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7

동정심은 필요 없다

진실의 말팔매 <3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주한미국군이 최악의 독극물 다이옥신이 들어간 고엽제 드럼통을 이 땅에 마구 파묻은 전대미문의 범죄행위가 우리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더욱이 경상북도 왜관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하였다고 폭로한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도, 미8군사령부는 지질탐사를 시행하는 척하는 기만극을 연출하면서 불법매립범죄를 슬그머니 덮고 넘어갈 음모나 꾸미고 있으니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면 누구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978년 2월부터 왜관 미국군기지에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군 공병대 중장비 기사로 매립작업에 동원되었던 스티븐 하우스와 당시 미국군 대위로 비무장지대 최전방에서 근무하였던 필 스튜어트 두 사람이 몇일 전 서울에 들어갔다. 그들 두 사람은 2011년 7월 25일 국회의원회관 128호에서 열린 ‘전 주한미군 고엽제피해자 국회증언대회’에 참석하여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였다.

△7월 25일 '전 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국회증언대회'에 참석,  왜관 미국군기지에 고엽제를 불법 매립한 사실을 폭로하는 스티브 하우스(사진 중앙. 사진 왼쪽은 필 스튜어트)  (<통일뉴스> 2011년 7월 25일 보도사진)

하우스의 폭로에 따르면, 자신이 속했던 802공병대대 델타중대는 1978년 2월부터 고엽제 드럼통 250개를 왜관 미국군기지에 불법매립하였으며, 그해 가을에도 고엽제 드럼통을 30-40개씩 여러 차례 불법매립하였다고 한다. 왜관 미국군기지에 있던 고엽제 드럼통을 불법매립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군기지에 있던 고엽제 드럼통도 그 기지로 운반해서 1979년 2월까지 불법매립을 계속하였다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퇴역군인 두 사람은 이튿날인 7월 26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임진강 강변휴게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필 스튜어트는 1960-1970년대에 미국군이 서울, 인천, 부산, 동해안 등에서 고엽제를 사용, 유통, 저장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의 폭로에 따르면, “고엽제가 들어있던 드럼통의 배출구 고무부분이나 장화바닥이 (맹독성 때문에) 껌처럼 흐믈거렸”는데도, 미국군 지휘부는 당시 미국군 중대장이었던 자신에게 고엽제가 “안전하고, 마실 수 있고, 양치질할 수 있고, 목욕할 수도 있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미국군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들의 범행을 은폐하려는 가소로운 기만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폭로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은 맹독성 고엽제를 전방지대 곳곳에 마구 살포하고 나서, 살포작업에 사용하여 맹독성에 오염된 장비들을 임진강에서 씻곤 하였다.
 
위의 두 퇴역군인이 폭로한 내용은, 미국군이 맹독성 고엽제를 이 땅에 불법반입, 불법살포, 불법매립한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음을 입증해준다. 그런 만행이 30년이 넘도록 비밀에 묻혀있었다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인 미8군사령부에게 고엽제 매립범죄를 조사하라고 맡긴 것도 믿기 힘든 일이고, 그들의 만행이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도 우리 국민들이 미국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이 땅에 미국군을 장기주둔시켜오는 미국의 지배체제가 우리 국민들에게서 자주의식과 저항의지를 거세해버리고 저들의 지배질서에 순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처럼 믿기 힘든 해괴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군이 이 땅에서 오래 전에 저지른,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적당히 덮어버리고 넘어가려는 전대미문의 고엽제 만행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명백하게도, 고엽제 만행의 원인은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이다. 바로 그 원인에서 미국군이 저지른 고엽제 만행을 비롯한 온갖 범죄가 발생한 것이고, 주둔에 따른 온갖 피해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이라는 원인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미국군의 끊임없는 북침전쟁연습에 따른 군사적 긴장과 핵전쟁위험이 가해오는 이 땅의 주권침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들은 고엽제 불법반입, 불법살포, 불법매립에 대한 공식 사과를 미국 정부에게 요구하고, 고엽제 불법매립으로 발생한 환경오염을 제거하는 경비를 전담하라고 미국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권침해의 화근인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미국 정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요구가 합리적이고 정상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7월 26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케이시 주변에서 민주노동당 평화도보순례단이 고엽제 불법매립을 폭로한 두 퇴역군인과 함께 진행하기로 예정한 걷기대회와 2차 기자회견이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고엽제 불법매립을 폭로한 두 퇴역군인이 불법매립을 저지른 주한미국군을 규탄하고,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는 민주노동당 평화도보순례단의 구호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전 주한미국군 필 스튜어트(사진 중앙)와 스티브 하우스가 민주노동당 홍희덕의원과 함께 7월 26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주변을 답사하며 고엽제 불법 살포를 증언하고 있다. (<노컷뉴스> 2011년 7월 26일 보도사진)

이러한 사태는 이미 그 전날에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예고되었다. 그 자리에서 필 스튜어트는 “신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사용된 에이전트 오렌지와 기타 맹독성 제초제에 대한 완전하고 투명한 진상을 공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고엽제 만행의 원인이 한미동맹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되레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고엽제 만행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수많은 퇴역군인들 가운데 미국군이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규탄하고,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국군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준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퇴역군인들이 대다수다. 고엽제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그 두 퇴역군인도 그런 대다수에 속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두 사람은 7월 27일 미국군기지 캠프 캐럴이 있는 경상북도 왜관지역을 찾아가 지역주민들에게 사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개인자격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사죄하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흐려놓는 일이다. 고엽제 만행은 그 두 사람이 저지른 개인범행이 아니다. 왜관 지역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두 사람도 고엽제 만행의 피해자들이다. 명백하게도, 고엽제 만행은 미국군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이므로, 그 두 사람의 개인적 사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 또한 고엽제 만행은 왜관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땅 곳곳에서 저질러진 것이므로, 어느 특정지역주민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전체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미국군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고엽제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들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은 필요 없다. 우리 국민들은 자기들의 주권을 침해한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받아야 하고, 미국 정부는 주권침해의 화근인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종전이 아니라 정전으로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58년 동안 주한미국군 장기주둔으로 주권침해를 당해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동정심 표시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와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 정당한 요구가 실현될  때, 고엽제 만행으로 짓밝힌 과거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미래로 되살아날 것이다. (2011년 7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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