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2013년 08월 08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의 7.27 대행진, 어떻게 볼 것인가?
북에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 60돐’로 경축한 2013년 7월 27일, 예상했던 대로 사상 최대의 행진이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되었다. 북에서는 그 행진의 공식명칭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 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라 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7.27 대행진이라 부른다. 7.27 대행진은 열병식, 분열행진, 군중행진 순으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7.27 대행진 진행과정을 담은 북의 기록영화를 정밀분석하면, 그 행진의 전 과정을 관철하며 표현된 총적 주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7.27 대행진의 총적 주제는 두 가지로 표현되었는데,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반제혁명전쟁의 전승업적을 칭송하는 것과 핵무력에 의해 극대화된 혁명무력을 시위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총적 주제에 담긴 본질은, 다시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20세기 중반에 이룩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21세기 초반에 ‘위대한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로 이어가겠다는 정치군사적 의지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나의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객관적 사실은, 7.27 대행진이 진행된 김일성광장 양쪽 건물벽에 각각 내걸린 초대형 현수막에 적혀 있는 중심구호가 ‘최후승리’와 ‘조국통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북의 그런 시각과는 정반대쪽의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남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협정 체결을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로 보는 북의 역사인식을 납득할 수 없고, 그 ‘전승’의 연장선 위에 투영되는 ‘조국통일대전의 승리’라는 북의 미래전망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정전상태에서 빚어진 그처럼 상반된 역사인식과 상충적인 미래전망은 현 시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대결과 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다시 말해서,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그 전쟁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미래에 대한 전망이 무력대치쌍방의 대결과 격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정세는 언제 또 다시 교전이 재개될지 알 수 없는 긴장된 정전정세,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한반도정세의 본질은 정전정세다. 무려 60년 동안 교전재개위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위태로운 정전정세를 생각할 때, 왜 군사문제를 정세인식의 중심부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군사문제를 중심부에 두고 정전정세를 인식할 때, 중요한 것은 북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전정세인식에서 북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중요한 까닭은, 6.25전쟁 중에 격돌과 혈전을 거듭한 교전쌍방 사이에서 정전정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전과 정전의 일방인 미국은 6.25전쟁을 ‘잊어버린 전쟁’으로 외면해왔고, 앞으로 일어날 북의 ‘조국통일대전’을 ‘생각하기도 싫은 전쟁’으로 전면 부정하고 있는데 반해, 교전과 정전의 다른 일방인 북은, 다시 북의 서술방식을 빌리면, 60년 전의 ‘조국해방전쟁’을 “미국놈들이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전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일어날 ‘조국통일대전’을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전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정전상태를 종식시키는 방도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정전의 국제법적 당사자들끼리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제1방도가 있고, 그와 완전히 다른 제2방도는 정전상태에서 치열하게 맞서온 무력대치쌍방이 교전을 재개하여 어느 한 쪽의 교전상대가 패전, 항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정전정세는 평화협정 체결이냐 아니면 패전에 따른 항복이냐 하는 갈림길에 다가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제3방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전 60년의 긴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일방인 미국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한 그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 하기는커녕 평화협정이라는 말조차 아예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고위관리들 가운데서 한반도 평화협정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은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무조건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반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평화협정 체결을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대한 당면과업으로 여기는 북의 일관된 시각에서 보면, 60년 묵은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방도는 교전을 재개하여 교전상대를 무력으로 항복시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요즈음 북은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전쟁”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다.
설명이 없어도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언급하는 북의 전쟁담론에는 교전상대를 아주 짧은 시간에 격멸한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지면제약으로 이 글에서 논할 수 없지만 이전에 내가 인민군의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와 관련하여 쓴 몇몇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재 인민군의 정신적 준비, 작전적 준비, 무장력 준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북의 그런 전쟁담론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에서 말하는 ‘최후결전 시나리오’에서 읽을 수 있는 기습타격전, 고속돌파전, 양익포위전, 조기섬멸전이라는 개념들은 이미 60여 년 전 6.25전쟁 중에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될 조국통일대전”에서 더 완성된 형태로 전개될 4대 전쟁개념이며, 북은 바로 그 4대 전쟁개념에 따라 60년 정전정세 속에서 자기의 전쟁수행력을 구축해왔으며, 그렇게 구축된 전쟁수행력은 핵무력 건설이라는 조선로동당의 정치군사노선에 의해 극대화되었으며, 그 당이 건설한 핵무력을 내외에 시위한 계기가 이번에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7.27 대행진인 것이며, 그 행진을 통해 특히 핵무력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가 실현되었음을 물리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은회색 옷을 입고 새 모습으로 등장한 화성-13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인민군 로케트(미사일)종대는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지대공미사일)들과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지대지미사일)들을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이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4대의 전투기로 각각 편성된 3개의 항공군 비행편대가 저공비행으로 광장상공을 지나가고,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동평양 쪽에서 나타난 5대의 전투기로 편성된 항공군 비행편대가 오색연기를 내뿜으며 광장상공에서 축하비행을 전개할 때, 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이처럼 7.27 대행진의 분위기가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등장하면서 절정에 오른 까닭은, 핵타격미사일들인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북의 핵무력을 시위하였기 때문이다.
기록영화 장면을 살펴보면, 7.27 대행진에 참가한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은 ‘번개-1’, ‘번개-3’, ‘번개-4’, ‘번개-5’다. 이 4종의 지상대공중상로케트들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 때도 똑같이 등장하였다. 번개계열의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의 뒤를 이어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들이 등장하였는데, 번개계열의 로케트들은 인민군 반항공군의 무기체계이고, 화성계열의 로케트들은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무기체계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계열의 지상대지상로케트는 4종이다. 4축8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5가 행진대오 맨 앞에 나섰고,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7과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10이 그 뒤를 이었다.
로케트종대의 맨 끝이며 동시에 인민군 분열행진의 맨 끝에 등장한 것은 8축16륜 자행발사대 6대에 각각 탑재된 6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이다. <사진1>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번에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화성-13의 거대한 동체들은 모두 은회색으로 도색되었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는 위장무늬로 도색된 화성-13 6기가 등장하였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는 화성계열의 다른 미사일들과 똑같이 은회색으로 도색된 화성-13 6기가 등장하였다. 8축16륜 자행발사대는 2012년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 때나 이번 7.27 대행진 때나 똑같이 위장무늬로 도색된 것이었는데, 거기에 탑재된 화성-13의 도색만 달라진 것이다. 화성-13 동체 도색이 그처럼 달라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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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무늬 화성-13은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road-mobile ICBM)이고, 은회색 화성-13은 수직갱발사대에 배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silo-based ICBM)과 열차발사대에 탑재된 철도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rail-mobile ICBM)이다. 북이 위장무늬 화성-13과 은회색 화성-13을 지난해와 올해 세상에 각각 공개한 것은,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철도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모두 실전배치하였음을 시위한 것이다. 수직갱배치 화성-13과 철도이동식 화성-13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록영화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성-13을 탑재한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에서 차이가 엿보인다. <사진2>에서 보이는 것처럼,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화성-13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는 색상이 매우 선명한데,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는 <사진1>에서 보이는 것처럼 색상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이런 도색 차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행발사대의 위장무늬 도색이 서로 다른 것은,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자체로 생산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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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화성-10을 탑재한 6축12륜 자행발사대는 러시아군의 6축12륜 자행발사대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처럼 외형이 비슷하다고 해서, 북이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북은 러시아군의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보고 그와 비슷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외형이 흡사한 것이지, 러시아에서 그것을 수입한 것은 아니다.
그처럼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자체로 만드는 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위성발사체 로켓엔진까지 자체로 만드는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만드는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해서 중국산 8축16륜 목재수송차량을 수입하여 거기에 화성-13을 탑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북의 기계공업수준을 깎아내리려는 억지로 들린다.
화성-13 탄두부의 모양은 왜 달라졌을까?
7.27 대행진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성-13의 탄두부 모양이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사진2>에서 보이는 것처럼 매우 뾰족하게 생겼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사진3>에서 보이는 것처럼 좀 뭉툭하게 생겼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화성-13의 탄두부는 다탄두미사일인 화성-10의 탄두부 모양에 상당히 근접하였다. 이런 탄두부의 변모는, 위장무늬 화성-13이 단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고, 은회색 화성-13이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위장무늬 화성-13의 탄두부에는 대형 핵탄두 1기가 들어있고, 은회색 화성-13 탄두부에는 소형화되어 한 다발로 묶인 핵탄두 3기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탄두부 외형이 서로 다른 2종의 화성-13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전략핵탄두의 다종화를 실현하였음을 시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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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다탄두미사일을 쏘는 까닭은, 여러 개 핵탄두들 속에 가짜 핵탄두를 섞어놓아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교란,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단탄두미사일을 쏘아 맞추는 요격실험에서 번번이 실패하여 쩔쩔매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화성계열의 다탄두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화성-13의 탄두부만 주목할 게 아니라 그 동체에 쓰인 고유번호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행진에 참가한 위장무늬 화성-13의 고유번호들은 ㅈ901010418, ㅈ904830215, ㅈ904830216, ㅈ904830218이었고, 나머지 2기의 고유번호는 기록영화 화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번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은회색 화성-13의 고유번호들은 ㅈ904910331, ㅈ904910113, ㅈ907102727이고, 나머지 3기의 고유번호는 기록영화 화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화성-13의 고유번호는 ㅈ100021618이다.
위에 열거한 화성-13의 고유번호를 살펴보면, 901, 904, 907, 100으로 각각 시작하는 4종의 고유번호로 계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화성-13의 고유번호가 901부터 시작하여 100까지 모두 10종의 고유번호로 계열화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0종의 고유번호에 따라 전략로케트군에 실전배치된 화성-13이 모두 몇 기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 40기에서 최대 80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단탄두미사일이 몇 기이고 다탄두미사일이 몇 기인지 알 수 없지만, 단탄두를 장착한 위장무늬 화성-13은 북이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생산한 수량만큼 될 것이고, 다탄두를 장착한 은회색 화성-13은 나머지 수량만큼 될 것이다.
2013년 4월 1일 북의 최고인민회의가 발포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중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지금 북은 화성-13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강화하는 중이다.
전설 속의 핵배낭이 현실 속에 나타난 놀라운 사연
7.27 대행진 중에 각종 대구경견인포로 무장한 로농적위군 기계화종대가 등장한 다음에 인민군 기계화종대가 등장하였는데, 위장무늬 군복을 입고 병력수송차량에 25명씩 탑승한 특전병들이 인민군 기계화종대의 맨 앞장에 섰다. 그런데 그 특전병들 중에서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핵배낭을 가슴에 안고 병력수송차량에 탑승한 특전병들이다. 이제껏 전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에 알려진 핵배낭이 <사진4>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일성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장면을 바라본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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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배낭에 관해 논하려면, 전설 속에 존재하는 핵배낭에 얽힌 냉전시대의 기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핵배낭(backpack nuke)으로 알려진 전술핵무기를 만든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밖에 없다. 나중에 이스라엘도 핵배낭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런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다.
냉전시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던 1988년부터 소련군사정보국(GRU)의 비밀요원으로 미국에서 활동해오던, 스타니슬라브 루네브(Stanislav Lunev)라는 가명을 사용한 소련군 현역 대령이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가 미국에 망명하여 미국정보당국에 넘겨준 정보에 따르면, RA-115라 부르는 극소형핵무기가 소련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군의 극소형핵무기를 묘사하면서 지름이 13cm이고, 길이가 62cm이고, 무게가 45kg이고, 일반폭약(TNT) 190t의 폭발력을 지닌 포신형 핵탄(gun-type nuclear bomb)이라고 하였다. 이 정도의 부피와 무게를 가진 핵무기는 핵배낭보다 더 작은 핵가방(suitcase nuke)이다.
당시 루네브가 말한 소련의 핵가방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미국정보당국은 망명자가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과장한 이야기로 여겼는데, 1997년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의 연구 및 개발에 관한 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러시아군 안보책임자 알렉산더 레베드(Alexander Lebed)의 증언에 의해서 소련의 핵가방 이야기가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는 재평가가 제기되었다. 청문회에서 레베드는 자기가 통제하고 있었던 소련군 핵무기고에서 극소형핵무기 100여 기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그의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소련이 해체되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소련군이 핵가방 100여 개를 잃어버린 특대형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2007년 3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핵과학자들은 부피와 무게가 그처럼 작고 가벼운 극소형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그리하여 루네브와 레베드가 말한 소련의 핵가방은 냉전시대의 전설 속에 파묻혀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희미해졌다.
그런데 지난 냉전시기에 미국이 핵가방보다 더 크고 무거운 핵배낭을 만든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미국이 만든 핵배낭의 공식명칭은 MK-54 특수원자파괴탄(Special Atomic Demolition Munition/SADM)이다. 미국군사전문가들의 자료에 따르면, 이 핵배낭은 데이비 크로킷(Davy Crocket)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지름이 20cm, 길이가 58cm의 특수합금 원통에 무기급 핵분열물질이 들어 있고, 그 무게는 32kg이며, 폭발력은 1킬로톤이며, 폭발하는 경우 반경 800m 안의 모든 물체를 날려버린다. 거기에 더하여 고성능 고폭장약, 기폭장치, 중성자 방출장치, 건전지 등 다른 내장물들의 무게까지 합하면, 미국의 핵배낭은 총무게가 74kg으로 늘어나고 부피도 등산배낭만큼 커진다. <사진5>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국이 만든 핵배낭은 원통형으로 생긴 대형배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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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3년 7월 28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앞에서 남측 국방부 대변인은 “핵배낭은 굉장히 크기가 작은데 그것을 소형화하는 것은 굉장히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 정도 핵배낭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인민군 핵배낭의 출현에 놀라 횡설수설한 것이다. 그의 발언을 횡설수설이라고 보는 까닭은, 그가 “(핵배낭은) 더티밤(dirty bomb)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터뜨리면 방사능누출이 많아서 한 지역이 완전히 오염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핵배낭과 방사능오염탄(dirty bomb)을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핵배낭은 고도의 핵기술을 보유한 핵강국이 만드는 첨단전술핵무기의 일종이고, 방사능오염탄은 테러범들이 고준위방사성물질을 국제암시장에서 밀거래하여 만드는 조악한 테러무기의 일종이므로, 양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큰 것이다.
핵배낭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목적은 강력한 파괴력에 있는 것이지 방사능오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군사전문가들의 자료에 따르면, 핵배낭이 폭발하였을 때 방출되는 방사능은 폭발 직후부터 4시간 동안 약 90%가 남아 있지만, 2일이 지나면 약 1%로 크게 감소되고, 12일이 지나면 방사능측정기로 추적해야 오염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만큼 극소량으로 감소된다고 한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원전사고로 발생하는 방사능오염이 핵탄폭발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오염보다 100만 배 이상 더 심하기 때문에, 대형원전사고의 방사능오염이 발생한 나라에서는 모든 생물체들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방사능오염의 위험성을 따져보면, 핵탄보다 원전이 비할 바 없이 더 위험한데도 일본은 인민군의 미사일타격권 안에 수많은 원전을 건설해놓았으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기록영화 장면을 살펴보면, 위장무늬 군복을 입은 인민군 특전병들이 가슴에 안고 있는 핵배낭의 크기는 대략 가로 30cm, 세로 45cm, 두께 20cm인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북이 만든 핵배낭은 미국이 만든 핵배낭보다 크기와 부피가 더 작아서 전설 속의 핵가방에 더 가까운 형태로 보인다. 북의 핵무력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썰렁한 반응을 보였지만, 북의 핵배낭에 관한 진실을 알려면 아래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9년에 방북한, 파키스탄의 핵개발 총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가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떨어진 지하핵시설을 방문하여 운반대 위에 놓인 3기의 핵탄두를 관찰하였을 때 그 핵탄두의 지름이 약 60cm라고 회고한 바 있는데, 이번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은 그 핵탄두보다 크기와 부피가 훨씬 더 작은 것이다. 14년 전 칸 박사가 북에서 관찰한 핵탄두를 소형핵탄이라고 한다면, 이번 7.27 대행진에 등장한 핵배낭은 극소형핵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이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에서 리히터 규모로 진도 3.6∼4.2에 이르는 인공지진파가 측정되었고, 당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일반폭약 0.5∼0.9킬로톤 규모의 폭발력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 바 있는데, 이것은 북이 정밀한 핵폭발장치를 내장한, 1킬로톤 이하의 폭발력을 지닌 극소형핵탄을 만들었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7.27 대행진에 등장한 북의 핵배낭은 <사진6>에서 보이는 미국의 핵배낭처럼 매우 정밀하게 설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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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핵배낭을 멘 인민군 특전병들은 어디로 달려가는가?
핵배낭을 가슴에 안고 7.27 대행진에 참가한 인민군 특전병 225명은 평안남도 덕천군에 야전지휘소가 있는, 인민군 최정예 특전부대인 제11군단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핵배낭특전병대오가 제11군단 소속의 다른 특전병대오와 함께 7.27 대행진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7.27 대행진에 참가한 특전병대오는 저격보총을 든 저격병 225명, 강하복장을 하고 전투배낭을 가슴에 안은 항공륙전병 225명, 핵배낭을 가슴에 안은 핵배낭특전병 225명이다.
<사진7>에서 보이는 것처럼, 7.27 대행진 중에 무인타격기종대가 김일성광장에 들어설 때, 3대로 편성된 수송기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광장상공을 지나갔는데, 그 거대한 수송기들은 50t의 병력과 군사장비를 싣고 시속 900km의 속도로 4,300km를 날아가는 중거리 전략수송기 일류신(Il)-76이다. 인민군 항공륙전병은 전시에 바로 그 전략수송기를 타고 적진 후방에 낙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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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핵배낭특전병과 항공륙전병이 7.27 대행진에 참가한 것을 보면, 핵배낭특전병이 항공륙전병과 별도로 편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11군단 예하 10여 개 여단들 가운데는 벼락이라는 별칭을 지닌 저격려단, 우뢰라는 별칭을 지닌 항공륙전려단, 번개라는 별칭을 지닌 경보병려단 등이 있는데, 이번에 7.27 대행진에 참가한 특전부대를 보면 핵배낭려단도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핵배낭려단과 항공륙전려단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전시에 핵배낭려단이 전략수송기를 타고 공중낙하로 적진 후방에 침투하는 부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핵배낭려단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 개전되기 직전에 ‘밀로’라 부르는 남진갱도를 통해 적진 후방에 침투하는 사전침투부대인 것이다. 핵배낭려단은 그처럼 사전에 침투하여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 인근에 핵배낭을 매설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 대기하다가 개전시각에 맞춰 원격조종장치로 핵배낭을 폭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핵배낭이 폭발 뒤에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에는 지름이 약 1.5km에 이르는 거대한 분화구만 남아 있을 것이다.
1996년 9월 19일에 발매된 <시사저널> 제360호 실린, 인민군 항공륙전려단을 제대한 탈북자의 말에 따르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민군 특전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명령만 내리신다면 폭탄을 안고 적진에 투하하겠다는 맹세문에 서명하고, 매일 같이 암송해 정신무장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에 그들이 가슴에 안고 적진으로 나아갈 폭탄은 일반폭약으로 만든 폭탄이 아니라 극소형핵탄으로 만든 핵배낭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데일리 NK> 2011년 11월 25일부 기사에 따르면, 여단급 핵배낭부대가 평안북도 동창군에 주둔한다고 하며, <동아일보> 2001년 3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제11군단 예하 1개 여단의 병력은 6,000∼8,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민군 핵배낭려단의 병력은 최소 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 6,000명에 이르는 핵배낭려단 특전병들 가운데, 전시에 핵배낭을 메고 적진 깊숙이 사전침투할 병력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각지에 널려 있는 주한미국군기지들과 한국군기지들은 바로 그 핵배낭려단 때문에 가장 심각한 궤멸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 주한미국군기지와 한국군기지를 거대한 분화구로 만들어버릴 핵배낭을 7.27 대행진 중에 공개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을 끝내 거부하면서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해온 미국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즈음 북에서 나온 각종 반미선전화들 가운데는 미국의 지배계급이 아연실색할 대미적개심을 표출한 선전화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미국, 너는 없어져야 한다!”(2013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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