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6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몇 척인가?

[한호석의 개벽예감](160)
자주시보 2015년 05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 <사진 1>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에서 발사된 북극성-1호가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최종결속시험에서 성공한 조선은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자주시보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동해에서 2015년 5월 8일에 진행된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 성공소식을 보도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풍랑을 헤치시고 륙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험발사장소에 도착하시여 새로 개발한 전략잠수함 탄도탄의 전술기술적 제원을 료해하시고 시험발사를 보아주시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만일 수중시험발사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험발사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를 타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간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서 진행되는 수중시험발사가 실패하는 것은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시험발사장에 나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5월 8일 수중시험발사 이전에 수중시험발사 성공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수중시험발사가 몇 차례 더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잠대지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는 세 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첫째 단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그 성능을 검증하는 탄도비행시험이고, 둘째 단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미사일의 출수시각에 맞춰 로켓엔진을 점화하는 수중사출시험이고, 마지막 단계는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최종결속시험이다. <조선일보> 2015년 5월 9일 보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이 수상사출시험, 수중사출시험, 잠수함사출시험의 3단계를 거쳐 작전배치된다고 하였지만, 미사일을 발사관에서 쏘아올리는 사출은 수상에서 진행하거나 지상에서 진행하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구태여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따라서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은 탄도비행시험이라는 말로 바꿔 써야 뜻이 더 명확해진다.

탄도비행시험에서 성공해야 수중사출시험을 진행할 수 있고, 수중사출시험에서 성공해야 최종결속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한국 국방부는 조선이 2015년 5월 8일에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를 수중사출시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들의 주장대로 2015년 5월 8일에 수중사출만 진행되었다면 북극성-1호가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해수면 위로 출수한 북극성-1호는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였다. 북극성-1호가 약 100~150m를 날아갔을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추측보도는 엉터리다.

2015년 5월 8일 조선이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는 누가 봐도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조선은 북극성-1호 최종결속시험에서 수중발사기술이 완성되었음을 검증하였으므로 앞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조선은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첫 단계인 탄도비행시험을 언제 어떻게 진행했던 것일까? 조선이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을 진행한 경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조선은 2014년 2월부터 7월 사이에 8종의 미사일을 250여 발 발사했다. 조선이 각종 미사일을 그처럼 무더기로 발사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는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고, 기존 미사일을 발사하여 가상표적에 명중시키는 화력타격연습도 있었다. 조선이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2014년에 진행하였던 시험발사들 가운데는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다.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조건에 맞춰 진행되었다.

첫째, 2014년에는 북극성-1호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따돌려야 하였다. 조선이 2014년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는 항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설정하지 않고 진행된 기습발사였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예상하지 못하는 불의의 장소에서 진행된 불시발사였다.

둘째,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북극성-1호 사거리는 1,500km로 추정되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의 사거리를 3분의 1로 줄여 쏘는 단축발사를 진행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조선이 북극성-1호를 서부지역에서 발사하여 동해의 영해선 안쪽에 탄착시키려면 500km 이상 비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평소에 집중감시하는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역에서 불시에 기습적으로 발사한 미사일이 500여 km를 날아간 사례들이 유독 2014년 7월에만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4년 7월 9일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은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13일 개성 북쪽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26일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발사된 미사일 1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다.

조선이 작전배치한 단거리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사거리가 500km인 미사일은 없다. 화성-5호 사거리를 500km라고 추정하는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있지만, 그 미사일의 사거리가 300~700km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므로, 500km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4년 7월 조선의 서부지역에서 며칠간격을 두고 연속 발사되어 동일하게 500여 km를 날아간 그 미사일의 정체가 북극성-1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2014년 7월 중에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를 세 차례 진행하면서 그 미사일 5발을 발사하였던 것이다. 2014년 7월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에서 그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한 조선은 전략잠수함에 그 미사일을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는 다음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4년 인도가 인도양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를 시험발사할 때 사용한 잠함이다.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이 잠함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실패하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다른 나라의 잠대지탄도미사일 개발경험을 보면, 수중시험발사라고 해서 처음부터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조선이 북극성-1호를 시험발사한 2014년에 인도도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Sagarika)를 시험발사하였는데, 인도의 수중시험발사는 조선의 수중시험발사와 달랐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잠함(潛函)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는 식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두 차례 진행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잠함에서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를 생략하고, 전략잠수함에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였다. 이런 사정을 보면,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할 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쳐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조선에서 진행된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을 국제사회에 알려준 사람은 미국의 언론인 빌 거츠(Bill Gertz)와 미국의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다.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 관리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인용한 빌 거츠의 기사는 2014년 8월부터 몇 차례 <워싱턴자유횃불(WFB)>에 실렸고,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기사는 2014년 10월부터 몇 차례 <38 노스(North)>에 실렸다. 미국 정부관리들에게서 얻은 빌 거츠의 정보가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정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에 실은 기사를 읽어보면, 조선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세 차례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언급한 조선의 시험발사경과를 살펴보면, 2014년 10월 지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1월 23일 수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었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2015년 4월 22일 조선이 “사출시험(ejection test)”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음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3월 19일판 기사에 이렇게 썼다. “조선은 2014년 11월 신포조선소 남쪽에 설치된 지상발사대에서 사출시험을 진행한 뒤 (2015년) 2월 KN-11 비행시험(북극성-1호 비행시험을 뜻함-옮긴이)을 진행하였”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미국 국방부가 KN-11 잠대지탄도미사일이라 부르는 미사일의 첫 비행시험을 2015년 2월에도 탐지하였다.” 

빌 거츠가 쓴 3월 19일판 기사와 5월 5일판 기사를 비교하면, 그가 시험발사시점을 헷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는 2014년 10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11월이라고 잘못 썼고,  2015년 1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2월이라고 잘못 썼다. 그런 착오가 발생한 까닭은,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5월 5일판 기사에서 “그 미사일프로그램(북극성-1호 개발사업을 뜻함-옮긴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로 남아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빌 거츠가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해 쓴 기사들 속에 그의 빗나간 추측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대한 빌 거츠의 빗나간 추측은 조선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4월 22일까지 지상발사시험→수상발사시험→수중발사시험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였다고 기록한 부분이다. 그가 조선의 수중발사시험에 앞서 지상발사시험과 수상발사시험이 각각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까닭은,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에서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와 수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한 조셉 버뮤디즈의 빗나간 영상자료분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28일 <38 노스>에 실린 기사에서 조셉 버뮤디즈는 신포조선소 정박장 인근에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물체가 서 있는 것이 보이는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서 그 물체를 북극성-1호 지상발사대라고 추정하였는데, 빌 거츠는 같은 날 <워싱턴자유횃불>에 실린 자신의 기사에서 버뮤디즈의 그런 추정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2014년 10월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실제상황은 조셉 버뮤디즈와 빌 거츠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실제상황은 어떠하였을까? 

▲ <사진 3>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한 최신형 대잠작전기 포싸이든 P-8A 한 대가 동해 상공으로 날아갔다. 바로 그 시각 동해에서는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처음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미해군 대잠작전기는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현장을 촬영하고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는데, 그 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 자주시보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미국 해군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 잠수함을 공중에서 탐지, 공격하는 대잠작전에 최신형 무장장비를 동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진 3>에서 보는 포싸이든(Poseidon) P-8A 대잠작전기다. 한국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읽는다. 다기능해양정찰레이더를 장착하고 시속 815km로 비행하는 이 대잠작전기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하면, 폭탄창을 열고 경어뢰 마크(Mark) 54를 활공강하폭탄처럼 투하하여 잠수함을 공격한다. 미국은 주일미해군항공기지들에 전진배치해놓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4대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수시로 출동시켜 중국 잠수함들을 감시해왔다. 이를테면, 2014년 8월 19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1대가 중국의 싼야(三亞)잠수함기지가 있는 중국 남부 하이난섬 동쪽 해상에 나타났는데, 중국 요격기들이 긴급출격하여 근접비행으로 견제하자 항로를 바꿔 돌아갔다.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으로 알려진 ‘독수리연습’을 한반도 남부작전구역에서 감행할 때도,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원하여 항공대잠작전을 연습한다. 

그런데 중국 잠수함에 대한 항공감시와 ‘독수리연습’의 항공대잠작전에 동원되는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하여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났다. ‘독수리연습’이 진행되는 일정에 따라 해마다 3월 중에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나곤 하던 그 대잠작전기가 예정도 없이 10월 말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그처럼 매우 이례적으로 한반도 인근해상에 출현한 사건은 2014년 11월 7일 <문화일보> 보도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는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마친 뒤에 주일미해군항공기지로 귀대하지 않고 기수를 돌려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대잠작전기가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하던 바로 그 시각 오산미공군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고위지휘관들이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동해 상공에서 촬영해온 항공정찰자료를 놓고 비상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대잠작전기가 출동하였고 고위급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된 2014년 10월 28일은 조선의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다섯 달 전이었으므로,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왜 한반도 인근해상에 긴급출동하였는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은 조선이 바로 그 날 동해에서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한미국군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용산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까지 하와이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날아가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을 보면, 미국에게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빌 거츠가 위에서 언급한 기사에서 추측한 대로, 만일 조선이 북극성-1호를 지상발사대에서 쏘는 단순하고 초보적인 시험발사를 2014년 10월 28일에 진행하였다면,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오산미공군기지에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은,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제1차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였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방증이다. 

둘째,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군용항공기를 타고 하와이기지를 이륙하여 오산기지까지 아무리 부리나케 날아가도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수중시험발사장을 향해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출항하였다는 보고가 미국태평양사령부에 전달되자마자 그 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허겁지겁 오산기지로 날아갔다 해도,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는 때에 맞춰 오산기지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당시 미국군 지휘부는 이미 며칠 전부터 각종 항공정찰수단을 동원하여 신포조선소 정박장에서 움직이는 전략잠수함 동향을 면밀히 감시해오다가 그 전략잠수함이 10월 28일에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파악하였고,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은 10월 28일 이전에 오산기지에 미리 도착하여 북극성-1호가 수중시험발사를 개시할 때를 대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11일판 기사에서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 정보기관들이 조선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을 면밀히 감시해왔으며, 그 시험발사가 곧 진행되리라는 것을 지난 며칠 동안 예상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는데,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대한 미국의 항공감시는 이미 2014년 10월 28일 직전부터 시작되었다. 

셋째, 미국 해군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조선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관한 영상정보와 신호정보를 수집하려면, ‘독수리연습’을 진행하던 때처럼 조선 영공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 상공을 맴돌며 정찰비행을 해서는 안 되고, 수중시험발사현장에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기억 속에는 그들이 지난날 겪었던 뼈저린 경험들이 지워지지 않고 지금도 악몽처럼 남아있다. 대북정찰비행을 감행하던 미국 정찰기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돌진해온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격추되어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몰살경험도 있고, 신출귀몰하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붙잡힌 미국 정찰기가 하마터면 공중에서 나포되어 조선으로 끌려갈 뻔했던 공포경험도 있다. 이를테면, 1959년 6월 16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미국 정찰기 RB-45는 승무원이 기총사격으로 중상을 입자 황망히 달아났고, 1965년 4월 27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적인 기총사격으로 기체가 만신창이가 된 미국 정찰기 EC-121은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일본 요꼬다공군기지로 돌아갔고, 1969년 4월 15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공대공미사일 기습공격을 받고 격추된 미국 정찰기 EC-121에 탑승한 승무원 31명은 전원 몰살당했으며, 1981년 8월 26일 조선의 영공에 접근하던 미국 정찰기 SR-71은 조선이 발사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될 위험을 간신히 넘겼으며, 2003년 3월 2일 미국 전략정찰기 RC-135S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공중에서 나포당하여 조선으로 끌려갈 뻔하였다.

이런 악몽 같은 경험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뼈아픈 ‘학습효과’를 얻은 미국군 지휘부는 2014년 10월 28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시킬 때 조선의 추격기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대잠작전기만 보낼 수 없었을 것이고, 대잠작전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도 함께 보낸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에서 진행한 제1차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항공정찰을 통해 파악한 미국은 조선이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하는 전략잠수함을 보유하였음을 확인하였고, 그 잠수함에서 북극성-1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영상자료를 통해 확인하였다.

바닷속에 설정된 50m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 상공으로 북극성-1호를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는 그처럼 2014년 10월 28일에 시작되어, 2015년 1월 23일, 4월 22일, 5월 8일로 이어졌다.

빌 거츠가 미국 정보기관이 흘려준 정보를 인용하여 쓴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 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에서 성공하였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만 보고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보다 앞서 2014년 10월 28일과 2015년 1월 23일에도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고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세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연속적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5월 8일 최종적으로 진행된 수중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것이고,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수중시험발사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처럼 네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동해 상공으로 쏘아올리며 성공할 때마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엄습해오는 공포를 느끼며 전율했을 것이다.

▲ <사진 4>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같은 로미오급 잠수함이라도 이 잠수함은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였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다르다. 이 사진에서 보는 조선의 로미오급 잠수함은 조선이 1980년대 기술로 개량한 것이므로 다른 나라들에서 운용한 로미오급 잠수함들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수하다.     © 자주시보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은 그 미사일을 만드는 사업만이 아니라 그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만드는 사업까지 포함한다. 이렇듯 북극성-1호와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동시에 개발하는, 공학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방대한 사업을 몇 년 동안 완료하는 것은, 조선이 아무리 ‘조선속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략잠수함에서 북극성-1호를 수중발사하는 기술을 개발, 완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북극성-1호를 발사한 전략잠수함을 개발, 완성하는 것은 더 어렵다.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함교에 설치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언제 건조된 것일까? 그 건조시기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은 수중배수량이 1,830t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1976년부터 건조하기 시작하여 1995년까지 20년 동안 모두 22척 건조하였는데, 1995년 이후에는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원천기술은 오래 전에 소련에서 개발된 것인데, 중국은 소련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고, 조선은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다. <사진 4>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인데, 그 잠수함은 조선에서 건조된 개량형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외형부터 상당히 다르다. 

둘째, 로미오급 잠수함 22척을 건조하면서 잠수함건조기술을 습득한 조선은 1980대 중반부터 독자설계한 조선식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이 독자적인 설계기술로 건조한 조선식 잠수함은 그 동안 영상자료를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네 종이다. 수중배수량이 적은 잠수함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사진 5>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수중배수량 390t급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소형 잠수함을 상어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인데,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자주시보

<사진 5>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2005년 정찰위성을 통해 이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상어 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였다. 수중배수량이 390t인 이 소형 잠수함은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이다. 2011년 3월 현재,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사진 6>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6>은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7>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7>은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8> 2015년 5월 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발사에 동원된 신포급 잠수함이다. 신포급 잠수함은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비슷하다. 그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사진 8>에서 보는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함체크기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 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사진 9> 이 사진은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 자주시보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잠수함을 건조하는데서 조선이 견지해오는 원칙은 크기가 작은 잠수함을 많이 만드는 소형다함주의다. 조선이 잠수함을 건조할 때 소형다함주의를 견지하는 까닭은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고 은밀기동, 근접매복, 불시타격을 수행하는 수중유격전에 가장 적합한 것이 소형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디젤전동식 소형 잠수함들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항모타격단을 격침하기 위한 잠수함들이다. <사진 9>는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인데,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국방일보> 2014년 3월 31일판 기사에 따르면, 잠수함 함체크기는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의실험결과는 잠수함의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가 짧아져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잠수함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엔진소음도 적게 나기 때문에, 수동식 음파탐지기에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조선은 디젤전동식 잠수함만이 아니라 핵추진 잠수함도 작게 만들었다.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조선의 신포급 잠수함은 프랑스의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처럼 소형 가압경수로 1기를 설치한 경량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이므로, 그 전략잠수함을 건조한 시기는 경수로제작기술을 개발한 시기와 밀접히 연관된다.

조선의 경수로개발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조선이 소련으로부터 경수로 1기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경수로 4기를 조선에 건설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한 때는 1985년 12월이었는데, 비록 소련의 경수로를 도입하지 못했고, 경수로건설협정도 이행되지 못하였으나, 그 무렵 조선은 소련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경수로제작기술을 이전받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조선은 경수로제작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힘썼고, 1995년경 우라늄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비밀시설에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개발한 조선에게 경수로 개발은 공학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신보> 2009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기계공업부문 관계자들은 우라늄농축기술이 확보되면 경수로설비를 제작하고 조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였고, 경수로제작과 관련된 기술지표들에 대한 타산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경수로 국산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소형 경수로를 1998년경 완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때는 그보다 조금 앞선 1995년이다. 조선의 기록영화 ‘련속참관기-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에는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조선인민군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축소모형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은 조선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1995년에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1995년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조선의 개발속도를 아무리 늦춰 잡아도 개발착수시기로부터 약 10년 동안 설계, 경수로제작, 부품제작을 모두 끝내고 2005년부터는 지하잠수함기지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조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조선은 2005년부터 오늘까지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을 몇 척 건조하였을까?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동식 잠수함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잠수함건조능력이 막강하다는 나라도 핵추진 잠수함을 해마다 1척씩 건조하지 못한다.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엇비슷한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을 4척 건조한 프랑스의 경험을 보면,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은 3년에 1척씩 건조되었다. 조선의 2000년대 핵잠건조능력과 프랑스의 1980년대 핵잠건조능력이 엇비슷하다고 보면, 조선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한 것이다.  

그런데 잠수함을 건조하고 나서 시험운전기간을 거쳐 작전배치하기까지 5년 걸린다. 5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2005년에 첫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2010년에 작전배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합뉴스> 2015년 5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신포급 잠수함을 처음 식별한 때는 2012년 5월이다. 

2010년에 두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올해 2015년에 작전배치되고, 2015년에 세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은 2020년에 작전배치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5년 현재 조선에서는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 2척이 작전배치되었고, 나머지 1척은 시험운전을 시작하였다.

▲ <사진 10> 미국의 해군전문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Covert Shores)>에 현시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발사장면 상상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전략잠수함 수중시험발사 성공으로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 자주시보

<사진 10>에서 보는 것처럼, 수중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지상목표를 타격하는 전략잠수함이야말로 조선 특유의 전법인 고속기동, 매복기습, 화력집중, 섬멸타격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무장장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미국의 핵타격위협과 경제제재를 뚫고 나가느라고 남들과 달리 허리띠와 신들메를 단단히 졸라매고 간고분투해야 하였지만,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둠으로써 조선에서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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