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7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1동

진실의 말팔매 <1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조선일보> 2011224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유학하였다는 김 아무개라는 사람이 영상물(DVD) 500개를 제작하였는데, 북측을 드나드는 조선족에게 부탁하여 20106월 그 영상물을 북측에 밀반입시켰다고 한다. 보나마나 그 영상물은 북측을 교란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추악한 선전물이다. 보도기사에서 그는 "평양에 하나 뿐인 피자 레스토랑은 북한 특권층만 이용하는 문화봉쇄의 상징"이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북측 인민들에게) 문화적인 방식으로 알리고 싶어서" '모두를 위한 피자'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만일 평양시민들이 그런 비방중상 망언을 들으면, 분노하기 전에 어이 없어 허탈감을 느낄지 모른다. 왜 분노가 아니라 허탈감일까? 북측에 있지도 않은 '특권층''피자 레스토랑'을 독점적으로 이용한다는 소리는 너무도 역겨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대북 혐오감이 극에 이르러 정신착란을 일으킨 중증환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역겨운 거짓말을 영상물로 제작하여 북측에 밀반입시킬 수 있을까!

정신착란으로 토해낸 듯한 역겨운 거짓말은 대꾸할 가치도 없으니, 평양시민들이 즐기는 '이딸리아 료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2008628<조선신보> 평양발 기사는 평양시 창광거리 련화동에 있는 이딸리아 요리 전문식당 '별무리 차집'(북측에서는 사이시옷이 쓰이지 않으므로 찻집으로 발음함)에 대해 보도하였다. 그 식당을 왜 차집으로 부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까페(cafe)라는 외래어를 피해 우리말을 살려 쓰려다보니 차집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 이름이 정겨운 '별무리 차집'2006년에 문을 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삐쨔(pizza)나 빠스따(pasta)는 세계 각국에 퍼져나간 이딸리아 요리다. 남측에서는 이탈리아, 피자, 파스타라고 각각 발음하는데, 그런 발음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빠스따를 파스타로 발음하는 것은 미국식 발음으로 생각되지만, 미국에서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이들리라고 발음하며, 피자가 아니라 핏쨔라고 발음한다. 이탈리아, 피자라고 발음하는 것은, 유래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혼란이다. 미국에게 사상문화적으로도 예속된 사회에서는 외래어마저도 미국식을 추종하여 발음하거나 또는 정체불명의 발음혼란에 빠져 있으니, 어찌 개탄할 노릇이 아닌가. 어떤 나라에서 쓰이는 고유명사는 그 나라 사람들이 읽는 대로 발음하고 적는 것이 옳은데, 이딸리아, 삐쨔, 빠스따라고 발음하는 것이 원음에 아주 가까운 발음이다.

그런데 2009314<조선신보>는 평양발 기사에서 "본격적인 이딸리아 료리 전문식당"200812월에 평양시 광복거리에 개업하여 "련일 시민들로 흥성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200812월에 개업한 이딸리아 요리 전문식당의 이름은 무엇일까? 식당 이름은 따로 없고, 이딸리아 료리 전문식당이 그 식당의 이름이다. 이딸리아 요리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식당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 식당이 그런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평양에 이딸리아 요리 전문식당이 문을 열기 전에도 평양에 있는 여러 식당들에서 오래 전부터 삐쨔나 빠스따를 봉사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딸리아 요리 몇 종류를 조선요리들 속에 끼워넣고 봉사하였으니 전문성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북측에서는 조선요리에 비해 외국요리를 그닥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이딸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특별한 식당을 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데 <조선중앙통신> 200942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 인민들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료리들을 맛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딸리아 료리를 전문으로 봉사하는 식당을 꾸리도록 해주시였다"고 한다. 북측 인민들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요리들을 맛보게 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12년 구상'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요리들을 북측 인민들이 맛볼 수 있도록 외국요리 전문식당을 건설하도록 조치할 때, 왜 프랑스 요리가 아니라 이딸리아 요리를 선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프랑스 요리가 귀족적인데 비해 이딸리아 요리는 대중적(인민적)이어서 그렇게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12년 구상'에 따라, 이딸리아 요리 전문식당 건설사업이 추진되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북측에는 이딸리아 요리에 정통한 전문요리사가 없어서 시행착오만 되풀이하였다. 그런 형편에 대해 보고를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5월 북측 요리사들을 삐쨔와 빠스따의 본고장들인 나뽈리와 로마에 보내 요리실습을 받고 오도록 배려하였고, 북측 정부당국은 이딸리아 요리에 쓰이는 각종 식재료를 이딸리아 원산지에서 직수입하여 식당에 보내주는 공급체계를 세웠다. 이딸리아 '정통요리'의 고유한 맛은 그렇게 하여 재현될 수 있었다.

그 전문식당의 차림표에 적혀있는 삐쨔 종류를 보면, 삐쨔 꼰 쌀라다(pizza con salada), 삐쨔 멜란자네 주끼네(pizza melanzane zucchine), 삐쨔 꼰 마리나라(pizza con marinara), 삐쨔 알 프르띠디마레(pizza al fruttidimare), 삐쟈 꼰 뻬뻬로니(pizza con peperoni), 삐쨔 깔조네(pizza calzone), 삐쨔 나뽈리(pizza napoli) 등이다. 이딸리아 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떤 맛이 나는 삐쨔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정통삐쨔들이 즐비하다. 삐쨔가 그러하니, 빠스따는 또 얼마나 이딸리아식 고유의 맛을 담은 것들인지 여기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평양시민들이 조선요리를 즐겨 먹다가 가끔 이딸리아 정통삐쨔를 맛본다면, 서울시민들은 미국식 변형피자를 아주 즐겨 먹는다. 특히 남측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미국식 피자맛에 중독된 나머지 우리 전통음식을 기피하는 부작용도 생긴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8727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중고생 가운데 피자, 햄버거 같은 미국식 간식을 자주 먹는 사람의 비율은 70%에 이르렀다.

남측 국민들에게 미국식 변형피자를 대량판매하는 것은 미국의 거대한 요식업 재벌들인 '도미노 피자(Domino's Pizza)', '피자 헛(Pizza Hut)', '파파 존스(Papa John's)'. '도미노 피자' 매장 345, '피자 헛' 매장 340, '파파 존스' 매장 51개가 남측 각지에 퍼져 있다. 특히 '피자 헛'은 세계 최대의 미국 요식업 재벌 '! 브랜즈(Yum! Brands)'의 자회사다. 세계 100개 나라에 34,000개 식당을 차려놓은 요식업 재벌 '! 브랜즈'2010년도 총매상은 110억 달러다.

평양시민들은 삐쨔를 먹으면서 그것이 이딸리아 정통삐쨔인 것을 알지만, 서울시민들은 미국의 요식업 재벌들이 제멋대로 변형시킨 피자를 먹으면서도 자신들이 이상한 피자를 먹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평양시민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사는 덕으로 정통삐쨔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서울시민들은 각자 지불능력으로 변형피자를 사먹는다는 착각에 빠진다. 서울시민들은 미국식 변형피자를 사먹는 순간, 자기들이 미국의 요식업 재벌들이 장악한 거대한 피자시장에 갇혀버린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지와 착각은 '노예의 덕'이다.

앞으로 6.15 민족공동행사가 재개되면, 이전처럼 남측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북할 텐데, 평양에 간 김에 사회주의 급양봉사망에서 공급하는 이딸리아 정통삐쨔 한 번 맛보는 건 어떨까? 이딸리아 전문 료리식당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1동에 있는데, 전화번호는 02-721-2768이다. (201122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