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6

2013년 6월 평양견문록 (2)

[한호석의 개벽예감] (67)
자주민보 2013년 06월 2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릉라도에서 바라본 여가생활도시
 
평양 한 복판을 굽이도는 대동강에는 여러 섬들이 줄지어 떠 있다. 릉라도, 양각도, 쑥섬, 두루섬, 곤유섬이다. 그 가운데서 허리춤에 청류다리를 걸치고, 발목에 릉라다리를 걸친 큰 섬이 릉라도다. 내가 탄 승용차는 릉라도로 들어가기 위해 청류다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청류다리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의 군인건설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한 길이 1.6km의 현수교다.

청류다리를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에 펼쳐진 대동강의 풍치는 실로 아름다웠다. 6월의 눈부신 햇살을 받은 대동강은 비취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차안공기를 흔든 뜻밖의 음악선율에 놀라 나는 시선을 차안으로 돌렸다. 그것은 안내자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손전화 착신음이었다. 북에서 쓰이는 손전화가 착신하면, 북측 혁명가요 선율이 울려나온다.

8년 전, 내가 방북했을 때는 손전화를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손전화 착신음 음악선율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에서 손전화 사용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통화료 지불방식은 선불제다.

안내자는 주머니 속에서 혁명가요 선율을 울리는 손전화를 서둘러 꺼내들었다. 승용차의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통화는, 상대방의 통화음성을 간간이 내 귀에까지 들려주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떤 젊은 여성의 목소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내 귀를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윽고 통화를 끝낸 안내자는 자기 딸과 통화하였다고 하면서, 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딸로부터 들은 곱등어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이를테면, 곱등어와 돌고래가 어떻게 다른가, 릉라곱등어관에 있는 곱등어는 어떻게 동해안 해상가두리로 이동하여 새끼낳이를 하는가 등등 자못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니, 그가 왜 나에게 릉라곱등어관에 가보자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 릉라곱등어관 정문. 관람시간이 아니어서 한산한 분위기였다.     © 한호석


승용차는 어느새 릉라곱등어관에 이르렀다.(사진) 1,400석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곱등어관이 우람한 자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면, 릉라곱등어관은 곱등어를 형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릉라곱등어관에 들어가 관람하려면 관람시간을 맞춰 갔어야 하는데, 그 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평양체류기간 중에 한 군데라도 더 많이 가보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곱등어관 관람을 포기하고 밖에서 사진촬영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릉라곱등어관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날렵한 청기와를 머리에 얹고 대동강 건너편 기슭 푸른 숲 속에 서 있는 청류정이 시선을 끌어당긴다.(사진)

▲ 멀리 숲 속에 청류정이 보인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정각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 한호석


릉라곱등어관은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평양 한 복판에 세워졌다. 다른 나라의 대형 돌고래 묘기장은 돌고래 생활환경에 필수적인 바닷물을 계속 공급해주기 위해 대부분 바닷가에 건설되었는데, 그와 달리 릉라곱등어관이 평양 한 복판에 세워진 것은, 총연장이 100km가 넘는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을 땅속에 부설하고 그 수송관으로 방대한 양의 서해 바닷물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저수조를 실은 대형화물차가 남포에서 평양까지 오가며 바닷물을 실어 나르는 방법으로는 릉라곱등어관의 초대형 수조에 바닷물을 수시로 갈아줄 엄두도 내지 못한다.

2011년 2월에 착공하였고 2012년 4월에 완공한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을 부설한 주된 목적은 식수공급이다. 바닷물을 전기분해한 전해수로 대동강 상수원에서 나오는 물을 소독하여 평양에 질좋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전해수를 이용한 물소독기술은 액체염소를 이용한 종래의 물소독기술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안전하며 실리적이다.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에서 얻는 실리는 생활용수 공급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지금 평양 각지에 실내물놀이장과 야외물놀이장이 이미 건설되었거나 현재 건설되고 있는데, 거기에서 지속적으로 교체공급해주어야 할 방대한 양의 물을 소독하는 것도 남포-평양 바닷물수송관으로 끌어온 서해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평양에서 돌아본 실내물놀이장들에서는 역한 물소독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릉라곱등어관은 릉라물놀이장, 릉라유희장과 함께 릉라인민유원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릉라인민유원지 종합안내도’를 살펴보니, 그 유원지에 모두 38개 시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38개 시설명칭들 가운데 ‘미니골프장’이라는 말 이외에 외래어를 쓴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섞어쓰는 것을 막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거기서도 엿볼 수 있었다.(사진)

▲ 릉라인민유원지종합안내도. 그 뒤쪽에서 잔디밭을 가꾸는 어떤 사람이 우연히 촬영되었다.     © 한호석


승용차를 돌려 릉라도를 한 바퀴 돌아보노라니, 1989년에 준공된 150,000석 규모의 5.1 경기장 앞마당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준비하는 집체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인원 100,000명이 출연하는 세계 최대의 집체공연작품으로 2002년에 초연되었고 2005년부터 해마다 진행되는 ‘아리랑’은 2007년 8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올해도 7월 22일에 개막되어 매주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마다 5.1 경기장에서 화려한 공연무대를 펼치게 된다고 한다.

릉라도에서 청류다리를 건너 동평양으로 들어서면 대동강구역인데, 거기에 이전에 문수유희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전의 문수유희장은 온데간데없고 방대한 규모의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09,000평방미터의 부지에서 벌어진 건축공사는 문수물놀이장을 건설하는 공사다. 올해 당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완공할 목표로 건설되고 있는 문수물놀이장은 야외물놀이장과 실내물놀이장을 비롯한 물놀이시설과 부대시설을 두루 갖춘 세계적 수준의 물놀이장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릉라인민유원지로부터 문수물놀이장까지의 구간을 연결하는 장거리 삭도(cable car)를 대동강 물 위의 허공에 놓으면, 릉라인민체육공원, 5.1 경기장, 릉라인민유원지, 문수물놀이장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인민의 문화휴식터’가 꾸려진다는 것이다. 

문수물놀이장이 완공되면, 이미 준공된 릉라인민유원지, 릉라인민체육공원, 개선청년공원, 평양민속공원, 그리고 최근 전면적인 개보수공사를 마친 만경대유희장, 대성산유희장과 더불어 모두 7개의 ‘인민의 문화휴식터’가 평양에 꾸려지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금 평양 곳곳에서는 80개에 이르는 중소형 공원을 개건하거나 신설하는 중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평양에 7개의 대형 유원지 및 공원과 80개의 중소형 공원이 들어서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0만 명 인구가 사는 도시에 7개의 대형 유원지와 80개의 중소형 공원이 들어서는 것은, 평양의 도시환경을 여가생활환경으로 꾸린다는 것을 뜻한다. 2013년 6월의 평양은 생태환경도시와 여가생활도시의 새 모습을 갖춰가는 건축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체육강국을 향한 집념의 담금질

릉라도에서 5.1 경기장 위쪽으로 새로 뚫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보니, 200,000평방미터의 부지에 대중체육시설로 건설된 릉라인민체육공원과 대중식당이 나오고 그 옆에 새로 준공된 평양국제축구학교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청사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축구에 재능이 있는 청소년 인재를 북측 전역에서 선발하여 합숙하며 교육하는 전문축구학교다.

대동강 양각도에 있는 30,000석 규모의 양각도축구경기장을 국제축구경기를 진행할 전용잔디구장으로 개건하는 공사현장을 2013년 4월 29일에 시찰하였고, 같은 날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 남자축구 결승경기를 관람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6월 10일에 준공된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시찰한 것은 북측 최고영도자의 관심과 배려가 국가적 축구발전에 돌려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이 세계 축구사를 다시 쓴 화려한 전성기였다. 북의 축구 전성기는 1966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은 국제축구계가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사다리 전법’으로 유럽의 축구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아시아 최초로 8강에 진출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북의 국가대표축구단은 그 여세를 몰아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 축구연맹전에서 일약 4강에 오르더니, 1976년 하계올림픽대회 축구연맹전에서는 8강에 올랐고, 1978년 아시아경기대회 축구연맹전에서 마침내 우승배를 들어올렸다. 그처럼 1970년대에 북이 축구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그 시기 북의 국력강화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오늘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을 축구강국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은, 북의 국력이 비상히 강화되었던 1970년대처럼 새로운 전성기를 펼치려는 국가발전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서평양은 8개 구역으로 이루어졌고, 동평양은 5개 구역으로 이루어졌는데, 서평양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구역이 만경대구역이다. 만경대구역에는 엑스(X)자 형으로 서로 엇갈리며 그 구역을 종단하는 두 개의 큰 길이 나 있으니, 청춘거리와 광복거리다.

▲ 청춘거리 체육촌 개건공사가 한창이다. 저 멀리 홍기와를 얹은 멋진 건물은 2012년 4월에 준공된 태권도성지중심이다.     ©한호석
청춘거리에는 축구, 송구, 탁구, 배구, 농구, 역기, 배드민턴, 수영, 태권도 등의 체육종목을 위한 10개의 대형 전용경기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피로회복관과 호텔들도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체육촌이다. 지금 청춘거리 체육촌에서는 오래 전에 건설된 경기장과 시설을 현대화하는 개건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경기장과 시설을 한꺼번에 개건하는 방대한 공사다.(사진)

청춘거리 체육촌은 평양에 부는 건축열풍과 체육열풍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와 현지지도, 그리고 조선로동당의 정치방침에 따라 청춘거리 체육촌과 평양체육관을 개건하고, 축구전용구장을 개건하고, 국제축구학교를 설립할 뿐 아니라, 미림승마장을 건설하고, 해발고 1,360m인 마식령에 총연장 110,000m의 활강주로를 가진 세계적 규모의 스키장까지 건설하는 것은 체육강국을 향한 북의 상승열기가 얼마나 강하고 뜨거운지 말해준다.

요즈음 북의 운동선수들은 축구, 탁구, 마라톤(북에서는 마라손), 역도(북에서는 력기), 사격, 권투, 태권도, 유도(북에서는 유술), 체조 등 국제경기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쟁취하고 있고, 배구, 농구(북에서는 롱구), 양궁(북에서는 활쏘기), 빙상, 승마 등에서도 유망주를 길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러 체육종목들 가운데서 미국인이 좋아하는 야구와 골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니, 북은 체육부문에서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게 아닐까?

지금 북은 체육강국을 향한 집념의 담금질을 두 갈래로 실행하고 있다. 하나는 세계 체육계를 제패할 우수한 운동선수를 길러내는 국가적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인민들이 대중체육으로 건강을 지키고 체력을 단련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주목하는 것은, 국제경기에 나갈 운동선수를 길러내는 국가적 사업과 더불어 각계층 근로자와 청소년학생의 대중체육활동을 국가적으로 장려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양과 다른 지방도시에 건설되는 여러 공원들에는 잔디밭과 화초만 펼쳐지는 게 아니라, 대중체육설비도 설치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의 각지에 건설된 공원은 체육열풍과 잔디열풍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릉라인민체육공원은 체육열풍과 잔디열풍이 만나 꾸려진 대표적인 시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양에서 체육열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으니, 운동센터다. 북의 운동센터는 다른 나라의 헬스클럽(health club)이나 핏니스 센터(fitness center)와 같은 곳인데, 거기에 더하여 물리치료기능까지 갖추었으니 가장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10월 17일 동평양 통일거리에 개업한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세워진 통일거리운동센터가 바로 그런 곳이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 정문은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다.     © 한호석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5월 3일과 9월 7일에 당시 공사 중이던 통일거리운동센터를 현지지도하였음을 알려주는 현판이 그 운동센터 정문에 걸려있다. 현관 양쪽에 장애인 출입통로가 설치된 건물에 들어서니, 현대적인 운동기재와 설비를 두루 갖춘 각종 운동실과 각종 건강회복실(물리치료실)이 각 층마다 운영되고 있었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 치료회복실 내부를 실례를 무릅쓰고 촬영하였다. ©한호석
통일거리운동센터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관심과 배려는 각별하였다. 안내자의 해설에 따르면, 통일거리운동센터가 있는 터는 원래 채굴설비전시장을 세우려고 하였던 곳인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곳에 운동센터를 세우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업 직전 통일거리운동센터를 시찰한 자리에서 이미 놓여있던 가죽소파를 나무의자로, 대형어항을 동영상화면으로, 대형식사실을 운동실로 바꾸도록 지시하였고, 운동실에 대형거울도 달아놓게 하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긴 계단에서 일곱 번째 계단이 수평으로 설치되지 않고 조금 기울어진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얼마나 세심하게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체육강국을 향한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알 수 있다.(사진)
▲ 통일거리운동센터에서 운동하는 청소년 학생들. 윗층으로 오르내리는 긴 계단이 양쪽에 드리워 있다.     © 한호석
 
 


슈퍼마케트가 상업중심으로 이름을 바꾼 사연

만경대구역 북쪽에는 북에서 처음으로 개업한 대형매장(supermarket)이 있다. 그 대형매장이 바로 광복지구상업중심이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1991년 10월에 세워진 광복백화점을 헐고 그 자리에 더 큰 규모로 세워 2012년 1월 5일에 개업하였다. 광복지구상업중심에 가보니, 북의 국산품과 중국산 제품을 4 대 6 비율로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산 제품 수입은 중국회사가 담당한다. 그래서 건물 출입구 외벽에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고 우리글로 적고, 그 밑에 중국글자로 광복지구상업중심이라고 써넣은 것으로 보인다.(사진)

▲ 광복지구상업중심 정문 앞에 주차된 차량들 속에 모터찌클(오토바이)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 한호석
개업 직전에 그곳 실무책임자들이 광복지구슈퍼마케트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에게 생소한 외래어를 쓰지 말고 상업중심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하여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2011년 12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현지지도한 단위다. 

내가 그곳을 찾아간 날, 층면적이 넓은 대형매장에 가득 찬 갖가지 상품들이 쌓여있는 상품진열대 사이를 오가는 근로자, 가정주부, 청소년학생들로 흥성거렸다. 그런데 사진촬영 금지를 알려주는 표식이 매장 출입구에 붙어 있어서 아쉽게도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건물 밖에 나와 찍어야 했다.

매장 중앙부를 위아래로 툭 터놓고 계단승강기(escalator)로 오르내리게 하였으며, 매장의 옆쪽 벽면에는 별도의 승강기(elevator)도 운행하고 있었다. 매장건물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넓이는 꽤 넓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은 미국에 있는 수퍼마켓과 마찬가지로, 장바구니(shopping basket)를 손에 들거나 매장밀차(shopping cart)를 미는 손님들이 넓은 매장의 각종 상품진열대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상품을 골라 1층에 있는 계산대에서 지불한다.

매장을 이곳저곳 돌아보던 내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 곳은 머리빈침 판매대 앞이었다. 남측에서 머리삔이라 부르는 머리빈침은 북측 여성들이 머리에 꽂는 장신구의 일종이다. 평양대성보석가공공장에서 ‘코스모스’라는 제품명으로 생산하는 머리빈침은 반짝이는 보석알갱이를 정교하게 박아 넣은 보석가공품인데, 북측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2011년 10월에 개봉된 북의 예술영화 ‘눈 속에 핀 꽃’에 나오는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이 유리진열장 안에서 영롱한 무지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예술영화 ‘눈 속에 핀 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으로 훌륭한 인간이고 애국자”라고 높이 평가한 만포방사공장 주복순 지배인을 원형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인데,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의 국경도시 만포에 있는 만포방사공장에 처녀 지배인으로 부임하여 멈춰선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주인순(배우 신영니 분)이 자기가 데려다 친자식처럼 키운 여러 고아들의 머리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을 꽂아주는 장면에서 극적인 절정에 이른다. 북측 여성들에게 ‘코스모스 보석머리빈침’은 판매대에서 구매자를 기다리는 상품이 아니라,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신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지구상업중심 꼭대기층은 식사층이다. 계단식 승강기를 타고 거기에 올라가니 “찬료리, 더운료리, 구이, 튀기, 지짐, 청량음료”라고 각각 적혀있는 표지판이 즐비하게 걸려있고, 각각 표지판들 아래서 해당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패스트 푸드(fast food) 식당처럼 구매자가 자기 음식을 직접 선택하여 식탁으로 가져가는 제시중(self-serve)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사층은 사람들로 흥성이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악사랑이 깃든 곳

서평양 평천구역에서 대동강에 놓인 충성의 다리를 건너면 동평양 락랑구역에 들어서게 되는데, 락랑구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이 통일거리다. 도로폭이 매우 넓은 통일거리에는 궤도전차가 지나다니고, 길거리 양쪽에는 고층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전에 평양을 방문한 재미동포들로부터 들은 경험담에 따르면, 그들이 통일거리에 가곤 하는 까닭은 그 거리에 평양단고기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고기집이란 남측에서 쓰는 말로 하면 보신탕집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통일거리에 찾아간 것은 평양단고기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양단고기집 인근에 있는 하나음악정보센터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 하나음악센터 정문     © 한호석
하나음악정보센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건설되어 2012년 2월 15일에 개장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장 당일 오전 9시에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생애 마지막으로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현지지도하였고,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방대한 음악자료를 그곳에 넘겨주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악사랑이 하나음악정보센터에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사진)

북의 자료에 의하면, 음악의 거장들만 타고 난다는 절대음감을 지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교향악단 연주용으로 작성된 총보를 읽으며 북의 음악발전을 이끌었고, 몸소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혁명과 음악을 하나로 통일시킨 독창적인 음악사상을 자신의 정치방식으로 구현하였는데, 북에서는 그것을 음악정치라 한다.

하나음악정보센터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에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정지형 전광현시판이 보인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명언이다. 그 정지형 전광현시판 좌우로 변동형 전광현시판이 각각 돌아가고 있었는데, 왼쪽 전광현시판은 최근 북에서 새로 나온 노래를 소개해주고 있었고, 오른쪽 전광현시판은 최근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국제음악축전 및 음악경연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오늘 어떤 음악인이 그곳을 찾았는지도 전광현시판에 나타났는데, 내가 찾아간 그 날은 북의 인민배우인 리향숙 교수가 그곳에서 음악자료를 열람하였다고 알려주었다. 리향숙 교수는 2004년 제11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에서 특별상을 받은 뛰어난 소프라노 성악가다.

▲ 하나음악센터를 찾은 사람들은 이런 컴퓨터에서 음악정보를 검색하고 음악을 감상한다.     ©한호석
하나음악정보센터는 전산화된 음악자료를 열람하거나 전산화된 음악을 감상하는 대중봉사시설인데, 2층에는 음악공연을 수록한 DVD를 제작하는 생산시설도 갖춰져 있다. 거기서는 누구나 무료로 음악자료를 열람하고 음악을 감상을 할 수 있다.

159석마다 각각 컴퓨터 한 대씩 배치된 음악자료열람실에서는 전산화된 20,000곡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열람하고 선택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거기에서는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음악들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시험 삼아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곡목을 컴퓨터에 입력했더니, 그 노래에 관련된 각종 정보자료들이 컴퓨터 단말기 화면 위에 현시되었다.(사진)

▲ 하나음악센터 다통로감상실에 놓인 좌석에 앉아 들은 교양곡 '아리랑' 선율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한호석
음악자료열람실을 지나면 오른쪽에 30석 규모의 다통로감상실이 있다. 멀티트랙(multitrack)이라는 영어낱말을 다통로라고 번역한 것이므로, 다통로감상이란 원음에 가깝게 재생한 5.1 음향체계(surround sound speaker system)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뜻이다. 다통로감상실에 들어서니, 사방벽면에 설치된 고성기(loudspeaker) 4개와 대형 동영상화면 뒤에 설치된 초저음 고성기에서 원음을 재생하는 설비가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그곳을 시찰하던 중 앉았던 다통로감상실 맨 앞줄 중앙석에 앉았다.(사진) 이윽고 실내조명이 꺼지고,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장면이 대형 동영상화면에 비춰지면서 교향악 ‘아리랑’의 선율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 가슴에 밀려왔다. 내게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끝모를 음악세계에 깊이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2013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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