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8

금성친위여단은 복엽기 타고 어디로 날아가나

[한호석의 개벽예감] <156>
자주시보 2015년 04월 27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군사강실에서 지략전 훈련하는 금성친위여단
2. 지형사판 사용하는 당대 무비의 비대칭전법
3. 비행금지구역 뚫고 들어가는 단엽정찰기
4. 달빛 없는 야음 속을 날아가는 복엽습격기 
 
▲ <사진 1> 조선인민군 제1973부대의 연혁실 게시판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부대는 공화국 영웅 189명, 로력영웅 1명, 조국통일상 수상자 19명 등 수많은 위훈자를 배출한 최정예 금성친위여단이다.     © 자주시보


1. 군사강실에서 지략전 훈련하는 금성친위여단
 
조선인민군의 군사전술에 적용되는 여덟 가지 전투행동조법을 32자로 정리하면, 징후은폐, 민첩기동, 불시출현, 은밀침투, 근접매복, 위장기만, 기습타격, 야간공격이다. 32자 전투행동조법이란 조선에서 펴낸 자료에서 인용한 것은 아니고, 내가 나름대로 파악한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전시에 그들은 32자 전투행동조법을 각이한 실전상황에 맞춰 배합함으로써 천변만화하는 수 백 가지 비대칭전법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의 전쟁사는 전쟁이 무력으로만 밀어붙이는 전투행동이 아니므로 무력보다 지략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보여주는데, 조선의 전쟁사는 무력과 지략보다 사상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진리를 말해준다. 무력이나 지략도 사상에서 나오며, 사상이 없으면 무력과 지략이 있어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사상을 중심으로 무력과 지략이 결합된 자기완결적인 전투행동인 것이다. 그리하여 사상전, 무력전, 지략전은 조선이 말하는 ‘주체의 전쟁관’에서 핵심내용을 이룬다.

그런 독창적인 전쟁관에 따라 조선인민군 부대들마다 빠짐없이 혁명사적교양실, 연혁실, 군인회관, 훈련장, 군사강실이 꾸려져 운영되는데, 혁명사적교양실, 연혁실, 군인회관에서는 사상전을, 훈련장에서는 무력전을, 군사강실에서는 지략전을 각각 훈련하는 것이다. 군대를 운영하는 방식부터 그렇게 남다르고 철저하므로, 훈련장만 알고 혁명사적교양실, 연혁실, 군인회관, 군사강실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다른 나라 군대는 조선인민군을 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위에 열거한 32자 전투행동조법을 가지고 기발한 전술묘안을 구상하고 독창적인 비대칭전법을 연구하면서 지략전을 훈련하는 곳이 바로 군사강실이다. 그런 까닭에, 군사강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지도할 때마다 반드시 돌아보는 주요시찰대상들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인민군 군사강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조선인민군에 대해 엉터리로 작성한 보도는 하루가 멀다하게 내보내면서도, 정작 유심히 관찰해야 할 군사강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지략전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전 세계에서 오직 조선인민군만 운영하는 군사강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나라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인민군도 자기 내부모습을 외부에 전부 공개하지 않으므로, 군사강실을 알려면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방영한 기록영화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2013년 4월 5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조선의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 주체102(2013) 3. (후편)’이 군사강실을 비춰준 영상자료다. 이 기록영화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3년 3월 한 달 동안 진행한 인민군대사업 현지지도를 수록한 것인데, 그 가운데서 군사강실을 비춰주는 화면은 2013년 3월 22일과 23일에 진행한 조선인민군 제1973부대 현지지도를 수록한 영상에 들어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3월 22일 조선인민군 제1973부대를 현지지도하였고, 이튿날도 그 부대를 현지지도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어느 한 군부대를 이틀 동안 현지지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과 미국의 군사대결에 관해 내가 이전에 쓴 글들을 읽은 독자들은 기억할 수 있겠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973부대를 그처럼 이틀 동안 현지지도한 시점은 2013년 3월 29일 심야에 소집된 최고사령부의 긴급작전회의에서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타격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1주일 전이다.

미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동원한 대북핵위협으로 정세가 그처럼 험악해진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973부대를 이틀 동안 현지지도한 것은, 전시에 그 군부대가 전략군 부대들 못지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핵심전투단위라는 점을 말해준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대원수님들께서 이 부대를 중시하시였으며 자신께서도 제일 중시하는 부대, 당이 믿는 부대라고 하시면서 오늘 부대를 시찰하는 데는 깊은 의도가 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기록영화에는 제1973부대 연혁실을 비춰주는 화면이 나오는데,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그 군부대가 공화국 영웅 189명, 로력영웅 1명, 조국통일상 수상자 19명을 비롯하여 수많은 위훈자들을 배출하였음을 말해주는 벽면게시물이 화면에 나타나고, “오중흡7련대”와 “금성친위려단”이라고 각각 쓰인 두 개의 군기도 화면에 나타난다. 이런 화면들은 제1973부대가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 가운데서도 최정예 전투부대인 오중흡7련대 칭호를 받은 금성친위여단임을 말해준다.

▲ <사진 2> 금성친위여단 칭호를 받은 제1973부대에는 영웅중대가 무려 21개나 있다. 최강부대임을 알 수 있다.     © 자주시보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그 금성친위여단 예하 중대들 가운데는 영웅중대가 21개나 있다고 한다. 공화국 영웅을 그처럼 많이 배출한 부대이므로, 공화국 영웅의 이름으로 불리는 영웅중대도 그처럼 많은 것이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제1973부대 예하 김순손 영웅중대도 그런 중대들 가운데 하나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부대에는) 영웅이 참 많다. 군인들 속에서 영웅전사들의 전투위훈을 통한 교양을 잘하여 앞으로 조국통일대전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싸움에서 영웅부대가 되여야 한다”고 말하며 특별한 기대와 믿음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총포성이 멎은 정전시기에 어떻게 189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된 것일까? 기록영화에 나오는 해설은 제1973부대가 “유사시 적후에서 싸우게 될 부대”라고 밝혀주었고, 그 부대의 영웅교양장소를 비춰주는 기록영화 화면에는 “우리 부대 적후영웅전사들”이라고 크게 쓴 글발이 게시된 것이 보인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제1973부대에서 배출된 공화국 영웅 189명은 전시의 습격대상이나 습격로 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으로 침투하여 고난도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기지로 돌아간 최정예 적후정찰병들임을 알 수 있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정보는 제1973부대가 평안남도 덕천에 사령부를 둔 제630대련합부대 예하 여단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처럼, 조선인민군 제630대련합부대는 ‘폭풍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제11군단이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제11군단은 1969년에 창설된 특수8군단을 확대, 개편한 특수전 군단이다. 이 군단은 경보병, 항공륙전병, 저격병 같은 특수병종 전투원들이 배속된 10개 여단으로 편성되었는데, 1개 여단마다 그런 특수병종 전투원이 7,000명씩 배속되었다. 10개 여단 이외에 지원부대들까지 합하면 이 군단에 배속된 총병력은 80,000명인데, 그들은 모두 초인적인 강훈련으로 단련된 최정예 전투원들이다. 제11군단 예하 1개 여단은 5개 대대로 편성되었고, 1개 대대는 5개 중대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에 1개 중대는 60mm 박격포 9문으로 무장한 화력타격중대이고, 1개 통신소대, 1개 비반충포(무반동포)소대, 1개 화승총(휴대용 대공미사일)소대가 대대 직속소대로 별도 편제되었으며, 1개 분대마다 사거리 200m의 수류탄투척기로 사용되는 7.62mm 자동보총이 2정씩 지급되고, 모든 전투원들은 5.45mm 자동보총 1정, 실탄 300발, 탄창 4개, 수류탄 4발로 무장하였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대 앞에는 적들의 아성을 타고앉아야 할 중대한 임무가 맡겨져 있다. 일단 싸움이 터지면 적들의 심장부에 벼락같이 돌입하여 맡은 군사대상물들과 괴뢰반동통치기관들을 불이 번쩍 나게 돌격, 소멸하여야 한다”고 말했고,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1973부대 예하 2대대를 현지지도하면서 “모든 전투원들이 자기들이 타격, 소멸해야 할 적들의 군사대상물들과 괴뢰반동통치기관들을 손금 보듯이 꿰뚫고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일단 유사시 적의 아성에 번개 같이 돌입하여 적들의 심장부에 멸적의 비수를 단번에 정확히 꽂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진 3>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금성친위여단 여단장에게 전투임무와 관련된 지시를 주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거대한 3차원 지형사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 자주시보


2. 지형사판 사용하는 당대 무비의 비대칭전법 

<사진 3>은 위에서 언급한 기록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973부대 군사강실을 시찰하는 중에 여단장에게 전투임무와 관련된 지시를 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의 배경에 보이는 거대한 지형도에 문득 시선이 멈춘다. 그 지형도는 지형, 도로, 건축물, 시설물, 녹지, 공원, 광장, 경기장, 산, 구릉, 강하천 등을 3차원으로 축약, 모사해놓은 것이다. 조선인민군에서는 그런 3차원 지형도를 지형사판이라 부른다.

▲ <사진 4> 금성친위여단의 3차원 지형사판에는 서울 시내가 상세히 축약, 모사되었다.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도 보인다. 금성친위여단이 이런 지형사판을 사용하는 것은, 전시에 그 여단이 서울을 기습점령할 것임을 예고한다.     © 자주시보

▲ <사진 5>.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청와대와 북악산 일대가 상세히 표시된 작전지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청와대는 금성친위여단의 기습점령대상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자주시보

기록영화 장면에 나타난 그 지형사판은 군사분계선 이남의 어느 특정도시를 축약, 모사한 것인데, 어느 도시를 그렇게 축약, 모사해놓은 것일까? 기록영화의 한 장면을 잡아낸 <사진 4>는 그 지형사판에 축약, 모사된 도시가 서울임을 보여준다. <사진 5>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작전지도 위에 표시된 어느 특정지구를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을 수록한 기록영화 장면인데, <중앙일보> 2013년 4월 1일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유심히 살펴보는 곳이 “청와대와 북악산 일대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제1973부대가 수행할 전시임무는 서울로 곧바로 진격하여 한국의 심장부를 “불이 번쩍 나게” 기습점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2001년 3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폭풍군단’은 전시에 그들이 기습점령할 도시를 각 대대별로 하나씩 정해놓았다고 한다. ‘폭풍군단’에 50개 대대가 있으므로, 서울 이외에 각 광역시들과 도청소재지들을 포함하여 50개 주요도시들이 그들의 기습점령명단에 올라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사진 6> 금성친위여단 예하 2대대 군사강실에 놓여있는 커다란 지형사판에 조선남해라는 글씨가 보인다.     © 자주시보

▲ <사진 7>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금성친위여단 예하 2대대 군사강실에서 군부대 지휘성원들에게 전투임무와 관련된 지시를 주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거대한 지형사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 지형사판은 부산 시내를 3차원으로 축약, 모사한 것이다.     © 자주시보

2013년 3월 22일 금성친위여단 지휘부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튿날 그 여단 예하 2대대를 현지지도하였는데, 지형사판이 그 대대의 군사강실에도 놓여있는 화면이 기록영화에 나온다. 2대대 군사강실에 놓여있는 거대한 지형사판은 두 종류다. <사진 6>은 ‘조선남해’라는 글씨가 보이는 지형사판이고, <사진 7>은 어느 대도시를 3차원으로 축약, 모사해놓은 지형사판이다. 그 대도시 한복판으로 파란색 물길이 나 있으니 그곳은 항구도시인 것이 분명한데, 남해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는 부산 이외에 다른 곳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제1973부대 예하 2대대에게는 부산으로 곧바로 진격하여 남해의 관문을 기습점령할 전시임무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1973부대 “군사강실에 만들어놓은 적지역지형사판과 부대작전계획을 보시면서 군부대장으로부터 부대의 작전전투임무수행과 훈련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청취”한 다음, “주요타격대상들을 바로 정하고 중요대상물들을 빠짐없이 장악할 데 대한 지시를 주시”고 “유사시 전투원들이 적구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게 준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현대전에는 위성항법체계를 사용하는 각종 전자식 무기들이 등장하는데, 조선인민군은 20세기식 지형사판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전자시대의 변화추세를 따라잡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정반대다. 위성항법체계에 의존하는 전자식 무기와 위성항법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수동식 무기를 실전상황에 따라 적절히 배합하여 사용하는 조선인민군에게 지형사판은 필수적인 비대칭군사장비다.

위성항법체계와 무관한 수동식 무기는 현대전에서 별로 쓸모없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판이다. 교전상대가 사용하지 않는 수동식 무기를 전투수단으로 사용하는 조선인민군의 지략전에서는 수동식 무기가 위력적인 비대칭무기로 전변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법에 가장 적합한 무기는 교전상대가 사용하지 않고 조선인민군만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비대칭무기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당연히 비대칭전법과 비대칭무기를 사용하게 될 것인데, 교전상대는 그것에 효과적으로 맞설 전술훈련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대칭전법과 비대칭무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응전할지 몰라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조선인민군이 비대칭전법에서 사용할 각종 비대칭무기들 가운데 두 가지만 논하는데, 조선이 이번에 자체 기술로 개발한 두 종류의 경비행기가 바로 그런 비대칭무기들이다.  
 
▲ <사진 8> '독수리연습'에 동원된 미2사단 제210포병여단이 2015년 3월 26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담터계곡에서 다련장로켓포 발사연습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3. 비행금지구역 뚫고 들어가는 단엽정찰기

조선인민군의 기본전술은 무징후선제기습을 앞세운 종심돌파전술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무징후선제기습으로 파괴하려는 종심타격대상들 가운데는 교전상대의 작전지휘소도 있고, 전차, 장갑차, 보병전투차량 같은 기동작전수단들이 집결해있는 북진돌격기지도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화력타격을 그런 작전지휘소들과 북진돌격기지들에 집중하여 파괴할 것으로 예견하더라도 교전상대의 화력타격수단들을 모두 단번에 파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예견하는 까닭에 대해 말해주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사진 8>은 ‘독수리연습’에 동원된 미2사단 제210포병여단이 2015년 3월 26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있는 담터계곡에서 다련장로켓포를 발사하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다련장로켓포, 자주포, 견인포 같은 화력타격수단을 몇몇 기지에 집결해놓으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의 불시기습타격을 받아 궤멸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화력타격수단들은 전선을 따라 수많은 사격지점들에 분산배치되었다. 

둘째, 주한미국군 포병부대가 다련장로켓포를 발사하는 담터계곡 현장을 촬영한 위의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들은 각종 화력타격수단을 전선 곳곳의 산골짜기들에 분산배치해두고 발사준비를 갖춘 것이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산골짜기가 교전상대가 탐지하기도 어렵고 타격하기도 어려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의 자연지리적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어디를 가나 산과 계곡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2007년 12월 13일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반부에 크고 작은 산이 4,440개나 있다. 우리나라 북반부에는 더 많은 산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전역에는 모두 10,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산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정보를 작전상황에 대입하면, 전시에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은 교전상대의 선제기습타격에 살아남은 화력타격수단으로 즉각 반격할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인민군은 산골짜기에 들어박혀 반격하는 교전상대의 반격화점을 어떻게 타격할 수 있을까?
그런 작전상황과 관련하여 조선인민군은 두 가지 전술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교전상대의 반격화점을 찾아내는 항공정찰이고, 둘째는 계곡공간을 파고드는 저고도습격비행으로 교전상대의 반격화점을 파괴하는 공중타격이다. 
방공망을 뚫고 파고드는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교전상대의 반격화점을 찾아내는 항공정찰임무를 수행할 군사장비가 바로 이번에 조선이 개발한 단엽경비행기다. 명백하게도, 그 단엽경비행기는 저고도항공정찰에 아주 알맞은 비대칭군사장비다. 한국 언론사의 취재용 경비행기로 위장한 조선인민군의 단엽정찰기가 교전상대의 후방에 깊숙이 파고들어도 그 비행체의 피아식별은 어렵다.

1987년 5월 28일 저녁 당시 19살이었던 어느 서독청년이 여자친구를 태우고 조종한 쎄스나(Cessna) 경비행기 한 대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상공에 홀연히 나타나 세 차례나 선회한 뒤 그 광장에 사뿐히 착륙하였다. 당시 소련군은 10,000여 개에 이르는 조밀한 방공레이더망으로 자국 영공을 철통 같이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그 경비행기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모스크바까지 700km를 날아가 붉은 광장에 착륙할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경비행기가 핀란드 영공을 벗어나 소련 영공에 막 들어섰을 때, 마침 그 지역상공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소련군 미그-23 추격기 한 대가 그 경비행기를 발견하였지만, 추격기 비행사는 비행 중인 소형 민용항공기를 보았다고 지상관제소에 간단히 보고한 뒤 현장을 떠났다. 그처럼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난 까닭은, 그 경비행기가 무선교신장치를 꺼놓고 저공비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15일 오후 1시 25분경 엄격한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된 미국 워싱턴 디씨 상공으로 어디선가 1인승 자이로콥터(gyrocopter) 한 대가 갑자기 날아들어 의사당 잔디밭에 착륙하였을 때도 미국 수도권 상공을 철통 같이 감시한다는 방공레이더망은 그야말로 ‘먹통’이었다. 제아무리 최첨단 방공레이더망이라 해도 무전파저공비행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다시 한 번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밀한 최첨단 방공레이더망으로 24시간 철통 같이 감시한다는 모스크바나 워싱턴 디씨의 비행금지구역이 무전파저공비행에 그처럼 어이없게 뚫리는 판이니, 그보다 더 허술한 서울의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체 외부를 한국 언론사의 취재용 경비행기처럼 감쪽같이 위장도색한 조선인민군의 단엽정찰기가 무선교신장치와 엔진을 모두 꺼놓고 무전파저공비행으로 군사분계선을 조용히 넘어 서울 상공에 나타나도 교전상대의 방공레이더망은 그 정찰기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초계비행 중인 한국군 전투기가 우연히 발견해도 일상적으로 보는 취재용 경비행기라고 여겨 그냥 지나칠 것이다. 이처럼 비대칭군사장비를 사용하는 항공정찰로 느닷없이 교전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수행하는 지략전의 한 단면이다.

▲ <사진 9> 러시아산 AN-2급 복엽경비행기 AN-2가 비행하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4. 달빛 없는 야음 속을 날아가는 복엽습격기    

전시에 조선인민군 단엽정찰기가 저고도항공정찰로 파악한 교전상대의 위치정보를 작전지휘소에 송신하면, 즉시 습격기 편대가 출격하여 교전상대의 유생역량과 화력타격수단을 타격하게 되는데, 그런 저고도습격비행에 아주 적합한 무장장비가 이번에 조선이 개발한 복엽경비행기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그 복엽경비행기를 습격기라 부른다.
 
▲ <사진 10>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AN-3급 복엽습격기가 시험비행을 하기 위해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인민군은 AN-2급 복엽습격기를 이미 500대 이상 보유하였다. 그 옆에 있는 흰색 경비행기 3대는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민군겸용 단엽경비행기들이다.     © 자주시보

▲ <사진 11> 러시아산 AN-2 조종석은 이렇게 생겼는데,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AN-3급 복엽습격기 조종석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 자주시보

▲ <사진 12> 러시아산 AN-2 탑승공간은 이렇게 생겼는데,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AN-3급 복엽습격기 탑승공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 자주시보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복엽습격기는 <사진 9>에 보이는 러시아산 복엽경비행기 AN-2와 외형이 쌍둥이처럼 똑같고 도색만 다르다. <사진 10>에 보이는 조선의 신형 복엽습격기는 녹색, 연녹색, 적색, 하늘색을 적절히 배합한 4종 위장색으로 칠해졌는데, 기체 상부를 녹색, 연녹색, 적색을 배합하여 칠했고, 기체 하부는 하늘색으로 칠했다. <사진 11>은 러시아산 AN-2의 조종석을 촬영한 것인데, 조선의 신형 복엽습격기 조종석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사진 12>은 러시아산 AN-2의 탑승공간을 촬영한 것인데, 조선의 신형 복엽습격기 탑승공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능향상이다. AN-2급 복엽습격기를 오래 전부터 자체로 생산하여 이미 500대 이상 보유한 조선은 이번에 기존 AN-2급 복엽습격기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복엽습격기를 새로 개발한 것이다. 중국과 우크라이나도 AN-2급 복엽경비행기보다 성능이 우수한 개량기종을 생산하였는데, 중국산 개량형은 Y-5이고, 우크라이나산 개량형은 AN-2-100이다. 러시아가 AN-2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는 1960년이었는데,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뒤에 AN-2와 같은 성능을 가진 기종을 복제할 어리석은 나라는 없다. 그 기종의 원조생산국인 러시아도 1990년대부터 AN-2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AN-3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복엽습격기는 AN-3급 개량형인 것이 분명하다. 조선의 AN-3급 복엽습격기는 추력이 더 강화된 국산 신형 엔진을 장착하였을 뿐 아니라, 20명이 탑승할 수 있도록 탑승공간 설계를 다시 하였고, 방공레이더가 탐지하기 어려운 비철금속재질로 제작된 기체 외부에 스텔스 도료까지 칠하여 스텔스기능을 거의 완벽하게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이 이번에 개발한 복엽습격기와 동급인 러시아산 AN-3은 시속 260km의 속도로 550km를 비행할 수 있고, 장갑관통탄, 고폭유산탄, 소이탄, 연막탄을 쏘는 57mm 로켓탄 16발이 장전된 발사기를 좌우에 한 대씩 장착하였으며, 충격흡수장치가 부착된 바퀴를 달았으므로 650m 길이의 평평한 공간만 있으면 비행장 활주로가 아니라도 어디나 이착륙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는 로켓포와 폭탄으로 지상목표물을 타격할 수도 있고, 항공륙전대의 강습작전을 위한 병력수송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은 교전상대 전투기들과 격렬한 근접공중전을 벌이게 될 것인데, 그처럼 교전쌍방이 중고도 상공에서 근접공중전을 벌이고 있을 때,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들은 근접공중전이 벌어진 중고도 상공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저고도남하비행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 공수특전대는 대형수송기나 작전헬기를 타고 적진상공에 깊숙이 진입하여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공중강습훈련을 하는데, 교전쌍방이 강력한 방공망을 구축한 이 땅에서는 그런 식의 고전적인 공중강습은 지상포화에 피격될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거의 실행되지 못할 것이다. ‘폭풍군단’은 교전상대가 불변의 공식처럼 믿는 공중강습교리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독자적인 비대칭전법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저고도습격비행이다. 

▲ <사진 13> 한국군 해병대 전투원들이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의 저고도습격비행에 대비하여 개인화기를 공중에 발사하는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 자주시보

<사진 13>은 한국군 해병대 전투원들이 어느 해변에서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의 저고도습격비행에 대비하여 개인화기를 공중에 발사하는 전술훈련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그처럼 개인화기를 집중사격하면 복엽습격기를 격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의 저고도습격비행은 훤한 대낮이 아니라 캄캄한 밤에, 그것도 달빛조차 없는 무월광 야음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원래 야간공격은 32자 전투행동조법을 배합하는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조선일보> 2013년 7월 22일부 인터넷판에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의 저고도습격비행을 가상한 야간대응훈련에 참가하였던 한국군 제대병사들의 회고담이 실렸다. 한국군은 동유럽나라들에서 수입한 20여 대의 AN-2를 훈련기로 사용하면서 조선인민군의 저고도습격비행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2009년 5월 4일에는 한국군이 사용하는 AN-2 한 대가 충청북도 영동의 포도밭에 추락해 완파된 적도 있다. 한국군 제대병사들의 회고담에 따르면, 한국군 작전헬기 UH-60보다 엔진소음이 훨씬 적게 들리는 AN-2가 야간에 외부비행등을 모두 꺼놓고 접근하는 경우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어서 탐조등을 공중에 비춰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전상황은 그런 회고담과 좀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는 지상의 습격대상에 접근할 때 외부비행등만 아니라 엔진도 꺼놓고 어둠 속에서 무소음 활공을 하는 것이다. 달빛도 없는 무월광 야음 속에서 외부비행등과 엔진을 모두 끄고 무소음 활공으로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소리 없이 날아드는 복엽습격기의 완벽한 스텔스 저고도습격비행은 교전상대에게 소름끼치는 공포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경제> 2014년 1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들은 복엽습격기를 타고 300km에 이르는 장거리습격비행을 연습한다고 한다. 이것은 전시에 그 복엽습격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깊숙이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도권에는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만한 골프장이 100여 개소나 널려있고, 한국군 장교들이 출입하는 군인전용 골프장만 해도 남측 전역에 29개소나 널려있으므로, 전시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들이 골프장에 착륙할 것으로 우려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수도권 골프장들에는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긴 쇠밧줄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밤에 골프장에 착륙하는 복엽습격기에서는 지상의 쇠밧줄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착륙하는 복엽습격기의 바퀴가 쇠밧줄에 걸리면 기체가 뒤집어질 것이므로, 그런 대비책을 세워둔 것이다.

그러나 골프장에 착륙차단용 쇠밧줄을 준비해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대비책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들은 수도권 각지의 골프장들에 착륙하여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려는 게 아니라 서울 도심에 직접 착륙하려는 것이다.

전시에 ‘폭풍군단’이 서울을 기습점령하려면, 서울 도심 지하로 뚫린 남진갱도들에서 쏟아져 나올 경보병 이외에 항공륙전병만 해도 최소 1,000명을 작전에 투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20인승 복엽습격기 50대가 착륙할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는 복엽습격기 50대가 착륙할 만한 공간이 없다.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가 복엽습격기를 타고 서울 상공에 진입하여 낙하산을 타고 시내 곳곳에 강하할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지만, 전면 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된 서울에는 낙하산 강하를 위협하는 가로수, 전기선, 고층건물, 광고판, 옥상시설물 같은 장애물들이 무수히 깔려있고, 서울을 탈출하려는 민간차량들이 도로마다 밀려들어 아우성치게 될 것이므로 그런 대혼란의 도심 속으로 강하하는 것은 위험하다.  

▲ <사진 14> 부주를 장착한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는 전시에 수도권 골프장이 아니라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한강에 수상착륙할 것이다.     © 자주시보

그래서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대가 서울 같은 대도시를 기습점령하려면, 날아가는 복엽습격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도심에 강하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 흐르는 강에 복엽습격기를 수상착륙시키는 것이다. <사진 14>에서 보는 것처럼 착륙바퀴와 함께 부주(浮舟, float)가 장착된 복엽습격기가 전시에 불빛 없는 서울 상공에 진입하면 장애물이 없는 한강에 수상착륙할 것이다. 박갑수 통일교육원 교수의 논문 ‘북한의 군사전략과 군사력’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부주를 장착한 복엽습격기를 타고 수상이착륙훈련을 실시한 때는 1998년이다.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는 크고 작은 강과 하천이 448개, 호수와 저수지가 63개나 있으므로, 부주를 장착한 복엽습격기들이 <사진 13>에서 보는 것처럼 수상착륙할 공간은 어디에나 널려있는 셈이다. AN-2급 복엽습격기를 이미 500대나 보유한 조선인민군이 이번에 AN-3급 복엽습격기를 새로 개발하여 생산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초인적인 강훈련으로 단련된 금성친위여단은 서울을 축약, 모사한 지형사판을 놓고 서울기습점령을 상정한 비대칭전법을 연습하고 있으며, 그 여단 예하 2대대는 부산을 축약, 모사한 지형사판을 놓고 부산기습점령을 상정한 비대칭전법을 연습하고 있다.
서부전선 북측 지역에서 서울까지 비행거리는 약 45km이므로,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들은 이륙한 뒤 불과 10분 만에 서울 도심 상공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으로 전력공급망, 통신망, 교통망이 이미 끊어져 불빛 없는 서울의 밤하늘에 줄지어 날아든 복엽습격기 50대가 한강 곳곳에 수상착륙하면, 최정예 항공륙전병 1,000명이 용산기지, 주한미국대사관,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언론사 등을 기습점령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진격할 텐데 그것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을까?

중동부전선 북측 지역에서 부산까지 비행거리는 약 400km이므로, 조선인민군 복엽습격기들이 백두대간 협곡을 타고 남하비행을 하면 약 1시간 30분 만에 부산 도심 상공에 진입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으로 전력공급망, 통신망, 교통망이 끊어져 불빛 없는 부산의 밤하늘에 줄지어 날아든 복엽습격기 50대가 회동수원지와 수영강 곳곳에 수상착륙하면, 최정예 항공륙전병 1,000명이 부산해군기지, 부산주재 미국총영사관, 부산시청, 언론사 등을 기습점령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진격해 들어갈 텐데 그것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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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하늘길 열어놓은 ‘군자리정신’과 석유증산

[한호석의 개벽예감](153)
자주시보 2015년 04월 2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군자리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2. 마침내 항공기 국산화에 도전하다
3. 조선산 단엽경비행기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석유생산 늘어나니 하늘길도 열리더라

▲ 사진1,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의 어느 작업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위원장     ©자주시보


1. ‘군자리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2015년 4월 1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한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에서 그 보도기사를 비중 있게 다룬 언론매체는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의 국방공업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해서 그 보도기사를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어떤 중요한 소식을 보도할 때, 생략, 축약, 암시, 은유 같은 서술방식을 가끔 사용하는데, 위의 보도기사도 그렇게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위의 보도기사에서 생략, 축약, 암시, 은유의 기법 속에 잠긴 심층정보를 길어올리려면, 상당한 정보분석력이 요구된다.

첫째,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공장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아무개가 사업하는 공장이라고 보도하는 공장은 조선의 국방공업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군수공장이다. 2015년 4월 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온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도 그런 핵심군수공장들 가운데 하나다.
2014년 8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에 가공직장과 총조립직장이 있다. 가공직장이란 각종 부품과 장치를 만드는 생산단위이고, 총조립직장은 가공직장에서 생산된 부품과 장치를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생산단위다.

둘째, 2014년 8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의 총조립직장에서 “첨단수준의 기계제품들”이 조립된다고 한다. 그 기계공장이 조립생산하는 첨단수준의 기계제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의 어느 작업장을 현지지도하는 <사진 1>의 배경에 노동자들의 작업모습이 멀리 보이는데, 그들의 작업대상은 미그-29 추격기(intercepter)다. 그 미그-29 추격기는 상부를 진록색으로 칠했고, 하부를 푸른색으로 칠한 것인데, 흰색으로 칠한 기체번호도 보인다.

▲ 사진2, 미그29     © 자주시보

그런데 <중앙일보> 2015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경부터 조선에서 미그-29 추격기와 미그-23 추격기의 도색을 새로운 형태와 색상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한다. 상부를 진록색으로, 하부를 푸른색으로 칠한 종래의 도색은 위에서 보면 지상의 짙푸른 색조와 비슷하게 보이고, 아래에서 보면 하늘의 파란 색조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칠한 것인데, <사진 2>에 나온 것처럼 최근에 교체된 도색은 옅은 회색 바탕에 군데군데 짙은 회색 얼룩무니를 상부에 칠하고, 옅은 하늘색을 하부에 칠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형태와 색상으로 바꾼 것은 추격기가 근접공중전에 돌입했을 때, 교전상대가 멀리서 맨눈으로 추격기와 구름을 구분하기 힘들도록 도색한 것이다. 근접공중전에 대비한 도색교체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3, 북 전투기 생산 공장 추격기     © 자주시보

그런데 <사진 1>에 나온 것처럼, 노동자들이 작업 중인 미그-29 추격기는 아직 도색을 교체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정황은 그들이 미그-29 추격기를 정비수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와 달리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4년 8월 9일 그 공장을 현지지도할 때 촬영된 <사진 3>에서는 노동자들이 아직 도색하지 않은 새 추격기를 조립하는 작업모습이 보인다. 위의 두 사진은 그 공장이 미그-29 추격기를 조립생산하고 정비수리하는 비행기공장임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1995년 7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1994년부터 러시아의 항공기제작기술을 도입하여 해마다 미그-29 추격기를 14대 정도 조립생산하고 있는데, 1995년 현재 그 기종을 40여 대 보유한 것으로 보이며, 그런 생산추세라면 1998년에는 미그-29 추격기 100여 대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고 하였다. 한국국방정신교육원도 1997년 1월 2일에 발표한 자료에서 조선이 미그-29 추격기를 연간 15대씩 조립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것은 조선이 1994년부터 미그-29 추격기의 핵심부품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다른 부품은 국내에서 생산하여 조립하는 방식으로 그 기종을 연간 14~15대씩 면허생산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그-29 추격기를 면허생산하는 공장은 조선에 하나밖에 없으므로,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은 미그-29를 비롯한 각종 추격기를 면허생산하는 대형비행기공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기사에 따르면,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가감비행기공장에서는 군용항공기를 조립생산하고, 평안북도 방현에 있는 방현비행기공장에서는 군용항공기를 정비수리한다는 것인데, 이런 정보에 따르면,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기계공장”은 군용항공기를 조립생산하는 가감비행기공장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2014년 8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동렬 동무가 사업하는 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1950년대 군자리로동계급이 발휘한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2015년 4월 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비행기공장의 노동계급은 “1950년대 군자리로동계급이 발휘한 정신으로 투쟁”하고 있다고 한다. 군자리는 평안남도 성천군의 산골지명인데, 6.25전쟁 시기 김일성 주석은 원래 평양의 평천구역에 있었던 첫 지상병기공장을 그 산골로 옮겨 전시지하병기공장을 건설하도록 지시하였다. 당시 미국 공군의 무차별공습으로 조선의 땅 위에 있는 모든 물체가 파괴되었으나, 군자리로 이전된 지하병기공장은 중단 없이 무기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다. 

6.25전쟁 당시 무기증산으로 전쟁승리를 보장하려는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운 군자리지하병기공장 노동자들은 평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로동신문> 2014년 5월 22일부 기사에 따르면, 그들은 “24시간 교대 없이 일하면서 밀려드는 잠을 이겨내기 위해 눈에 나무꼬챙이를 뻗쳐놓고 선반을 돌”렸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와 한쪽 호주머니엔 통강냉이알을, 다른 호주머니엔 소금을 넣고 씹으며 포신을 깎고 수류탄을 조립”하였으며, 전기공급이 끊긴 때는 “손으로 선반의 피대를 돌리면서” 무기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든 기관단총을 밀폐갱도 안에서 5분이 멀다하게 시험사격하는 바람에 고막이 터졌어도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에서 ‘군자리정신’은 자력갱생과 간고분투, 자기희생과 혁명적 낙관주의를 뜻하는데, <조선중앙통신> 2015년 4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오늘 가감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은 그런 ‘군자리정신’의 계승자들이라고 한다. 보도기사는 가감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군자리정신’으로 “투쟁함으로써 당에서 제시한 전투적 과업을 목표별, 단계별로 훌륭히 수행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조선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하늘의 결사대로 용맹을 떨치는” 조선의 은빛날개를 위해 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군자리정신’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전투적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2014년 12월 25일 한국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 ‘북한 및 주변국 군사력 현황’에 따르면, 조선의 항공기는 2012년에 1,350대였는데, 1년 만에 230대가 늘어나 1,580대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이 보유한 항공기들 가운데 민간항공기는 고려항공이 운용하는 여객기와 화물기 19대밖에 없고 나머지는 군용항공기들이므로,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년 동안 늘어난 항공기 230대는 군용항공기들이다. 따라서 가감비행기공장에서는 1년 동안 각종 군용항공기를 매달 평균 19대씩 생산한 셈이니, 대단한 생산능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군용항공기를 매달 평균 19대씩 생산하는 그 비행기공장에서 최근 어떤 특기할 사변이 일어난 것일까?

▲ 사진4, 경비행기 과업     ©자주시보


2. 마침내 항공기 국산화에 도전하다
 
2015년 4월 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4년 8월 가감비행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여러 가지 최첨단기계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함께 경비행기들을 만들 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고 한다.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비행기공장을 현지지도한 날은 2014년 8월 9일이다.

조선에서는 최고영도자의 현지지도를 받은 것만도 영광인데, 가감비행기공장은 현지지도와 과업을 모두 받았으니 더없는 환희와 격정으로 들끓었을 것이다. 조선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친혈육의 정으로 맺어진” 최고영도자와 인민의 혼연일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자기들의 최고영도자로부터 과업을 받고 격동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최고영도자가 준 과업을 받아안은 그들은 ‘군자리정신’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자기들의 지혜와 열정을 바쳐 지난 7개월 동안 그 두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비행기공장에 준 두 가지 과업 가운데 “경비행기들을 만들 데 대한 과업”은 어떤 과업인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최첨단기계제품을 개발하는 과업”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2015년 4월 1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기계제작공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최첨단설비들을 개발한 데 이어 계렬생산에 진입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고, “최첨단설비들을 개발하는 과정에 세계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경이적인 과학기술성과를 이룩”함으로써 조선의 “기계제작공업을 도약시킬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크게 치하하였다.

위의 보도내용은 가감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지난 7개월 동안 비상한 노력으로 최첨단기계제작설비들과 경이적인 과학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개발한 최첨단기계제작설비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경이적인 과학기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미그-19 추격기를 비롯한 각종 군용항공기를 조립생산하는 비행기공장에서 최첨단기계제작설비들과 경이적인 과학기술을 개발하였다면, 그것은 제트엔진(jet engine)을 만드는 기계제작설비들과 제트엔진을 개발하는데 요구되는 과학기술을 개발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원래 가감비행기공장에서는 1994년 4월부터 20년 동안 미그-29 추격기를 면허생산해왔는데, 미그-29 추격기에 들어가는 다른 부품들은 자체로 생산하였으나 제트엔진과 항공전자장비는 러시아에서 수입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조선이 미그-29 추격기를 자체로 생산해오면서도 그 추격기에 조선식 기종명칭을 붙이지 못하고 기존 러시아식 기종명칭으로 부르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로켓엔진을 자체 기술로 만들어내는 조선이 왜 미그-29 추격기 제트엔진은 자체 기술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초음속항공기 제트엔진을 자체 기술로 만드는 기술강국은 5대 핵보유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뿐이다. 그 밖에도 몇 나라가 초음속전투기를 생산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위에 열거한 기술강국과 맺은 기술제휴를 통해 제트엔진제작기술을 도입하거나 그 나라들에서 만든 제트엔진을 수입하는 판이다. 

▲ 사진5, 제트엔진     © 자주시보

제트엔진을 생산하는 기술강국 가운데 그 분야의 기술수준이 가장 뒤떨어진 나라는 중국이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제트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20년 동안 힘써온 중국이 제트엔진개발에 성공한 해는 2009년이다. <사진 5>에 나온 중국산 터보팬(turbofan) 제트엔진 WS-10은 미국의 거대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B-1 전략폭격기를 위해 개발한 군용제트엔진 F101을 개조한 민수용제트엔진 CFM-56을 역설계하여 만든 것이다. 중국은 제트엔진 WS-10을 개발하는 과정 중에 설계기술, 소재기술, 부품기술 등을 독자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무려 300가지 이상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였다.

중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제트엔진을 독자적으로 만들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최첨단과학기술과 고난도기계공학기술을 축적해야 하는데, 조선은 미그-29 추격기를 면허생산해온 지난 20년 동안 제트엔진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력을 나름대로 축적해왔으나, 아직 완성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감비행기공장의 기술자, 노동자들이 제트엔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계제작설비들을 만들었고, 그와 관련된 과학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이런 성과는 조선의 제트엔진개발사업에서 획기적인 기술발전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우리식의 제트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심하였고, 100% 국산화된 항공기를 생산하려는 아름찬 목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에서 최대 명절로 경축하는 태양절을 맞은 지난 4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항공기개발부문의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당일군들을 모두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마당으로 불러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였던 것이며,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그들이 이번에 새로 개발한 과학기술성과를 보도할 때 ‘경이적’이라는 형용사를 썼던 것이다.   

▲ 사진6, 평양약전기계공장 김정은 위원장 현지지도     © 자주시보

조선에서 미그-29 추격기 같은 신예기종을 독자적으로 생산하려면, 제트엔진 이외에도 항공전자장비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가감비행기공장을 현지지도한 날로부터 1주일이 지난 2015년 4월 7일 평양약전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였는데, 그 공장이 각종 전자장비를 생산하는 곳이다.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약전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기성기술문헌에도 없고 남들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최첨단약전기계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새 제품개발사업을 힘있게 벌리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였다. 그 공장에서는 추격기 신예기종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항공전자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가감비행기공장에서 제트엔진을 개발하고, 평양약전기계공장에서 항공전자장비를 개발하면, 조선은 100% 국산화된 추격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고,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항공기생산국의 지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중국은 20년 걸려 제트엔진을 만들었는데, 지난 20여 년 동안 미그-29 추격기 면허생산으로 기술력을 축전해온 조선이 어찌 제트엔진을 만들지 못하겠는가. 지금 조선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자력갱생, 간고분투로 탄탄히 축적해온 과학기술기초역량이 모든 생산전선에서 분출되는 가운데 항공기개발부문도 기술진전의 가속도를 내고 있다. 

▲ 사진7, 북이 생산한 경비행기 중 단엽비행기     © 자주시보


3. 조선산 단엽경비행기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가감비행기공장을 현지지도하였던 2015년 3월 31일, 그 공장에서 만든 두 종류의 경비행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7>에 나온 그 경비행기들은 외형만 보고서도 금방 구분할 수 있는데, 기체에 녹색, 붉은색, 푸른색이 복합적으로 칠해진 복엽경비행기는 군용이고, 기체를 흰색으로 칠한 단엽경비행기는 민용이다.

▲ 사진8, 단엽 경비행기를 직접 시범조종하는 김정은위원장     © 자주시보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의 로동계급이 만든 비행기인데 자신께서 타보아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계급이 좋아할 것이며 더 높은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진 8>에 나온 것처럼 몸소 경비행기에 올라 시험비행을 하였다. 

갓 출고된 새 비행기의 시험비행은 비행사라고 해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비행경험이 많은 숙련비행사들이 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비행성능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 새 비행기를 타고 시험비행을 하는 것에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최고영도자가 갓 출고한 새 비행기에 올라 몸소 시험비행을 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사진9, 청소년 시절, 비행조종술을 배우는 김정은 제1위원장     © 자주시보
▲ 사진10, 군용수송기를 직접 운전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     © 자주시보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시험비행장에 나온 군지휘관들, 경호책임자들, 비행기공장 관계자들은 최고영도자가 시험비행을 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 만류했을 것이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결심대로 비행기 조종석에 올랐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상황을 압도하는 배짱과 담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비행기조종술에도 정통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진 9>는 비행기조종술을 배우는 청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고, <사진 10>은 군용수송기를 조종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항공군 강화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면서 항공무력의 최전성기를 펼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번에 시험비행을 마친 복엽경비행기와 단엽경비행기는 조선이 100% 국산화한 경비행기들이다. <조선중앙통신> 2015년 4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가감비행기공장 기술자, 노동자들은 “우리의 힘과 기술로 모든 것이 국산화된 경비행기들을 훌륭히 만들어”냈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조선산 경비행기들의 제원과 성능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유사기종 경비행기들의 제원과 성능을 알아보면서 조선산 경비행기들의 제원과 성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산 경비행기들 가운데 복엽경비행기에 관한 글은 앞으로 1주일 뒤에 발표할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단엽경비행기에 관해서만 논한다.

▲ 사진11, 쎄스나 경비행기와 비슷한 북의 단엽 경비행기    © 자주시보

▲ 사진12, 쎄스나172     © 자주시보

<사진 11>에 나온 조선산 단엽경비행기는 미국산 단엽경비행기 쎄스나(Cessna) 172와 흡사하다. <사진 12>에 나온 4인승 단엽경비행기 쎄스나 172의  최고속도는 시속 302km, 항속거리는 1,289km이며, 이륙활주거리는 170m, 착륙활주거리는 180m다. 이 단엽경비행기 가격은 2014년을 기준으로 미화 36만4,000달러다. 조선산 단엽경비행기도 미국산 쎄스나 172와 유사한 제원 및 성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쎄스나 172는 이제껏 43,000대나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경비행기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오늘 이 기종을 훈련기, 공중감시기, 정찰기 등 군용기로 사용하는 나라는 23개국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선산 단엽경비행기도 민군겸용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단엽경비행기를 대량생산하게 되면 조선의 민간항공교통이 급속히 발전될 것이다. 산악지대가 발달한 조선에서 철도를 현대화하고 고속도로를 증설하는 것은 시간과 경비를 많이 요구하는 장기사업이다. 예컨대, 조선과 러시아는 250억 달러를 들여 조선의 철도 3,500km를 앞으로 20년 동안 현대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는데, 그 길이는 조선 철도 총연장의 절반에 해당한다. 조선 철도 총연장 7,000km를 전부 현대화하려면 40년 동안 500억 달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장기사업을 완결하기까지 조선의 교통부문을 우선적으로, 빠르게 발전시킬 가장 유력한 교통수단은 경비행기다.

조선의 민간항공교통이 발전할 잠재력은 풍부하다. 이를테면, 조선에는 비행장 25개소, 예비비행장 26개소가 있는데, 그 비행장들은 모두 군용비행장들이지만, 그 가운데 군민이 공용할 수 있는 비행장이 상당수에 이른다. 또한 항공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수많은 예비조종사들이 민간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할 수 있다. 조선에서 생산된 단엽경비행기들이 그 비행장들을 오가는 날, 조선의 민간항공교통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4. 석유생산 늘어나니 하늘길도 열리더라

조선에서 민간항공교통이 발전할수록 그에 따른 항공유소비량도 당연히 늘어나게 된다. 조선에서 민간경비행기를 생산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제작기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민간항공교통에 필요한 항공유를 원만히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조선산 경비행기를 대량생산하게 되었으니, 항공유수급문제도 해결된 것일까? 조선의 항공유수급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의 통계자료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 현재 조선은 13개월째 중국산 원유를 한 방울도 수입하지 않았다. 조선의 원유수입선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어서 그렇지 않겠는가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 조선이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는 약 4만5,000t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의 원유수입량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에 252만t, 2010년에 52만t이었는데, 2014년에는 4만5,000t으로 급감했다. 1990년에는 조선에서 원유가 생산되지 않았으므로, 당시 원유수입량 252만t은 원유수요량과 맞먹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2014년도 원유수요량은 1990년에 비해 크게 늘어 300만t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조선은 2014년에 원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았다. 이것은 산업생산과 자동차 운행이 전례 없이 증가하고 있는 오늘, 2,4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사회주의공업국가가 300만t 이상에 이르는 원유수요를 자국산 원유로 충족시키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은 산유국이다. 조선은 이미 1970년대에 서조선만 대륙붕에서 해저유전을 발견하였는데, 1980년대 중반에는 그 해저유전에서 뽑아올린 원유를 정제하여 휘발유를 생산하면 자동차 운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독일산 벤츠 승용차와 외형이 비슷한 승용차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승용차 운행이 증가하리라고 예상하는 차원을 넘어 경비행기 운항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한국경제> 2011년 4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평안남도 안주분지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연간 20만t이고, 함경북도 라선지역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연간 10만t이다. 그 두 유전의 원유생산량을 합해봐야 연간 30만t밖에 되지 않으니, 나머지 270만t 정도의 원유가 쏟아져 나오는 거대유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거대유전은 서해안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서조선만 대륙붕분지에 있는 해저유전이다. 

놀랍게도, 서조선만 해저유전의 원유매장량은 53억3,000만t이다. 2008년 4월 15일 브라질 정부는 매장량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카리오카(Carioca) 해저유전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국제사회는 브라질의 대형유전발견으로 그 나라의 국제위상이 달라졌다고 모두 부러워했다. 그런데 카리오카 해저유전의 원유매장량은 45억t이고, 대륙붕유전이 아니라 수심 2.1km에 내려가 있으며, 암반처럼 단단한 해저소금층을 수직으로 2km나 더 파고 내려가야 퍼낼 수 있는 심해유전이다. 그런데 서조선만 해저유전은 매장량에서 카리오카 해저유전을 크게 앞지를 뿐 아니라, 수심이 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얕은 바다속 뻘밭에 있으니 경제성과 채굴용이성으로 따지면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유매장량이 9억8,000만t이라는 중국 보하이(渤海)만 해저유전의 연간 생산량은 100만t인데, 원유매장량이 53억3,000만t이나 되는 서조선만분지의 해저유전에서는 지금 얼마나 많은 원유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위급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조선의 유전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하자고 제안하였지만, 그 제안은 한 발 늦은 것이었다. 조선은 이미 2005년 12월에 중국과 ‘해상원유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협정은 조선과 중국이 공동으로 서조선만 해저유전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 사진13, 해저석유시추시설     © 자주시보

동경 124도선이 종단하는 서조선만분지는 중국의 북황해분지와 잇닿아 있어서, 조선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이 그 해저유전지대에서 서로 겹쳐진다. 조선이 서조선만 해저유전을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서조선만 해저유전에 관련된 보도사진이 언론에 나온 적은 없으나, 서조선만 한복판에 <사진 13>에 나온 것과 같은 거대한 해상원유채굴갑판(offshore oil platform)이 세워져 원유를 대량으로 뽑아올리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압록강 하구의 광활한 삼각주를 원유매장지로 지정하였다. 압록강 하구의 광활한 삼각주는 조중국경선이 지나는 접경지대이므로 조선과 중국이 그 지대의 유전도 서조선만 해저유전처럼 공동으로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의 유전은 서해 대륙붕과 서해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강원도 원산 앞바다의 동조선만분지에서도 해저유전이 발견되었다. 조선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조선의 원유총매장량은 최소 70억t에서 최대 87억t에 이른다. 세계 산유국들의 원유매장량 순위를 보면, 세계 8위인 러시아의 원유매장량이 109억t이고, 세계 9위인 리비아의 원유매장량이 66억t인데, 조선의 원유매장량은 최소 70억t에서 최대 87억t이니, 조선은 러시아의 뒤를 이어 세계 9위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세계 굴지의 석유자원부국이다.    

주목하는 것은, 요즈음 조선의 원유수입량은 거의 영에 가깝고, 그 대신 항공유수입량이 증가하였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2015년 1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2014년 한 해 동안 각종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항공유 13,000t을 중국에서 수입하였는데, 이것은 자국산 항공유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을 만큼 조선의 항공유 수요가 급증하였다는 뜻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4년 5월 9일 처음으로 전용기를 타고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에 참석한 이후 현지시찰에 전용기를 가끔 이용하는 것은 민간항공교통시대의 개막을 예고한 획기적인 사변인데, 실제로 2014년 7월부터 고려항공은 평양을 출발하여 함경남도 선덕과 어랑, 량강도 삼지연을 오가는 3개 국내정기항공노선을 신설,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조선에서 국내민간항공교통이 증가하는 것은 관광업 증진에도 추진력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조선의 석유증산은 민간항공교통만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야전기동훈련도 확대시킨다. 조선인민군은 2007년부터 전차, 장갑차, 함선, 군용항공기 같은 유류소모량이 많은 중무장장비들을 동원한 대규모 기동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5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비행훈련은 군용비행장 상공에 짧은 시간 체공하면서 선회하는 종전 방식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군용비행장으로 이동하거나 장시간 체공하면서 지상공격을 연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며, 비행훈련횟수도 6배 정도 급증하였다고 한다. 중무장장비를 동원한 야전기동훈련에서는 막대한 유류가 소모되는 것이니, 그만큼 석유생산이 늘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조선에서 민간항공교통이 활성화되고 야전기동훈련이 확대될수록 석유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세계 9위의 원유매장국은 그런 추세에 맞춰 석유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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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붉은 핵탄 앞에서 헛발질하는 미국

[한호석의 개벽예감](154)
자주신보 2015년 04월 13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고트니 사령관은 기자회견에서 무엇을 말하였는가?
2.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에서 진행된 심야회의
3. 칸의 회고, 쿠마체브의 발언, 크루취코브의 보고
4. 미국의 억제전략위원회 결성은 헛발질이다 

▲ [사진1]미국북부사령부 제6대 사령관이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제23대 사령관인 윌리엄 고트니(William E. Gortney) 해군제독     ©자주시보


1. 고트니 사령관은 기자회견에서 무엇을 말하였는가?
 
2015년 4월 7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회견장에 나온 사람은 미국북부사령부 제6대 사령관이며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제23대 사령관인 윌리엄 고트니(William E. Gortney) 해군제독이다. <사진 1> 그의 발언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가 지휘하는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무슨 임무를 수행하는지 알아야 한다.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주의 피터슨공군기지에 자리를 잡은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미국 본토, 알래스카, 캐나다를 포괄하는 북미대륙공역(空域)의 공중정찰, 공중작전통제, 공중방어를 맡은 항공우주전략지휘부다. 만일 그 지휘부가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적국의 공격징후를 탐지하지 못하면, 미국 본토는 치명적인 핵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처럼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우주전략지휘부의 사령관이 기자회견에 나왔으니, 취재진의 질문공세가 빗발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의 회견내용 중에서 조선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에 소형핵탄을 장착하여 작전배치하였다는 발언내용만 보도하였고, 더욱이 그의 그런 발언내용이 미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한 한국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을 후속보도로 내보내는 바람에 국민들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에 조선이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요격하는 임무를 맡은 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조선이 소형핵탄을 그 미사일에 장착하였다고 밝혔는데도, 그 발언이 미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보도한 한국 언론매체들의 행태는 말장난으로 보인다.

윌리엄 고트니 사령관의 4월 7일 회견내용 중에서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은, 더 중요한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언론매체 <워싱턴자유횃불(WFB)> 2015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기자회견에서 고트니 사령관은 미국이 직면한 세 가지 군사문제를 거론했다. 그가 거론한 순서대로 열거하면, 중국이 남중국해에 배치한 진급(晉級) 핵추진잠수함, 조선이 작전배치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그리고 러시아가 미국 본토 남쪽의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상공에 출현시키는 Tu-160 전략폭격기다. 

그런데 고트니 사령관은 중국의 진급 핵추진잠수함 3척에는 아직 수중발사탄도미사일이 탑재되지 않았으며 미국 본토 쪽으로 접근하여 순찰하지도 않고 있다고 밝혔고,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미국 본토 남방상공에 출현한 사태에 대해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핵추진잠수함이나 러시아의 전략폭격기는 미국에게 위험요인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한 내용을 뒤집어보면, 미국에게 위험요인으로 되는 것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핵탄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고, 또 그런 적대적 발언을 해야 할 처지도 아니다. 중국의 핵추진잠수함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미국 본토에 인접한 바다나 하늘에 출현해도, 그것은 실전연습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압박 또는 대러시아압박에 맞선 대응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에서 조선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전혀 다른 처지에 있다. 조선과 미국이 격전을 벌였던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전쟁재발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 영토의 절반인 “남조선을 타고앉은 미제침략군”은 한국군과 함께 평양을 점령하기 위한 대규모 실전연습을 감행해온다는 것이다. 이 글을 집필하는 지금도 미국군과 한국군은 ‘독수리연습’을 감행하는 중이다.
 
만일 러시아 남부지역을 점령한 미국군이 그 점령지에서 독일군과 함께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한 대규모 실전연습을 주기적으로 감행한다면, 러시아는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미국과 싸워 자기의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만일 중국 남부지역을 점령한 미국군이 그 점령지에서 일본자위대와 함께 베이징을 점령하기 위한 대규모 실전연습을 주기적으로 감행한다면, 중국은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미국과 싸워 자기의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이 왜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작전배치하고, 즉시 전쟁에 돌입할 격동적인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남측은 북측을 자신의 영토라고 여기겠지만 조선은 조선대로 자국 영토가 미국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지고, 미국군이 그 남반부를 점령하였다고 보는 분단원년으로부터 무려 70년이 지난 올해 2015년에 그들이 ‘조국통일대전’이라 부르는 최후결전을 준비하였고, 그것을 결행할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 [사진2] 샤이엔산악복합체Cheyenne Mountain Complex)라고 불리는 샤이엔기지는 화강암층 산을 뚫고 건설한 지하기지     © 자주시보

조미관계에서 그런 상황이 조성되었으니 미국군 수뇌부가 조선의 화성-13호를 자기들에게 가장 위험한 요인이라고 지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트니 사령관은 4월 7일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피터슨공군기지에서 샤이엔기지로 옮길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샤이엔산악복합체Cheyenne Mountain Complex)라고 불리는 샤이엔기지는 화강암층 산을 뚫고 건설한 지하기지인데, 핵공격, 전자기파공격, 화학탄공격, 생물학탄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된 난공불락의 요새다. 그 거대한 지하요새는 30메카톤급 전략핵탄(일반폭약 2,000만t의 파괴력)이 반경 2km 안에서 폭발해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본토의 항공우주방어임무를 맡은 사령부가 지상기지를 떠나 지하요새로 들어가는 긴급이전조치는, 미국군 지휘부가 미국 본토를 핵타격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조선의 초강경한 발언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2.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에서 진행된 심야회의

역대 미국 국방장관들 가운데서 미국의 항공우주전략지휘부를 1박2일 동안 시찰한 사람은 척 헤이글(Chuck Hagel)밖에 없다. 그는 국방장관에 재임 중이던 2013년 6월 27일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시찰하였고, 이튿날 샤이엔기지도 시찰하였다. 미국 국방장관이 펜타곤 집무실을 떠나 현장을 시찰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인데, 미국 본토에서 1박2일 일정으로 현장시찰을 한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다. 그가 항공우주전략지휘부를 시찰한 까닭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조선의 핵타격준비태세가 매우 위협적임을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척 헤이글 당시 국방장관이 항공우주전략지휘부를 시찰하기 3개월 전에 일어난 심각한 사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3년 3월 28일 정오쯤 미국 본토에서 발진한, 검은 박쥐처럼 생긴 B-2A 스텔스 전략폭격기 2대가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의 직도 상공에 나타나 공중핵타격예행연습을 감행하였다. 명백하게도, 그 예행연습은 항모타격단을 동원하는 것보다 자극강도를 훨씬 더 높인 전쟁광기였다.

그로부터 약 12시간이 지난 2013년 3월 29일 0시 30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에서 작전회의를 소집하였다. 그 작전회의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비롯한 각종 핵탄미사일로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을 “사정을 보지 말고 타격”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비준하였고, 조선인민군 전략군에 사격대기명령을 하달하였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긴박한 전투동원태세에 돌입하였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의 핵타격은 적국에게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는 빨찌산식 불시기습선제타격이 될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조선의 타격징후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2013년 3월 29일 당시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최고사령부에서 진행된 핵타격작전회의를 보도한 것은, 당시 조선이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을 실제로 타격하려고 하였던 것은 아니고,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키며 전쟁광기를 부린 미국에 맞서 군사대응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그러한 군사대응조치는 통상적인 조치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의 날,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을 핵탄으로 불시에 기습타격할 수 있음을 예고한 징표로 된다. 미국은 그런 징표를 정확히 읽었고, 그래서 미국 국방장관이 항공우주전략지휘부를 2박3일 일정으로 시찰하였던 것이다. 

▲ [사진3]     © 자주시보

전시에 조선이 발사한 핵탄들이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으로 불시에 날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사진들이 있다. <사진 3>은 그 날 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핵타격작전회의가 진행된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 내부를 촬영한 것인데, 벽면에 고정설치된 두 개의 작전지도와 이동식 거치대에 걸려있는 작전지도에 시선이 멎는다. 그 사진을 확대하면, 왼쪽 벽면에 고정설치된 작전지도는 미국의 태평양작전구역을 표시한 것이고, 오른쪽 벽면에 고정설치된 작전지도는 일본자위대 기지를 표시한 것이고, 이동식 거치대에 걸린 작전지도는 미국 본토를 표시한 것이다.

▲ [사진4]     © 자주시보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본토를 표시한 작전지도에는 네 줄의 타격선이 그어졌는데, 그 직선의 끝은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 있는 핵타격대상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 네 줄의 타격선 가운데 위로부터 두 번째 타격선은 피터슨공군기지를 가리키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조선이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핵탄으로 타격하려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에 조선이 미국북부사령부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핵탄으로 타격하려는 것은, 미국의 ‘두 눈’을 뽑아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사진을 확대하면,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실 왼쪽 벽면의 작전지도 옆에 벽면게시판이 고정설치되었는데, 거기에 “잠수함 40척, 상륙함 13척, 소해함 6척, 보조함선 27척, 비행기종 1,852대”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미국의 태평양작전구역에 배치된 군사장비수량을 열거한 것이다.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같은 다른 군사장비수량은 다른 쪽 벽면게시판에 적혀있는데 사진촬영각이 좁아 거기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 모든 군사장비들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선제핵타격목표라는 점은 명백하다.

미국과 전쟁을 할 필요가 없는 중국은 다른 나라를 핵탄으로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조선은 그런 선언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선은 그런 선언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미국의 선제핵타격전략에 대응해야 하는 조선의 선택은 선제핵타격전략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는 조선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면서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제핵타격연습에 집착해오는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에게 조선이 부질없는 외교발언을 건네야 하는가? 


3. 칸의 회고, 쿠마체브의 발언, 쿠르취코브의 보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제각기 추론한다. 미국의 저명한 핵물리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는 2014년 12월 11일에 진행된 대담에서 조선의 핵탄보유량이 2016년까지 20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의 조선문제전문가 로벗 칼린(Robert L. Carlin)은 2015년 2월 11일에 진행된 토론회에서 조선의 핵탄보유량이 2017년까지 최대 60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의 조선문제전문가 조엘 위트(Joel S. Wit)는 2015년 2월 24일에 진행된 대담에서 조선의 핵탄보유량이 2020년까지 최대 100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2010년 2월 10일에 발표한 논문에서 조선의 핵탄보유량이 2019년까지 14~18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은 추산값을 크게 올려잡았다. 아무리 추산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제각기 들쭉날쭉한 것을 보면, 조선의 핵탄보유량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추산은 신뢰도가 너무 낮다.  

나는 2006년 10월 10일에 발표한 글 ‘북(조선)이 개시한 핵실험 대공세에 대하여’에서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50발 정도로 추산한 바 있다. 9년 전에 그 글을 읽었던 독자들은 나의 그런 추산을 과대추산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지금도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최대 10발이라고 추산하는데, 9년 전에 내가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50발로 추산하였으니, 나의 그런 추산이 당시 독자들의 눈에 과대추산으로 비친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9년 전에 내가 추산한 조선의 핵탄보유량은 과대추산이 아니라 과소추산한 것이다. 그 글을 집필하였던 2006년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중요한 정보들이 지난 9년 동안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진 정보들은 2006년 당시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50발 정도로 보았던 나의 추산이 과소추산이었음을 입증하였다.    

2006년 당시 나는 조선의 핵탄제조기술이 파키스탄의 핵탄제조기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50발 정도라고 추산한 것인데, 그것은 정보부족으로 생긴 착오였다. 그 동안 새로 밝혀진 관련정보들에 따르면,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9년 전에도 조선은 핵탄제조기술에서 파키스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조선이 핵탄제조기술에서 파키스탄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사진5] 파키스탄핵실험     © 자주시보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에서 그 나라 역사상 첫 핵실험이 실시되었다. 이 핵실험은 5월 2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된 것이다. 라스코산악의 화강암층에 뚫은 수평갱에서 실시된 첫 번째 핵실험은 핵탄 5발을 연쇄폭발시킨 것이었는데, 거대한 산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하였다. <사진 5>에서 흰색 기체가 산을 뒤덮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산이 통째로 흔들리면서 일어난 거대한 모래폭풍이다. 그와 달리, 카란사막에 파놓은 수직갱에서 실시된 두 번째 핵실험은 핵탄 1발만 폭발시킨 것이었다. 왜 핵탄 6발을 한 장소에서 실험하지 않고, 5발을 실험하고 이틀 뒤에 핵실험장을 바꿔 1발을 더 실험한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그 사연은 지난날 파키스탄 핵개발사업을 지휘한 총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Adul Qadeer Khan)의 회고에서 밝혀졌다. 그는 조선의 핵탄제조기술에 관해 외부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핵과학자이며, 조선의 핵탄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었음을 국제사회에 알려준 유일한 정보전달자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999년에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당시 파키스탄의 기술로는 만들지 못하는 조선의 핵탄 3발을 직접 관찰하였다고 한다. 지름이 약 60cm인 그 핵탄은 64개의 신관을 정밀하게 연결한 폭선뇌관이 설치된 소형핵탄이었다. 지름이 약 60cm인 소형핵탄의 무게는 400~500kg이다. 이처럼 소형화된 핵탄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와 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에 장착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4축8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사거리 700km의 단거리미사일 화성-6호에도 장착된다. 1988년에 화성-6호 시험발사에 성공한 조선은 1990년부터 화성-6호를 매달 4~8발씩 대량생산하면서 다른 나라들에 수출까지 하였는데, 지난 25년 동안 그처럼 대량으로 생산해왔으니 지금은 화성-6호 약 2,000발이 작전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다른 미사일들은 그만두고 화성-6호만 집중발사해도 군사분계선 이남지역 전체가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칸의 회고에 따르면, 1998년 5월 30일 카란사막에서 실시된 핵실험은 원래 핵탄 2발을 실험하려고 준비한 것이었는데, 첫 번째 핵탄을 실험하고 나서 두 번째 핵탄은 실험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첫 번째 핵탄의 실험성공으로 기대성능지표들에 도달하였고, 따라서 두 번째 핵탄을 실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5월 28일의 핵실험에 사용된 5발의 핵탄과 달리, 5월 30일의 핵실험에 사용된 1발의 핵탄은 당시 파키스탄의 핵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핵탄이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였다. 파키스탄에 우라늄을 농축하는 시설은 있으나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시설은 없는데, 5월 30일의 핵실험에 사용된 1발의 핵탄은 파키스탄에서 만들지 않은 플루토늄핵탄이었다. 이것은 조선이 미국의 감시와 정찰을 따돌리고 카란사막에서 자기의 핵탄을 사용하여 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말해준다.

그것만이 아니다, 5월 30일의 핵실험에서 일어난 핵폭발력은 2~6킬로톤이었는데, 당시 파키스탄은 그런 소형핵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지 못하였다. 소형핵탄을 만들려면, 핵탄에 삽입하는 반사체(reflector)의 무게와 두께를 소형화하는 기술, 고폭장약이 폭발할 때 핵물질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반사재(tamper)를 소형화하는 기술, 핵탄 안에서 중성자를 발생시키는 기술, 핵탄에 삽입하는 정교한 기폭장치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당시 소형핵탄을 제조하지 못하던 파키스탄에서 소형핵탄을 사용한 핵실험이 진행된 것은, 조선이 카란사막에서 자기의 핵탄을 사용하여 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말해준다.

더 놀라운 것은, 5월 30일의 핵실험에 사용된 1발의 소형핵탄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핵탄두였고, 출력강화기술로 폭발력을 300~400% 증폭시킨 증폭핵분열탄이었다는 사실이다. 증폭핵분열탄은 고폭장약기폭으로 핵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발생하는 플라즈마상태에서 이중수소와 삼중수소가 부분적인 핵융합반응을 일으켜 핵분열을 증폭시키는 고급핵탄이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부분적인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핵융합반응실험에 성공하였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온 날은 2010년 5월 12일이었는데, 조선은 부분적인 핵융합이 일어나는 증폭핵분열탄실험을 1998년 5월 30일에 진행하였다. 
중국이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한 날은 1996년 7월 29일이었는데, 그것은 중국에게 마지막 핵실험이었다. 중국은 그 마지막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미임계핵실험(subcritical nuclear test)만 실시해오고 있다. 핵강국들이 컴퓨터체계로 작동, 통제하는 미임계핵실험을 실시하게 된 이후에는 핵폭발이 일어나는 핵실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도 당연히 미임계핵실험을 실시하고 있는데, 2006년, 2009년, 2013년에 핵실험을 실시한 까닭은 미국의 대북압박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핵실험을 실시한 횟수에서 조선과 중국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중국은 1996년 7월 29일에 실시한 마지막 핵실험으로 증폭핵분열탄제조기술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45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하였는데, 조선은 1998년 5월 30일 핵실험을 연이어 두 차례 실시하기로 준비했다가 첫 번째 핵실험만 실시하고 두 번째 핵실험은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단 한 차례의 핵실험으로 증폭핵분열탄제조기술을 완성하였음을 말해준다. 중국이 45차례의 핵실험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증폭핵분열탄제조기술을 조선이 단 한 차례의 핵실험으로 완성한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처럼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조선이 1998년 5월 30일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하였다는 정보가 공개되어도 국제사회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1998년 5월 30일 이전에도 몇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면, 조선이 1998년 5월 30일 증폭핵분열탄실험에 성공한 것은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국제사회는 조선이 1998년 5월 30일에 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데, 조선이 그 이전에 몇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말을 들으면 농담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카란사막에서 핵실험을 실시하기 4년 전인 1994년 2월 14일 <아전스 프랑스 프레스(AFP)>가 보도한 러시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블라디미르 쿠마체브(Vladimir  Kumachev)의 충격적인 발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조선은 핵탄두(nuclear warheads)를 여러 발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조선이 전체주의정권 하에 있는 일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몇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알고 있다.” 

▲ [사진6] 블라디미르 크루취코브(Vladimir Kruchkov)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위원장     ©자주시보

쿠마체브의 위와 같은 발언이 보도된 때가 1994년 2월이었으므로, 조선은 이미 1980년대에 핵탄을 개발하였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아프리카에서 몇 차례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쿠마체브의 그런 발언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사진 6>에 나온 블라디미르 크루취코브(Vladimir Kruchkov)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위원장이 1990년 2월 22일에 작성하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출한 보고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문제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그 보고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안보위원회가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하여 입수한 정보는 조선에서 핵무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영도자들, 특히 위에 언급한 연구사업을 직접 감독하는 김정일 영도자는 한국에 대한 조선의 군사적 우세를 추구하고 있으며, 핵보유국으로 동참하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정보자료에 따르면, 조선은 평안북도 녕변의 핵연구소에서 핵장치(nuclear device)개발을 이미 끝마쳤다. 조선은 자기들이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와 국제감시기관들에게 감추어야 하므로, 현재 조선이 그 핵무기를 실험할 계획은 없다. 국가안보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검토하기 위해 차후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이상과 같이 보고한다.” 
 
 
4. 미국의 억제전략위원회 결성은 헛발질

위에 열거한 칸의 회고, 쿠마체브의 발언, 크루취코브의 보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은 1980년대에 핵무기를 만들었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핵실험을 실시하였으며, 1998년 5월 파키스탄에서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 뒤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입증하였다.

그런데 2006년 10월까지만 해도 나는 과소평가된 자료만 접하고 있었던 터라,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파키스탄의 핵탄보유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50발이라고 추산하였으니 착오에 빠졌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의 핵탄보유량을 파키스탄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할 게 아니라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조선의 핵탄제조기술이 고도화되어 중국의 핵탄제조기술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증폭핵분열탄제조기술에서 조선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1990년대 후반에 2년으로 좁혀졌다. 

미국 군비통제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가 2015년 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핵탄보유량은 중국 250발, 프랑스 290발, 영국 225발로 추산된다. 핵탄보유량에서 다른 핵보유국을 크게 앞지르는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중국, 프랑스, 영국의 핵탄보유량은 대략 250발 수준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핵탄제조기술에서 중국과 비슷한 수준에 이른 조선도 현재 250발 정도의 핵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서술한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부 보도기사가 말해준 것처럼, 조선의 핵탄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이다. 2013년 4월 1일 조선에서 채택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은 조선의 핵탄이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데 복무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침략의 본거지들’이란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의 전략거점들을 뜻하고, 섬멸적 보복타격이란 핵타격으로 소멸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붉은 핵탄’을 발사하여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구역의 전략거점들을 소멸하겠다는 뜻이다.

▲ [사진7]     © 자주시보

그러면 미국은 조선의 ‘붉은 핵탄’에 맞서 어떤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4월 10일 서울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만나 합의한 사항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사진 7> <연합뉴스> 2015년 4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양국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기술과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이 최정점에 도달했다고 판단,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한미억제전략위원회’를 이달 중 출범시키기로 했다.” 조선의 핵무력이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미국의 최신 정보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조선의 ‘붉은 핵탄’에 대응하기 위해 2011년부터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을 실시해오면서, 2013년 9월 ‘맞춤형 억제전략’을 완성하였고, 2014년 10월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와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CMCC)를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정에 따라 2015년 4월에 결성되는 통합회의체가 억제전략위원회(DCS)인 것이다.

억제전략위원회에서는 조선의 ‘붉은 핵탄’에 대응할 작전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그 작전계획의 중심내용은 2013년 11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언급한 4D작전개념이다. 4D는 방어(Defense),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군은 조선의 타격징후를 탐지하였다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붉은 핵탄’을 발사하면 즉각 고고도, 중고도, 저고도로 요격체를 쏘아올려 파괴하는 다층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다는 것인데, 지난 3월 27일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미국 합찹의장이 최윤희 한국 합참의장과 회담하면서 언급한 통합미사일방어(IAMD)가 다층미사일방어망이다. 다층미사일방어망 구축은 2015년 4월에 결성되는 억제전략위원회가 수립할 새로운 작전계획의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이 억제전략위원회를 결성하는 것도, 그 위원회가 4D작전개념을 가지고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모두 헛발질이다. 그렇게 혹평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국이 구축하려는 저고도미사일방어망(KAMD)은 조선의 ‘붉은 핵탄’을 요격하지 못한다. <문화일보> 2015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저고도미사일방어망으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하므로, 한국군은 미국의 고고도 및 중고도미사일방어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15년 4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고고도 및 중고도미사일방어망도 적국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적국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므로, 이미 100억 달러나 들여 구축해놓은 미사일방어망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고고도, 중고도, 저고도미사일방어망을 모두 통합하여 운용하더라도 조선의 ‘붉은 핵탄’을 요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요격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데도, 미국은 억제전략위원회에서 4D작전개념을 가지고 다층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세우겠다고 하니 현실과 동떨어진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면 불시에 기습발사된 ‘붉은 핵탄’의 첫 타격으로 전쟁승패가 결정될 것인데, 요격성공의 요행수를 바라는 작전계획을 뒤늦게 수립하는 것은 때를 놓친 헛발질이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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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호석의 개벽예감](153)
자주시보 2015년 04월 0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진1


제855부대 작전실에 있는 두 종류의 축소모형물
 
<사진 1>은 2015년 3월 19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인데, 사람들은 이 기념사진이 매우 특별한 사진임을 첫 눈에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총사령관이나 합참의장은 그만두고 사단장만 되어도 휘하 장병들이 그 앞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최고사령관이 휘하 장병들과 격의 없이 어깨를 겯고 기념사진을 찍었으니, 어찌 특별한 사진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친근한 모습은 조선의 최고영도자에 대한 기존인식을 뛰어넘는 실로 파격적인 모습이다. 이 파격적인 기념사진은 조선에서 최고사령관과 전투비행사들이 상명하복의 관계 이전에 혈육의 정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록영화의 제목을 왜 ‘사랑과 믿음’이라고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념사진을 다시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복정장을 입은 야전지휘관의 어깨를 자신의 왼팔로 감싼 모습에 시선이 멎게 된다. 그 야전지휘관은 누구이며, 가죽옷을 입은 다른 비행사들은 누구인가? 무슨 사연이 있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들과 함께 그런 파격적인 기념사진을 찍은 것일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어깨를 겯고 가장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찍은 그 기념사진에 나오는 군인들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비행훈련을 진행한 제855부대의 지휘관들이다. 기념사진에 나온 군복정장차림의 야전지휘관은 그 부대의 김광혁 사단장이고, 비행사복을 입은 다른 지휘관 네 사람은 그 부대의 연대장들이다. 그 다섯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시찰한 제855부대의 야전지휘관들인 것이다. 김광혁 사단장은 2014년 5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에서 미그-21 추격기를 직접 몰고 다른 부대의 비행지휘성원들과 함께 비행술과 폭격술을 겨루었다.

김광혁 소장이 사단장으로 근무하는 제855군부대는 지난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쌓은 정예부대다. 베트남전쟁 중에 미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은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방어하기 위해 수도 외곽에서 공중방어임무를 수행한 수많은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 가운데는 제855부대 소속 추격기 비행사들도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에서 미그-17 추격기를 몰고 미공군과 격전을 벌인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6년 동안 그 연인원이 840명에 이르렀다. 당시 베트남전선에 지원군으로 파병된 조선인민군 추격기 비행사들은 하노이 상공을 침범하는 미해군 함재기와 미공군 전투기 및 폭격기 등 100여 대를 빨찌산식 비행술로 격추하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예컨대, 1969년 5월 28일 미그-17 추격기 8대를 몰고 출격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미공군 F-105 전폭기 12대를 한꺼번에 격추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베트남전선에서 F-105 전폭기가 그처럼 너무 많이 격추당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낙심한 미공군은 그 기종을 베트남전선에서 아예 퇴출시키고 최신형 F-4 전폭기로 대체하는 긴급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전공을 쌓은 하노이상공방어전에 대해서는 2010년 3월 1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미국이 공중전에서 패한 두 전쟁’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958

▲ 사진2     © 자주시보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나오는 <사진 2>는 지난날 하노이상공방어전에서 전공을 쌓은 제855부대의 작전실에 모인 비행사들이 전투비행술을 배우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사단장의 왼쪽에 서 있는 비행사 두 사람이 추격기 축소모형물을 각자 한 개 씩 손에 들고 있는 이 사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광혁 사단장이 지시봉으로 가리키는, 푸른색이 칠해진 특이한 물체다. 그 특이한 물체는 촬영각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 3>에서 정체를 드러내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미해군 소속 니미츠급(Nimitz-class) 핵추진 항공모함을 축소한 모형물이다. 항공군 사단장이 비행사들에게 전투비행술을 교육하는 자리에 추격기 축소모형물 두 대와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보이는 것은,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추격기 두 대로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전투비행술은 많은 추격기들이 사면팔방에서 몰려드는 군집전술(swarming tactics)로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단 두 대의 추격기로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군이 노후기종이라고 얕보는 조선인민군 추격기 두 대가 세계 최강이라는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한다는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반상식으로 믿기 어렵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위의 사진은 전쟁소설의 한 대목을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 실전연습을 촬영한 장면인 것이다.

▲ 사진3     © 자주시보

다시 <사진 3>을 유심히 살피면,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한 가운데 놓여있는 대형탁자 전체에 커다란 판유리가 깔려있고, 그 판유리 밑에 펼쳐진 대형작전지도가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대형작전지도는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의 공격대상지역이 표시된 작전지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대형작전지도는 지난 시기 미국군이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할 때마다 항공모함을 들이밀곤 했던 동해, 서해, 남해의 어느 해안지형이 표시된 작전지도가 아니라, 낯설게 보이는 어떤 반도지형이 표시된 작전지도다. 한미연합군의 해군기지들 가운데 미해군 항공모함이 드나드는 곳은 부산해군기지밖에 없는데, 그곳의 지형은 대형작전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길게 뻗은 반도지형이 아니다. 항공모함이 드나들 수 있는 반도지형의 해군기지는 한반도 어느 곳에도 없다. 

▲ 사진4     © 자주시보

그러면 제855부대의 작전지도에 반도지형으로 표시된 그 지역은 어디일까? <사진 4>는 일본 혼슈(本州) 중부의 간또(關東)지방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미우라반도(三浦半島)의 지형을 단순하게 표시한 약도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인데, 그 약도에 나타난 지형은 놀랍게도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놓인 제855부대 작전지도의 반도지형과 같다. 이러한 정황은 제855부대 전투비행사들이 미우라반도의 지형을 눈에 익히면서 미해군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전투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1차 공격목표는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일본 미우라반도와 미해군 항공모함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 것일까? 일본 도쿄(東京)에서 남쪽으로 65km 떨어진 미우라반도는 도쿄만으로 드나드는 항로에 위치한 전략요충지인데, 바로 그 반도의 한 쪽에 미해군 제7함대가 주둔하는 요코스카(橫須賀)해군기지가 있다.  

요코스카해군기지에 집결한 미해군 제7함대의 무력은 실로 방대하다. 이를테면, 제7함대 지휘함(command ship)인 배수량 19,000t급  블루리지호(USS Blue Ridge), 제5항모타격단 기함(flag ship)인 배수량 104,200t급 초대형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가 거기에 배치되었다. 조지워싱턴호는 앞으로 3년 동안 70억 달러를 들여 원자로 핵연료를 교체하고 전반적인 정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얼마 전 미국 본토 버지니아주에 있는 뉴포트뉴스조선소(Newport News Shipbuilding)로 갔고, 배수량 101,400t급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USS Ronald Reagan)가 조지워싱턴호를 대신하여 요코스카해군기지에 배치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요코스카해군기지에는 배수량 9,800t급 미사일순양함들인 앤티텀호(USS Antietam)와 샤일로호(USS Shiloh)가 배치되었고, 제15구축함대도 배치되었다. 제15구축함대는 배수량 8,900t급 미사일구축함인 커티스윌버호(USS Curtis Wilbur)를 포함하여 같은 급의 미사일구축함 10척으로 편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해상무력이 집결된 군사전략거점이 요코스카해군기지다. 전시에 조선을 공격할 미해군 주력부대가 집결한 군사전략거점은 일본의 요코스카해군기지이고, 전시에 조선을 공격할 미공군 주력부대가 집결한 군사전략거점은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다.

▲ 사진5     © 자주시보

<사진 5>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추격기 축소모형물을 손에 들고 활주로에서 도보비행연습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인데, 활주로에 놓아둔 항공모함 축소모형물이 보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앞둔 요즘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추격기 두 대로 미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를 들이치는 항모공격비행술을 연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미공군 조종사들이 자기들의 전투행동기준을 가지고 조선인민군의 항모공격비행술을 평한다면, 무모하다 못해 황당하다는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조선인민군 추격기 두 대가 항공모함을 공격한다는 말은 미해군 제7함대 사령관 로벗 토머스(Robert L. Thomas) 제독의 귀에 농담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무슨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라, 미해군 제7함대 항모타격단을 수장시킬 항모공격비행술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연습하는 항모공격비행술은 무징후공중매복비행, 초저공무전파비행, 불시도약습격비행을 특징으로 하는 기상천외한 비행술이므로 미국군의 전투행동기준을 가지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결코 그럴 리는 없지만, 만일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한국군 공군조종사들이나 일본항공자위대 조종사들처럼 미국군의 전투교리를 따라배우고, 미국산 전투기를 타면서, 미공군 조종사들의 비행술을 모방한 유사비행술을 연습해왔다면, 실전에서 이길 수 없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실전에서 미공군 조종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까닭은, 그들이 미국군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체전법을 배웠고, 미공군 조종사들에게 생소한 ‘노후기종’을 조종하면서, 미공군 조종사들이 알지 못하는 빨찌산식 비행술을 연마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실전에서 자기의 빨찌산식 비행술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 예상하려면, 1982년 6월부터 1985년 6월까지 지속된 레바논전쟁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이스라엘군을 제압한 실전경험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당시 시리아군 전투기들은 이스라엘이 강점한 자국 영토 골란고원을 탈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출격하였지만, 그곳에 도사린 이스라엘군의 강력한 방공레이더망에 번번이 걸려들어 실패했고,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에 맞아 계속 격추당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지 못해 고심하던 시리아는 조선에게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지원요청을 받고 시리아에 급파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 4명은 미그-21 추격기 4대를 몰고 돌입하는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이스라엘군 방공망을 번개처럼 뚫고 들어가 골란고원의 방공레이더기지를 단 한 차례의 기습공격으로 단숨에 파괴해버렸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한 미그-21 추격기는 한 대도 피격되지 않은 완승이었다.

▲ 사진6     © 자주시보


전면전 결심하고 공격명령 내린 반타격사령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면,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이 미해군 항모타격단부터 선제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은 <사진 6>이 말해주는 사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5년 3월 3일 조선중앙텔레비죤 ‘20시 보도’에 방영된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부대 영내에 건립된 위훈비를 촬영한 것이다. 원수별이 새겨진 최고사령관기를 표상한 붉은 기폭 아래 도약비행을 하는 미그-23 추격기 한 대가 화강석에 부각되었고, 그 아래 비석에 14라는 숫자를 크게 새겼고, 위훈을 전하는 비문이 보인다. 이 위훈비는 제447부대 전투비행사 14명의 위훈을 전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조선의 언론보도가 전해준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09년 4월 5일 조선은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를 쏘아올렸는데, 그 위성을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2호를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 세운 날부터 발사한 날까지 12일 동안 조선인민군과 미일동맹군 및 한미연합군 사이에 일촉즉발 무력충돌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조선은 국제관례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위성발사라고 했지만 미국은 이를 장거리미사일발사라고 주장하면서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일본과 한국을 동원한 위성요격연합작전을 준비함으로써 정세가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9년 3월 23일 일본 나가사끼(長崎)현 북부 사세보(佐世保)해군기지를 출항한 미해군 이지스구축함 두 척이 동해에 진입하였고, 같은 날 요코스카해군기지를 출항한 미해군 이지스순양함 한 척은 일본 북서부 아오모리(靑森)현 앞바다에 출현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국군도 이지스구축함 한 척을 동해에 보내 미일연합함대에 합류시켰다. 2009년 3월 27일 하마다 야스까즈(浜田靖一) 당시 일본 방위상은 조선의 위성운반로켓이 일본에 피해를 줄 경우 요격하라는 명령을 일본자위대에 내렸는데, 그 명령에 따라 일본항공자위대는 요격미사일부대를 일본 수도권 5개 지역에 긴급배치하였고, 일본해상자위대는 이지스구축함 두 척을 동해에, 이지스구축함 한 척을 일본 근해 태평양에 각각 배치하였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원된 그런 적대행위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09년 4월 2일에 발표한 ‘중대보도’에서 “우리 혁명무력은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평화적 위성에 대한 사소한 <요격>움직임이라도 보인다면 지체 없이 정의의 보복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조선인민군은 전투태세에 돌입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미그-23 추격기 비행대대가 함경북도 청진시 인근에 있는 어랑비행장에 전진배치되었고, <산케이신붕> 2009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위성발사를 하루 앞둔 2009년 4월 4일 조선인민군 전투함대가 일본 아키타(秋田)현 해안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동해 해상에 전진배치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의 언론매체들이 제각기 보도한 조선인민군의 위와 같은 전투태세는 외부에 공개된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기도에 맞선 조선인민군의 전투태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는 2012년 1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서 밝혀졌다. 그 기록영화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에 인공지구위성을 요격하겠다던 적들의 책동에 반타격을 가한 것이 우리 김 대장(김정은 제1위원장을 뜻함-옮긴이)”인데, “그가 반타격사령관으로서 륙해공군을 지휘하였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공식직함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는데, 반타격사령관으로서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기도에 맞서 조선인민군 전군을 지휘하였던 것이다.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적들이 요격으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을 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말한 ‘진짜 전쟁’이란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싸우는 전면전을 뜻한다. 그 기록영화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적들이 덤벼든다면 원쑤들의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가차 없이 짓뭉개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하시였다”고 한다.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해에 전진배치한 연합함대가 조선의 위성운반로켓을 향해 요격미사일을 쏘는 순간, 조선인민군 육해공군은 즉각 동시다발 전면공격을 개시하라는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조선인민군에 내린 전투명령이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공격하라는 명령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함선집단은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이 동해에 배치한 연합함대를 뜻하고, 요격체계는 일본자위대가 자국의 수도권 5개 지역에 긴급배치한 요격미사일부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받은 명령은 동해에 전진배치된 연합함대와 일본 수도권에 긴급배치된 요격미사일부대를 동시에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이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런 공격명령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 사진7     © 자주시보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동해 상공에서 공중매복한 14명의 추격기 비행사들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부대 영내에 건립된 위훈비는 2009년 4월 5일 당시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공격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추격기를 몰고 동해 상공으로 출격한 전투비행사들의 위훈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5년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그 위훈비에 새겨진 숫자 14는 2009년 4월 5일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의 위성요격위험 속에 광명성-2호가 발사되어 초긴장한 상황이 조성된 시각,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공격명령을 받고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결사전에 나선 제447부대 미그-23 추격기 비행사 14명을 뜻한다. 그 비행사 14명의 비장한 출격에 대해 말해주는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 중에서 몇 장면을 여기 옮겨 싣는다.

<사진 7>은 김정은 당시 반타격사령관이 결사전에 출격하기 위해 조종석에 오른 미그-23 추격기 비행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기록영화에 따르면,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은 14명의 비행사들에게 “당에서 동무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에 그들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 사진8     © 자주시보

<사진 8>은 14명의 비행사들이 미그-23 추격기를 몰고 출격한 2009년 4월 5일에 남긴 결의편지들 가운데 김철 비행사가 쓴 결의편지를 촬영한 것이다. 결사의 각오와 신념으로 쓴 결의편지임을 알 수 있다.

▲ 사진9     © 자주시보

<사진 9>는 결사전에 자원한 비행사 14명이 출격하기 직전 활주로 위에 펼쳐든 최고사령관기 앞에서 맹세문에 서명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10     © 자주시보

<사진 10>은 결사전에 자원한 14명의 비행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정영남 비행사의 어린 딸 정원경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쓴 사랑의 편지다. 그 어린 딸은 편지의 마지막 줄에 “혹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난 절대로 울지 않을래요. 그 놈들을 기어이 복수할래요”라고 썼다. 그 날 14명의 비행사들은 사랑하는 아내들과 아이들이 써준, 어쩌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눈물 어린 편지를 각자 가슴에 품고 추격기 조종간을 잡았던 것이다.  

조선인민군 추격기가 미일동맹군을 공격하려면 조선에서 일본까지 최단거리에 있는 강원도 원산의 발진기지에서 이륙하여 동해를 가로지르며 장거리작전항로를 날아가야 한다. 미그-23 추격기가 왕복하는 항속거리는 2,300km이며, 원산의 발진기지에서 미해군 제7함대가 주둔하는 요코스카해군기지까지 왕복항로는 2,330km다. 미그-23 추격기는 요코스카해군기지까지 날아가 공격할 수는 있지만, 공격을 마친 뒤에 발진기지로 복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그-23 추격기가 민첩기동비행으로 돌진하여 적진을 기습타격하려면 기체중량을 되도록 가볍게 해야 하므로 보조연료통도 달 수 없다. 그러므로 왕복 2,000km가 넘는 장거리작전항로에 오른 조선인민군 추격기는 복귀비행에 필요한 항공유를 싣지 못한다. 그와 달리, 장거리작전항로를 비행하는 미공군 전투기들은 비행도중 공중급유기와 만나 항공유를 보충하면서 날아간다. 그러나 그런 공중급유는 공격징후를 노출하는 행동이므로, 오직 무징후불시기동-선제기습타격만 생각하며 최후결전을 준비해온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공중급유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사진11     © 자주시보
▲ 사진12     ©자주시보

<사진 11>에 촬영된 “돌아올 연유 대신 폭탄을!”이라고 쓴 전투구호와 <사진 12>에 촬영된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는 전투구호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어떤 사상과 신념을 지녔는지 말해준다. 최고사령관의 출격명령을 받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결사전의 항로에 나서는 것이다. 결사전을 벌이는 ‘붉은 매’가 폭탄과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고 항공유마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비행사는 기체에서 비상탈출하여 목숨을 건질 수도 있지만, 그들은 적진에 돌입하는 육탄자폭비행으로 최후를 맞는 것이다.  

광명성-2호가 대지를 박차고 우주로 솟구치던 2009년 4월 5일 김정은 반타격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출격한 14명의 미그-23 추격기 비행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인민군의 전쟁준비태세를 보고 기가 꺾인 미일동맹군과 한미연합군은 광명성-2호가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고,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가슴에 품고 출격하여 동해 상공의 공중매복구역에서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매복하고 있었던 미그-23 추격기 비행사들은 기수를 돌려 발진기지로 복귀하였다.

그런데 14명 비행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그 비행사의 이름은 정철주다. 그 날 13명의 다른 비행사들과 함께 고난도의 초저공무전파비행을 하던 정철주 비행사는 자신이 조종하던 미그-23 추격기와 함께 동해에 추락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돌아오지 못한 정철주 비행사는 그의 아내가 두 살 난 아들을 안고 써내려간 사랑의 편지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전투비행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13명 비행사들과 그의 아내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정철주 비행사의 아내는 2014년 4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평양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에 참석하였다. 그 대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철주 비행사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였고, 13명 비행사들에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존함을 새긴 손목시계를 수여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 식수절을 맞은 지난 3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제447부대를 또 다시 찾아가서 위훈비를 돌아보고 비행사들과 함께 위훈비 주변에 나무를 심으면서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없는 일당백 영웅정신, 희생정신, 자폭정신을 탄생시”키고 “정철주 영웅을 비롯한 14명 육탄자폭용사들을 배출한 이곳 군부대가 앞으로 항공군에서 21세기의 첫 근위부대가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 사진13     © 자주시보


다시 돌아오지 않은 ‘붉은 매’

‘붉은 매’들은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초저공무전파비행으로 방공망을 뚫고 돌진하여 미해군 항모타격단, 미해병대 상륙강습단, 미공군 전략폭격비행단을 기습타격하라는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비행사들의 전투구호를 촬영한 <사진 13>이 그들의 그런 심정을 말해준다. 이 사진에 나오는 ‘근위 김지상영웅비행부대’는 조선인민군 제2항공 및 반항공사단 근위  제56김지상영웅비행련대다.

▲ 사진14     © 자주시보

붉은 별과 212호라고 새긴 붉은 글씨가 선명한 미그-21 추격기 한 대가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창공을 나는 <사진 14>는 근위 제56김지상영웅비행련대 1대대 중대장이었던 차영일 비행사의 마지막 비행을 촬영한 사진이다. 차영일 비행사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초저공비행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순직하였다.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차영일 비행사는 지난 1월 30일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하여 고난도비행을 하던 중 기체가 해수면에 부딪히는 사고로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관해서는 2015년 2월 9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공중-수중기습타격전법 연습한 북의 항모격침결사대’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http://jajuminbo.net/sub_read.html?uid=19323&section=sc38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4 사랑과 믿음’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차영일 비행사의 아내에게 순직한 남편의 마지막 비행모습을 촬영한 그 사진이 담긴 친필서한과 귀한 선물들을 보내주며 위로하였다. “아들 차영웅이를 아버지처럼 당과 혁명에 충직한 훌륭한 사람이 되게 잘 키웁시다”고 쓴 절절한 심정이 담긴 친필서한은 “비록 짧았어도 영원히 빛날 비행사의 값높은 한생에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붉은 매’ 차영일 비행사에게는 애국렬사증이 수여되었다.

전쟁에 나가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용사들은 다른 나라 군대에도 있지만, 육탄자폭으로 최후를 마친 전쟁영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런데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창설 이후 지금까지 75명의 공화국영웅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육탄자폭으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영웅비행사들이다.

▲ 사진15     © 자주시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뛰어난 비행술만으로는 육탄자폭결사전에 나설 수 없으며, 마지막 순간에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불타는 애국심과 강인한 사상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결사의 신념을 지닌 수많은 ‘붉은 매’들이 75명 육탄자폭영웅들의 뒤를 이어 오늘도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15>에서 보는 것처럼, ‘붉은 매’들은 해수면을 스칠듯한 초저공항로 위에 끝없는 비행운을 새기며 날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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