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2013년 12월 10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박정희정권이 1978년에 제정한 영해법에 따라, 남해와 서해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곽섬들을 연결하여 그어진 파란 선이 직선기선이고, 그 파란색 직선기선 외곽에 그어진 붉은 선이 영해선이다. © 이창기 기자, 한호석 소장 제공 |
62년 전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방공식별구역 설정한 미국
2013년 11월 23일 오전 10시부터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이 효력을 발생한다는 중국 외교부의 발표가 나왔을 때, 이어도공역이 중국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된 것을 알게 된 한국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중국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어도공역을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집어넣었던 것에 비해, 일본은 한국의 남해영공 일부를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집어넣은 것이다. 배타적경제수역상공과 달리, 영공은 국가주권을 행사하는 불가침영역이므로 배타적경제수역상공침범과 영공침범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이 한국의 남해영공 일부를 침범하였다는 사실은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중국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계기로 드러났다. 너무 충격적인 것은, 일본방공식별구역이 이어도공역을 침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을 침범하였다는 사실이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일본방공식별구역의 한국영공침범은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본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자행된 주권침해의 범죄적 내막을 파헤치면 아래와 같다.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미국은 미국 본토와 알래스카주 영공을 방어한다고 하면서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설정하였다. 미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은 미국 영공만이 아니라 캐나다 영공까지 포함하는 ‘북미방공식별구역’이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북미대륙상공만이 아니라 해외작전지역상공도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필요에 따라 미국 극동공군사령부는 6.25전쟁 중인 1951년 3월 22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각각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본방공식별구역을 자의적으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자의적 설정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미국 극동공군사령부가 한국의 영공주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공작전만 고려하여 한국방공식별구역과 일본방공식별구역을 제멋대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이 한국, 일본과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전통보도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각각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은 명백한 주권침해였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은 그런 주권침해행위에 반발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국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6.25전쟁 시기에 한국과 일본은 자국 영공을 침범한 항공기를 식별할 방공레이더망을 구축하지 못했고, 정찰기나 조기경보기의 보유문제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며, 요격기를 긴급발진시켜 미식별 항공기의 영공침범을 차단할 독자적인 작전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식별능력, 정찰능력, 요격능력이 없는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방공식별구역 설정문제를 협의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고, 방공식별구역을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나서도 그에 관해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미국은 1969년 9월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일본이 1969년에 독자적으로 일본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그것은 오보다. 미국이 1969년 9월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일본에 넘겨준 것은, 일본이 미국의 지원과 비호를 받으며 해군력 및 공군력 증강에 초점을 맞춘 일본의 군국주의재무장을 추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으로부터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 행정권을 1972년에 환수할 때 기존 방공식별구역을 서쪽으로 더 확장하였고, 2010년 6월 25일에는 또 다시 대만해역 쪽으로 26km나 더 확장하였다. 그래서 동중국해에 설정된 일본방공식별구역은 중국 쪽으로 바짝 접근하게 된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에서 식별이라는 말은 곧 정찰을 뜻하므로, 일본방공식별구역이 그처럼 중국 쪽으로 바짝 다가선 것은, 중국을 상대로 하는 미일동맹군의 정찰활동이 2010년 6월부터 부쩍 강화되었다는 뜻이다. 자기에 대한 군사정찰을 전례 없이 강화하는 미일동맹군의 행동을 방관할 수 없었던 중국이 이번에 자기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은 미일동맹군의 군사정찰을 차단하려는 대응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미국 극동공군사령부가 1951년 3월 22일에 설정한 일본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이 한국의 남해영공 일부를 침범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 극동공군사령부가 한국의 남해영공을 침범하도록 일본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을 획정한 것은, 일본에게 한국의 영공주권을 침해하도록 길을 열어준 ‘교사범’이 미국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어느 나라의 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이 인접국의 남해영공을 침범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주권침해다.
이처럼 일본방공식별구역의 남해영공침범으로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박근혜정권은 일본에게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은 영공주권을 침해하도록 길을 열어준 교사범 미국과 영공주권을 침해하는 현행범 일본을 심판하고 응징해야 마땅하며, 영공주권을 침해당하면서도 이를 묵인하는 박근혜정권에게 주권침해묵인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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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공을 침범한 일본방공식별구역
영토 및 영해의 상공을 영공이라 하므로, 영해범위를 살펴보면 해상영공범위도 자연히 알 수 있다. 영해를 획정하는 두 가지 기준선은 통상기선과 직선기선인데, 통상기선은 썰물 때 육지에 나타나는 해안선을 뜻하며, 직선기선은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섬이 많은 다도해에서 영해범위를 정할 때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그은 선을 뜻한다. 해안선이 단순하고 섬이 없는 한반도 동해의 영해선은 통상기선으로부터 12해리(22.2km) 떨어진 해상에 설정되었으며,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섬이 많은 한반도 서해와 남해의 영해선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들을 연결한 직선기선으로부터 12해리 떨어진 해상에 설정되었다. 이러한 획정기준에 따른 영해법은 박정희정권 시기인 1978년 9월 20일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남해에서 동진하여 서해로 북상하는 긴 직선기선을 연결한 여러 섬들 가운데 일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섬이 하나 있으니, 그 섬이 바로 홍도다. 한반도에는 홍도라고 불리는 섬이 둘 있는데, 경상남도의 통영 홍도와 전라남도의 신안 홍도다. 이 글에서 거론하는 홍도는 경상남도 거제도 해안에서 일본 쓰시마 쪽으로 23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홍도의 행정구역은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산 54번지이며, 홍도의 좌표는 북위 34도 32분, 동경 128도 44분이다. 홍도 정상에는 1906년 3월에 점등한 등대가 아직도 야간항로에 불을 밝히고 있는데, 1996년 10월 홍도등대가 무인화되자 그 섬에서 살던 등대지기들도 육지로 떠났고, 그 이후에는 괭이갈매기 울음소리만 무심히 들리는 무인도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해군 1개 중대가 홍도에 상륙하여 포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였는데, 이것은 그 섬이 대한해협의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직선기선으로부터 12해리 떨어진 해상에 설정된 남해의 영해선 중에서 유독 대한해협의 영해선만은 1.5m암, 생도, 홍도를 연결한 직선기선으로부터 3해리(5.6km) 떨어진 해상에 그어졌다. 2013년 11월 28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982년에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UNCLOS)’을 체결하면서 한국 영해가 기존 3해리(5.6km)에서 12해리(22.2km)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1982년 이전에는 일본방공식별구역이 홍도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으나 1982년의 영해확장으로 침범하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발언이다.
1978년 9월 20일 박정희정권이 제정한 해양법은 폭이 5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바다인 대한해협의 영해선을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3해리(5.6km) 떨어진 해상에 설정하였으므로, 홍도의 영해선은 1978년 해양법 제정 이전이나 이후에나 변함없이 3해리 떨어진 해상에 그어져 있는 것이다. (동해는 박정희 정부 때인 1978년부터 12해리를 적용)
또한 영해선 외곽에는 배타적어업수역이 설정되었는데, 배타적어업수역은 통상기선 또는 직선기선으로부터 35해리(65km) 떨어진 해상까지의 범위다. 대한해협에서는 한국의 배타적어업수역과 일본의 배타적어업수역이 겹치게 되므로, 중간선을 기준으로 각각 배타적어업수역이 설정되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일본방공식별구역 남해경계선이 홍도의 배타적어업수역을 침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홍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는 점이다. 2013년 11월 28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홍도 영공에는 일본방공식별구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거짓발언이다.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국민일보> 2013년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홍도 영공이 일본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 항공기들이 (홍도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국적기가 일본방공식별구역에 들어있는 홍도 영공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은, 일본에 사전통보를 하지 않고서는 통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3년 11월 28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 영공인데도 일본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된 곳이 이어도와 홍도 이외에 더 있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현재 확인된 바로는 더 이상 없다”고 답변했지만, 그것도 거짓답변이다. 일본방공식별구역은 홍도 영공만 침범한 것이 아니라 마라도 영공도 침범하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손에 잡힐 듯이 바라다 보이는 섬이 가파도와 마라도다. 한반도 최남단 섬 마라도의 좌표는 북위 33도 07분, 동경 126도 18분이다. 홍도 영공과 마찬가지로 마라도 영공도 일본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 있다.
주목하는 것은, 1978년 9월 20일에 제정된 영해법에 따라 영해가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되기 이전인 1951년 3월 22일에 한국방공식별구역과 일본방공식별구역이 설정되었으므로, 마라도 영해가 12해리로 확장된 1978년 9월 20일부터는 일본방공식별구역의 마라도 영공침범범위가 종전보다 더욱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제주도 해안으로부터 마라도 해안까지 직선거리가 11km밖에 되지 않고, 제주도 영공이 제주도 해안으로부터 22.2km 떨어진 바다상공까지 포괄하였음을 생각하면, 일본방공식별구역이 제주도 남부영공 일부도 침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지도에 그려진 도상공간이 아니라 민항기 통과비행과 군용기 공중작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통제구역이다. 예컨대, 외국 국적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려면 24시간 전에 한국에 비행계획을 통보해야 한다. 만일 비행계획을 통보하지 않은 미식별 항공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 외곽 18km까지 접근하면 한국군은 무선경고신호를 보내게 되고, 한국방공식별구역 외곽 9km까지 더 접근하면 침범경고신호를 보내고, 전투기를 현장에 출동시켜 미식별 항공기를 통제 또는 요격하게 된다. 이처럼 방공식별구역은 영공 외곽에 설정된 준영공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국 국적기의 방공식별구역 통과문제보다 외국 국적기의 영공 통과문제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공 통과는 방공식별구역 통과와 차원이 다른 문제이므로, 외국 국적기가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할 때는 비행계획만 제출해도 되지만, 영공을 통과할 때는 비행계획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일본 국적기가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을 통과하려면 당연히 한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만일 남해영공 외곽에 설정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려면 한국에 비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지만,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졌다.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 그리고 한국방공식별구역의 남해구역을 통과하기 위해 한국의 사전허가를 받거나 한국에 비행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일본 국적기들은 아무 제약 없이 그 공역을 제멋대로 지나다니는 반면, 그 공역에서 일본자위대와 일본 항공사들로부터 비행계획이나 통과허가요청을 받아 영공주권을 행사해야 할 한국군과 한국 항공사들은 되레 일본에 비행계획을 제출하거나 사전통보를 하는 해괴망측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사태는 일본방공식별구역이 남해영공 일부를 침범한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데, 특히 한국 공군은 일본자위대와 상호교환한 편지 한 장 때문에 남해상공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한국군이 겪는 대일굴욕의 내막은 아래와 같다.
한국이 1995년 6월 5일 일본과 상호교환한 ‘대한민국 군용기와 일본자위대 항공기 간 우발사고 방지에 관한 서한’은 한국 군용기나 일본 군용기가 상대방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기 30분 전 상대방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규정에 따르면, 한국 군용기는 일본방공식별구역 남해구역에 포함된 한국 영공을 통과할 때마다 30분 전에 일본에 통보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군용기의 사전통보의무를 차질 없이 이행하기 위해 ‘대한민국 군용기와 일본국 자위대 항공기 간 우발사고방지에 관한 서한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용통신회선 설치운용에 관한 서한’을 1999년에 일본과 상호교환함으로써 전용통신회선을 이용하여 30분 전에 사전통보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한국남방공중항로의 안전문제는 사실상 일본에게 내맡기고 있는 꼴이다. 한국의 원유수입량 가운데 99%, 한국의 곡물수입량 및 원자재수입량 100%가 남방공중항로와 남방해상항로를 통과하고, 한반도의 남방항로를 오가는 한국 민항기는 하루 평균 310대나 되는데, 그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남방공중항로의 안전을 일본에게 내맡겼으니 굴욕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44년 동안 계속되는 대일굴욕
한국은 일본방공식별구역이 남해영공을 침범한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일본의 주권침해를 즉각 중지시켜야 하고, 남해공역에서 일본방공식별구역을 국제법적 요구에 맞게 축소하라고 압박을 가했어야 정상이고, 그런 항의와 압박이 일본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하고 일본에 대한 민항기의 비행계획 제출과 군용기의 사전통보를 중지함으로써 영공주권을 확립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 역대정권들은 그런 정상적인 행동을 취하기는커녕 대일굴욕행위를 끝없이 반복해왔다. 일본의 영공주권침해를 사실상 방치한 한국 역대정권들의 대일굴욕행위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넘겨받은 1969년부터 오늘까지 무려 44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오는 것이다. 5년, 10년도 아니고 44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은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1969년 9월 일본에 넘겨주었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은 한국에 넘겨주지 않았다. 6.25전쟁 때부터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해온 미국이 공중작전을 통제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한국에게 넘겨줄 리 만무하였다. 지금 한국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은 미7공군사령관이며 공군 중장인 잔막 조아스(Jan-Marc Jouas) 주한미공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다.
한국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그처럼 주한미공군사령관이 장악하였으니, 한국 역대정권들이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하려던 한국 역대정권들이 미국과 일본에게 확장요구를 몇 차례 제기하였으나, 그 때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수모와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요구를 제기할 때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수모와 멸시를 당해온 굴욕사는 아래와 같이 흘러왔다.
한국 정부 외교소식통들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12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정권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주한미공군사령관에게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당시 주한미공군사령관은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해줄 것처럼 말을 꺼내놓았지만, 1969년 9월 일본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일본에 넘겨주고 나서부터 박정희정권의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요구에 대해 묵살로 일관하였다. 전두환정권은 1986년에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확장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그것도 묵살당했다.
이처럼 주한미공군사령관과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계속 묵살당하자 김영삼정권 때부터는 방향을 틀어 대일협상을 시도하였다. 김영삼정권은 1992년, 1994년, 1995년 세 차례에 걸쳐 한일공군방공실무회의를 진행하면서 한국 영공을 침범한 일본방공식별구역을 조절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일본은 그 문제에 대한 협상 자체를 거부하였다. 김대중정권은 1999년 7월 한일안보정책협의회에서 일본방공식별구역 재조정문제를 협상하자고 제안하였지만, 일본은 협상 자체를 또 다시 거부하였다.
<국민일보> 2013년 11월 28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2003년 우리 공군과 일본항공자위대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회의에 참석했다가 이같은 사실(홍도 및 마라도 영공이 일본방공식별구역에 들어있다는 사실-옮긴이)을 알았다. 이후 우리 영공이므로 자디즈(JADIZ, 일본방공식별구역의 영어약칭-옮긴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일본에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 일본은 협의조차 거부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상납하고 미국을 맹신, 추종하며 일본의 눈치를 살펴온 한국 역대정권들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그처럼 수모와 멸시를 당해온 모습은 참담할 지경이다. 자주권을 상실한 한국에게는 한국 국적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할 때마다 일본에게 비행계획을 제출하고 사전통보를 해야 하는 굴욕과 굴종밖에 돌아온 것이 없었다.
메데이로스의 비공개 서울 방문
주권침해사태가 그처럼 심각한데도 박근혜정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미국을 맹신, 추종하고 일본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에 중국방공식별구역이 발표되자 박근혜정권은 그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소집하였고,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공역, 마라도 영공, 홍도 영공까지 확장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주한미공군사령관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에 관한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의 결정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상신할 ‘건의사항’을 정한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의 건의를 받아주느냐 묵살하느냐 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미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에 중국방공식별구역이 설정되자 미국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에반 메데이로스(Evan S. Medeiros)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서울과 도쿄에 급파되었는데, 그는 2013년 11월 26일 언론의 눈길을 따돌리고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뒤에 도쿄로 떠났다.
중국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한 한국의 대응방침은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부통령의 공개방문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 보다 앞서 에반 메데이로스 선임보좌관의 비공개방문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다. 어떤 중대한 외교문제를 수습할 때 추종국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추종국이 미국의 방침을 따르도록 만든 다음에 미국 고위관리가 이미 정해진 수습방침을 들고 추종국에 나타나 미국과 추종국이 수습방침을 상호합의한 것처럼 연출하는 것은 미국의 오랜 외교관행이다. 메데이로스 선임보좌관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한 미국의 수습방침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바이든 부통령이 서울에서 꺼내놓은 발언을 들어보면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충돌하지 말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임을 알 수 있다. 2013년 12월 6일 박근혜-바이든 청와대회담 직후 윤병세 외무장관이 회담결과에 관해 취재진에게 설명하면서 한국과 미국은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문제와 관련하여 “긴밀히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밝힌 것은 그런 사정을 반영한 외교적 발언이었다.
2013년 12월 8일 한국 국방부는 홍도 영공, 마라도 영공, 이어도공역을 포함시킨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 확장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단독 결정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아베정권과 먼저 상의하여 일본부터 설득하고, 박근혜정권에게 발표하게 한 것이다.
지도 위에 확장선만 그어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미국으로부터 한국방공식별구역 통제권을 환수해야 하며,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을 통과하는 일본 군용기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하며, 확장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는 일본 민항기들의 비행계획을 받아내야 한다. 또한 한국 군용기들이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을 통과하기 30분 전에 일본자위대에 사전통보를 해온 굴욕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확장된 한국방공식별구역과 일본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공역을 통과하는 한국 민항기들은 일본에 비행계획을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이 확장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발표했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영공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지하고 한국이 자기의 영공주권을 행사하는 한일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11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 개회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대표는 한반도 재침구상을 만지작거리는 아베신조(安倍晉三) 일본총리 앞에서 ‘각하’라는 존칭을 쓰며 노골적으로 아부하고, 12월 5일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일왕생일축하연에 한국의 정계, 관계, 재계인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경축인사를 올릴 정도로 한일관계는 이미 갈 데까지 다 갔으므로, 확장된 한국방공식별구역이 발표된들 한일관계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래서 <연합뉴스> 2013년 12월 8일 보도기사에서 일본 정부 고위관리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이 확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걱정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국 군용기들이 홍도 영공과 마라도 영공을 통과하기 30분 전, 한국군의 전용통신전화기가 일본자위대에 사전통보를 위한 발신음을 보내고, 한국 민항기들이 남해항로를 통과하기 위한 비행계획을 일본에 제출하는 비열한 대일굴욕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불법당선으로 국민적 퇴진압박을 받고 있는 박근혜정권의 이런 대미, 대일 굴욕 외교는 또 다른 퇴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영토주권 수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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