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나리오에 우리의 요구와 갈망이 담겼으나
직설적인 물음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하여 중도좌파정부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중도좌파정부를 세워야, 그 정부가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중도좌파정부를 세우는 문제야말로 낡고 썩은 세상을 바꿀 민주주의변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고, 최대 문제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최고, 최대 문제로 떠오르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당연히 중도좌파정당의 집권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중도좌파정당의 집권 시나리오는 앞서 발표한 두 개의 글에서 논한 제1시나리오, 제2시나리오와 구별되는 제3시나리오다.
우파 일색의 이 사회에서 중도좌파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땀흘리는 활동가들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절실한 요구와 갈망이 제3시나리오에 담겨진다는 점에서, 그 시나리오는 중도좌파 진보정치를 요구하고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미래전망이며 쟁취목표인 것이다.
만일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하여 중도좌파정부를 세우는 제3시나리오가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대미예속성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게 될 것이고, 중요산업 국유화 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변혁이 추진될 것이고, 6.15 공동선언에 의거한 통일회담이 급진전되어 평화통일 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망을 읽어보면, 중도좌파정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이 한꺼번에 실현되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제3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현 시기 우리 사회에서 제3시나리오를 뛰어넘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것은 공상적 시나리오일 것이다.
문제는 제3시나리오가 얼마나 실현가능성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제3시나리오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 해도 현실과 동떨어져 실현가능성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탁상공론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정치현실을 직시하면, 제3시나리오에 들어있는 중도좌파정당 집권과 중도좌파정부 수립의 전망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인들만 돋보인다. 다섯 가지 부정적 요인들을 열거하면, 우파정당 집권의 장기화, 한미동맹체제 유지의 장기화, '국가보안법' 존치의 장기화, 중도우파정부 10년의 좌절, 중도좌파정당의 발전추세 정체다. 더 이상 설명이 요구되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객관적 요인들이다.
우리 사회의 유일한 중도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이 다섯 가지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그 요인들을 제거하려고 줄곧 힘써 왔지만, 민주노동당의 그런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요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확대, 장성되었으며, 이 땅의 정치정세를 우경화의 늪으로 침잠시켜 왔다. 우경화의 늪에 가로막힌 민주노동당은 집권의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중도좌파정부 수립을 향한 희망도 차츰 희미해졌다. 현재로서는 민주노동당이 그 요인들을 제거할 실질적 방략을 내놓기 힘들다.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가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을 맞은 기회에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하여 2010년 1월 19일 남측 전역에서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여론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는 시기를 묻는 설문에 대해, 3년 후(2012년 대선)라고 답한 응답자는 6.1%, 8년 후(2017년 대선)라고 답한 응답자는 13.6%, 13년 후(2022년 대선)라고 답한 응답자는 11.0%, 18년 이상(2027년 이후)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8.0%, 아예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1.9%였고,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29.4%였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수 있는 시기를 묻는 설문에 대해 18년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3.4%, 아예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24.2%였다. 명백하게도,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는 여론 흐름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로 기울어졌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이 미치지 않는 어떤 미지의 원인이 기적을 일으켜 중도좌파정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기적론은 과학적 인식에서 배제되므로 기적적 선거 승리의 가능성은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검토대상이 아니다.
중도좌파정당의 집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어느 한 정당의 지속적 발전에 제동이 걸렸다는 식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변혁이 실현될 가능성 여부를 논하는 사회역사발전의 전망문제다. 중도좌파정당의 집권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우리의 희망 속에만 머문다면, 민주주의변혁을 위해 청춘과 명예와 열정을 기울여온 이 땅의 유명무명 활동가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제3시나리오와 민주항쟁론은 결부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40대 중반 이상 연령층에 속하는 정치활동가들은 각자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1980년대에 일어났던 두 차례 민주항쟁을 겪으며 의식화되었다. 민주항쟁 경험은 낡고 썩은 세상을 뒤집어 새롭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려는 큰 꿈을 꾸어온 그들에게 정신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원천이었다. 그들이 민주항쟁론을 불변의 공식처럼 여겨온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 땅에서 또 다시 민주항쟁이 일어나,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하고 중도좌파정부를 세우는 제3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그 불변의 공식에서 산출된 것이다.
물론 우리식 변혁담론에서는 민주항쟁론이 부정되지 않는다. 아니,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된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민주항쟁론의 이론적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날 현실적 가능성 여부다. 민주항쟁론은 정세와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들어맞는 '만능이론'이 아니다. 그런 '만능의 보검'은 신화나 전설 속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차례 민주항쟁이 일어난 1980년대로부터 30년이 지나 내외정세가 전면적으로 뒤바뀐 오늘,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민주항쟁이 일어날까? 세 가지 논점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세계시장이 구조적이고 전반적인 파산위기에 몰린 오늘, 세계 각국의 자본과 정권은 그 파산위기가 촉발한 엄청난 피해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떠넘겼고, 그로써 세계 각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최악의 대량실업, 비정규직 폭증, 사회보장 퇴조, 생활물가 압박, 실질임금 하락 등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자본-반정부 저항의지가 분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라마다 저항의지가 분출되는 강도와 양상은 서로 다른데, 특히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스페인, 벨기에, 아이슬란드 같은 유럽 나라들에서는 노동계급의 총파업 투쟁과 근로대중의 대규모 시위투쟁이 최근 몇 해 동안 여러 차례 폭발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총파업 투쟁이나 대규모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겪는 고통 강도를 비교한다면, 1997년 말 최악의 금융위기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이후 우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유럽 각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보다 훨씬 더 혹심한 고통을 겪어왔는 데도 이 땅에서는 13년 동안 집단적 저항의지가 분출되지 않았다.
둘째, 2008년 초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촛불집회는 1980년대에 일어났던 민주항쟁이 아니다. 서울광장을 군중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는 한 때 엄청나게 많은 군중이 참가하여 이명박 정부를 위협하였지만, 전반적으로 반자본-반정부 저항의지가 분출되지 않는 대중문화행사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막판에 가서 일부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를 꺼내기는 했으나 이미 때는 지나버렸다.
우리식 변혁담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두고 '성숙한 시민의식'이니 '참여민주주의'니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문제의 핵심이 흐려졌지만, '촛불'은 반자본-반정부 저항의지가 분출되는 민주항쟁으로 전화, 발전되지 못하고 꺼졌다. 만일 야외문화축전 같은 맥빠진 대중집회나 계속한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라면, 그 시기를 전후하여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봉기 수준의 총파업 투쟁과 대규모 시위투쟁은 '폭도의 난동'이라는 말인가! 성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총파업 투쟁과 대규모 시위투쟁이야말로 낡고 썩은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 고통스럽고 굴종적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모든 진보적 인류의 정당한 의식분출이다.
6월 민주항쟁과 비교하면,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두드러진 차이가 보인다. 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대표체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각계각층 대중이 자발적으로 인터넷 여론을 형성한 것은 성공적이었지만, 산발적인 온라인 소통이 되레 원심력으로 작용하면서 행동통일을 요구하는 민주항쟁은 불발로 끝나 버렸다. 이것은 온라인 소통시대로 진입한 사회환경이 민주항쟁 가능성을 외곽에서 차단하였음을 말해준다.
셋째, 6.25 전쟁 이후 네 차례 민주항쟁의 경험은 민주항쟁과 중도좌파정부 수립의 직접적 연관성을 말해 주지 않는다. 1960년 4월에 일어난 4월 민주항쟁, 1979년 10월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19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민주항쟁, 1987년 6월에 일어난 6월 민주항쟁은 우파정부를 중도우파정부로 교체하지 못한 채, 우파정부의 '간판'이나 바꿔 달아놓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귀결 원인을 분석하면 두 가지로 압축되는 데, 첫째는 미국의 은밀하고 집요한 내정간섭이 민주적 정권교체를 차단한 것이고, 둘째는 당시 중도우파정당의 집권능력이 너무 미약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이 땅에서 다섯 번째 민주항쟁이 설혹 일어난다 해도, 미국이 또 다시 내정간섭에 덤벼들 것이므로, 중도좌파정부가 세워질 진보의 가능성보다는 우파정부나 중도우파정부로 맴돌 가능성이 확실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다섯 번째 민주항쟁과 제3시나리오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과 눈높이에서 대안 찾아야
위에서 논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제3시나리오는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논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나, 민주항쟁이 일어나 그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사실상 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시기 네 차례 민주항쟁이 미국의 내정간섭과 중도우파정당의 무기력증에 가로막혀 민주적 정권교체에 성공하지 못한 역사적 경험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민주항쟁으로 위기에 몰린 우파정당이 몰락하지 않도록 위기국면을 교묘히 조종한 미국의 내정간섭 프로그램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민주항쟁으로 제3시나리오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우리의 발을 묶어버리므로 일찌감치 뛰어넘는 것이 상책이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중도좌파정당의 집권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사고의 유연성이란, 제1시나리오와 제2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제4시나리오를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한다는 뜻이다.
제4시나리오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정당이 자기의 현재 능력으로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시나리오이면서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와 지향에 부합하는 대안적 시나리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출구전략'을 요구하는 진보정치가 활로를 찾아야 할 오늘, 제4시나리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2010년 11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