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0

원유채굴선은 왜 중국으로 돌아갔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434)

자주시보 2021년 03월 0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가 자행되다

2.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

3.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4. 서조선만 유전에 들어간 중국의 원유채굴선 

 

 

1.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가 자행되다

 

2006년 1718호

2009년 1874호

2013년 2087호, 2094호

2016년 2270호, 2321호

2017년 2356호, 2371호, 2375호, 2397호

 

위에 열거한 것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조선의 핵무기개발문제를 걸고 들면서 채택한 일련의 제재결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 로씨야, 중국은 아무런 제재나 비난을 받지 않고 핵시험을 마음대로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마음대로 하면서 핵무력을 끊임없이 증강해왔다. 그런데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은 세계 최대 핵강국인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위적 핵무력을 보유한 조선을 ‘범죄국가’로 몰아가면서 유엔안보리의 이름으로 역사상 가장 혹독한 제재를 결의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거느리는 지배수단인 핵무기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강대국의 지배를 거부하는 약소국은 절대로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조선은 핵무기를 갖지 말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위협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유엔안보리의 주장은 조선을 비롯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평등권과 자위권을 인정한 유엔헌장을 부정하는 희대미문의 망발이다. 조선인민군의 핵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조선을 굴복시키려던 유엔안보리의 횡포는 19세기 말 조선군을 강제로 해산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강탈한 일제의 만행을 연상시킨다.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 가운데 중국과 로씨야는 조선을 굴복시키려고 광분하는 미국의 제재횡포에 잠시 부화뢰동하다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태도를 바꾸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련합나라들과 함께 미국의 재재횡포에 계속 맞장구를 치고 있으며,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가세했다. 악의와 모순과 폭력이 난무하는 제국주의지배체제에 굴종하기를 거부한 자주독립국가들이 제국주의국가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핵억제력을 보유하는 것은 자위권을 실현하는 정의의 행동으로 공인되어야 마땅하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조선을 상대로 저지른 수많은 제재횡포 가운데 가장 악랄한 것은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2397호다.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연간 400만 배럴(barrel)로 제한하는 것이다. 

 

해설 --- 배럴은 부피를 계량하는 단위이고, 톤(tonne)은 무게를 계량하는 단위이다. 원유 400만 배럴을 환산하면 544,000톤이다. 원유 400만 배럴을 정제하면, 휘발유(gasoline) 35,600톤, 등유(kerosene) 132,200톤, 경유(diesel) 132,200톤, 중유(fuel oil) 193,200톤이 나온다.

 

2)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정제유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는 것이다. 

 

해설 --- 정제유 50만 배럴을 휘발유로 환산하면 59,000톤이고, 등유로 환산하면 64,000톤이고, 경유로 환산하면 66,000톤이고, 중유로 환산하면 335,000톤이다. 조선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수입한 석유제품(petroleum) 수입비률은 휘발유 34.1%, 등유 27.6%, 경유 25.6%, 중유 5.3%이므로, 이 글에서는 정제유의 범위를 휘발유, 등유, 경유로 한정하고, 휘발유, 등유, 경유 50만 배럴의 평균값을 63,000톤으로 산정한다.

 

3) 조선이 콘덴세이트(condensate)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해설 ---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 섞여 나오는 경질 휘발성 액체탄화수소다.

 

4) 조선이 광물, 수산물, 의류, 섬유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5) 조선의 기업체가 다른 나라 기업체와 설립한 합작기업을 폐쇄하고, 새로 합작기업을 설립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다. 

 

6) 조선의 무역은행이 다른 나라에 설치한 지점 또는 사무소를 폐쇄하고, 새로운 지점 또는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다. 

 

7) 조선으로 들어가거나 조선에서 나오는 화물이 육로, 해로, 항로로 다른 나라를 통과하는 경우 그 화물을 전부 조사하는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 회의에서 당시 유엔주재미국대사였던 니끼 헤일리가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에 거수로 찬의를 표시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오른쪽에서 거수로 찬의를 표시한 사람은 당시 유엔주재 영국대사다. 그날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위협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언어도단의 망발을 유엔안보리의 이름으로 공식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조선의 자위적 핵무력 보유를 '범죄'로 몰아감으로써 조선을 비롯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평등권과 자위권을인정한 유엔헌장을 부정한 희대미문의 망동이요 횡포였다. 그런 점에서 2017년 12월23일은 유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치욕과 암흑의 날이었다.     

 

위에 열거한 일곱 가지 제재조항 가운데서 1번부터 3번까지 조항은 조선의 석유제품수입을 차단한 것이고, 4번부터 6번까지 조항은 조선의 외화소득을 차단한 것이다.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연간 54만톤으로 제한하고, 정제유를 연간 63,000톤으로 제한하면, 조선의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유엔안보리는 어리석게 타산했다. 조선의 원유수요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면, 그들이 그렇게 타산할 만도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은 2014년을 기준으로 약 81만톤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은 100만톤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100만톤의 원유를 가져야 살아갈 수 있는 조선의 원유수입량을 54만톤으로 제한한 것이야말로 조선의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교살행위로 보인다. 원유수입이 갑자기 2분의 1로 격감하면, 국가경제가 질식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하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상황을 너무도 오판했다. 그들은 조선의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을 차단하여 국가경제의 숨통을 1~2년 동안 계속 조이면, 조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여 핵포기의 길로 끌려나올 것으로 타산하면서, 조선의 경제가 질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타산을 완전히 뒤집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조선의 국가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제재횡포를 3년 동안 계속 자행했는데도,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지기는커녕 저들의 제재횡포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경제발전을 꿋꿋이 추진했다. 자본주의경제론리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2021년 2월 22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억측과 오해 너머 보이는 조선의 경제실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객관적인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조선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기간에 달성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3.5% 수준이었다고 추산한 바 있다. 유엔안보리의 악의적인 제재횡포에 의해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이 차단당한 조선이 GDP 성장률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조선이 제재횡포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기는커녕 GDP 성장률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사회주의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근본요인이 일심단결과 자력갱생에 있다는 현실을 알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요즈음 조선이 식량부족과 에너지부족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을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이 경제난으로 망하기를 바라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퍼뜨리는 악의적 허위선전에 불과하다. 

 

 

2.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

 

조선의 원유수입사정을 파악하려면 비교관념이 요구된다. 조선과 인구수가 거의 같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유를 얼마나 많이 수입하는지를 살펴보면, 조선의 원유수입사정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의 인구는 2,566만명이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2,575만명이다. 아래 도표에 나온 수치는 미국에너지정보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이 작성한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수록된 1일 원유수입량이며, 단위는 배럴이다. 

 

 

연도

 

조선

오스트레일리아

 

1995

 

4,400

37,600

 

1996

 

2,300

40,600

 

1997

 

2,400

42,100

 

1998

 

3,800

44,500

 

1999

 

4,400

48,500

 

2000

 

5,500

40,700

 

2001

 

1,200

44,000

 

2002

 

1,200

44,200

 

2003

 

1,100

41,100

 

2004

 

1,100

41,600

 

2005

 

1,000

40,000

 

2006

 

730

40,500

 

2007

 

850

44,600

 

 

2008

 

900

39,800

 

2009

 

690

41,000

 

2010

 

1,100

48,700

 

2011

 

1,100

50,100

 

2012

 

1,100

51,200

 

위의 도표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첫째, 조선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수가 거의 같은데, 조선의 원유수입량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다. 

 

둘째, 2001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조선의 적은 원유수입마저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조선의 원유수입은 2000년에 비해 78.18%나 급감했다. 조선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었던 1996년과 1997년에 원유수입이 가장 적었는데, 원유수입이 전년에 비해 78.18%나 급감한 2001년부터는 ‘고난의 행군’ 시기의 원유수입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1년 이후 조선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비해 원유를 50분의 1밖에 수입하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선은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원유수입을 크게 줄여야 했고, 그로써 국가경제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었다. 그런데 2001년 이후 조선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해 원유를 절반 이하만 수입하였는데도, ‘고난의 행군’ 시기의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회복기를 거쳐 지속적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의 도표에서 드러난 또 다른 사실은 조선의 원유수입이 2012년까지만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도표는 미국 에너지정보청의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인데,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조선의 원유수입을 2012년까지만 기록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은 2013년까지만 원유를 수입했고, 2014년부터는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2016년 1월 21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14년 1월부터 조선에 원유를 수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시기 조선이 수입한 원유는 거의 중국산 원유이므로, 중국에서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유수입을 중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2014년 1월부터 소량의 정제유만 중국 또는 로씨야에서 수입하고 있다. 

 

2017년 11월 24일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보유한 22척의 유조선들이 2017년 9월부터 해외운항을 거의 중지했다고 한다. 원유수입을 중단하고 소량의 정제유만 수입하기 때문에 조선의 유조선은 출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이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데도, 유엔안보리는 2016년 12월에 조선의 원유수입을 제한하는 제재요 뭐요 하면서 소동을 피웠으니 우스꽝스러운 헛발질을 한 것이다. 

 

그런데 원유수입을 중단한 조선에서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2015년 11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평양-원산 고속도로구간, 평양-개성 고속도로구간, 평양-신의주 도로구간에 연유판매소(주유소)들이 “줄줄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평양과 지방도시들에서 자동차 운행이 더 많아졌고, 조선인민군의 군용차량 운행도 더 많아졌으며, 협동농장에서 각종 영농기재의 운행도 더 많아졌다. 이것은 조선에서 휘발유 소비와 경유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원유수입을 중단했는데도, 휘발유와 경유를 이전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20년 9월 3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2016년에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정제공장)에서는 원유를 정제할 때 사용하는 접촉분해설비(catalytic cracking unit)를 새로 설치하여 정제유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으며, 중유 생산을 줄이는 대신 차량과 발동기에 사용되는 휘발유와 경유를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중유는 제철소, 제련소, 화력발전소를 비롯하여 산업용 보일러를 사용하는 공장과 기업소에서 보일러 착화유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요즈음 조선의 공장과 기업소에는 석탄가스화기술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어 착화유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조선의 중유수요량이 급감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원유수입이 중단되었는데, 봉화화학공장은 어디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하여 휘발유와 경유를 이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일까?

 

 

3.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조선의 원유수급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선이 원유수입을 중단한 이후 정제유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억측을 늘어놓았다.

 

1) 중국이 조중우의송유관을 통해 조선에 연간 약 50만톤의 원유를 은밀히 수출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 억측이다. 1975년에 완공된 조중우의송유관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있는 중국 제1유전인 다칭(大慶)유전에서 중국 동북지방(만주) 전역으로 원유를 수송하는 총연장 2,471km의 송유관에 딸린 지선이다. 압록강 하저를 지나는 조중우의송유관의 길이는 중국 단둥(丹東) 인근에 있는 삐산(八山)원유저장소에서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까지 약 30km에 이른다. 

 

그러나 다칭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에는 석랍탄화수소(paraffin alkane) 함량이 많아서 중국 동북지방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쉽게 응고된다. 더욱이 압록강 물속을 지나는 구간에 부설된 하저송유관은 강물의 냉기를 직접 받게 되므로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응고된다. 송유관으로 보내는 원유는 물처럼 맑고 비중이 낮은 액체가 아니라 끈적끈적하고 비중이 높은 액체이므로 강한 압력으로 밀어 보내야 먼 거리까지 갈 수 있는데, 그런 강한 압력을 받고 밀려가는 원유가 응고되는 경우 송유관 이음새가 터져 원유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는 대형유출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중국은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송유관으로 보낼 때 응고를 방지하기 위해 섭씨 90정도로 열을 가한다. 그런 가열처리는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의 가격을 끌어올린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기 조선은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중국산 원유를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원유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수입해야 했었다. 조선이 조중우의송유관을 폐쇄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더욱이 부설된지 40년이 지난 조중우의송유관은 너무 낡아서 파렬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다. 2013년 6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조중우의송유관을 통해 조선에 원유를 보내던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중단했다고 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도표는 미국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 Institute)가 2020년 9월 2일에발표한 조선의 석유수급상황에 관한 논문에 실린 것이다.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조선은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았고, 2018년부터는 정제유 수입도 대폭 축소했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조선의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을 차단하여 국가경제의 숨통을 1~2년 동안 계속 조이면, 조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여 핵포기의 길로 끌려나올 것으로 타산했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경제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뿐아니라, 국내총생산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발전을 이룩했다. 이런현상은 자본주의경제론리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조선의 경제현실 속에서 일심단결과자력갱생의 힘이 작동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2) 유엔안보리 산하 대조선제재위원회는 조선의 유조선이 중국의 유조선과 공해 상에서 접근하여 해상환적방식으로 은밀히 원유를 수입하고 있을 것이라는 억측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그들은 공해 상에서 두 나라 유조선이 접근하여 해상환적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몇 차례 공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유조선들이 조선 선적 유조선이라는 저들의 주장을 입증할 근거는 없고, 의심과 추정만 난무한 것뿐이다. 미국이 유엔안보리 산하 대조선제재위원회에서 조선과 중국의 해상환적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중국과 로씨야는 미국의 그런 의심과 추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혹 조선의 몇몇 유조선들이 해상환적으로 중국산 원유를 수입하였다고 가정해도,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에 해당하는 100만톤을 해상환적으로 수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조선이 원유수입을 중단한 2013년 말 이후 정제유는 얼마나 수입하고 있을까? 2017년 12월 유엔안보리는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에서 조선이 연간 정제유 수입을 63,000톤으로 제한했는데, 조선은 2018년에 38,000톤의 정제유를 수입했고, 2019년에는 46,000톤의 정제유를 수입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20년에는 조선의 정제유 수입이 18,000톤으로 급감했다. 유엔안보리가 정제유 수입을 제한하는 제재횡포를 부렸지만, 조선은 그런 제재횡포를 비웃으며 정제유 수입제한량의 약 30%밖에 수입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이 2020년 한 해 동안 정제유를 수입한 양은 2019년 수입량의 31.8%밖에 되지 않으며, 2020년 10월부터는 로씨야에서 정제유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 

 

아마도 올해 2021년에는 그나마 소량으로 유지되던 조선의 정제유 수입이 더 줄어들 것이며, 앞으로 2~3년 뒤에 조선은 원유는 물론 정제유도 수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제유까지 수입을 대폭 줄이면 당연히 유류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지금 조선에서는 유류난이 일어나기는커녕 되레 정제유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조선이 원유를 자체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설명될 수 있다. 

 

시선을 남포항으로 돌려보자. 남포항은 원유하역과 원유저장이 집중되는 유류거점이므로, 남포항의 동향은 원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2016년 10월 남포항을 촬영한 민간위성사진을 분석한 <자유아시아방송> 2017년 3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남포항에서 원유하역시설 1개를 증설하는 공사가 2015년 10월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원유하역시설은 이미 완공되었다. 

 

2021년 2월 1일 <미국의소리> 보도는 남포항을 촬영한 민간위성사진을 분석한 흥미로운 내용을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남포항에 지름이 약 30m인 대형 유류저장고 6개가 새로 건설되었고, 2020년 10월부터 대형 유류저장고 5개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유류저장고는 지름이 18m인데, 새로 건설되는 유류저장고 4개는 지름이 32m이고, 나머지 1개는 지름이 25m라고 한다.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이 원유하역시설을 증설하고, 대형 유류저장고를 계속 증설하는 것은 조선에서 원유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조선은 산유국이다. 

 

 

4. 서조선만 유전에 들어간 중국의 원유채굴선 

 

유전탐사부문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재미동포 박부섭 박사는 1995년에 조선에서 유전탐사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는 기존 유전탐사기술인 탄성파 탐사기법보다 정확도가 10배 더 높다는 마이크로렙톤(Micro-lepton) 탐사기법을 사용하여 탐사했다. 그가 탐사한 곳은 남포 앞바다에 있는 초도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대륙붕분지다. 그곳을 서조선만 분지라고 부른다. 서해는 평균수심이 45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얕은 바다인데, 그 얕은 바다의 대륙붕에서 25년 전에 본격적인 유전탐사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서조선만 분지를 탐사한 박부섭 박사는 그곳에 5억8,00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6년 중국지질조사국은 서조선만의 석유-가스매장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했는데, 그 평가에 근거하여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서조선만 분지에 81억60,0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다. 5억8,000만톤과 81억6,000만톤은 엄청난 차이지만,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추산이 현실에 더 근접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추산한 대로, 서조선만 분지의 원유매장량이 80억톤을 넘는다면, 그것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매장량과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면적이 500㎢에 이르는 광활한 서조선만 분지에 그처럼 엄청난 원유가 묻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곳은 중국, 미국, 로씨야, 영국을 비롯한 원유개발국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서조선만 유전으로 변모되었고, 세계 원유개발기업체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았다.  

 

25년 전 박부섭 박사는 서조선만 유전에서 5개의 광구를 찾아냈는데, 그가 추산한 광구별 매량량은 다음과 같다. 아래에 열거한 5개의 광구들은 박부섭 박사가 탐사한, 일부 유전에 지나지 않는다.     

 

제1광구 - 884만톤

제2광구 - 680만톤

제3광구 - 680만톤 

제4광구 - 408만톤

제5광구 - 136만톤

총계 - 2,788만톤

 

서조선만 유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서조선만과 베이황하이(北黃海)는 조중해상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있다. 서조선만은 조선의 영해이고, 베이황하이는 중국의 영해다. 1962년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체결한 조중변경조약에 따르면, 두 나라의 해상경계선은 압록강 하구의 동경 124도 10분 6초를 기산점으로 하여 서해 남쪽 공해(동중국해 북쪽 해상)까지 일직선으로 그어진다. 서조선만과 베이황하이는 동경 124도를 해상경계선으로 하여 동서로 나뉜 것이다. 서조선만 유전이 바로 그 해상경계선에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중국은 그 유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산둥(山東)성 둥잉(東營) 인근에 성리(勝利)유전이 있다. 이 유전은 중국 헤이룽장성에 있는 다칭유전 다음으로 규모가 큰 중국의 제2유전이다. 성리유전의 원래 위치는 베이황하이 연안 해저였는데, 중국은 그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엔타이(煙臺)와 웨이하이(威海) 사이로 흐르는 황하(黃河)의 물줄기를 둥잉 쪽으로 돌려놓아 해저유전이 있는 바다를 육지로 만들었고, 그로써 성리유전은 해저유전에서 해안유전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중국은 성리유전의 원유매장량 가운데 20% 정도만 채굴했을 뿐이고, 80%가 남아있다. 

 

그런데 서조선만 유전의 유맥이 성리유전의 유맥과 통한다. 서조선만 유전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면 성리유전에 매장된 원유가 서조선만 유전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해저지형을 보면, 서조선만 유전이 성리유전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으므로, 성리유전에 매장된 원유는 유맥을 타고 서조선만 유전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중국 제2유전의 유맥이 조선의 서조선만 유전으로 통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중국은 조선과 공동으로 서조선만 유전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이 서조선만 유전개발에 시동을 건 때는 2005년이다. 2005년 12월 24일 조선과 중국은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베이징을 방문한 로두철 조선 부총리가 쩡페이옌(曾培炎) 중국 부총리와 함께 서명한 그 협정에는 “조선과 중국은 조선 령토에 묻혀있는 원유에 대한 리권을 중국의 기술과 자원을 활용한 조중공동개발로 공유한다”고 명시되었다. 2006년 6월 6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출입기자단에게 “조선과 중국은 평등하고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보하이만(渤海灣)에서 원유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으며, 앞으로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담은 합의서를 마련해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원유공동개발지역을 보하이만이라고 지적한 것은 착오로 보인다. 보하이만이 아니라 서조선만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따르면, 조선과 중국은 서조선만 유전에 매장된 원유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이후 구체적인 원유개발계획을 담은 후속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 발언이 나온 뒤로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조선과 중국이 원유개발계획을 공동으로 작성하고, 후속합의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유개발계획을 공동으로 작성하는 작업이 워낙 복잡하고 힘든 일이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므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과 중국이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조용히 파기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지만, 조선과 중국이 그 협정을 파기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 10월 31일 미국의 언론매체 <NK 뉴스>는 조선과 중국이 2005년 12월 24일에 체결한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마침내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그 보도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진 3> 

 

▲ <사진 3> 위쪽 사진은 2016년 6월 초 조선의 서조선만 유전에 나타난 중국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의 모습이다. 아래쪽 사진은 당시 중요우하이 17호가 원유채굴작업을 진행했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Rig라는 글씨가 원유채굴작업현장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 주위로 보이는, 일련번호가 붙은 여러 개의 노란 표시들은 탐사정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초도다. 조선은 서조선만 유전에서 연간 6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조선은 자력갱생의 산유국이다.     

 

1) 2016년 5월 22일 중국의 국영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중국 랴오둥(遼東)반도 다롄(大連)항에서 14,000톤급 원유채굴선(jack-up rig) 중요우하이(中油海) 17호를 출항시켰는데, 그 특수선박은 6일 뒤에 조선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해설 --- 서해는 워낙 비좁은 바다라서 배타적경제수역이 존재할 수 없는데, 중국의 원유채굴선이 조선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착오였다. 서해에는 동경 124도를 해상경계선으로 하는 조선의 영해와 중국의 영해만 존재한다.  

 

2) 당시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가 채굴작업을 한 곳은, 조선 영해 안으로 약 3km 들어가고, 조선 서해안에서 약 90km 떨어진 서조선만 분지라는 것이다. 

 

해설 --- 중요우하이 17호는 2016년 초 중국 다롄조선소에서 건조된, 길이가 70m이고 폭이 76m인 원유채굴선이다. 중국은 건조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형 원유채굴선을 서조선만 유전에 보낸 것이다. 

 

3)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가 채굴작업을 진행한 곳은 지난 시기 시추작업이 벌어졌던 제609호 탐사정(探査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제609호 탐사정에서는 하루에 원유 476톤을 채굴했었다는 것이다. 

 

해설 --- 위의 정황은 그 탐사정에서 연간 17만3,700톤의 원유를 채굴했음을 말해준다. 서조선만 유전에는 그런 탐사정이 16개나 있다. 16개의 탐사정을 유정(油井)으로 개발하여 원유를 본격적으로 채굴하면, 연간 100만톤의 원유를 뽑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는 2018년 1월 초 원유채굴을 갑자기 중단하고 중국 보하이만 유전으로 돌아갔다. 왜 그랬을까?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보리가 대조선제재 2397호를 결의하여 조선과 중국의 공동원유개발사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서조선만 유전에서 모처럼 본격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원유채굴은 1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원유개발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조선이 자력갱생의 힘으로 추진하는 독자적인 원유개발은 중국과의 공동개발사업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전과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조선은 1980년대 후반 싱가폴에서 도입한 14,000톤급 원유채굴선 1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로 만든 소형 채굴장비들도 보유하고 있다. 외부에 알려진 유성호가 그런 소형 채굴장비들 가운데 하나다. 조선의 14,000톤급 원유채굴선은 수심이 깊은 서조선만 유전에 나가 원유를 채굴하고 있고, 소형 채굴장비들은 수심이 얕은 숙천군 연안유전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지금 조선은 유전지대에서 연간 5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집요한 제재횡포로 서조선만분지 유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원유채굴이 중단되고, 중국 원유채굴선이 보하이만 유전으로 돌아가자, 조선은 채굴조건이 해저유전보다 유리한 지상유전에서 원유를 증산하기 위해 힘썼다. 조선의 지상유전들 가운데서 원유를 가장 많이 채굴하는 곳이 바로 안주유전이다. 이 유전은 조선의 지상유전들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다. 안주유전은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평안남도 숙천군 안주분지에 있다. 

 

2002년 8월 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2년 7월 초 평안남도 숙천군 장동리를 방문한 중국 석유탐사단은 그 지역에 설치된 원유채굴장비(sucker rod) 4대가 하루에 약 54톤의 원유를 채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안주유전에 속한 장동리 원유채굴장에서 연간 20,000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주유전에는 장동리 이외에도 원유채굴장이 여러 곳 있다. 2001년 5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주유전에서 1999년부터 연간 3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4월 13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0년에 안주유전에서 원유 20만톤을 채굴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안주유전에서 연간 30만톤의 원유가 채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주분지 유전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의 제2지상유전은 온성유전이다. 온성유전은 함경북도 온성군에 있다. 2001년 9월 싱가폴에 있는 원유탐사회사 쏘브린 벤처스(Sovereign Ventures Pte. Ltd.)는 두만강 하류에 있는 조선과 로씨야의 국경지대인 온성군에서 길이가 약 8km이고, 면적인 약 15,500㎢인 유전을 발견했는데, 2,04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다. 2003년 2월 1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로동자구와 삼봉로동자구에서 각각 원유를 뽑아 올렸는데, 삼봉로동자구에서 뽑아 올린 원유는 샘물처럼 투명한 초경량원유(super light crude oil)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품질 원유가 온성유전에 엄청나게 묻혀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2011년 4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유전에서 연간 10만톤의 원유를 채굴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은 서조선만 유전에서 연간 5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안주유전에서 연간 3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온성유전에서 연간 10만톤의 원유를 채굴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는 원유채굴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채굴량이 연간 100톤으로 늘었을 것이다. 조선은 연간 100만톤의 원유로 자급자족하는 산유국이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악의적인 제재횡포에 매달릴수록 조선은 그에 대응하여 자기의 완성된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심단결과 자력갱생의 힘으로 제재장벽을 돌파하고 있다. 조선은 제재장벽돌파전에서 원유증산과 자급자족을 실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를 받은 사회주의나라가 이루어낸 놀라운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