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6

슬퍼만 하기엔 너무 큰 슬픔

<민중의 소리> 2014년 05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비탄과 절망의 시간이 길다. 너무 길다. 세월호 대참사로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패인 상처가 견딜 수 없이 아프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들딸의 이름을 부르며 며칠 밤 며칠 낮을 통곡하다가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실종자 가족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팽목항에 찾아간 광주의 어머니들이 있다. 그 어머니들은 “함께 울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취재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 엄마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귀로는 들을 수 없고 가슴으로 들어야 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목소리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서 망망대해보다 넓고 큰 사랑의 바다를 목격한다.
 
그런 심성을 가진 이 땅의 어머니들은 바람 부는 팽목항 부두에 서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저 차디찬 바다 속에 밀어 넣었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따로 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력을 거세당하고 아첨쟁이로 전락한 보수언론은 선장과 선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세상의 이목을 그 두 사람의 죄행으로만 끌어내리려 한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다. 사경에 처한 세월호 탑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배에서 탈출한 선장도 직무유기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돈벌이에 눈이 멀어 선박안전규칙을 위반하고 선박안전운항을 포기하며 경영비리까지 저지른 선주도 배임수재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야당 공동대표의 말을 빌면, 이번 세월호 대참사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은 따로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침몰한 배에 갇혀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도 구조대책 긴급명령을 내리지 않고 방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 침몰 같은 대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사회체제, 위부터 아래까지 모조리 썩고 병든 이 더러운 사회체제를 나 몰라라 방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국정최고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서도 책임전가 발언으로 시간을 끌며 사태를 지나치려는 파렴치한 죄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의 최고권력자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야당 공동대표가 지목한 바로 그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아닌가! 비탄과 절망의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박근혜 정권은 어머니의 통곡이 듣기 싫은 듯 두 귀를 막고 부실대응과 책임회피의 독소를 재난의 상처 위에 뿌리고 있으니 원성이 하늘에 닿았다.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대참사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슨 대책본부가 10개가 넘게 난립하여 우왕좌왕하면서 침몰선박에서 탑승객을 살리는 긴급구조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자기의 직권으로 대책본부를 통폐합하여 단일지휘체계를 세우고 강력한 구조대와 구조장비를 사고현장에 급파하였어야 할 최고책임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대참사 같은 위기상황에서 자기의 직권으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고권력자에게 주어진 법적 책임이요 정치적 의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의 그런 책임과 의무에 대해 손을 털고 청와대 집무실에서 맴돌다가, 들끓는 여론을 의식하여 마지못해 사고현장을 한 차례 둘러보았고, 분향소에 나타나 엉뚱하게도 추모객 할머니와 손을 잡고 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이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민생파탄으로 울부짖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존권투쟁을 짓누르라는 독재권력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여 진보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라는 폭압권력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허락한 권력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사용하라는 권력이다. 민심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책무이행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려야 할 준엄한 심판
 
세월호 대참사와 관련하여 이 땅에 조성된 민심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이를테면, <한겨레21>과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3.8%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84.7%는 세월호 침몰 같은 대참사가 또 다시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였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결과는 박근혜 정권이 민심을 저버렸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이번에 세월호 침몰사고로 전대미문의 대참사를 겪으면서 이 땅의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이 민심을 저버린 독재정권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원래 부정선거, 관권선거로 불법당선되었다는 국민적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근혜 정권은 결국 독재정권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민생파탄의 고통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이들마저 죽음과 공포로 내몬 용서 받지 못할 독재정권은 반드시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내리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집에서 걱정하며 울기만 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거리로 나왔다.” 이것은 유모차를 끌고 거리행진에 나선 어머니가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지난 2일 어느 일간지에 실린 짤막한 두 문장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너무 늦어 미안하다. 이제라도 엄마가 싸울게.” 비탄과 절망을 눈물을 씻고 침묵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죽음과 공포의 사회체제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눈물 젖은 음성이라서, 죽음과 공포의 사회체제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결연한 음성이라서 듣는 이의 가슴에 더욱 크게 울린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이 땅의 어머니들이여, 문을 열고 촛불의 광장으로, 공분의 거리로 나오시라. 용서하지 못할 독재정권을 어머니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라.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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