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복지를 실현한 유럽은 이 땅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
사회복지(social welfare)는 사회체제를 규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체제 구성부분을 표시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복지체제라 하지 않고 복지정책 또는 복지제도라는 말을 쓴다. 사회체제라는 개념은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나라 또는 사회주의 나라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사회복지라는 개념은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국가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복지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국가적 정체성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본주의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목적은 빈곤감소다. 실제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복지제도가 시행된 이후 빈곤율이 줄어들었다. 2003년 '미국 사회학회지(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실린 연구논문 '선진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 상대적 빈곤의 결정요소(Determinants of Relative Poverty in Advanced Capitalist Democracies)'에 따르면, 복지제도를 시행한 서유럽과 북미주의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나타났다.
1970년부터 1997년까지 28년 동안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나타난 나라별 순위는 아래와 같다.
프랑스 15.5% 포인트 감소 (21.8%→6.1%)
벨기에 15.4% 포인트 감소 (19.5%→4.1%)
덴마크 12.6% 포인트 감소 (17.4%→4.8%)
이탈리아 10.6% 포인트 감소 (19.7%→9.1%)
스웨덴 10.0% 포인트 감소 (14.8%→4.8%)
핀란드 9.3% 포인트 감소 (12.4%→3.1%)
미국 9.3% 포인트 감소 (21.0%→11.7%)
노르웨이 8.4% 포인트 감소 (12.4%→4.0%)
영국 8.2% 포인트 감소 (16.4%→8.2%)
캐나다 5.2% 포인트 감소 (17.1%→11.9%)
독일 4.6% 포인트 감소 (9.7%→5.1%)
위의 통계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유럽형 복지제도와 북미형 복지제도가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한 미국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9.3% 감소하였으나, 원래 상대적 빈곤율이 20% 이상 최고 수준이었으므로 감소효과가 9.3% 포인트를 기록했어도 상대적 빈곤율이 여전히 10%를 넘기 때문에 감소효과가 크다고 보기 힘들다.
다른 한편, 유럽형 복지제도를 시행한 독일에서는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가장 적게 나타났는데, 그렇게 된 까닭은 원래 상대적 빈곤율이 10% 미만 최저 수준이었으므로 감소효과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유럽형 복지제도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북미형 복지제도에서 상대적 빈곤율 감소효과가 적게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원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형 복지제도는 부유층과 빈곤층을 막론하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를 원리로 하여 시행되고, 북미형 복지제도는 부유층이 빈곤층을 도와주는 사회적 자선(social charity)을 원리로 하여 시행된다.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유럽형 복지제도가 사회적 자선에 기초한 북미형 복지제도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원래 근대적 복지제도는 19세기 말엽부터 서유럽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차츰 확대, 발전되어왔다. 그 역사적 과정에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빈부격차가 극단화되면서 사회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자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본주의 나라의 복지제도는 빈부격차를 극단화하는 '시장의 폭력'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완화해주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보편적 건강관리제도(universal health care system)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프랑스에서는 200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2%를 보편적 건강관리제도 유지비용으로 지출하였다. 이것은 프랑스 국민의 건강관리 비용을 국가가 1인당 3,926 달러씩 부담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완전한 무상의료제도는 아니고, 의료비 가운데 70%를 국가가 부담하고, 처방비는 최소 35%에서 최대 100%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는 이 땅에서 치료비가 많이 드는 중병에 걸리는 경우 병원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생각하면, 보편적 건강관리제도가 시행되는 유럽의 현실은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무상보육-교육제도를 실현한 스웨덴에서는 보육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대학입시제도도 없고, 대학생에게 주당 94 달러의 학업수당까지 지급한다.
이 땅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2010년의 경우 연간 사교육비 20조9,000억 원을 부담하는 학부모들의 등골이 휘어지고,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생활비로 사는 절대빈곤가구의 아동 약 100만 명이 사교육비는 고사하고 끼니마저 거르며 굶고,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대학등록금이 30%나 급증하여 물가상승률보다 두 배나 뛰어오르는 바람에 대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대규모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땅의 비참한 교육현실을 생각하면, 무상교육제도가 시행되는 유럽의 현실은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공공주택제도를 실현한 유럽에서는 국가가 아파트형 공공주택(public housing)을 건설하여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게 임대하고 주거보조금을 지급한다.
△프랑스 파리 인근도시 팡탕(Pantin)의 공공주택. 이 공공주택의 아래층 에는 종합 병원(왼쪽 사진 유리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공공주택에서 바라본 외부 전경이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있음.) |
이를테면, 1998년 프랑스에서는 모든 주거지역마다 최소 20%에 이르는 저가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채택하였는데, 현재 약 400만 가구의 '저가임대주택(HLM)'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주택제도 유지비용으로 연간 약 10억 달러를 지출한다.
유럽 주요국가들의 총인구 대비 공공주택 거주인구 비율을 살펴보면, 네덜란드 14.7%,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각각 10.2%, 스웨덴 9.5%, 영국 8.5%, 프랑스 6.9%, 독일 2.7%, 이탈리아 1.8%, 스페인 0.3% 등이다.
그런데 이 땅의 주거현실은 어떠한가? 지하방, 옥탑방,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여관, 만화방, 피씨방, 찜질방, 화물수송용 철제짐함(container)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지금 서울의 중간수준 주택가격은 중간소득 가구의 연평균 소득 3,830만 원의 11.7 배에 이르는 4억4,646만 원이므로, 12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든 수입을 주택구입비로 저축해야만 겨우 중간수준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입자 신세를 사실상 영영 벗어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예로부터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 했는데, 이 땅에는 그 설움이 밀물처럼 그득하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복지제도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복지제도가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확대, 발전되어온 반면, 복지제도를 단번에 전면적으로 시행한 '기적'은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났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사라진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시장이 사실상 철폐되었기 때문에, '시장의 폭력'을 완화하는 사회복지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쓰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사회복지를 완성하였다는 표현을 쓴다.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유럽형과 북미형으로 대별되는데, 전자가 사회적 연대를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면, 후자는 사회적 자선을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위에서 논했는데, 그러한 자본주의 복지제도와 달리 사회주의 복지제도는 사회적 평등(social equality)을 원리로 하여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복지제도는, 완성된 사회주의 복지제도와 그것을 불완전하게 모방한 자본주의 복지제도로 구분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복지제도가 그것을 시행하는 국가재정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소멸되고 사회계급적 차이만 존재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와 사회계급적 모순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나라에서 시행하는 복지제도가 똑같은 방식으로 국가재정을 마련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사회계급적 모순이 소멸되고 사회계급적 차이만 존재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국유화 또는 협동화된 생산부문에서 발생한 이윤 가운데 일정량이 국가재정으로 이전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국가재정이 세금징수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사회주의 복지제도는 계획경제의 안정성에 의존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적 생산활동에 직결된다.
그와 달리,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국유화된 생산수단이 거의 없거나 또는 명목상 몇몇 국유기업들만 존재하므로, 국가재정은 세금징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생산활동에서 발생한 이윤을 자본가계급에게 넘겨주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생활안정에 필요한 각종 사회적 혜택을 받기 위해 많은 세금을 국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따라서 세금징수에 의존하는 복지제도가 시행되는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과도한 납세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에 의존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납세부담에 직결된다.
그런데 사회적 재부가 소수 자본가계급에게 집중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내적 모순이 격화되어 빈곤인구와 실업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출산율 저하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면, 빈곤인구, 실업인구, 노인인구의 복지혜택을 들어가는 국가재정지출은 급증하고, 그처럼 급증한 국가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산층에게 이전보다 더 심한 납세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심화될수록 중산층이 차츰 해체되어 중산층으로부터 걷어내는 세금이 줄어들고, 장기간에 걸쳐 세금징수와 재정지출의 괴리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막대한 부채가 누적된다. 그로써 국가는 부채상환능력을 상실한 재정파탄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복지제도를 시행해오던 미국, 일본, 유럽연합에서 파산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고 있는 파국적 국가채무위기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2011년 8월 현재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부채위기국을 손꼽아보면, 국내총생산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은 일본 229%, 그리스 152%, 이탈리아 120%, 아일랜드 114%, 아이슬란드 103%, 미국 100%로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국가채무는 1981년에 국내총생산의 32.5%였고, 1986년에는 62.4%였는데, 이번에 100%로 늘어나 부채위기국으로 전락하였다. 지금 미국의 국가부채를 1,000 달러 짜리 고액권으로 쌓는다면, 그 높이는 1,450km에 이르러 대기권을 뚫고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게 되고, 1달러 짜리 지폐로 쌓는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할 수 있다.
지금 부채위기국들이 겪는 공포스런 현실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세금징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불완전한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의 재정이 파산되어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복지혜택을 크게 축소하거나 전면 중단하는 이른바 '복지의 붕괴'는 불가피한 일이다.
사회계급적 모순은 시장경제를 파탄위기에 빠뜨리는 직접적 원인이고, 시장경제위기는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직접적 원인이고, 국가재정파산은 불완전한 복지제도를 무너뜨리는 직접적 원인이다.
특유한 사회복지의 단계적 실현을 전망하며
이 땅에 불완전하나마 북미형 복지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김대중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권에게는 북미형보다 더 발전된 유럽형 복지제도를 도입할 능력이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불완전한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한다고 하였으나, 북미형 복지제도 도입과 함께 신자유주의도 수용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바람에 죽도 밥도 되지 않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사회복지와 신자유주의는 상극인데, 김대중 정권이 그런 상극을 동시에 받아들인 것이야말로 어이없는 패착이었다.
이 땅의 국민들이 뼈아프게 겪은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불완전한 북미형 사회복지를 짓밟아 불구로 만들어버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북미형 복지제도를 시행하였는데도, 사회적 양극화가 날로 확대되고 민생경제가 파산상태에 빠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복지를 인기영합주의(populism)라고 비난하고, 신자유주의 전면화에 박차를 가해온 이명박 정권은 북미형 복지제도를 더욱 불구화시켰다.
희망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희망의 빛은 2012년 정권교체에서 비치고 있다. 만일 2012년에 정권교체를 실현하면, 새로운 정권은 이명박 정권이 불구화시킨 북미형 복지제도를 복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형 복지제도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다.
불구화된 북미형 복지제도를 복구하고 유럽형 복지제도로 발전시키는 힘들고 어려운 과업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세제도 개혁으로 수행되는 것인데, 신자유주의가 중산층을 해체해버린 지금에 와서 조세제도를 아무리 개혁해도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지금 미국, 일본, 유럽연합이 겪는 재정파탄위기가 말해주는 것처럼, 세금징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 복지제도는 발전전망을 이미 상실하였으므로, 이 땅에서 그런 가망 없는 복지제도를 모방시행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과업은, 가망 없는 자본주의 복지제도를 넘어서는 대안적 복지제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순전히 이론적으로 논하자면, 자본주의 복지제도의 대안은 사회주의 복지제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땅에서 시장철폐를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복지제도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짓이다.
신자유주의 해악으로 기존 중산층이 상당부분 해체되어 사회적 양극화가 확대된 오늘의 우리 사회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실패한 복지제도에 기울거릴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후진 자본주의 나라들 가운데 사회복지에 성공한 나라의 참신한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네주엘라는 우리보다 중산층이 발달하지 않은 후진 자본주의 나라이지만, 정권교체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특유한 복지제도를 시행,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베네주엘라의 특유한 복지제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세금징수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복지제도도 아니고, 시장철폐를 전제로 하는 완전한 사회주의 복지제도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재정을 중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유한 복지제도다.
그러나 중요산업 국유화도 민주노동당이 단독집권을 실현한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므로, 2012년 정권교체에서 중요산업 국유화에 기초한 대안적 복지제도 수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현실은 이 땅에서 복지제도를 완성해가는 과업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험난하고 복잡하게 수행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그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북미형 복지제도 복구→유럽형 복지제도로의 발전→대안적 복지제도 수립이 될 것이다.
공상적 복지관념을 버리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사회복지를 논할 때, 의례히 거론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 땅에서도 스웨덴처럼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희망과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 희망과 요구는 과연 실현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부질없는 공상일까?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스웨덴과 우리 사회의 국가재정지출을 비교할 필요가 있는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군사비 차이다. 스웨덴의 군사비와 이 땅의 군사비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스웨덴 인구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908만 명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은 3,547억 달러다. 그 나라에서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가 시행되는데, 군복무기간은 육군 7개월 반, 해군 7-15개월, 공군 8-12개월이다. 스웨덴의 군병력은 현역 25,000 명, 제대자는 47세까지 예비역 22,988 명, 민병대 38,000 명으로 구성되었고, 2009년도 군사비는 55억 달러이며, 2009년도 국내총생산 대비 군사비 비율은 1.55%다.
그에 비해, 남측 인구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4,875만 명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은 9,862억 달러다. 이 땅에서는 징병제가 시행되는데, 군복무기간은 육군과 해병대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이다. 이 땅의 군병력은 현역 653,000 명, 예비역 320만 명이다.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우리가 스웨덴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군비부담을 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사회복지문제를 논할 때 제기되는 핵심문제는 군사비 지출인데, 이 땅의 군사비는 얼마나 될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도 군사비는 29조5,000억 원(280억9,500만 달러)이며, 주한미국군에게 해마다 제공하는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은 3조 원(28억5,700만 달러)이다. 따라서 이 땅의 군사비 총액은 32조5,000억 원(309억5,200만 달러)이고, 2010년도 국내총생산 대비 군사비 비율은 3.13%다.
국내총생산에 대한 군사비 비율이 3.13%나 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비율이 1.55%밖에 되지 않는 스웨덴처럼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땅에서 군사비를 대폭 삭감하지 않고 사회복지를 실현한다는 소리는 한낱 공상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군사비를 어떻게 삭감할 수 있을까?
이 땅의 군사비 지출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주한미국군에 대한 '지원금'이다. 선제핵공격을 상정한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이는 주한미국군에게 해마다 3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지원금'을 대주는 것은, 칠천만 겨레를 몰살시킬 핵전쟁비용을 미국에게 대주는 자멸행위이며, 민족적 양심을 짓밟고 상식을 파괴하는 반이성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친미정권이 '동맹'의 이름으로 자행해오는 이 반이성적 행위를 언제 중단시킬 것인가?
재정문제만 놓고 생각해봐도, 만일 주한미국군에게 제공하는 3조 원을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으로 사는 이 땅의 83만 가구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한 가구당 연간 361만 원씩 복지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국군에게 제공하는 3조 원을 이 땅의 대학생 300만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한 사람에게 연간 100만 원씩 학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한국군 감축은 논외로 치고, 주한미국군 철군만으로도 이 땅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결론은 명백하다.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길을 국민에 대한 조세부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사회복지혜택을 안겨줄 결정적 기회로도 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반도 평화회담이 성사되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야 가능하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복지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한반도 평화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이어지는 평화와 철군의 시나리오는, 칠천만 겨레에게 평화통일을 안겨주는 민족재생의 길이며 동시에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빈궁과 궁핍에서 벗어나는 민중재활의 길이기도 하다. (2011년 8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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