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9

미국의 대량감시에 침묵하는 ‘아시아의 철녀’

민중의 소리 2013년 07월 0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스노든 이전에 비니가 있었다

2001년 10월 31일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신호정보자동화연구센터(Signals Intelligence Automation Research Center)를 떠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근 40년 동안 국가안보국에서 암호해독관과 정보분석관으로 각각 근무하다가 퇴직한 그 두 사람은 윌리엄 비니(William Binney)와 커크 위비(J. Kirk Wiebe)다. 그 날 그 두 사람의 자진퇴직이 몇 해 뒤에 미국을 충격파로 뒤흔들게 될 줄은 그 무렵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 국가안보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통신도청프로그램을 두 종이나 개발하였다. ‘스텔라 윈드(Stellar Wind)’와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라고 부르는 통신도청프로그램은 매일 15조∼20조 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통신을 도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천문학적 규모의 통신도청은 2001년 당시 미국에서 오가는 거의 모든 국내 및 국제통화와 이메일 등 전자통신을 국가안보국이 날마다 도청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국가안보국은 AT&T와 버라이즌(Verizon) 같은 미국 통신회사들을 자기의 불법도청에 동원하였다.

< 뉴욕 타임스>가 2005년 12월 16일부 기사에서 미국 국가안보국의 통신도청을 폭로하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강력한 수사역량을 동원하여 국가안보국 통신도청에 관한 극비정보를 <뉴욕 타임스>에 제공한 취재원을 검거하기 위한 집중수사에 착수하였다.

연방수사국 검거반이 윌리엄 비니의 자택을 급습한 때는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이 지난 2007년 7월 이른 아침이었다. 검거요원들은 아침 출근을 위해 목욕 중이던 윌리엄 비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벌거벗은 그를 욕실에서 끌어내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검거현장을 지켜보는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그렇게 처참한 몰골로 끌려간 그가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무죄평결을 받은 때는 2010년 1월이었다.

불법도청을 자행하는 ‘거대한 괴물’에 홀로 맞선 윌리엄 비니의 외로운 저항은, 2012년 8월 22일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실린, 미국의 저명한 기록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러스(Laura Poitras)가 만든 기록영화 ‘더 프로그램(The Program)’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그 인터넷판 기록영화를 보면서 국가안보국의 불법도청이 얼마나 악질적인 범죄인지를 불현듯 깨달은 미국인 청년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국 사법당국의 추적과 검거를 피해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의 셰레메쳬보 공항 환승구역에서 제3국 망명을 애타게 기다리는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다.

가디언이 공개한 에드워드 스노든
가디언이 공개한 에드워드 스노든ⓒCNN 화면 캡처


미국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CIA)에서 각각 근무하면서 그 자신이 불법도청프로그램 기술요원으로 일하던 스노든은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이 미국 국민들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불법적인 도청감시의 죄악상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로라 포이트러스에게 연락하였다. 그녀의 주선으로 스노든은 ‘언론의 자유 재단(Freedom of the Press Foundation)’에서 그녀와 함께 활동하는 두 언론인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그 언론인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 미국판 기자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old)와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바튼 겔먼(Barton Gellman)이다.

2013년 5월 자신의 간질병을 치료하겠다는 구실로 국가안보국에서 퇴직한 스노든은 홍콩으로 건너갔고, 미국 사법당국의 추적을 피해 그곳에 있는 미라 호텔(Mira Hotel)에서 숨어 지내면서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의 불법적인 도청감시를 <가디언>에 폭로하여 세상을 경악과 충격에 몰아넣었다. 백악관은 그런 그에게 반역자와 간첩의 죄목을 씌우고 긴급검거령을 내렸는데, 이 글을 집필 중인 2013년 7월 7일 현재 스노든은 베네주엘라와 니카라과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상태다.


전체주의이자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대량감시’

미국의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 등이 자행하는 무차별적인 도청감시를 미국에서는 ‘대량감시(mass surveillance)’라고 통칭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미국 정부가 대량감시를 자행하는 바람에 자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였다는 식의 주장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것은 개인의 공민적 자유(civil liberty)를 중시하는 미국식 자유주의자들의 편향된 시선이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불법감시활동을 개인의 공민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 보는 인식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 바라보는 편향된 시선의 산물이다.
포괄적인 시선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개인의 공민적 자유에 대한 국가의 침해행위가 보이는 게 아니라, 불법적인 대량감시를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서 은밀히 자행하는 변태적이고 범죄적인 국가정체성이 드러나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자국민에게 자행하는 무차별적인 대량감시가 미국을 전체주의 국가(totalitarian state)로 만들었고, 미국이 세계 각국에게 자행하는 대량감시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imperialist state)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국가체제를 장악, 관리하는 소수 지배세력은 입만 벌리면 ‘자유’니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유혹적인 언사를 늘어놓지만, 그들의 그런 언사는 미국이 자국민을 감시-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전 세계를 감시-억압하는 제국주의 국가라는 이중적인 범죄적 정체를 은폐하고 세상을 속이는 기만선전이 아닐 수 없다. 스노든은 바로 그러한 미국의 변태적이고 범죄적인 국가정체성을 세상에 폭로한 것이다.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대량감시활동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 미국의 전체주의적 불법감시활동은 ‘코인텔프로(COINTELPTRO)’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미국의 급진좌파세력, 진보정치세력을 불법사찰로 감시하고 비밀공작으로 억누르면서 도감청은 물론이고 악선전과 조직파괴, 그리고 심지어 암살까지 자행하는 전체주의적 압제의 전형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코인텔프로’의 존재가 세상에 폭로되자 1971년 4월에 그것을 중단하였다고 서둘러 발표하고 넘어갔으나, 이번에 스노든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코인텔프로’는 중단된 것이 아니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지난 40여 년 동안 계속 가동되어온 것이다.

‘코인텔프로’와 그 후신프로그램이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감시-억압활동이라면, 이번에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PRISM)’이라는 프로그램은 미국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이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2007년부터 자행하는 도청감시활동이고, 이번에 스노든이 폭로한 ‘템포라(Tempora)’라는 프로그램은 미국 국가안보국과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가 합동하여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2011년부터 자행하는 도청감시활동이다.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감시는 미국의 어느 특정 정보기관이 저지른 일시적 일탈행위가 아니라 미국 국가체제 안에서 법제화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비밀국가활동이라는 데 문제의 범죄적 심각성이 있다. 이를테면,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감시는 2007년 9월 11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의 서명으로 발효된 이른바 ‘미국 보호법(Protect America Act)’에 의해 법제화되었고, 미국 대외정보감시원(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Court)에 의해 상시적인 감독을 받는 비밀국가활동인 것이다.

NSA 휘장과 PRISM 프로그램의 폐해를 은유한 이미지
NSA 휘장과 PRISM 프로그램의 폐해를 은유한 이미지ⓒvr-zone.com


전 세계 전자통신망의 86%, 미국이 엿보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세계 각국의 전자통신망을 아주 손쉽게 도청할 수 있는 까닭은, 전 세계 전자통신량 가운데 86%가 미국의 전자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 때문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알아보면, 전 세계 전자통신량은 12,385 기가바이트(gigabyte)인데, 그 가운데서 미국의 전자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자통신량은 86%에 해당하는 10,652 기가바이트다. 1 기가바이트는 10억 바이트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세계 각국의 전자통신을 불법적으로 도청감시하기 위해 동원한 직통로들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애플(Apple), 구글(Google), 야후(Yahoo), 에이오엘(AOL), 페이스북(Facebook), 팰토크(PalTalk), 유투브(YouTube), 스카이프(Skype) 등 미국과 전 세계를 상호연결하는 국제전자통신망을 전면적으로 포괄한다.

또한 미국 국가안보국은 위에서 언급한 ‘스텔라 윈드’와 ‘프리즘’ 이외에도 ‘룸641에이(Room641A)’, ‘맞춤형 접근작전(Tailored Access Operations)’, ‘무한대 첩보원(Boundless Informant)’ 같은 이름을 가진 다종다양한 도청감시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 법무부가 주관하는 대국민감시체계인 ‘전국의혹행동보고활동(NSARI)’, 미국 연방수사국이 주관하는 대국민감시체계인 ‘디씨에스넷(DCSNet)’, 그리고 미국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이 3자 합동으로 운용하는 대국민재정활동감시체계인 ‘메인 코어(Main Core)’, 미국 중앙정보국과 재무부가 2자 합동으로 운영하는 ‘테러행위자 재정추적 프로그램(Terrorist Finance Tracking Program)’ 등도 있다.

지금 미국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은 미국의 급진좌파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운동단체들, 환경운동단체들, 미국원주민운동단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하게 도청감시하고 있다. 또한 이번에 스노든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연방수사국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미국의 현실적 적국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미국의 잠재적 적국들을 집중적으로 감청감시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프랑스, 독일, 일본, 터키, 브라질, 유럽연합을 비롯한 38개에 이르는 미국의 동맹국 및 우호국까지 상시적으로 도감청하고 있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은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세계 각국 외교공관들의 전자통신망에 은밀히 침투하여 불법적으로 도청감시하고 있는데, 강력한 통신보안장치가 설치되어 그런 식으로 도청하기 힘든 대상에게는 특수하게 제작된 안테나를 대상 주변에 은밀히 설치하여 무선감청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기관들이 이처럼 다종다양하고 전방위적인 비밀감시활동을 벌이는 오늘의 현실은, 3억1,4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국민들과 70억 명에 이르는 인류가 미국의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서 상시적으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마디로, 미국은 ‘대량감시의 제국’인 것이다.


‘아시아의 철녀’는 왜 침묵하는가?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세계 각국 외교공관을 상대로 자행된 미국의 도감청이 스노든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자,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과 프랑스 대통령 프랑쑤아 올랑드(Fran?ois Hollande)는 자국 외교공관에 대한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불법감시활동이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또한 유럽연합 법무장관 비비앤 레딩(Viviane Reding)은 자기들의 외교공관에 대한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에 관해 해명을 요구하는 공식문건을 미국 연방정부당국에 보냈고, 호주 외무장관 밥 카(Bob Carr)는 “호주 국민의 안전과 사생활 보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시적인 도감청에 의해 자국 주권이 훼손당한 나라들이 미국에게 항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항변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완곡한 항의표시였다. 강력한 항의의사를 정부성명에 담아 공식 발표한 것이 아니라, 고위관리들이 개별적으로 발언한 것이었다.

자국의 주권이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에 의해 훼손되었는데도, 왜 그렇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넘어갔을까? 그 까닭은, 그 나라들이 자국을 상대로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이 자행되고 있는 정황을 이미 오래 전에 감지하였으면서도 그것을 사실상 묵인해왔거나 심지어 미국 국가안보국이 자국 영토에 비밀감청시설을 설치하는 것에 협조한 ‘공범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노든은 독일 주간지 <슈피겔> 2013년 7월 7일부 대담기사에서 여러 나라가 미국 국가안보국의 불법감시활동에 협력하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미국 국가안보국은 독일,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영토에서 각각 비밀감청시설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스노든의 폭로에서 주목하는 것은, 한국도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으로 피해를 입은 38개국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위에 열거한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으로 주권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당한 최대 피해자다. 미국이 자행하는 불법감시활동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라고 지적하는 논거는 한미관계의 과거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뉴시스/AP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불법감시활동을 자행한다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세상에 드러난 바 있다. 이를테면, <워싱턴 포스트>는 1976년 10월 15일부 기사에서 미국 국가정보기관이 청와대를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하였고, <워싱턴 스타>는 1978년 5월 24일부 기사에서 미국 국가안보국이 주미한국대사관을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 두 보도기사에서 폭로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은 한미관계가 최악 상태에 빠졌던 박정희 정권 말기에 잠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청와대 도청과 주미한국대사관 도청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암살사건과 함께 종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허상에 현혹된 나머지 미국의 제국주의적 국가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섣부른 속단이다.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으로 주권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당한 피해자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스노든의 폭로로 35년 만에 또 다시 드러났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에게 항변은커녕 일언반구의 지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가 대통령 재임 중에 미국의 불법감시활동을 집중적으로 겪으며 시달렸고, 지금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그녀 자신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데도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이 기이한 침묵이야말로 친미주의자의 굴종적 침묵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때, 미국 언론계는 그녀를 ‘아시아의 철녀(Iron Lady of Asia)’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굴종적 침묵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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