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진보정치의 첫 박자
음악에서 가장 경쾌한 느낌을 안겨주는 선율은 3박자 선율이다. 그래서 경쾌한 무도곡은 3박자로 연주된다. 지난 시기 동방 음악사에서 3박자를 경쾌하게 연주하는 법은 우리 민족만 알고 있었다. 동방의 다른 나라 민족음악에서 찾을 수 없는 3박자 선율이 우리 민족음악에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경쾌한 선율을 즐길줄 아는 뛰어난 음악성을 타고났음을 말해준다.
사회변혁운동을 3박자 운동에 비유할 수 있다. 사회변혁발전은 객관현실, 주체역량, 촉발계기라는 진보정치 3박자에 맞춰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러한 3박자 운동이 절정에 이를 때 그 때 비로소 승리한다는 뜻으로 쓰는 비유다.
진보정치의 첫 박자는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에 맞춰 운동한다. 객관현실이 사회변혁의 요구에 맞게 무르익어야 진보정치의 첫 박자가 힘찬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란 수구정권의 경제정책이 전면적으로 파산하고, 그에 따라 사회계급모순이 격화된 사회정치적 현실을 말한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는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수구정권이 숨겨온 부패와 전횡과 악행이 경제정책의 전면파산으로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그에 따라 수구정권과 수구정당에 대한 대중의 불만, 반감, 저항이 부글부글 끓게 될 때, 바로 그렇게 될 때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땅의 대중은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해 심한 불만을 반감을 느끼고 있지만, 저항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것은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계속해서 무르익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파산과 갈등의 굉음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 저항행동은 미흡하다. 객관현실은 진보정치의 첫 박자에 아직 맞지 않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둘째 박자
진보정치의 둘째 박자는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이란 사상력과 조직력을 뜻한다.
사상력이란 변혁사상으로 무장한다는 뜻이니, 변혁주체가 변혁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해야 올바른 변혁전략과 변혁전술을 내올 수 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유럽식 변혁사상을 버리고 이 땅의 현실에 맞는 우리식 변혁사상을 가질 때, 과학적인 변혁전략과 변혁전술이 나온다.
조직력이란 변혁조직을 건설한다는 뜻이니, 변혁주체가 우리식 변혁사상에 따라 변혁조직을 건설해야 변혁전략과 변혁전술을 편향 없이 실행할 수 있다. 변혁조직 건설이란 진보적 대중정당과 선도적 변혁조직을 건설한다는 뜻이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어려움을 뚫고 기어이 통합진보당을 창당한 것은, 진보정치의 둘째 박자에 발을 맞춰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서 변혁조직을 건설하는 과업과 관련하여 두 가지가 당면과제가 더 제기되었다.
첫째, 진보적 대중정당은 건설하였지만 아직 당역량이 약하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당면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을 더욱 강화, 발전시킨다는 말은, 이제껏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처럼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한다는 뜻이다.
지금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실현하여 원내교섭단체로 진출하려는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당면과제와 직접적으로 결부된다.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로 진출해야 정치적 지위가 높아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며,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지위와 영향력을 가져야 대중들 속에 더욱 파고들어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는 대중정치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통합진보당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무조건 야권연대를 끝까지 고수하고 원내교섭단체로 진출해야 사회변혁이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황을 간파한 진보정치의 정적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야권연대를 저지하고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을 차단하려고 갖은 술책을 다 동원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정치의 정적들이 선거국면 곳곳에 파놓은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최고 수위로 높일 필요가 있다.
둘째, 진보적 대중정당은 건설되었으나, 선도적 변혁조직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강화, 발전시키는 것과 더불어 선도적 변혁조직을 건설하는 당면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회변혁의 싻을 자르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들을 동원해온 수구정권이 퇴장한 이후,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들이 줄줄이 철폐될 때, 그 때 비로소 선도적 변혁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공동정책에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들을 철폐하기로 합의한 것은 선도적 변혁조직 건설을 위해서 매우 고무적이다.
진보정치의 셋째 박자
진보정치의 셋째 박자는 사회변혁의 촉발계기다.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고,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사회변혁의 촉발계기가 없으면 사회변혁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변혁의 촉발계기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고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이 형성된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고, 사회변혁의 주체역량도 아직 충분하지 못한 이 땅의 현재상황에서 사회변혁의 촉발계기가 생겨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수행해야 할 당면과업은 진보통합당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고, 선거국면에서 야권연대를 고수하여 사회변혁발전에 유리한 객관현실을 조성함으로써 선도적 변혁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우리식 사회변혁론에 대한 학습과 연구를 심화시켜 우리식 변혁사상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2013년에 민주통합당이 집권한다 해도
민심이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렸으므로, 새누리당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패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물론 새누리당의 선거패배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추진하는 강력한 야권연대전술이 승리하였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만일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이제와서 야권연대를 중단하면 선거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며 그 어수선한 틈을 노린 새누리당은 어부지리를 틀어쥐고 승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권분열이 동반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끝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야권연대가 중단될 가능성보다는 새누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보인다.
그러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하여 2013년에 민주통합당 정권이 등장하는 경우, 그런 식의 정권교체가 이 땅의 사회변혁발전에 과연 이로운 것일까 아니면 해로운 것일까?
첫째,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민주통합당 집권은 이명박 집권기에 격화되던 사회계급모순을 완화시켜줄 것이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대중의 불만과 반감을 일정하게 해소시켜줄 것이다. 이것은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는 현 추세를 가로막는, 뜻하지 않은 차단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처럼 진보정치의 첫 박자를 가로막은 차단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민주통합당 집권은 사회변혁발전에 해로울 것으로 예견된다.
물론 민주통합당 집권이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을 강화,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는 현 추세를 가로막는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땅의 경제가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망가진 것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파탄위기에 종속적으로 연동되어 망가진 것이므로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더라도 경제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2013년 이후에도 사회계급모순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그러한 전망은 전체가 아니라 한 측면만 보는 것이다. 이 땅의 경제파탄이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파탄위기에 종속적으로 연동되어 망가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제파탄 정도를 비교하면, 이 땅보다 더 심하게 파탄된 그리스나 스페인도 사회계급모순 격화가 일정수준에서 머물고 더 격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럽연합의 직접개입으로 위기상황을 정체시켜주는 반짝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이 땅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직접개입으로 위기상황을 정체시켜주는 반짝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바로 그런 반짝효과가 사회변혁의 객관현실이 무르익는 현 추세를 가로막게 될 것이다. 반짝효과는 파상적인 부침운동을 거듭하면서도 민주통합당 집권 5년 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2013년 이후 이 땅의 사회계급모순은 현 상태에서 정체되거나 아니면 현 상태보다 약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위의 논지를 종합하면, 민주통합당 집권은 사회변혁발전에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한 양면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 민주통합당 집권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의 인식과 투쟁에 달렸다. 민주통합당 집권을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을 강화, 발전시키는 환경조성의 기회로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 전력한다면 민주통합당 집권이 사회변혁발전에 이로울 것이다.
둘째,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민주통합당 집권은 이명박 정권이 완전히 파탄시킨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한 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이 땅의 사회변혁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자주적 평화통일의 지름길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는 사회변혁발전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환경으로 되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가 사회변혁발전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환경으로 되는가 또는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도 역시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의 인식과 투쟁에 달렸다.
2013년에 민주통합당 정권이 등장하여 정세가 지금과 달리 양면성을 지니게 되면, 통합진보당도 당연히 양면전략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다. 2013년에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 통합진보당의 전략은 새 정권의 시장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민중의 이익을 위하여 타격을 가하고, 새 정권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해서는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지지해주는 양면전략이 될 것이다.
올해 사회변혁발전을 위한 진보정치의 3박자 운동은 선거국면을 지나고 있고, 2013년에도 진보정치의 3박자 운동은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엇박자를 허용하지 않는 진보정치 3박자에 발을 맞추라. (2012년 3월 2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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