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5

핵융합시험 5년 뒤 핵융합탄미사일 등장

[한호석의 개벽예감](184)
자주시보 2015년 12월 14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극적인 대조, 1948년의 기관단총과 2015년의 수소탄
2. 2010년에 그들은 핵융합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3. 2013년의 시험용 핵융합탄이 2015년의 실전급 핵융합탄으로
4. 전략군 변화동향과 핵융합탄 실전배치
5. 핵융합탄미사일 4발이면 미국이 사라진다

▲ <사진 1> 2015년 12월 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천혁명사적지를 현지지도하면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선이 핵탄은 물론이고 수소탄도 가진 강대한 핵강국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위의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천혁명사적지를 현지지도하는 현장을 촬영한 언론보도사진이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공


1. 극적인 대조, 1948년의 기관단총과 2015년의 수소탄

2015년이 어느덧 저물고 있다. 올해 조선은 수많은 날들을 격동의 연속으로 보냈다. 조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가 외부 관찰자의 시야를 가려놓으면, 조선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격동적 사변들이 보이지 않지만, 무지와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고 투명한 시야를 열어놓으면 올해 조선에서 일어난 격동적인 사변들이 보인다.
    
외부 관찰자들은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하여 조선이 새로운 고성능 위성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그래서 자기들의 시선을 서해위성발사장에 집중시켰다. 미국의 방송매체 <CNN>이 평양에 현대적으로 신축된 국가우주개발국 청사 앞마당에서 국가우주개발국 고위인사 두 사람과 대담한 보도영상을 2015년 9월 23일에 방영했을 때, 그 고위인사들은 “모든 작전이 완성되는 최종단계에 있다”고 밝혔는데, 이 발언으로 조선에서 위성발사가 임박하였다는 예감이 적중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아직 새로운 위성을 발사하지 않았고, 조선의 위성발사를 기대하였던 외부 관찰자들의 예감도 차츰 시들었다.

그런데 2015년이 거의 저물어가는 12월 10일 조선에서는 위성발사보다 더 격동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의 수소탄보유사실에 대해 언급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2015년 12월 10일은 조선의 수소탄보유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날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 1>

조미핵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 시기에 조선은 핵시험을 단행할지언정 핵탄보유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자제하였다. 그런데 조선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단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져, 자기의 핵탄보유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핵탄보유에 대한 조선의 명시적인 언급은 언제나 언론매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탄보유는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키며 기존 국제안보질서를 뒤바꿔놓는 격동적인 사변이다. 그래서 핵보유국 국가지도자들은 자국의 핵탄보유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자제하는 국제사회의 불문율을 지켜왔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국제사회의 그런 불문율을 깨고 조선의 핵탄 및 수소탄보유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였으니 실로 파격적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12월 10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한 줄의 문장에서 조선이 핵탄은 물론이고 수소탄도 가진 강대한 핵보유국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 명시적 언급은 조선의 군대와 인민을 크게 격동시켰고,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조선의 적대국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 <사진 2>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의 수소탄보유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장소는 조선이 8.15해방 직후 자력으로 첫 무기를 만들어낸 평천혁명사적지다. 위의 사진은 평천혁명사적지에 있는 조그만 병기공장 내부를 촬영한 언론보도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당시 수작업으로 무기를 만들던 조그만 가공선반이다. 조선의 설계가들이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조선의 노동자들이 손으로 쇠를 깎고 다듬어 만든 첫 무기는 한국에서 '따발총'이라고 부르는 기관단총이었다. 1948년에 손으로 깎아 만들었던 수제품 기관단총과 2015년에 최첨단과학기술의 응결체로 제조된 수소탄의 극적인 대조는 조선의 70년 군수공업사가 헤쳐온 자력갱생의 노정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을 가리켜 핵탄과 수소탄을 모두 가진 강대한 핵보유국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장소는 평양에 있는 평천혁명사적지다. 평천혁명사적지는 조선이 8.15해방 직후 자력으로 첫 무기를 만들어낸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때로부터 3년이 지난 1948년 12월 12일 평천의 조그만 병기공장에서 만들어낸 첫 무기는 기관단총이었다. <사진 2>

조선의 설계가들이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조선의 노동자들이 손으로 쇠를 깎고 다듬어 만든 수제품 무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던 바로 그 유서 깊은 사적지를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최첨단과학기술이 응축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에너지를 가진 절대무기를 보유한 사실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1948년에 손으로 깎아 만들었던 수제품 기관단총과 2015년에 최첨단과학기술로 만들어낸 수소탄의 극적인 대조, 이것은 조선이 자력갱생의 기치를 들고 장장 70년 동안 헤쳐온 군수공업발전사의 기나긴 노정을 말해주고 있다.

▲ <사진 3> 수소탄은 수소핵융합기술로 만드는 제3세대 얼핵무기다. 위의 사진은 1961년 10월 30일 소련이 폭발시험을 진행한 사상 최대의 수소폭탄 '짜르 밤바(Tsar Bomba)' 전시품이다. 이 거대한 수소폭탄은 길이가 8m, 무게가 27t이었는데, 뚜폴레브(Tu)-95 폭격기에서 낙하산에 매달아 떨어뜨린 뒤에 폭발하는 순간, 50메가톤의 폭발력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TNT 5천만t이 폭발한 것인데, 거대한 열핵화염은 100km 밖으로 퍼져나갔고, 엄청난 충격파는 지구를 일곱 바퀴나 돌았다. 하지만 그런 시험용 수소폭탄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실전무기로는 사용하지 못하였다. 소련은 거대한 시험용 수소폭탄을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할 정도로 소형화하여 실전급 핵융합탄을 만들었다.     © 자주시보

 
2. 2010년에 그들은 핵융합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수소탄은 수소핵융합기술로 만드는 제3세대 열핵무기다. 수소핵융합의 원리는 6개의 수소가 3단계의 핵융합과정을 거쳐 헬륨 1개와 수소 2개로 변환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핵융합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런 수소핵융합 원리에 의해 설계된 제3세대 열핵무기를 수소탄, 핵융합탄, 열핵융합탄 등으로 부른다. <사진 3>

핵융합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탄제조기술을 먼저 완성해야 하고, 그 다음에 핵융합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핵탄을 만들지 못한 나라는 핵융합탄을 만들지 못하며, 핵탄을 만들었더라도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나라는 핵융합탄을 만들지 못한다. 핵분열기술이 첨단기술이라면, 핵융합기술은 그보다 차원이 높은 최첨단기술이다. 조선이 핵융합탄을 만든 것은, 이미 핵분열기술 완성단계에서 훨씬 더 전진하여 최상위 핵기술인 핵융합기술을 정복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이 핵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2006년 10월 9일과 2009년 5월 25일에 각각 진행한 지하핵시험들에서 두 차례 입증된 바 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조선이 핵탄 수준을 뛰어넘어 핵융합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0년 5월과 6월에 이미 세상에 알려졌으나, 조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를 지닌 국제사회는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조선이 핵융합탄을 보유하였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명시적 언급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지금도 국제사회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만 굴리고 있으니, 5년 전에는 조선에서 핵융합탄이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조선의 핵융합탄 보유문제와 관련하여 5년 전에 있었던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2010년 5월 12일 조선은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런 공식발표가 나왔는데도, 조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로 시야가 어두워진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떤 사물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히면, 자기의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들은 것마저 부정하는 자기배반적 인식이 두뇌 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힌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한국 강원도에 있는 최북단 측정소에서 방사성핵종이 평소보다 8배나 더 검출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이 핵융합시험을 진행하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런 증거가 나왔는데도 조선이 핵융합시험을 하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조선이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경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지하핵실험장에서 핵융합시험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중국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2014년 11월 20일에 입증된 바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연산처리능력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수퍼컴퓨터를 촬영한 것이다. 이 수퍼컴퓨터는 중국 광저우에 있는 국가초급계산중심에 설치된 '티안헤-2'라는 컴퓨터다. 수퍼컴퓨터경쟁에서 중국은 미국을 앞질렀다. 조선도 수퍼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수퍼컴퓨터가 없으면, 핵탄이나 수소탄을 만들 수 없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잠대지탄도미사일도 만들 수 없으며, 위성발사도 하지 못한다.     © 자주시보

2010년 5월 12일 조선의 핵과학자들이 조선식의 독특한 핵융합연구장치를 개발하여 핵융합시험에 성공한 것은, 조선이 그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 기술을 정복하였음을 의미한다. 섭씨 1억도 이상의 열과 1조기압 이상의 초강력한 폭발에너지가 발생해야 핵융합이 일어나게 되므로, 핵융합시험을 진행하려면 핵융합 플라즈마 모의실험(simulation)에 사용되는 초강력한 성능의 수퍼컴퓨터(supercomputer)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진 4>

조선이 2010년 5월 12일에 성공적으로 진행한 핵융합시험에 대해서는 2015년 9월 21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상위 핵기술’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둘째, 조선은 2010년 6월 26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국해방전쟁승리 57돐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김영춘 당시 인민무력부장의 보고를 통해 조선에서 핵융합탄이 개발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였다. 그는 “미국의 가증되는 핵위협에 대처하여 우리는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5월에 핵융합기술을 개발한 조선이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핵탄 수준을 뛰어넘어 핵융합탄을 개발하고 있음을 언급한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미국 몬트레이 국제학대학교에 재직 중인 핵공학자 신성택 교수는 2010년 6월 2일 <뉴스한국>에 기고한 글에서 핵융합기술 개발소식을 전한 조선의 2010년 5월 12일 언론보도를 지적하면서 조선이 수소탄을 제조할 가능성이 100%라고 예견하였다.


3. 2013년의 시험용 핵융합탄이 2015년의 실전급 핵융합탄으로

2013년 1월 20일 <로동신문>은 세계 핵과학계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핵융합기술에 관한 해설기사를 내보냈다. 이것은 <로동신문>이 조선의 핵융합기술개발에 대해 보도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세계 핵융합기술발전추세에 관한 해설기사를 내보낸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해설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로동신문>이 세계 핵융합기술발전추세에 관한 두 번째 해설기사를 2013년 1월 20일에 내보낸 까닭은 그로부터 23일 뒤에 밝혀졌다. 2013년 2월 12일 조선은 열화(劣化)핵융합탄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던 것이다. 국제사회에 조선의 제3차 핵시험으로 알려진 그 핵시험은 핵탄시험이 아니라 핵융합탄시험이었다. 조선에서는 핵탄시험과 핵융합탄시험을 통칭하여 핵시험이라 한다.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2010년 5월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핵융합기술을 가지고 핵융합탄개발에 달라붙어 노력한 끝에 3년 만에 시험용 핵융합탄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폭발시키는 시험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은 2013년 5월 21일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핵융합탄보유사실을 암시하였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은 그 기사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된 “핵탄두, 핵폭탄, 핵포탄, 핵유도어뢰, 핵조종지뢰”를 말하는데, 그런 각종 핵탄들 이외에 핵융합탄도 가졌음을 암시한 것이다.
 
조선의 제3차 핵시험이 핵융합탄시험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2015년 9월 21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상위 핵기술’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열화핵융합탄시험이 진행된 때로부터 약 1개월 반이 지난 2013년 4월 1일 조선은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제정하였다. 그 법령 제2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의 1차 공격과 2차 공격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는 1차 공격과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2차 공격이다. 군사전문가들이 예상할 수 있는 조선의 ‘최후결전전략’에 따르면, 1차 공격은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주한미국군을 ‘섬멸’하는 것이고, 2차 공격은 미국이 조선의 1차 공격을 받고 항복하지 않고 보복핵공격을 감행하는 경우 핵융합탄을 사용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은 조선이 발사한 여러 발의 핵탄미사일들이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반미선전화를 촬영한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이 예상할 수 있는 조선의 '최후결전전략'에 따르면, 1차 공격은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주한미국군을 '섬멸'하는 것이고, 2차 공격은 미국이 조선의 1차 공격을 받고서도 항복하지 않고 보복핵공격을 감행하는 경우 핵융합탄을 사용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그 법령이 제정된 때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2013년 6월 조선은 또 다시 핵융합시험을 진행하였다. <연합뉴스>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측정소가 발생원인을 알 수 없는 방사성핵종을 2013년 6월 중에 세 차례나 검출하였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 제3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증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고 규정하였으므로,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2010년 5월에 이어 2013년 6월에도 핵융합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조선이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한 때는 2013년 2월 12일이었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융합탄보유사실을 왜 그로부터 2년 10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 10일에 언급한 것일까?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하였다고 해서, 곧바로 핵융합탄을 실전배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험용 핵융합탄과 실전급 핵융합탄은 서로 다르다. 시험용 핵융합탄을 실전급 핵융합탄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은, 핵융합탄을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할 수 있도록 소형화하는 최첨단기술에 의해 진척되는 것이다. 그런 소형화과정에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3년 2월 12일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한 조선은 그 여세를 몰아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할 수 있도록 핵융합탄을 소형화하여야 하였고, 마침내 실전급 핵융합탄두를 만들어낸 것이다.


4. 전략군 변화동향과 핵융합탄 실전배치

조선은 소형화과정을 거쳐 실전무기화된 핵융합탄두를 미사일 탄두부에 장입하였다. 핵융합탄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완성된 것이다. 핵융합탄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에 배치되었다.

위에서 인용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 제4항에 따르면, 조선의 핵무기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해서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따라 핵탄과 핵융합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 동안 조선인민군 전략군에게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전략군의 변화동향은 조선의 핵융합탄보유사실을 아래와 같이 말해주고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은 2011년 말에서 2012년 초에 이르는 기간 중 어느 시점에 전략로케트군을 창설하였는데,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군종명칭만 바꾼 게 아니라, 실전역량을 확대하고 개편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되었다는 사실은 2014년 3월 5일에 발표된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한국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4년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된 때는 2013년 말이었다. 2013년 3월 29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최고사령부에서 심야긴급작전회의를 소집하였는데, 당시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전략군 미본토 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는 핵타격 작전지도가 있다. 이것은 2013년 3월 29일 이전에 전략로케트군이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되었음을 말해준다. <사진 6>

▲ <사진 6> 위의 사진은 2013년 3월 29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심야에 소집한 최고사령부 긴급작전회의 현장을 촬영한 언론보도사진이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당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 작전계획서를 검토하고 비준하였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에 서 있는 군사지휘관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작전을 수행하는 김략겸 전략군사령관인데, 당시 그는 상장이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2013년 2월 12일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한 직후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하였고,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 작전계획을 검토하는 심야긴급작전회의를 소집하였다.     © 자주시보


위에 열거한 사실을 살펴보면, 조선은 2013년 2월 13일에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한 직후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핵융합탄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조선이 핵융합탄을 실전배치하게 될 전략무력단위를 확대, 개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이 상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하였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조선인민군 상장은 한국군 중장에 해당한다. 2015년 11월 4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7차 군사교육일군대회’가 평양에서 진행되었는데, 2015년 12월 4일 조선에서 방영된, 그 대회현장을 촬영한 기록영화를 보면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대장의 군사칭호를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계급철폐를 주장하는 조선에서는 계급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군사칭호라는 말을 쓴다.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2014년 2월에 상장의 군사칭호를 받았는데, 2015년 11월 4일 군사교육일군대회에 대장으로 참석한 것이다. 전략군사령관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상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한 것은, 핵탄 이외에 핵융합탄까지 전략군에 배치되었음을 시사한다. 핵탄만이 아니라 핵융합탄까지 배치되어 세계 최강 수준으로 강화된 전략군은 4개의 별을 어깨에 단 대장이 지휘해야 마땅하다.


5. 핵융합탄미사일 4발이면 미국이 사라진다

2015년 12월 8일 미국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하였다. 평양시간과 워싱턴시간을 대조해보면, 미국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하였다고 발표한 때는 평양시간으로 2015년 12월 9일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평천혁명사적지를 현지지도하면서 조선의 핵융합탄 보유사실을 언급한 바로 그 날, 미국은 핵융합탄을 가진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융합탄 보유사실에 대해 언급하리라는 것을 미국이 미리 알고 있다가 때를 맞춰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명백히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같은 시간에 발생한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연한 시간적 일치현상이 아니라는 의혹이 생기는 까닭은, 미국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한 근거가 엉뚱하기 때문이다. 그 날 미국이 발표한 특별제재조치 배경설명에 따르면, “전략군은 2014년에 단거리미사일 스커드 2발, 중거리미사일 노동 2발 등 다수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그런 미사일발사는 조선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개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조선은 2014년 2월 21일부터 9월 6일까지 약 6개월 동안 각종 단거리미사일, 준중거리미사일, 비유도로켓 등을 무려 111발이나 무더기로 발사하였는데, 그 때는 제재조치를 들먹이지 않았던 미국이 1년 3개월이나 지난 2015년 12월 8일에 뜬금없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누가 봐도 엉뚱한 일이다. 왜 그런 엉뚱한 행동이 갑자기 나왔을까?

▲ <사진 7> 위의 사진은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돐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4호를 촬영한 언론보도사진이다. 화성-13호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화성-14호는 각개조준식 핵융합탄두를 장착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군사전문가들이 예상할 수 있는 조선의 '최후결전전략'에 따르면, 전시에 미국이 조선에게 보복핵공격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은 그에 대한 최후보복으로 화성-14호 4발을 쏘아 미국 본토 전역을 60초만에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화성-14호는 미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최후일격의 절대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미국의 그런 엉뚱한 행동이 나온 배경에 떠오르는 하나의 실체가 있으니, 그것은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4호다. 조선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13호 6발을 2012년 4월 15일 열병식과 2013년 7월 27일 열병식에 각각 등장시켰는데,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등장한 화성-14호는 4발뿐이었다. 왜 6발에서 4발로 줄었을까? 화성-13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화성-14호는 4발만으로도 핵타격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므로 4발만 등장한 것은 아닐까? <사진 7>

나는 2015년 10월 23일 <자주시보>에 실린 글 ‘열병식에 나타난 핵무력 종결자’에서 화성-14호가 여러 발의 핵탄두를 장착한 다발각개조준식 대륙간탄도미사일(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ICBM)이라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다. 그런 화성-14호의 영상자료를 살펴본 미국은 당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워싱턴 D.C.에 주재하는 한국 언론매체 특파원이 그에 대해 논평을 요청했는데도 미국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의 묵묵부답은 침묵을 의미한 게 아니라, 정밀분석을 의미한 것이었다. 화성-14호의 상상을 초월한 위력에 대한 미국의 정밀분석이 끝나기까지 약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핵전력분석관들은 자기들의 분석작업을 통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의 뭉뚝하게 생긴 탄두부에 다발각개조준식 탄두들이 여러 발 장입되었음을 알아냈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거기에 장입된 여러 발의 탄두들이 핵탄두가 아니라 핵융합탄두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아냈을 것이다. 놀랍게도, 화성-14호는 각개조준식 핵융합탄두 5~6발이 장입된 핵융합탄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어서 구체적인 서술을 생략하지만, 2015년 5월 9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 수중에서 시험발사한 잠대지탄도미사일 북극성-1호 탄두부에도 핵융합탄두가 장입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금쯤 계열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북극성-1호는 핵융합탄 잠대지탄도미사일이다.

핵융합탄 1발의 폭발력은 메가톤급인데, 1메가톤은 TNT 100만톤이다. 1메가톤의 폭발력은 나가사끼 원폭보다 약 50배가 강하고, 히로시마 원폭보다 약 60배가 강하다. 일본 외무성 의뢰를 받은 일본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일본 방송매체 <NHK> 2014년 4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1메가톤급 핵융합탄 1발이 폭발하는 경우 37만 명이 즉사하고, 46만 명이 부상을 입게 된다고 한다.

만일 전시에 화성-14호가 미국 본토로 날아가 그 탄두부에 장입된 메가톤급 핵융합탄두 5~6발이 각개조준식으로 여러 곳에서 동시에 폭발하면 미국 본토의 25%가 60초 만에 폐허로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10월 10일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4호를 4발만 쏘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잿가루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융합탄 보유사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선을 핵보유국이 아니라 “강대한 핵보유국”이라고 특별히 지칭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사진 8>

▲ <사진 8> 위의 사진은 1961년 10월 30일 소련이 폭발시험을 진행한 사상 최대의 수소폭탄 '짜르 밤바(Tsar Bomba)'가 폭발하는 장면이다. 당시 그 수소폭탄의 폭발력은 50메카톤이었는데, 조선의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에 장착된 핵융합탄두 1발의 폭발력은 10메가톤으로 추정된다. 지난 시기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된 핵융합탄두의 폭발력은 25메가톤이었는데, 화성-14호에는 10메가톤급 핵융합탄두 5-6발이 장착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이 '최후결전'에서 화성-14호 4발을 쏘는 경우,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최대 240메가톤급 핵융합탄이 미국 본토에서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TNT 2억4천만톤의 폭발력이므로, 화성-14호 4발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60초 만에 사라지게 된다.     © 자주시보

조선이 핵융합탄시험에 성공하고 약 3개월이 지난 2013년 5월 21일 <로동신문>에 실린,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라는 제목의 기사는 “지금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의 핵억제력을 대단히 무서워하고 있다”고 기술하였는데, 화성-14호의 초강력한 파괴력을 보면, 위의 인용문이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러시아와 중국도 핵융합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각각 실전배치하였지만, 미국은 결전의지가 없는 그 두 나라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의 사정은 다르다. 화성-14호에는 미국과 반드시 결판을 내려는 조선의 결전의지가 비껴있으므로, 화성-14호는 미국에게 극도의 공포대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6.25전쟁 때부터 조선을 핵탄으로 끊임없이 위협하며 괴롭혀왔으나, 이제는 조선이 핵융합탄으로 미국에게 그에 상응한 보복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조선의 결전태세를 바라보는 미국군 고위장성들의 두려움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관해서는 2015년 6월 8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미태평양사령관은 요즈음 밤잠을 설친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3억2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미국이 2천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조선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든 모습, 바로 이것이 조미관계의 현 실태다. 

각개조준식 핵융합탄두를 장입한 4발의 화성-14호가 열병식에 등장한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핵융합탄 보유사실을 언급한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조선인민군이 핵탄두, 핵폭탄, 핵포탄, 핵유도어뢰, 핵조종지뢰를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기습적인 전술핵공격으로 주한미국군을 순식간에 궤멸시키는 이른바 ‘섬멸전’을 벌여도 미국은 조선에게 감히 보복핵공격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보복핵공격이 그렇게 차단될 것이므로, 주한미국군 28,500명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달라진 조미군사대결구도를 보면, 미국은 조선에 대한 무모한 전쟁의지를 자진하여 포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의지의 자진포기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조선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최종결단을 내리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미국이 자기에게 임박한 패망위험에서 벗어날 마지막 비상탈출로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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