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5

파쟁에 휘말린 통합진보당, 어디로 가는가?

변혁과 진보 (7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재판부터 벌여놓은 황당한 꼴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문건과 관련자료들을 읽어보면, 온라인투표가 87%, 현장투표가 13%를 각각 차지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온라인투표가 진행되는 중에 투표진행에 관련된 컴퓨터프로그램을 누군가가 열어본 것이 드러났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부정투표로 표를 조작하였다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투표조작정황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투표진행 중에 투표진행에 관련된 컴퓨터프로그램을 열어본 것은 부정투표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소행이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장투표소 218개소 가운데 10여 개소에서 부정투표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온라인투표에서 선거관리부실이 있었고, 현장투표에서 부정투표행위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만일 이번 사태가 거기까지만 악화되었더라면, 통합진보당이 해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당기위원회에서 사무총국 책임자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책임자들에게 부실한 선거관리의 책임을 물어 징계하면 될 것이고, 부정투표행위가 있었던 10여 개 현장투표소의 선거사무원들과 부정투표자들에게도 선거부정의 책임을 물어 징계하면 될 것이고, 당지도부가 그런 오류와 비행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개선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내 다수파를 이번 사태의 '범인'으로 몰아 단죄하는 '여론재판'이 벌어졌다. 당내 다수파가 당권확장을 위해 급기야 선거부정까지 저질렀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더니 어느 새 그 의혹을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여론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진상조사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다수파를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다수파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여론재판'은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재판부터 벌여놓은 꼴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여론재판'의 본질은 통합진보당의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서 당권경쟁이 과열하다 못해 폭발해버린 당권파쟁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정당에 결집한 여러 계파들 사이에서 당권경쟁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당내 계파들은 공정한 절차와 합당한 방식에 따라 당권경쟁을 해야 하는데, 득표비중이 승패를 결정하는 당권경쟁에서 다수파가 유리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런 조건이 형성된 당권경쟁에서 밀린 소수파는 당권경쟁에서 이겨 당권을 행사하는 다수파에게 불만과 반감을 품기 쉽다. 소수파의 불만과 반감이 어떤 폭발적 계기를 만나 터져나온 것이 바로 당권파쟁이다.


파쟁은 쇄신의 첫 번째 대상이다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진 '여론재판'은 선거관리부실과 부정투표를 계기로 발생한 선거후유증이 극도로 악화된 당권파쟁이다. 이번 사태를 당권파쟁으로 보는 까닭은, 진상조사를 통해 다수파가 '범인'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지도 않았는데, 다수파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여론재판'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다수파를 대표하는 당내 인사들에게만 물으면서 그들의 집단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재판'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선거관리부실은 공적인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지 않은 직무유기이며 부정투표는 당의 기강을 문란하게 만든 해당행위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은 이번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번 사태를 일으킨 당간부들과 당원들을 오류와 비행의 경중에 따라 징계하여야 마땅하며, 그런 추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 식의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당의 기강을 바로잡고 당을 쇄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파에 불만과 반감을 품은 소수파의 '여론재판'은 다수파를 밀어내고 자기들이 당권을 차지하겠다는 당권욕의 표출일 뿐이지, 당의 기강을 바로잡고 당을 쇄신하라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당의 쇄신은 소수파가 다수파를 '여론재판'으로 밀어내고 당권을 장악하는 식으로 벌이는 당권파쟁이 결코 아니다. 당의 쇄신은 공정한 절차와 합당한 방식에 따라 당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쇄신과 파쟁은 상반되는 것이며, 파쟁이야말로 쇄신의 첫 번째 대상이다.


파쟁보다 더 치명적인 독소

통합진보당 안에서 소수파가 다수파를 상대로 '여론재판'을 벌이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독소는, 통합진보당 밖에서 통합진보당이 하루빨리 분열, 와해되기를 바라는 수구세력들이 벌이는 집중공격이다. 당 안에서 소수파가 다수파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여론재판'을 시작한 것에 비해, 당 밖에서는 수구세력이 통합진보당을 아예 '범인'으로 지목하고 집중공격을 퍼붓고 있다. 내우외환을 넘어 내환외란이다.

이를테면, 국제관계학 교수라는 어떤 수구지식인은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내 경선 부정선거는 범죄행위로서 진보당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으로 존재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고 본다"고 비방하였고, 명지대 교수라는 수구지식인은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독재정권 시절 관제투표를 상징하는 '체육관 선거'도 이보다 나았을 것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방하였다.

통합진보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드러낸 두 교수의 비방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다. 진보정치를 겨냥한 모략선전으로 악명 높은 이 땅의 수구언론들이 자기들의 정적인 통합진보당을 향해 퍼붓는 집중공격은 악랄하다. 수구언론은 통합진보당 다수파를 '범죄집단'으로 음해모략하면서 통합진보당 전체를 싸잡아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이 써먹어오는 추악한 '색깔공세'가 수구언론의 전형적인 모략전술이다.

이를테면, 수구언론들은 "진보당의 당권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경기동부연합'이며, 이 단체의 뿌리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라고 봐야 한다"느니,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이 당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거짓과 궤변을 일삼는 등 도덕성 상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느니 하는 악담을 늘어놓았다.

<조선일보>는 "친북성향 당권파"라고 '색깔공세'를 폈고, <동아일보>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간첩사건 관련 화보"라고 하면서 민혁당 관련사진 11장을 실어 '색깔공세'를 폈고, <중앙일보>는 "부정선거의 종합판"이라고 침소봉대하여 비방했고, <경향신문>은 "218곳 중 128곳서 부정투표"가 저질러졌다고 왜곡하였고, <프레시안>은 "반성 없는 당권파 패악질"이라고 하면서 악의를 드러냈다.

이 땅의 주요언론매체들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보도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라느니 "분열로 간다"느니 하는 희떠운 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보다 한 술 더 떠서, 통합진보당을 극렬하게 반대해온 어떤 수구단체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통합진보당 4인 공동대표 가운데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 3인을 검찰에 고발하였고, 검찰은 기회를 만난 듯이 즉각 수사에 나섰다.

통합진보당이 다수파와 소수파의 파쟁에 휘말리자, 그것을 호재로 삼은 수구세력들이 통합진보당을 분열, 와해시키려는 집중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당권파쟁에 휘말린 통합진보당에게 수구세력의 집중공격까지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 계파들의 당권파쟁은 자기파멸적이다.


뜨거운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

당권파쟁에 휘말린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는 수구세력이 노리는 1차 목표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대중들 속에서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론조사를 해보나 마나, 이번 사태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는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겨냥한 수구세력의 음해모략과 비방중상만 들은 대중들이 통합진보당에게 실망과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리면, 창당 이후 5개월 동안 야권연대전략으로 구축해온 대중적 지지기반이 한꺼번에 허물어질 것이며, 그처럼 대중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잃고 고립되는 것은 통합진보당을 재기불능상태에 빠뜨리는 치명상이 될 것이다.
 
당권욕에 사로잡혀 파쟁에 몰두하는 계파는 자기들이 속한 당을 대중들이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권장악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권욕에 사로잡힌 파쟁은 당을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한 순간도 떨어져 살 수 없는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진다는 점에서, 당권파쟁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파멸시키는 가장 무서운 독소다. 지금 당권파쟁에 휘말린 통합진보당이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수구세력의 집중공세까지 받고 있으니 실로 위험천만하다.

통합진보당이 취해야 할 긴급행동은, 자기파멸적 당권파쟁을 즉각 중단하고 계파들끼리 타협하는 것이며,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을 단합된 힘으로 격퇴하고, 이번 사태의 진상을 다시 제대로 조사하고 그 조사결과에 따라 당의 기강을 바로잡고 당을 쇄신하는 것이다.

당력을 집중하여 수구정당의 재집권을 저지해야 할 대선을 앞두고 내환외란을 자초하다니, 그런 당권파쟁은 쇄신이 아니라 파멸을 재촉할 뿐이다.

그러나 이 땅의 진보적 대중들은 통합진보당의 이성과 양심을 믿는다. 감동적인 진보정치를 펼치겠노라고 바로 얼마 전 대중들에게 약속한 통합진보당이여, 그 뜨거운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

당권만 바라보지 말고 부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바라보라! 파멸의 길에서 쇄신의 길로 어서 돌아서라! 당지도부가 발목이 잡혀 쇄신의 길로 돌아서지 못한다면, 당원들이 쇄신의 기치를 들고 앞장서라! (2012년 5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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