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공동전선
열세한 정치세력이 우세한 정적과 맞서 싸워 이기는 방도는 한 가지 뿐이다. 그 방도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흩어져 있는 힘을 모으는 역량결집이다. 열세한 정치세력이 흩어져 있는 힘을 결집시킬 때 우세한 정적과 맞서 싸우게 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열세한 정치세력들이 우세한 정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기들의 분산된 힘을 결집하는 것이 정치연합이다. 정치노선은 서로 다르지만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정치세력들이 공동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들의 역량을 전선으로 결집시키는 정치연합, 바로 이것을 공동전선이라 한다.
시대 변천과 정세 변화에 따라 전선의 이름은 통일전선, 협동전선, 연합전선, 공동전선 등으로 바뀌었는데, 우리식 변혁담론에서는 공동전선이라는 이름을 쓴다. 전선의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전선을 구축하는 방도와 전선이 포괄하는 범위도 내외변혁정세, 사회계급관계, 정치세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되었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논하는 공동전선이란 당연히 민주주의변혁론에서 성립되는 개념이다. 주목하는 것은, 우리식 변혁담론이 제기하는 공동전선 구축이 민주주의변혁의 일개 전술이 아니라 변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공동전선 구축이 민주주의변혁의 전략이라는 명제는 진리를 내포한다. 그 진리는 국면전환을 위해 일시적으로 공동전선을 구축하였다가 국면이 유리하게 바뀌면 각자 흩어지는 일시적 전술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그 전선에서 싸우는 전략을 밝혀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공동전선 구축은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중요한 전략과업인 것이다. 분산되고 열세한 정치역량들이 결집할 때, 이해관계에 따라 결집하면 전술과업이 되고, 공동목적에 따라 결집하면 전략과업이 된다.
1987년형 민주화운동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민주주의변혁담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동전선 개념을 분산된 정치역량을 결집시켜 우파정권에 맞서 싸우는 전술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른바 반이명박전선이란 개념이 그런 수준의 개념이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의 견지에서 공동전선 개념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반이명박전선을 뛰어넘는 더 공고하고 강력한 전선, 말하자면 민주주의변혁의 공동전선을 논하게 된다.
민주주의변혁의 공동전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전선은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기 위해 구축하는 공동전선이다.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말은, 현 시기 우리가 구축할 공동전선이 공동집권전선이라는 뜻이며, 공동집권 이후에도 그 전선에서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간다는 뜻이다.
공동전선을 공동집권전선이 아니라 반이명박전선으로 좁혀서 생각하는 것은, 공동전선전략을 국면전환전술로 격하시키는 착오다. 공동전선을 국면전환을 위한 일시적 선거연합전술 정도로 생각하는 낡은 관점에서 벗어나야 하며, 민주주의변혁의 공동전선전략에 배치되는 진보정당 독자생존론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무엇을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하는가?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파트너스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자우편(email)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야당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민주노동당만이 진보정당 영상(27.2%)과 복지중시 영상(25.0%)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중도좌파정당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식 변혁담론이 유일한 중도좌파정당을 중심으로 공동전선전략을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에 놓고 현 시기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을 바라보면, 한 쪽에 중도우파정당들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있고, 다른 쪽에 진보신당이 있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공동전선전략을 논할 때 중시하는 세 가지 요체는 정치노선, 이해관계, 공동목적이다.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은 정치노선이 서로 다르지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똑같기 때문에 공동목적을 갖게 된다.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있기 때문에, 정치노선이 서로 달라도 공동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지형에서 우리식 변혁담론이 제기하는 논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정치노선이 서로 다른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이 정치역량을 결집하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만일 정치노선이 같은 중도좌파정당들끼리 정치역량을 결집하는 경우는 공동전선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 통합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공동전선 구축과 통합정당 건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을 민주노동당과 똑같은 중도좌파정당이라고 인정하는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통합하면서, 그 두 당 이외의 진보정치세력들까지 폭넓게 결집하는 진보대통합당 건설문제가 제기되는데, 이 문제는 공동전선론이 아니라 당건설론에서 제기되는 것이므로 별도의 글에서 논할 필요가 있다.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은 단일정당으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전선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이른바 '복지동맹'의 기치 아래 5개 야당을 단일정당으로 통합시키자는 이른바 '빅 텐트론'도 제기되었고, '민주진보세력'이 총결집하는 야권단일정당 건설론도 제기되었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미국식 양당체제를 고착화하여 중도좌파정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을 훼손하는 치명적 오류다.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연합정치를 실현하면 좌파공동전선이 구축될 것이고,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연합정치를 실현하면 우파공동전선이 구축될 것이다. 좌파정당은 없고 중도좌파정당만 있는 우리 사회에서 구축되는 공동전선은 좌파공동전선으로는 될 수 없고 당연히 중도파공동전선으로 된다.
둘째,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공동집권과 공동정부수립이라는 공동목적을 갖는다. 명백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중도파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목적은, 우파정부와 우파정당을 반대하는 단순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하여 공동정부를 세우기 위함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하여 세우는 중도파공동정부를 중도연립정부라 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제4시나리오는 그러한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는 공동집권 시나리오다.
제4시나리오를 향한 민심의 흐름
여론조사기관 우리리서치가 2010년 10월 7일 사회디자인연구소 의뢰를 받아 남측 전역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전화자동응답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한겨레가 2010년 10월 10일에 보도하였다. 놀라운 것은, 만일 야권단일정당이 창당되면 응답자의 64.6%가 지지하겠다고 답하였고, 5.6%는 당원으로 가입하겠다고 답하였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변혁의 공동전선전략을 알지 못하는 여론조사기관이나 응답자들이 야권단일정당 건설이라는 용어를 써서 자기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였지만, 그 여론조사결과는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공동전선 구축을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하는지를 말해 준다. 그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아래와 같은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여당후보와 야당후보가 대선에서 1 대 1로 맞설 경우, 야당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52.5%였고, 여당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1.0%였다. 또한 총선에서 1 대 1로 맞설 경우, 야당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55.3%였고, 여당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29.1%였다.
둘째,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기 위한 조건을 묻는 설문에서는 "모든 야당이 하나로 통합하여 단일정당을 만들고, 단일정당에서 후보를 내는 방법"을 지지한 응답비율이 35.1%로 나왔고, "모든 야당이 공동정부 수립을 약속하고, 최종적으로 후보단일화를 하는 방법"을 지지한 응답비율이 23.9%로 나왔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통합하여 중도우파 단일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이 위의 여론조사 결과에 나온 표현대로 "공동정부 수립을 약속하고, 최종적으로 후보단일화를 하는 방법"은 실현가능성이 있는 대안일 뿐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이다. 위의 여론조사결과가 말해 주는 것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들이 공동정부 수립을 약속하고 후보단일화는 실현하는 경우, 대선 득표율을 30% 이상 끌어올려 당선권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위의 여론조사결과는 민심이 공동전선 구축과 공동정부 수립을 지향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한 민심의 지향을 뒤집어 읽으면,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들이 만일 공동전선 구축에 실패하고 공동정부 수립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심이반으로 대패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나온다.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여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제4시나리오는 공상적 정치소설이 아니라 민심을 반영한 당면과업이며,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몇 가지 선택적 대안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무이한 대안이다.
그 대안은 이런 실험을 이미 시작하였다. 2010년 11월 9일 경상남도 도청 회의실에서 경상남도 민주도정협의회가 출범식을 가졌다. 지역정치권 대표자들, 지역사회단체 대표자들, 전문가들 22명으로 구성된 이 협의회에는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위원장, 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 국민참여당 경남도당위원장 등 야당 대표자 6명이 참여하였고,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 민주민생경남회의 공동대표, 경남장애인인권연맹 상임대표 등이 사회단체 대표로 참여하였으며,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 창원대 사학과 교수, 마산상공회의소 회장, 전 농촌진흥청장, 전 경남여성회장 등이 전문가로 참여하였다. 진보신당 경남도당만 불참하였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민주도정협의회는 지방공동정부라고 할 수 있는데, 제4시나리오에서 말하는 공동정부 수립은 일개 도 차원의 지방공동정부 출범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의의를 갖는다.
1개 중도좌파정당과 3개 중도우파정당들이 공동정부를 수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민주노동당이 2012년 총선에서 득표율을 크게 끌어올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원내 교섭단체도 되지 못한 1개 중도좌파정당이 3개 중도우파정당들과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경우, 공동정부 안에서 '힘의 균형'을 잡지 못해 파행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섯 석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버거운 과업이지만, 공동정부 수립에 필수적이다.
둘째, 민주당이 개혁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지난 시기 민주당은 개혁정당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우파정당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우파정당의 반개혁적 정책에 끌려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국민들이 민주당을 존재감 없는 무능정당으로 무시하는 까닭은 당의 개혁적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개혁파가 복지사회담론을 정면에 제기한 것은, 민주당이 개혁적 정체성을 확립할 중요한 발전계기로 보인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민주당의 개혁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까닭은, 민주주의변혁의 공동전선전략에서 말하는 공동정부가 변혁적 중도좌파정당과 개혁적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새로운 형의 중도파공동정부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형의 중도파공동정부가 민주주의변혁을 위해 장차 어떤 과업을 수행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위하여, 그리고 민심을 반영하여 공동정부 수립문제를 제기하여야 할 정당은 중도좌파정당이다. 그런데 공동정부 수립문제를 먼저 제기한 쪽은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당 건설문제에 열중하다가 의제선점효과를 잃어버리고 있다. 누구나 예감하는 것처럼, 미래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기회는 여러 차례 주어지지 않는다. 그 기회는 2012년에 한 차례만 주어질 것이고, 준비기간은 2011년에 한정되었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10년 11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