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4월 16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격화시점
2.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
3.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5가지 요구조건
4. 미국이 지급해야 할 비핵화 보상금은 얼마나 될까?
1.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격화시점
매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다. 최근 격화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외정세분석가들은 그 두 나라의 대립이 장기간 점차적으로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는데, 격화시점이 이처럼 급속히 다가오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를 주목하는 까닭은, 그것이 조미관계와 조중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조미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조미관계를 심층적으로 인식하려면, 그리고 조중정상회담 이후 발전속도를 높이고 있는 조중관계를 심층적으로 인식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일어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18년 3월 23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은 중국산 1,300여 개 수입품목에 5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투자를 제한시키는 문서에 서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문서에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대통령 비망록(Presidential Memorandum Targeting China's Economic Aggression)’이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는 점이다. 경제침략이라는 용어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미중무역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도발하자, 중국도 2018년 4월 4일 미국산 128개 수입품목에 약 3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복조치를 발표하였다. 중국은 보복관세를 미국산 농축산물에 집중시켰는데, 이것은 보복관세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미국 중서부 농축산중심지를 ‘공격’하려는 전의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무역전쟁을 도발한 날, 백악관으로부터 지구 반대편으로 13,600여 km 떨어진 남중국해 북부해역에서 중국을 심히 자극하는 또 다른 도발이 자행되었다.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USS Carl Vinson)을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1항모타격단이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를 인솔하고 남중국해 북부해역에서 중국군과의 교전을 가상한 미일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해군무력이 대치하는 해역인데, 미국이 그런 해역에 일본 해상자위대까지 끌어들여 미일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한 것은 중국을 극도로 자극한 무력시위였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18년 3월 23일부터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과 무력시위를 동시병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중국에게 가장 큰 자극과 압박을 가한 것은 미국의 대중무역전쟁이나 대중무력시위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2018년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John R. Bolton)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하였다.
볼턴은 대화와 협상을 멀리하고, 대결과 강압을 우선시하는 악명 높은 강경파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 물망에 오른 인물들 가운데서 볼턴을 간택한 것은, 대중강경정책을 공격적으로 수행할 싸움꾼을 선봉에 내세운 것이다. <사진 1>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던 날, 중국은 경악하였다. 왜냐하면, 볼턴은 악명 높은 강경파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뛰어넘어, 미국의 기존 중국정책을 뒤집어버리고, 중국과의 무력충돌마저 불사할 매우 위험한 중국혐오증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볼턴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온 미국 역대 행정부들의 기존 중국정책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그는 미국이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대만과 복교하고,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분리독립론자이다. 그는 2017년 1월 16일 <월스트릿저널>에 발표한 글에서 미국과 대만은 “긴밀한 군사관계”를 맺어야 하며,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주일미국군 일부를 대만으로 재배치할 수도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2)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 두 사람의 발언을 인용한 <싸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2018년 4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은 미국의 국익추구라는 명분을 내걸고 중국과 무력충돌을 벌이는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한 것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기 1주일 전인 2018년 3월 16일, 그가 미국과 대만 사이의 정부당국접촉을 촉진하기 위한 대만여행법안에 서명하였기 때문이다. 그 법에 따르면, 모든 미국 정부당국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만을 방문할 수 있고, 대만의 고위관리도 미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만여행법이 발효된 직후인 2018년 3월 20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가 대만을 방문하여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을 만났고, 3월 22일에는 미국 상무부 부차관보가 대만을 방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주일 간격을 두고 대만여행법을 발효시키고, 대만분리독립론자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것은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배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은 무력시위를 동반하였다. 이를테면, 2018년 4월 6일부터 9일까지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로저벌트함(USS Theodore Roosevelt)을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9항모타격단은 싱가포르 해군함대를 인솔하고 남중국해에서 대중무력시위를 또 다시 감행하였다. 2018년 3월 중순에는 제1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 북부해역에 들어가 중국을 자극, 압박하더니, 곧이어 4월 초에는 제9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 남부해역에 들어가 중국을 또 다시 자극, 압박한 것이다. 대중무력시위를 마친 제9항모강습단은 4월 10일 남중국해를 통과하여 필리핀 마닐라로 북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중국은 참을 수 없었다. 미국의 대중무역전쟁과 대중무력시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자는 결전의지가 중국의 주요언론매체들마다 들끓었다. <사진 2>
그런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4월 5일부터 10일까지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해상군사훈련을 진행하여 미국의 대중무력시위에 맞불을 놓았고, 4월 12일에는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 1척과 전투함 48척으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과 전략폭격기, 조기경보기,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 각종 작전기 76대로 편성된 방대한 공군무력을 동원한 관함식을 진행하였다. 그 관함식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투복을 입고 지휘함에 올라 해군함대를 사열하였다. 남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관함식을 마친 중국 항모함대는 대만해협으로 북상하여, 오는 4월 18일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예정되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로 정세가 험악해진 가운데, 영국 언론매체 <이코노미스트> 2018년 4월 5일부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늘 6월 중에 대만방문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측기사를 실었다. 만일 그 예측기사대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에 나타나 대만분리독립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는 폭발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2.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
한반도 정세발전을 추동하는 요인은 조미관계변화이며, 그 변화의 중심부에 조미정상회담이 있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조미관계변화만으로는 전부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날로 험악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세를 대국중심주의로 인식하는 백악관은 미중관계를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설명하지만, 대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조미관계를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인식하려면, 조중미 삼각관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붙들어야 한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정세변화를 인식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대중강경정책에 매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적대정책과 대중강경정책을 동시병행하지 못하며,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조건 없이 덥석 수락한 까닭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으로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에 계속 매달려봤자 국가안보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8일 백악관에서 접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전달받자마자 조미정상회담을 남북정상회담보다 앞서 개최하고 싶은 다급한 심정을 피력했던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의 패배,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황급히 수락한 요인이다.
그런데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황급히 수락한 또 다른 요인이 보인다. 그 제2요인은 미중관계의 대립격화에서 발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무역전쟁, 대중무력시위, 대만분리독립책동을 포괄하는 대중강경정책을 밀고 나가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한 것은 그가 대조선적대정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곤궁한 지경에 몰려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고, 대조선적대정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오늘의 아메리카핵제국이 어제의 아메리카핵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미국은 조선과 중국 두 핵강국을 상대로 대결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늙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적대정책과 대중강경정책을 동시에 밀고 나가면, 조선과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협공을 받게 되는데, 늙은 핵제국에게는 그 두 핵강국의 협공에 맞설 힘이 없는 것이다. <사진 3>
늙은 핵제국의 힘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2018년 4월 13일 새벽에 자행된 시리아공습에서도 드러났다. 이 글의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핵제국의 허약한 몰골을 드러낸 불장난소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측면지원을 받으며, 시리아의 타격대상 세 곳을 향해 135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공대지순항미사일이 36발이었고, 함대지순항미사일이 99발이었다. 타격대상 한 개를 파괴하기 위해 순항미사일을 45발씩 쏜 것이다. 미사일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마구 쏴버린 게 아니라,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타격대상을 정확히 타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값비싼 미사일을 그처럼 마구 쏘아댄 것이다.
미국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시리아정부군은 135발 중에서 71발을 지대공미사일로 요격해 떨어뜨렸다.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간 64발 가운데 타격대상에 정확히 명중된 것이 몇 발인지 발표되지 않아서 명중률을 알 수 없지만, 64발 가운데 타격대상에 명중된 것은 25발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근거는 2017년 4월 7일 미국이 시리아정부군 공군기지들을 향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였을 때, 명중률이 39%에 머물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시리아정부군은 러시아의 군사지원을 받으며 방공망을 대폭 보강하였고, 이번에 보강된 방공망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런데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은 30년 전 소련에서 생산된 S-125 페초라(Pechora) 지대공미사일, 북(Buk) 지대공미사일, S-200 지대공미사일로 구성된 것이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제작회사인 레이시온(Raytheon)은 너무 과대평가된 명성에 비해 명중률이 창피할 정도로 낮은 그 순항미사일의 성능을 대폭 개량했는데도, 30년 전 낡은 기술로 만든 시리아의 방공망을 뚫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졌다. 늙은 핵제국은 허약증에 걸렸다.
만일 미국이 대중강경정책에 집중하지 않으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밀려나면서 괌과 하와이로 물러나야 한다. 이것은 미국에게 견딜 수 없는 굴욕이다. 미국이 대중무역전쟁, 대중무력시위, 대만분리독립책동에 매달리는 것은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는 늙은 핵제국의 몸부림이다.
미국이 대중강경정책에 집중할수록 대조선적대정책이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조건 없이 즉석에서 수락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중국이 조선에 대한 태도를 왜 바꾸었는지도 알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강경정책에 맞서 싸우려면 조선과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친선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중국이 조선과의 친선관계를 복원하면, 미국의 대중강경정책에 맞서 싸우는 데 자기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중정상회담 제의를 시진핑 주석이 쾌히 수락한 요인이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된 정세를 이용하여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을 각각 성사시키고, 그 회담들에서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범한 외교지략이 보인다.
3.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5가지 요구조건
조중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도꾜신붕> 2018년 4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성실히 대하면, 조미정상회담 전이든 후든 비핵화 이행일정표를 만들 수 있다”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주도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조중정상회담 이전에 일찌감치 갖춰놓았음을 알 수 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밝은 몇몇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한겨레> 2018년 4월 13일부 보도기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주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갖춰놓았는지를 알려준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최근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미국에게 5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요구조건들은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고,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다. 여기에 열거한 5가지 요구조건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면, 그 요구조건들 속에 담긴 뜻이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사진 4>
(1)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요구조건에서 주목하는 것은 핵전략자산이라는 개념이다. 왜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하지 않고, 핵전략자산을 철수하라고 했을까? 핵전략자산이라는 포괄적 개념 속에는 핵무기는 물론이고, 전시에 핵무기들이 배치될 핵공격예비기지도 포함되는데, 주한미국군기지가 바로 핵공격예비기지다. 지금 주한미국군기지에 전술핵무기가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선이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시에 핵무기가 배치될 주한미국군기지를 폐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주한미국군기지가 폐쇄되면, 주한미국군은 철수해야 하므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첫 번째 요구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수는 한국과 일본에게 감당키 어려운 ‘안보충격’을 안겨줄 가장 민감한 사안이므로, 조선은 미국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명시적인 표현 대신에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2)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는 요구조건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라는 뜻이다. 미국은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대조선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여왔는데,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를 참가시키지 않는 전쟁연습은 예산낭비,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전개되지 않는 대조선전쟁연습은 하나마나 한 것이므로, 조선이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라는 뜻이다.
(3) 미국이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라는 요구조건은 불가침을 보증하라는 뜻이다. 미국이 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보증하려면, 종잇장에 불과한 불가침문서나 넘겨주어서는 안 되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해야 한다.
(4)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라는 요구조건은 주한미국군 철수와 대조선전쟁연습 중지를 국제법적으로 보증하라는 뜻이다.
(5) 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라는 요구조건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완전히 폐기하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는 전쟁위협은 물론, 정권교체, 인권공세, 경제제재, 외교고립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조미국교수립은 전쟁위협, 정권교체, 인권공세, 경제제재, 외교고립으로 혼합된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미국이 지급해야 할 비핵화 보상금은 얼마나 될까?
조중정상회담에 밝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요미우리신붕> 2018년 4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조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리 체제를 확실히 보장하고, 핵포기에 따른 전면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말한 ‘체제보장’은, 위에 열거한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을 미국이 실천행동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체제보장’과 더불어 ‘핵포기에 따른 전면적인 보상’도 언급하였다.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문제가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예상은 <한겨레> 2018년 4월 13일 보도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핵화는 결코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므로, 당연히 전면적인 보상이 따라야 한다.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전면적인 보상은 조선이 지난 4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개발, 생산, 건설한 무기급 핵물질, 핵탄 및 열핵탄, 대륙간탄도미사일, 지하핵시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할, 비핵화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를 파악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5>
(1) 무기급 핵물질의 가격은 1kg당 23,000달러다. 조선이 무기급 핵물질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였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해온 것을 생각하면, 최소 1,000kg 정도의 무기급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무기급 핵물질을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3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2) 핵탄제작비는 더 엄청나다. 첫 번째 생산되는 핵탄 1발의 가격은 1억1,130만 달러이고, 그 이후 대량생산되는 핵탄들의 가격은 1발당 995만 달러다. 조선이 얼마나 많은 핵탄을 보유하였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이 약 25년 동안 핵탄을 생산해온 것을 생각하면, 조선이 보유한 핵탄은 최소 120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탄을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12억9,535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열핵탄제작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탄과 열핵탄을 모두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0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3) 대륙간탄도미사일제작비를 살펴보면, 연구개발비가 2억 달러이고, 생산단가는 1발당 4,000만 달러다. 조선은 화성-13, 화성-14, 화성-15, 그리고 명칭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 대륙간탄도미사일 3종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6종의 총보유량은 최소 60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체계를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6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4) 미국에서 핵시설건설비는 1개소당 1,500만 달러다. 그와 달리, 조선은 모든 핵시설들을 지하에 건설하였으니 건설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 1개소당 3,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조선에 지하핵시설이 몇 개소 있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최소 50개소의 지하핵시설이 있다고 가정하면, 미국이 조선의 지하핵시설을 폐쇄하기 위해 조선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5) 위에 열거한 비핵화 보상금을 전부 합하면, 54억1,835만 달러다. 하지만 이것은 어림잡아 최소 금액으로 추산한 것이므로, 실제 금액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게 그처럼 엄청난 보상금을 조선에게 지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해서, 조선의 비핵화를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상금을 지급할 수도 없고, 비핵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게 된 미국은 결국 자기가 지급할 수 있는 비핵화 보상금에 맞춰 부분적인 비핵화를 합의하게 될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주한미국군 철수, 대조선전쟁연습 영구 중지, 대조선불가침 보증, 평화협정 체결, 조미국교수립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위에 서술한 것처럼 최소 54억1,935만 달러에 이르는 비핵화 보상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것이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조선이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만한 핵제국은 조선이 정치적 굴복을 요구할 조미정상회담에 과연 응하려고 할까?
미국 언론매체들이 몇 차례 보도한 것처럼, 지금 조선과 미국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에 서술한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과 비핵화 보상문제가 조미사전접촉을 통해 백악관에 전달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 분명하다. <사진 6>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과 막대한 비핵화 보상금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조중미 삼각관계에 얽힌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충격적인 보고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펄쩍 뛰면서 조미정상회담은 해보나 마나 결렬될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매우 불길한 상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이터통신> 2018년 4월 12일부 보도기사는 그런 불길한 상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당일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의회지도자들을 접견하면서 지금 조미정상회담이 한창 준비되고 있는데, 그 회담은 아주 멋질 것(it will be terrific)이며, “우리는 매우 존중하는 마음으로(with a lot of respect)” 정상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기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할 조미정상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멋진 회담으로 여기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시리아에서 또 다시 불장난소동을 일으켜 전 세계를 혼란과 위험에 몰아넣은 핵제국의 오만한 황제이지만, 왠지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는 공손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 못할 사연이다. 기존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연은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에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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