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01

동해로 움직이는 백금산

진실의 말팔매 <1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6월의 눈부신 햇빛이 비쳐든 골짜기를 감돌아가는 북대천의 푸른 물결. 2009년 6월 어느 날, 마천령 기슭으로 이어진 긴 계곡을 따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그러나 세상에 잘 알려지 않은 '보물산'들이 늘어선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쁨에 넘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는 잘 살 날이 눈앞에 왔다." (조선신보 2009년 8월 8일)

지도를 펴놓고 함경남도 동북부를 살펴보면, 북대천과 남대천이 흐르는 단천땅이 눈길을 끈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북대천 계곡의 맨 윗쪽부터 대흥청년영웅광산, 검덕광업련합기업소, 룡량광산, 동암광산이 줄지어 있고, 남대천이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단천제련소가 있다. 대흥청년영웅광산에서는 확인매장량이 24억t이 되는 마그네사이트(magnesite)를 캐고, 검덕광업련합기업소에서는 확인매장량이 3억t이나 되는 납과 아연을 캐고, 노천광산인 룡량광산에서는 확인매장량이 36억t이나 되는 마그네사이트를 캐고, 동암광산에서는 인회석을 캔다.

단천제련소는 검덕광업련합기업소에서 캐낸 아연정광을 제련하고, 단천마그네샤공장은 대흥청년영웅광산과 룡량광산에서 캐낸 마그네사이트를 가공하여 마그네시아 클링커(magnesia clinker)를 생산한다. 그리고 단천광산기계공장은 각종 광산설비와 부품을 생산하여 단천지구 공장들에 공급한다.

광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면, 단천지구에 있는 비철금속 생산기지에 어떤 '보물'이 묻혀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북측은 그 광물들의 매장량에 대해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 매장량 또는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드는 무진장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마그네사이트, 아연, 납, 금, 은, 몰리브덴, 게르마늄, 흑연, 석면 등 25종의 값진 비철금속 광물이 묻혀있다.  

단천지구 '보물산' 가운데서도 '백금산'이 단연 눈길을 끄는데, 룡량광산이 바로 '백금산'이다. 룡량광산을 '백금산'이라 부르는 까닭은, 흰색 마그네사이트 원광석을 노천광맥에서 파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그네사이트 광산이기 때문이다. 마그네사이트 원광석을 가공하면 마그네시아가 되는데, 마그네시아는 합금, 내화물 제조, 비료, 화학, 전기, 의약품, 고무, 제지, 우라늄정제, 절연물질, 페인트, 잉크, 유리 등에서 널리 쓰이는 매우 중요한 광물이다. 항공기와 미사일을 만들 때도 마그네슘 금속합금이 들어간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현대문명은 마그네시아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백금산'에서 50년이 넘도록 마그네사이트 캐냈지만 아직 40분의 1밖에 캐내지 못했는데, 최근에 '백금산'에서 또 다른 마그네사이트 대광맥을 새로 발견하였으니 어찌 무진장하다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북측은 단천지구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2011년 1월 5일 남측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주요통계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단천지구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은 60억t이다. 단천마그네샤공장의 연간 생산량이 300만t이므로, 앞으로 2,000년 동안 캐낼 수 있는 '백금'이 묻혀있는 것이다. 따라서 '백금산'의 화폐가치는 2조6,000억 달러다.

'백금산'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았던 일제 침략자들은 1917년에 식민지 조선의 광업권을 강탈한 뒤에 '백금산'에서 30여 년동안 각종 값진 광물 21만t을 일본으로 약탈해갔다. 미국도 '백금산'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6.25전쟁 시기 미국군 전투기들은 북측 산업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하면서 북측 전역에 잔악무도한 '융단폭격'을 퍼부었는데, 특히 '백금산'을 파괴하기 위해 단천지구에 2,000번 이상 집중폭격을 가하여 그 일대를 초토화하였다.

'백금산'의 시련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래 마그네사이트를 채굴하고 가공하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북측은 중유와 콕스(coke)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이후 중유와 콕스를 북측에 수출하는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북측에게 현금결재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북측의 중유와 콕스 수입량이 급감하였고, 단천지구 광물생산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그토록 혹심하였던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자력갱생을 향한 강한 집념이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죽을 먹으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연구와 실험에 달라붙어 애쓴 끝에 기어이 새로운 공법 개발에 성공하였다. 콕스를 쓰지 않고 무연탄을 써서 마그네시아 클링커를 생산하는 주체공법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하여 2003년 3월부터 시작된 생산공정 현대화작업은 2005년 11월에 끝났고, 이제는 모든 생산공정을 컴퓨터로 조종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 2006년 11월 29일) 이처럼 생산공정을 CNC체계로 현대화하였으니, 광물생산이 크게 증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광물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공정에서 나오던 분진이 크게 줄어들어 북대천 자연환경도 깨끗해졌다.

2조6,000억 달러짜리 '백금산'을 현대식 생산공정으로 캐내기 시작하였으니, 북측 내부의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아돌아서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일만 남았다. 마그네사이트를 마그네시아 클링커로 가공하여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일은 2000년 5월에 설립된 조선마그네샤크링카총회사(Korea General Magnesia Clinker Industry Group)가 맡아보고 있다. 나중에 조선아연총회사가 통합된 이 총회사 산하에는 룡양광산, 대흥청년영웅광산, 백바위광산을 비롯한 3개의 마그네사이트 생산기지, 2개의 마그네시아 가공공장, 철도와 항구를 관할하는 운송회사, 해외판로개척을 담당하는 무역회사가 망라되었다.

"우리의 마그네샤 크링커 공업은 무진장한 원료원천과 높은 기술, 풍부한 경험에 토대하고 있으므로 발전전망이 대단히 크다." 이것은 2009년 6월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단천마그네샤공장을 현지지도할 때 남긴 말이다. 2010년 12월 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단천마그네샤공장을 또 다시 현지지도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가 단천지구 현지지도를 자주 하는 까닭은, 그만큼 '백금산'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12월 초에 단천마그네샤공장을 현지지도하였을 때는 그 공장만 찾은 것이 아니다.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단천항 공사현장도 현지지도하였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득히 뻗어간 방파제들과 부두준첩장, 각종 방파제용 부재들"을 바라보면서, "단천항 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며,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단천항에서 뱃고동 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하자는 것이 당의 결심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획에 따르면, 2012년부터 단천지구에서 생산된 마그네시아 클링커는 단천항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가 세계시장에 수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2조6,000억 달러짜리 '백금산'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동해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마그네샤크링카총회사를 이끄는 경영진 가운데 한 사람인 전우섭 부총사장은 "자본주의나라의 독점재벌과 맞설 수 있는 기업체를 꾸리자고 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그 거대한 기업체가 자체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고 남은 이윤은 모두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경공업부문에 투입된다고 하면서 자기기 일하는 기업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기업체'라고 불렀다. (조선신보 2002년 10월 24일)

이것은 2조6,000억 달러짜리 '백금산'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동해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북측 인민들의 생활현장을 향해서도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계적인 광물부국에서 생산되는 값진 광물자원을 대표하는 '백금산'의 발걸음이 차츰 빨라지고 있다. (2011년 3월 3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