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0

평양에서 발찌까를 팔 수 없는 이유

진실의 말팔매 <1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유럽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는 네덜란드의 하이네켄(Heineken)이고, 그 다음으로 큰 맥주회사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북측에서는 싼크트-뻬쩨르부그라고 부름)에 본사를 둔 볼티카(Baltika). 북측에서는 볼티카를 러시아어 발음으로 발찌까라 부른다. 전 세계 60여 개 나라에 수출하여 러시아 맥주의 자존심으로 알려진 유명한 맥주가 바로 발찌까맥주다. 발찌까맥주는 2009511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에서 열린 제12차 평양 봄철 국제상품전람회에 참가하여 자사에서 생산한 각종 맥주를 선보였다.

그런데 <러시아의 소리> 2009115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의 맥주공장 기술자들이 발찌까맥주공장에서 실습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1726일부터 818일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하는 길에 발찌까맥주공장도 시찰하였는데, 북측의 맥주공장 기술자들이 발찌까맥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한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직후였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건너간다. 영국 남부에 윌트셔(Wiltshire)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 지방의 고색창연한 도시 트라우브리지(Trowbridge)에는 186년 전에 세워진 어숴즈(Ushers)라는 유명한 맥주회사가 있었다. 2000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측 당국은 어숴즈맥주공장 양조설비를 250만 달러에 사들였고, 북측 기술자들을 현지로 보내 양조설비를 전부 분해하여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1동에 있는 건축부지로 실어나른 뒤에 재조립하였다. 영국에서 들여온 양조설비는 반자동식이었는데, 김책공업종합대학 기술자들의 설계로 자동식으로 개조되었고, 20011월에 함흥설비조립련합기업소 기술자들이 시공하여 건설된 맥주공장이 대동강맥주공장이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대동강맥주공장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기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의 발찌까맥주공장을 시찰하여 세계 맥주계의 최신 동향을 살펴보았을 뿐 아니라, 대동강맥주공장 건설 이후 그 공장에서 일하게 될 기술자들을 발찌까맥주공장으로 보내 기술실습을 받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동강맥주공장이 완공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2002617일에 공장시찰까지 하였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로 건설된 대동강맥주공장은 평양맥주공장, 룡성맥주공장, 봉학맥주공장, 락원맥주공장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세워진 맥주공장이다.

대동강맥주는 대동강 상류 미림지역에 흐르는 물맛 좋은 청정수를 끌어오고, 량강도 대홍단군에서 나는 호프(hop)와 황해남도 옹진군에서 나는 보리로 빚은 것이니, '명품맥주'라는 찬사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맥주맛을 결정하는 원료는 맥주의 쌉쌀한 맛을 내는 호프인데, 호프값이 비싼 까닭에 다른 나라 맥주공장들은 호프를 되도록 적게 넣는 대신 탄산가스를 더 많이 넣지만, 이윤추구를 외면하고 인민을 위한 봉사에 열중하는 북측에서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호프를 비롯한 각종 질좋은 국산 맥주원료를 듬뿍 넣고 발효도를 77.5%까지 높여 맥주의 깊은 맛을 창조하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북측은 2008년을 기준으로 세계 9위 호프 생산국이다.

<조선신보> 2010528일 보도에 따르면, 대동강맥주공장은 더욱 현대적인 첨단설비들을 들여놓아 생산능력을 공장건설 초기에 비해 두 배로 확장하고 "세계적 기준에 도달한" 최상급 맥주를 생산하는 중이다. 대동강맥주는 2008년에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로부터 품질인증(ISO 9001)도 받았다.

대동강맥주는 북측에서 맥주 총생산량의 절반을 생산하고, 이제는 해외에 수출까지 한다. <미국의 소리> 방송 20113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 있는 재미동포기업 미주조선평양무역회사가 대동강맥주를 수입하여 우리말상표를 영어상표로 바꾼 다음, 2011년 여름부터 미국 시장에 시판할 것이라고 한다.

북측에서 이처럼 맥주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평양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 맥주집이 많이 생겨났다. 평양 곳곳에 있는 200여 개 대동강맥주집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보통강구역 경흥거리에 있는 경흥관 대동강맥주집이다. 경흥거리는 1km가 넘는 긴 구간에 각종 식당들이 줄지어 있는, 남측에서 쓰는 말로 표현하면 '먹자거리'.

경흥관 대동강맥주집은 한꺼번에 손님 1,000명을 받을 수 있는, 건물 길이가 130m에 이르는 초대형 맥주집이다. 날마다 3,000-4,000명의 손님들이 붐비는 그 초대형 맥주집에서는 대동강맥주공장이 생산하는 일곱 가지 맥주를 봉사하는데, 맥주마다 고유번호를 붙여놓았다. 1번은 보리 100%로 만든 맥주, 2번은 보리 70%와 흰쌀 30%로 만든 맥주, 3번은 보리 50%와 흰쌀 50%로 만든 맥주, 4번은 보리 30%와 흰쌀 70%로 만든 맥주, 5번은 흰쌀 100%로 만든 맥주, 6번은 보리 80%와 흰쌀 20%로 만든 주정(ethanol) 15도의 흑맥주, 7번은 주정 10도의 흑맥주, 8번은 과일맥주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한 기능성 맥주인 고구마맥주도 생산한다고 한다. 노인은 2번 맥주를, 청년은 6번 맥주를, 여성은 5번 맥주와 8번 맥주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평양의 맥주봉사망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대동강맥주집 봉사망이 우세한 가운데, 그와 선의의 봉사경쟁을 벌이는 평양맥주봉사소가 있다. 평양맥주봉사소에서 봉사하는 맥주는 평양맥주공장에서 생산된 평양맥주다. 1946년에 건설된 평양맥주공장은 북측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 맥주공장이고, 2002년에 건설된 대동강맥주공장은 가장 최근에 생긴 신생 맥주공장이다. <조선신보>가 보도한, 평양시민들의 맥주맛 품평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시원하고 쩡한 맛이 일품이고, 평양맥주는 구수하고 상쾌한 맛이 일품이다.

대동강맥주와 평양맥주가 북측의 맥주봉사망을 양분하고 있다면, 남측의 맥주시장을 양분한 것은 OB맥주와 하이트맥주다. OB맥주는 일제 식민지 시기인 1933년에 일본 맥주회사인 소화기린맥주의 자회사로 설립되어 동양맥주라는 이름을 썼다. 그러다가 1948년에 OB맥주로 이름을 바꾸고, 남측에서 대표적인 맥주회사로 성장하였다. OB맥주는 OB블루, 카스, 카프리, 라거 등 여러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남측에서 생산되는 맥주 이름은 모조리 외국어다. 상호만 외국어가 아니라, 원료도 외국산이다. 캐나다산 보리와 유럽산 호프를 전량 수입해서 쓴다. 외국어 상호와 외국산 원료를 쓰는 것만이 아니라, 소유주도 외국기업이다. 이를테면, OB맥주는 1998년에 벨기에의 세계 최대 맥주재벌인 안호이저-부쉬 인베브(Anheuser-Busch InBev)에게 팔렸는데, 2009년에 미국의 국제투자회사 콜벅 크래비스 로벗츠(Kohlberg Kravis Roberts)에게 18억 달러를 받고 또 다시 팔았다.

명백하게도, 한반도에는 두 종류의 맥주공장이 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력으로 건설되고 운영되며, 자기 인민을 위해 이윤을 따지지 않고 봉사하는 맥주공장이 있는가 하면, 부질없는 겉멋이 들어 외국어 상호와 외국산 원료를 쓰며 자본가의 이윤추구를 위해 돌아가다가, 외국 재벌기업에게 팔려나간 맥주공장이 있다. 전자는 좀 더디기는 해도 반드시 흥하고, 후자는 한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망한다. (20113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