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2월 1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남북관계가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된다
2. 트럼프의 이상한 침묵, 문재인-펜스 회담
3.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착오와 헛된 꿈
4. 백악관의 대조선정책은 어떻게 바뀌었나?
5. 불변의 전략 추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1. 남북관계가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된다
불꽃이 타올랐다. 이 강산을 화해의 열기로 녹이며 평화의 빛을 안겨주는 불꽃, 북측 고위급 대표단의 역사적인 방문이 지펴올린 소중한 불꽃이다. 이 불꽃은 민족의 통일열풍을 활화산처럼 불러일으키며 남북정상회담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 아직은 이렇게 문학적 수사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지만, 장엄한 통일시대의 개막은 꿈결 같은 상상이 아니라 70년 통일국가건설운동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 민족은 가슴 벅찬 격변기를 맞이한 것이다.
바로 그 격변기에 두 가지 역사적인 대사변이 일정에 올라있다. 70년 동안 고통과 치욕을 강요해온 분단체제 한 복판에 붕괴의 파열구를 뚫어놓을 역사적인 대사변은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다. (회담 또는 협상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적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회담 또는 협상이므로 담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 열릴 것이라는 정세전망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하려는 것이 이 글을 집필한 목적이다.
서술의 출발점은, 우리 민족에게 감동과 흥분을 안겨주고, 전 세계적으로 놀라움과 찬탄을 불러일으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특사파견이다. 2018년 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분단선을 넘어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였다.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특사의 대화내용을 읽어보면, 친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이른 시일 안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1>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해지자, 남측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와 관련하여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방해하고 반대해온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가로막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힘든 것이다.
그런 우려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의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가 또는 불발되는가 하는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백악관이 반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비극적 현실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얽혀있는 한미동맹의 은폐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할 것인가 아니면 묵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의 반대에 가로막혀 평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될 것이 확실한데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를 평양에 초청하였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를 평양에 초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하지 못하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그를 평양에 초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초청을 받고,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화답하였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여건을 만들어놓고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여건을 만들어놓은 것일까?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으로 끌어넣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것이 바로 그 여건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한 것이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성사시킬 여건으로 되는 것일까?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하였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조미담판밖에 없는데,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할 수 없고, 묵인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백악관이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는데도, 조선이 백악관과 담판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묵인하는 조건에서만 조미담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다면, 남북정상회담이나 조미담판은 거론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 성사될 전망이 열린 것이다.
2. 트럼프의 이상한 침묵, 문재인-펜스 회담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는 의사를 가졌는가 또는 갖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된다. 조선과 담판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틀어쥐고 있으므로, 그가 그 중대사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현직 고위관리들 또는 전직 고위관리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언론매체에서 조미관계에 관한 이러저러한 발언을 늘어놓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종결정권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관심의 초점을 집중시켜야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는 의사를 가졌는지 또는 갖지 않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백악관 측근들이 제발 좀 그만두라고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위터를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늘어놓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침묵하였다.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으로 전 세계가 깜짝 놀라며 술렁이었는데, 트위터 수다쟁이로 소문난 트럼프 대통령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전개된 정황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침묵할 수 없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에 관한 내부논의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 논의의 끝자락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린 것도 분명하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섣부른 소리를 꺼내놓지 못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특사를 남측에 파견한 것과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내린 중요한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결정이 무엇인지를 외부에 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마익 펜스(Michael R. Pence) 부통령이다.
얼마 전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펜스 부통령의 행동거지를 보면, 그는 미국 선수단을 이끌고 남측에 들어가서 남북관계개선을 방해하고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망언과 망동을 저지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런 망언과 망동에 시선을 빼앗기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과 관련하여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사진 2>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중대한 결정을 용케 알아낸 재주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 및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자주 발표하는 유명언론인 조쉬 로긴(Josh Rogin)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2018년 2월 11일부에 실린 자신의 글 ‘미국은 북조선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에서 펜스 부통령에게서 들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펜스 부통령과 조쉬 로긴이 단독대담을 진행했는데, 그 자리에서 펜스 부통령은 2018년 2월 8일 자신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할 때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개선을 계속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조쉬 로긴은 관여(engagement)라는 미국식 용어를 썼지만, 그것은 남북관계개선이라는 우리식 용어와 같은 뜻이다.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는 망언과 망동을 저지르며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었던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회담에서는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펜스 부통령이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그의 개인견해를 밝힌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을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을 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쉬 로긴은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서 펜스 부통령이 방한체류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매일 협의하였다”고 썼는데, 이것은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펜스 부통령의 회담발언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책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발언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백악관은 남북정상회담을 묵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악관이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3.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착오와 헛된 꿈
2018년 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을 들렀을 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어느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고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답변하였다. 이 즉석답변은 그가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는데, 그 제의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2018년 2월 15일 남측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측 국민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그처럼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것일까? 이 의문에 답을 얻으려면,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에 들렀을 때, 취재진에게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발언에서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조미회담 개최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조미회담이 성사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조미회담이 성사될 조짐이 보이지 않으므로, 남북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싶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따르면,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시킬 남북정상회담은 조미회담이 성사된 이후에 개최될 수 있으며, 만일 조미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기 전에 백악관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민망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사진 3>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과거경험이 있다. 2000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조미고위급회담 추진문제를 협의하는 조미예비회담이 진행되었고, 3월 9일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를 협의하는 남북특사회담이 진행되었다. 조미예비회담과 남북특사회담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된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이 경험은 조미관계개선과 남북관계개선이 동시에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과거경험에 비춰보면, 조미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그 양자가 동시에 추진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착오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판단착오를 버리고, 백악관의 눈치를 너무 살피지 말고, 이른 시일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의지가 너무 박약하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통일의지가 너무 박약하다는 표현보다 그에게 통일의지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일절 꺼내지 않는 것만 봐도, 그에게 통일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하는 문제는 통일문제가 아니라 평화문제다. 그의 소원은 조선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실현되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2월 17일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에 들렀을 때, 취재진에게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도,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도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가 소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평화적인 분단체제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면, 평화적인 분단체제는 언제가도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꿈이다. 왜냐하면,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건설되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분단체제 아래서는 평화체제가 절대로 구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 근본원인은 분단체제가 유지되는데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었기 때문에 평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는 오직 자주통일국가가 건설될 때만 구축될 수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교체되면, 평화적인 분단체제가 세워지는 게 아니라 자주적인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적인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조선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나 평화로운 분단체제를 소원하는 헛된 꿈을 버리고,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 지상과업에 관심과 노력을 돌려야 할 것이다.
4. 백악관의 대조선정책은 어떻게 바뀌었나?
우리 민족 전체가 기대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조미예비회담이 열려야 하는데, 조미예비회담이 열릴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사실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조선정책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2018년 2월 11일부에 실린 조쉬 로긴의 기사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조쉬 로긴이 펜스 부통령에게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조미회담이 열린다는 뜻이므로, 그 질문은 백악관이 조선과 회담하기 위해 조선에게 무슨 조건을 요구하는가를 물은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질문을 받은 펜스 부통령의 답변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그는 “나는 모른다. 그것이 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답변하였다.
조선과 회담하기 위해 백악관이 조선에게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펜스 부통령의 답변은 무슨 뜻인가? 백악관이 조선에게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선과 회담해야 한다는 그의 답변은 또 무슨 뜻인가? <사진 4>
단적으로 말하면, 펜스 부통령의 답변은 조선에게 이른바 조건 없는 예비회담(preliminary talks without precondition)을 제의하려는 백악관의 속내를 반영한 것이다. 백악관이 조선에게 조건 없는 예비회담을 제의한다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조선정책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쉬 로긴은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첫 문장에서 “지난 주간 남한에서 미국과 북조선 사이에 서로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막 뒤에서는 워싱턴과 평양이 조건 없이 직접 대화를 시작할 새로운 외교의 개막을 향한 실제적인 진전(real progress)이 이루어졌다”고 썼던 것이다. 또한 미국의 <블룸벅 뉴스>도 위에 인용한 조쉬 로긴의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대해 보도하면서, 백악관이 조선과 회담하려는 “정책변동(policy shift)”을 보여주었다고 논평하였던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악관은 한심한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조선이 비핵화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조선과 회담할 수 있다느니, 비핵화를 논의하는 회담이 아니라면 조선과 회담할 필요가 없다느니, 조선을 비핵화하기 위한 ‘최대압박공세’가 효과를 보고 있다느니, 조선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대화를 제의해오면 응해주겠다느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줄곧 헛발질만 하다가, 조미핵대결에서 패하고 나서 정신을 좀 차렸는지, 이제야 조건 없는 예비회담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하였으므로, 백악관이 대조선정책을 그렇게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18년 2월 13일 헤더 노어트(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 출입기자들에게 “우리가 (조선과) 논의하고 싶은 의제를 정하기 위해, 그 의제는 비핵화가 될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에 관한 예비대화(preliminary chat)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도 역시 조건 없는 예비회담에 대해 언급한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예비회담이란 본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행되는 법이다. 백악관이 그처럼 본회담과 예비회담을 구분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하려는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은 자칫 결렬되기 쉬운 조미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사표명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발언에서 노어트 대변인은 앞으로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는 경우 조선의 비핵화 문제가 회담의제로 정해질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은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중얼대는 횡설수설이다. 조선은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삼으려는 회담은 무조건 거부하겠다고 이미 여러 차례 언명하였으며, 백악관도 조미회담에서 자기들이 비핵화라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순간 회담이 즉각 결렬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펜스 부통령과 노어트 대변인은 조미예비회담에 대해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각각 언급하였으나, 백악관이 조미예비회담을 언제쯤 조선에게 공식적으로 제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조미예비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백악관이 시간을 질질 끌만한 처지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백악관이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여 최악의 곤경에 빠졌으니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 2018년 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면서도, 막 뒤에서는 이란에게 세 차례나 협상을 제의하였는데, 이란은 미국의 협상제의를 모조리 거부하였다고 한다. 핵무기를 갖지 못한 이란에게도 그런 수모를 당하며 협상을 애걸해야 하는 미국이 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에게 협상을 애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런 사실은, 최악의 곤경에 빠졌으면서도 제국의 체면과 위신을 유지해보려고 거드름을 피우며 최대압박공세니 뭐니 하는 허장성세에 매달리는 백악관의 정치연극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면, 백악관이 조선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백악관이 조선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하더라도, 조선이 그 제의를 받아줄지 아니면 이전처럼 또 다시 외면해버릴지 예견하기는 힘들다. 조미예비회담 개최문제는 백악관이 성의 있는 태도로 예비회담을 제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진정성 문제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5. 불변의 전략 추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과 미국이 예비회담을 거쳐 본회담(담판)으로 나아가는 씨나리오는 이미 18년 전에 실현된 바 있다. 2000년 3월 8일부터 15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미차관급회담이 진행되었고, 7월 28일에는 타이 방콕에서 조미외무장관회담이 진행되었다. 백남순 당시 조선 외무상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그 회담에 참석하였다. 조미외무장관회담의 결정에 따라 2000년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미차관급회담이 진행되었으며, 2000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명을 받은 조명록 특사가 백악관을 방문하였다.
당시 조선과 미국은 예비회담에서 무엇을 합의하였던가? 2000년 10월 12일 평양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된 조미공동코뮈니께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으로 미사일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2000년 당시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조선은 “모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미사일발사 유예조치를 백악관에 통보하였고, 그런 유예조치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대조선관계개선을 추진하기로 공약하였다.
조선이 미사일발사 유예조치를 발표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이 대조선관계개선을 공약하였던 2000년 10월 12일에서 11일이 지난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는데, 바로 여기까지가 조미예비회담 진행과정이었다. <사진 5>
조미본회담(조미담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12월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을 진행하려는 것이었으나, 워싱턴의 반대파가 그의 평양방문을 가로막는 바람에 조미정상회담은 불발되었다. 만일 빌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조선은 미사일발사를 유예하는 게 아니라 중지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기로 합의하였을 것이다.
위에 서술한 2000년 조미회담경험을 살펴보면, 오늘 조미예비회담과 조미본회담이 열리는 경우, 어떤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지 예견할 수 있다.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고, 백악관은 대조선제재조치를 최대로 확대해놓은 조건에서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면,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유예한다는 것을 백악관에 통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대조선제재조치를 전면적으로 해제하고 대조선관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미예비회담 합의에 기초하여 조미본회담이 성사되면,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중지하는 포괄적 핵동결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주한미국군 완전철수를 공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바로 조미담판 씨나리오다.
18년 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에 미국과 담판하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남전략 및 대미전략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른 시일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미국과 담판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대를 이어 계승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변의 전략이다. 올해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에 그 불변의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사진 6>
2018년 2월 13일 댄 코우츠(Daniel R. Coats) 미국 국가정보국장과 마익 팜페오 미국 중앙정보국장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조선이 핵무력을 보유한 목적이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리 해리스(Harry B. Harris Jr.) 미국 태평양사령관도 2018년 2월 14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확보하려는 목적(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이라고 해야 옳다)은 체제를 수호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전에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이제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이 청문회에서 공히 인정한 것처럼, 조선은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도 한반도의 통일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미국과 담판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목적도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대를 이어 계승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변의 목적이다.
누구나 예감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면, 정세변화는 급진전될 것이다. 남북해외 각계각층, 각당각파가 민족통일대축전에 총결집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고 조국통일의지를 고조시킬 것이며, 남과 북이 당국과 민간을 가릴 것 없이 각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70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은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통일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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