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6

배낭 메고 오끼나와와 괌으로 떠나는 북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한호석의 개벽예감](215)
자주시보 2016년 08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아프가니스탄에 전설로 남은 전투헬기조종사 구출작전
2. 어이없게 실패로 끝난 ‘독수리발톱작전’
3. 평양 사동구역에 세워진 청와대 모형건물
4. 정찰총국 특수전부대의 청와대기습점령연습
5. 최전방 3중 철책과 경계망은 의외로 쉽게 뚫린다
6.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의 특수작전배낭


1. 아프가니스탄에 전설로 남은 전투헬기조종사 구출작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1년 10월 7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직전, 내전의 포화가 작열하던 아프가니스탄전선. 그 전선에서 한 편의 전쟁영화 같이 전개된 놀라운 전투경험이 오늘도 전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민민주당이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창건한 때는 1978년이었는데, 당시 소련은 내전을 겪고 있었던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1979년 12월에 파병하였다. 소련군 파병부대는 115,000명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군은 무자헤딘(Mujahedin) 반란군을 진압하는 군사작전을 벌였으나, 11년 동안 작전실패를 거듭하며 14,453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1989년 2월에 철수하고 말았다.

▲ <사진 1> 1979년 12월 소련은 무자헤딘 반란군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은 11년 동안 작전실패를 거듭하며 14,453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1989년 2월에 철수하였다. 위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소련군 장갑차들이 국경하천의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소련군이 떠난 뒤로 무자헤딘 반란군의 공세는 더욱 심해졌고,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넘겨준 무장장비들이 그 나라 군대에게 있었지만, 소련군이 사용하던 무장장비들을 사용할 줄 아는 훈련된 전투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특히 산악지형이 발달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무장장비로 사용되는 전투헬기를 모는 조종사가 없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지만 소련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의 붕괴가 임박한 상황에서 그 나라에 군사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없었다. <사진 1>

그런데 그처럼 군사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프가니스탄공화국에게 선뜻 군사지원의 손길을 내민 동방의 어느 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국제주의 원칙을 견지해오는 조선은 사회주의나라를 지원해줄 때 외교적 손익계산 같은 것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지원해주기로 유명하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직전인 1991년 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군사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도와주기 위해 조선인민군 전투헬기조종사 10명을 급파하였다. 평소에 고강도 전투비행훈련으로 단련된 그들 조종사 10명은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여 소련군이 남겨두고 떠난 전투헬기를 몰고 전선을 누비며 무자헤딘 반란군에게 로켓포 불벼락을 안겼다.

▲ <사진 2> 소련군이 철수하자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의 붕괴는 시간문제로 되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에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남긴 무장장비들을 사용할 줄 아는 훈련된 전투원이 없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헬기는 당시 소련군이 남기고 떠난, 매우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전투헬기 Mi-24인데, 그런 전투헬기들을 모는 조종사가 없어 녹슬고 있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공화국에게 군사지원의 손길을 선뜻 내민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조선은 전투헬기 조종사 10명을 아프가니스탄에 급파하였다. 그들은 소련군이 남기고 떠난 전투헬기를 몰고 전선을 누비며 무자헤딘 반란군에게 로켓포 불벼락을 안겼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조선인민군 조종사가 몰던 전투헬기 한 대가 무자헤딘 반란군 복병들이 난사한 총탄에 맞아 불시착하였고, 부상을 당한 조종사는 무자헤딘 반란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사진 2>

조선에서 금싸라기처럼 아끼는 전투헬기조종사가 부상을 입고 적들에게 포로로 붙잡혔다는 급보를 받은 김일성 주석은 그 조종사를 72시간 안에 무조건 구출해 조국으로 데려오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그 특별명령을 받은 부대가 바로 산악경보저격려단이다. 이 특수전부대는 평소에 고강도 산악전훈련을 단련하고 있었으니, 산악지형이 발달한 아프가니스탄전선에 파병하기에 제격이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산악경보저격려단에서 선발한 2개의 최정예 분대를 아프가니스탄전선에 급파하게 되었다.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의 경우 1개 분대 병력은 12명이므로, 아프가니스탄전선으로 떠나는 산악경보저격려단 파병부대는 24명으로 편성되었다.  

▲ <사진 3> 아프가니스탄전선에서 작전임무를 수행 중이던 조선인민군 조종사가 모는 전투헬기 한 대가 무자헤딘 반란군 복병들이 난사한 총탄에 맞아 불시착하였고, 부상당한 조종사는 그들에게 붙잡혔다. 급보를 받은 김일성 주석은 전투헬기조종사를 72시간 안에 무조건 구출해 조국으로 데려오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산악경보저격려단에서 선발된 2개의 최정예 분대가 아프가니스탄전선으로 떠났다. 산악경보저격려단 전투원 24명은 현지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던 조선인민군 전투헬기조종사들과 힘을 합쳐 무자헤딘 반란군의 은신처를 찾아냈고, 과감한 습격전을 벌인 끝에 은신처에 감금된 전투헬기조종사를 극적으로 구출하였다. 위의 사진은 조선인민군 전연부대 정찰대대 전투원들의 훈련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조선에게 아프가니스탄은 너무 먼 나라였다. 평양에서 카불(Kabul)까지 직선거리로 5,000km다. 더욱이 조선에서는 무자헤딘 반란군이 부상당한 조선인민군 전투헬기조종사를 어디로 끌어갔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72시간 안에 무조건 구출하라는 최고사령관의 특별명령을 받은 산악경보저격려단 전투원 24명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완수하기 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사의 각오를 다지며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사진 3>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산악경보저격려단 전투원 24명은 현지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던 조선인민군 전투헬기조종사들과 힘을 합쳐 험준한 산악지대를 수색하여 마침내 무자헤딘 반란군의 은신처를 찾아냈고, 과감한 습격전을 벌인 끝에 은신처에 감금된 조선인민군 전투헬기조종사를 극적으로 구출하였다. 그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해외파병부대의 인명손실은 없었다. 72시간 만에 완료된 그 극적인 구출작전은 한 편의 전쟁영화를 방불케 하였다. 몇 가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작성되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조선일보> 2001년 11월 1일부 기사가 그 구출작전을 간략하게 보도한 바 있다.

▲ <사진 4> 1979년 11월 4일 분노한 이란민중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그곳에 미국인 52명을 인질로 붙잡아두었다. 미국은 5개월 동안 인질구출작전을 준비하였고, 마침내 1980년 4월 24일 미육군 특수부대 전투원 132명을 이란에 침투시켰다. 위의 사진은 당시 '독수리발톱작전'이라는 작전명칭으로 불린 인질구출작전에 참가한 미육군 특수전부대 델타포스 전투원들이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는 장면이다. 군복이 아니라 현지인과 비슷한 민간복장으로 위장하였다. 미국은 그 날의 인질구출작전에 항공모함 2척, 장거리수송기 7대, 전투헬기 8대, 근접지원공격기 2대 등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어이없게 실패로 끝난 ‘독수리발톱작전’

1979년 1월 16일 이란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으로 페르시아군주제의 마지막 왕조였던 팔라비왕조가 무너졌다. 그런데 정세를 오판한 미국은 이란민중의 적인 팔라비왕조를 옹호하며 지원하는 어리석은 꼴을 보였으니, 이란민중의 반미감정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한 이란민중은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그곳에 미국인 52명을 인질로 붙잡아두었다. 그 사건으로 미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혔다.

다급해진 미국은 52명의 자국민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서둘렀다. 5개월 동안 인질구출작전을 준비해온 미국은 마침내 1980년 4월 24일 미육군 특수전부대들인 델타부대(Delta Force)와 레인저부대(Rangers)에서 각각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32명을 이란에 침투시켰다. 당시 이란에 잠입하여 암약하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특수활동사단(Special Activities Division) 소속 전투원들이 미육군 특수전부대의 인질구출작전을 측면에서 지원해주게 되었다. 인질구출작전명칭은 ‘독수리발톱작전(Operation Eagle Claw)’으로 정해졌다. <사진 4>

미국이 인질구출작전에 동원한 무력은 엄청났다. 미해군 항공모함 2척, 미공군 장거리수송기 7대, 미해군 전투헬기 8대, 근접지원공격기 2대 등이 인질구출작전에 동원되었으니, 가히 전면전을 벌일 만한 방대한 무력이 페르시아만에 속속 집결되었던 것이다.

페르시아만 상공에 어둠이 깃든 시각, 모든 조명등을 모두 끄고 이란 영공 깊숙이 침투한 전투헬기들과 수송기들이 타바스(Tabas)사막의 도로를 활주로로 삼아 작전거점에 착륙하였다. 테헤란으로부터 불과 8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었다. 그런데 미육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132명과 현지어 통역자 15명이 분승한 전투헬기 8대가 테헤란으로 공중침투를 개시하려던 참에 갑자기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모래폭풍 속에서 이륙하던 전투헬기 한 대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수송기에 충돌하였다. 기체충돌로 일어난 화염이 항공연료를 가득 싣고 옆에서 대기 중이던 항공연료수송트럭에 옮겨 붙으며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사고로 현장에서 8명이 즉사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전면전을 벌일 만한 방대한 무력이 동원된 ‘독수리발톱작전’은 그처럼 어이없게도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 <사진 5> 인질구출작전에 참가한 미국군 부대들이 전투헬기와 수송기를 타고 이란의 타바스사막에 착륙하였다. 미육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132명과 현지어 통역자 15명이 분승한 전투헬기 8대가 사막을 떠나 테헤란으로 공중침투를 개시하려던 참에 갑자기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이륙하던 전투헬기 한 대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수송기에 충돌하였다. 기체충돌로 일어난 화염이 항공연료수송트럭에 옮겨붙으며 대폭발이 일어나, 현장에서 8명이 즉사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방대한 무력이 동원된 '독수리발톱작전'은 총 한 방 쏴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위의 사진은 당시 폭발사고현장에 남은 전투헬기 잔해와 수송기 잔해를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독수리발톱작전’이 그처럼 실패한 것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졌다고 으쓱이던 미국에게 커다란 수치와 망신을 안겨주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6개월 뒤에 진행된 대통령선거에 재선을 기대하며 출마하였으나, 인질구출작전의 실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그로써 정권이 교체되었다. <사진 5>

조선인민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한 헬기조종사구출작전은 특수전부대 전투원을 24명만 동원하고서도 완벽하게 성공하였던 반면, 미국군이 이란에서 전개한 인질구출작전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고서도 어이없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극적인 대조는 조선인민군의 탄탄한 작전능력과 미국군의 허술한 작전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 <사진 6> 2015년 8월 27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안보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위의 사진은 그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 자리에 연사로 출연한 현역 육군 중장인 조상호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은 국방부가 '참수작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한국군이 '참수작전'을 자기의 새로운 작전개념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일촉즉발의 전쟁재발위험을 몰아온 '8월위기사태'와 맞물리며 큰 파란을 일으켰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평양 사동구역에 세워진 청와대 모형건물
  
사건의 발단은 2015년 8월 27일에 일어났다. 그 날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이 개최한 안보학술토론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연사로 출연한 현역 육군 중장인 조상호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이 충격적인 발언을 꺼내놓았다. 그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보다 우세한 비대칭전략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국방부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비대칭전략들 가운데는 ‘참수작전’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가 말한 다른 내용들은 생략한 채 그가 언급한 ‘참수작전’를 크게 부각시켜 보도하면서, 국방부 관계자들의 부연설명을 곁들인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를테면, <연합뉴스>는 2015년 8월 27일부 보도기사에서 “유사시 적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징후가 보이면 핵무기승인권자를 제거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 참수작전의 개념”이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해설을 실었고, <조선일보>도 같은 날 보도기사에서 “북한 지도부는 도시가 핵무기로 공격받는 것보다 이러한 (참수작전) 보복을 더 위협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략실장의 부연설명을 실었다. 이런 정황은 한국 국방부가 검토 중이라는 이른바 ‘참수작전’이 어느 군사지휘관의 개인적인 발상이 아니라, 이라크전쟁과 리비아전쟁 같은 침략전쟁에서 미국군이 수행한 ‘참수작전’을 한국군이 모방하여 자기의 새로운 작전개념으로 수용하였음을 말해준 것이다. <사진 6>

한국군이 ‘참수작전’을 자기의 새로운 작전개념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일촉즉발의 전쟁재발위험을 몰아온 ‘8월위기사태’와 맞물리며 큰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8월위기사태’로 초긴장한 상태에 있었던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이 ‘참수작전’을 거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격분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격분이 예사롭지 않은 군사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여덟 달이 지난 2016년 4월 27일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에 보도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2016년 4월 초 한국의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이 평양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사동구역 대원리에 건설된 청와대 모형건물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 모형건물에 관한 좀 더 상세한 서술은 미국의 관영매체인 <미국의 소리>가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여 2016년 7월 16일부 보도기사에 실어놓았다. 그 분석기사에 따르면, 모두 3개 동으로 이루어진 청와대 모형건물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기간 중에 건설되었는데, 청와대를 2분의 1로 축소한 크기이고, 본관 모형건물의 지붕은 가로 35m, 세로 25m이며, 진입로에서 정원을 지나 본관 모형건물까지 거리는 약 90m라고 하였다. 청와대 모형건물 진입로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나 있었다.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청와대 모형건물이 화력시험장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을 주목하면서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포사격연습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청와대 모형건물을 건설하였으므로 그 모형건물을 표적으로 삼아 대규모 포사격연습을 곧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하였다.

▲ <사진 7> 2016년 4월 초 한국의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이 평양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사동구역 대원리에 건설된 청와대 모형건물을 촬영하였다. 위의 사진은 <미국의 소리>가 2016년 7월 16일 보도한,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이다. 왼쪽 사진은 청와대 모형건물을 촬영한 위성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청와대 실물을 촬영한 위성사진이다. 청와대 모형건물은 청와대를 2분의 1로 축소한 크기로 건설되었는데, 모형건물의 진입로에서 정원을 지나 본관까지 이르는 거리는 약 90m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그런 예측은 뭐가 뭔지 분별하지 못한 억측이었다. 아래에 서술하는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7>

첫째, 청와대 모형건물은 평양 중심부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세워졌지만, 그 모형건물이 서 있는 사동구역은 행정구역상 평양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평양에 청와대 모형건물을 세워놓은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협동농장들 가운데 최우수 모범단위로 개건된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이 바로 그 사동구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남새는 채소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에는 총부지면적이 446,281㎡에 이르는 현대식 남새온실 665개동이 들어섰는데, 각종 재배작물의 생장특성에 맞춰 온도, 습도, 햇빛비침도, 이산화탄소농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조절하는 컴퓨터종합지령체계가 가동되고 있으며, 400여 세대 농장원들과 그 가족들이 입주한 연립주택들은 태양열물가열기와 태양빛전지판을 지붕마다 설치한 산뜻한 친환경주택으로 건설되었고, 도시사람들도 부러워할 문화회관, 과학기술보급실, 장천원, 상점 같은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들이 들어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진과학기술로 부흥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의 문화농촌을 표상하는 본보기로 개건된 그 농장을 2015년 6월 9일과 6월 29일 두 차례나 현지지도하였으며, 6월 30일에는 개건공사 준공식이 현지에서 진행되었다.

▲ <사진 8> 위의 사진들은 평양 사동구역에 현대적으로 개건된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을 촬영한 것이다. 위쪽 사진은 665개동의 남새온실들이 줄이어 있는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 협동농장 안에 건설된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들 가운데 하나인 장천원의 수영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 옆에서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포사격연습을 진행할 것이라는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예측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억측이다.     © 자주시보

그런데 그런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 옆에서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170mm 자행포와 300mm 방사포를 쏘는 포사격연습을 진행할 것이라는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예측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 8>

둘째, 청와대 모형건물은 실물을 2분의 1로 축소하여 실물과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건설되었다. 위성사진만 봐서는 그 건물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외형을 그처럼 실물과 흡사하게 만들었고, 정원과 진입로까지 흡사하게 만들어놓았으므로, 건물내부도 실제와 흡사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틀림없다. 만일 조선인민군 포병부대가 그 모형건물을 포사격연습표적으로 한 차례만 쓰고 파괴할 것이라면, 그처럼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 실물과 흡사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원래 한 차례만 쓰이고 파괴되는 포사격연습표적은 위치와 크기만 표시하는 단순구조물로 세워놓는 법이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보면, 평양 사동구역에 세워진 청와대 모형건물은 포사격연습표적이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4. 정찰총국 특수전부대의 청와대기습점령연습

평양 사동구역에 세워진 청와대 모형건물은 포병부대가 포사격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수전부대가 기습점령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청와대 모형건물은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가 청와대기습점령을 실전전환경과 흡사한 모의환경에서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가 청와대 모형건물을 세워놓고 청와대기습점령을 연습하는 것은, 한국군이 ‘참수작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 나타난 새로운 군사동향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 <사진 9> 2011년 2월 8일 주한미국군사령부 청사에서 한국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월터 샤프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의 총병력이 200,000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고강도훈련으로 단련된 최정예 특수전병력이 200,000명이라는 사실 하나만 봐도, 조선인민군이 얼마나 강한 군대인지 알 수 있다. 위의 사진은 2011년 11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630대련합부대가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한 훈련장의 모습이다. 조선인민군 제630대련합부대는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최정예 특수전부대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1년 2월 8일 주한미국군사령부 청사에서 한국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월터 샤프(Walter L. Sharp)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의 총병력이 200,000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지금 조선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특수전부대가 있다. 200,000명 병력은 다른 나라 군대의 총병력만큼 많은 것이다. 이를테면, 영국군은 250,000명, 스페인군은 233,000명, 스위스군은 220,000명인데, 고강도훈련으로 단련된 최정예 특수전병력만 200,000명이라는 사실 하나만 봐도 조선인민군이 얼마나 강한 군대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2011년 2월 8일 주한미국군사령부 청사에서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월터 샤프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북한 특수부대가 매우 위협적인 만큼, 한미연합사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슨 대비책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한국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에 대한 두려움은 감출 길이 없었다. <사진 9>

그렇다면 200,000명이나 되는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들 가운데 평양 사동구역에 청와대 모형건물을 세워놓고 청와대기습점령을 연습하는 특수전부대는 어느 부대일까?  평양 사동구역에 훈련소를 둔 부대는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다. 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동구역에 있는 그 훈련소는 정찰총국 제7국 198련락소라는 명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각 전연군단 예하에도 정찰대대가 1개씩 있지만, 정찰총국과 전연군단 예하 정찰대대는 서로 다르다.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은 지난날 정찰국이었는데, 2009년에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정찰작전능력이 2009년에 대폭 강화되었음을 말해준다. 기존 정찰국이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정찰작전능력이 대폭 강화된 시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혁명활동을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맞아 그 전해에 확대, 개편된 정찰총국 지휘부를 시찰하였는데,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그 시찰에 동행하였다.

한국군 정보당국의 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는 10,000여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난도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이를테면, 무게가 35kg나 되는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매일 20km씩 행군하며, 매주 토요일에는 밤 10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정오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40km에 이르는 산악행군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 2011년 2월 8일 보도에 다르면, 그들은 “한 명이 적 3~15명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 훈련(격술훈련-옮긴이)을 하루 3시간 이상, 사격은 침투 전 3,000번 이상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뉴데일리> 2010년 11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무술로 단련돼 맨손으로도 적군 몇 명쯤은 동시에 상대할 수 있으며, 저격소총을 가지면 15초 이내에 200m 밖에서 움직이는 표적 몇 개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는 “최고의 무술실력과 전투장비를 가진 부대”라고 한다.

▲ <사진 10>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들은 최고의 무술실력과 전투장비를 가진 부대로 알려졌다. 그런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고강도훈련으로 단련된다. 위의 사진은 2013년 12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선인민군 초병대회 참가자들 앞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진행한 격술훈련의 한 장면이다. 평소에 격술로 단련된 그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맨손으로도 몇 명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     © 자주시보

윤규식 육군종합행정학교 북한담당교수의 말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는 “유사시 대상표적에 사전침투했다가 전쟁과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며, 부여받은 목표를 습격,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중앙일보> 2011년 1월 15일부 보도기사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출신이라는 익명의 탈북자는 자신이 조선에서 복무를 하였던 군부대의 작전임무가 전라남도를 해방하는 것이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태백산 줄기를 타고 육상침투하여 지리산을 넘어 광주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진 10>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보면, 2015년 가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평양 사동구역에 청와대 모형건물을 세워놓고, 청와대기습점령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이 ‘8월위기사태’ 와중에 ‘참수작전’까지 언급하면서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므로, 그에 격분한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청와대기습점령을 연습하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5. 최전방 3중 철책과 경계망은 의외로 쉽게 뚫린다

한반도 군사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국군 최전방부대가 군사분계선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데,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설마 그런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청와대까지 갈 수 있겠는가 하고 의문을 품겠지만, 한국군 최전방부대가 지키는 경계망에는 구멍이 여기저기 숭숭 뚫려있어서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쉽게 침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10월 2일 강원도 고성군에 주둔하는 한국군 제22사단 최전방 철책경계부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무장을 하지 않은 조선인민군 병사 한 사람이 그 날 밤 10시 30분경 군사분계선 철책을 지지하는 철주를 타고 올라가 3~4m 높이의 3중 철책을 넘어 남하하였다. 그가 두 번째 철책을 넘는데 52초가 걸렸고, 세 번째 철책을 넘는데 1분1초가 걸렸다고 한다. 군사복무 중에 잘못을 저지르고 처벌이 두려워 탈영한 일반병사가 군사분계선 3중 철책을 그처럼 쉽게 넘었다면, 고강도침투훈련으로 단련된 특수전부대 전투원에게 군사분계선 3중 철책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 <사진 11> 2012년 10월 2일 강원도 고성군에 주둔하는 한국군 제22사단 최전방 철책경계부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무장을 하지 않은 조선인민군 병사 한 사람이 그 날 밤 3중 철책을 넘어 남하한 것이다. 그는 한국군 경계초소의 문과 경비대 숙소의 문을 두드리며 다녔으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고, 멀리 떨어진 일반전초로 가서 문을 두드린 끝에 한국군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한국군 최전방부대의 경계망이 너무 허술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위의 사진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조선인민군 병사 한 사람이 쉽게 넘어온 철책 앞에서 한국군 제22사단 사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최전방 경계망이 침투훈련도 받지 못한 병사에게 그처럼 쉽게 뚫렸으니, 고난도침투훈련으로 단련된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에게 3중 철책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다.     © 자주시보

그런데 진짜 충격적인 사건은 월책 이후에 일어났다. 3중 철책을 간단히 넘은 그가 70~80m 떨어진 한국군 경계초소(GP)로 갔으나 그 초소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250m 정도 떨어진 경비대 숙소까지 가서 출입문을 두드렸지만 2중 유리문 안쪽 상황실에 있던 한국군 경비대원들은 누가 문을 두드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하는 수 없이 30m 떨어진 일반전초(GOP)로 가서 유리창문을 두드렸는데, 그제야 소초장과 전투분대장이 나와 그의 신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군 최전방부대의 경계망은 너무 허술해서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는 그처럼 허술한 경계망을 뚫고 청와대까지 침투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 11>

1968년 1월 18일 밤,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32명이 한반도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철책을 뚫고 침투하였다. 당시 주한미국군 제2사단은 “특별히 많은 예산을 들여서 만든 최신식 철책”을 자기들이 지키는 서부전선 군사분계선에 설치해놓고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었지만, 그런 경계망은 고강도침투훈련으로 단련된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군사분계선 철책을 뚫고 침투한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초인간적인 산악행군을 다그쳐 산줄기를 타고 남하하였다. 1월 20일 그들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북한산 비봉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비봉을 출발하여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군경검문소를 통과했으며, 북한산성 북문 일대에서 경찰병력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청와대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다. 이것이 1.21청와대습격사건이다.

▲ <사진 12> 위의 사진은 북악산 탐방로의 어느 바위에 무수히 남아있는 총탄흔적을 촬영한 것이다. 이 총탄흔적은 1.21청와대습격사건 당시 치열한 교전이 남긴 것이다. 1.21청와대습격사건이란, 1968년 1월 21일 당시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지키고 있었던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철책을 뚫고 침투한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 32명이 초인간적인 산악행군으로 산줄기를 타고 남하하여, 북한산성 북문 일대에서 경찰병력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청와대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던 사건을 말한다. 32명의 전투원들 가운데 27명은 교전 중에 사망하였고, 3명은 군경의 포위망과 추격전을 뚫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복귀했으며, 1명은 교전 중에 붙잡혔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는 청와대 모형건물을 세워놓고 청와대기습점령을 연습하고 있다. 오늘의 군사상황은 1968년과 마찬가지로 초긴장상태에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신동아> 2004년 2월호는 1.21청와대습격사건 당시 방첩부대 수사계장이었던 백동림 씨의 회고담이 실렸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32명의 특수전부대 전투원들 가운데 포로로 붙잡힌 김신조 씨를 제외하고 확인된 시신은 27구뿐이었으며, 다른 3명의 생사여부는 끝내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1.21청와대습격사건에 참가한 특수전부대 전투원 32명 가운데 3명이 군경의 포위망과 추격전을 뚫고 군사분계선을 다시 넘어 복귀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12>

<뉴데일리> 2010년 11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복귀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한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중에 총상을 입어 “창자가 배 밖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창자를 다시 밀어넣고 손으로 막은 채 북한까지 돌아갔다”고 한다. 미국의 관영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 2015년 4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1.21청와대습격사건 당시 한국 군경의 포위망과 추격전을 뚫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복귀한 특수전부대 전투원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현역 육군대장인 박재경 인민무력부 부부장이라고 한다.

한국 국방부가 2006년에 펴낸 ‘국방백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들은 “한반도 작전환경을 고려하여 야간전훈련, 산악전훈련, 시가전훈련을 강화하는 등 특수전수행능력을 집중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는 것이고, <내외통신> 1996년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의 실전훈련 중에 약 80%는 야간전훈련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전개할 청와대기습점령작전은 박근혜 대통령이 침실에서 잠자고 있는 심야에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소녀시절 청와대에서 겪었던 1월 21일의 악몽이 오늘 되살아나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참수작전’을 운운하면서 조선을 극도로 자극한 한국군에게 심각한 위기상황이 닥쳐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사진 13>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부대원들은 평시에도 일본 오끼나와에 빈번히 침투하여 정찰임무를 수행한 뒤에 복귀한다고 한다. 그들이 오끼나와 정찰에 주력하는 까닭은, 전시에 한반도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미해병대와 미공군의 주력부대들이 오끼나와에 집결해있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은 미공군이 오끼나와에서 운영하는 가데나공군기지를 촬영한 것이다. 매우 높은 차단벽을 세우고 경계태세를 강화한 것을 위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차단벽은 고난도침투훈련으로 단련된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전시에 그들은 특수작전배낭을 메고 스텔스 잠수정에 탑승하여 오끼나와 해변에 상륙, 침투하고, 그 섬에 있는 미국군기지들에 접근하는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6.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의 특수작전배낭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병력 10,000여 명은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일어나면, 적진에 가장 깊숙이 침투하게 되는데,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정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선인민군 정찰병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군대의 정찰병도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법이다.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적진에 가장 깊숙이 침투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침투하는 것일까? 제주도 서귀포 해안까지 침투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작전범위는 한반도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뉴데일리> 2010년 11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정찰부대들 가운데 해외정찰임무를 수행하는 정찰부대에 소속된 정찰병들은 전원이 영어와 일어를 할 수 있으며, 평시에 일본 오끼나와(沖繩)에 “빈번히” 침투하여 정찰활동을 벌인 뒤 복귀하는데, 전시에는 특수작전배낭을 메고 괌(Guam)과 오끼나와에 침투하는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 13>

조선침공을 노리는 미해병대기지와 미공군기지가 집결된 오끼나와는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1,420km 떨어져 있으며, 조선침공을 노리는 미공군기지와 미해군기지가 집결된 괌은 평양에서 직선거리로 3,400km 떨어져 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는 평시에도 평양에서 1,420km 떨어진 오끼나와에 빈번히 침투하여 정찰활동을 벌인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수중소음을 내지 않는 스텔스 잠수정을 타고 오끼나와에 침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특수작전배낭을 멘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오끼나와와 괌에 각각 상륙, 침투하여 그 두 섬에 있는 미국군 군사전략거점들을 한꺼번에 날려보낼 장거리침투작전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장거리침투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유아시아방송> 2016년 4월 6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적진 깊숙이 침투할 때 메고 가는 배낭은 ‘위성’이라고 불리는 특수작전배낭인데, 미사일유도장치가 들어있는 배낭도 있고, 전파교란장치가 들어있는 배낭도 있다고 한다. 전시에 핵배낭을 메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특수전부대는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아니라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제630대련합부대다. 

위성항법장치로 정밀타격기능을 발휘한다는 미사일이라고 해도, 비행거리가 1,000km 이상 넘으면 오차범위가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타격대상 인근에 은밀히 가져다놓은 미사일유도장치에서 송출되는 유도전파를 추적하여 타격대상을 정밀타격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전의 특징적인 전투양상으로 되었다. 예컨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미국군 특수전부대가 이라크군 군사전략거점 인근에 침투하여 미사일유도장치를 설치함으로써 미사일의 정밀타격도를 보장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 <사진 14>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미해병대가 메고 다니는 전투배낭이다. 어느 나라 군대나 전투배낭을 멘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은 전투배낭이 아니라 특수작전배낭을 메고 적진에 침투한다. 그 특수작전배낭은 '위성'이라고 불리는데, 미사일유도장치가 들어있는 배낭도 있고, 전파교란장치가 들어있는 배낭도 있다. 전시에 핵배낭을 메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특수전부대는 정찰총국 특수전부대가 아니라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제630대련합부대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에게는 미사일유도배낭만 있는 게 아니라 전파교란배낭도 있다. 전파교란장치에서 송출되는 전파는 공격대상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져 교란효과가 감소되므로, 전파교란장치를 공격대상 가까이 접근시킬수록 유리하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이 평양에서 1,420km 떨어진 오끼나와나 3,400km 떨어진 괌의 미국군 군사전략거점들에게 전파교란공격을 가할 현실적인 작전방도는, 전파교란배낭을 멘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스텔스 잠수정 또는 스텔스 잠수함을 타고 오끼나와와 괌에 은밀히 침투하여 그 배낭을 공격대상 인근에 가져다놓고 강력한 교란전파를 송출하는 것이다. <사진 14>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그처럼 오끼나와와 괌에 상륙, 침투할 수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일본 본토에 상륙, 침투하여 거기에 있는 주일미국군기지들에 접근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다.
배낭을 멘 여행객 차림으로 위장하고, 일본말을 하는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스텔스 잠수정을 타고 가서 오끼나와와 일본 본토의 어느 외딴 해변에 상륙, 침투한 뒤에 주일미국군기지들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배낭을 멘 여행객 차림으로 위장하고, 영어를 구사하는 정찰총국 특수전부대 전투원들이 스텔스 잠수함을 타고 가서 괌의 어느 외딴 해변에 상륙, 침투한 뒤에 미국군기지들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위에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들은 특수작전배낭 ‘위성’의 사용법을 올해 2월부터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특수전부대들이 특수작전배낭 사용법을 연습하는 것은, 그들이 선제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오끼나와, 괌, 일본 본토에 사전침투하여 ‘위성’을 작동시키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탄도미사일 초정밀타격으로 그 지역들에 있는 미국군 군사전략거점들을 파괴할 엄청난 작전계획이 수립되었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침공을 노리는 미국의 전쟁수행력은 오끼나와, 괌, 일본 본토에 집결되어 있으므로, 그 지역의 군사전략거점들이 파괴되는 순간 미국은 전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초정밀선제타격으로 ‘조국통일대전’을 끝내고 미국의 항복을 신속히 받아내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작전구상을 엿볼 수 있으며, 그런 놀라운 작전구상이 실현될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하는 조선의 암시적 표현들을 읽을 수 있다. 지금 미국은 전략폭격기들인 B-52, B-2, B-1B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 집결시키고 조선에 대한 선제핵타격위협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미국이 조선을 자극할수록 조선은 ‘조국통일대전’의 날을 한층 더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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