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 2016년 11월 2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트럼프-아베 비공개 회담에 배석한 제3인물
2.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 받게 될 제2키신저
3. 오바마가 해임한 플린,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하다
4. 플린이 모스끄바에 가서 푸틴을 만난 사연
5. ‘전략적 인내’ 버리면, ‘전략적 대화’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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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럼프-아베 비공개 회담에 배석한 제3인물
시작부터 파격의 연속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2016년 11월 17일 아베신조(安培晉三) 일본 총리와 만난 비공개 회담이다.
원래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 국무부 의전실이 마련한 공식의전절차를 따라 외국정상을 접견하는 관례를 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국무부는 대통령 당선인이 외국정상들의 당선축하전화를 받는 순서를 미리 정해주고, 외국정상을 접견하기 전에 해당국가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해주고, 외국정상과의 전화통화 중에 또는 외국정상을 만나는 접견석상에 공식통역관을 배정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그 모든 의전절차를 무시하였다. <뉴욕타임스> 2016년 11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외국정상들의 당선축하전화를 받는 순서도 정하지 않았고, 당선축하전화를 받을 때 공식통역관도 배정받지 않았다. 이전에 다른 대통령 당선인들은 외국정상들 중에서 가장 먼저 영국 총리의 당선축하전화를 받는 관례를 따랐었는데, 이번에 트럼프 당선인은 엉뚱하게도 압델 파타 엘씨씨(Abdel Tattah el-Sisi) 이집트 대통령의 당선축하전화를 가장 먼저 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두 번째 당선축하전화를 받은 외국정상은 맬콤 턴불(Malcolm Turnbull)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였는데,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선수 그렉 노먼(Greg Norman)에게서 트럼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축하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또한 맛떼오 렌치(Matteo Renzi) 이딸리아 총리의 당선축하전화를 받았을 때, 트럼프 당선인은 ‘챠오’(Ciao, 영어에서 헬로라는 말처럼 쓰이는 간단한 인사말)라는 이딸리아말로 인사하더니 통역도 없이 영어로 통화하였다. 트럼프의 그런 파격적인 행동을 본 미국 국무부 의전실 관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일본 총리를 만나기 직전에 미국의 일본정책에 관한 국무부의 해설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공식통역관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중앙일보> 2016년 11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아베 총리와 만찬을 나누면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아베 총리는 자기를 수행하는 고위관리들을 호텔 숙소에 남겨두고 일본인 통역관 한 사람만 달랑 데리고 트럼프를 만나러 그의 사저인 트럼프 타워(Trump Tower)에 갔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만찬제의를 받아들여 트럼프 타워에서 만찬까지 하고 싶었겠으나, 바로 이틀 뒤 뻬루(Peru)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을 의식한 나머지 만찬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베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그의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던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 배웅해주는 이변도 연출하였다. 이처럼 트럼프의 첫 외교활동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파격적인 행동이 뭐가 뭔지 모르는 좌충우돌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의 기존관례와 기성관념에서 벗어나 자기 식대로 하는 자신만만한 행동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억만장자 부동산재벌총수가 대통령으로 덜컥 뽑힌,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엄청난 이변으로 미국 정치권의 기존관례와 기성관념이 흔들리고 있는데, 트럼프 당선인의 파격행동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더욱 놀라운 이변들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아베 회담시간은 원래 1시간으로 예정되었는데, 30분이나 길어졌다. 회담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진 까닭은,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들을 두 차례에 걸쳐 회담에 동석시켰기 때문이다. 그로써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들이 트럼프-아베 비공식 회담을 계기로 자기 정체를 세상에 드러낸 셈인데, 그 내막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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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은 아베 총리와 만난 비공개 회담에 자기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 이방카 트럼프(Ivanka M. Trump)와 그녀의 남편이자 자기 맏사위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를 동석시켰다. 이방카는 지난 대선기간 중에 타고난 미모와 화술로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이러 저리 뛰어다닌 통에 그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고, 쿠쉬너는 트럼프에게 영향을 줄 중요한 조언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이 짜하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인이 아베 총리와 만난 비공개 회담에는 트럼프의 직계친족인 이방카와 쿠쉬너 이외에 제3인물이 동석하였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방카, 쿠쉬너, 제3인물을 그 비공개 회담에 동석시켰으니, 의전관례로 보면 그 세 사람은 사실상 정상회담에 배석자로 참석한 셈이다.
<중앙일보> 2016년 11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비공개 회담이 끝나갈 무렵 마이클 펜스(Michael R. Pence) 부통령 당선인을 불러 아베 총리와 인사를 나누게 하였다. 그렇다면 트럼프-아베 비공개 회담에 처음부터 배석한 제3인물은 펜스 부통령 당선인보다 트럼프의 신임을 더 많이 받는 실세 중의 실세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아베 비공개 회담에 처음부터 배석한 실세 중의 실세는 마이클 플린(Michael T. Flyn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였다.
2.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 받게 될 제2키신저
미국 대통령은 매일 아침 7시 45분부터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극비정보(top-secret intelligence)를 보고받는데, 이것을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Presidential Daily Briefing)’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극비정보는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국방정보국(DIA),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16개 국가정보기관들이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2013년 6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매일 아침 보고받는 극비정보들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가안보국이 ‘프리즘(PRISM)’이라는 비밀감시망을 통해 수집한 극비정보라고 한다. 예컨대, 2012년 한 해 동안 국가안보국이 비밀감시망을 통해 수집한 극비정보들 가운데서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에 포함된 정보는 모두 1,477건이다. 국가안보국이 운용하는 비밀감시망은 세계 각국 국가수반들의 은밀한 대화나 비공개 발언을 몰래 엿듣는 감청도청체계다.
미국 대통령은 극비정보를 알고 있어야 제국주의세계체제를 경영하기 위한 대외정책을 수립 또는 시행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으므로,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인데, 그처럼 중요한 정보보고업무를 수행하는 책임자가 바로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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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2016년 11월 16일부터 국가정보국장실이 작성한 극비정보를 보고받기 시작하였다. 그가 보고받기 시작한 극비정보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와 똑같은 내용이다.
관례에 따르면, 미국에서 행정부가 교체되는 기간 중에는 대통령 당선인과 부통령 당선인이 함께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와 똑같은 내용의 극비정보를 보고받고, 대통령이 정식으로 취임하면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통령만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2017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이전까지 트럼프와 펜스는 트럼프의 사저인 트럼프 타워에서 극비정보를 매일 보고받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극비정보를 보고받는 자리에 펜스 부통령 당선인 이외에 또 한 사람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이외에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를 받을 사람을 지명할 수 있으므로, 트럼프는 자신과 펜스 이외에 제3인물을 극비정보보고 청취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다.
오바마, 트럼프, 펜스 세 사람만 보고받는 극비정보를 함께 보고받게 해달라고 트럼프가 요구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바로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펜스와 함께 극비정보를 보고받기 시작한 지난 11월 16일 다음날 마이클 플린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하였고, 곧바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연락하여 그 내정자를 극비정보보고 청취대상에 추가로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된 마이클 플린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보부문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세 중의 실세로 등장하게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뉴욕타임스>는 2016년 11월 17일 보도기사에서 앞으로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국제위기상황들에 대처하는 방도에 관한 “최종조언(last word)”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게 될 것으로 예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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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이 마이클 플린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를 극비정보보고 청취대상에 추가로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던 바로 그 날, 지난 6년 동안 ‘대통령 매일 정보보고’를 작성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해온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국가정보국장이 연방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였다. <CNN> 2016년 11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청문회에서 11월 16일 밤에 자기의 사직서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관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정부 고위관리들은 대선이 끝난 다음 달인 12월 중에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는데, 대통령에게 제출된 사직서는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는 이듬해 1월 20일에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무슨 급한 사정이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대선이 끝난 직후 일찌감치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 퇴장하고,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등장한 대조적인 장면이 불과 몇 시간 시차를 두고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대조적인 장면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클래퍼가 연방의회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국가정보국장 사직서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하였음을 언급하고, 플린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로 그 시각,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로 걸어 들어가는 노인 한 사람이 있었다.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 날 오후 아베 총리와 비공개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키신저의 조언을 들었던 것이다. 올해 나이가 93살이 된 키신저는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이다. 노쇠하여 사고력마저 퇴화된 그에게서 트럼프 당선인은 무슨 조언을 들었을까?
키신저는 1970년대에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지역에 몰아친 사회주의혁명을 중앙정보국 비밀공작을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잔인하게 압살하였을 뿐 아니라, 친미군사독재정권을 등장시켜 이른바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일으킨 배후조종자이다. 1970년대 칠레의 친미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폭압으로 각계층 진보인사 10,000여 명이 무참히 학살당했고, 12,000명이 실종되었으며, 같은 시기 아르헨띠나의 친미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폭압으로 각계층 진보인사 7,158명이 무참히 학살당했고, 13,000여 명이 실종되었다. 그런 천인공노할 폭압만행을 저지른 라틴아메리카지역의 친미군사독재정권들을 원격조종한 범인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키신저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키신저는 베트남전쟁에서 무고한 베트남인민을 학살한 미국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전범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만일 1970년대에 국제형사재판소가 있었더라면, 키신저부터 전범재판을 받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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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노쇠한 키신저에게서 들은 조언은 197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친미군사독재정권들을 원격조종한 흉악한 범죄경험이 아니라, ‘닉슨교의(Nixon Doctrine)’에 따라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한 빠리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소련과 긴장완화를 추진하였고, 중국과 국교수립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였고, 주한미국군을 전격적으로 감축하였던 과정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겪었던 외교경험이었을 것이다.
키신저는 1969년 1월 20일 닉슨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어 1973년 9월 21일까지 재직하였고, 1973년 9월 22일부터 1975년 11월 3일까지는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겸직하였으며, 1975년 11월 4일부터 포드 행정부가 퇴임한 1977년 1월 20일까지는 국무장관으로 재직하였다. 그런 특이한 경력만 봐도, 키신저가 닉슨 행정부와 포드 행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실세 중의 실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키신저의 뒤를 이어 2017년부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제2키신저가 출현하였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플린이다.
3. 오바마가 해임한 플린,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하다
마이클 플린은 현역 육군 중장으로 국방정보국장을 지냈다. 33년에 걸친 그의 군복무경력은 다음과 같다. 플린은 1983년 미국이 도발한 그레나다침공, 1994년 미국이 도발한 아이티침공, 2001년 미국이 도발한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미국이 도발한 이라크전쟁에 미국군 특수부대 정보장교로 참전하였다.
마이클 플린은 현역 육군 중장으로 국방정보국장을 지냈다. 33년에 걸친 그의 군복무경력은 다음과 같다. 플린은 1983년 미국이 도발한 그레나다침공, 1994년 미국이 도발한 아이티침공, 2001년 미국이 도발한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미국이 도발한 이라크전쟁에 미국군 특수부대 정보장교로 참전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피비린내와 화약내가 진동하는 전쟁경험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바꿔놓을 만큼 강렬한 것이다. 플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랜 전쟁경험을 가진 군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징집된 젊은 날의 키신저도 서부유럽 벌지전투에 정보부대 요원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데, 그의 전쟁경험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플린은 전쟁터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일곱 개의 군공메달을 받고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였던 것을 보면, 여러 전선들에서 정보장교로서 큰 공을 세운 것이 분명하다. 당시 그는 미국 육군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장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플린의 정보능력을 인정한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그리하여 플린은 2012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국방정보국장, 군사정보위원회 의장, 전략사령부 산하 정보-감시-정찰 합동기능구성사령부 사령관을 3중으로 겸직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14년 8월 오바마 대통령이 플린을 모든 공직에서 해임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해임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11년 5월 오마바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 숨어 지내던 알-카에다(Al-Qaeda) 국제테러조직의 수괴 오싸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그를 사살하였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알-카에다가 제거되고, 국제테러위험이 소멸되었다는 식으로 발표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는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방정보국장이었던 플린은 연방의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빈 라덴이 제거되었다고 해서 국제테러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알-아케다보다 더 위험한 다른 국제테러조직들이 출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예언’은 적중하였는데, 알-카에다가 쇠락한 이후 ‘이슬람국가(Daesh)’를 비롯한 국제테러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미국과 서방세계를 끊임없이 위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플린의 그런 주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반테러전쟁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비쳐지는 바람에 오바마의 미움을 샀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플린 국방정보국장이 아프가니스탄전쟁 중에 미국군의 군사작전정보를 그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오스트레일리아군과 무책임하게 공유하였다는 과거행적을 들춰내어 군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게 하더니, 결국 그를 국방정보국장직에서 해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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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을 부당하게 해임하였다고 생각한 플린이 오바마에게 반감을 품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플린의 태도가 달라졌다. 오래 전부터 민주당에 당적을 두었던 플린은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서자 그를 열렬히 지지하면서 힐러리 클린턴(Hillary D. R. Clinton) 민주당 대선후보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지난 대선기간에 미국군 고위지휘관 출신 88명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는데, 그들 군출신 인사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플린이다.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훨씬 전인 2015년 여름 어느 날, 트럼프 앞에 그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한 플린이 나타났다. 트럼프와 플린이 처음 만난 날, 원래 30분으로 예정되었던 회동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트럼프가 플린과의 첫 만남에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트럼프와 플린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2016년 2월 트럼프는 플린을 자기 대선본부의 군사고문으로 임명하였다. 이것은 트럼프와 플린의 관계가 대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4. 플린이 모스끄바에 가서 푸틴을 만난 사연
플린은 국방정보국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상반기 어느 날 뜻밖에 러시아 모스끄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러시아말로 지루(GRU)라고 약칭하는 주력정보국(Main Intelligence Agency) 초청을 받고 그 정보기관을 방문한 것이다. 주력정보국은 러시아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기관인데, 미국군 현역 육군 중장인 국방정보국장이 러시아군 정보기관을 공식방문한 것은 전무후무한 이변이었다.
주력정보국에 도착한 플린은 거기서 근무하는 정보요원 전체를 대상으로 정보능력개발과 국제정세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미국 국방정보국장이 러시아 군사정보기관을 방문한 것도 이변인데, 거기서 민감한 주제를 놓고 강연까지 하였으니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이런 이변 중의 이변을 계기로 하여 플린과 러시아 사이에 서려있던 경계심이 자취를 감추면서 묘한 호감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 묘한 호감은 결국 2015년 12월 러시아 관영영어언론매체 <러시아 투데이>가 모스끄바에서 주최한 창설 10주년 기념 만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러시아 투데이>는 기념만찬에 플린을 초청하였는데, 그는 기념만찬에서 국제정세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V.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그 기념만찬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이다. 주최측은 만찬좌석을 배치하면서, 푸틴 대통령 옆자리에 플린을 앉게 배려하였다. 그렇게 되어 푸틴과 플린의 기묘한 만찬상봉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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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상봉사실을 알게 된 미국 언론매체들은 플린과 회견하는 중에 그가 푸틴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고 캐물었다. 그러자 플린은 그냥 인사만 했을 뿐이라고 적당히 답변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답변은 자신을 친러파로 몰아가려는 미국 언론매체의 의도를 슬쩍 피해간 임기응변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이 자기 옆자리에 앉아 있는 미국 국방정보국장에게 어찌 인사말만 건네고 말았겠는가. 만찬석상에서 푸틴 대통령과 플린 국방정보국장이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보아야 정상이다.
현직 국방정보국장으로서 러시아의 주력정보국을 방문하여 강연하는 이변을 연출하였을 뿐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이변 중의 이변을 연출한 짜릿한 경험은 러시아에 대한 플린의 생각을 바꿔놓았고, 그를 친러성향으로 끌어갔다.
지난 선거기간 중에 트럼프와 푸틴이 서로에게 공개적으로 호감을 표시하였을 뿐 아니라, 트럼프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푸틴 대통령부터 만나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 표명한 것은, 플린의 친러성향이 트럼프에게 전이되었음을 말해준다.
5. ‘전략적 인내’ 버리면, ‘전략적 대화’ 택할까?
국방정보국장 출신 플린에게는 군사정보를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데, 그가 제18대 국방정보국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인 2012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2년 동안 조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변들이 있었다.
국방정보국장 출신 플린에게는 군사정보를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데, 그가 제18대 국방정보국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인 2012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2년 동안 조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변들이 있었다.
1) 조선은 2012년 4월 15일과 2013년 7월 27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서 8축16륜 자행발사대 6대에 탑재한 화성-13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등장시켰는데, 이것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능력을 과시한 것이었다.
2) 2012년 12월 12일 조선은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은하-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는데, 이것은 우주개발능력과 더불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능력도 과시한 것이었다.
3) 2013년 2월 12일 조선은 제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는데, 이것은 소형화된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었다.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설에서 조국통일대전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밝혔고, 그 때로부터 2013년 5월까지 조선인민군은 최고의 긴장상태에 돌입하여 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조선이 최후결전 준비를 완료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당시 국방정보국장이었던 플린은 위에 열거한 사변들을 목격하면서 조선인민군의 전략타격력과 전쟁준비태세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플린이 이끄는 국방정보국은 2013년 3월에 작성한 군사정보보고서에서 조선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적시하였던 것이다. 당시 플린이 이끌던 국방정보국은 미국 국가정보기관 16개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조선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정보는 미국의 고위층에만 보고되었고, 미국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은 극비정보였다. 2013년 4월 11일 당시 국방정보국장이었던 플린은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극비정보가 그 청문회에서 공개되는 바람에 군사기밀이 유출되었다는 말썽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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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것은, 2013년 3월 당시 국방정보국이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공격능력을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공격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데, 플린이 이끌던 국방정보국은 이미 3년 전에 그 사실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2014년 8월 국방정보국장에서 해임된 플린은 2015년 6월 10일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민간인 신분으로 출석하여 미국이 상대하는 3대 축을 러시아, 중국, 조선이라고 지적하였다. 그가 조선의 국제적 지위를 러시아, 중국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은 것은 조선의 핵무력이 러시아와 중국에 버금갈 만큼 고도화되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미국이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공격능력을 인정하게 되면, 미국은 기존 대조선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조선정책을 세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기존 대조선정책은 조선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정보판단에 근거하여 수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기존 대조선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3년 전 플린의 국방정보국이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공격능력을 인정하였건만, 그것은 국방정보국이 너무 앞서나간 정보판단일 뿐이고, 다른 국가정보기관들의 일치된 정보판단은 아니라고 하면서 국방정보국의 정보판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4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클래퍼 국가정보국장과 플린 국방정보국장은 그날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함께 출석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국방정보국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조선의 능력을 다른 정보기관들보다 더 확신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하지만 다른 정보기관들은 국방정보국의 그런 정보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까닭에,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능력을 가지려면 아직 5년 정도 더 걸려야 한다는 정보판단에 근거하여 수립된 ‘전략적 인내’ 정책에 줄곧 매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에 들어와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능력을 가지려면 아직 5년 정도 더 걸려야 한다는 기존 정보판단이 오류였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정하였다. 물론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공격능력에 대한 정보판단이 그처럼 수정되었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만 논의된 것이다.
2016년 5월 4일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 밀사로 청와대를 찾아가 박근혜 대통령과 밀담을 나누던 중 뜻밖에도 평화협정체결문제를 꺼낸 것은,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하려면 아직 5년 정도 더 걸려야 한다고 보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존 정보판단이 수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가 그런 기존 정보판단에 기초하여 수립하고 줄곧 견지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었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3년 전에 플린이 이끌던 국방정보국은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판단을 내렸던 것이니,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전략적 인내’ 정책이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명이 다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새로운 대조선정책을 수립할 것인가? 오바마 행정부가 내걸었던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개념은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대화를 단절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조선과의 대화를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단절해버렸다. 그러므로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개념을 대체할 새로운 정책개념은 ‘전략적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7년 1월 20일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과의 전술적 대화가 아니라 전략적 대화를 시작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선거유세 중에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 밝힌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과의 전술적 대화가 아니라 전략적 대화를 시작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서세평 스위스 주재 조선대사는 2016년 5월 23일 <로이터통신>과 회견하면서, 트럼프가 선거유세 중에 조미정상회담에 관해 언급한 발언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그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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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조미정상회담) 성사여부는 우리 최고령도자의 결정에 달렸다. 하지만 나는 그(트럼프)의 생각이나 발언이 터무니없는 소리(nonsense)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통령선거용이다. 일종의 선전 또는 광고로서 쓸데없는 것이며, 대통령 선거를 위한 거동(gesture)일 뿐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2016년 11월 17일 <로이터통신>과 진행한 두 번째 회견에서 서세평 대사는 전혀 다르게 말했다.
“(조미)정상회담은 우리 최고령도자의 결정에 달려있다. 만일 그(트럼프)가 조선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남조선에서 미군을 포함한 모든 군사장비를 철수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1990년대에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조미)관계(정상화)를 논의하는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서세평 대사가 두 번째 <로이터통신> 회견 중에 위와 같이 말한 것은, 출범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 준비집단에 보내는 조선의 첫 메시지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월 20일 출범하면, 조선의 첫 메시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1969년 1월 20일에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미국과 필적할 핵강국으로 등장한 소련과 긴장완화를 추구하였고,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국교수립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였으며, 베트남전쟁을 끝내는 빠리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주한미국군을 대폭 감축하는 일련의 전략적인 조치들을 연이어 취하였는데, 2017년 1월 20일에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정면대결하는 ‘동방의 핵강국’으로 떠오른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전략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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