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1

한미 미사일지침 폐기해도 미사일주권 못 갖는다

[한호석 칼럼]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 '미사일 주권'을 고창하는 이유는?
민중의 소리 2012년 08월 01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사일지침 폐기하라고 선동한 수구언론

<조선일보>가 2012년 7월 16일부터 19일까지 한미 미사일지침(ROK-US Missile Guidelines)에 관한 보도기사를 꽤 여러 편 실었다. 한미 미사일지침에 관한 <조선일보>의 논조를 요약하면, 그 지침을 무효화하여 한국군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도기사에서는 무효화라는 용어가 쓰였는데, 무효화란 폐기를 뜻하는 말이다. 한국군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은 오직 한미 미사일지침이 폐기되어야 가능하다.
 
수구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가 한국군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를 집중적으로 실은 것은, 미국을 상대로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협상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취한 행동으로 보인다.

한미 미사일지침 무효화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뿐더러, 그 지침을 개정하는 것마저도 사실상 거절해온 미국이 <조선일보>의 그러한 보도행태를 주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일보> 2012년 7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일보>가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미국 국무부가 비공식적으로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의 분위기를 파악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2월부터 1년 6개월이 넘도록 미국을 상대로 하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을 지루하게 끌어오면서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1,000km로 연장하려고 시도하다 미국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나중에는 사거리를 800km까지만 연장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물론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800km 연장간청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거리를 1,000km로 연장하는 것과 800km로 연장하는 것 사이에는 사실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수구우파세력은 왜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하고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일까? 수구우파세력은 한국군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이 불평등한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하고 미사일주권을 찾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말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사일주권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지만, <조선일보>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에 직접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일주권이라는 말을 쓰면서 강한 어조로 지침폐기를 선동한 것이다.

미사일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그들의 말만 들으면, 수구우파세력이 대미관계에서 자주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하고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만든다고 해서, 미사일주권을 갖게 되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한미 미사일지침을 설령 폐기한다고 해도, 미사일주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구우파세력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감추면서 세상을 속이려는 것이다.

미사일지침 폐기해도 미사일주권 갖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설령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해도 미사일주권을 갖지 못하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만일 한미 미사일지침이 폐기되면, 한국 정부는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거리가 그보다 긴 중거리 탄도미사일까지 생산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지만, 사거리 1,0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만들어낼 기술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2011년 1월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영선 의원은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한미 미사일지침의 구속을 받지 않으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1년 안에 개발할 수 있는 것처럼 장담했고, 2012년 3월 22일 <연합뉴스>는 한미 미사일지침을 대폭 개정하는 경우 사거리 1,0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1-2년 안에 개발할 수 있을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과대평가다.

지금 한국의 탄도미사일 기술수준은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100% 자체의 기술로 만들지 못하며, 거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은 미국에서 수입하여 조립해야 하는 실정에 있다. 미국산 핵심부품을 수입해서라도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만들면 미사일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미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하면, 미국은 그에 대한 보복조치로 자국산 미사일 핵심부품을 한국에 더 이상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그런 수출금지조치를 시행하면, 한국은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운용해오고 있는 사거리 300km의 탄도미사일에 들어가는 핵심부품도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 국무부에 군사물자교역통제국(DDTC)이라는 부서가 있는데, 바로 이 부서가 미국산 군사장비 및 관련부품의 해외수출을 감독하고 있다. 그런데 <한겨레> 2011년 11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군사물자교역통제국은 한국에서 2009년에 개발된 외장형 전파방해장비(ALR-200)에 미국 기술이 도용되었다고 의심하면서 그 국산장비를 파키스탄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차단하였다.

미국이 그처럼 수출차단조치까지 취한 배경에는 한국군 F-15K 전투기에 장착된 ‘타이거 아이(Tiger Eye)’라는 미국산 전자장비에 붙여놓은 봉인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타이거 아이’는 전투기가 적의 방공레이더망을 피해 저고도로 비행할 수 있게 하는 첨단장비다.

국무부 부차관보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단이 한국에 급파되어 한국군이 운용하는 각종 신형 무기들에 대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본국에 보고하였는데, 그 보고에 따라 미국은 미국산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를 비롯한 미국산 전략무기의 대한수출을 즉시 중지하였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은, 대미기술종속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있는지 말해준다. 한국이 그처럼 대미기술종속에 사로잡혀 있는 한, 미사일주권은 영영 찾지 못하는 것이다.

미군이 보유한 크루즈 순항미사일
미군이 보유한 크루즈 순항미사일


사거리 1,000km 탄도미사일과 핵보유능력의 상관관계

미사일주권이란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하는 미사일작전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 한국군은 자기가 보유한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하는 미사일작전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해도, 그 미사일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이 없으면 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사일주권을 말하기 전에, 작전통제권부터 찾아와야 한다. 미사일주권과 작전통제권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15년 12월 1일은 미국이 한국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한 날이다. 작전통제권을 반환하면 한미연합사령부도 해체된다. 2015년 12월 1일에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넘겨받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이론적으로는 한국군이 더 이상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사히신붕> 2011년 7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2월 1일 미국이 한국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반환한 이후에도 이른바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존속시킨다는 것인데, 이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6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 그 6대 권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나 마나 한국군을 작전통제하는 핵심권한이 분명해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원래는 미국이 한국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반환하는 것에 따라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전방에서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하였지만, 그런 계획을 바꿔 제2사단을 한미연합부대로 개편하여 전방에 그대로 남겨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미연합부대를 당연히 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게 될 것이므로, 한국군이 환수하는 작전통제권은 명색만 남게 된다. 다시 말해서, 2015년 12월 1일 이후에도 한국군의 실질적인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한국 정부는 2015년 12월 1일 명목상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는 것에 때를 맞춰 미국산 핵심부품을 가지고 만든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려고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방부가 공개한 미사일 발사 시연 장면
국방부가 공개한 미사일 발사 시연 장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탄도미사일은 방어수단이 아니라 공격수단이다. 한국 정부가 보유하려고 애쓰는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은 한반도 전역을 타격권 안에 두는 매우 강력한 공격수단이다.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남해안에서 발사하면, 북측 최북단인 함경북도 북쪽까지 날아간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은 북측에 대한 선제공격수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려는 한국 정부의 의도는 대북선제공격력 확보에 있는 것이다.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에는 재래식 탄두를 장착하지 않는다. 탄도미사일이 그처럼 먼 거리를 날아가면 타격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므로 탄두폭발력을 크게 강화하여 파괴력을 높여야 하는데, 타격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는 탄도미사일에 파괴력이 약한 재래식 탄두를 장착하는 것은, 개발비용만 많이 쏟아 붓고 실전효과는 건지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한 마디로,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는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본전도 못 찾고 밑지는 장사’인 것이다. 그래서 사거리 1,000km의 미사일에는 파괴력을 극대화한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군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미사일 능력에 걸맞은 핵보유능력까지 보유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된다.

2012년 6월 3일 새누리당 대권주자로 등장한 정몽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남측은 미국에 의존하는 핵전략을 넘어서야 하며, 핵무기를 당장 갖지 않더라도 핵보유능력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협상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새누리당 핵심인사가 한 술 더 떠서 핵보유능력까지 보유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늘어놓았으니 미국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손발 묶인 하위국가군에 한국이 속해 있다

미국을 추종하는 자본주의나라들의 군사협력체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미국이 핵확산금지조약체제(NPTR)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적용수준에 맞춰 세워놓은 위계질서다.

그 위계질서에서 영국과 이스라엘 같은 상위국가들은 미국의 기술지원까지 받아가며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일본, 독일, 캐나다 같은 차상위국가들은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을 보유하지는 못하지만,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하위국가들은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마저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이 핵확산금지조약체제와 미사일기술통제체제로 그런 하위국가군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핵확산금지조약과 미사일기술통제조약으로 손발이 묶인 하위국가군 중에서 특히 한국은 미국이 가장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대상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정세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정세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달리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훨씬 더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것이다.

더욱이 북측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하자,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감시와 통제가 이전보다 더 날카로와졌다. 대미예속이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예속적 상황에서, 이 땅의 수구우파세력이 사거리 1,000km의 탄도미사일과 핵보유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으니, 그것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헛소리를 몇 차례 하다가 결국 다시 굴종하게 된 것이다. 이번 경험은 치욕과 굴종을 강요하는 대미예속의 현실을 또 다시 드러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