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회복은 되었으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노동자 도시로 알려진 울산과 창원은 이 땅의 진보정치가 태어나고 자란 요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실시된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진보정치 요람에서 출마하였으나 모조리 낙선한 충격적인 이변이 일어났다. 다른 선거구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 요람을 새누리당에게 모조리 빼앗겼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받은 충격은 컸다. 왜 이런 충격적 이변이 일어났을까?
진보정치 요람을 새누리당에게 빼앗긴 이변을 두고 이러저러한 패인분석들이 나왔지만, 아전인수격 판단착오가 더러 눈에 뜨인다. 특히 야권연대전략을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정치와 계급투표전술을 주장하는 몇몇 좌파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정치 요람의 총선패인을 분석하면서 아전인수격 판단착오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울산과 창원의 선거구들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모조리 낙선한 까닭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우경화'도 모자라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도 야권연대를 실현하는 '우경화'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그 두 정권의 반노동정책으로 고통을 겪은 노동계급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를 반대하였고, 따라서 야권연대에 대한 노동계급의 반감이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로 나타났다는 게 그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야권연대를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정치와 계급투표전술을 주장한 좌파정치활동가들이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지지표를 주지 않은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울산과 창원의 각계각층 유권자들이 좌파정치활동가들처럼 야권연대를 반대하거나 야권연대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에 지지표를 주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으며, 그런 식의 단정이야말로 야권연대를 반대하면서 '좌파정치 독자노선'을 고집해온 좌파정치활동가들이 자기들의 견해를 합리화, 정당화하려는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정치 요람을 새누리당에게 빼앗긴 총선이변에 대해 반성할 때, 몇몇 좌파정치활동가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총선결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당득표율을 살펴보면,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은 17대 총선에서 13.03%, 18대 총선에서 5.68%, 19대 총선에서 10.03%를 얻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이 18대 총선 정당득표율에서 무려 7.35% 포인트나 급락한 최악의 참패를 당한 원인은 분당사태에 있었다.
만일 분당사태가 없었더라면, 18대 총선에서 15% 수준으로 올라섰을 것이며, 이번 19대 총선에서 17% 이상으로 더 올라갔을 것이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의 정당득표율 변동을 보면, 통합진보당은 18대 총선에서 얻은 정당득표율보다 4.62% 포인트를 더 얻어 10%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4년 전에 있었던 분당사태로 생긴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창원 성산에서의 총선패인
창원 성산의 정당득표율을 보면, 통합진보당 18.75%, 새누리당 45.19%, 민주통합당 26.48%, 진보신당 3.62%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창원 성산의 정당득표율 변동은, 통합진보당 +1.41% 포인트, 새누리당 +6.56% 포인트, 민주통합당 +16.07% 포인트, 진보신당 -0.40% 포인트로 나타난다. 진보신당만 정당득표율이 떨어졌고, 나머지 세 당은 모두 올라갔는데 특히 민주통합당이 무려 16.7% 포인트나 올라갔다.
창원 성산에서 왜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급등하였을까? 이번 19대 총선에서 창원 성산의 무당파 유권자들이 민주통합당에게 정당지지표를 몰아주었을 뿐 아니라, 통합진보당 지지층 가운데 일부가 표심을 바꿔 민주통합당에게 투표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원 성산에서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과 통합진보당 지지층 일부의 표심이 왜 갑자기 민주통합당에게 쏠렸을까? 그런 쏠림현상은 '진보의 분열'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담한 반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창원 성산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가 후보단일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였는데, 그런 갈등을 목격한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과 통합진보당 지지층 일부의 표심이 민주통합당에 쏠렸던 것이다.
창원 성산의 후보득표율은, 새누리당 후보 52,502표, 통합진보당 후보 46,924표, 진보신당 후보 7,630표였다.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표를 합하면 새누리당 후보보다 2,052표가 많은 데, 이것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였더라면 새누리당 후보를 능히 꺾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분당사태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는 판에, 진보양당이 선거판에서 또 다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진보양당의 '공멸'은 불가피하였다.
창원 의창에서의 총선패인
창원 의창의 정당득표율을 보면, 통합진보당 17.99%, 새누리당 51.09%, 민주통합당 23.61%, 진보신당 1.19%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창원 의창의 정당득표율 변동은, 통합진보당 +0.65% 포인트, 새누리당 +12.46% 포인트, 민주통합당 +13.83% 포인트, 진보신당 -2.83% 포인트로 나타난다. 창원 성산과 마찬가지로 창원 의창에서도 진보신당만 정당득표율이 내려갔고, 나머지 세 당은 모두 정당득표율이 올라갔는데, 민주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이 가장 많이 올라갔다.
창원 의창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에 후보단일화가 성공하여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런데도 정당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51.09%를 기록하였고,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을 합해도 41.60%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지역의 정당득표율에서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야권단일후보와 새누리당 후보가 맞붙은 창원 의창에서 왜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득표율이 압도적으로 나온 것일까?
창원 의창의 통합진보당 후보는 그 지역에서 노동운동의 대부로 알려져있고 지금도 민주노충 경남본부 지도위원이며 이번 총선에서 지역 노동조합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더욱이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하였으며,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고 있었고, 따라서 당선 기대가 높았는데 선거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 야권단일후보가 49,273표를 얻고 새누리당 후보가 58,140표를 얻음으로써 통합진보당 야권단일후보가 8,867표나 뒤진 것이다. 이것은 창원 의창에서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하여 새누리당 후보와 맞선 1 대 1 구도를 만들었지만, 선거전술에 어떤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패하였음을 말해준다. 진보성향 지지층의 표심을 결집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지역에서의 총선패인
울산지역의 정당득표율을 보면 통합진보당 16.03%, 새누리당 49.46%, 민주통합당 25.22%, 진보신당 2.03%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울산지역의 정당득표율 변동은, 통합진보당 +1.79% 포인트, 새누리당 +6.60% 포인트, 민주통합당 +15.89% 포인트, 진보신당 -2.43% 포인트로 나타난다.
창원 성산, 창원 의창과 마찬가지로 울산지역에서도 진보신당만 정당득표율이 내려갔고, 나머지 세 정당의 정당득표율은 모두 올라갔는데, 특히 민주통합당 정당득표율이 압도적으로 상승하였다. 민주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은 울산지역에서 15.89% 포인트나 상승하였는데, 이것은 창원 성산에서 얻은 정당득표 상승률 16.07% 포인트와 비슷한 수준의 가파른 상승이다.
이것은 울산지역의 무당파 유권자들이 민주통합당에게 정당지지표를 몰아주었을 뿐 아니라, 통합진보당 지지층 가운데 일부가 표심을 바꿔 민주통합당에게 투표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울산지역 선거구들 가운데 통합진보당과 새누리당이 1 대 1 구도로 맞선 선거구는 세 곳인데, 통합진보당은 북구에서 3,634표차로 패했고, 동구에서 6,362표차로 패했고, 울주군에서 24,362표차로 대패했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1 대 1 구도로 맞선 남구갑에서는 민주통합당이 12,774표차로 대패했다. 통합진보당, 새누리당, 진보신당 3파전이 벌어진 남구을에서 통합진보당은 13,690표차로 대패했고,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진보신당 3파전이 벌어진 중구에서는 민주통합당이 12,846표차로 대패했다.
울산지역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커다란 표차로 모조리 패한 것은, 울산지역 노동자들이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투표하였더라도 새누리당에게 투표하였음을 말해준다.
노동자 도시라고 해서 통합진보당이 민주노총 조합원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표전술에만 의존해서는 부족하고,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는 새로운 선거전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대 총선에 대한 네 가지 분석결과
첫째, 야권연대를 실현한 통합진보당의 정당지지율 상승세는 창원 성산 +1.41% 포인트, 창원 의창 +0.65% 포인트, 울산지역 +1.79% 포인트인 반면,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이른바 '좌파정치 독자노선'을 추구한 진보신당의 정당지지율 하락세는 창원 성산 -0.40% 포인트, 창원 의창 -2.83% 포인트, 울산지역 -2.43%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좌파정치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 번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반대하였고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를 거부한 노동자들이 총선투표에서 통합진보당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진보정치 요람에서 모조리 낙선하였다면, 진보신당의 정당득표율이 조금이라도 상승했어야 한다.
만일 진보정치 요람의 정당득표율에서 진보신당이 상승세를 보이고 통합진보당은 하락세를 보였더라면,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전략을 폐기하고 진보정치 독자노선으로 전환하여야 하겠지만, 선거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 진보정치 요람을 새누리당에게 빼앗긴 패인이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전략에 있지 않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진보정치 요람에서 통합진보당이 패한 원인에 대한 좌파정치활동가들의 분석은 오류다.
둘째, 이번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전략으로 새누리당과 맞서 1 대 1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지만, 야권연대를 실현할 때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야권연대를 실현하여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만 통합하고, 그렇게 통합한 '도로 민노당'이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독자출마전술로 나갔다면 이번 총선에서 5석도 건지지 못하고 재기불능의 완패를 당하였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는 중도에 포기하여야 할 일시적 전술이 아니라, 이번 총선결과를 교훈으로 삼고 앞으로 더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승의 전략이다.
셋째, 4년 전에 있었던 분당사태 후유증이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진보정치 요람에서 총선감표요인으로 작용하였고, 특히 진보양당이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각각 출마한 지역에서 '공멸'하였다. 진보정치의 분열은 패배이고 진보정치의 단결은 승리라는, 귀가 아프게 들어온 너무도 평범한 진리가 이번 총선에서 또 다시 현실로 입증된 것이다.
넷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진보정치 요람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표전술에만 의존해서는 턱없이 부족하고,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는 새로운 선거전술을 개발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안았다. (2012년 4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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