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7

[추모글] 제자를 동지라고 불러주시던 따스하고 청아한 목소리

 자주시보 2020년 10월 2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오늘 우리는 훌륭한 통일운동가 한 분을 잃었다. 박순경 선생님께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민족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까지 투쟁의 길이 아직 멀고 험한데, 그렇게 먼저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상실의 아픔이 크다.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꽃 한송이 바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통일운동가 박순경 선생님은 나를 직접 가르친 은사이시다. 1970년대 중반 서울에 있는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하던 나는 박순경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학자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 당시 선생님은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시면서, 일주일에 한 차례씩 내가 공부하던 감리교신학대학 교단에도 서셨다. 박순경 선생님은 1948년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셨으니, 그이는 나의 은사이자 대선배이시다.

 

1976년 박순경 선생님은 감리교신학대학에서 도이췰란드의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2014)의 조직신학을 강의하셨다. 판넨베르크는 20세기 서구신학계를 대표하는 신학 사상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신학자인데, 박순경 선생님도 칼 바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신학자이셨다. 1976년 박순경 선생님이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강의하실 때, 판넨베르크의 저서 ‘신학과 하느님의 나라’를 교재로 쓰셨다. 박순경 선생님이 열정을 바치신 신학탐구의 총적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였다. 그이가 염원하던 새로운 나라는 우리 민족의 통일 염원이 실현된 조국의 종교적 표상이었고, 민중의 해방염원이 실현된 조국의 종교적 표상이었다. 1976년 어느 날, 가을하늘처럼 푸른색이 감도는 우아한 목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교단에서 강의하시던 박순경 선생님의 모습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2000년 1월에 창당된 민주노동당에서 고문직책을 맡으신 박순경 선생님은 그해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55주년 경축 행사에 남측 대표단 성원으로 참가하셨다. 그이는 4박 5일 동안 평양방문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가셔서 『월간 말』과 대담을 하셨는데, 대담자가 위기를 극복하는 조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셨다.

 

“전체 인민 대중을 주체사상이라는 유일사상체계 속에 묶어 세우고 자신들의 지도자, 즉 수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기에 가능한 거죠. 이번에 그 실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어요. 이 엄연한 현실을 남쪽 사람들도 이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북체제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그들의 주체사상을 이해하지 않고선 통일의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박순경 선생님은 주체사상을 깊이 이해하려고 한 신학자였으며, 자기의 신학 사상을 민족의 분단 현실과 통일국가건설 운동에 일치시키려고 힘쓴 통일운동가였다. 그래서 그이는 통일신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왔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일에 열정을 기울였다. 1992년에 ‘통일신학의 여정’이라는 제목의 책과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라는 제목의 책이 각각 출판되었고, 1997년에는 ‘통일신학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 학문적 탐구는 그이를 주체사상의 자주적 인간개조론과 기독교의 부활 사상이 만나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갔고,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과 기독교의 집단적 영생사상이 만나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갔다. 박순경 선생님은 민중의 해방과 평등을 실현하는 신국사상(神國思想)의 관점에 서서 주체사상을 실현한 조선의 현실을 목격했다. 박순경 선생님은 1994년 4월 29일 뉴욕에 오셨을 때, 자신의 책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를 나에게 한 권 주시면서, 책의 앞장에 “일 많이 하시기 바라오”라고 쓰시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선생님은 문필의 경계를 넘어 조국통일운동에 적극 참가하셨다. 1989년 전국민족민주연합이 결성되었을 때부터 조국통일위원장으로 앞장에 서셨고, 1990년에 결성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과 2005년에 결성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적극 참가하셨으며, 민주노동당 고문으로, 통합진보당 고문으로 진보정치 활동에 참가하셨다.

 

2005년 3월 3일부터 5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해외 대표단이 모여 6.15공동선언 실천위원회를 결성했는데, 해외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한 나는 금강산호텔 대청을 지나다가 박순경 선생님과 마주쳤다. 1995년 10월 뉴욕에 오셨을 때 만나 뵌 이후 10년 만에 다시 이루어진 반가운 상봉이었다. 남북해외 통일운동 대표자들이 모여 6.15공동선언 실천위원회를 결성하는 역사적인 자리에서 선생님을 만나 뵈었으니 뜻이 더 깊었다. 그래서 나는 금강산호텔 대청에 있는 커다란 폭포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고 청을 드렸다. 내가 선생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자, 주위에 있던 어떤 사람이 두 분은 어떤 사이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 팔을 슬며시 잡아당기시며 “이 사람은 내 동지야!”라고 답변하셨다. 제자를 동지라고 불러주시던 따스하고 청아한 목소리를 나는 영영 잊지 못한다.

 

수많은 통일운동가가 75년 조국통일운동사에 피땀을 흘리며 남긴 발자취들 가운데 박순경 선생님의 발자취도 뚜렷이 새겨졌다. 투쟁의 길을 앞서가신 통일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따르는 우리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은 승리의 광장을 향하여 오늘도 전진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도전과 방해가 앞길을 가로막아도 우리 민족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위대한 자주통일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 역사발전에 대한 신념이며,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혀주는 과학 명제이다. 박순경 선생님은 그런 불변의 과학적 신념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