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6월 0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중대현안 논의하지 않은 조미고위급회담
2. 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흥분한 트럼프
3. 조미정상회담 성사과정은 ‘유훈관철과정’
4. 트럼프의 파격행동, 무슨 뜻인가?
5. 최대압박 중지와 제재 해제 언급한 트럼프
6. 조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질 “대단한 타협”
7.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단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1. 중대현안 논의하지 않은 조미고위급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에 파견한 김영철 특사가 2018년 5월 30일 뉴욕에 왔다.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은 중국 베이징을 떠난 중국국제항공(Air China)편으로 뉴욕에 있는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백악관은 뉴욕에 도착한 김영철 특사를 국빈급 의전과 경호로 영접하였다.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백악관이 전례 없는 특급 의전으로 김영철 특사를 맞이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뉴욕에서 김영철 특사의 첫 일정은 2018년 5월 30일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국무장관이 마련한 환영만찬에 참석한 것이었다. 환영만찬은 맨해튼 38가에 있는 유엔주재 미국차석대사의 관저에서 당일 오후 7시부터 약 90분 동안 진행되었다. 김영철 특사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는 만찬이었으므로, 팜페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특사 두 사람만 만찬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환영만찬에 통역이 필요하였다. 김영철 특사는 자신을 수행하는 통역관을 환영만찬에 동석시켰고, 팜페오 국무장관은 우리말을 잘 하는 앤드루 김(김성현)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를 환영만찬에 동석시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환영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사진 1>
이튿날인 5월 31일 김영철 특사는 둘째날 방미일정을 진행하였다. 전날 저녁 환영만찬을 나눈 그 장소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열렸다. 회담은 오전 9시 5분경에 시작되어 오전 11시 25분경에 끝났다. 회담시간이 예상한 것보다 짧아진 까닭은 김영철 특사의 방미목적이 팜페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에게 전하고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철 특사와 팜페오 국무장관이 진행한 고위급회담에 참석한 조선측 배석자는 김성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조선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이다. 미국측 배석자는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와 마크 램벗(Mark Lambert) 국무부 코리아과장이었다. 양측 통역관도 각각 한 사람씩 참석하였다. 이처럼 조선외무성에서 부상급 인사가 아닌 국장급 인사가 배석하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좌하는 통일전선책략실장이 배석하였으며, 미국 국무부에서도 차관급 인사가 아닌 과장급 인사가 배석한 것을 보면, 5월 31일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은 중대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
그런데 ‘3류 소설’을 제멋대로 써갈기는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비핵화 해법을 놓고 탐색전을 벌였을 것”이라느니, 또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을 것”이라느니, 또는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담판을 시도하였다”느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별별 억측을 다 늘어놓았다. 특히 <연합뉴스> 취재기자는 한 술 더 떠서 “미국은 이날 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과 북한의 경제적 번영지원 등을 약속하며 북한의 확고한 결단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써갈겼으니, 이것은 ‘3류 소설’도 되지 못한 유언비어로 들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악관에 특사를 파견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오래 전에 확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확정되지 않았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미정상회담 의제는 언제 확정되었나?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을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접견하고 두 차례 진행한 회담에서 이미 확정되었고, 당시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별도로 진행한 두 차례 회담에서 조미정상회담 의제에 관한 세부적인 토의까지 마쳤다. 이에 관해서는 2018년 5월 2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나의 글 ‘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한 달이 지나도록 알지 못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미정상회담 의제가 아직 확정되지 못한 것으로 착각하고, 이번에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탐색전’, ‘신경전’, ‘담판’을 벌였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았으니,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보도행태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 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흥분한 트럼프
김영철 특사의 방미일정 중에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백악관 방문이었다. 2018년 6월 1일 오전 6시 50분경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은 두 대의 의전차량을 타고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맨해튼을 출발하여 워싱턴으로 향했다. 맨해튼에서 워싱턴까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오후 1시 12분경 김영철 특사와 수행원들이 탄 두 대의 의전차량이 백악관 경내에 들어서자,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이 문 밖에 나와 김영철 특사를 영접하고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수행원들은 김영철 특사와 함께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하였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김영철 특사를 접견하는 시간이 대략 10~15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백악관의 예상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김영철 특사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약 80분 동안 회담하였다. <사진 3>
김영철 특사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정중히 전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열어보지도 않고 흥분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흥분한 그는 친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환하게 웃으며 김영철 특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치 교장선생님이 안겨준 표창장을 받고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중학생처럼...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수반들로부터 친서들을 많이 받지만,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친서를 두 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특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전례는 찾아볼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아들고 흥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말해준다. <사진 4>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을 마치고 그와 수행원들을 배웅한 직후 백악관 마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그 친서는 매우 좋은 친서다. 기자 여러분들은 그 친서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직접 읽어보고 싶나? 얼마나 보고 싶은가? 얼마나 보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곧이어 그는 “나는 일부러 그 친서를 열어보지 않았다. 나는 국장(김영철 특사를 정찰총국장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지칭함-옮긴이) 앞에서 친서를 열어보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친서를 열어보기 바라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중에 읽어봐도 된다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그 친서에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국가수반이 보내온 친서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법이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내용도 알 길이 없지만,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리는 그 친서에는 “(조미)정상회담을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치와 함께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이 들어있다”고 백악관 출입기자에게 귀띔해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서에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였을 것이고,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성사되기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기념사진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두 손으로 받쳐든 친서겉봉이 유별나게 크다. 그렇게 큰 겉봉에 들어있는 친서의 크기도 그만큼 클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의 크기가 그처럼 유별나게 큰 까닭은, 절반을 접지 않는 표창장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절반을 접는 형태였으므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표창장만큼 유별나게 큰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것에는,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정상회담을 살려낸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표창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3. 조미정상회담 성사과정은 ‘유훈관철과정’
김영철 특사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한 뒤에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였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배석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국가수반이나 특사와 회담할 때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 비서실장이 배석하는 것이 백악관의 관례이건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할 때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을 배석시키지 않았다. 얼마 전,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광분하며 조선을 향해 폭언을 늘어놓았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선의 첫 번째 혐오대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분위기를 고려하여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고 팜페오 국무장관만 배석시킨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부화뇌동했던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았다. 백악관의 관례를 벗어나 자기 측근들을 회담에 배석시키지 않으면서 온화한 회담분위기를 조성한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가 보인다. <사진 5>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외국 특사를 만나 80분 동안 회담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2018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시간은 약 21분밖에 되지 않았다. 2000년 10월 10일 조명록 특사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대통령에 전하고, 약 45분 동안 회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가 매우 이례적으로 80분 동안 회담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으며,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영철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전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확고한 입장을 이미 팜페오 국무장관의 방북보고를 통해 들은 바 있지만, 이번에 김영철 특사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것이다. 김영철 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와 의지를 직접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를 받아들 때처럼 흥분하였을 것이다. 회담시간이 그렇게 길어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김영철 특사의 백악관 방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파견한 조명록 특사가 2000년 10월 10일 백악관을 방문한 때로부터 18년 만에 이루어진 쾌거다. 당시 조명록 특사는 미국 국무부 청사를 먼저 방문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국무장관과 회담한 직후 자신이 입은 양복 정장을 왕별이 달린 차수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백악관에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하고 회담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된 계기였으나, 클린턴 대통령이 검은 이익집단의 저지선을 넘지 못하는 바람에 조미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사진 6>
그러므로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가 이루지 못했던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유훈관철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조선에서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실현하는 것은 뒤로 미루거나 어길 수 없는 최상의 과업이다. 이런 관점에 서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는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와 전혀 무관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특사로 평양에 파견한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팜페오 국무장관을 특사로 평양에 파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파견 및 친서외교와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 및 친서외교 사이에는 연속성이나 계승성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단절만 있을 뿐이다. 백악관 각료들 가운데 18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기억하고 그 경험을 계승하려는 사람은 없다.
18년 전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를 계승, 발전시키며 ‘유훈관철’에로 힘을 집중시키는 조선의 외교역량이 전혀 그렇지 못한 미국의 외교역량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4. 트럼프의 파격행동, 무슨 뜻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행동과 충격발언에서 거듭 확인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회담을 마치고 그와 수행원들을 배웅하면서 백악관의 관례를 뛰어넘는 파격행동을 보여주었는데, 그 상황은 이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치고 김영철 특사와 함께 백악관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회담에 배석하였던 팜페오 국무장관도 그 뒤를 따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는 함께 백악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에도 계속 담화를 나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가 타고 온 의전차량 앞까지 다가갔다. 미국이 중시하는 주요동맹국의 국가수반들이 백악관 회담을 마치고 떠날 때,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현관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관례를 벗어나 백악관 마당을 걸어 나와 의전차량 앞에까지 가서 김영철 특사를 배웅하였으니 파격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특사는 의전차량 앞에서 통역을 통해 몇 분 동안 담화를 계속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 없이 80분 동안 장시간 회담을 진행하였으면서도, 작별하기 아쉬운 듯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김영철 특사와 백악관 마당에 서서 담화하였다. <사진 7>
바로 그 때, 김영철 특사는 백악관 밖에서 자신이 회담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던 김성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조선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 직무대행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였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과 악수하면서 인사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행동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행동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는 팜페오 국무장관을 앞으로 부르더니, 김영철 특사 일행과 함께 또 다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사진 8>
김영철 특사 일행이 탄 의전차량들이 백악관을 떠날 때,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특사를 배웅하면서 보여준 파격행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진 9>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을 간파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2018년 6월 2일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다. 그들의 비판과 우려를 요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느니, 조선의 선전전술에 말려들었다느니, 일관성 없고 순진한 외교로 조선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느니 하는 따위들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은,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능하고 무기력해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어떤 위대하고 유능한 미국 대통령이 나타나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조미핵대결에서 완패한 미국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길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에서 완패한 미국을 국가안보파탄위기에서 건져내는 궁여지책으로 조미정상회담에 그처럼 매달리게 된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을 궁여지책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 회담에서 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패자에게 주어지는 선택범위는 회담에서 자기의 패배범위를 되도록 축소하는 것밖에 없다. 그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은폐하는 바람에 세상이 모르고 있었던 그런 놀라운 사실이 조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드러나기 시작한 것뿐이다.
5. 최대압박 중지와 제재 해제 언급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특사 일행을 배웅한 직후 백악관 마당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꺼내놓은 충격발언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충격발언이라고 표현했으나, 세기적인 대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이미 패하고 있다는 숨겨진 사실을 알면, 그다지 충격적인 것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나는 북조선에게 최대압박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조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대조선)제재를 하지 않겠다. 나는 (대조선)제재가 해제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제재를 해제하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사에 호응한 것이다. 이것은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이후에 취해야 할 조치를 예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그것은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제재를 해제하는 전향적인 조치가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는 미국 정세분석가들의 어설픈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다. <사진 10>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관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전담하는 팜페오 국무장관마저도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할 때까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최대압박이 유지되고, 대조선경제제재가 지속될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대한 최대압박을 중지하고 대조선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싶다는 전향적인 의사를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서 표명하였다. 이런 전향적인 의사표명이야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파견과 친서외교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6. 조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질 “대단한 타협”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담(6월 12일에 개최될 조미정상회담을 뜻함-옮긴이)에서 대단한 타협(big deal)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며, 우리는 (6월) 12일에 무엇인가에 서명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의 과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한 차례 회담으로 진행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한 차례 회담에서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오늘 그들(김영철 특사를 지칭함-옮긴이)에게 천천히 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빨리 갈 수도 있고, 천천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매우 성공적이고,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위의 인용문은 평소에도 정확한 어휘와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꺼내놓은 발언이어서, 조리 있는 내용이 아니었으나,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말하지 못하는 중대한 내용이 그 발언에 들어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 발언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오는 6월 12일 싱가폴(Singapore)에서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에서 “대단한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단한 타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발언 중에 코리아전쟁을 종식시키는 문제를 슬쩍 언급한 것으로 봐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 합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할 별도의 정상회담들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을 각각 따로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오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중 어느 회담에 참석하느냐 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은 별도의 정상회담을 각각 개최해야 할 만큼 서로 분리될 사안이 아니므로 단번에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 합의되고, 남북미 정상들이 아니라 외교수장들이 이른 시일 안에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7.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단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조미정상회담에서 “대단한 타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조미정상회담은 조미 쌍방이 일련의 과정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될 해결방안은 “천천히” 이행될 것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또 다른 내용들이다. 그가 언급한 “천천히”라는 말은 이행속도가 늦다는 뜻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행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단계적 해법을 주장하여 합의점을 아직도 찾지 못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위에 인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견을 따라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단계적 해법이란 조미 쌍방이 각각 제시한 등가적 해결방안들을 단계적으로 합의하고,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한다는 뜻이다. 이행만 단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행에 앞서 합의도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단계적 해법은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그 이후 이행하여야 할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구분하고, 그것을 정세발전단계에 맞춰 순차적으로 합의, 이행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첫 단계에서 최소강령을 합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며, 조미 쌍방이 최소강령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때 둘째 단계로 넘어가 최대강령을 합의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강령은 종전선언 발표와 평화협정 체결이고, 최대강령은 주한미국군 완전철수다. 주한미국군 완전철수에 상응하는 또 다른 최대강령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표현을 빌리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의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 아니라 핵전쟁위험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개념은 조선이 핵무기가 사라진 한반도라는 뜻이 아니라 핵전쟁위험이 사라진 한반도라는 뜻이다.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개념은 조선의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없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5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2018년 5월 초 미국 중앙정보국이 새로 작성하여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에게 회람시킨 정보보고서에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되었다고 한다. 팜페오가 중앙정보국장에서 국무장관으로 영전한 날이 2018년 5월 2일이었으므로, 그는 국무장관에 취임하기 직전,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정보보고를 받았고, 그 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 정보보고를 받은 직후, 평양을 방문하여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하였다. 그러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두 차례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미국이 오해한 것처럼 조선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을 파악하였고, 그에 대해 동의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판단이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라는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사진 11>
만일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더 이상 진척될 수 없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평양회담이 진행되었던 5월 9일로부터 오늘까지 한 달이 지나면서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꾸준히 진척되어온 것을 보면, 그 문제가 이미 지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합의된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은, 조선의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조선에 대한 불신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설득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불신을 해소시켜주었을 것이다.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을 위협하지 않고, 미국의 핵무기가 조선을 위협하지 않는 전향적인 조치들(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국군 철수, 조미국교수립)를 조미 쌍방이 합의하고 실행하면, 조미 쌍방은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이다.
그런데도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 무슨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말을 여전히 외우고 있으며, 그의 입만 쳐다보는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앵무새처럼 그 말을 외워대고 있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조선의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견해에 동의하였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은폐하는 고육책에 매달리고 있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그런 고육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굴복한 것으로 보이게 되고, 그로써 미국과 동맹국들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2일 싱가폴에서 열리는 조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될 공동성명의 문안조율은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과 성 김 미국측 회담대표가 판문점 통일각에서 최근 몇 차례에 걸쳐 진행해온 실무회담에서 수행되고 있는데,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그 공동성명에 당연히 명시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될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핵심개념이 조선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라고 발표하지 않을 것이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반도의 비핵화’ 개념해석에 관한 진실을 은폐해온 고육책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 쌍방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최소강령을 합의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실현되고,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 쌍방이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해소하는 최대강령(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을 합의하여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를 뚜렷이 전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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