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5

길고 고통스러운 쇠퇴기

진실의 말팔매 <2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최근 미국 언론에 나온 두 가지 정보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미국의 대량실업에 관한 것이다. 2011년 6월 6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체 실업자 가운데 45.1%에 이르는 620여 만 명이 여섯 달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실업자로 전락하였고,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가운데 100만 명이 실업급여마저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기의 실업률을 넘어선 사상 최고의 실업률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주택시장 붕괴에 관한 것이다. 2011년 6월 1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6년 이후 미국 주택가격이 33%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주택가격 하락률은 31%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악화된 것이다.

실업률은 노동계급의 소득격감을 나타내는 지수이고, 주택가격 하락률은 중산층의 자산격감을 나타내는 지수다. 소득과 자산이 대공황기에 비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은, 미국의 노동계급과 중산층이 대공황기보다 더 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혹심한 경제난은 아래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빵을 타기위해 줄지어 선 뉴욕시민들 

<로이터 통신> 2010년 1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 가운데 18.2%가 소득감소로 식량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가구 가운데 24.1%가 식량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2008년 한 해 동안 미국인 4,910만 명이 일정 기간 식량구입을 하지 못해 고통을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월 스트릿 저널> 2009년 12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장기요금체납으로 전기, 가스, 수도가 끊긴 가구가 430만 가구에 이르렀다. 이것은 미국의 노동계급이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한 경제난에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월 스트릿 저널> 2010년 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09년도 미국의 개인파산은 141만 건에 이르렀다. 이것은 미국에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던 2008년보다 32%가 늘어난 것이다. 2008년에 파산당한 미국인은 연소득 4만-8만 달러 수준의 빈곤층이었지만, 2009년에 파산당한 미국인은 연소득 10만-30만 달러 수준의 중산층이다.

이것은 미국의 중산층이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근로대중과 중산층이 대공황기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미국의 빈부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근로대중이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데도, 미국의 정부와 언론은 미국이 대공황에 빠졌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공황보다 더 심한 파국에 빠졌다는 사실이 각종 지표를 통해 드러났는 데도, 그들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대후퇴(great recession)이라는 어색한 신조어를 쓴다.

이것은 미국인들을 주저앉게 만들 심리적 공황(panic)을 피해보려는 궁여지책이다. 그렇지만 대공황이라는 말을 일부러 쓰지 않아도, 대공황이라는 현실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적 현실로 존재한다.

△오늘의 미국 근로대중은 대공황기보다 더 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미국은 뉴딜정책과 전시경제로 1930년대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정보통신산업과 군사비 삭감으로 1980년대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2000년대에 또 다시 몰아닥친 대공황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목을 조이는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수지적자와 국가채무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고, 정보통신산업과 같은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대공황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게는 전시경제도 대책이 되지 못한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지역은 한반도와 중동이지만, 한반도는 핵무장 군사강국으로 등장한 북측이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보유하였으므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석유공급 중심지인 중동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국 경제의 붕괴를 더 재촉하게 되므로 미국은 그 지역에서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은 '반테러전쟁'이라는 간판을 내건 저강도 전쟁에 줄곧 매달려왔는데, 오늘 재정수지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반테러전쟁'에 들어가는 전비를 대주기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한 마디로, 미국을 붕괴위험에서 건져줄 대공황 탈출구는 없는 것이다.

대공황 탈출구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은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건설된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함께 무너진다는 뜻이다.

1930년대나 1980년대에는 미국 경제가 무너져도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동반붕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미국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단일체제로 꽁꽁 묶어놓은 것이다. 세계화의 비극은 일찌감치 그렇게 잉태되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무너지고 그에 따라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무너질 붕괴위험이 눈에 보이는 데도, 어떤 사람들은 현재 위험을 신자유주의 붕괴위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명백하게도, 21세기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발전전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붕괴위험에 빠져버린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체제의 중핵이므로,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대공황으로 무너지는 것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지배해온 자본주의세계체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세 가지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19세기 고전이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격화되어 자본주의체제가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체제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론이다. 그러나 1930년대와 1980년대에 파국적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자본주의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당시 미국이 파국적 위기를 피할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기관리능력은 1930년대의 뉴딜정책과 전시경제, 그리고 1980년대의 새로운 경제성장동력과 군사비 삭감으로 나타났다. 맑스가 아무리 뛰어난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거의 100년 뒤에 나타날 위기관리능력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본주의 멸망론을 좌파적 상상력의 오류라고 생각하였다.

둘째, 2010년대에 겪고 있는 붕괴위험은 극적인 붕괴현상을 몰고 오지 않는다. 미국 경제가 무너지고 그에 따라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무너져도,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몇 년 몇 월 몇 일에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붕괴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기는 했어도 위기관리능력이 극적인 붕괴를 어느 정도 방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붕괴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지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길고 고통스러운 쇠퇴기를 지나며 무너져내릴 것이라는 점이다. 그 쇠퇴기가 30년 동안 이어질지 아니면 50년 이상 길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셋째, 19세기 고전이론은 자본주의 멸망이 사회주의 이행으로 직결된다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가 극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길고 고통스러운 쇠퇴기를 거치며 무너지기 때문에, 사회주의체제로 자동 이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보적 인류의 사회주의적 이상은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역사발전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자본주의체제가 길고 고통스러운 쇠퇴과정을 거치며 무너지는 한 편, 사회주의체제도 길고 복잡다단한 생성과정을 거치며 일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주의 쇠퇴기와 사회주의 생성기가 겹쳐지는 시대가 얼마나 길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구 위에서, 아니 인류 역사 전 기간을 통틀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은 한반도다. 자본주의의 쇠퇴와 사회주의의 생성이 인류사에 던져주는 난해한 물음을 풀어줄 21세기의 해답을 한반도 통일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국이 쇠퇴하는 시기에 실현될 한반도 통일은 민족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를 함께 지니는 대사변이 될 것이다. 6.15 공동선언 기념일을 맞은 오늘 그 선언의 깊고 넓은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11년 6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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