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2013년 07월 0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나는 왜 거기에 갔는가?
초조한 느낌이 밀려왔다. 내가 평양을 방문한 목적이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참관인데, 내게 주어진 참관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정오까지 2시간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안내자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방대한 규모의 무장장비관을 2시간 30분 동안 전부 돌아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점심식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참관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방도를 궁리하고 있을 때, 나를 태운 승용차는 어느덧 만경대구역 청춘거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무장장비관은 그 거리 북쪽에 있었다. 무장장비관으로 통하는 길목은 청춘거리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승용차가 무장장비관 경비소 앞에 이르자, 기관단총을 등에 멘 인민군 경비병이 다가와 신원을 확인한 뒤에 통과를 허락하여 구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깔끔하게 잘 꾸며진 정원은 아늑한 휴양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초조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승용차에서 내려서니 그곳은 무장장비관 주차장이다.
그런데 주차장 바닥 전체에 잔디밭을 펼쳐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잔디열풍은 거기서도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참관자들을 태운 승용차나 버스가 수시로 드나드는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심으면 차바퀴에 짓밟혀 자랄 수 없으므로, 어른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 동그란 구멍을 가로세로 줄맞춰 수없이 뚫어놓은 넓은 판을 주차장 바닥 전체에 깔아 놓았는데, 그 수많은 구멍들에서 고개를 내민 잔디가 주차장을 온통 푸른 주단으로 덮어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색적인 잔디주차장에서 걸음을 옮겨 정원에 나있는 길을 100m 정도 걸어가니, 사진에서 본 무장장비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50명쯤 되어 보이는 북측 근로자들이 나보다 한 발 앞서 무장장비관 현관에 도착하여 참관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나의 무장장비관 참관을 안내할 해설강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내게 다가왔다. 해설강사는 뜻밖에도 여성군인이었다. 군복을 입고 총기어린 눈매로 내게 인사하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순박한 얼굴이 고와보였다. 김윤희라고 적힌 그녀의 명찰에 내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무장장비관 해설강사는 모두 여성군인들이라고 한다.
북의 참관자들은 한 번에 50명씩 집체적으로 참관하는데, 해외동포 방문자인 나는 단독으로 참관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해외동포사업국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는 내가 참관 도중에 이것저것 질문할 것을 예상하여 답변준비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에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외국인은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수 없다고 하니, 인민군 군인들과 북측 근로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만 참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언젠가 방북할 남측 동포들에게도 참관기회가 열려있겠지만, 요즈음처럼 남북관계가 최악상태에 빠진 정세에서는 남북왕래라는 말도 꺼내기 힘들고, 긴장된 정세가 풀려 남측 동포가 평양에 간다 해도 남측 정부당국이 무장장비관 참관을 불허할 것이므로 남측 동포들의 참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내가 무장장비관을 참관한 목적에 대해 한 마디 하련다. 통일학을 연구하는 나의 시각으로 보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대북정보가 북측 외부세계에 넘쳐나고 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된 대북정보를 유포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민중의 희망과 요구를 가로막으려는 데 있다. 대북정보의 왜곡과 유포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내외 반통일세력은 각종 대북정보를 전방위적으로 왜곡하는데, 군사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북군사정보에 관한 저들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특히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어가고, 북이 그에 맞서 반미전면대결전을 선포하고 그에 따른 군사활동을 전개하는 오늘의 군사상황을 파악하려면 북의 군사문제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인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가 민중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민중의 시야를 가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를 걷어내고 올바른 상황판단과 정세인식을 추구하려는 요구, 바로 그런 절실한 요구가 나를 무장장비관으로 떠밀었다.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한 대북군사정보를 비판하고 논박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면 주관적 해석보다 객관적 사실이 필요한데, 나는 무장장비관 참관이야말로 그런 객관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믿었던 것이다.
놀라움 속에 참관한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 군인들이 불과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공기간 동안 총부지면적 22만 평방미터, 연건축면적 5만 평방미터의 무장장비관을 “불이 번쩍 나게” 지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처럼 방대한 전시장의 어느 한 귀퉁이밖에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섭섭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꼬박 3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전시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해설을 듣고, 때로 질문도 하고 수첩에 기록도 하였으나, 너무 아쉽게도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두 곳밖에 참관하지 못하였다. 항공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해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특수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전자도서관, 그리고 ‘적군무기’를 전시한 ‘세계의 병기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전시구역이 너무 넓어 관람용 소형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야외전시장도 가보지 못했다. 무장장비관에 있는 그 모든 전시장을 참관하려면, 꼬박 사흘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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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은 정원에서 무장장비관 정면을 촬영한 것이고, <사진2>는 무장장비관 전자도서실을 촬영한 것이다. 나는 참관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전자도서관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사진을 보면 전자도서관이 고급 내장재로 꾸며졌고, 최상급 설비를 갖추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무장장비관의 여러 전시실들 가운데 가장 넓고 큰 전시실은 중무기실이다. 크고 무거운 각종 중무기를 통째로 들여놓아야 하였으므로 중무기실을 그처럼 넓고 크게 꾸려야 했을 것이다. 중무기실에 들어선 나는 방대한 전시규모와 다종다양한 중무기들을 보고 놀랐다. 중무기실에서 내가 살펴본 무기들은 여러 종류의 자행포(자주포)와 방사포(다련장로켓포), 여러 종류의 땅크(전차)와 경땅크, 여러 종류의 장갑차, 여러 종류의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와 지상대공중로케트(지대공미사일) 등이다.
주목하는 것은, 위에 열거한 모든 중무기들이 북이 자체로 생산하여 실전배치한 자국산 무기들이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외국산 무기는 한 점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무기실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을 돌아보면, 북의 중무기 발전추세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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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로 들어가는 입실방향에서 촬영한 것이고, <사진4>는 중무기실에서 나가는 퇴실방향에서 뒤를 돌아보며 촬영한 것이다. <사진3>에서 보이는 것처럼, 중무기실 중앙통로를 중심축선으로 하여 왼쪽에 육중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시되었고, 오른쪽에 포신을 치켜든 자행포와 방사포들이 전시되었다.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서, <사진3>에는 그 많은 무기들 가운데 중앙통로 부근에 전시된 일부만 보인다. <사진3>에서 보이지 않지만, 중앙통로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각종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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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군데 예외가 있었다. 북에서 ‘주체식 미싸일 및 요격미사일종합체’라고 부르는 지상대공중로케트 발사체계에 속한 자행발사대(발사차량) 앞에 놓인 해설판은 다른 해설판보다 조금 큰데, 거기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을 3시간 동안 돌아본 참관과정은 내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참관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북측 외부세계의 섣부른 추측을 뒤집어엎는 강력한 무기들을 보유하였으므로 북은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서도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이 그처럼 강력한 재래식 무장에 더하여 핵무장까지 갖춘 것을 생각하면,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국군과 격돌할 반미전면대결전에서 인민군이 능히 이긴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언하는 것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에 관한 나의 서술은 무장장비관 전시실 해설판에 적힌 내용, 그리고 해설강사의 해설과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그 이외에도 북의 보도기사내용, 그리고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정보를 첨가한 것이다. 무장장비관에 가서 직접 파악하고 쓴 이 견문록은 이제껏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인민군 무장력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군사정세를 바라보는 전문가들과 관심 있는 독자들의 대북군사정보 인식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세계 4대 전차강국 위상을 실물로 입증한 중무기실의 전차들
무장장비관 참관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 뉴욕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보도기사를 보았다. 그것은 2013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몇몇 남측 언론매체들이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해 보도한 기사들이다. 그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던 내 기억 속에는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흥분 속에 바라보았던 전차들의 육중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의 산만한 보도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신형 전차들인 ‘선군호’와 ‘천마5호’ 900여 대를 생산하여 전방에 실전배치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기간 한국군의 전차생산량보다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둘째, 보도에 따르면, 북의 신형 전차 ‘천마5호’는 1990년대에 개발된 ‘천마4호’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고, “최근에 식별된” 북의 신형 전차 ‘선군호’는 기존 주력전차인 ‘폭풍호’보다 주포 사거리가 늘어났고, 최대속력도 시속 7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 기동력이 뛰어나다.
셋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는 신형 사격통제장치와 포탑을 갖춰 이동중 사격능력이나 야간사격능력이 우수한 3세대 전차다.
넷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 포탑 위에는 러시아군 지대공미사일 ‘이글라’를 개조한 지대공미사일이 장착되었고, 2010년 중국에서 수입한 러시아산 대전차미사일도 장착되었다.
이처럼 네 갈래로 정리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보도내용은 내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직접 확인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정보와 크게 어긋나는 엉터리 정보를 말해주고 있다. 북의 신형 전차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왜곡하여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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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를 보면,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차 다섯 대가 전시되고, 그보다 바깥쪽에 포탑이 둥근 전차 두 대가 전시된 것이 보인다.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 그 사진에서는 일곱 대밖에 보이지 않지만, 중무기실에는 북에서 생산한 10종의 전차 열 대가 한 줄에 다섯 대씩 두 줄로 전시되었다. 중앙통로 바로 왼쪽 안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2000년대 이후에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고, 바깥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다.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 전시된 10종의 전차들 가운데서 북이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1967년식 수륙땅크, 1968년식 중땅크, 1976년식 중땅크 ‘천마’, 1981년식 경땅크 ‘신흥’,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다.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나는 1981년식 경땅크 ‘신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경땅크 ‘신흥’은 미국 군부가 ‘PT-85’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수륙양용경전차다. 중전차에 비해 무게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 20t이어서 경전차라 부른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에는 85mm 주포, 사거리가 3km인 대전차미사일, 7.62mm 기관총, 14.5mm 기관총이 장착되었다. 속력은 지상에서 시속 60km, 물에서 시속 10km로 달리며, 주행거리는 500km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은 강과 하천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안선 굴곡이 심한 한반도의 작전환경에 적합하게 만든 전차다.
2010년 1월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 기동사격훈련 중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조종하였던 951호 전차가 바로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이다.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종한 951호 전차는 ‘중앙고속도로 춘천-부산 374km’라고 쓰인 커다란 이정표가 서 있는 전차기동훈련장 남진예상주로를 질주하면서 전차포를 연발 사격하였다.
놀라운 것은, 북이 자국산 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67년이라는 사실이다. 남측의 신진자동차가 일본산 ‘크라운’ 승용차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을 시작하였던 1967년에 북의 류경수전차공장과 구성전차공장은 자국산 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 북의 전차생산과 남의 자동차생산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북은 러시아, 중국, 미국에 이어 제4위의 전차보유량을 기록하였고, 남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5위의 자동차생산량을 기록하였다.
북이 최신형 전차를 생산한 때가 2009년이므로, 북은 1967년부터 2009년까지 근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개발하고 개량하고 생산해온 것이다. 북이 지난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개량하고 자력으로 대량생산하였으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개발기술과 전차개발경험을 가졌다는 미국, 러시아, 독일 같은 전차개발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룰 고도의 제작기술과 풍부한 개발경험을 축적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북이 노후한 소련산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식의 남측 언론보도는 허위보도라는 점이 자명해지며, 오늘날 북이 6,000대가 넘는 전차를 실전배치한 세계 4대 전차강국이라는 사실도 자명해진다.
인민군에 배치된 6,000대 이상의 전차는 100%가 각지에 건설한 수많은 갱도진지들에 들어가 있다. 자국군 전차를 100% 갱도진지에 넣어두고, 평시에 적국의 위성정찰을 차단하고 전시에 적국의 공중공격을 막아내는 군사강국은 세계 4대 전차강국 가운데서도 북밖에 없다. <사진6>은 갱도진지에서 전차를 몰고 훈련장으로 나온 인민군 전차병들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인민군 전차병들은 출전을 결의하며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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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개량되어온‘천마’ 계열 전차들,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폭풍호’ 전차
놀라움 속에서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내 발길은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5종의 전차들 앞에서 멈췄다. <사진5>에 나타난,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시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사진에서 맨 앞에 보이는 것이 2000년에 생산된 주체89년식 중땅크 ‘천마-98’이고, 그 다음으로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2003년에 생산된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며, 사진에서 맨 끝에 보이는 것이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놀라운 것은, 북이 ‘천마’ 계열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1976년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자국산 중전차를 처음 생산하였던 때가 1968년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 당시로서는 매우 우수한 성능을 지닌 ‘천마’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것이다. 북이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에게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전차 150대를 수출하였는데, 그 전차가 1976년식 중땅크 ‘천마’다.
또한 북은 1992년에 생산한 중땅크 ‘천마-92’의 성능개량에 힘을 집중하여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에 ‘천마’ 계열 전차들을 연속 생산하였다. 이것만 봐도, 북의 전차개발능력이 200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전차생산의 전성기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전차생산 전성기에 성능향상을 거듭한 ‘천마’ 계열 전차들의 성능은 어떻게 향상되었을까?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이어서 알 수 없지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내용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적의 공격으로부터 전차를 방어하는 장갑방호력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북은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에 덧장갑을 씌워 적의 열압력탄 공격에 대한 장갑방호력을 강화한 바 있었는데, 2000년 이후에 생산된 ‘천마’ 계열 전차들은 복합장갑으로 만들어 장갑방호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덧장갑이란 남측에서 폭발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이라 부르는 것인데, 5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전차 포탑과 정면에 더덕더덕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덧장갑이다. 덧장갑보다 더 우월한 복합장갑(composite armour)은 강철보다 네 배나 더 견고한 성질을 지니고 무게는 강철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9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러시아군이 자국산 전차에 세계 최초로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5년이고, 그 뒤를 이어 미국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8년이고, 인민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92년이다. 이런 추세를 보면, 북이 전차개발기술에서 앞선 러시아와 미국을 이미 1990년대 초에 바짝 뒤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 주체98년식 중땅크 ‘천마-98’,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의 중량은 각각 38t씩인데,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의 중량은 각각 39t씩이다. 전차성능 개량과정에 전차중량이 1t 더 무거워진 것은 그만큼 더 강력한 신형 무장장비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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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현장사진은 두 장인데, <사진7>에 나오는 전차가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사진8>에 나오는 전차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최신형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남측과 미국에서는 ‘천마-216’을 ‘천마5호’ 전차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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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정보를 살펴보면,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북의 최신형 전차라고 알고 있는 ‘폭풍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군부는 북이 러시아군 전차 T-72를 개량하여 2002년에 ‘폭풍호’ 전차를 생산하였다고 하면서, 그 전차를 ‘M2002 전차’라 부르지만, 그것은 엉터리 정보다. 누가 ‘폭풍호’라는 가상명칭을 조작해냈는지 알 수 없으나, ‘폭풍호’는 실존하지 않는다.
‘선군-915’는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북이 실전배치한 최신형 전차는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북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연속적으로 성능을 개량하여 생산한 4종의 전차들은 모두 ‘천마’라는 공통명칭을 지녔는데, 북이 2009년에 생산한 최신형 전차는 ‘선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전차이름이 ‘천마’에서 ‘선군’으로 바뀐 것은 전차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되었음을 뜻한다.
해설강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북에서는 맨 앞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향도바퀴라 부르고, 맨 뒤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추동바퀴라 부르고, 향도바퀴와 추동바퀴 사이에 늘어선 여러 개 바퀴들을 지탱바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의 지탱바퀴들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강철바퀴가 아니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특수재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전에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전차 정면 아래쪽과 측면 지탱바퀴 위쪽에 달린 커다란 철판 같은 것이 보인다. 중무기실에서 전차를 살펴보던 내가 그 철판 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집초방어판이라는 것이다. 손으로 집초방어판을 만져보았더니 철판이 아니라 딱딱한 고무판 같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집초방어판은 집초탄(대전차고폭탄)을 막아주는 특수재질의 방호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복합장갑으로 만든 ‘선군-915’의 전면에 복합장갑까지 부착하여 장갑방호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500mm 방호력을 지닌 덧장갑과 900mm 방호력을 지닌 복합장갑이 이중으로 방호하고 있으므로 1,400mm 장갑방호력을 지닌 셈이다. 이것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대전차무기도 ‘선군-915’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선군-915’는 난공의 전차다.
<사진4>에서 맨 앞쪽에 보이는 전차가 바로 북의 최신형 전차 ‘선군-915’다. <사진5>에 나타난 ‘천마’ 계열 전차들과 외형을 비교해보면, 그 줄 맨 끝에 있는 ‘선군-915’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대오를 촬영한 <사진10>에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의 모습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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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진10>만 보고서는 ‘선군-915’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중무기실에 실물로 전시된 ‘선군-915’는 <사진10>에 나온 군사행진 중의 ‘선군-915’와 전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선군-915’는 군사행진에 나오기 전에 ‘조절조치’를 받고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포탑 전면에 부착된 덧장갑도 보이지 않고, 원래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된 대구경 기관총이 왼쪽으로 옮겨졌고, 원래는 없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 1기가 대구경 기관총이 있던 자리에 장착되었고, 고사로케트(저고도대공미사일)와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가 보이지 않는다.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 앞에 해설판이 놓였는데, 거기에는 “중량 44t, 너비 3.502m, 높이 2.416m, 호극복능력 2.8m, 여울극복능력 1.2m, 수중도하 5m”라고 적혀 있다. 이런 제원을 지닌 ‘선군-915’가 얼마나 강력한 전차인지 알려면, 러시아군과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세계 최강급 전차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한 전차 T-80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42.5t, 너비 3.4m, 높이 2.202m, 호극복능력 1.8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5m다. 또한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Abrams)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69.5t, 너비 3.6m, 높이 2.8m, 호극복능력 1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불능이다.
또한 중량 대 마력의 비율을 비교하면,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t당 21.6마력밖에 되지 않고, 러시아군 전차 T-80 최신형은 t당 29.4마력인데, ‘선군-915’는 t당 27.3마력이다. 최대속력을 비교하면,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시속 68km인데, T-80 최신형은 시속 70km이고 ‘선군-915’는 시속 70km를 넘는다. 또한 ‘선군-915’는 적외선야시장비, 적외선방해전파발신기, 레이저거리측정기, 컴퓨터사격통제장치, 화생방방호체계를 두루 갖추었다. 이러한 우수한 내부장비들은 ‘선군-915’가 세계 최강 전차들과 동급의 첨단전차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무적의 첨단전차’는 ‘불새’를 쏜다
여러 가지 전차성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력이다. 화력이 강해야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미국군 전차나 러시아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선군-915’도 사거리가 5km인 125mm 무강선포(활강포) 1문을 포탑에 장착하였고, 사거리가 4km인 14.5mm 대구경 기관총 1정을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하였다. 강선포에 비해 포탄을 더 멀리 날려 보내는 무강선포는 고폭탄(HE), 고폭파편탄(HE-FRAG), 대전차고폭탄, 날개분리안정탄 등을 쏠 수 있다. 이처럼 ‘선군-915’는 포신이 긴 무강선포를 하늘에 치켜들고 대구경 기관총을 포탑에 장착한 모습으로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하였지만,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는 군사행진 때의 그 모습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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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사거리가 5.5km인 러시아군 대전차미사일 9M133 코르넷(Kornet)과 동급 성능을 지녔다. 이것은 ‘선군-915’가 강력한 대전차미사일 ‘불새’를 쏘아 5.5km밖에 있는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시속 70km로 고속기동하며 5.5km밖에서 ‘불새’를 쏘는 ‘선군-915’를 피해 한미연합군 전차들이 재빨리 달아나지 못하면 ‘불새의 밥’이 될 것이다.
중무기실에는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 2종이 전시되었는데, 1968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1’, 1973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2’가 있다. 북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자체로 생산하였으니 놀라운 일이다. ‘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는 전차무장장비로 개량한 최신형 반땅크로케트 ‘불새-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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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2005년도 연감에 따르면, 북이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소련-러시아에 수출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모두 23,250기나 된다. 북이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1968년부터 일찌감치 생산하였으니, 인민군을 ‘불새’로 무장시키고 남아도는 것을 소련-러시아에 28년 동안 계속 수출하였던 것이다. 반땅크로케트 부문에서 선진국인 소련-러시아가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를 장기간 동안 대량수입한 것은 자기들이 만든 반땅크로케트보다 북이 만든 반땅크로케트가 더 우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음을 생각할 때, ‘불새’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땅크로케트임을 알 수 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선군-915’에 장착된 고사로케트 2기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보다 훨씬 더 우수한 저고도대공미사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인민군 전차의 고속남진을 저지하려고 최전방에 급히 출동한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들이 대전차미사일을 쏘게 되는데, 기동력과 화력이 강한 공격헬기가 대전차미사일을 공중에서 쏘면, 지상의 전차는 피격당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공격헬기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군-915’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진 공격헬기를 잡는 강력한 대공미사일을 장착하여 상황을 뒤집어버렸다. ‘선군-915’에 2기가 장착된 고사로케트는 사거리가 5km이고 사고도가 3.5km인 러시아군 저고도대공미사일 9K35 스트렐라(Strela)-10과 동급의 강력한 대공무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는 ‘선군-915’가 고속기동하며 5km밖에서 발사하는 고사로케트에 맞아 추락할 것이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선군-915’를 조종하는 전차병들은 달리는 전차 안에서 신형 탐지장비와 사격통제장치를 가동하여 125mm 무강선포, 14.5mm 대구경 기관총, 반땅크로케트 ‘불새-3’, 고사로케트를 각각 발사한다니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화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은 ‘선군-915’가 한국군 주력전차 K1A1보다 방호력과 화력이 떨어진다고 하면서 한미연합군이 공격헬기와 다련장로켓포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선군-915’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리다. 위에 열거한 성능지표 비교에 따르면, ‘선군-915’는 기동력, 방호력, 화력, 탐지력에서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전차보다 강한 ‘무적의 첨단전차’다.
바로 그 ‘무적의 첨단전차’가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집중배치되었다. 공식명칭은 땅크사단이지만 실제로는 군단급 전차부대인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2009년부터 지난 4년 동안 ‘무적의 첨단전차’로 무장함으로써 한미연합군 방어선을 격파할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최강의 전차군단으로 자기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였다. 2010년 12월 3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에 따라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전차부대의 기동훈련장면을 촬영한 화면이 남측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그 전차군단에 배치된 ‘선군-915’는 지금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조국통일대전’ 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1월 1일 새해를 맞은 첫 시각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용차로 새벽길을 달려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가서 최고사령관으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한 까닭을 알 수 있다.(2013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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