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2

당의 눈높이를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가?

변혁과 진보 (8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통합진보당 안에서 일어난 이상한 언어현상

이번에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선출한 선거결과를 보면, 당 안에 존재하는 양대 세력권의 판세가 시야에 들어온다. 통합진보당 안에 존재하는 양대 세력권이란 이전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정파와 이전 국민참여당 출신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와 복지사회 건설을 추구하는 정파를 뜻한다. 통합진보당에 다른 소수정파들도 있지만, 그들은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커다란 세력권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이 글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정파를 자주파라 부르고, 진보적 자유주의와 복지사회 건설을 추구하는 정파를 국민파라 부른다. 언론에서는 국민파를 '혁신파'라고 부르지만, 그 정파가 주장하는 당의 혁신은 혁신이 아니기 때문에 혁신파가 아니라 국민파라고 불러야 옳다. 그 정파가 주장하는 당의 혁신이 왜 혁신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하게 된다.

이번에 지도부를 구성한 통합진보당 안에서는 자주파와 국민파의 양대구도가 형성되어 힘의 균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그러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조건에서, 통합진보당이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통합진보당이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당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국민파의 이른바 '혁신론'이다. 국민파가 주장하는 당의 '혁신'이란 통합진보당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당의 체질을 확 바꾼다는 뜻이다. 국민파의 그러한 '혁신론'은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 국민파가 쓰는 국민이라는 개념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원래 국민이라는 말은 수구우파세력들이 적대적인 사회계급관계를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쓰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제 식민지강점기에 일제침략세력은 식민지조선을 이른바 '황국신민화'하려는 범죄적 의도에서 국민이라는 신조어를 쓰기 시작했고, 8.15 해방 후에는 이승만 극우독재정권이 일제침략언어인 국민이라는 말을 계승하여 그대로 쓰더니,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3대 군사독재정권이 그 말을 계승하여 아주 잘도 써먹었다.

다른 한 편, 세계 정당 분포도를 봐도 국민이라는 말은 수구우파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특정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국민당(National Party)이라는 당명을 쓰는 정당들은 예외 없이 수구우파정당이다. 이전 한나라당이라는 당명도 영어로 번역하면 대국민당(Grand National Party)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40개 나라에 국민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수구우파정당들이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말을 누가 쓰는가에 따라서 그 말에 사회정치적 의미가 담기게 되는데, 국민이라는 말도 어느 특정한 사회정치세력이 써온 것에 의해 특정한 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국민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없는 것이다.

이 땅의 진보운동사를 되돌아보면, 1980년대 이후 진보세력은 국민이라는 말 대신에 민중이라는 말을 쓰면서 수구세력의 반민중적 억압과 횡포에 맞서 싸워왔다. 1990년대에 이 땅에는 민중당이라는 진보정당도 있었다.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부터 이 땅의 진보세력은 민중이라는 말을 더 구체화하여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전부터 내가 쓰는 글들에서는 노동자, 농민, 서민을 포괄하는 뜻을 지닌 근로대중이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이런 진보운동사의 언어사용맥락을 짚어보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진보세력이 썼던 민중이라는 말과 2000년대 이후부터 민주노동당이 널리 쓰기 시작한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는 말이나 나의 글에 등장한 근로대중이라는 말은, 생산노동과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동일한 주체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민중이라는 말이나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는 말이나 근로대중이라는 말은 자주파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이 땅의 진보운동현실 속에서 태어난 말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국민파가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국민이라는 말을 쓰더니, 당의 내분사태 와중에서는 한 술 더 떠서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통합진보당 안에서 일어난 이러한 언어현상은 그냥 무심히 지나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파의 정파적 견해가 국민이라는 말쓰임새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양극화된 사회에 두 개의 눈높이가 있다

통합진보당의 '혁신'을 말하면서 당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민파의 견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첫째, 1948년 8월 분단정부 수립 이후 1992년까지 40년이 넘도록 계속된 극우독재정권의 장기집권과 친미반공주의의 광란은 우리 사회를 전 세계에서 가장 우경화된 사회로 전락시킨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우리 사회가 겪었던 것과 똑같이 동시대에 극우독재정권의 장기집권과 친미반공주의의 광란을 겪었던 대만에서는 2008년 7월 20일 대만공산당이 창당되었고 중국과의 자유왕래가 보장되었건만,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좌파정당 출현을 법적으로 금하는 수구우파정권의 금압족쇄와 "한국 사회의 미국화"를 외치는 친미반공주의의 세뇌족쇄가 채워진, 지구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만사회'다.
 
금압족쇄와 세뇌족쇄가 이중으로 채워진 '야만사회'에서 살아온 근로대중에게 진보의식의 싹이 틀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처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사상적 세뇌족쇄에서 아직 풀려나지 못하였는데, 통합진보당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이 땅의 근로대중에게 채워진 사상적 세뇌족쇄를 용인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둘째, 지금 이 땅의 근로대중이 실생활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 사회는 1990년대 말 이후 중산층이 차츰 양극분해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극단으로 치달아 완전히 양극화되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나타난 특수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세계시장에 얽혀있는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반현상이다.

양극화된 우리 사회의 사회계급관계를 살펴보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초부유한(super-rich) 독점재벌과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궁핍한 근로대중으로 갈라져 사회계급적 모순이 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눈높이도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회정치적 인식활동은 근로대중의 눈높이와 거대재벌의 눈높이로 양극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 이 땅의 수구우파세력들은 눈높이의 양극화 현상을 애써 무시한 채, 국민의 눈높이라는 말만 쓴다. 예컨대, 2012년 1월 2일 당시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항상 국민의 눈높이, 국민의 상식이라는 입장에서 쇄신작업에 박차를 가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2012년 5월 16일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당은 더욱 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민생을 돌보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우리 약속한 바를 모두 실천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부유와 궁핍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독점재벌과 근로대중을 모두 아우른 뜻으로 쓰이는 국민의 눈높이는 실재할 수도 없고 실재하지도 않는 허구적 개념이다. 박근혜나 황우여 같은 수구우파정객들이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기만용어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기만용어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구우파정객들의 그런 말장난보다 더 심각한 것은, 통합진보당 국민파가 수구우파정객들의 말장난을 아무 생각 없이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구우파정당에서 쓰이는 기만적 유행어를 진보당에서 똑같이 따라 쓰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실재하지도 않는 국민의 눈높이에 당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식의 허구적 '혁신론'을 새누리당을 뒤따라 복창할 게 아니라, 독점재벌의 눈높이에 자기의 눈높이를 맞춘 새누리당의 대척점에 서야 할 것이며, 근로대중의 눈높이에 당의 눈높이를 맞춘 진보정치노선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이 자기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떠들어대는데, 통합진보당마저도 자기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하면, 결국 그 두 당의 정치노선이 갈라서는 경계선은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자기의 눈높이를 독점재벌의 눈높이에 맞춰놓고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헛소리를 떠들어대면, 통합진보당은 그런 헛소리를 따라할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떠드는 국민의 눈높이는 독점재벌의 눈높이고, 통합진보당은 자기의 눈높이를 근로대중의 눈높이 맞추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연 어느 당이 근로대중을 배반한 가짜정당이고 어느 당이 근로대중을 위하는 진짜정당인지 진위를 가려보게 해야 할 것이다.


국민당의 변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해온 자주파가 지난 10여 년 동안 민주노동당 당기를 들고 열심히 노력하여 구축해놓은 대중적 지지기반은 근로대중 가운데 10%에 이르는 지지기반이다. 통합진보당이 계승한 그 10%에 이르는 대중적 지지율은 여론조사 방식에 따라서 그리고 국면변화에 따라서 10% 아래위로 들쭉날쭉 변동해왔고, 더욱이 이번 내분사태와 외압적 와해공세로 통합진보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상당히 훼손되었지만, 통합진보당이 근로대중 가운데 10%의 지지율을 확보하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10%의 대중적 지지기반이야말로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날까지 쑥쑥 자라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성장의 밑뿌리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근로대중 가운데 10%에 이르는 진보적 근로대중의 지지기반이 통합진보당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성장의 밑뿌리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대중적 지지율이 지금은 비록 10%밖에 되지 않지만, 한반도 정세가 평화정세로 전변되고 통합진보당이 더욱 분투하면 10%의 지지율이 20% 선으로 늘어나고 50% 선으로 늘어나는 비약적 성장의 시기가 올 것이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당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만일 통합진보당이 국민파가 하자는 대로 당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고 '국민적 지지율'이 올라가게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근로대중의 지지기반을 소홀히 여기면서 자기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말은, 뿌리를 튼튼히 키우지 않고 꽃부터 피우겠다는 소리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자기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면, 전체 근로대중의 10%에 이르는 진보적 근로대중의 지지마저도 차츰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진보정치의 길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면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아니라 진보모방적 국민정당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당을 혁신하자"고 주장하면서 당내 행사에서 '애국가'나 부르고 있다. 당내 행사에서 '애국가'를 열심히 불러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해서,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며, 그런 '애국가' 제창은 그것을 압박한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에서나 반길 일이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은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당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를 부르는지 안 부르는지 주시하고 있다가, '애국가'를 부르자 크게 반기며 몇몇 지도부 인사들이 '애국가'를 제창하는 장면을 찍은 현장사진을 언론에 실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통합진보당의 지지기반인 진보적 근로대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의 '애국가 제창' 압박공세에 뒤로 밀리는 통합진보당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을 것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진보적 근로대중의 실망이야말로 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매우 위험한 요소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당의 눈높이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국민파의 '당혁신'에는 통합진보당이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적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과 타협적으로 공존하려는 유혹에 빠진 무능정당으로, 투쟁을 포기한 허약정당으로 전락할 치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진보정당사에서 얻는 역사적 교훈은, 당의 좌경적 편향이 진보와 변혁을 망치는 치명적 요인이지만, 당의 우경적 편향도 그에 못지 않게 진보와 변혁을 망치는 치명적 요인으로 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민의 눈높이를 말하면 그대로 따라하고, 민주통합당이 국민복지를 들고나오면 그대로 따라하는 정당은 진보당이 아니라, 진보당을 우경화시킨 국민당의 변종일 뿐이다.

진보정치의 요구와 지향은 분명하다.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당의 눈높이를 실재하지도 않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지지기반인 근로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들과 함께 진보정치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2012년 7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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