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7월 09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사람중심경제’
2. 그것은 오판과 착각이다
3. 세계무역전쟁이 세계대공황 불러온다
4. 예고된 세계석유위기
5. 생존방도가 여기 있다
1.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사람중심경제’
2018년 6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일자리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이례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경제가 좋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된 책임을 물은 문책성 인사조치라고 논평하였다. 문책성 인사조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번 인사조치는 “국민들께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를 속도감 있게 내자는 취지가 강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말한, “국민들께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라는 것은 민생경제가 발전되는 성과라는 뜻이므로, 6.26 인사조치에 민생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강한 취지가 담겼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리 민생경제발전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2017년 12월 27일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회의 및 경제관계장관회의가 청와대에서 진행되었을 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018년도 경제정책기조를 일자리중심경제와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고 요점적으로 명시한 바 있었는데, 당시 그런 경제정책기조를 발표하게 된 것으로 하여 고무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내년(2018년을 뜻함-옮긴이)에는 거시경제지표도 좋을 뿐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도 나아지는 해가 될 것”이고, “소득주도성장, 사람중심경제가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국민이 공감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기대와 희망을 표시하였다. <사진 1>
2017년 12월 2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 4대 기조로 제시하였던 일자리중심경제와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사람중심경제’라는 새 정책의 중심개념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17년 4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사람에게 투자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살리는 사람중심의 경제성장구조로 바꾸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는데, 집권 이후 그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사람중심경제’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사람중심경제’에서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람 일반이 아니라 근로대중을 뜻하므로, ‘사람중심경제’는 근로대중중심경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중심경제’라는 새 정책에는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우선적으로, 중점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뜻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사정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사람중심경제’는 고용을 증대시키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실업자와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데, 그 실행방도는 다음과 같다.
(1) 중소상공인과 영세업자에게 일자리안정지원자금을 제공하여, 고용을 증대시킨다.
(2) 고용을 증대시킨 기업체에게 일정한 비율로 세금공제혜택을 주어 고용증대를 유도한다.
(3)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체에게 법인세 공제액을 확대하여, 비정규직축소를 유도한다.
(4) 근로소득증대에 대한 세금공제를 확대하여, 근로대중의 납세부담을 덜어준다.
(5) 실업급여지급액을 50%에서 60%로 올리고, 지급기간도 8개월에서 9개월로 연장하여 실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
(6) 저소득층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 10,000채를 공급하여, 근로대중의 주거생활을 안정시킨다.
이처럼 ‘사람중심경제’가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파국에서 건지려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출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위에 열거한 실행방도들을 보면 임시방편들만 제시되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위에 열거한 실행방도들만 추진한다면,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파국에서 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생경제는 ‘극약처방’ 이외에는 백약이 무효일 만큼 파탄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조치를 단행하지 않으면,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살릴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생경제파탄은 일시적으로 침체하였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회생하는 불황이 아니라, 1962년부터 지금까지 56년 동안 끊임없이 누적되어온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일촉즉발지경으로 격화된 파국적 결과다. 이런 근본문제를 파헤쳐야 ‘사람중심경제’를 일으켜 세울 ‘극약처방’을 모색할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생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파국을 모면할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데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덧쌓이기 시작한 시점을 왜 1962년으로 특정하였을까? 그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1962년부터 1966년까지 5년 동안 수출액을 1억1,750만 달러로 늘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때가 1962년 1월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근 3년이 지난 1964년 12월 1일 박정희는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돌파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봐라, 하면 되지 않느냐.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면서 감격하였다고 한다. 박정희는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돌파한 11월 30일을 ‘무역의 날’로 제정하였으며, 정부, 여당, 기업체, 금융기관, 종합상사, 경제연구기관의 대표들이 100명 이상 참석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매달 몸소 주재하였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수출에 총력을 집중함으로써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를 확립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정권은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가 근로대중에게 고통과 불행과 궁핍을 강요하는 착취체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들의 눈에는 근로대중이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을 위해 쓰다가 내버리는 소모품으로 보였을 뿐이다. 박정희식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는 수천만 근로대중을 소모품처럼 착취하면서 고속팽창의 길을 달려왔다. ‘압축성장’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근로대중을 가혹한 착취로 내몰아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고착시켰다는 점에서,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압축성장’에는 질적 발전은 없었고 오직 양적 팽창만 있었다.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압축성장’을 보여주는 각종 통계자료들은 넘쳐나지만, 그 ‘압축성장’ 뒤에서 소모품처럼 착취당해온 근로대중의 삶과 투쟁은 억압과 외면의 그늘 속에 가려졌다. 한국의 근로대중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확립하였고, 그 이후 역대 정권들이 계승해온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압축성장’ 뒤에서 고통과 불행과 궁핍으로 신음하였다. 1970년 11월 13일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에 맞서 싸우다 저항의 불꽃으로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삶과 투쟁,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고귀한 목숨을 바친 94명 노동해방열사들의 투쟁 속에 수천만 근로대중이 자주적 삶을 쟁취하기 위해 흘린 피눈물이 진하게 응축되었다. <사진 2>
그런데도 맹신자들과 문외한들은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로 ‘압축성장’을 실현한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찬양하였다. 1997년 동아시아 자유시장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간 외환위기 속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수명을 다했고, ‘압축성장’의 허상은 깨졌다. 허상이 깨지자, 그 뒤에 오랜 세월 가려졌던 실상이 드러났다.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가혹한 착취로 내몰아 빈부격차를 극대화시킨 고통과 불행과 공핍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정권 이후 그 어느 정권도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와 근로대중의 민생경제가 양립할 수 없다는 진리, 한국의 사회경제사 50년이 실증해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사람중심경제’를 천명한 문재인 정부도 예외로 되지 않는다. 2017년 12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전체 중소기업 354만 개 중 수출에 참여하는 기업은 9만4,000개로 2.7%에 불과한데, 수출을 통해 기업을 키우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 중견기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하면서 “수출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017년 12월 5일 ‘무역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를 역설하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로부터 22일이 지난 2017년 12월 27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사람중심경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중심경제’와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가 양립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2. 그것은 오판과 착각이다
2018년 6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도 한국의 연간수출액은 5,739억 달러이고, 세계수출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3.6%에 이르렀으며, 세계수출순위는 6위로 올라섰다.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고, 문재인 정부는 기뻐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기쁨과 긍지 대신에 실망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박정희식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가 고도로 성장할수록 문재인식 사람중심경제를 살릴 방도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17년도에 한국의 수출총액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한국의 민생경제발전수준을 말해주는 취업자 증가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그에 따라 근로대중의 소득지표도 크게 악화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제관리들과 경제분석가들은 2017년에 고용지표와 근로소득지표가 급격히 떨어진 원인을 놓고 설왕설래하였지만, 그들은 민생경제파탄의 근본원인이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면서, ‘정책실패’라는 아리송한 말만 늘어놓았다. 근로대중의 민생경제파탄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실패를 근본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근본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다. 명백하게도,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가 근본원인이고, 근로대중의 민생경제파탄은 파국적 결과다. 인과관계를 바로 알아야 해결방도를 찾을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람중심경제’를 천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정희 독재정권이 ‘수출입국’을 천명하였던 1962년부터 장장 반세기 동안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는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체계적으로 파탄시켜왔다.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역사는 근로대중의 민생경제가 황폐화되어온 역사다. 아래에 제시된 통계자료들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8년 3월 초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소득이 5,047만 원 이상인 한국의 상위계층 10%의 소득집중도는 1995년까지만 해도 29.2%밖에 되지 않았고, 2003년까지는 30%대에 머물렀는데, 2004년에 40.71%로 급상승한 이후 해마다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2008년 43.45%, 2012년 44.9%, 2014년 48.7%, 2016년 49.19%를 기록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이라는 개념은 근로소득만이 아니라 금융소득과 사업소득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데, 한국의 10% 상위계층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과 금융소득 같은 불로소득으로 막대한 재부를 거머쥐었고, 그로써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사진 3>
예컨대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서유럽 나라들의 경우, 상위계층 10%의 소득집중도는 30% 안팎에 머무는데, 한국의 경우 상위계층 10%의 소득집중도는 50%에 이른 반면, 하위계층 50%의 소득집중도는 해마다 급격히 낮아졌고, 올해는 전 세계에서 소득분배 불평등이 가장 악화된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나쁜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한국 통계청이 2017년 12월 17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노동계급 중에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 다시 말해서 가장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2003년에는 4.8% 수준이었는데, 2007년 이후에는 10~12%로 급증했고, 2016년에는 13.6%로 더 상승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의 전체 노동계급 1,962만7,000 명 가운데 266만4,000 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청소년노동자, 노인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가 급증하였으니, 가장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017년 1월 12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실상 실업자’는 2016년 말을 기준으로 453만8,000 명에 이르렀다. 이 엄청난 수치는 문재인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실업자’보다 4.5배나 많은 것인데, 특히 청년실업사태가 매우 심각해져서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사실상 실업자다.
한국 통계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분배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한국의 경우 2015년에 0.396이었는데, 2016년에는 0.402로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유엔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분배 불평등이 악화되어 사회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지니계수는 0.4인데, 한국은 2016년에 이미 위험선을 넘어선 것이다.
위에 열거한 사회경제지표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사람중심경제’를 일으켜 세울 방도는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와 결별하는 ‘극약처방’밖에 없는데,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가 성장하면 ‘사람중심경제’도 성장할 것이라는 오판과 착각에 빠져있다.
3. 세계무역전쟁이 세계대공황 불러온다
문재인 정부가 오판과 착각에서 벗어나 수출총력 자유시장경제와 결별하고 ‘사람중심경제’를 일으켜 세울 혁명적인 조치를 단행해도, 때는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세계무역전쟁이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끌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생경제파탄으로 비틀거리는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끌어가는 세계무역전쟁은 어떤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89년 전인 1929년 10월 29일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로 세계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세계대공황으로 사경에 빠진 미국은 무역전쟁을 도발하는 것으로 생존방도를 찾아보려고 몸부림쳤다. 1930년 6월 17일 미국 연방의회는 수입품목에 대한 관세를 대폭 증액시킨 스뭇-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채택하여 세계무역전쟁을 도발하였다. 스뭇-홀리 관세법은 미국의 농업과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20,000여 개에 이르는 수입품목에 대해 52.8%의 관세를 부과한 조치였다. 미국이 관세증액조치를 감행하자, 당시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미국산 수출품에 대한 관세보복조치를 단행하였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과 세계무역전쟁은 그렇게 서로 뒤엉키면서 자유시장경제를 대파국으로 몰아갔다.
1930년대에 발생한 세계대공황과 세계무역전쟁으로 세계교역량은 63% 감소되었고, 세계산업생산은 40% 감소되었으며, 선진공업국들의 실업률은 25~33%로 치솟았다. 세계대공황과 세계무역전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공화당 대선후보 허벗 후버(Herbert C. Hoover)가 1929년 3월 4일 제3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였을 때, 세계무역전쟁은 예고되었다. <사진 4>
보호무역주의 신봉자인 허벗 후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때로부터 89년이 흐른 2017년 1월 20일, 또 다른 보호무역주의 신봉자가 백악관의 주인으로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다. 후버의 계승자 트럼프가 도발한 세계무역전쟁은 세계대공황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될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18년 6월 10일에 발표한 자료에서 오늘 세계무역전쟁이 세계대공황을 촉발시킬 것으로 우려하였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룩먼(Paul R. Krugman)은 2018년 6월 27일 제주도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에 출연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무역전쟁은 70년에 걸쳐 형성된 자유무역체제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계무역전쟁으로 관세가 40%로 치솟고, 세계교역량이 67% 감소하고, 대량실업사태가 일어나, 세계무역체제는 앞으로 5~10년 안에 1950년대 수준으로 퇴행할 것으로 우려하였다.
뉴욕과 런던에 각각 본사를 둔 국제신용평가기관 핏취 그룹(Fitch Group)이 2018년 7월 3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무역전쟁으로 세계자유시장경제는 2조 달러(2,232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우려하였다.
2017년도 한국의 수출총액이 사상 최대인 5,739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수출순위 6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였던 2018년 6월 1일은 공교롭게도 세계무역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그 날 0시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연합, 캐나다, 멕시코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철강제품에 25%의 관세를, 알루미늄제품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는 조치를 발효시킨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게 도발한 무역전쟁을 미국의 주요동맹국들을 상대로 하는 세계무역전쟁으로 확대하였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사진 5>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2018년 6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50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산 수출품목에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평시에 중국과 미국의 교역관세는 2% 미만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무려 25%로 대폭 증액시킨 것이다. 관세증액조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중국이 미국의 관세증액조치에 관세보복으로 맞서면 중국산 수출품목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더 증가시킬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노리는 관세증액의 공격목표가 대중무역적자를 줄여 미국의 시장을 보호하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이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라는 첨단산업진흥책을 봉쇄하여 중국의 첨단기술획득을 가로막고, 세계원자재시장에 대한 중국의 통제기도를 가로막는 것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2018년 6월 19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미국과 세계의 기술, 지식재산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경제침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들어있다.
‘중국제조 2025’라고 불리는 중국의 첨단산업진흥책은 항공우주산업, 인공지능산업, 로봇산업, 생명공학 등 첨단주력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정책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그 정책을 가로막아 세계첨단산업분야에서 앞서나가려는 중국을 저지하는 기술패권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공격과 반격의 악순환은 시작되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적국들을 제재할 때 들이대는 ‘긴급국제경제권한법(IEEPA)’을 중국에게 들이대는 정면공격기회를 노리고 있다. 기술강국으로 올라서려는 중국을 대적국제재조치로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공격시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공격하고 중국이 반격하는 충돌의 악순환 속에서 시시각각 격화되는 세계무역전쟁은 세계대공황을 촉발시킬 것이다.
2018년 6월 27일 제주도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에 출연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룩먼은 세계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대국들의 교역량 감소폭은 15~20%에 머물 것이지만, 한국의 교역량 감소폭은 30~40%로 치솟을 것으로 예견하였다. 한국의 교역량이 30~40% 급감하면, 한국 경제는 살아남을 수 없다.
4. 세계석유위기도 다가온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17년 5월 10일 산하 특수정보기관인 코리아임무쎈터(Korea Mission Center)를 설립하였고, 거의 같은 시기에 산하 특수정보기관인 이란임무쎈터(Iran Mission Center)도 설립하였다.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로 임명된 앤드루 김(김성현)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과 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자(차관보급)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는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국무장관이 중앙정보국장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비공개 실무작업을 전담하였으며, 2018년 7월 6일부터 7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 후속회담에도 팜페오 국무장관의 수행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배석하였다.
그런데 이란임무쎈터의 책임자로 임명된 마이클 댄드리아(Michael D’Andrea)는 오랜 세월 중앙정보국의 비밀군사작전을 지휘해오며 ‘어둠의 왕자(Dark Prince)’라는 악명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오싸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암살작전을 지휘하였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에서 국제테러범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민간인 수 천 명을 살해한 무인항공기공습을 지휘하였다.
앤드루 김과 마이클 댄드리아의 대조적인 모습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을 상대로 대화와 협상을 추구하지만, 이란에게는 비밀군사작전과 무력침공을 자행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게 위험한 도발을 감행하였다.
2018년 6월 28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라고 불리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한 것을 구실로 내세우며 대이란제재조치를 오는 8월 6일부터 강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제재조치에 따르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원유수입국들은 오는 11월 4일부터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란의 원유수출을 봉쇄하여 이란을 압살하려는 도발책동이다. <사진 6>
하지만 이란은 그런 협박과 강압에 굴복할 나라가 아니다. 2018년 7월 4일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Mohammad Ali Jafari) 이란혁명수비군 사령관은 미국이 이란의 원유수출을 가로막으면, 그에 대한 보복으로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을 봉쇄하겠다고 언명하였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에 있는, 폭이 54km밖에 되지 않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수송원유의 약 35%가 통과하는 전략요충지다. 이란이 그 해협을 봉쇄하면,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세계석유위기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한국은 미국, 중국, 인도, 일본에 이어 세계 순위 5위에 오른 원유수입국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은 11억1,817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중동산 원유수입량은 81.7%였다. 이것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날, 한국의 원유수입도 사실상 중단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한국석유공사가 9개 기지들에 분산, 비축해둔 1억3,320만 배럴의 원유를 아껴 쓴다고 해도, 108일(3개월 19일)밖에 버티지 못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유류공급을 끊어버리면, 한국의 산업 전체가 마비될 것이고, 자동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전기불빛이 꺼진 어둠 속에 잠길 것이다.
5. 생존방도가 여기 있다
미증유의 대파국을 불러일으킬 세계무역전쟁, 세계대공황, 세계석유위기는 한국에게 3대 재앙이다. 3대 재앙들 가운데 하나만 닥쳐와도 한국은 견디지 못하는데, 불행하게도 3대 재앙이 거의 같은 시기에 대폭발을 일으키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고된 것이다.
한국에 3대 재앙에 닥쳐올 때, 생존방도는 없는 것일까? ‘철통같은 한미동맹’을 입으로만 되뇌는 미국은 한국이 3대 재앙으로 사경에 빠져도 외면할 것이고, 세계무역전쟁으로 허덕이는 중국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한국이 3대 재앙에 휘말려 사경에 빠지면, 누가 도와줄 것인가? 세계무역전쟁, 세계대공황, 세계석유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회주의자립경제를 발전시키는 분단선 이북의 동족밖에 없다. 장차 통일공화국에서 함께 살아갈 동족만이 도움을 줄 것이다. 동족의 피는 물보다 진하고, 더 뜨겁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8천만 민족에게 안겨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야말로 동족이 사경에 빠졌을 때 도와줄 희망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는 역사적인 문서다. <사진 7>
판문점 선언 제1항에는 이렇게 명기되었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또한 판문점 선언 제1항 6조에는 이렇게 명기되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판문점 선언에는 그런 희망의 약속들이 명기되었지만, 미국이 대조선경제제재를 풀지 않으면, 남측은 사경에 빠지는 경우 북측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사경에서 벗어날 민족경제의 공동번영도 추진할 수도 없다. 한미동맹이라는 ‘괴물’이 한국의 생존을 가로막는 불의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 인도, 싱가폴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임박한 대파국에 대비할 생존방도를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에 기대를 거는 것은 헛수고다. 문재인 정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괴물’ 같은 한미동맹을 믿지 말고, 미국의 대조선제재를 무시해버리고, 우리 민족끼리 판문점 선언을 이행함으로써 임박한 대파국에 대비할 생존방도를 모색하는 것밖에 없으며, 조국통일이 8천만 민족의 생명선이라는 진리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판문점 선언에는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기록되었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라도 평양을 방문하여 생존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세계무역전쟁, 세계대공황, 세계석유위기라는 3대 재앙이 한국을 집어삼킬 기세로 닥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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