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9

설계도를 움켜쥐고 다시 일어서라

변혁과 진보 (8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피와 땀과 눈물로 설계도를 작성한 사람들

통합진보당에게는 다른 정당이 갖지 못한 설계도가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가 그것이다. 수구우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은 당내 파벌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성장발전한다. 통합진보당 창당 자체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진보정치 설계도란 무엇인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에 의거하여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전략, 방도, 경로를 이론적으로 해명한 것이 진보정치 설계도다. 그 설계도는 온갖 억압과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로, 온갖 차별과 착취에서 벗어나 평등으로 나아가는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과학적인 설계도다. 진보정치의 양대 강령에 의거한 사회변혁의 추진전략, 실현방도, 발전경로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한 바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는 오랜 세월 동안 수구우파 정적들의 탄압과 모략에 굴하지 않고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간고한 투쟁과 헌신적 노력에 의해 작성될 수 있었다. 양대 강령에 의거한 진보정치 설계도를 작성한 정치세력을 세칭 '자주파'라 부른다.

자주파라는 것은 그 양대 강령을 추구하고 지지하는 모든 정치활동가들과 당원들을 그렇지 않은 정치활동가들 및 당원들과 편의상 구분하여 부르는 통칭적 개념이지, 어떤 특정한 당내 조직체의 고유명칭이 아니다.

오늘날 통합진보당이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 설계도는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작성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는커녕 정적들로부터 '종북파'로 몰려 구속과 배척과 비방을 받아야 하는 험하디 험한 길 위에 흘린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치 설계도를 다시 읽어보면,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여러 구성부분이 들어있어서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그 설계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집권과정을 설계한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이 세워진 이후 더 높은 단계의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을 설계한 설계도는 진보정치 설계도보다 더 복잡해서 앞으로 별도로 연구하고 작성해야 할 것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개념도, 자주적 진보정권이라는 개념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온 자주파 활동가들이 이 땅의 진보적 근로대중에게 제시하여 인정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파 활동가들이 진보적 근로대중에게 제시하여 인정 받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주파의 이념적 전유물이 아니라 참된 민주주의를 갈망해온 근로대중의 정치적 지향이며 당면한 요구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주적 평화통일도 자주파의 이념적 전유물이 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 구성원 전체의 최상의 역사적 과업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은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그 이외에 다른 추진전략과 실현방도는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한 것도 그 양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진보적 대중정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로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려는 것도 그 양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있다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 진보적 정권교체 실현은, 이미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한 통합진보당 당원대중과 지지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이지만, 통합진보당이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진 현 상황에서 그 의미를 심사숙고해야 할 요구가 제기되었다.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다.

통합진보당 당원대중과 지지대중이 근본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였고 또 어떤 조건에서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건설과정에서 직접 체험한 것처럼, 정파들끼리 결집하는 정파연합체 건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한 조건에서, 바로 그런 조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건설되는 것이고, 또한 바로 그런 조건에서 건설된 진보적 대중정당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자주파와 다른 정파들이 통합하여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지지기반을 확장하고, 그 확장된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고, 진보적 대중정당의 정치역량이 강할 때는 단독집권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역량이 그렇지 못할 때는 우선 중도우파정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여 수구우파정당의 집권을 저지함으로써 진보적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한 뒤에 진보적 정권교체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실현하려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진보적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수구우파의 자유민주주의, 중도우파의 사회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새롭고 참된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외래독점자본이 사유화한 이 땅의 전략산업을 사회화함으로써 근로대중을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이며,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핵전쟁 도화선으로 존재하는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킴으로써 근로대중을 자주적 평화통일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연합전선의 단합된 역량으로 실현할 새로운 사회체제이며, 진보적 대중정당의 집권으로 실현할 새로운 사회체제다.

8.15 해방정국에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사상이 남북에서 각각 제시되었던 때로부터 어느덧 6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이 땅의 사회체제는 분단과 전쟁, 예속과 착취를 겪으며 차츰 질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사회체제가 질적으로 변화된 오늘 자주파가 구축한 진보연합전선은 67년 전에 구축되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똑같은 것이 아니고, 오늘 자주파가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67년 전 남북에서 각각 제시된 진보적 민주주의와 똑같은 것이 아니다.

67년 전과 달리 이 땅의 사회체제가 질적 변화를 일으켜 대외예속적 자본주의체제가 고착된 오늘, 진보연합전선의 사상과 전략은 그런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더욱 발전되고 풍부화되었고, 진보적 민주주의의 사상과 이념도 그런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더욱 발전되고 풍부화되었다. 진보연합전선과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사회체제의 질적 변화에 조응하여 어떻게 발전되고 풍부화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한다.


전선의 구심체, 그리고 전선구축의 구심력

지금 안으로는 분당위험에 빠지고, 밖으로는 와해위험에 노출된 통합진보당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는 진보연합전선 문제다. 진보연합전선 구축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러 정파들이 통합하여 진보연합전선의 구심체를 형성하였던 소중한 경험이다.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를 형성하고 구심력을 가동하여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구심체 주위에 든든히 결합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정파연합체는 그것이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결집시키는 구심력을 발휘할 때, 바로 그러한 때에 정파통합이라는 당의 구심체로 전변되는 것이다.

만일 정파통합이라는 통합진보당의 구심체가 없었다면, 확장된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 통합진보당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진보연합전선은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가 구심력을 발휘하여 크게 확장된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통합진보당은 신당권파가 쇄신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통합진보당의 구심체를 깨지기 직전의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정파통합이라는 구심체에서 발생하는 당의 구심력이 분산되고 약화되었기 때문에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확장운동을 멈춰버렸고, 만일 최악의 경우 당의 구심체가 깨지면, 통합진보당은 당의 간판을 유지하고 있어도 '식물정당'이 될 것이며 결국 와해되고 말 것이다.

신당권파는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당원투표로 교체하는 합리적인 방도를 외면하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자주파 당활동가들을 당지도부에서 밀어내고 당지도부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을 쇄신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당의 구심체를 깨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자주파에 대한 신당권파의 집중공세로 정파통합이라는 당의 구심력이 분산되고 말았으며, 그에 따라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확장운동을 멈추고 훼손당했고, 수구우파세력의 '종북모략소동'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당지도부 교체는 당원대중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지 정파적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신당권파가 정파적 공세로 당지도부를 교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자기들이 받을 당원대중의 지지표로는 당지도부를 교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신당권파가 내건, 당지도부를 교체한다는 명분은 당지도부를 장악했던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당지도부를 장악한 자주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패권주의적 행동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신당권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패권주의 쇄신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면 그들은 패권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번에 혁신비대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신당권파의 행동을 살펴보면,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는 경우 패권주의를 넘어서기는커녕 더 심하게 패권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돋보인다. 패권주의를 쇄신하겠다는 신당권파의 명분은 당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며 당의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정적들이 압수하지 못한 진보정치 설계도

자주파와 다른 정파들이 통합하여 당의 구심체를 형성하고 그 구심력으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하고 그 기반 위에 통합진보당을 건설하였을 뿐 아니라, 그렇게 강화된 당의 지위와 역량을 가지고 민주통합당과 연대하여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운 것은, 진보연합전선 구축이라는 당면정치방침이 정당하였음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그에 비해, 급진적 정치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당을 건설하려는 좌파들이 정치적 고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투쟁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정파들과 통합하여 당의 구심체를 형성하는 당건설전략을 외면하기 때문이고,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확장된 지지기반 위에 진보연합전선을 세우는 전선구축전략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연대하는 진보연합전선 구축은 통합진보당의 자의적인 행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세칭 야권연대라 부르는 진보연합전선 구축은 오직 통합진보당의 구심체 형성과 그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 확장이라는 특정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당면한 정치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하여야 올해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 재집권기도를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을 파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재집권기도를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을 파탄시키는 길은 야권연대라 부르는 진보연합전선 구축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그런데 당지도부를 당원대중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교체하지 않고 폭로와 선동과 제명으로 교체하려는 신당권파의 행동 때문에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할 조건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으며, 이처럼 개탄할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자주파 당활동가들과 자주파 당원들은 야권연대라고 부르는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조건을 다시 살려내는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며,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당원대중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교체해야 할 것이다.

정적들은 폭력을 동원하여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를 강제로 압수하였으나, 자주파 활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진보정치 설계도는 압수하지 못하였다.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자주파 활동가들과 자주파 당원들의 가슴 속에 간직한 진보정치 설계도는 그 어떤 정적도 빼앗을 수 없다.

길바닥에 쓰러진 통합진보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 기어이 야권연대의 길로 나아가는 자주파의 강인한 모습을 보고 싶다. 진보정치 설계도를 손에 움켜쥐고 일어나 사회변혁의 승리의 길로 주저없이 나아가는 자주파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고 싶다. (2012년 6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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