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0

시장통제와 시장규제, 소통합과 대통합

변혁과 진보 (4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는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문제가 중대하게 제기되는 까닭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시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본가계급은 고용시장을 장악함으로써 노동계급 전체를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오직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시장만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한다. 시장을 철폐한 사회주의 사회에도 계획경제의 보조역할을 수행하는 시장이 존재하는데, 그 시장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봉사하는 시장이다. 시장은 자본주의 이전 봉건사회에도 존재하였는데, 그 시장도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시장은 아니었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서 정리해고제를 강행하고, 부당해고조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를 동원해 짓밟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범죄가 드러났는데도, 그는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나가 거짓말 1인 촌극을 연출하고 사법처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이 땅의 자본가계급이 사실상 초법적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2011년 8월 18일 보도 사진)
그들이 누리는 초법적 지위는 그들이 행사하는 시장지배력에서 오는 것이다. 만약 어떤 노동자가 그들의 초법적인 시장지배에 도전하면, 반노동 친자본 정권은 자본가를 비호하고 시장지배에 도전한 노동자를 사법처리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시장독재라는 개념이 생겼다. 자본주의시장독재는 독재적 지배의 근원이다.
  
만일 시장이 없다면, 자본가계급도 존재할 수 없다. 시장지배는 시장을 장악한 자본가계급의 전사회적 지배이며, 자본가계급의 필수생존요건은 시장에 대한 그들의 배타적 지배권 행사다. 그러므로 자본가계급의 시장지배를 받으며 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 독재적 지배와 결별할 때만이 진정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새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고 시장독재가 판을 치게 된다. 만일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가계급의 시장지배를 용인하는 명목상 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시장독재를 은폐한 가짜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지배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현 시기 우리 사회의 변혁과 진보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시장독재에서 벗어난 민주주의, 다시 말해서 시장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 중심의 진보적 민주주의다.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안은 시장확대, 시장규제, 시장통제, 시장철폐라는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이 대안을 정치이념적으로 정리하면, 신자유주의 대안은 시장확대이고, 사회민주주의 대안은 시장규제이고, 진보적 민주주의 대안은 시장통제이고, 급진적 사회주의 대안은 시장철폐다.


시장을 규제하려는 정당과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당

정권교체와 신자유주의 폐지로 압축된 당면 정치임무를 수행하는 이 땅의 정치세력은 세 종류다.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규제하려는 정치세력,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통제하려는 정치세력,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철폐하려는 정치세력이다.

시장규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시장통제는 중요산업 국유화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시장철폐는 계획경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장철폐를 주장하는 급진적 사회주의는 정치세력화하지 못하고 존재감 없는 소수 정파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시장철폐 대안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살펴보나 마나 한 일이지만, 한나라당 강령은 "큰 시장, 작은 정부의 기조에 입각한 선진경제"를 표방하였다. 신자유주의를 아주 명백하게 표방한 것이다. 한나라당 강령은, 그 당이 신자유주의의 소멸과 함께 종말을 고할 운명에 처해 있음을 말해준다.

한나라당과 타협할 수 없는 대척점에 민주노동당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을 축소, 통제하여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 새로운 대안은 민주노동당 강령에 명시된 '혼합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혼합경제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경제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혼합경제체제에서 계획경제를 수행하는 실체가 바로 국유화된 중요산업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혼합경제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썼지만, 원래 중요산업 국유화 강령은 혼합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산업을 국유화한 계획경제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장경제를 축소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요산업 국유화가 반드시 시장경제의 축소와 민주적 통제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경제체제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합한 것이 아니라, 중요산업을 국유화하고 시장경제를 축소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민주주의 정권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정치임무는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산업 전반을 한꺼번에 국유화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국유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그리고 산업화 수준과 노동계급의 자주의식화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시장경제의 축소와 민주적 통제를 한꺼번에 전반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그렇게 결정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조건과 형편을 따져보면,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한꺼번에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단계적으로 실현해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 진보신당 강령도 민주노동당 강령과 마찬가지로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은행 국유화와 공공부문 확장이라는 개념은 명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보신당도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산업 국유화와 시장경제의 축소 및 민주적 통제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뿐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합당문제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국민참여당은 그 문제에 관련하여 어떤 강령을 가졌을까? 참여당 강령은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 사회복지 확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 동반성장을 명시하였다. 참여당 강령에 시장경제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 사회복지 확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 동반성장 추구라는 개념은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를 표방한 개념으로 해석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민주주의 경제강령이다.

참여당이 자기 정치이념을 사회민주주의라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그 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넉넉히 감지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시장을 규제하여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현하려는 정치이념이다.

이처럼 참여당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다른 정치이념을 가졌지만 3당합당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은 까닭은, 그 당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정치전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시장규제로 해석하였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시장통제로 해석하였다. 양쪽의 차이는 시장통제와 시장규제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통제는 시장을 제약한다는 뜻이고, 시장규제는 시장을 제한한다는 뜻인데, 제약과 제한 사이에는 양적 차이만 있을 뿐 질적 차이는 없다.

주목하는 것은, 시장통제를 추구하는 진보정당과 시장규제를 추구하는 사민주의당의 관계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통제와 시장규제는 정책적으로 연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하나의 강령을 합의, 채택하고 합당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의 관계에 놓여있다. 시장통제를 주장하는 정당과 시장규제를 주장하는 정당은 얼마든지 합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국민참여당을 배제하고 2당합당 방식으로 '도로 민노당'을 건설할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당과 함께 3당합당 방식으로 폭넓은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참여당과의 관계에서는 그 무슨 '계급적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3당합당을 '계급적 원칙'을 저버린 '계급연합'이라고 심판하고, 참여당을 배제한 2당합당을 고집하는 것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진보정치의 역량강화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사민주의자들과도 적극 연합해야 하며,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민족자주를 요구하는 민족주의자들과도 적극 연합해야 한다.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사민주의자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연합대상이지 결코 배척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국민참여당을 배제한 2당합당론의 오류를 비판, 극복하고 3당합당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과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주당과 참여당은 어떻게 다른가?

소통합을 하기도 힘든 판인데, 대통합을 하자는 의제가 제기되었다. 대통합론자들의 목소리가 차츰 커지면서 당건설 과정에서 혼동과 혼란이 생기고 있다. 대통합론자들은 정파등록제 같은 것을 시행하면 대통합당을 건설해도 그 당 안에서 각 당이 정파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혹논리'도 펴고 있다.

그러나 소통합과 대통합이라는 용어선택부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선호하는 직감적 반응을 노린 소통합-대통합 분류법에는 논리적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함정이란 당건설 문제를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관한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대통합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통합이 소통합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합으로 세워진 차기정권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대통합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 중의 단견이다. 대통합당을 건설하면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고 정권을 교체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지만, 그렇게 집권한 대통합당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아래 사실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대통합론에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민주당이다. 대통합론자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는 통합하려고 하면서 왜 민주당과는 통합할 수 없다고 미리 차단선부터 긋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런 반문은 민주당과 참여당의 차이를 간과하고, 그 두 당을 동일시하는 착오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야권대통합 을 주장하는 민주당 야권통합특위 위원회 회의 모습.
(<오마이뉴스> 2011년 7월 10일 보도 사진)
민주당과 참여당의 차별성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은 각 당의 강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객관적 기준인 강령을 살펴보지 않고, 민주당과 참여당을 똑같은 자유주의정당으로 간단히 규정해버리는 것은 논리를 배반한 자의적 판단이다. 당의 정체성은 언제나 당의 강령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참여당 강령이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를 표방한 것과 달리, 민주당 강령은 사람 중심 시장경제를 표방하였다. 양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차이는 사회투자와 시장경제의 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 중심의 사회투자를 표방한 참여당은 '사회복지 확대'를 강령에 명시하였고, 사람 중심 시장경제를 표방한 민주당은 '중산층 확대'를 강령에 명시하였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참여당 강령과 중산층을 확대하는 민주당 강령은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참여당은 '불균형과 양극화 극복'을 강령에 명시하였고, 민주당은 '양극화 완화'를 강령에 명시하였다.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참여당 강령과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민주당 강령은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참여당은 '동반성장'을 강령에 명시하였고, 민주당은 '사회적 대타협'을 강령에 명시하였다. 동반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타협하는 것도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이처럼 참여당 강령과 민주당 강령을 비교하면,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정당이념 분류법을 따른다면, 참여당은 사민당 계열의 전형적인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되고, 민주당은 사민당보다 '오른쪽'에 있는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된다. 물론 민주당 안에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개혁정파가 있지만, 그 정파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자기 강령을 참여당 수준으로 개정하여 사민당 계열의 중도우파정당으로 변신한다면, 대통합은 가능하고 또 대통합을 추진해야 마땅하지만, 민주당이 그렇게 변신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민주당 안에 있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개혁정파가 탈당하여 3당합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도 힘들다.


퇴보정치의 위험, 진보정치의 차단과 견인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통합하는 경우,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를 폐지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 내분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노선에 따라 크게 확장된 시장을 어느 정도까지 축소하고, 축소한 시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정치문제를 둘러싸고 집권당 내부에서 심각한 분열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당 계열은 시장을 축소하는 범위를 되도록 줄이고 시장을 형식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주장할 것이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참여당 계열은 시장을 축소하는 범위를 되도록 넓히고 시장을 통제하는 정책을 주장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대통합 집권당 안에서 양쪽이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당권문제와 맞물리게 될 것이므로, 정치적 타협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타협할 수 없는 경우 대통합 집권당은 분당사태를 겪을 것이고, 분당사태로 무기력해진 차기정권은 대중들로부터 외면과 지탄을 받는 절망적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처럼 분당위험이 높은 대통합당 건설은 생각하지 말고 상호연대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진보통합당이 건설되는 경우 그 당과 민주당이 정책연합 수준에서 연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도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의 시각으로 보면, 차기정권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하고 시장축소와 시장통제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런 중대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재탕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을 뛰어넘어 진보하여야 할 차기정권을 노무현 정권의 재탕으로 되돌려놓을 대통합당 건설은 진보정치의 길이 아니라 퇴보정치의 길이다.
 
민주당이 퇴보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차단하고, 차기정권이 시장축소와 시장통제의 길로 들어서도록 견인하는 것은 진보통합당에게 주어질 중대한 임무다. 그러한 차단과 견인은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집권당과 차기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3당통합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2011년 8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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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은하수에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

진실의 말팔매 <3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6년 5월 3일 이탈리아 시실리(Sicily)섬 서쪽 끝에 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트라파니(Trapani)에서 제13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대회(Guiseppe Di Stefano International Vocal Concours)가 열렸다. 15개 나라에서 출전한 각국의 성악가 80여 명이 평소에 갈고 닦은 성악기량을 저마다 뽐냈다.

예비심사와 준결승심사를 거쳐 결승심사에 오른 미모의 여성 성악가가 모차르트의 가극에 나오는 성악곡을 열창하였다. 그의 노래를 들은 심사위원들은 전원 일치로 그에게 단독 최우수상을 수여하였다. 그 수상자의 이름은 황은미다. 당시 황은미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음악학교인 산타 세실리아 국립학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에서 성악공부를 하던 유학생이었다. 세계 성악계에서 손꼽히는 남측 성악가 조수미도 그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1년 7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과 국가기관 책임일군들,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음악회를 관람하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종 음악회를 자주 관람하면서 음악창작활동과 음악연주활동을 직접 지도하는 것은 음악애호의 경지를 넘어 음악정치를 시행하는 것인데, 그 날 음악회 공연에는 색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 음악회는 현대적으로 우아하게 단장, 개조된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였다. 음악회는 녹화실황으로 북측 전역에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 음악회에 출연한 성악가들 가운데는 5년 전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단독 최우수상을 받은 황은미가 있었다. 화사한 색감과 문양을 아로새긴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그는 혼성 이중창으로 노래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를 불렀고, 김일성청년영예상 수상자인 미모의 성악가 김향과 함께 혼성 사중창으로 노래 '우리 당의 자랑이라네'를 높은 성악기교로 불러 절찬을 받았다.

△제13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황은미. 2009년 10월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민족 21> 2010년 3월호 보도 사진)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황은미는 은하수관현악단을 대표하는 성악가다. 은하수관현악단에는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미모의 여성 성악가가 또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서은향이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서 서은향은 무대 앞쪽으로 나온 여성 연주자 4명이 전자악기 반주와 함께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편곡한 노래 '처녀로 꽃필 때'를 열창하여 인민배우의 높은 경지에 오른 예술적 기교를 보여주었다.

<동영상으로 보기> 서은향의 독창

국제성악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황은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적 여성 성악가 조앤 서덜랜드(Joan Sutherland)처럼 극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dramatic coloratura soprano)이고, 서은향은 이탈리아가 낳은 저명한 여성 성악가 레나타 스콧토(Renata Scotto)처럼 서정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lyric coloratura soprano)다. 그들의 노래를 꽃에 비유할 수 있다면, 황은미의 노래는 은은한 달빛을 머금고 피어난 옥잠화처럼 아름답고, 서은향의 노래는 맑은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수선화처럼 수려하다.

북측에는 황은미와 서은향처럼 연주기량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세계적 수준의 뛰어난 성악가들이 있는데, 그들이 국제음악계에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자본주의음악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걷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나라의 성악가들은 거대한 음악시장에 편입되어야 흥행가치를 높이게 되는데, 흥행가치는 곧 화폐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악은 시장에 편입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북측에서는 음악인들이 음악에만 전념하며 흥행가치 따위는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생산현장에서 땀흘리는 노동자들과 농장원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것을 최고 영예로 여긴다.

은하수관현악단에는 황은미와 서은향처럼 벨 칸토(bel canto) 창법으로 노래하는 성악가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식 창법으로 노래하는 로은별 같은 성악가들도 있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 출연한 미모의 공훈배우 로은별은 편곡한 우리 민요 '뽕 따러 가세'를 높은 기교를 지닌 우리식 창법으로 불렀다. 우리식 창법이란 전통적인 서도 민요 창법을 개조, 발전시킨 것이다.

그 날 다채로운 공연종목으로 짜여진 음악회를 진행한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었는데, 은하수극장이라는 전용 공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은하수관현악단이 북측 음악계를 대표하는 관현악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은하수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는 공훈예술가 리명일이고, 차석지휘자는 공훈예술가들인 전민철과 윤범주다. 
 
은하수관현악단은 기존 음악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편곡하여 다양한 기법으로 연주하는 팝스 오케스트라(pops orchestra)라고 할 수 있지만, 서구식 팝스 오케스트라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독특한 악기편성, 연주기법, 음악형상, 공연양식을 창조하였다. 은하수관현악단이 보여주는 음악적 특성과 우수성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은하수관현악단은 악기편성부터 다르다. 가야금, 양금, 해금, 젓대, 장새납, 장고, 꽹과리를 중심에 배치하였다. 7음음계로 작곡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개조된 이 민족악기들은 서양악기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독특한 민족적 정서를 풍부하게 표현한다. 은하수관현악단이 편곡한 민요와 민요풍의 창작곡을 많이 연주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민족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연주자들은 모두 화사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출연하여 관중들이 시각적으로도 민족적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야금 연주자는 한 사람인데, 지휘자 바로 앞에서 연주한다. 그 날 음악회에서 관현악 반주에 맞게 편곡한 우리 민요 '옹헤야'를 가야금으로 연주한 조옥주는 신기에 가까운 연주기량을 보였다. 그가 연주한 가야금은 12현 전통 가야금이 아니라 21현으로 개량한 가야금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조옥주의 가야금연주

남측에서 연주하는 개량 가야금은 25현이다. 남측의 25현 가야금 연주는 가야금의 특징인 농현을 거의 하지 않고 서양악기 하프처럼 연주하여 가야금 소리를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받는데, 조옥주의 가야금 연주에서는 농현이 주를 이루었다. 농현은 가야금을 연주할 때 왼손으로 줄을 눌러 네 가지 소리 즉 흔들리며 울리는 소리, 미끄러지며 내리는 소리, 밀어올리는 소리, 굴리는 소리를 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연주기법인데, 서양의 비브라토(Vibrato) 연주기법이 따라오지 못하는 가야금만의 깊고 넓은 음색을 낸다. 북측에서 하프처럼 손가락으로 뜯으며 연주하는 악기는 33현 옥류금이다. 

둘째, 은하수관현악단의 악기편성이 지닌 특징은 전기기타, 베이스기타, 전자건반악기, 드럼 같은 악기도 연주하고, 알토 색소폰(3명), 테너 색소폰(2명), 바리톤 색소폰(1명)도 연주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이전에 진행한 음악회들에서 이들은 스윙(swing)이라 부르는 서양식 연주기법으로 관중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전자악기, 드럼, 색소폰을 관현악과 배합한 것은 현대적 감각을 공급해줌으로써 은하수관현악단의 음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은하수관현악단은 다양한 민족악기들의 음색과 더불어 전자악기, 드럼, 색소폰의 음색까지 배합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배합관현악단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은하수관현악단 합창과 연주

은하수관현악단 드럼 연주자는 리진혁인데, 그는 2000년 서울에서 진행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공연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모든 종류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실력을 과시하여 관중들을 경탄케 하였고, 인천에서 열린 제16차 아시아육상경기대회를 응원한 북측의 청년학생협력단 소속으로 2005년에도 남측에 갔었는데, 남측 취재기자에게 "6.15 기치 밑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외세의 간섭 없이 무조건 조국통일을 이룩하자"고 말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번에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받았다.

셋째, 은하수관현악단에는 합창과 방창을 맡은 합창단원 59명이 소속되었다. 여성합창단원 30명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출연하고, 남성합창단원 29명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출연한다. 관현악에 합창을 접목시킨 방창은 북측에만 있는 우리식 음악공연양식이다. 은하수관현악단에 출연한 성악가들과 합창단원은 편곡한 민요나 민요풍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동안 때로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북측에만 있는 우리식 음악공연양식이다.

넷째,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는 설화라고 부르는 공연종목이 있는데, 치미 저고리를 입은 여성 출연자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 관현악 연주와 방창을 배경음악으로 삼고 정치사상적 의미를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한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서 설화를 공연한 사람은 요즈음 평양에서 각계각층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며 연장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김일성상 계관작품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민배우 백승란이다. 국립연극단 소속으로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연극배우인 그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서도 뛰어난 화술로 정치사상적 의미를 전달하여 공연의 무게와 깊이를 더해주었다.
 
설화 전문은 공연무대 상단에 설치한 전광판에 이동식 전자글자로 현시되어 관중들에게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설화만이 아니라, 공연에 나온 연주자들의 이름, 연주곡목, 가사도 그런 방식으로 현시되었다.

사상과 정서를 분리해놓고 음악의 정서적 측면만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북측의 음악공연에 왜 설화가 포함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민대중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는 북측의 '주체의 음악사상'을 기준으로 보면,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은 사상성과 예술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3자 결합을 완성한 것이다.

<로동신문> 2011년 7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은하수극장에서 진행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회가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 깊은 감명을 안겨줄 수 있은 것은 음악회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편성, 연주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관례에서 벗어나 선군시대와 더불어 날로 높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정서적 요구와 지향에 맞게 대담하게 혁신한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은하수의 아름다운 선율이 받은 최고 평가였다. (2011년 8월 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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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진보통합당 건설과 두 단계 정권교체

변혁과 진보 (4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진보통합당 건설 이후 변혁과 진보의 내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길이 멀고 험해도,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내일을 바라보기 때문에 승리의 신념을 굳게 움켜쥐고 투쟁할 수 있다. 지난 1990년대 시련기에 경험한 것처럼, 내일을 바라보지 못할 때 좌절하고 변절하고, 내일의 승리를 의심할 때 투항하고 패배하고 무너진다. 절망스러운 현실을 탄식하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로 변혁과 진보의 내일을 끌어당기는 것, 이것이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수행하는 가장 중대한 임무가 아닌가.

변혁과 진보의 내일은,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미래의 가능성에 거는 기대감을 넘어 신념과 투지를 안겨준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내일이 주는 신념과 투지는 오늘의 정세변화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때 생긴다는 점이다. 오늘의 정세변화를 논리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는 내일은 거울에 비친 반영물처럼 실체가 아니다. 변혁과 진보의 승리로 빛나는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정세변화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해명해야 신념과 투지를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변혁과 진보의 내일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변혁과 진보의 내일을 바라보면 중요한 미래시점 두 군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먼저 다가오는 시점은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고, 그 다음에 다가오는 시점은 2017년 대선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2012년과 2017년은 각각 정권교체를 실현할 중대한 시기이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낡은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갈아치울 결정적인 기회를 맞나는 때다.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 시나리오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정권붕괴와 새로운 정권의 등장을 그려보는 급진적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예상은 이 글의 해명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논하지 않는다.  

지금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려보는 2012년의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3당합당이 중심을 잡고, 연석회의 합의문을 승인한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이 총결집한 진보통합당을 건설하고, 그렇게 건설된 진보통합당이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꺾고 정권교체를 실현한다는 줄거리로 작성된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는, 진보통합당이 3당합당을 중심으로 건설되는가 아니면 '도로 민노당'으로 건설되는가 하는 것이다.

예상하는 결과는 명백하다. 3당이 합당하여 힘있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 전망이 한결 밝아질 것이고, 반대로 3당합당에 실패하여 '도로 민노당' 식의 힘없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사실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3당이 합당하여 힘있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당면과업이 정파적 이익추구라는 풍랑에 휘말리는 바람에 공식 합의한 통합일정마저 뒤로 미루어지며 계속 난항을 겪는 중이다. 이 난관을 돌파할 비상대책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는, 진보통합당이 3당합당을 중심으로 건설되는가 아니면 '도로 민노당'으로 건설되는가 하는 것이다.  (<연합 뉴스>  2011년 6월 26일 보도 사진)

이 글에서 지적하는 것은, 3당이 합당한 힘있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는 당면과업이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한정되지 않고 2017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로 확장된다는 점, 그리고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그러한 당건설 과업이 두 단계 사회변혁운동과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의 사활적 문제로 제기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2012년 정권교체와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할 주체역량이, 3당합당을 실현한 힘있는 진보통합당에 의해 형성, 강화되기 때문에 그렇다.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권교체도 당연히 두 단계로 추진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핵심내용은 두 단계 정권교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2012년의 정권교체와 2017년의 정권교체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해 발전해가는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에서 서로 결부시켜 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12년과 2017년의 두 단계 정권교체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두 단계 발전과정인 것이다.


재탕을 피하고 진보지수를 높여야 한다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를 왜 연속적인 두 단계 정권교체로 보아야 하는가? 그 까닭은 2012년의 정권교체가 낮은 단계의 정권교체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당이 합당하여 힘있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한다 해도, 그렇게 건설된 진보통합당이 2012년에 단독으로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

3당이 합당하여 진보통합당을 건설하면, 그 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급증할 것이고 당장이라도 민주당을 앞질러 제1야당의 당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최근의 여론조사결과가 한껏 고무적으로 들리지만, 진보통합당이 여론지지율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선다고 해도 한나라당을 꺾고 단독으로 집권하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그러므로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의 단일후보전술로 한나라당과 맞서는 1 대 1 구도를 만들어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 이처럼 진보통합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낮은 단계의 정권교체라 한다. 단일후보전술에 의거한 낮은 단계의 정권교체는 지금 진보정치활동가들 사이에서 '기본상식'처럼 알려진 정권교체 시나리오다.

그런데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의 단일후보전술보다 더 중요한 정치현안은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의 정책연합전략이다. 단일후보전술은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국회의원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경선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선거대응전술인데 비해, 정책연합전략은 2012년 정권교체 이후에 등장할 차기 정권의 진로를 잡아주고 더 나아가 2017년 정권교체를 지향하는 정치발전전략이다.

지금 조성된 정치판도를 읽으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통합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각축전을 벌이는 후보단일화 경선과정을 거쳐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진보통합당이 건설된 이후, 민주노동당 출신 진보통합당 정치인이 진보통합당 대선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2012년 대선에 등장할 야권단일후보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인이 아니다.

 이것은 비록 2012년에 정권을 교체한다 해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차기 정권이 노무현 정권 수준으로 되돌아갈 위험성이 있음을 예고한다. 2012년에 정권교체를 실현하고서도 차기 정권이 기껏해야 노무현 정권을 재탕할 것이라면, 차라리 진보정치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의 깃발을 조용히 내려야 할지 모른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차기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재탕으로 되어버릴 위험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2017년 정권교체 시나리오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결정적인 시기 5년 동안 차기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재탕이 되어버리는 경우, 2017년 정권교체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기회로 되지 못한다.

그러면 차기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재탕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진보통합당이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실현하여 2013년에 등장할 차기 정권을 진보정치노선으로 견인하는 수밖에 없다. 진보통합당의 견지에서 볼 때 정책연합의 본질은 보수적 타협이 아니라 진보적 견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야5당 정책협의회를 추진하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야5당 대표들이 한진중공업 사태 등 노동현안 해결을 위해 회담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민중의 소리> 2011년 8월 3일 보도사진)

두 단계 정권교체의 연속적 발전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3당이 합당하여 힘있는 진보통합당을 건설해야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의 정책연합이 실현될 수 있고, 진보통합당과 민주당이 정책연합을 실현해야 차기 정권을 진보정치노선으로 견인할 수 있고, 차기 정권의 진보지수를 높여야 노무현 정권 재탕을 차단할 수 있고, 노무현 정권 재탕을 차단해야 2017년 정권교체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차기 정권의 진보지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연합의 5대 과업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몇 차례 논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판단과 실천의지다. 민주노동당은 3당합당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진보신당을 설득하여 반드시 3당합당 중심의 진보통합당을 건설하여야 하며, 야당정책협의회를 성사시켜 반드시 정책연합전략을 수행하여야 한다.

3당합당 중심의 진보통합당 건설과 야당정책연합전략 수행이야말로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라 말해도 그것은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올 여름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과업수행을 좌우할 실로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과 2017년 사이에 2015년이 있다

2012년과 2017년의 두 단계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남측의 정치세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세변화만이 아니라, 북측과 미국의 관계변화가 추동하는 한반도 정세변화까지 포괄적으로 전망할 때, 그 시나리오가 주는 역사적 의의를 깊고 넓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해명해야 하는 것은, 남측의 정치세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세변화와 북미관계 변화가 추동하는 한반도 정세변화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문제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전자와 후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현실화할 동반상승효과를 낼 것이며, 2017년 정권교체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북미관계 변화가 추동하는 한반도 정세변화를 전망하는 시나리오에서 떠오르는 시점은 2015년이다. 다시 말해서,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와 2017년 정권교체 시나리오 사이에 2015년 북미관계 시나리오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3자 관계를 다시 서술하면,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2015년 북미관계 시나리오를 반드시 거쳐야 2017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로 상승발전할 수 있다.

또한 2015년 북미관계 시나리오는 2012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거쳐야 2017년 정권교체 시나리오로 상승발전할 수 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기묘하게 맞물린 이 3자 관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놓을 역사적 필연이다. 변혁과 진보의 내일을 믿는 사람은 그 필연을 믿는다. 

그런데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만 생각하고, 2015년의 북미관계 변화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유로 말하면, 그런 반쪽짜리 생각은 덧뺄셈만 알고 방정식은 모르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정세변화는 단선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복선적 시나리오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의 정세인식에 필요한 것은,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만 생각하는 덧뺄셈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 시나리오에 직결된 2015년의 북미관계 변화까지 생각하는 방정식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2015년의 북미관계 변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시나리오는 이 글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핵문제'가 북미관계의 전면에 제기되었던 1993년부터 오늘까지 18년 동안 북측과 미국이 벌여온 치열한 장기대결의 경과를 분석한 시나리오다. 길고 복잡하게 전개된 북미대결 시나리오를 이 글에서 상론할 수 없지만, 아래와 같이 단계별 변화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1단계 - 북측이 미사일 발사(1993년 5월)로 북미 고위급회담(1993년 6월)을 진행하고 북미 공동성명(1993년 6월)과 북미 기본합의문(1994년 10월)을 채택한 단계

제2단계 - 북측이 '고난의 행군'(1995년 1월)을 하면서 4자회담(1997년 8월)을 진행한 단계

제3단계 - 북측의 지하핵실험 실시(1998년 5월), 인공위성 발사(1998년 8월) 이후 북미 특사교환회담(2000년 10월)을 진행하고 북미 공동코뮈니케(2000년 10월)를 채택한 단계

제4단계 - 북측이 6자회담(2003년 8월)을 진행하고 9.19 공동성명(2005년 9월)을 채택한 단계

제5단계 - 북측의 미사일 발사(2006년 7월), 지하핵실험 실시(2006년 10월) 이후 북미 실무급회담(2007년 1월)을 진행한 단계

제6단계 -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2009년 4월), 지하핵실험 실시(2009년 5월), 최첨단 미사일 능력 시위(2010년 10월), 최첨단 우라늄농축능력 시위(2010년 11월)로 북미 고위급회담(2011년 7월)을 재개한 단계

위에 열거한 여섯 차례 단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현재진행형인 제6단계다. 2011년 8월 현재 북미관계는 제6단계 가운데서 마지막 일정을 지나는 중이다. 북측이 거의 모든 압박수단을 총동원한 제6단계야말로 북측이 1993년 이래 미국에게 가장 강력한 압박공세를 펼치는 시기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북측이 제6단계에 이르러 가장 강력한 대미압박을 가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북측이 제7단계를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장장 18년 동안 계속되어 오는 북측의 대미압박공세는 제6단계에서 끝나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제 6단계 마지막 일정에 돌입했다. 지난 7월 28일 북측의 김계관 외무상 제1부상(왼쪽)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에서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만나 북미고위급회담을 진행했다. (<신화>통신 2011년 7월 28일 보도사진)

북측의 18년 대미압박공세가 끝난 뒤에 북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미국은 북측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북측의 요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북측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한 미국이 북측의 요구를 따르는 것은,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군을 실현할 결정적인 전환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나위가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북측의 대미압박공세가 제6단계에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을 것이다. 2011년 1월 중국을 방문 중인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 당시 국방장관이 5년 안에 북측의 미사일과 핵무기가 미국에게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얼마 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도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게이츠의 발언을 다시 언급하였는데, 그 두 최고위관리의 발언은 미국이 북측의 압박공세에 맞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통일뉴스>에 연재한 나의 글에서 상론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 북측의 압박공세에 맞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2015년까지 5년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2015년까지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2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 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한국군 작전통제권 반환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으로 늦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시각으로 보면, 작전통제권 반환과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는 하나로 일관된 정세변화인 것이다.

다른 한 편, 북측의 시각으로 보면, 2015년은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지 70년이 되고, 미국과 전쟁을 벌인지 65년이 되는 해이므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실현해야 할 목표년도로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집권을 반드시 끝장내고, 2015년의 북미관계 변화에 보조를 맞출 차기 정권이 등장해야 한다. 두 단계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따르면, 차기 정권은 1단계 정권이다. 또한 2013년에 등장할 1단계 정권의 진보지수를 높여야 2017년 대선에서 진보통합당의 단독집권으로 2단계 정권을 세울 수 있고, 그렇게 해야 2단계 정권 5년 동안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2012년과 2017년의 정권교체가 분절형 정권교체나 복고형 정권교체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해 상승발전하는 두 단계로 연속되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2012년과 2017년의 두 단계 정권교체 시나리오에서 주목해야 할 발전전망을 아래와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첫째, 2013년 이후 5년 동안 1단계 정권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임무는 신자유주의노선을 폐기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복지노선을 추진하고, 10.4 선언을 이행하여 남북경제협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또한 2018년 이후 5년 동안 2단계 정권의 역사적 임무는, 중요산업을 단계적으로 국유화하여 민족경제를 자립화하고 사회복지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1단계 정권이 신자유주의노선을 폐기하고 남북경제협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중요산업 국유화, 민족경제 자립화, 사회복지 보편화에 필요한 물질경제적 준비를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쇠퇴하는 대파산의 시대에 등장할 2단계 정권이 중요산업을 국유화하고 민족경제를 자립화하고 사회복지를 보편화할 막대한 자원과 자금을 다른 나라에서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빌려서도 안 된다. 1단계 정권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노선 폐기와 남북경제협력의 전면적 발전만이 2단계 정권이 추진할 중요산업 국유화, 민족경제 자립화, 사회복지 보편화를 실제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둘째, 2013년 이후 5년 동안 1단계 정권의 역사적 임무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북미가 주도하는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 동참하고, 북측과 손잡고 6.15 공동선언을 전면 이행하여 남북 정부가 참여하는, 법적 권능을 가진 상설적 통일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측과 미국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한다.

2018년 이후 5년 동안 2단계 정권의 역사적 임무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맞춰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군을 촉진하고, 철군에 맞춰 북측과 상호군비감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2단계 정권은 남북관계가 평화통일을 지향하여 정상화되고, 북미관계가 평화공존으로 정상화되는 것에 맞춰 침략적이고 예속적인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한미관계를 정상화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2012년과 2017년의 두 단계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실현할 때,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가 전반적으로 정상화되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변혁과 진보의 내일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2011년 8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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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1

누가 그들의 내일을 아름답다 했는가?

진실의 말팔매 <3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2011년 8월 6일 영국 런던에서 폭동이 일어나 몇 일 사이에 주요도시들로 번졌다. 폭동에 참가한 군중은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폭동진압경찰와 충돌하였고, 경찰차량과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 불을 질렀으며, 상품을 약탈하고 경찰서와 상가에 불을 질렀다. 심지어 길에 지나가는 행인의 옷을 강탈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충격을 더해주었다. 각지에서 사상자와 피체자들이 속출하였다. 

△8월 6일 밤 런던 북부 토튼햄에서 시작된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폭동사태는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다. 2011년 3월 26일 런던 도심에 있는 하이드 공원에서 영국 노동조합회의(TUC) 소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각계층 군중 약 25만 명(경찰 추산)이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진 뒤에 시위행진을 벌였다. 긴축재정을 강요하여 민생을 피폐화시키는 영국 정부에게 반감과 분노를 느낀 군중들은 항의와 규탄의 함성으로 런던을 뒤덮었으며, 시위군중 일부는 경찰과 충돌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0년 11월에는 영국 대학생 수 만 명이 정부의 대학보조금 삭감과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투쟁을 벌이며, 집권당인 보수당의 당사와 옥스퍼드대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대학 건물 수 십 동을 점거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8월 4일 경찰에 피살된 마크 더건 
그런데 2011년 8월 4일 런던 북부구역 토튼햄 길거리에서 29살 난 청년 마크 더건이 경찰 총격으로 피살되었다. 이 사건은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대중의 반감과 분노를 폭동으로 분출시킨 뇌관역할을 하였다.

<합동통신(AP)> 취재기자가 폭동현장에서 만난 폭동 참가자는 "이것은 몇 해 동안 쌓여왔던 것이다. 그저 불씨만 있으면 (폭발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다"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이 청년들에게는 일자리도, 미래도 없다. (정부지출) 삭감은 사태를 악화시켰다....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위의 발언을 들어보면, 이번 폭동사태는 희망을 잃어버린 영국 청년들 가슴에 오랫 동안 쌓이고 쌓인 반감과 분노가 경찰의 더건 살해사건을 폭발계기로 하여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국 청년들은 왜 그처럼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버린 것일까? 이런 사연이 있었다.

첫째, 극단적으로 벌어진 빈부격차다. 2010년 1월 영국 여성평등부 산하 국가평등위원회가 발표한 '영국의 경제적 불평등 해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상위 10%의 부유층이 가진 평균 자산은 85만3,000 파운드(14억9,800만 원)이고, 하위 10%의 빈곤층이 가진 평균 자산은 8,800 파운드(1,546만 원)다. 빈부격차가 약 97배로 벌어진 것이다.

또한 최상층 1%가 평균 자산 260만 파운드(45억8,200만 원)을 거머쥐고 있으므로, 최상층과 빈곤층의 자산격차는 무려 295배로 벌어졌다. 경제적 불평등이 이처럼 극에 이른 사회에서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폭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둘째, 반노동 친자본 정권의 긴축재정 강행으로 더욱 심화된 민생파탄이다. 2010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한 영국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는 연간 1,500억 파운드(263조5,500억 원)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줄인답시고 사회복지예산을 크게 깎아버리고, 공공부문 일자리 50만 개를 줄이고, 세금부담을 늘이는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강행하였다.

그 결과, 물가상승률은 4.4%로 뛰어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20.6%를 돌파했으며, 연간 대학등록금은 3,375 파운드(624만 원)에서 9,000 파운드(1,660만 원)으로 폭증하였다. 자본주의나라에서 긴축재정은 곧 민생파탄을 뜻한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는 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그처럼 무지막지한 긴축재정을 강행하였을까? 그 까닭은 영국 경제에 치명적인 골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17일 영국의 공공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조 파운드(1,757조 원)를 넘어섰다.

이 공공부채를 가구별로 나누면 한 가구당 4만 파운드(7,000만 원)씩 돌아가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영국은 날마다 1억2,000만 파운드(2,1084억 원)씩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이자규모만 해도 영국 국방비 지출을 넘어선다. 2010년 현재 영국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76.7%에 이르렀다.

10년 전만 해도 영국의 공공부채는 3,000억 파운드(527조1,000억 원)를 조금 넘어섰고, 5년 전에는 5,000억 파운드(878조5,000억 원)에 조금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7년부터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가 영국 금융시장의 붕괴를 재촉하자, 이에 놀란 영국 정부는 금융시장을 살리려는 비상대책으로 엄청난 재정을 구제금융조치에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영국의 국가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말았다.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건져보겠다고 발버둥치다가, 국가재정을 파산상태에 빠뜨렸고, 파산상태에 빠진 국가재정을 살려보겠다고 긴축재정을 강행하였더니, 그 결과는 민생파탄과 폭동으로 나타났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것처럼, 극소수 자본가들은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자산을 무한대로 증식시킨다. 정부가 그런 금융시장을 살려주겠다고 하면서 긴축재정을 강행하는 짓이야말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희생시켜 몇몇 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는 배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반노동적이고 친자본적인 정권이 경제회생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하는 짓이란 모두 그렇다.

그런데 만일 영국 정부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하면서 금융시장의 위기를 방치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금융시장의 붕괴로 자본주의시장경제 전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짜낼 수밖에 없는 착취기제를 구조화하였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새로운 대안체제로 바꾸지 않고서는 사회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게 되고, 사회구성원의 1%밖에 되지 않는 대자본가들만 향락과 사치를 즐기게 되고, 사회구성원의 10%밖에 되지 않는 부유층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생파탄과 폭동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영국과 비교해서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첫째, 시장주의자들은 마땅히 공공부채에 포함시켜야 할 몇몇 항목들을 슬쩍 빼놓고 부채규모를 되도록 줄임으로써 재정건전성을 논하지만, 명목상 공공부채가 아니라 사실상 공공부채를 따져보면 우리의 공공부채는 영국의 공공부채보다 대략 두 배 정도 더 많다. 우리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실상 공공부채 비율은 1997년 74.9%, 2002년 135.2%, 2008년 140.7%로 폭증하였다.

2010년 현재 영국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76.7%인데, 우리는 이미 2008년에 140%를 넘어버렸다. 또한 가계부채를 봐도 우리가 영국보다 세 배 이상 많다. 2009년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는 전세계에서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국내총생산의 376%이고, 영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03%다.

둘째, 우리의 세금부담 증가속도가 영국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영국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는 2.15배인데, 우리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는 3.6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셋째, 우리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보다 더 높다.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2%인데, 우리 사회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넷째, 우리의 빈부격차는 영국의 빈부격차보다 더 심하다. 우리 사회에서 상위 10%가 가진 자산은 전체 가계자산의 47.2%를 차지한다. 또한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격차가 474배나 된다. 상위 5%가 우리 사회 전체 부동산 자산의 64.8%를 점유하였으며, 상위 10%가 전체 금융자산의 66.5%를 차지하였다.

다섯째, 빈부격차에 대한 집단적 불만을 보면, 우리가 영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의 불만지수는 56%인데, 우리의 불만지수는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위에서 열거한 통계자료는 재정형편과 경제형편으로 보나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만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가 영국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사회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데, 영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주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이다. 절망과 분노가 휩쓴 영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났으나, 그들보다 더 심한 절망과 분노에 쌓인 우리 사회에서는 한을 품고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자살자 수는 2007년 12,174명, 2008년 12,858명, 2009년 14,583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000명당 11.2명인데, 우리의 자살률은 2009년 현재 31.0명이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리투아니아(31.5명)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에 비해, 영국의 자살률은 2008년 현재 인구 10,000명당 9.2명으로 세계 49위를 기록하였다.

절망과 고통에 차 있는 이 땅에서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비참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서로 알지 못하는 청년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공모하여 동반자살하는 사건들도 일어난다. 대학교수들도 자살하고, 현역 군인들도 자살하고, 인기 연예인들도 자살하고, 심지어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였다.

서울에서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서울시가 지하철역에 안전덧문을 설치하였더니, 한강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드는 자살자가 늘었다.

한강다리 투신자살자가 급증하자, 서울특별시는 한강다리에 2011725일부터 자살방지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지난 5년 사이 한강다리 투신자살자는 총 458명에 달한다. (KBS-TV 2011725일 보도 화면)

이 땅의 강과 호수와 저수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자주 떠올라 이제는 민물낚시를 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연령층에 있는 청소년과 청년의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이 1순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이다.

내일의 푸른 꿈을 안고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재학생 청소년 자살자 수는 2004년 101명, 2007년 142명, 2009년 202명으로 늘어났다.

누가 그들의 내일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그들을 절망으로 밀쳐냈는가? 이 땅의 청년들은 빼앗긴 내일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2011년 8월 1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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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6

복지는 어디까지 공상이고 어디까지 현실인가?

변혁과 진보 (4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복지를 실현한 유럽은 이 땅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

사회복지(social welfare)는 사회체제를 규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체제 구성부분을 표시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복지체제라 하지 않고 복지정책 또는 복지제도라는 말을 쓴다. 사회체제라는 개념은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나라 또는 사회주의 나라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사회복지라는 개념은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국가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복지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국가적 정체성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본주의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목적은 빈곤감소다. 실제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복지제도가 시행된 이후 빈곤율이 줄어들었다. 2003년 '미국 사회학회지(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실린 연구논문 '선진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 상대적 빈곤의 결정요소(Determinants of Relative Poverty in Advanced Capitalist Democracies)'에 따르면, 복지제도를 시행한 서유럽과 북미주의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나타났다.

1970년부터 1997년까지 28년 동안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나타난 나라별 순위는 아래와 같다.
프랑스 15.5% 포인트 감소 (21.8%→6.1%)
벨기에 15.4% 포인트 감소 (19.5%→4.1%)
덴마크 12.6% 포인트 감소 (17.4%→4.8%)
이탈리아 10.6% 포인트 감소 (19.7%→9.1%)
스웨덴 10.0% 포인트 감소 (14.8%→4.8%)
핀란드 9.3% 포인트 감소 (12.4%→3.1%)
미국 9.3% 포인트 감소 (21.0%→11.7%)
노르웨이 8.4% 포인트 감소 (12.4%→4.0%)
영국 8.2% 포인트 감소 (16.4%→8.2%)
캐나다 5.2% 포인트 감소 (17.1%→11.9%) 
독일 4.6% 포인트 감소 (9.7%→5.1%)

위의 통계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유럽형 복지제도와 북미형 복지제도가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한 미국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9.3% 감소하였으나, 원래 상대적 빈곤율이 20% 이상 최고 수준이었으므로 감소효과가 9.3% 포인트를 기록했어도 상대적 빈곤율이 여전히 10%를 넘기 때문에 감소효과가 크다고 보기 힘들다.

다른 한편, 유럽형 복지제도를 시행한 독일에서는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가장 적게 나타났는데, 그렇게 된 까닭은 원래 상대적 빈곤율이 10% 미만 최저 수준이었으므로 감소효과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유럽형 복지제도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북미형 복지제도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적게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원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형 복지제도는 부유층과 빈곤층을 막론하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를 원리로 하여 시행되고, 북미형 복지제도는 부유층이 빈곤층을 도와주는 사회적 자선(social charity)을 원리로 하여 시행된다.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유럽형 복지제도가 사회적 자선에 기초한 북미형 복지제도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원래 근대적 복지제도는 19세기 말엽부터 서유럽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차츰 확대, 발전되어왔다. 그 역사적 과정에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빈부격차가 극단화되면서 사회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자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본주의 나라의 복지제도는 빈부격차를 극단화하는 '시장의 폭력'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완화해주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보편적 건강관리제도(universal health care system)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프랑스에서는 200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2%를 보편적 건강관리제도 유지비용으로 지출하였다. 이것은 프랑스 국민의 건강관리 비용을 국가가 1인당 3,926 달러씩 부담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완전한 무상의료제도는 아니고, 의료비 가운데 70%를 국가가 부담하고, 처방비는 최소 35%에서 최대 100%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는 이 땅에서 치료비가 많이 드는 중병에 걸리는 경우 병원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생각하면, 보편적 건강관리제도가 시행되는 유럽의 현실은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무상보육-교육제도를 실현한 스웨덴에서는 보육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대학입시제도도 없고, 대학생에게 주당 94 달러의 학업수당까지 지급한다.

이 땅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2010년의 경우 연간 사교육비 20조9,000억 원을 부담하는 학부모들의 등골이 휘어지고,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생활비로 사는 절대빈곤가구의 아동 약 100만 명이 사교육비는 고사하고 끼니마저 거르며 굶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대학등록금이 30%나 급증하여 물가상승률보다 두 배나 뛰어오르는 바람에 대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대규모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땅의 비참한 교육현실을 생각하면, 무상교육제도가 시행되는 유럽의 현실은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공공주택제도를 실현한 유럽에서는 국가가 아파트형 공공주택(public housing)을 건설하여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게 임대하고 주거보조금을 지급한다.

△프랑스 파리 인근도시 팡탕(Pantin)의 공공주택. 이 공공주택의 아래층
에는 종합 병원(왼쪽 사진 유리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
공공주택에서 바라본 외부 전경이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있음.)
이를테면, 1998년 프랑스에서는 모든 주거지역마다 최소 20%에 이르는 저가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채택하였는데, 현재 약 400만 가구의 '저가임대주택(HLM)'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주택제도 유지비용으로 연간 약 10억 달러를 지출한다.

유럽 주요국가들의 총인구 대비 공공주택 거주인구 비율을 살펴보면, 네덜란드 14.7%,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각각 10.2%, 스웨덴 9.5%, 영국 8.5%, 프랑스 6.9%, 독일 2.7%, 이탈리아 1.8%, 스페인 0.3% 등이다.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쪽방 거주자들.

그런데 이 땅의 주거현실은 어떠한가? 지하방, 옥탑방,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여관, 만화방, 피씨방, 찜질방, 화물수송용 철제짐함(container)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지금 서울의 중간수준 주택가격은 중간소득 가구의 연평균 소득 3,830만 원의 11.7 배에 이르는 4억4,646만 원이므로, 12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든 수입을 주택구입비로 저축해야만 겨우 중간수준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입자 신세를 사실상 영영 벗어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예로부터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 했는데, 이 땅에는 그 설움이 밀물처럼 그득하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복지제도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복지제도가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확대, 발전되어온 반면, 복지제도를 단번에 전면적으로 시행한 '기적'은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났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사라진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시장이 사실상 철폐되었기 때문에, '시장의 폭력'을 완화하는 사회복지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쓰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사회복지를 완성하였다는 표현을 쓴다.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유럽형과 북미형으로 대별되는데, 전자가 사회적 연대를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면, 후자는 사회적 자선을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위에서 논했는데, 그러한 자본주의 복지제도와 달리 사회주의 복지제도는 사회적 평등(social equality)을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복지제도는, 완성된 사회주의 복지제도와 그것을 불완전하게 모방한 자본주의 복지제도로 구분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복지제도가 그것을 시행하는 국가재정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소멸되고 사회계급적 차이만 존재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와 사회계급적 모순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나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가 똑같은 방식으로 국가재정을 마련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소멸되고 사회계급적 차이만 존재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국유화 또는 협동화된 생산부문에서 발생한 이윤 가운데 일정량이 국가재정으로 이전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국가재정이 세금징수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사회주의 복지제도는 계획경제의 안정성에 의존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적 생산활동에 직결된다.

그와 달리,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국유화된 생산수단이 거의 없거나 또는 명목상 몇몇 국유기업들만 존재하므로, 국가재정은 세금징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생산활동에서 발생한 이윤을 자본가계급에게 넘겨주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생활안정에 필요한 각종 사회적 혜택을 받기 위해 많은 세금을 국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따라서 세금징수에 의존하는 복지제도가 시행되는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과도한 납세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에 의존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납세부담에 직결된다.
  
그런데 사회적 재부가 소수 자본가계급에게 집중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적 모순이 격화되어 빈곤인구와 실업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출산율 저하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면, 빈곤인구, 실업인구, 노인인구의 복지혜택을 들어가는 국가재정지출은 급증하고, 그처럼 급증한 국가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산층에게 이전보다 더 심한 납세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심화될수록 중산층이 차츰 해체되어 중산층으로부터 걷어내는 세금이 줄어들고, 장기간에 걸쳐 세금징수와 재정지출의 괴리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막대한 부채가 누적된다. 그로써 국가는 부채상환능력을 상실한 재정파탄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복지제도를 시행해오던 미국, 일본, 유럽연합에서 파산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고 있는 파국적 국가채무위기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2011년 8월 현재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부채위기국을 손꼽아보면, 국내총생산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은 일본 229%, 그리스 152%, 이탈리아 120%, 아일랜드 114%, 아이슬란드 103%, 미국 100%로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국가채무는 1981년에 국내총생산의 32.5%였고, 1986년에는 62.4%였는데, 이번에 100%로 늘어나 부채위기국으로 전락하였다. 지금 미국의 국가부채를 1,000 달러 짜리 고액권으로 쌓는다면, 그 높이는 1,450km에 이르러 대기권을 뚫고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게 되고, 1달러 짜리 지폐로 쌓는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할 수 있다.

지금 부채위기국들이 겪는 공포스런 현실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세금징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불완전한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의 재정이 파산되어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복지혜택을 크게 축소하거나 전면 중단하는 이른바 '복지의 붕괴'는 불가피한 일이다.
 
사회계급적 모순은 시장경제를 파탄위기에 빠뜨리는 직접적 원인이고, 시장경제위기는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직접적 원인이고, 국가재정파산은 불완전한 복지제도를 무너뜨리는 직접적 원인이다.


특유한 사회복지의 단계적 실현을 전망하며

이 땅에 불완전하나마 북미형 복지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김대중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권에게는 북미형보다 더 발전된 유럽형 복지제도를 도입할 능력이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불완전한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한다고 하였으나, 북미형 복지제도 도입과 함께 신자유주의도 수용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바람에 죽도 밥도 되지 않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사회복지와 신자유주의는 상극인데, 김대중 정권이 그런 상극을 동시에 받아들인 것이야말로 어이없는 패착이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뼈아프게 겪은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불완전한 북미형 사회복지를 짓밟아 불구로 만들어버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하였는데도, 사회적 양극화가 날로 확대되고 민생경제가 파산상태에 빠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복지를 인기영합주의(populism)라고 비난하고, 신자유주의 전면화에 박차를 가해온 이명박 정권은 북미형 복지제도를 더욱 불구화시켰다.

희망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희망의 빛은 2012년 정권교체에서 비치고 있다. 만일 2012년에 정권교체를 실현하면, 새로운 정권은 이명박 정권이 불구화시킨 북미형 복지제도를 복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형 복지제도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다.

불구화된 북미형 복지제도를 복구하고 유럽형 복지제도로 발전시키는 힘들고 어려운 과업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세제도 개혁으로 수행되는 것인데, 신자유주의가 중산층을 해체해버린 지금에 와서 조세제도를 아무리 개혁해도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지금 미국, 일본, 유럽연합이 겪는 재정파탄위기가 말해주는 것처럼, 세금징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발전전망을 이미 상실하였으므로, 이 땅에서 그런 가망 없는 복지제도를 모방시행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과업은, 가망 없는 자본주의 복지제도를 넘어서는 대안적 복지제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순전히 이론적으로 논하자면, 자본주의 복지제도의 대안은 사회주의 복지제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땅에서 시장철폐를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복지제도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짓이다.

신자유주의 해악으로 기존 중산층이 상당부분 해체되어 사회적 양극화가 확대된 오늘의 우리 사회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실패한 복지제도에 기울거릴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후진 자본주의 나라들 가운데 사회복지에 성공한 나라의 참신한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네주엘라는 우리보다 중산층이 발달하지 않은 후진 자본주의 나라이지만, 정권교체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특유한 복지제도를 시행,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베네주엘라의 특유한 복지제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세금징수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복지제도도 아니고, 시장철폐를 전제로 하는 완전한 사회주의 복지제도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재정을 중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유한 복지제도다.
 
그러나 중요산업 국유화도 민주노동당이 단독집권을 실현한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므로, 2012년 정권교체에서 중요산업 국유화에 기초한 대안적 복지제도 수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현실은 이 땅에서 복지제도를 완성해가는 과업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험난하고 복잡하게 수행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그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북미형 복지제도 복구→유럽형 복지제도로의 발전→대안적 복지제도 수립이 될 것이다.


공상적 복지관념을 버리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사회복지를 논할 때, 의례히 거론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 땅에서도 스웨덴처럼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희망과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 희망과 요구는 과연 실현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부질없는 공상일까?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스웨덴과 우리 사회의 국가재정지출을 비교할 필요가 있는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군사비 차이다. 스웨덴의 군사비와 이 땅의 군사비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스웨덴 인구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908만 명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은 3,547억 달러다. 그 나라에서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가 시행되는데, 군복무기간은 육군 7개월 반, 해군 7-15개월, 공군 8-12개월이다. 스웨덴의 군병력은 현역 25,000 명, 제대자는 47세까지 예비역 22,988 명, 민병대 38,000 명으로 구성되었고, 2009년도 군사비는 55억 달러이며, 2009년도 국내총생산 대비 군사비 비율은 1.55%다.

그에 비해, 남측 인구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4,875만 명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은 9,862억 달러다. 이 땅에서는 징병제가 시행되는데, 군복무기간은 육군과 해병대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이다. 이 땅의 군병력은 현역 653,000 명, 예비역 320만 명이다.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우리가 스웨덴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군비부담을 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사회복지문제를 논할 때 제기되는 핵심문제는 군사비 지출인데, 이 땅의 군사비는 얼마나 될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도 군사비는 29조5,000억 원(280억9,500만 달러)이며, 주한미국군에게 해마다 제공하는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은 3조 원(28억5,700만 달러)이다. 따라서 이 땅의 군사비 총액은 32조5,000억 원(309억5,200만 달러)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 대비 군사비 비율은 3.13%다.

국내총생산에 대한 군사비 비율이 3.13%나 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비율이 1.55%밖에 되지 않는 스웨덴처럼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땅에서 군사비를 대폭 삭감하지 않고 사회복지를 실현한다는 소리는 한낱 공상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군사비를 어떻게 삭감할 수 있을까?

이 땅의 군사비 지출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주한미국군에 대한 '지원금'이다. 선제핵공격을 상정한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이는 주한미국군에게 해마다 3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지원금'을 대주는 것은, 칠천만 겨레를 몰살시킬 핵전쟁비용을 미국에게 대주는 자멸행위이며, 민족적 양심을 짓밟고 상식을 파괴하는 반이성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친미정권이 '동맹'의 이름으로 자행해오는 이 반이성적 행위를 언제 중단시킬 것인가?

재정문제만 놓고 생각해봐도, 만일 주한미국군에게 제공하는 3조 원을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으로 사는 이 땅의 83만 가구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한 가구당 연간 361만 원씩 복지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국군에게 제공하는 3조 원을 이 땅의 대학생 300만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한 사람에게 연간 100만 원씩 학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한국군 감축은 논외로 치고, 주한미국군 철군만으로도 이 땅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결론은 명백하다.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길을 국민에 대한 조세부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사회복지혜택을 안겨줄 결정적 기회로도 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남북 2차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7년 개최된 8. 15 자주통일 범국민대행진 모습.

 누구나 아는 것처럼,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 평화회담이 성사되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야 가능하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복지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한반도 평화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이어지는 평화와 철군의 시나리오는, 칠천만 겨레에게 평화통일을 안겨주는 민족재생의 길이며 동시에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빈궁과 궁핍에서 벗어나는 민중재활의 길이기도 하다. (2011년 8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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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저무는 동맹, 떠오르는 동맹

진실의 말팔매 <3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1년 7월 27일 미국의 군사정보 인터넷 <중국국방소식(China Defense News)>에 실린 동영상 한 편이 군사전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동영상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작전배치한 최신형 순항미사일 창젠(長劍)-10을 발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창젠(CJ)-10으로 불리는 지상발사 순항미사일은 2009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건국기념일 열병행진에 처음 등장한 바 있는데, 발사장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7월 27일 미국의 군사정보 인터넷 <중국국방소식(China Defense News)>에 실린 순항미사일 창젠-10의 발사 장면.
  

△2009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건국기념일 열병행진에 등장한  창젠-10 순항미사일
  
당시 열병행진에 등장한 미사일발사차량 한 대에 창젠-10 순항미사일 3기씩 실려있었다. 이 순항미사일은 마하 2.5 속도로 2,500km를 날아가며, 반경 10m 안의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밀타격력을 자랑하는 최첨단 초음속 순항미사일이다. 

군사분석가들은 창젠-10 순항미사일의 타격목표가 동중국해에 출현하는 미국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라고 말한다. 그 항모강습단의 주축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비롯한 제7함대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모조리 창젠-10 순항미사일 타격목표로 설정되었다는 말이다.

창젠-10 순항미사일은 당연히 중국 남부의 군사전략거점인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배치되었을 것이므로, 거기서 그 미사일을 발사하면 필리핀 루존(Luzon)섬 상공을 넘어 그 섬의 동해안에서 동쪽으로 1,000km 떨어진 서태평양 해상까지 날아간다.

중국이 그러한 장거리 정밀타격력을 보유한 것은, 서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거점인 괌(Guam)에서 중국 대륙이 있는 서쪽으로 1,400km 떨어진 해상까지 미국 함대 작전반경을 크게 축소시켰음을 뜻한다. 괌에서 하이난다오 남단의 산야(三亞)에 있는 중국인민해방군 군사기지까지 직선거리는 3,800km인데, 미국 함대 작전반경은 3,800km 가운데서 2,400km나 줄어든 것이다.

명백하게도, 창젠-10 순항미사일의 군사전략적 가치는 지금까지 필리핀해와 동중국해에서 제해권을 독점해온 미국의 군사작전력을 결정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중국의 안보역량을 한층 강화하였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순항미사일 성능은 아음속인가 아니면 초음속인가 하는 비행속도로 결정된다. 비행속도가 음속(시속 1,224km)에 가까운 느린 속도로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은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없지만, 비행속도가 음속보다 2.5배 빠르게 날아가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다.

요즈음처럼 방공력이 강화된 조건에서 아음속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아무리 길어도 그리 위협적이지 못하다. 군사강국들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보유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국군이 보유한 순항미사일 현무-3C는 사거리가 1,500km이지만, 아음속도 아니고 그보다 느린 저음속이어서 인민군의 조밀한 방공망을 뚫지 못한다.

중국이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때는 1995년경이다. 당시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Kh-55 아음속 순항미사일 생산설비를 도입하였다. 그 때로부터 약 4년이 지난 1999년에 중국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아음속 순항미사일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홍니아오(紅鳥) 계열의 순항미사일이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이 홍니아오 계열의 아음속 순항미사일을 개발한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09년에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 창젠-10을 세상에 공개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아음속 순항미사일 개발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만들어내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때가 1995년경이라면, 북측은 언제부터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을까? 북측이 사거리 260km 사거리의 저음속 순항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하였던 때는 1997년 5월 23일이다. 놀랍게도, 북측과 중국은 순항미사일 개발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10년 뒤에 초음속 순항미사일 창젠-10을 세상에 공개하였으니, 북측도 2009년쯤에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북측의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2009년 7월 4일 동해에서 실시한 미사일발사훈련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그 날 북측이 동해로 발사한 미사일 7발 가운데 맨마지막으로 오후 4시 10분과 5시 40분에 각각 발사한 2발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이다.

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의 사거리가 얼마나 긴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탄두는 미사일발사차량이 기동했던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일대로부터 420km 떨어진 동해 한 복판에 설치해놓은 해상목표물에 명중하였다. 그러나 당시 북측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미국이, 그 미사일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미국이 그 미사일에 어떤 자의적 명칭을 달아놓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만일 동해안 전방지대에서 기동하는 인민군 미사일발사차량에서 그 미사일을 쏘면 독도 인근 해상에 있는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으므로, 이전에 원산 앞바다 수평선 너머까지 접근하여 북측을 위협하였던 미국 제7함대 항모강습단의 동해 작전반경은 독도 인근 해상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런데 북측과 중국이 거의 같이 순항미사일을 각각 개발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뒤에 나온 결과를 보면 북측은 사거리가 420km밖에 되지 않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한 것으로 밝혀졌고, 중국은 사거리가 2,500km나 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왜 사거리에서 여섯 배나 차이가 난 것일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북측이 2009년 7월 4일 발사훈련에 등장시킨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중국이 2009년 10월 1일에 열병행진에 등장시킨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달리 해수면 밀착비행기능을 가진 대함미사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북측은 해수면 밀착비행기능을 가진 초음속 순항미사일밖에 보유하지 못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미사일 강국들 가운데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한 종류만 개발하는 나라는 없다. 인민군은 2009년 7월 4일에 발사훈련을 실시한, 해수면 밀착비행기능을 가진 초음속 순항미사일 이외에 다른 첨단성능을 가진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보유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상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북측이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보유한 목적은, 일본에 진을 친 미국 제7함대의 동해 출동을 저지하는 것이므로 그런 저지목적에 부합하는 장거리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보유하였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북측의 동해안 전방지대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의 서부해안 니가타(新潟)항 앞바다까지 직선거리는 약 955km이므로, 만일 북측이 미국 제7함대의 동해 출동을 저지하려면 1,000km 사거리를 가진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동해 전역이 그 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군사기밀을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록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북측은 동해 전역을 타격할 사거리 1,000km의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런 조건이면, 북측과 미국이 해상작전을 벌이는 경우 미국 제7함대 항모강습단은 동해로 감히 들어가지 못한다. 미국 제7함대 항모강습단이 2010년 초부터 동해에 나타나지 못하고 서해 남쪽 먼바다에 나타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측과 중국이 각각 최첨단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작전배치한 것은 동해와 동중국해와 필리핀해에서 미국 제7함대 작전력을 약화시켰음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21세기 경제발전을 위한 전략지역으로 선정된 동북지방의 안보가 북측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일 북측이 미국 제7함대의 동해 제해권을 초음속 순항미사일로 무력화하지 못했더라면, 중국은 동북지방에서 북측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출해통로를 개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2011년 7월 29일 <길림신문>은 북측 라선시와 중국 지린성이 창춘시에서 '중조 라선경제무역구 2011-2020년 계획 기본협의'를 채택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북측은 2011년 6월부터 라선과 훈춘을 잇는 도로에서 갈라져 청진까지 내려가는 약 15km의 도로를 신설하는 공사를 시작하였고, 청진항 보수확장공사도 마무리하고 있다.

중국이 청진항을 통해 동해로 나아가는 제2출해통로 개설공사는, 북측의 합영투자위원회와 중국의 투먼시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2011년에 이르러 북측과 중국이 동해로 나가는 동반진출을 이처럼 본격화한 배경에는 동해 제해권을 놓고 벌어진 북측과 미국의 군사대결에서 북측이 판정승을 거두어 미국 제7함대 작전반경을 동해 밖으로 밀어낸 군사정세의 변화가 깔려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6.25 전쟁 이후 거의 60년 동안 동해는 미국 제7함대가 제해권을 장악한 미일동맹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반경 5m 이내의 정밀타격력을 자랑하는 북측의 강력한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등장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2009년 이후, 그리고 중국이 2,500km 밖에 있는 목표물을 정밀타격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세상에 공개한 2009년 이후, 동아시아 해역들에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북중동맹이 미일동맹을 차츰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미일동맹의 침략 깃발은 저물어가고, 21세기 미래를 주도할 북중동맹의 반제자주 깃발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북측이 미국을 계속 압박하여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러한 전략적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장차 평화통일 실현으로 한반도에 인구 8천만의 통일공화국이 건설되면 미일동맹은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2011년 8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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