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은하수에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

진실의 말팔매 <3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6년 5월 3일 이탈리아 시실리(Sicily)섬 서쪽 끝에 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트라파니(Trapani)에서 제13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대회(Guiseppe Di Stefano International Vocal Concours)가 열렸다. 15개 나라에서 출전한 각국의 성악가 80여 명이 평소에 갈고 닦은 성악기량을 저마다 뽐냈다.

예비심사와 준결승심사를 거쳐 결승심사에 오른 미모의 여성 성악가가 모차르트의 가극에 나오는 성악곡을 열창하였다. 그의 노래를 들은 심사위원들은 전원 일치로 그에게 단독 최우수상을 수여하였다. 그 수상자의 이름은 황은미다. 당시 황은미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음악학교인 산타 세실리아 국립학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에서 성악공부를 하던 유학생이었다. 세계 성악계에서 손꼽히는 남측 성악가 조수미도 그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1년 7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과 국가기관 책임일군들,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음악회를 관람하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각종 음악회를 자주 관람하면서 음악창작활동과 음악연주활동을 직접 지도하는 것은 음악애호의 경지를 넘어 음악정치를 시행하는 것인데, 그 날 음악회 공연에는 색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 음악회는 현대적으로 우아하게 단장, 개조된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였다. 음악회는 녹화실황으로 북측 전역에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 음악회에 출연한 성악가들 가운데는 5년 전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단독 최우수상을 받은 황은미가 있었다. 화사한 색감과 문양을 아로새긴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그는 혼성 이중창으로 노래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를 불렀고, 김일성청년영예상 수상자인 미모의 성악가 김향과 함께 혼성 사중창으로 노래 '우리 당의 자랑이라네'를 높은 성악기교로 불러 절찬을 받았다.

△제13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황은미. 2009년 10월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민족 21> 2010년 3월호 보도 사진)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황은미는 은하수관현악단을 대표하는 성악가다. 은하수관현악단에는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미모의 여성 성악가가 또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서은향이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서 서은향은 무대 앞쪽으로 나온 여성 연주자 4명이 전자악기 반주와 함께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편곡한 노래 '처녀로 꽃필 때'를 열창하여 인민배우의 높은 경지에 오른 예술적 기교를 보여주었다.

<동영상으로 보기> 서은향의 독창

국제성악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황은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적 여성 성악가 조앤 서덜랜드(Joan Sutherland)처럼 극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dramatic coloratura soprano)이고, 서은향은 이탈리아가 낳은 저명한 여성 성악가 레나타 스콧토(Renata Scotto)처럼 서정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lyric coloratura soprano)다. 그들의 노래를 꽃에 비유할 수 있다면, 황은미의 노래는 은은한 달빛을 머금고 피어난 옥잠화처럼 아름답고, 서은향의 노래는 맑은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수선화처럼 수려하다.

북측에는 황은미와 서은향처럼 연주기량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세계적 수준의 뛰어난 성악가들이 있는데, 그들이 국제음악계에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자본주의음악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걷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나라의 성악가들은 거대한 음악시장에 편입되어야 흥행가치를 높이게 되는데, 흥행가치는 곧 화폐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악은 시장에 편입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북측에서는 음악인들이 음악에만 전념하며 흥행가치 따위는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생산현장에서 땀흘리는 노동자들과 농장원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것을 최고 영예로 여긴다.

은하수관현악단에는 황은미와 서은향처럼 벨 칸토(bel canto) 창법으로 노래하는 성악가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식 창법으로 노래하는 로은별 같은 성악가들도 있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 출연한 미모의 공훈배우 로은별은 편곡한 우리 민요 '뽕 따러 가세'를 높은 기교를 지닌 우리식 창법으로 불렀다. 우리식 창법이란 전통적인 서도 민요 창법을 개조, 발전시킨 것이다.

그 날 다채로운 공연종목으로 짜여진 음악회를 진행한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었는데, 은하수극장이라는 전용 공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은하수관현악단이 북측 음악계를 대표하는 관현악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은하수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는 공훈예술가 리명일이고, 차석지휘자는 공훈예술가들인 전민철과 윤범주다. 
 
은하수관현악단은 기존 음악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편곡하여 다양한 기법으로 연주하는 팝스 오케스트라(pops orchestra)라고 할 수 있지만, 서구식 팝스 오케스트라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독특한 악기편성, 연주기법, 음악형상, 공연양식을 창조하였다. 은하수관현악단이 보여주는 음악적 특성과 우수성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은하수관현악단은 악기편성부터 다르다. 가야금, 양금, 해금, 젓대, 장새납, 장고, 꽹과리를 중심에 배치하였다. 7음음계로 작곡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개조된 이 민족악기들은 서양악기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독특한 민족적 정서를 풍부하게 표현한다. 은하수관현악단이 편곡한 민요와 민요풍의 창작곡을 많이 연주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민족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연주자들은 모두 화사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출연하여 관중들이 시각적으로도 민족적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야금 연주자는 한 사람인데, 지휘자 바로 앞에서 연주한다. 그 날 음악회에서 관현악 반주에 맞게 편곡한 우리 민요 '옹헤야'를 가야금으로 연주한 조옥주는 신기에 가까운 연주기량을 보였다. 그가 연주한 가야금은 12현 전통 가야금이 아니라 21현으로 개량한 가야금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조옥주의 가야금연주

남측에서 연주하는 개량 가야금은 25현이다. 남측의 25현 가야금 연주는 가야금의 특징인 농현을 거의 하지 않고 서양악기 하프처럼 연주하여 가야금 소리를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받는데, 조옥주의 가야금 연주에서는 농현이 주를 이루었다. 농현은 가야금을 연주할 때 왼손으로 줄을 눌러 네 가지 소리 즉 흔들리며 울리는 소리, 미끄러지며 내리는 소리, 밀어올리는 소리, 굴리는 소리를 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연주기법인데, 서양의 비브라토(Vibrato) 연주기법이 따라오지 못하는 가야금만의 깊고 넓은 음색을 낸다. 북측에서 하프처럼 손가락으로 뜯으며 연주하는 악기는 33현 옥류금이다. 

둘째, 은하수관현악단의 악기편성이 지닌 특징은 전기기타, 베이스기타, 전자건반악기, 드럼 같은 악기도 연주하고, 알토 색소폰(3명), 테너 색소폰(2명), 바리톤 색소폰(1명)도 연주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이전에 진행한 음악회들에서 이들은 스윙(swing)이라 부르는 서양식 연주기법으로 관중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전자악기, 드럼, 색소폰을 관현악과 배합한 것은 현대적 감각을 공급해줌으로써 은하수관현악단의 음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은하수관현악단은 다양한 민족악기들의 음색과 더불어 전자악기, 드럼, 색소폰의 음색까지 배합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배합관현악단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은하수관현악단 합창과 연주

은하수관현악단 드럼 연주자는 리진혁인데, 그는 2000년 서울에서 진행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공연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모든 종류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실력을 과시하여 관중들을 경탄케 하였고, 인천에서 열린 제16차 아시아육상경기대회를 응원한 북측의 청년학생협력단 소속으로 2005년에도 남측에 갔었는데, 남측 취재기자에게 "6.15 기치 밑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외세의 간섭 없이 무조건 조국통일을 이룩하자"고 말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번에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받았다.

셋째, 은하수관현악단에는 합창과 방창을 맡은 합창단원 59명이 소속되었다. 여성합창단원 30명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출연하고, 남성합창단원 29명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출연한다. 관현악에 합창을 접목시킨 방창은 북측에만 있는 우리식 음악공연양식이다. 은하수관현악단에 출연한 성악가들과 합창단원은 편곡한 민요나 민요풍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동안 때로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북측에만 있는 우리식 음악공연양식이다.

넷째,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는 설화라고 부르는 공연종목이 있는데, 치미 저고리를 입은 여성 출연자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 관현악 연주와 방창을 배경음악으로 삼고 정치사상적 의미를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한다. 은하수극장 개관 기념 음악회에서 설화를 공연한 사람은 요즈음 평양에서 각계각층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며 연장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김일성상 계관작품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민배우 백승란이다. 국립연극단 소속으로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연극배우인 그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에서도 뛰어난 화술로 정치사상적 의미를 전달하여 공연의 무게와 깊이를 더해주었다.
 
설화 전문은 공연무대 상단에 설치한 전광판에 이동식 전자글자로 현시되어 관중들에게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설화만이 아니라, 공연에 나온 연주자들의 이름, 연주곡목, 가사도 그런 방식으로 현시되었다.

사상과 정서를 분리해놓고 음악의 정서적 측면만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북측의 음악공연에 왜 설화가 포함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민대중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는 북측의 '주체의 음악사상'을 기준으로 보면,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은 사상성과 예술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3자 결합을 완성한 것이다.

<로동신문> 2011년 7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은하수극장에서 진행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회가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 깊은 감명을 안겨줄 수 있은 것은 음악회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편성, 연주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관례에서 벗어나 선군시대와 더불어 날로 높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정서적 요구와 지향에 맞게 대담하게 혁신한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은하수의 아름다운 선율이 받은 최고 평가였다. (2011년 8월 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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