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0

추축시대와 자주시대, 문명사적 전환

변혁과 진보 (6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변혁과 진보 (63)


추축시대가 낳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굵은 발자취가 20세기 서양철학계에 남아있다. 독일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하였던 그는 1948년에 스위스 바젤대학교 교수로 취임한 뒤에는 철학자로 변신하였다.

그의 철학적 사고는 비록 관념론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계문명사에 대한 그의 통찰에는 주목할 만한 개념 하나가 들어있다. 1949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야스퍼스의 책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서 그가 논한 '추축시대(樞軸時代, Achsenzeit)'라는 개념이다.

야스퍼스가 말한 추축시대란,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문명사의 대전환기를 뜻한다. 세계문명사는 밋밋한 직선형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기간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와 질적인 도약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추축시대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싯달타(기원전 563-483), 공자(기원전 551-479),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 같은 사상가들이 동서양에 나타나 세계문명사의 발전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동안 진행된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말해주는 공통점은 사람중심의 철학사상이라는 데 있다.

비록 그 세 사상가가 살았던 문명권은 서로 달랐으나, 그들은 자연 그 자체를, 또는 사람이 자기의 심리를 자연에 투영하여 빚어낸 어떤 초월적 존재를 철학적 사색의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어떤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고 그런 가상존재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자연종교와 그에 기초한 고대문명을 훌쩍 뛰어넘은 사상사적 전환과 문명사적 전환이 바로 그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상적 대전환과 문명사적 대전환이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당대에는 그 누구도 문명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알지 못했다. 세계문명사를 긴 안목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 먼 훗날에 나타나 인류에게 그 전환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은 왜 하필이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기간에 시작되었던 것일까? 야스퍼스의 해명에 따르면, 추축시대는 낡은 제국이 몰락하고 아직 새로운 제국이 출현하기 이전의 중간기에 해당한다.

기원전 2,000년부터 612년까지 매우 긴 기간 동안 존속하였던 앗시리아제국이 몰락하고, 기원전 336년부터 323년까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였던 마케도니아제국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중간기에 추축시대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에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일까?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고대제국은 귀족계급이 노예계급을 착취하는 사회적 생산관계 위에 성립된 것이었다. 또한 노예제 사회의 생산력은 해외침략전쟁을 통한 노예확보, 자원약탈, 영토확장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에 해당한 추축시대 200년은, 고대제국의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던 평화기였음을 알 수 있다.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추축시대는 고대제국의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된 평화시대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고대 자연종교는 귀족계급이 노예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에 조응한 이념적 상부구조로 성립되었지만, 그와 달리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은 노예제 사회의 생산관계에 조응한 사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철학사상은 자연종교를 뛰어넘어 사람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은 새로운 철학사상이라 점에서 진보적 성격을 가졌던 것이다.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이 사람을 철학적 사색의 총적 주제로 삼기는 하였으나, 사람의 본성과 운명을 사람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지 않고, 사람을 물질세계와 분리시킨 관념적 존재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관념론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사상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었다.


문명사적 전환이 일어나는 자주시대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가 창시한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에서 한 걸음 전진하여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이 정립되기까지 세계문명사는 2,000년이 넘는 기나긴 탐구와 사색의 발전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그리고 세계의 본질을 밝혀준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또 다시 한 걸음 전진하여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밝혀준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완성되기까지 세계문명사는 곡절 많은 발전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지면제약상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란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진리,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자주적 본성에 따라 물질세계와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진리를 밝혀준 새로운 세계관이다.

유물변증법의 유물론적 세계관이 세계의 본질을 밝혀주었다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밝혀주었다. 따라서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시 말해서 사람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물음에 완벽한 해답을 준 완성된 세계관이다.

그러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정립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세계관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기간에 정립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도 세계정세의 변화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과 세계정세의 변화동향 사이의 상관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제국주의세계질서가 차츰 약화되고, 제국주의깡패국가들이 더 이상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오늘의 세계정세는, 노예확보와 자원약탈과 영토확장을 노린 해외침략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던, 고대제국의 몰락과 발흥 사이의 중간기 200년에 해당한 추축시대와 매우 흡사하다.
 
수레를 타고 다니던 추축시대에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가 창시한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세계문명사의 전환이 완결되기까지 근 1,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 인류는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정보와 자료를 주고받는 초고속 소통시대에 살고 있다.

현존인류에게는 공동사고의 기회가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에 대한 자본의 사상통제력이 약화되는 시기에,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전 세계에 급속히 전파되어 현존인류의 공동사고를 촉발시킬 것이며 세계문명사의 전환을 결정적으로 앞당길 것이다.

사람중심의 관념론적 철학사상이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에 해당한 추축시대에 세계문명사의 대전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면,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이 정립된 이 시대는 세계문명사에 두 번째로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제2차축시대가 아닌가!

싯달타, 공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제1차축시대를 살면서도 문명사적 전환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현존인류도 제2차축시대를 살면서 문명사적 전환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야스퍼스식 어법으로는 제2차축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식 어법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자주시대라고 해야 한다. 자주시대라는 말은 별다른 뜻이 없이 쓰는 유행어가 아니다.

사람과 세계의 관계가 냉혹한 현금관계로 고착되어버린, 그리하여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이 돈의 노예처럼 억눌려 살아야 하는 낡고 썩은 문명을 마감하고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문명 전환의 시대, 그런 문명사적 전환기가 바로 자주시대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밀고 나가는 사회변혁운동은 그 역사적 의의가 진보적 정권교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문명사의 넓고 긴 안목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문명사의 넓고 긴 안목으로 다시 바라보면, 문명사적 전환을 향한 진보와 변혁이 일어나는 자주시대의 역동적 현실이 시야에 들어온다. 긴 어둠을 깨고 솟아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펼쳐놓은 새 아침의 붉은 노을처럼 장엄하지 않은가. (2012년 1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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