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1

누가 그들의 내일을 아름답다 했는가?

진실의 말팔매 <3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2011년 8월 6일 영국 런던에서 폭동이 일어나 몇 일 사이에 주요도시들로 번졌다. 폭동에 참가한 군중은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폭동진압경찰와 충돌하였고, 경찰차량과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 불을 질렀으며, 상품을 약탈하고 경찰서와 상가에 불을 질렀다. 심지어 길에 지나가는 행인의 옷을 강탈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충격을 더해주었다. 각지에서 사상자와 피체자들이 속출하였다. 

△8월 6일 밤 런던 북부 토튼햄에서 시작된 폭동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폭동사태는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다. 2011년 3월 26일 런던 도심에 있는 하이드 공원에서 영국 노동조합회의(TUC) 소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각계층 군중 약 25만 명(경찰 추산)이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진 뒤에 시위행진을 벌였다. 긴축재정을 강요하여 민생을 피폐화시키는 영국 정부에게 반감과 분노를 느낀 군중들은 항의와 규탄의 함성으로 런던을 뒤덮었으며, 시위군중 일부는 경찰과 충돌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0년 11월에는 영국 대학생 수 만 명이 정부의 대학보조금 삭감과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투쟁을 벌이며, 집권당인 보수당의 당사와 옥스퍼드대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대학 건물 수 십 동을 점거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정부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8월 4일 경찰에 피살된 마크 더건 
그런데 2011년 8월 4일 런던 북부구역 토튼햄 길거리에서 29살 난 청년 마크 더건이 경찰 총격으로 피살되었다. 이 사건은 거대한 폭발력을 지닌 대중의 반감과 분노를 폭동으로 분출시킨 뇌관역할을 하였다.

<합동통신(AP)> 취재기자가 폭동현장에서 만난 폭동 참가자는 "이것은 몇 해 동안 쌓여왔던 것이다. 그저 불씨만 있으면 (폭발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다"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이 청년들에게는 일자리도, 미래도 없다. (정부지출) 삭감은 사태를 악화시켰다....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위의 발언을 들어보면, 이번 폭동사태는 희망을 잃어버린 영국 청년들 가슴에 오랫 동안 쌓이고 쌓인 반감과 분노가 경찰의 더건 살해사건을 폭발계기로 하여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국 청년들은 왜 그처럼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버린 것일까? 이런 사연이 있었다.

첫째, 극단적으로 벌어진 빈부격차다. 2010년 1월 영국 여성평등부 산하 국가평등위원회가 발표한 '영국의 경제적 불평등 해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상위 10%의 부유층이 가진 평균 자산은 85만3,000 파운드(14억9,800만 원)이고, 하위 10%의 빈곤층이 가진 평균 자산은 8,800 파운드(1,546만 원)다. 빈부격차가 약 97배로 벌어진 것이다.

또한 최상층 1%가 평균 자산 260만 파운드(45억8,200만 원)을 거머쥐고 있으므로, 최상층과 빈곤층의 자산격차는 무려 295배로 벌어졌다. 경제적 불평등이 이처럼 극에 이른 사회에서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폭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둘째, 반노동 친자본 정권의 긴축재정 강행으로 더욱 심화된 민생파탄이다. 2010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한 영국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는 연간 1,500억 파운드(263조5,500억 원)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줄인답시고 사회복지예산을 크게 깎아버리고, 공공부문 일자리 50만 개를 줄이고, 세금부담을 늘이는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강행하였다.

그 결과, 물가상승률은 4.4%로 뛰어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20.6%를 돌파했으며, 연간 대학등록금은 3,375 파운드(624만 원)에서 9,000 파운드(1,660만 원)으로 폭증하였다. 자본주의나라에서 긴축재정은 곧 민생파탄을 뜻한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는 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그처럼 무지막지한 긴축재정을 강행하였을까? 그 까닭은 영국 경제에 치명적인 골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17일 영국의 공공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조 파운드(1,757조 원)를 넘어섰다.

이 공공부채를 가구별로 나누면 한 가구당 4만 파운드(7,000만 원)씩 돌아가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영국은 날마다 1억2,000만 파운드(2,1084억 원)씩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이자규모만 해도 영국 국방비 지출을 넘어선다. 2010년 현재 영국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76.7%에 이르렀다.

10년 전만 해도 영국의 공공부채는 3,000억 파운드(527조1,000억 원)를 조금 넘어섰고, 5년 전에는 5,000억 파운드(878조5,000억 원)에 조금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7년부터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가 영국 금융시장의 붕괴를 재촉하자, 이에 놀란 영국 정부는 금융시장을 살리려는 비상대책으로 엄청난 재정을 구제금융조치에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영국의 국가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말았다.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건져보겠다고 발버둥치다가, 국가재정을 파산상태에 빠뜨렸고, 파산상태에 빠진 국가재정을 살려보겠다고 긴축재정을 강행하였더니, 그 결과는 민생파탄과 폭동으로 나타났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것처럼, 극소수 자본가들은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자산을 무한대로 증식시킨다. 정부가 그런 금융시장을 살려주겠다고 하면서 긴축재정을 강행하는 짓이야말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희생시켜 몇몇 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는 배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반노동적이고 친자본적인 정권이 경제회생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하는 짓이란 모두 그렇다.

그런데 만일 영국 정부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하면서 금융시장의 위기를 방치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금융시장의 붕괴로 자본주의시장경제 전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짜낼 수밖에 없는 착취기제를 구조화하였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새로운 대안체제로 바꾸지 않고서는 사회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게 되고, 사회구성원의 1%밖에 되지 않는 대자본가들만 향락과 사치를 즐기게 되고, 사회구성원의 10%밖에 되지 않는 부유층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생파탄과 폭동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영국과 비교해서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첫째, 시장주의자들은 마땅히 공공부채에 포함시켜야 할 몇몇 항목들을 슬쩍 빼놓고 부채규모를 되도록 줄임으로써 재정건전성을 논하지만, 명목상 공공부채가 아니라 사실상 공공부채를 따져보면 우리의 공공부채는 영국의 공공부채보다 대략 두 배 정도 더 많다. 우리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실상 공공부채 비율은 1997년 74.9%, 2002년 135.2%, 2008년 140.7%로 폭증하였다.

2010년 현재 영국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의 76.7%인데, 우리는 이미 2008년에 140%를 넘어버렸다. 또한 가계부채를 봐도 우리가 영국보다 세 배 이상 많다. 2009년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는 전세계에서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국내총생산의 376%이고, 영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03%다.

둘째, 우리의 세금부담 증가속도가 영국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영국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는 2.15배인데, 우리의 세금부담 증가속도는 3.6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셋째, 우리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보다 더 높다.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2%인데, 우리 사회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넷째, 우리의 빈부격차는 영국의 빈부격차보다 더 심하다. 우리 사회에서 상위 10%가 가진 자산은 전체 가계자산의 47.2%를 차지한다. 또한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격차가 474배나 된다. 상위 5%가 우리 사회 전체 부동산 자산의 64.8%를 점유하였으며, 상위 10%가 전체 금융자산의 66.5%를 차지하였다.

다섯째, 빈부격차에 대한 집단적 불만을 보면, 우리가 영국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의 불만지수는 56%인데, 우리의 불만지수는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

위에서 열거한 통계자료는 재정형편과 경제형편으로 보나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만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가 영국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사회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데, 영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주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이다. 절망과 분노가 휩쓴 영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났으나, 그들보다 더 심한 절망과 분노에 쌓인 우리 사회에서는 한을 품고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자살자 수는 2007년 12,174명, 2008년 12,858명, 2009년 14,583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000명당 11.2명인데, 우리의 자살률은 2009년 현재 31.0명이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리투아니아(31.5명)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에 비해, 영국의 자살률은 2008년 현재 인구 10,000명당 9.2명으로 세계 49위를 기록하였다.

절망과 고통에 차 있는 이 땅에서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비참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서로 알지 못하는 청년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공모하여 동반자살하는 사건들도 일어난다. 대학교수들도 자살하고, 현역 군인들도 자살하고, 인기 연예인들도 자살하고, 심지어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였다.

서울에서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서울시가 지하철역에 안전덧문을 설치하였더니, 한강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드는 자살자가 늘었다.

한강다리 투신자살자가 급증하자, 서울특별시는 한강다리에 2011725일부터 자살방지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지난 5년 사이 한강다리 투신자살자는 총 458명에 달한다. (KBS-TV 2011725일 보도 화면)

이 땅의 강과 호수와 저수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자주 떠올라 이제는 민물낚시를 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연령층에 있는 청소년과 청년의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이 1순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이다.

내일의 푸른 꿈을 안고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재학생 청소년 자살자 수는 2004년 101명, 2007년 142명, 2009년 202명으로 늘어났다.

누가 그들의 내일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그들을 절망으로 밀쳐냈는가? 이 땅의 청년들은 빼앗긴 내일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2011년 8월 1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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