충돌은 한반도의 남북무력충돌과 사정이 전혀 다르다. 중국과 대만의 무력충돌로 내전이 일어나면, 인민해방군은 72시간 만에 그 전쟁을 결속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언론매체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2016년 12월 7일 사설에서 인민해방군은 몇 시간이면 대만군을 궤멸시키고 대만을 돕는 미국군이 대만에 도착하기 전에 대만 전역을 장악하고 통일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한반도와 작전환경이 전혀 다른 대만해협에서 중국이 개전 이후 72시간 만에 대만통일전쟁을 신속히 결속하기는 어렵다. 기습공격과 고속기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전으로 전개될 조선의 조국통일전쟁과 달리,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은 해상포위전과 상륙전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인데, 해상포위전과 상륙전은 지상전보다 훨씬 더 힘든 작전이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개전 이후 72시간 안에 신속히 결속하지 못하면, 미국은 중국 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예상하면, 조선은 중국 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한 미국의 중국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의거하여 중미전쟁에 참전할 것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무력침공을 저지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화, 장성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고,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증진시키는 조선도 미국의 무력침공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핵억제력을 보유했다. 동북아시아의 군사상황이 이처럼 미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미국은 일본을 끌어들인 반중국련합전선을 구축하고,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적대행동의 강도를 높여갈수록 중국은 조선과의 단결과 협력을 더욱 강화, 공고화하면서 대만통일전쟁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려고 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그런데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의 양안내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하면, 조선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제2조에 의거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에 군사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중미전쟁이 벌어지면, 일본군은 미국군사령관의 작전지휘를 받으며 미국군과 합동작전을 벌일 것이지만, 조선인민군은 중국인민해방군과 합동작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중국인민해방군을 지원하는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조선은 조국통일전쟁과 함께 항미원중전쟁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이 거의 동시에 수행하게 될 조국통일전쟁과 항미원중전쟁을 통합적으로 전망해야 할 새로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21/04/07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한호석의 개벽예감](438)

자주시보 2021년 04월 0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2. 생사운명 가를 특대형 산포탄과 함화공작

3.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4.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은 허점투성이

 

 

1.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2020년 12월 3일 미국 해군연구소가 주최한 화상토론회에서 마크 밀리(Mark A. Milley)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조선과 (대치한) 상황에서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리 미국군 가족들이 피해를 많이 입을 것이다. 이것은 문제다. 하지만 미국군 전투원들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에 속하므로 문제로 되지 않는다.”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은 경기도 평택기지에 거주하는 미국군 가족들이 전시에 피해를 많이 입을 것으로 우려했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평택기지에 집중될 것임을 예상한 발언이다. 한미련합사령부가 서울 용산기지에서 평택기지로 이전되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은 한미련합군 지하전쟁지휘소가 있는 평택기지를 제1차 공격대상으로 지정해놓았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평택기지를 선제타격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평택기지에는 얼마나 많은 전투원과 비전투원들이 몰려있을까? 그 인원수는 다음과 같다.   

 

미국군 지휘관 및 전투원 - 14,500명

미국군 가족 - 11,000명

미국군 군무원 - 5,400명

한국군 전투원 - 800명

한국군 지원병력(KATUSA) - 1,600명

한국인 근로자 - 1,100명

총 34,400명 

 

위에 인용한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평택기지에 배치된 전투원들이 전시에 위험에 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 기지에 거주하는 비전투원들까지 위험에 빠지질 것이 우려된다는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은, 한미련합군에게 평택기지 방어능력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다. 미국군은 페이트리엇(Patriot)-3 지대공미사일을 장비한 제35방공포려단을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였지만, 그 지대공미사일의 전과를 보면, 미국 국방부가 실망할 만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수리아내전에서 이스라엘군이 그 지대공미사일을 사용했는데, 전투기 2대와 무인항공기 5대를 격추했고, 무인항공기 2대는 격추하지 못했다. 무인항공기 격추에 실패한 초라한 요격능력이라면,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더욱이 페이트리엇-3 지대공미사일은 컴퓨터로 탄도비행궤적을 계산하여 요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탄도비행이 아니라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을 하는 조선인민군의 신형 전술유도탄과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를 요격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전시에 한미련합군은 평택기지를 비롯한 동두천기지, 오산공군기지, 군산공군기지, 대구기지, 왜관기지 등 모든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조선인민군의 통합화력타격으로부터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화력타격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 순항미사일을 동시다발로, 파상형으로, 일제사격으로 수 천 발씩 연속발사하여 적진을 무자비하게 짓뭉갠다는 뜻이다. 

 

2) 평택기지에 배치된 전투원들이 전시에 위험에 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 기지에 있는 비전투원들까지 위험에 빠질 것이 우려된다는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은, 평택기지의 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전시에 안전지대로 긴급히 대피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자인한 것이다. 미국군은 ‘작전계획 5077’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비전투원소개작전계획에 따라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을 긴급히 대피시키는 훈련을 진행해왔다. 미국군은 오산공군기지에 집결시킨 비전투원들을 대형 수송기를 태워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일 년에 한 차례씩 진행하는데, 참여인원이 극소수인 것을 보면, 보여주기식 훈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각종 작전헬기들이 늘어서 있는 평택기지 헬기리착륙장을 촬영한 것이다. 평택기지는 미국군이 운용하는 수많은 해외기지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크고,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이 가장 현대화된 군사기지다. 평택기지의 둘레는18.5km이고, 면적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맞먹는다. 한미련합군 사령부와 지하전쟁지휘소가 평택기지에 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은 평택기지를 제1차 공격대상으로 지정해놓고, 평택기지를 공격하는 화력타격전, 포위전, 습격전, 점령전을 계속 연습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평택기지의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는 조선인민군의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받고 초토화될 것이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그 기지를 단숨에 점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생사운명 가를 특대형 산포탄과 함화공작

 

미국군 지휘부가 우려해야 할 심각한 문제는, 전시에 긴급대피통보를 받은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오산공군기지에 집결시키는 것이야말로 자멸행위로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산공군기지가 조선인민군의 제1차 공격대상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은 개전과 동시에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오산공군기지에 집중시켜 완전히 초토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좀 더 부연하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오산공군기지로 발사할 신형 전술유도탄에는 중량이 2.5t이나 되는 육중한 탄두가 장착되는데, 크기가 정구공만한 자탄(submunition) 1,000발이 그 탄두 안에 들어있다. 이런 탄두를 특대형 산포탄(cluster bomb)이라고 한다. 특대형 산포탄은 1발만 발사해도, 축구장 150개를 합친 면적에 달하는 1㎢의 넓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특대형 산포탄을 6발만 쏘면, 오산공군기지는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다. 6.25전쟁, 윁남전쟁, 이라크전쟁, 꼬쏘보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피폭사태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군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으로 대량살상만행을 저질렀지만, 조선인민군은 무차별 화력타격으로 대량살상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이 집결되어 있는 곳에 강력한 화력타격을 퍼부으면 비전투원들에게 뜻하지 않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조선인민군은 전투원만 선별적으로 살상하는 고도의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화력타격수단을 개발, 배치했다. 원래 방사포는 고도의 정밀타격기능을 지닐 필요가 없는 화력타격수단이지만, 조선국방과학원은 고심 어린 탐구 끝에 고도의 정밀타격기능을 지닌 여러 종의 대구경 조종방사포를 개발했다. 그것은 강력한 화력타격을 퍼부어도 비전투원들에게는 인명피해를 주지 않는 인도주의적 작전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적 전투원이라고 해서 마구 살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진을 전격적으로 포위하고, 군사장비를 파괴하는 것으로 적 전투원들 속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하여, 그들이 저항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함화공작을 수행하고, 투항자들을 생포하여 무장을 해제하는 특이한 전법을 쓴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에는 전 세계 어느 나라 군대도 갖지 못한 함화공작대가 편성되어 있는 것이다. 전투 중에 “총 한 방 쏘지 않고 많은 적을 투항시킬 수 있는” 함화공작의 중요성과 그 실행방법에 관한 서술은 2012년에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발행했고, <월간조선> 2013년 1월호의 보도를 통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진 ‘적군와해사업 학습제강’이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비전투원들에게 인명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별적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화력타격수단들을 사용할 것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평택기지에 있는 미국군 가족들이 막심한 인명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다. 만일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고도의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을 동시다발로 발사하여 평택기지에 있는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들만 선별적으로, 절제수술식으로 적출, 파괴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군 가족 11,000명이 거주지역 아파트 안으로 긴급히 대피하면 인명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엄청난 폭발충격이 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뒤흔들어 유리창이 모두 박살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책은 세워야 할 것이다. 

 

미국군이 정말로 우려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는, 전시에 발생하지도 않을 주한미국인 비전투원들의 인명피해가 아니라, 전시에 엄청나게 발생할 주한미국군 전투원들의 인명피해다. 이런 예상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지고 설명된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으로 평택기지의 군사시설과 군사장비를 단숨에 날려버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벼락전법이다. 벼락전법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이 장거리전략갱도를 통해 한국군 방어선 후방지대에 불시에 출현하여 평택기지를 향해 노도처럼 진격할 것이다. 그들은 평택기지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습격전을 벌여 그 기지를 순식간에 점령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폭풍전법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 함화공작대는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합화력타격의 ‘지옥불’ 속에서 살아남은 주한미국군 패잔병들을 상대로 함화공작을 할 수 없다. 두말할 나위 없이, 조선인민군의 함화공작은 한국군에게만 통하는 것이다. 평택기지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주한미국군 패잔병들은 함화공작마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항복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지만, 상황을 오판하고 저항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저항하는 패잔병보다 투항하는 패잔병이 더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군은 정신무장과는 거리가 먼 군대이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4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전쟁 중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외상후 장애스트레스(PTSD)를 앓는 미국인 제대군인들이 64만8,992명이라고 한다. 이런 놀라운 현실은 미국군이야말로 정신무장을 모르는 오합지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전시에 대피하지 못하고 군사시설 안에 남아있거나, 군사장비 곁에서 우물쭈물하는 주한미국군 전투원들은 조선인민군의 엄청난 통합화력타격을 받고 전멸할 것으로 우려된다. 주한미국군 28,500명 중에서 특히 경기도 동두천기지에 전진배치된 미국 육군 제2보병사단 제210화력려단 전투원 3,000명은 가장 먼저 전멸할 것이다. 이 전투원들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엄청난 선제타격을 가장 먼저 받게 될 것이므로, 미처 반격에 나설 틈도 없이 현재 위치에서 전멸할 것으로 보인다. 

 

개전시각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조종방사포를 숨 쉴 틈도 없이 연속발사하는 엄청난 선제타격을 퍼부을 것인데,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으로 날아오는 조종방사탄을 요격할 방어수단이 한미련합군에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열압력탄(thermobaric bomb)을 장착한 대구경 조종방사탄을 일제사격(salvo)으로 연속발사하면, 제210화력려단에 배치된 다련장로켓포(MLRS)와 지대지미사일(ATACMC)은 천지를 뒤덮은 ‘지옥불’ 속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이다. 이런 소름 끼치는 광경은 전쟁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2013년 4월 7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WND>와 단독대담을 진행한 익명의 미국군 정보장교가 예상한 바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조선인민군은 사전에 입력된 타격대상들을 향해 방사포와 미사일을 일제사격으로 연속발사할 것이므로 전방에 배치된 주한미국군은 전멸할 것이라고 한다.    

 

제210화력려단만 전멸하는 게 아니다. 그 화력려단이 속해 있는 주한미국군 제2보병사단 전체가 전멸할 것이다. 제2보병사단의 전투병력은 동두천기지에 주둔하고, 사단지휘부는 평택기지에 있는데, 그 두 군사기지는 조선인민군이 강력한 통합화력타격을 퍼부을 제1차 타격대상들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 제2보병사단에게는 조선인민군의 통합화력타격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고, 대피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제2보병사단은 1950년 8월 말 낙동강전선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와 격전을 벌였었는데, 또 다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와 맞붙으면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야간열병식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전술유도탄과 발사대차다. 무한궤도차량위에 절반이 갈라지는 덮개가 설치되었고, 그 안에 전술유도탄 2발이 탑재되었다. 무한궤도차량은 포장도로가 아닌 험한 산길에서 운행하는 이동수단이며, 전술유도탄은 저고도활공도약형 변칙비행으로 미사일방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첨단미사일이다.육중한 탄두에는 특대형 산포탄이나 열압력탄이 장착된다. 조선인민군의 전술유도탄은 선제타격에 최적화된 위력적인 무기다.  

 

 

3. 10,000개의 타격대상 조준한 10,000문의 타격수단  

 

동서고금 전쟁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전쟁의 운명은 선제타격에서 결정된다. 선제타격을 먼저 시작하였는데도 패전한 사례도 있지만, 교전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화력으로 선제타격을 개시하는 쪽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전상대를 압도할 강력한 선제타격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된다. 

 

이런 작전원리를 이해하면, 압도적인 선제타격을 실행하기 위해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 자행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를 타격거리에 맞춰 일곱 겹으로, 전선에 골고루 집중배치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작전방안을 짐작할 수 있다. 개전시각에 그들은 압도적인 선제타격으로 한미련합군의 지하전쟁지휘소, 방공기지, 공군기지부터 먼저 파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11월 5일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은 국정감사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100km에 이르는 전방지대, 다시 말해서 황해북도 사리원과 강원도 통천을 동서로 잇는 전방지대에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 8,000문을 전진배치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것은 근 10년 전에 수집된 낡은 정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인민군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기동포, 지대지 순항미사일을 아직 갖지 못했었다. 지난 10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기존 방사포, 자행포, 견인포, 박격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강하며, 타격정밀도가 높고, 강력한 고체연료엔진을 장착한 신형 전술유도탄, 신형 대구경 방사포, 신형 대구경 기동포, 신형 지대지 순항미사일을 보유했고, 각종 포들도 더 많이 생산하여 배치했으므로, 그 수량을 전부 합하면 10,000문이 넘는다. 가히 압도적인 선제타격력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선제타격시간은 개전시각으로부터 1시간을 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의 운명은 바로 그 1시간 안에 결정되는 것이다. 

 

2017년 8월 15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에 실린 보도사진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군사분계선 이남 전역을 남북으로 4등분한 통합화력타격권을 설정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설정한 4등분 통합화력타격권 안에 있는 타격대상은 몇 개인가? 2017년 6월 21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3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간부들이 참석한 내부회의에서 남측 전역에 10,000개의 타격대상을 지정해놓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10,000개의 타격대상을 향해 10,000문의 화력타격수단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미련합군이 북측 전역에 지정해놓은 타격대상은 700개밖에 되지 않는다. 2016년 3월 7일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미련합군은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에 합동요격지점(Joint Designated Point of Impact) 700개를 새로 지정하고 검증을 마쳤다고 한다.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을 제압하기 위한 선제타격력을 강화해왔다. 그것이 ‘킬체인(Kill Chain)’이라는 작전명칭의 선제타격체계다.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가 나타나면, 먼저 선제타격을 개시하려는 것이다. 이 선제타격체계에 따르면, 한국군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포착하면, 30분 안에 대상을 타격한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1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표적탐지에 1분, 좌표식별에 1분, 무기선정 및 사격결정에 3분이 걸리므로, 30분 안에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은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신형 자주포를 개발했고, 현무 계렬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개발했으며, 2020년에는 사거리가 800km이며, 탄두중량이 2t인 현무-4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이 통합화력타격훈련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갸름한 형태의 불줄기는 방사포탄이 뿜어내는 것이고, 뭉게구름 형태의 발사화염은 대구경 장거리포가 뿜어내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전술유도탄, 조종방사포, 순항미사일은 물론 자행포, 방사포, 견인포, 기동포, 박격포를 타격거리에 맞춰 동시다발로, 파상형으로, 일제사격으로 수 천 발씩 연속발사하는 통합화력타격을 개시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인민군이준비한 선제타격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미련합군에게는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을 사전에 탐지할 능력도 없고,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을 방어할 능력도 없다. 한미련합군은 화력타격에서 절대적 열세다.  

 

 

4.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은 허점투성이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한국군의 ‘킬체인’ 선제타격계획에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1) 한국군은 선제타격계획에 필요한 탄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2009년 9월에 진행된 한미년례안보협의회 군수협력회의에서 한국군은 미국군에게 탄약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군은 한국에서 자체로 탄약을 생산하던지, 아니면 미국산 탄약을 사가던지 하라고 응답하면서 탄약지원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다급해진 한국군은 자기들과 미국군이 합의한 전시지원절차에 탄약지원문제가 들어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탄약지원문제를 다시 거론했으나, 미국군은 그런 절차가 없다고 잡아떼면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최소 30일치, 최대 60일치의 예비탄약과 예비미사일을 확보해야 하는데, 전술유도탄은 3~4일이면 바닥나고, 자주포 포탄은 7일이면 바닥나고, 해군 함선의 120mm 함포에서 발사하는 포탄과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잠대함미사일은 각각 7일이면 바닥나고, 대잠수함어뢰인 홍상어는 3~4일이면 바닥나고,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공대공미사일은 7일도 되지 않아 바닥나고, 공대지미사일은 9~15일이면 바닥난다는 것이다. 전시에 교전쌍방은 상대의 탄약창고와 미사일보관고부터 파괴할 것이므로, 탄약과 미사일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사활적인 문제인데, 한국군은 탄약과 미사일이 부족해서 전쟁을 하지 못할 판이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전방지대에 배치한 각종 화력타격수단 10,000문을 연속발사할 포탄과 미사일을 충분히 준비해두었다. 1997년 9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북월남한 조선인민군 포병중대 군관(소좌)의 경험담이 <조선일보> 2010년 4월 12일 부에 실렸는데, 그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이 군사복무했던 포병중대 포탄저장고에 포탄 3,000발이 쌓여있었고, 예비포탄저장고에 포탄 1,000발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대에서 대대, 연대, 사단, 군단으로 올라가면서 포탄저장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면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남측 전역을 10cm의 두께로 뒤덮을 엄청난 양의 폭약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2) 한국군은 탄약과 미사일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탄도미사일을 운용할 전문병도 부족하다. 2021년 1월 14일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은 2016년에 미사일사령부를 창설했고, 각종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지만, 그 미사일을 운용할 부사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숙련되지 않은 일반병사들이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사일오발사고가 우려된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전략군 소속 미사일전문병은 대폭 증원되었다. 한국 국방부가 2021년 2월 2일에 펴낸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 미사일려단이 9개에서 13개로 증편되었다고 한다. 여러 종의 신형 미사일이 개발되고 배치되었으므로, 미사일려단을 증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3개 미사일려단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은 2,600발로 추산되고, 배속병력은 26,000명으로 추산된다. 

 

3) 한국군이 보유한 현무 계렬 탄도미사일은 조선인민군의 번개-6 지대공미사일로 요격당할 수 있다. 한국군 지대공미사일은 조선인민군이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탄과 신형 조종방사포를 요격하지 못하지만, 조선인민군 지대공미사일은 한국군이 발사한 현무 계렬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번개-6 지대공미사일은 탐지거리가 600km이고, 사거리가 400km며, 탄도미사일 요격고도는 60km다. 번개-6은 스텔스전투기와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위력적인 반항공무기다. 또한 조선인민군은 사거리가 7km이고, 사고도가 3km인 자행고사로케트로 한국군의 현무 계렬 순항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4) 한국군의 ‘킬체인’ 선제타격체계에서 드러나는 가장 심각한 결함은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항공정찰능력이 미약해서 미국군 정찰위성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미국군 정찰위성도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사격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찰위성의 실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정찰위성을 띄워놓고 조선 전역을 24시간 뚫어지게 감시하는 미국군이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미사일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가 지하갱도에서 밖으로 나와 사격점까지 이동하는 장면을 우주공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비근한 실례를 들면, 미국군 정찰위성은 조선국방과학원이 2021년 3월 25일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신형 전술유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조선국방과학원은 이전에도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여 수없이 시험발사했지만, 미국군 정찰위성에 발사징후를 노출한 적은 없다. 미국이 몇 차례 포착했다는 발사징후라는 것은, 신형 미사일을 탑재한 발사대차가 발사점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아니라, 조선인민군 미사일부대가 시험발사를 진행하기로 예정된 발사점에 미리 출동하여 사전준비작업을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실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위성감시망이 지상에 있는 10cm 크기의 작은 물체까지 식별할 정도로 엄청난 감시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의 이동장면을 우주공간에서 내려다보는 줄로 상상한다. 하지만 미국 정찰위성은 지상에서 물체가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고, 지상에 고정된 물체만 정지영상으로 탐지할 수 있다. 미국군 정찰위성의 실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군 정찰위성 1기가 조선 상공을 지나가면서 촬영하는 기회는 하루에 한 차례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통과할 때 촬영시간은 약 3분으로 제한되고, 촬영범위도 10~50km로 제한된다. 미국은 약 50기의 정찰위성을 띄워놓고 전 세계를 감시하는데, 50기의 정찰위성을 순차적으로 조선 감시에 전부 동원해도 하루에 약 2시간 30분밖에 촬영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은 레이저측정기를 사용하여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과 고도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피해 미사일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를 이동시키면 사격징후를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 소속 발사대차와 조종방사포가 지하갱도에서 밖으로 나와 발사점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포착하고, 사격징후를 탐지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지구위성궤도를 날아가는 장면이다. 태양빛전지판을 날개처럼 펼쳤고, 접시처럼 생긴 위성안테나가 얹혀져 있다. 사진에는보이지 않지만, 정찰위성이 지구표면을 내려다보는 정찰위성 하단부에는 고성능 전자광학촬영기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정찰위성의 실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에서 지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샅샅이, 24시간 감시하는줄로 상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군 정찰위성은 하루에 한 번 조선 상공을 지나면서 약 3분 동안 촬영할 수 있고, 촬영범위도 10~15km로 제한된다. 그래서 지상에 고정된 물체는 촬영할 수 있지만, 지상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이동장면은 촬영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나타나는 시간과 촬영각도를 피하여 움직이므로,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는다.  

 

한미련합군이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를 탐지하는 또 다른 방도는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선통신량이 급증하는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무선통신량이 평소보다 급증하는 특이한 현상은 선제타격징후로 된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은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 무선통신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무선통신수단을 사용하여 한미련합군에게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면, 한미련합군으로부터 선제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화력타격집단의 무선통신량은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또한 <신동아> 2020년 1월호에 실린 분석기사에 따르면, 현재 조선인민군이 사용하는 신형 무선통신기는 한미련합군의 감청체계로는 통신내용을 해독할 수 없는 고성능 무선통신기라고 한다. 이런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제3자가 감청하지 못하는 최첨단 무선량자암호통신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인민군은 평시에도 유선통신망을 사용하여 통신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전시상태를 선포하면, 최고 수준의 통신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유선통신망마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군사통신망을 완전히 중단하면, 최고사령부의 작전명령이 각급 전투부대 지휘부에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2015년 8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서 풀린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8월 위기사태’로 조선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던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파견한 연락군관과 작전지휘관이 각급 전투부대들에 내려가 비상작전회의를 소집하여 최고사령관의 작전명령을 직접 하달하고, 작전통제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보면, 한미련합군은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징후를 정찰위성으로도 포착하지 못하고, 무선통신감청으로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불시선제타격으로 한미련합군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한미련합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미련합군이 선제타격을 준비하는 동안 무선통신량이 급증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화력타격수단들이 공격에 유리한 지대로 이동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시에 북진공격에 앞장선다는 한국군 제7기동군단은 전차 800대를 보유했고,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자주포, 탄약보급장갑차도 엄청나게 많이 보유했는데, 그처럼 방대한 기갑무력이 작전을 개시하려면, 엄청난 양의 유류를 보급받아야 하므로 유류보급차량 100여 대가 유류저장소를 들락날락하면서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그처럼 뚜렷한 징후를 포착하지 못할 수 없다. 2021년 3월 15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대남담화에서 한미련합군이 “우리의 눈을 피해가며 2018년에는 110여차, 2019년에는 190여차, 2020년에는 170여차의 크고 작은 전쟁연습을 도적고양이처럼 벌려놓았다”고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한미련합군이 은밀히 진행한 대대급 야외기동훈련을 면밀히 감시하였음을 말해준다. 대대급 규모의 야외기동훈련을 감시할 능력을 가진 조선인민군 정찰부대가 군단급에서 벌어지는 방대한 규모의 선제타격준비상황을 포착하지 못할 리 없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따르면, 전방지대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2014년 이후 보병부대의 경우에는 여단별로, 그리고 땅크부대의 경우에는 대대별로 자체 유류저장소를 각자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은 최고사령부가 파견한 연락군관과 작전지휘관으로부터 공격명령을 받으면, 다른 곳으로 기동하지 않고 현재 위치에서 유류보급을 끝내고 즉각 전투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조선인민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선제타격을 할 수 있지만, 한미련합군은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한미련합군이 선제타격징후를 노출하면, 그 징후를 포착한 조선인민군은 곧바로 선제타격을 가할 것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주한미국군 부사령관을 지내면서 북침작전계획수립에 직접 참여했던 장-마크 조나스(Jan-Marc Jounas)는 2017년 11월 7일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에 보낸 자신의 서한에서 한미련합군이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어떤 소규모 군사행동을 하더라도 조선인민군의 선제타격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이제 명백한 결론에 이르렀다. 조선인민군은 화력타격과 정신무장에서, 전법과 작전계획에서, 탄약비축과 훈련수준에서 한국군을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집필했고, 2020년 9월 15일에 발간된 ‘격노(Rage)’라는 제목의 책에 서술된 일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8월 5일 당시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보내 친서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고 한다.

 

“며칠 전 남조선의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를 도발과 위협으로 간주하고, 만약 우리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하면 그들은 우리 군대를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남조선군은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다. 당신이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 없는 강한 군대를 갖고 있고, 남조선군은 우리 군대의 상대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