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6

사랑과 행복의 미래로 가는 의자차

진실의 말팔매 <4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발행되는 <로동신문>에는 '독자의 편지'라는 제목의 독자투고란이 있다. 북측 각지에서 인민들이 <로동신문> 편집국에 보내온 편지글 형식의 갖가지 사연이 부정기적으로 거기에 실린다.

그 독자투고란을 읽으면 북측 인민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탈북자들과 고정간첩들이 악의적으로 꾸며내는 괴담과 헛소문을 듣고 헷갈릴 것이 아니라, '독자의 편지'를 읽어야 북측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물론 '독자의 편지'에 실리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미담들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나 자식이 없이 사는 노인내외를 성심껏 돌보는 사랑의 이야기, 인민군대에 복무하던 중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는 영예군인을 자기 가족처럼 돌보는 사랑의 이야기 같은 갖가지 감동적인 사연을 읽을 수 있다.

살인, 강도, 사기, 성폭행, 마약, 자살, 부정비리 같은 사건보도로 넘쳐나는 남측 신문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남측 일간지들에도 '독자투고란'이 있지만, 거기에는 언론매체가 보도하지 않은 사실을 해명하거나 폭로하는 글, 투고자 개인의 주장과 견해를 밝히는 글, 잘 알려지지 않은 생활정보를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글 등이 실린다.

2011년 10월 28일 <로동신문> '독자의 편지'에는 사리원시 은덕동 12인민반에 사는 리춘희 여성이 쓴 편지가 실렸다. 그녀는 앞을 못보는 특류영예군인인데, 옆동네에 사는 리명희 여성과 그 가족이 10여 년 전부터 리춘희 여성을 돌봐주어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 편지에 담겨있다.

그와 함께, 눈길을 끄는 보도사진 한 장이 실렸는데, 그 보도사진에는 영예군인을 "친혈육의 정으로 돌봐주고 있는 강계시 상업관리소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강계시 외룡동에 사는 최성상 영예군인의 집에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그의 손을 잡고 찍은 온정어린 모습이 담겼다.

그 날, <로동신문>에 실린 '독자의 편지'와 '보도사진'도 감동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보도기사로 실린 사연 한 편이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여기 그 사연을 전한다.

평양에 있는 동안중학교(남측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내일의 푸른 꿈을 꾸며 함께 공부하던 청춘남녀가 있었다. 학창시절에 축구를 잘했던 오철진과 손풍금 연주와 노래를 잘했던 고혜숙이 그들이다. 북측의 모든 중학교 졸업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 두 청춘남녀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에 입대하여 각자 조국보위초소에 섰다.
  
그런데 군사복무 중이던 고혜숙이 뜻밖의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21살의 꽃다운 처녀가 입은 치명적인 부상은 너무도 가혹하였다. 그녀는 흉추 및 요추 압박골절로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것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들이 타는 삼륜차에 실려 특류영예군인 제대증을 받고 집에 돌아가던 날, 그녀는 이 땅의 모든 처녀들이 갖고 싶어하는 꿈과 희망을 고이 접으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날 이후 그녀의 두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하반신이 마비된 자기 몸을 삼륜차에 싣고 김일성 주석의 영상을 형상화한 모자이크벽화를 찾아가 그 주변을 알뜰하게 가꾸었고, 기회가 올 때마다 평양의 여러 건설현장들을 찾아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자기 두 손으로 바퀴를 돌려 건설현장에 찾아온 그녀가 삼륜차에 앉아 부르는 노래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감동의 선율이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비장애인들보다 더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높이 평가한 당조직은 그녀가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도록 추천해주었다. 

고혜숙이 특류영예군인으로 그처럼 소중한 삶을 살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은 '군인가정'이었다. 제대군인인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의 두 딸과 막내아들에게 군복을 입혀 모두 초소에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문득 낯익은 얼굴의 병사가 나타났다. 군대에서 휴가를 받고 집에 왔던 길에 그녀에게 달려간 중학교 동창생 오철진이었다.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야 할 상봉이었건만,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 앞에 나서야 하는 고혜숙의 마음은 괴로왔고, 무릎걸음으로 자기를 맞아준 그녀 앞에서 오철진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조국보위에 두 다리를 바친 뒤에도 시련을 딛고 일어서 훌륭히 삶을 살아온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오철진은 뜨거운 것을 삼켰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돌아간 오철진의 눈가에는 고혜숙의 모습이 영영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고혜숙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 차츰 많아졌다.

오철진이 제대를 앞두고 있었던 어느 날, 그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편지에는 고혜숙과 일생을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오철진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아무나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오철진은 자기의 뜨거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고혜숙에게 보냈다. 그러나 고혜숙은 그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오철진이 이 땅을 두 발로 걷는 다른 어엿한 여성과 만나 결혼하는 것이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와 일생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굳힌 오철진은 그녀로부터 거절을 당했다고 해서 돌아설 사람이 아니었다. 제대한 뒤에 집에 돌아간 오철진은 거의 매일같이 고혜숙의 집을 찾아갔다.

조국보위의 길에 자신의 두 다리를 바친 고혜숙이 무릎걸음으로 걸어가는 한 생에 안겨주려는 순결한 사랑이 그의 발걸음을 그녀의 곁으로, 아니 그녀의 마음 속으로 이끌어갔다.

오철진의 부모가 오철진을 앞세우고 고혜숙의 집에 처음 들어선 날, 무릎걸음을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고혜숙의 부모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서는 고혜숙의 두 손을 와락 부여잡은 오철진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혜숙이 어머니, 우리 부부나 철진이의 결심이 단순히 동정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랍니다. 한 영예군인이 한생토록 피워가야 할 꽃이 소중하기에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혜숙이가 계속 피워가는 혁명의 꽃이 사회와 집단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우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게 된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열어가는 오철진, 고혜숙 부부 (<통일신보> 2011년 10월 29일 보도사진)

오래도록 참았던 울음이 끝내 터져나왔다. 기쁨의 웃음보다 더 뜨겁고 더 진실한 사랑과 행복의 울음이었다.

지금 고혜숙은 자기 두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삼륜차를 더 이상 타지 않는다. 자기의 남편, 아니 자기의 영원한 길동무인 오철진이 뒤에서 밀어주는 의자차(wheelchair)를 탄다. 그들의 의자차는 사랑과 행복의 미래로 가고 있다. (2011년 11월 1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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