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8년 01월 2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4. 쌘프랜시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1. 조미핵대결종식으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
지금 세계의 시선은 급격한 정세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다. 그 정세변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북관계개선의 급진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아침에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북관계개선이 마치 경이로운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 극적인 장면들을 하나씩 펼쳐가고 있는 중이다.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힘과 슬기를 합쳐 밀고 나가는 남북관계개선은 다음 달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아로새긴 멋진 서막을 올리게 된다. 지금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신성한 강토를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불태우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낸 미치광이의 핵공갈을 물리치고 기어이 평화를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장한 기상을 세계에 떨칠 사상 최고의 평화축전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런 급격한 정세변화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반만년 민족사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조국분단으로 무려 70년 동안 갈라져 살아왔지만,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고 힘과 슬기를 합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분단체제를 허물어버리고 위대한 통일국가를 건설할 엄청난 저력이 우리 민족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실증한 것이다. 70년 분단체제 밑에 짓눌렸던 민족의 저력이 굴종과 적폐의 거죽을 찢고 솟구쳐 올라 삼천리강산을 뒤덮으며 용용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은 남과 북 중에서 어느 한 쪽이 홀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 뜻이 통하여 힘과 슬기를 서로 합칠 때, 바로 그럴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빛나는 혁신이며, 눈부신 도약이며, 가슴 벅찬 승리이다. 그리하여 남북관계 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된 오늘의 정세변화 속에서 남과 북이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위협을 배격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대전환의 출발점에 나서는 것이며, 분단체제를 혁파하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 것이다. 남과 북이 힘과 슬기를 합친 민족주체역량으로 관계를 개선하는데, 어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랴!
남북관계 개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2007년 10.4선언이 발표된 때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이 실현되었다. 그런데 올해 실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실현되었던 남북관계개선과 매우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1)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기간에는 조미핵대결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그 기간에 실현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의 ‘금지선’을 넘어설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조미핵대결이 남북관계개선의 속도, 방향, 범위를 내리누르는 억제요인으로 되었던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핵대결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남과 북은 관계개선 초기단계에는 들어섰으나 완성단계에로 더 멀리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조미핵대결이 종식되는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남북관계개선이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8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남북관계개선은 조미핵대결이 종식된 정세의 질적 변화 속에서, 그 질적 변화를 추동요인으로 하여 실현되기 시작한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개선이다. 만일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지 않았더라면,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미핵대결종식과 남북관계개선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동안 남북관계개선에서 이룩된 귀중한 성과들은 대북적대정책을 또 다시 들고 나와 휘둘렀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도발망동에 의해 혹심하게 파손되었고, 남과 북은 이전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연속 자행한 대북도발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 돌아간 종속변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한, 그런 대북도발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붙어돌아가는 종속변수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대북적대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민족의 염원과 정세발전의 요구에 맞게 대북관계개선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끝내 완화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대북관계개선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할 것인가 아니면 완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미국에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정전된 이후 오늘까지 65년 동안 미국 역대 행정부들은 조선을 고립, 압살해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왔다. 65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런 대조선적대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에게로 계승되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대조선적대정책을 자발적으로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예상되는 완화계기는 하나뿐이다. 조선과 미국이 격돌한 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여 미국에게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강제하고, 미국은 조선의 그런 강압적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 다시 말해서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조미적대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화하지 않으면, 지금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기간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70여 년 지속되어오는 조미적대관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은 정세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그래서 그것을 질적 변화라고 불러야 한다. 최근 <자주시보>에 실린 내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해오고 있는,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25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조미핵대결종식, 바로 이 사변이 70년 조미적대관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질적 변화다. 하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이 교묘하게도 보도형식을 빌어 퍼뜨리고 있는, 조미핵대결에 관한 헛소문들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런 엄청난 사변, 정세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여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는데도,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조미핵대결이 종식되지 않았다느니, 또는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bloody nose attack)’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느니 하는 해괴한 소문들이 미국에서 떠돌고 있다.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그런 헛소문들은 한국 언론보도에도 버젓이 실리고 있고, 그런 보도 아닌 보도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의 진전여부를 전망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므로, 요즈음 미국 언론매체들이 퍼뜨리는 조미핵대결종식에 관한 헛소문들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말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 조선의 완성된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깎아내리려는 미국의 일부 미사일전문가들은 화성-15형이 정상각으로 발사되지 않고 최대 고각으로 발사된 것이 마치 어떤 기술공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이야말로 허튼 소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는 것보다 최대 고각으로 발사하는 것이 로켓기술공학적으로 더 어렵다. 조선이 화성-15형의 사거리를 크게 줄여 정상각으로 발사하면, 일본 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은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관측하지 못하고 미국만 그 상황을 관측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화성-15형 재돌입체의 돌진낙하비행상황을 단독으로 관측한 경우, 그 재돌입체가 돌진낙하하다가 대기마찰로 타버렸다고 허위선전을 해도 조선은 반박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조선에서 관측할 수 있는 동해 수역에 재돌입체를 떨어뜨리기 위해 화성-15형을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그런 논거 이외에 더 있다. 조선은 2016년 3월 14일에 진행되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 재돌입체성능을 판정하는 대기권 재돌입환경 모의시험에서 합격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고 2017년 5월 14일 동해 상공으로 고각발사하였고, 2017년 8월 29일과 9월 15일에는 각각 북태평양 상공으로도 발사하였다. 또한 조선은 화성-12형에 장착하였던 재돌입체를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2017년 7월 4일과 7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고각발사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재돌입환경모의시험을 통과한 재돌입체를 화성-12형에 장착하여 세 차례 시험발사한 뒤에 화성-14형에도 장착하고 두 차례 더 시험발사한 것이다. 물론 조선은 그 다섯 차례 시험발사에서 모두 성공하였다.
특히 2017년 7월 29일 조선이 고각으로 쏘아올린 화성-14형은 정점고도 3,724.9km까지 올라갔다가 동해 수역에 탄착했는데, 거기에 장착된 재돌입체가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사실은 일본 <NHK> 홋까이도 지부에 설치된 기상관측카메라가 촬영한 기상관측동영상에서 실증된 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자주시보> 2017년 8월 7일에 실린 나의 글 ‘마하스템 예고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들은 조선이 만든 재돌입체가 적어도 다섯 차례 검증을 거치면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조선은 다섯 차례 검증에서 대기권재돌입판정기준에 합격한 재돌입체를 한층 더 발전시킨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s)를 화성-15형에 장착하고 최대 고각으로 쏘아올렸던 것이다. 2017년 11월 29일 조선은 화성-15형에 장착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모의탄두들이 “조선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되였다”고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정확히 탄착되었다’는 말은 예정된 탄착구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며, 동시에 돌진낙하비행 최종구간에서 대기마찰로 타버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탄착하였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 12월 4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동해의 밤하늘에 나타난 붉은 섬광체 3개’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다.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능력을 그처럼 고도화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실증되었는데도 미국의 몇몇 분별없는 미사일전문가들은 그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면서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상각으로 발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2) 조선의 전략핵시설 몇 개소를 파괴하는 이른바 ‘코피공격’을 감행하여 조선을 굴복시키려는 기습타격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은 원래 영국의 언론매체 <텔리그라프(Telegraph)>가 2017년 12월 20일에 처음 퍼뜨린 것인데,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코피공격검토설’을 언론에 흘려준 사람은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2017년 12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과 미국이 반관반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직후인 12일 12일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 토론회 연설에서 조선에게 조건 없는 양자회담을 전격 제의하였을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양자회담제의를 극력 반대하면서 이른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헛소문을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텔리그라프>가 기사화한 이후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그 헛소문은 2018년 1월 9일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과 <비지니스 인싸이더>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각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그 두 언론매체들은 최근 백악관에서 조선의 전략핵시설들에 대한 ‘코피공격작전’이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다시 실었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 헛소문을 분별없이 퍼날랐다.
그러나 그 헛소문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헛소문을 23년 만에 또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4월 12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가 추적,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가 조선의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것도 사실은 헛소문이었다고 한다. 조미회담을 반대한 극우파 관리들이 조선에게 겁을 주려는 망상에 빠져 조작한 헛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미회담을 반대하는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선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는 ‘코피공격작전’이 백악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헛소문을 또 다시 조작하여 언론에 흘려주었으니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짓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이그재미너> 2018년 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코피공격작전’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펜타곤이 무관심한 군사작전을 백악관이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다.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핵강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는 러시아가 미국의 전략핵시설을 기습폭격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는 헛소리만큼이나 황당무계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고 언명한 바 있다.
3. 모호화 어법 뒤에 숨겨진 비밀
위에 서술한 두 가지 헛소문은 미국 언론매체들 속에서 잠시 떠돌다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런 헛소문과 달리 남북관계개선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게 아니냐 하고 우려할 만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2018년 1월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확장억제전략협의회(EDSCG) 제2차 회의가 진행된 것이다. 이 회의에는 양측에서 외교 및 국방부문의 차관급 관리들이 각각 참석하였다. 한국 국방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 차관급 회의에서 남북관계개선에 대해 협의하였고, 한미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하였으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한, 미 전략자산의 한국 및 주변지역에 대한 순환배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 보도내용을 읽으면, 미국은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수시로 출동시키면서 군사적 긴장을 여전히 고조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 개선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에 중지되는 게 아니냐 하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좀 성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이후 미국이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편대를 한반도에 또 다시 출동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차관급 관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심중히 결정해야 하는 국가안보문제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지난 며칠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줄줄이 꺼내놓은 아래와 같은 연속발언들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월 11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된 <월스트릿저널>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질문을 비껴갔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2018년 1월 16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외무장관 다자회의 직후 캐나다 외무장관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이 나왔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직답을 피했다.
이튿날인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사소통을 한 적이 있었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같은 날,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고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때, “(조선과 미국 사이에) 열려있는 통로들이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직답을 피하면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실재하는 사실을 시인하기 힘든 정황이 조성되었을 때,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glomarization) 어법이 사용되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이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화 어법을 사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그에 대한 응답을 아직 받지 못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발언을 꺼내놓은 사람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다. 그는 2018년 1월 17일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였는가 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외국지도자들과 통화한다”고 답변하였다. 얼핏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이 답변 속에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있다. 켈리 비서실장의 그 답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대화를 제의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말해서 제3국 국가지도자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간접적으로 대화를 제의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은밀한 부탁을 받고 그의 대화의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제3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논할 필요가 있다.
패자가 승자에게 먼저 대화를 요청하는 것은 국제관례다.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먼저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대화제의를 비밀로 감추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한 대화의 형식은 정상회담이다. 2018년 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통신> 기자들과 대담하는 중에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을 것인데,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게 될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이제 현 시점에서 남은 길은 없다. 우리는 이 사람(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옮긴이)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조미정상회담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에 응답을 주지 않았다. 왜 응답을 주지 않았을까? 첫째는,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원한다면, 국제관례에 따라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제의할 것이지,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퇴짜를 받을 어설픈 행동이었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식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한대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제의를 받아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1일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한 사람, 조선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도 비난과 지탄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사람과 마주 앉아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무시해버리고, 조미고위급회담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 그건 허사다
2018년 1월 17일 한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2018년 1월 13일 미국 쌘프랜씨스코에서 한미일 3자안보수장회담이 은밀히 진행되었다는 보도였다. 그 비밀회담이 진행된 날로부터 나흘 지난 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와대 관계자는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찌 쇼따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보장국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은 그것이 은밀히 진행된 비밀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음모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들은 비밀회담에서 어떤 음모를 꾸민 것인가?
일본 <NHK> 2018년 1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쌘프란씨스코 3자회담에서 재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기사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3자회담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2자회담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조선이 비핵화협상에 나오도록 최대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비밀회담에 정의용 실장이 참석한 것은, 최근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개선에 대처하는 문제도 당연히 그 비밀회담에서 논의되었음을 말해준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일본-한국이 3자합동으로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문제와 남과 북이 우리 민족끼리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문제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조선에게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남과 북이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양립될 수 없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는 극우관료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런 흉심을 품은 극우관료가 3자비밀회담을 긴급히 소집하여 조미회담과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18년 1월 23일은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USS Pueblo)가 조선인민군에게 나포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국에게 자국 군함을 나포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미국 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한다고 명기한 사죄문을 조선에게 바치고서야 7개월 동안 붙잡혀 있었던 전쟁포로 82명을 송환받는 치욕을 겪었다. 50년 전 조선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었고, 미국에는 핵무기가 수 천 발이나 있었지만, 미국은 조선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핵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핵무기가 1발도 없었던 조선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국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미국이 조선에게 그 무슨 최대 압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푸에블로호의 치욕을 망각한 것이고, 치욕과 비교할 수 없는 파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2018년 1월 17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진행된 간담회에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하여 발언하는 중에 “미국과 북조선이 협상탁에 나서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조미협상이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한 비핵화협상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핵대결에서 자기들이 패했는데도 조선의 비핵화를 협상목표로 내건 기존 방침에 미련을 두고 있다. 그들이 조선을 비핵화하겠다는 참으로 미련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조선이 그들의 회담제의를 받아줄리 만무하다.
미국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였으면서도 자기들이 최대 압력을 가하면 조선을 비핵화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오류, 실패, 좌절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억설과 궤변을 늘어놓는 법인데, 지금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이 꼭 그런 꼴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조선에게 회담제의를 계속해도 조선으로부터 ‘개무시’를 당하고 있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된다.
미국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제아무리 반대하고 가로막아도 한반도 정세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쌘프랜씨스코 3자비밀회담에서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으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그건 허사다. 남과 북이 민족의 통일염원을 담은 단일기를 휘날리게 될 ‘평화올림픽’이 성사되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으며,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배격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인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남북관계개선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진전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우리 조국이 일제 통치에서 해방된 후 처음 한 자리에 모인”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진행되었다. 한반도 전역의 56개 정당 및 사회단체를 대표하여 그 역사적인 정치회합에 참석한 민족대표 695명은 ‘전 조선동포에게 격함’이라는 제목의 격문에서 “우리 조국강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하고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라”고 외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과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백절불굴의 민족적 진취기상 만세!”를 불렀다. 70년 전 백절불굴의 민족적 기상을 안고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였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절절한 외침. 그 외침은 70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도 삼천리 강산을 쿵쿵 울리며 우리 민족을 이끌어주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고 단합하여 난관과 방해를 뚫고 통일의 길로 가라고, 어서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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