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4

정책연합에 근거한 공동집권

변혁과 진보 (2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야권연대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공히 야권연대를 말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야권연대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야권연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야당이 있으니, 진보신당이다. 2011113'진보정치 승리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신년 토론회'에 참석한 진보신당 대표는 "모두가 2012년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반MB연대라는 목소리 하나로 나오고 있다. 어떤 정치세력이 던져놓은 틀 속에 갇히면 그 정치세력 의도대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이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자유주의세력, 구체적으로 민주당 프레임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야권연대는 민주당의 의도를 추종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야권연대는 야당들이 공동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연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보신당 대표는 야권연대라는 말을 야당들이 민주당의 의도를 추종한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그는 민주당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다른 야당들을 추종세력으로 거느리려는 의도라고 해석된다.
 
진보신당 대표의 발언에 따르면,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자기들을 추종세력으로 거느리려는 민주당의 '음흉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어리석은 정당들이고, 민주당의 그런 의도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진보신당은 똑똑한 정당이라는 말로 들린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는 연대개념을 추종개념으로 잘못 이해하고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연대개념에 몰이해이며,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다. 진보신당 대표의 경우, 야권연대에 대한 몰이해가 억지를 만들어 냈고, 억지를 내세우면서 야권연대를 거부한 것이다.

진보신당이 예외적으로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공히 논하는 야권연대라는 개념은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동향을 파악하는 열쇠말이 되었다.
 
야권연대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처럼 대세를 이룬 것은 바람직하나, 야권연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하게 정리한 발언이나 글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말이 나온 김에, 야권연대가 무엇인지 정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3당 공동집권전략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야권연대는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연대하여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통합당이 건설되면, 야권연대는 진보통합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연대하여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이 야권연대를 반대하고 있으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건설된 진보통합당이 야권연대를 실현하려는 경우 당연히 심각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진보통합당 안에서 야권연대에 관련하여 발생할 심각한 진통을 민주노동당이 예상한다면, 진보통합당 건설과정에서 야권연대에 관한 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범야권 정치연합체의 목적은, 한나라당 반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연합체에 참여한 야3당이 공동집권전략을 합의하고 공동정부(중도연립정부)를 수립하려는 데 있다. 3당 공동집권전략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몇 차례 논한 바 있다.
 
그런데 야권연대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야권연대의 최종목표인 공동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명확한 인식을 갖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공동정부에 대한 오해가 공동정부 수립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로막고 공동정부 반대론으로 불거지는 것이다. 공동정부에 대한 오해를 벗겨내려면 아래와 같은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3당 공동집권전략 시나리오에 따르면, 3당이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고 그에 기초하여 공동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은 공동정부 각료직을 몇 자리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공동정부 반대론에 따르면,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로 기형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이 각료직 몇 자리를 차지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공동정부 수립의 의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물론 야3당 공동정부를 세운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이 땅의 기형화된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3당 공동정부는 변혁적인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변혁정부가 아니므로, 진보적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3당 공동정부의 다른 측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3당 공동정부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일정부분 약화시킬 수 있고, 이 땅의 기형화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지는 못하지만 일정부분 변화시킬 수 있다. 3당 공동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이 공동정부 안에서 적극적으로 추동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3당 공동정부가 비록 진보적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지는 못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현 시기 우리 사회는 사회변혁의 결정적 시기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 준비기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여 요구하는 것은 변혁정부가 아니라 공동정부다. 3당 공동정부는 사회변혁 준비기에 등장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룩하는 정치적 실체다. 현 시기 우리 사회가 사회변혁 준비기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민주노동당이 사회변혁 준비기의 정부형태인 공동정부를 세우는 것은 사회변혁의 발전수준이나 현 시기 변혁정세에 부합된다.

사회변혁 준비기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정치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당면과업이다. 오늘 사회변혁 준비기에 있는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진보적 민주주의변혁의 결정적 시기가 오기만 기다린다면, 그것은 사회변혁의 당면과업을 저버리는 정치적 배임행위다. 3당 공동집권전략을 외면하고 변혁적 역할과 임무를 말로만 논하는 것도 그러한 정치적 배임행위에 속한다.
 
둘째, 3당이 범야권 정치연합체를 결성하고 그에 기초하여 공동정부를 세우는 경우,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이 공동정부 각료직을 몇 자리 차지할 수 있지만, 정치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대통령 중심제에서 각료직 몇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공동정부의 의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공동정부에 참여한 정당들이 각료직을 나누어 차지하는 것은 전형적인 권력분점이지만,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분점은 실권 없는 껍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우리식 변혁담론의 공동집권전략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야3당 권력분점이 아니라 야3당 정책연합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의 공동정부 수립전략은 야3당 각료직 배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야3당 정책연합을 실현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공동정부에 참여하는 야3당이 정책연합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 과제로 된다. 명백하게도,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공동집권은 야3당 정책연합에 근거한 공동집권이다.

공동정부에 참여하는 야3당이 정책연합을 실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민주노동당의 시각에서 공동정부 정책연합을 바라보면, 공동정부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어떤 특정한 정책들을 수용하고 시행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은 공동정부에 참여함으로써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특정한 정책들을 실현하는 것이다.
 

3당 정책연합에 근거한 공동집권
 
정치노선이 서로 다른 야3당이 공동정부 정책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예상보다 복잡하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야3당 정책연합은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가능한 현실이다. 3당 정책연합의 내용을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3당은 정치적 자유권의 완전한 보장을 합의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권의 완전한 보장이란, 진보정치세력을 억눌러온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노동계급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낡은 법을 철폐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이 진보적 역할과 임무의 수행범위를 결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고, 노동계급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낡은 법을 철폐해야 노동관계조정법, 비정규직관련법, 산재보상법, 고용보험법, 최저임금법을 노동계급의 권익에 맞게 개정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이 공동정부에 참여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책들을 실현하려면, 우선 진보정치의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진보정치의 '족쇄'가 풀리면,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의 정치활동공간이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진보정치 실현은 '족쇄풀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노동계급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낡은 법을 철폐하려는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의 요구를 반대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둘째, 3당은 신자유주의 결별과 서민복지 실현을 합의할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현실로 입증되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본산인 미국 정치권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거론하는 형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몰아친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휩쓸렸지만,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경험한 오늘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신자유주의를 더 이상 맹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민주노동당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적확한 개념을 쓰지는 않지만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복지담론을 들고 나온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201118<오마이뉴스>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 겸 연대연합특위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반신자유주의도 좋고 비신자유주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일치하지 않으면 최대 강령으로 도입되기 힘든 건 사실이다. 그에 대해선 신자유주의의 생산양식 혹은 사회양식을 두고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금융자본 지배구조, 민영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규제완화, 복지감소, FTA 등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생산양식이다. 야권은 해외투기자본 규제, 금산분리의 원칙 등을 논하면서 함께 금융자본 지배구조에 대한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화 전략에 의해 양산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법이나 비정규직법을 다시 손볼 수도 있다. 이렇게 함께 논의하고 대응한다면 반신자유주의가 최대 강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길을 함께 걷게 되는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말한 대로 민주당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의지를 가졌다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민주노동당(또는 진보통합당)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민주당과 연대할 수 있다. 3당 공동정부가 정책연합을 실현하여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서민복지 실현에 힘쓴다면, 국민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셋째, 3당은 평화협정 체결과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을 합의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반대할 리 없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반대할 리도 없다. 3당 공동정부가 평화협정 체결과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을 적극 추진한다면,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돌파구를 열어놓게 될 것이며, 2012년 이후 한반도 정세는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반북성향을 지닌 진보신당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건설된 진보통합당이 참여한 공동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려는 경우 진보통합당 안에서 심각한 진통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진보통합당 안에서 발생할 심각한 진통을 민주노동당이 예상한다면, 진보통합당 건설과정에서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3당이 공동정부를 세우면 위에서 언급한 정책연합이 실현될 수 있지만, 민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경우 정책연합은 실현되지 못한다. 내년에 야3당이 공동집권전략 합의에 실패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여 단독으로 집권한다면, 이 땅의 정치현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낡은 틀로 퇴행하고 말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야3당 정책연합에 기초한 공동집권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하는 까닭은, 민주당 단독집권으로 생겨날 정치적 퇴행을 저지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진보적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정치적 발전을 이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12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