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8

장성택 역모사건에 배후는 없었을까?

자주민보 2013년 12월 1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3년 12월 12일에 열린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역모사건의 주범 장성택에게 사형을 언도하였고, 즉시 사형을 집행하였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편승공작

2013년 12월 8일에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와 12월 13일에 발표된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에 관한 보도내용을 비교하면, 놀라운 사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래의 정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장성택 역모사건 재판을 최고재판소가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가 담당하였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의 국가안전보위부는 보안기관이지 사법기관이 아니다.

북의 현행 헌법에 따르면, 중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서는 최고검찰소가 기소하고 최고재판소가 판결하게 되어 있다. 물론 북의 현행 헌법에는 특별검찰소가 기소하고 특별재판소가 판결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장성택 역모사건에 대한 사법절차는 북측 외부에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국가안전보위부가 담당하였다.
북의 보도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가 특별군사재판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장성택 역모사건에 대한 사법처리는 북의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주목하는 것은, 2013년 12월 8일에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장성택의 또 다른 범죄가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 관한 12월 12일 보도에서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 관한 보도에서 언급된 장성택의 또 다른 범죄는 정권찬탈과 제도전복을 노린 역모죄다. 판결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 밑에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라는 것이다.

정권찬탈과 제도전복을 노린 장성택의 역모죄가 12월 8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지만, 12월 12일에 진행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처음으로 드러났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의 여러 범죄들 가운데 가장 엄중한 역모죄부터 집중적으로 폭로, 규탄되었을 텐데, 왜 그 때는 언론에 역모죄를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번에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 관한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였을까?

북측 언론에 보도된 특별군사재판 판결문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이 인용구에 나오는, 장성택이 정권을 찬탈하는 경우 자기의 ‘개혁정권’을 승인해줄 것으로 예상한 외국은 어느 나라인가? 판결문 문맥의 흐름을 보면, 장성택이 정권을 찬탈하는 경우 자기의 ‘개혁정권’을 승인해줄 것으로 예상한 외국은 미국이다.

장성택이 평소에 대외관계에서 드러내 보인 친중성향을 지적하면서, 그가 자기의 ‘개혁정권’을 인정해줄 것으로 예상한 나라가 중국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판단은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위의 인용구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문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 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위의 인용구에 나오는 ‘전략적 인내 정책’은 오바마 정부 1기와 2기의 대북정책이고 ‘기다리는 전략’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미국이 말하는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북이 망할 때까지 인내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켜 정권교체를 획책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도 북이 망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라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켜 정권교체를 획책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추종하여 만들어낸 것이므로,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켜 정권교체를 획책하는 대북정책의 주동자는 명백하게도 미국이다.

위의 인용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은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려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장성택이 ‘편승’하였다고 지적하였는데, 타자의 행동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긴다는 뜻을 지닌 편승이라는 말은 원래 비밀공작에 쓰이는 개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붙들고 있는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는 대북정권교체공작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켜 정권을 교체하는 비밀공작을 전담하는 부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다. 사회주의국가 또는 반미국가에 침투하여 정권을 와해붕괴시키고 ‘개혁정권’으로 교체하려는 정권교체공작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문분야’다.
이를테면,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정권교체공작에 성공한 미국 중앙정보국은 곧 이어 시리아에서 정권교체공작을 감행하여 시리아를 피비린내 나는 내전상태에 몰아넣었고, 지금은 북과 이란에 대한 정권교체공작을 감행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장성택은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편승하면서 정권찬탈과 제도전복을 노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에서 장성택을 ‘만고역적’으로 저주하며 이례적으로 판결 직후에 곧 사형을 집행한 까닭은, 그가 미국 중앙정보국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편승한, 그야말로 ‘대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장성택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편승하였다는 사실을 미국 중앙정보국이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비밀공작세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편승공작에는 어떤 편승자가 타자의 공작에 타자 모르게 슬쩍 편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공작담당자가 어떤 대상자와 접촉하여 그를 편승자로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참으로 충격적인 것은, 장성택이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북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려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자기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야심가이며 음모가이며 타락자인 장성택을 끌어들여 편승시키려고 책동한 것이다.


장성택 역모사건으로 더욱 격화된 북미적대관계

미국 중앙정보국은 자기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장성택 일당을 얼마나 깊숙이 끌어들인 것일까? 특별군사재판 판결문은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이 제3국에서 장성택의 심복과 비밀리에 접촉하던 초기단계에 국가안전보위부에게 적발된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에게 검거되자 남측 언론에 장성택의 심복이 중국에서 망명을 대기하고 있다는 식의 미확인 보도기사가 나온 것은 바로 그런 정황을 강하게 암시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대북정권교체공작에서 노리는 목표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의 핵무기를 탈취하는 ‘북한의 비핵화’다. 미국은 장성택과 그 일당을 배후에서 지원, 조종하여 정권을 찬탈하게 만든 뒤에 ‘장성택 개혁정권’을 인정해주고 북의 핵무기를 무혈탈취한다는 식의 경악스러운 시나리오를 구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장성택과 그 일당을 이용하여 북의 정권교체와 핵무장 해제를 노린 것이다. 북의 정권교체와 핵무장 해제가 결국 제도전복으로 귀결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2013년 12월 13일 남측 언론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어떤 탈북자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성택 일당을 이용하여 북의 정권교체와 핵무장 해제를 노린 비밀공작이 실제로 추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장성택이 실권을 잡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관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장성택의 심복과) 연계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이 탈북자는 “최근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비밀리에 중국과 동남아국가를 방문해 북한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해외에 나가 북측 인사와 접촉하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대북정권교체공작의 전형적인 양태다. 이 탈북자가 가담한 대북비밀공작이 미국 중앙정보국에 의해 추진된 것인지 아니면 국정원에 의해 추진된 것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장성택 일당과 접촉한 대북정권교체공작이 최근에 추진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북이 이번에 장성택과 그 일당을 조기에 적발하여 엄중처벌한 것은, 장성택과 그 일당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북측 국가안전보위부와 미국 중앙정보국의 첨예한 비밀공작대결이 결국 국가안전보위부의 완승과 미국 중앙정보국의 완패로 끝났음을 말해준다.
장성택 사형집행소식이 긴급보도로 미국 워싱턴에 전해진 때로부터 약 1시간 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대변인 패트릭 벤트렐(Patrick Ventrell)과 국무부 부대변인 마리 하프(Marie Harf)는 각각 발표한 긴급논평에서 “극단적인 잔인성(extreme brutality)”이라는 격한 용어를 써가며 장성택 사형집행을 맹비난하였다.
미국의 관영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 2013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 처형소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으며, “극단적인 잔인성”이라는 용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직접 선택한 용어라고 한다.

2013년 12월 8일 장성택 검거소식이 보도되었을 때는 “별로 논평할 게 없다”고 하면서 잠자코 있었던 미국은 장성택 처형소식을 듣고 왜 갑자기 흥분하여 그처럼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미국 중앙정보국이 추진하던 대북정권교체공작이 북측 국가안전보위부의 장성택 일당 일망타진으로 조기에 파탄되자 미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택 역모사건은 그러지 않아도 물리적 충돌위험이 고조된 북미관계의 적대상황을 더욱 격화시키고 말았다.
장성택과 그 일당을 대북정권교체공작에 편승시키려고 책동한 미국에게 격노한 북의 적대감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국의 대북정권교체공작에 격노한 북이 물리적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현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고 전한 청와대 관계자의 우려 섞인 발언은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청와대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백악관 분위기는 지금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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