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06

서방의 다름슈타트, 동방의 희천

진실의 말팔매 <2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독일 라인(Rhine)지방 남쪽에 인구 14만 명이 사는 다름슈타트(Darmstadt)라는 도시가 있다. 그 도시가 유명해진 까닭은, 1990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무동력 주택(Passivhaus)을 시범적으로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원래 무동력(passive)이란 말은 동력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에너지절약(low-energy)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무동력 주택에서는 일반 주택에서 쓰는 에너지의 10% 정도만 필요하다.

시범적으로 건설한 에너지절약형 주택이 큰 성과를 내자, 19969월 다름슈타트에 무동력 주택 연구원(Passivhaus-Institute)이 설립되어 에너지절약형 건축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약 25,000 채의 에너지절약형 건물이 세워졌다. 미국 일리노이주 얼바나(Urbana)에 미국 최초의 에너지절약형 건물이 시범적으로 세워진 때는 2003년이고, 미네소타주 베미지(Bemidji)에 본격적인 에너지절약형 건물이 세워진 때는 2006년이다. 세계 최초로 규격화된 에너지절약형 건물이 아일랜드에 세워진 때는 2005년이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에너지절약형 건물은 15,000-20,000채를 헤아린다.

이처럼 에너지절약형 건축술은 지금 기술선진국들에 막 도입되기 시작한 최첨단 건축기술이다. 이 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이 가장 앞선 나라는 독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측이 그 최첨단 기술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 사연은 이렇다.

자강도 남쪽에 있는 희천시의 희천역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북측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공작기계공장이 있다. '기계공업의 어머니공장'이라고 불리는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이다. 거기서 생산된 각종 기계설비들이 북측 각지에 있는 120여 개의 기계공장들과 연합기업소들에 공급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희천기계종합공장은 북측에서 가장 현대화된 공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20105월 어느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희천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일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선 것으로, 리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선군시대에 새로 태여난 공장답게 한 번 멋들어지게 표본을 잡아봅시다. 힘을 넣읍시다. 건축물을 최상급으로 빠른 시간 내에 만듭시다. 표본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참관조직도 하면서 우리 사람들도 계몽시켜야 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이상적인 표본공장을 만들어보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은, 공장설비만 첨단기술로 개조할 것이 아니라 공장설비들이 배치된 공장건물도 첨단기술로 개조하자는 뜻이다.

2010619CNC기술로 개조된 전극가공작업장을 현지지도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작이 절반입니다. 우리의 땅밑에는 자원이 가득 차있습니다. 이 자원을 어떻게 리용하는가 하는 것은 동무들의 머리에 달려있습니다." 공장 지하에 자원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그 공장 지하에 광물자원이 묻혀있다는 뜻이 아니라, 에너지원천이 묻혀있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하수를 이용한 에너지절약형 건물을 세우는 첨단 건축술의 개발과 보급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구상에 따라,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희천기계종합공장을 에너지절약형 건물로 개조하기 위한 시범사업에 달라붙었다. 세계적으로 앞선 21세기 표본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최첨단 돌파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힘있게 벌어졌다.

20101221<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1세기 표본공장으로 전변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불과 6개월 만에 세계적으로 앞선 에너지절약형 건물을 완공한 것이다. 이름도 희천기계종합공장에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으로 바꾸었다. 그 공장은 최첨단 수준에서 CNC화를 실현한 거대한 공장이다. 4축부터 9축에 이르기까지 각종 CNC공작기계들이 가득하다. 축구장 넓이의 일곱 배가 되는 드넓은 건물이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동차를 타고 공장 안을 돌아보았다. 어떤 것이든지 다 만들 수 있는 고도의 기계공학기술로 '무장'되어 있었고, 세계적으로 앞선 에너지절약형 공장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21세기 표본공장으로 전변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 (<로동신문> 2011310일 보도사진)
 
북측에 처음으로 건설된 이 에너지절약형 공장을 북측에서는 록색형 공장이라 부른다. 록색형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북측이 개발한 기술은 무엇이었을까? 공장건물 전체를 단열재로 마감하여 보온효과를 높이고, 공장주변 지하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를 가지고 겨울철 난방과 여름철 냉방을 보장하여 에너지 사용량을 결정적으로 줄인 것이다.

지하수를 이용하여 냉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는 설비를 지열교환기(underground heat exchanger)라 하는데, 그 원리를 이렇다. 지표 밑 3m에 흐르는 지하수의 온도는 1년 내내 변함없이 섭씨 10-15도로 유지되는데, 그 지하수를 끌어올려 열압축하면 섭씨 40-50도의 지열수로 된다. 겨울철에는 열압축한 지열수를 이용하여 실내온도를 높이고, 여름철에는 열압축을 하지 않은 섭씨 10-15도의 지하수로 실내온도를 낮춘다. 그렇게 하면, 에너지는 종전의 20분의 1밖에 들지 않는다.

축구장 넓이의 일곱 배나 되는 큰 공장에 냉난방을 보장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였으므로, 이전에는 냉난방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 CNC화된 설비들의 정밀공정에는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은 적당한 실내온도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를 지열교환기가 완벽하게 해결한 것이다.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서 개발한 첨단지열설비 (<로동신문> 201153일 보도사진)
 
<조선중앙통신> 201152일 보도에 따르면,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서 첨단 지열수 기술을 자체로 개발하여 설비생산을 시작하였다. 그 기업소에서는 보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첨단 압축기계 설계를 완성하였고, 한 달 만에 시제품을 생산하였다. 바로 이 설비가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에서 가동되고 있는, 북측에서 자체 기술로 개발한 '우리식 지열교환기'. 보도에 따르면, 북측 각지에 있는 기계공장들에서 '우리식 지열교환기'를 대대적으로 생산하여 보급한다고 한다. 이것은 1-2년 안에 북측의 모든 공장들이 록색형 공장으로 개조된다는 뜻이다. 북측의 공학기술은 CNC부문에서만 아니라 녹색건축부문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20115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