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패배는 쓰라리고 아픈 교훈이다
4.11 총선에서 야권연대전략이 패하였다. 제19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려던 통합진보당이 얻은 의석수는 목표의석보다 7석이나 모자랐고,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얻은 정당득표율 10.3%는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정당득표율 13%에 미치지 못하였다.
다른 한 편,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려던 민주통합당은 제17대 국회에서 확보하였던 152석보다 25석이나 적게 얻는 바람에 완패하였다.
반면에, 야권연대의 정적인 새누리당은 제18대 국회에서 확보하였던 153석에서 단 한 석밖에 잃지 않은 152석을 확보하여 또 다시 과반다수당의 지위를 고수하였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157석이나 되고,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의석은 합해도 140석밖에 되지 않는다.
2012년 4월 6일 블로그 '변혁과 진보'에 게시된 나의 글 '진보정치의 전진운동, 돌파하느냐 주저앉느냐'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15석 정도를 얻고 민주통합당이 125석 정도를 얻어 양당 의석수가 140석 수준에 머문다면 국회의결권을 장악하지 못하게 되며, 따라서 양당이 제19대 국회에서 추진하려던 공동정책은 새누리당의 반대와 저항을 돌파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공동정책에 명시된 민주개혁이 부진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안타깝게도, 그런 우려는 이제 현실로 되고 말았다.
패배는 누구에게나 쓰라리고 아픈 것이지만,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해야 승리를 위한 교훈이 된다. 입에 무척 쓴 약이 병치료에 좋은 법이다.
패배가 명백한 데도, '절반의 성공'이니 하는 따위의 언어요술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은 더 치명적인 패배로 끌려가는 어리석은 짓이다. 패인을 정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극복방도를 찾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뛰는 것이 진보정치의 올바른 태도다.
△ 4월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조준호,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대표가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총선패인은 무엇일까? 지금 패인분석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패인분석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야권연대에 맞춰져야 한다. 민심의 요구에 따라 야권연대를 실현하였지만, 민심을 얻을 만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권연대전략이 패배하였던 것이다. 야권연대를 패배로 끌어간 요인은 무엇이었던가?
어떤 사람은 민심의 요구에 따라 야권연대를 실현하기는 하였지만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민주개혁의 확실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하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을 야권연대의 패인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만일 야권연대가 확실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해서 패했다면, 새누리당은 무슨 확실한 전망을 제시해서 이겼다는 말인가?
야권연대의 총선패인은 무엇이었나?
야권연대의 총선패인은 야권연대를 실현하기는 하였지만, 실현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그 무감동의 경로를 역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아는 것처럼, 야권연대는 두 단계로 추진되었다. 제1단계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3당통합을 한 편으로 하고, 민주당의 대중단체 개별인사 영입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이중적 추진과정이었고, 제2단계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정치연대였다.
첫째, 야권연대는 제1단계부터 난관을 겪었다. 국민참여당과는 통합할 수 없다고 생트집을 잡는 목소리가 민주노동당 안에서 커지면서 시간만 질질 끌던 3당통합은 결국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하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결합하는 식의 파행으로 간신히 매듭을 지었다.
그런 파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실망하였다. "진보정당이 좀 다른 줄 았았더니, 당권투쟁으로 자기들끼리 싸움질하는 수구정당과 별반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실망이었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한 야권연대 제2단계는 감동적으로 추진되었나? 그렇지 못하였다. 야권연대 제2단계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주요원인은 민주통합당의 패권적 태도에 있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되레 실망을 안겨준 야권연대가 아무리 정권심판론을 외쳤던들 총선정국에서 무슨 수로 민심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둘째,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적 대중정당의 최대 강점은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 간격 없이 밀착하여 그들의 애환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정치활동을 힘있게 전개할 때, 그 때 비로소 진보적 대중정당이 근로대중의 믿음직한 정당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과 올해 총선정국을 연결지어 생각할 때, 통합진보당의 두 당선자가 지닌 특이한 경력이 눈길을 끈다. 오병윤 당선자는 광주시 서구 장난감도서관 관장이라는 현직에 있고, 김미희 당선자는 성남시 초등학교학부모회장협의회 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다.
지역주민들 속에 들어가 장난감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이나 초등학교학부모회장협의회를 이끄는 일은 얼핏 보기에 사소한 비정치적 활동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지역주민의 생활현장에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진보적 대중정당이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최고의 정치활동이다.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을 경시외면하면서 입으로만 '자본주의 극복'을 외우는 행세식 좌파는 절대로 민심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통합진보당은 아주 심각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 4.11 총선 전에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을 추진할 시간적 여유가 통합진보당에게 없었다는 점이다.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는 문제를 놓고 당내에서 논쟁만 벌이다가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을 펼칠 시간을 잃어버린채 4.11 총선에 허겁지겁 뛰어든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그처럼 진보정당의 최대 강점을 살리지 못하였으니 4.11 총선에서 무슨 수로 민심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정치의 전략거점이라고 불렀고, 세간에서 '진보정치 1번지'라고 불린 울산지역과 마창지역에서 통합진보당 총선후보들이 모조리 낙선한 이변이 일어났는데, 그런 이변의 근본원인도 역시 통합진보당이 현장밀착형 대중정치활동을 그 지역들에서 펼치지 못한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통합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치의 전략거점 두 군데를 잃은 것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셋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과도 통합하지 않겠다고 하였던 진보신당의 이른바 '독자노선'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으므로 이 글에서 논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안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당시 민주노동당 내부논쟁을 좀 거칠게 표현하면, 당권파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주장하였던 반면, 비당권파 일부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하였고, 비당권파의 다른 일부는 견해표명을 유보하면서 사태추이를 지켜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비당권파 일부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 탈당파들, 존재감 없는 진보지식인들과만 결합하여 '도로 민노당'을 건설하였더라면, 4.11 총선에서 진보신당과 함께 '전멸'하였을 것이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하였던 비당권파 일부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요구와 압력이 차츰 거세지자 나중에 하는 수 없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지만, 그들은 야권연대 제1단계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실패책임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난제는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실패와 야권연대의 민심획득 실패로 2017년 통합진보당의 단독집권구상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야권연대로 국회의결권을 장악하여 민주개혁을 5년에 걸쳐 완수하려던 구상도 희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야권연대로 민주개혁을 완수하여 사회변혁을 준비하기는커녕 새누리당의 재집권도 막아내지 못할 판이다.
박근혜가 총지휘한 새누리당이 영남권 표밭을 지키는 데 성공하고, 자연도태 중인 자유선진당으로부터 충청권 표밭까지 가져가는 데 성공함으로써 대권주자 박근혜가 아주 우세한 지위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줄곧 수위를 지켜온 그녀가 새누리당의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대선구도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타고앉은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곧 시작될 올해 대선정국에서 야권연대를 실현하여 맞서더라도 박근혜 대권질주를 저지하기 힘들어졌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는 미국의 선거개입공작이 기승을 부릴 터인데, 총선에서도 패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가 무슨 수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재 대선정국의 전망은 야권연대에게 비관적이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에게 과반의석을 내주고, 대선에서마저 새누리당 후보에게 정권을 안겨주면 완패 중의 완패를 당하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의 완패는 이 땅에서 오랜 기간 동안 피땀을 흘리며 한 걸음씩 전진시켜온 사회변혁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며, 민주주의혁명을 5년이나 더 지체시킬 것이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반대한 민주노동당 비당권파 일부의 그릇된 행동이 야권연대의 실현과정에서 파행을 불러왔고, 그런 파행이 총선패배를 낳았고, 총선패배가 대선패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악순환은 단순히 선거패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단계 사회변혁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민주주의혁명을 지체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것처럼,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사회변혁전망을 어둡게 하고 민주주의혁명을 지체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라도 일찍 끊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근로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비상한 대선전략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논제를 간략히 언급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전략을 더욱 심화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은 올해 대선에서 전략적으로 연대하지 않으면 민심으로부터 멀어져 결국 '공멸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는 통합진보당이 현재 조성된 난국을 뚫고 나아갈 유일한 돌파구다. 야권연대를 실현하되, 국민에게 극적인 감동을 주는 야권연대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현실정치에서 무감동은 무의미하다.
둘째, 야권연대전략에 기초한 인물투표전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좌파성향 정치활동가들이 말하는 계급투표전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관관념에 지나지 않으며, 멋진 정책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여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책투표전술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4.11 총선에서 또 다시 입증되었다.
명백하게도, 유권자 대중은 계급의식을 가지지 않으며, 정당의 정책을 읽어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호감이 가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의 척박한 정치현실이다. 따라서 인물투표전술을 쓰는 것이 현실에 부합한다. 수구정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물투표전술의 위력을 간파하고 그 전술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에 맞선 진보정당은 계급투표니 정책투표니 하는 비현실적인 고정관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셋째, 올해 대선에서 안철수가 제3후보로 등장하여 3파전이 벌어지는 경우 야권연대후보는 필패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안철수가 제3후보로 등장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가 제3후보로 등장하더라도 표심이 그에게 쏠리지 않도록 막는 차단장치가 요구된다.
올해에 사회변혁전망을 안고 민주개혁완수를 향해 전진해야 할 통합진보당은 수구정당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고 비상체제를 가동하여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난제는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2012년 4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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