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9

미국을 핵절벽으로 떠민 북의 새로운 핵정책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35)
2012년 11월 19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비공개 회의
 
19세기 독일 관념론 철학의 완성자 헤겔(G.W.F. Hegel)은 1820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내린 뒤에야 날개를 펴고 난다”는 글귀를 남겼다. 로마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Minerva)를 따라다니는 부엉이는 낮에는 웅크리고 있다가 밤에만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헤겔이 그런 신화를 인용한 것은, 학문이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그 뜻을 알게 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비록 낮에는 날지 못해도 밤눈이 밝아 밤에라도 날아다니는 부엉이가 있는가 하면, 두 눈이 멀어 날지 못하고 퍼덕이기만 하는 불쌍한 올빼미도 있다. 북미관계를 뒤집을 격변이 있었는데도, 친미주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북미관계의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는 전문가들이 그런 올빼미 신세다. 북미관계 변화동향을 추적하며 연구해오면서도, 올해 격변이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한 나도 미네르바의 부엉이 신세를 아직 면하지 못했는가 보다.

정보부족으로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특정하기 힘들지만, 격변은 지난 초여름에 일어났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격변소식을 알려준 것은, 뜻밖에도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이 2012년 8월 16일에 단독보도로 게시한 온라인 기사 한 편이었다. 전문가들과 언론계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그냥 묻혀버린 그 짤막한 기사는, 2012년 8월 초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북과 미국의 비공개 회의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에 나온 북측 참석자는 유엔주재조선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와 외무성 최선희 미국국 부국장이었고, 미국측 참석자는 국무부 핵문제 담당관리로 오래 일한 경력이 있는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상임연구원 조엘 윗트(Joel Wit)와 국제안보연구기관인 핵위협발의(Nuclear Threat Initiative)의 국제사업 부국장 커리 힌더스타인(Corey Hinderstein)을 비롯한 미국인 전문가 6명이었다.

참석자들의 지위만 살펴보면,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가 그리 큰 비중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래서 그 기사가 전문가들과 언론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혀버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에 나온 미국측 전문가들은 북미관계를 미국의 시각에 고정시키는 인식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그 비공개 회의를 단독보도한 <외교정책>의 기사내용도 당연히 미국의 시각에서 작성된 것이다. 그래서 그 기사를 정밀분석을 하지 않으면, 격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외교정책>이 보도한 문제의 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 중에 “북미관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놓고 진행된 토론에서 북측 참석자들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깜짝 놀랄 ‘폭탄발언’을 꺼내놓았다고 한다.

첫째, 북측 참석자들은 북이 2.29 북미합의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둘째, 북측 참석자들은 북이 기존의 북미 동시행동 원칙을 폐기하고, 미국이 먼저 북에 대해 양보해야 북이 그에 상응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택하였다고 말했다.
셋째, 북측 참석자들은 북이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북측 참석자들의 발언은 기존 북미관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실로 충격적인 정보를 알려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북은 2.29 북미합의를 폐기하였고, 북미 동시행동 원칙을 폐기하고 미국의 선 양보 원칙을 새로 채택하였으며,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이 2.29 북미합의를 폐기하고, 북미 동시행동 원칙을 폐기하고 미국의 선 양보 원칙을 채택하고,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은 북의 자기의 핵정책을 완전히 바꾼다는 뜻이다. 싱가포르 회의를 왜 비공개로 진행하였는지 이제야 알 수 있다.

북의 핵정책 변경의사는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가 있었던 때로부터 얼마 뒤에 미국 국무부 관리에게 직접 전해졌다. <아사히신붕> 2012년 10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9월 말 중국 다롄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북측 외무성 최선희 미국국 부국장이 미국 국무부 클리퍼드 하트(Clifford Hart) 대북특사를 만났을 때 “북이 지금 핵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선희 부국장의 그 발언은 북측 외무성이 2012년 7월 20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제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북측 외무성 관리는 미국 국무부 관리를 만난 자리에서 북이 핵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그런 표현은 외교적 수사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발언에 담긴 속뜻을 헤아려보면, 북이 핵정책을 재검토하는 단계를 지나 이미 변경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보다 앞서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에서 북측 외무성 관리들은 북이 2.29 북미합의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신중한 표현을 썼지만, 그 신중한 표현에 담긴 속뜻을 헤아려보면, 북이 2.29 북미합의와 9.19 공동성명을 이미 폐기하고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2.29 북미합의와 9.19 공동성명을 폐기하고 새로운 핵정책을 추진하는 문제는 북측 외무성이 처리할 수 있는 실무문제가 아니다. 핵정책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국가안보의 최고 문제이므로, 기존 핵정책을 변경하고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하는 문제는 북의 최고영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에서 북측 참석자들이 미국측 참석자들에게 북이 9.19 공동성명 폐기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나, 다롄의 비공식 접촉에서 북측 외무성 관리가 미국 국무부 관리에게 북이 핵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기존 핵정책을 변경하여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 비공개 회의가 있었던 때로부터 무려 석 달 이상 지난 지금, 북의 새로운 핵정책 수립은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인 것이다.


북측 외무성의 8.31 비망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수립한 새로운 핵정책은 어떤 핵정책일까? 북이 새로운 핵정책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고, 더욱이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하였다는 사실도 외부에 알려주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2012년 8월 31일 북측 외무성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은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기본장애’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장문의 비망록에서 북의 새로운 핵정책에 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북측 외무성은 핵문제에 관한 장문의 비망록을 불특정한 시기에 불쑥 발표하지 않는다. 북은 어떤 중대한 계기에 맞춰 장문의 비망록을 발표하는 관행이 있는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 직후에 북측 외무성이 핵문제에 관한 장문의 비망록을 발표하였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면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이라는 중대한 계기에 맞춰 북측 외무성이 8.31 비망록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북측 외무성의 8.31 비망록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우선, 외무성의 8.31 비망록부터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비망록은 “미국이 끝내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의 핵보유는 부득불 장기화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 것”이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누가 읽어봐도, 이 문장은 북이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는 조건을 달아놓고,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문장의 강조점이 북의 핵억지력 대폭 강화에 찍혀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다.

비망록이 지적한 미국의 올바른 선택이란 다른 게 아니라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전략적 선택인데, 지난 20년 동안 굴곡 많게 쌓여온 북미관계의 복잡다단한 경험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에 병적으로 집작하면서 북의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요구를 집요하게 거부해왔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비망록이 말하려고 하는 요점은, 미국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북이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한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 그 선택을 거부하였으므로 북은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이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세계 최강 핵보유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마저도 깜짝 놀랄 현대적인 핵시설을 증설하여 핵탄두 보유수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한편, 그 동안 대미관계를 고려해서 북이 자제해온 지하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대미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연속적으로 실시한다는 뜻일까? 비망록 문맥을 그대로 따라서 읽으면, 그런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비망록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요점이 들어있다. 비망록이 말한 핵억지력의 대폭 강화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에 상응하여 북도 핵포기를 단행하겠다는 기존 핵정책을 북이 폐기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은 비핵화정책을 폐기하고 핵억지력 강화정책을 수립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 글린 데이비스(Glyn Davis)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이 핵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최선희 부국장의 말을 북이 비핵화하겠다는 약속에서 이탈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이해하면서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하였다고 <아사히신붕>은 보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글린 데이비스의 그런 우려 섞인 판단은 총체적이지 못하고 부분적이다. 북의 새로운 핵정책이 북미관계에 어떤 격변을 불러일으키는지를 파악하려면, 외무성의 8.31 비망록만 읽어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비망록보다 더 중요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까지 읽어보아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미국이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게 될 전쟁

세상에 알려진 대로, 북의 기존 핵정책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도 그에 상응하여 핵을 포기하겠다는 한반도 비핵화 구상 위에 수립된 것이다. 미국에게 대북적대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북의 기존 핵정책은 대미정책이기도 하다. 그러한 한반도 비핵화 구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북이 견지해온 북의 기존 핵정책 및 대미정책의 기조이며, 9.19 공동성명에 담긴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북이 9.19 공동성명을 폐기하고 기존 핵정책을 변경하여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한 것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억지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북이 미국에게 대북적대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북의 새로운 핵정책은 북이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적대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대미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8.31 비망록이나 8.25 경축연설문을 읽어보지 못한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바로 이러한 북의 새로운 대미정책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북이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적대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북이 대미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북의 새로운 대미정책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대미전쟁이라는 새로운 기조 위에 수립된 것이다.

2010년 10월 9일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북이 개시할 그 전쟁은 “불구대천의 백년숙적을 청산하기 위한 반미대결전”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8.25 경축연설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그 전쟁은 조국통일대전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반미대결전은 곧 조국통일대전인 것이다.

또한 북의 인민군이 평소에 받아온 전투훈련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 전쟁은 후퇴는 없고 오직 공격만 있는 전면전이며, 적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전쟁피해를 최소화하여 곧바로 끝낼 전격전이다. 2012년 10월 9일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성명에서 그런 전쟁양상을 가리켜 “세상이 알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짜 전쟁맛을 보여주”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북이 대미평화정책을 접고 조국통일대전에 나서겠다는 뜻을 천명하였다는 점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러한 대미정책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명하였다. 8.25 경축연설의 일부를 여기에 인용한다.

“나는 이미 서남전선의 최전방부대들에 나가 적들의 무분별한 추태를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예리하게 살피며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 령토와 령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고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 수표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 결전을 위한 최후 돌격명령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줄임)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용납 못할 추태의 후과로 이 땅에서 또 다시 바라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에서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은 수치스러운 파멸을 맞을 것이며 위대한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은, 미국의 집요한 거부로 사실상 불가능해진 평화협정으로 북미적대관계를 종식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대북전쟁책동이 불가피하게 만든 통일대전으로 북미적대관계를 종식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2012년 3월 초 김정은 제1위원장이 판문점 시찰 중 정전협정 조인장에서 한 말을 인용하면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원쑤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 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북측에서 나온 여러 보도자료를 분석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후 돌격명령을 대기 중인 인민군은 통일대전을 개시할 격동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통일대전에서 승리할 압도적인 전쟁수행력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0월 9일 북측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성명에서 인민군의 통일대전 준비태세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전략로케트군을 비롯한 우리의 백두산 혁명강군이 괴뢰들의 본거지 뿐 아니라 신성한 우리 조국땅을 강점하고 있는 미제침략군기지들은 물론 일본과 괌도, 나아가서 미국 본토까지 명중타격권에 넣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숨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미국과 괴뢰들을 비롯한 온갖 추종세력들의 핵에는 핵으로, 미싸일에는 미싸일로 대응할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단호한 행동뿐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무장한 북의 전략로케트군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전략적 핵타격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민감한 정치군사문제를 그처럼 명시적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북의 건국 이래 위의 성명이 처음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8.25 경축연설이 인민군의 전투력 강화문제를 언급한 연설이 아니라 임박한 통일대전을 향한 결전의지를 공식 천명한 연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위에 인용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읽어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재정절벽보다 더 무서운 핵절벽
 
2012년 11월 6일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Mitt Rommy)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로써 미국 민주당 정권은 앞으로 4년 동안 집권을 연장하게 되었는데, 민주당 정권 2기에 북미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요즈음 남측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저러한 관측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 낙관적인 전망은, 재선부담을 느끼지 않는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대통령이 대외정책을 공화당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갈 것이므로 미국의 대북정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만일 북이 태도변화를 보이면 미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여 북미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식의 전망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전망은 오늘 북이 새로운 대미정책을 수립하였다는 정보를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헛꿈을 꾸는 것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새로운 대미정책을 수립한 북은 북미적대관계를 평화협정이 아니라 통일대전으로 종식시키려는 결전태세를 갖추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얼마 전 인민군 최전방부대 시찰 중에 야전지휘관들의 손을 잡고 “조국통일대전의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였다는 북측 언론보도를 어찌 무심히 들을 수 있겠는가!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은 통일대전을 개시할 가장 유리한 최후 결전의 시기선택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북측 외무성의 8.31 비망록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미국이 북의 새로운 대미정책을 “그 무슨 전술로 보는 것은 오산이다.” 북미관계의 현 상황이 그처럼 엄청난 전략적 격변을 겪게 된 판인데, 아직도 무슨 북의 태도변화니 6자회담 재개니 하는 따위의 철지난 소리나 꺼내놓는 것은 무지와 오판의 소음일 뿐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이 새로운 대미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하여 미국은 절벽으로 떠밀려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미국이 재정절벽(Fiscal Cliff)으로 떠밀려갔다는 아우성이 지금 워싱턴 정가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대북핵정책이 완전히 파탄상태에 빠진 미국은 재정절벽만이 아니라 핵절벽(Nuclear Cliff)으로도 떠밀려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재정절벽 앞에서 공포를 느끼며 덜덜 떨고 있는 미국은, 북미관계를 미국 중심으로만 파악하여 오판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정작 재정절벽보다 더 무서운 핵절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 동안 한 손에 달러뭉치를 쥐고 다른 한 손에 핵무기를 쥐고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려고 날뛰어왔지만, 미국이 두 손에 틀어쥔 바로 그 달러와 핵이 오늘은 미국을 재정절벽과 핵절벽으로 떠밀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이 빠져든 처지는, 그야말로 자업자득과 풍전등화라는 4자성어가 썩 잘 어울리는 파국임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미국이 핵절벽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있기는 하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오바마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급파하여 한반도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하겠다는 대통령 친서를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는 잘 믿어지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북이 전쟁징후를 보이지 않고 불시에 개시할 반미대결전, 조국통일대전에서 패한 미국이 치욕스럽게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는 것보다, 북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협정문에 떳떳하게 도장을 찍는 것이 미국에게 백 번, 천 번 좋은 일이고 또 옳은 일이다. 그런데도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의 정책변화를 오판하여, 또 다시 6자회담 재개니 북의 태도변화니 하는 통하지 않을 소리를 계속한다면, 미국의 발 앞에는 핵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파멸적 재앙밖에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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