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5

어떤 성격의 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하는가?

변혁과 진보 (5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저평가된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의 의의

2011년 6월 19일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강령을 개정하였다. 민주노동당 강령개정의 의의는 당의 정치이념을 진보적 민주주의로 정식화하였다는 데 있다.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개량에 안주하는 비변혁적 사민주의도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 사회변혁을 꿈꾸는 좌파적 사회주의도 아니고, 오직 이 땅의 현실에 부합되는 과학적 사회변혁사상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것은 거대한 정치적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그처럼 거대한 강령개정의 정치적 의의가 저평가되어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것은, 강령개정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정당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자본주의를 사회적 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로 개량하였다고 큰 소리를 쳐오던 세계 각국의 사민주의정당들이 자본주의세계체제를 강타한 대공황에 빠져 사회개량마저 중지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이 땅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기치를 든 우리식 사회변혁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것이다.

다른 한 편,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때로부터 20년 동안 세계 각국의 급진좌파정당들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한 대중의 처지를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밀교적 언어를 속삭이고 있을 때, 이 땅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기치를 든 우리식 사회변혁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강령을 개정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정식화하였을 때, 당내 좌파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는 우경화라는 논리를 들고나와 반대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당내 좌파가 모르고 있는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우경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실현해가는 긴 노정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규정한 정치이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정식화한 것은, 당의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당의 기존 강령에 들어있었던 사회주의적 요소를 이 땅에 전개될 사회변혁단계에 맞게 정식화한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당의 강령에 집어넣느냐 마느냐 하는 용어선택문제만 지적하면서 우경화라고 비판한 것은 인식의 한계를 넘지 못한 오류였다.

  
왜 5% 선을 넘지 못하는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모든 유형의 사회체제는 각기 그 사회체제에 부합하는 특정한 정치이념에 의해 구성되고 수립되고 유지되고 발전되는데, 그처럼 중대한 역할을 하는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조직이 바로 정당이다.

그러므로 사회변혁사상을 해명한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정당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당을 갖지 못하면, 낡은 사회체제를 새로운 사회체제로 바꾼다는 말은 공리공담으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우선 자기의 정당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성격의 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당건설에서 과오를 저지르면 사회변혁의 길이 막혀버리고, 당건설에서 시행착오가 생기면 사회변혁이 지체되거나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성격의 당을 건설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변혁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문제다.

민주노동당은 어떤 성격의 당으로 건설되었는가? 11년 전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때, 당의 성격을 규정한 개념은 노동계급의 중심성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인 것이다. 

 당내 좌파는 노동계급의 중심성이라는 개념을 노동자당의 성격을 나타낸 것으로 과도하게 해석하였지만,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실현한 당과 노동자당은 동일하지 않다. 노동자당은 사회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제시한 정당이므로,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실현한 정당보다 더 '왼쪽'에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건설에서 중심이 된 노동계급이란, 이 땅의 노동계급 일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노동자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보의식화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민주노동당 건설의 기초로 되었던 노동계급의 중심성이란 진보의식화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중심성을 뜻한다.

여기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민주노동당 건설의 중심으로 되었던 민주노총이 이 땅의 노동계급 가운데 불과 5% 남짓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약체노조이며, 진보의식화된 조합원은 그런 약체노조 안에서도 소수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동당은 약체노조의 소수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창당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강력한 대형노조의 다수 조합원들이 아니라 약체노조의 소수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창당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였다.

그런 한계를 안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을 이끌어 갈 정치적 영도역량을 발휘해주기를 누군가가 바란다면, 그것은 현실적 한계를 무시한 너무 무리한 기대가 아닐 수 없다. 약체노조의 소수 조합원들이 창당기에 축성한 당의 기초는 각계각층 대중을 포괄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취약했다.

그런 한계를 돌파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장성, 발전되기 위해 민주노동당에게 절실히 요구된 것은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이었으나, 민주노동당은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실현하지 못했다. 왜 실현하지 못하였을까?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당도 아니면서 노동자당처럼 국민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각계각층 대중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거리감을 느낀 것이다. 이 땅의 대중들이 민주노총에게 느끼는 거리감과 민주노동당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정비례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거리감은 그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결정적으로 제약하였다.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실현한 정당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창당된 민주노동당이 11년이 지나도록 고작 5% 지지율을 맴도는 정파통합당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10년이 넘게 정파통합당 수준이라도 꾸준히 유지해온 것이 장하다고 여기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그런 자화자찬에 만족하는 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정파통합당 수준에 머물러도 좋다는 식의 자기 혁신 포기와 다르지 않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진보가 자기 혁신을 포기하면 정체와 퇴보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현 시기 민주노동당에게 요구되는 자기 혁신은 무엇일까? 명백하게도, 그것은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상호결합시키는 혁신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자기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정파통합당 수준을 뛰어넘어 위력적인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강화, 발전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 가운데서 전자만 생각하고, 후자를 망각하는 전략적 오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이 자기를 혁신하는 길, 대중에게 물어보라

문제의 핵심은,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실현하는 민주노동당의 자기 혁신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할 때 우선 주목하는 것은, 당의 자기 혁신이란 당지도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 대중의 객관적 평가에 따라 실현된다는 점이다. 당이 자기를 혁신할 때 빠지기 쉬운 주관주의 함정을 피하고 대중적 관점에 자기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적 관점에 자기를 세우고, 각계각층 대중의 객관적 평가에 따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의 자기 혁신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재창당하는 것이다. 그런 재창당이 자기 혁신의 실천적 내용이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재창당되려면, 지금으로서는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대안은 찾을 수 없다.

현실이 그러한 데도,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문제를 논하면서 민주노총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국민참여당을 택할 것이냐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왜 자기 혁신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한심한 넋두리다.

△2011년 9.월 25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 대회장 모습 (<진보정치> 2011년 9월 25일 보도사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국민참여당 사이에서 그 무슨 양자택일 따위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정파통합당으로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여 자기를 혁신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안팎에서는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하거나, 또는 진보신당 탈당파와 먼저 통합하고 국민참여당과 나중에 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견해들은 대중적 관점이 아니라 주관주의적 관점에 자기를 세운 판단착오다.

△2011년 9월 25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 안건 표결 장면 (<진보정치> 2011년 9월 25일 보도사진)

참여당과의 합당 반대론이나 진보신당 탈당파와의 통합 우선론은 대중의 의사와 동떨어진 주장이다. 광화문로에서 불특정 행인들에게 물어봐도 그렇고, 민주노총 일반 조합원들에게 물어봐도 그렇다. 이처럼 명백한 현실을 외면하고 대중의 기대와 요구와 어긋나는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당의 자기 혁신을 사실상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재창당되어 자기 혁신의 길로 힘있게 전진할 때, 바로 그렇게 할 때 민주노동당의 정치이념으로 정식화된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안팎의 좌파들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정식화한 것을 우경화라고 비난한 것이 오류인 것처럼,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상호결합시킨 당건설노선을 두고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폐기한 우경노선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오류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진보적 대중정당은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각계각층 대중의 포괄성을 상호결합한 새로운 진보통합당이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기치를 든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그 두 가지 성격을 상호결합한 재창당에 추진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2011년 10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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