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1

[변혁과 진보(5)] 사회개조와 헌법개정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회개조와 헌법개정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는 것을 사회변혁이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사회개조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회변혁과 사회개조는 어떻게 구분되는 개념일까?

무릇 사회개조에는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개조과정도 있고,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개조과정도 있다.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사회개조과정을 특정하여 사회변혁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회개조라는 넓은 개념 안에 사회변혁이라는 개념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개조에서 급진적이고 강제적인 개조과정은 무엇이고,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개조과정은 무엇인가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사회개조과정에서 좌우편향을 피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중대한 문제다.

사회개조는 집권세력이 임의로 처리하는 여러 정치과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최고 정치과업이다. 최고 정치과업인 사회개조를 수행하는 법적 근거는 헌법이다. 따라서 사회를 개조하려면, 사회성격과 사회체제를 규정한 최상위법인 헌법부터 바꿔야 한다. 헌법을 바꾸는 것 이외에 사회개조의 법적 근거를 획득할 방도는 없다.

헌법을 바꾸는 방도는 헌법개정과 헌법제정 두 가지다. 두 단계 변혁담론에서 개헌과 제헌을 논하자면,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는 개헌을 해야 하고, 개헌 이후 더 높은 변혁단계에 들어서면 제헌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변혁에서 말하는 개헌은 우리 사회의 예속성을 없애 자주성을 실현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헌을 뜻한다.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라 헌법을 개정한 이후, 한 층 더 높은 변혁단계에서 제기될 제헌론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실현되는 두 단계 사회변혁은 이처럼 개헌에서 제헌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발전경로를 밟게 되지만, 우리의 경우는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특별과업을 사회변혁과업과 함께 동반적으로 수행해야 하므로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과정도 반드시 거치게 된다.

통일헌법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통일회담을 진행하게 되면, 그 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구성될 통일의회에서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그러한 통일회담으로의 지향을 제시한 정치적 합의였다.

위에서 논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변혁의 실현경로를 전망하면, 대미예속성에서 벗어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진보적 정권이 민주주의변혁의 요구를 명문화한 개정헌법에 의거해 세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그렇게 세워진 진보적 정권은 통일의회가 제정하는 통일헌법에 의거해 세워질 전민족적 통일정부 수립에 참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시기문제를 전망하면,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개헌이 이루어진 직후에 그와 연동되어 통일헌법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확인하는 사실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이 서로 분리된 채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을 바꿔놓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헌법은 국회에서 개정한다.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요구되는 개헌을 직접적으로 담당할 주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적합하게 개변된 국회다. 그러므로 낡은 국회가 새로운 국회로 개변되어야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른 헌법개정을 시행할 수 있으며,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법적으로 확고히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헌법 제10장에 따르면, 헌법개정은 아래의 절차를 밟게 된다.

첫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개헌을 제안한다.
둘째,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의결한다.
셋째, 국회 의결을 거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붙여져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확정된다.

이처럼 현행 헌법에 규정된 개헌절차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199명이 찬성해야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개헌절차를 규정한 현행 헌법조항과 정당별 국회의석분포를 살펴보면, 현행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라 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변혁강령을 가진 중도좌파정당이 현재 국회에서 다섯 석밖에 갖지 못했는데, 2012년 4월에 실시될 총선에서 199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고, 2022년에도 없으며,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의 역사가 우리보다 100년 이상 앞선 유럽의 경험을 살펴봐도,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들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다수의석을 확보한 사례는 전무하다.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한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해 실시한 국민투표, 그리고 제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모두 압도적으로 연승하여 낡은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베네주엘라식 제헌경로가 우리 사회에서도 재연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더우기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변혁을 추진하는 중도좌파정당의 대선후보가 설령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도 국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처럼 총선이나 대선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변혁 자체가 실현될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패배주의자들의 넋두리다. 현재 조건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을 바꾸면 불가능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그리하여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조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떠한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 유권자층을 형성하고 있거나 또는 자기들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일하는 중도좌파정당을 외면하고 엉뚱하게 중도우파정당이나 우파정당을 지지해주는 것, 바로 이것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조건이다.

이 조건을 반대방향으로 바꿔놓으면, 다시 말해서 무당파 유권자층을 형성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중도좌파정당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고, 그들이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세를 바꿀 수만 있다면 현행 헌법을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두 가지 정세변화와 한 가지 전술운용

역시 문제는 방법론이다. 어떻게 정세를 바꿀 것인가? 선거철에만 반짝하는 선거운동으로는 냉랭한 민심을 돌려세울 수 없고 정세를 바꾸지 못한다. 선거운동은 여섯 달 동안 불어오다가 선거가 끝나는 날 홀연히 사라지는 회오리 같은 것이다.

모든 정당에게 선거가 중요한 정치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도좌파정당이 '선거돌풍'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수구우파세력의 적대적 여론환경에 포위된 중도좌파정당이 아무리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199석을 쟁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4.19 혁명 또는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던 것처럼, 언젠가 대중항쟁이 일어나면 정권을 교체하고 민주주의변혁을 급진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항쟁이 일어나 민주주의변혁이 급진전되는 것은 사회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혀주는 진리인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항쟁의 발전과정에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 때문에 대중항쟁이 민주주의변혁으로 급진전되기 힘들다. 실제로, 4.19 혁명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이 민주주의변혁으로 진전되는 길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의 개입공작이었다. 

더욱이 4.19 혁명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 같은 대중항쟁이 10년 안에 또는 그 이후에라도 재발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힘든 불확정적인 미래를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대중항쟁으로 민주주의변혁이 급진전하는 정세급변을 한 가지 가능성으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 민주주의변혁을 진전시킬 두 가지 정세변화와 한 가지 전술운용이 작용하는 별도의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정세가 변화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구우파 집권세력의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본질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소수 부유층을 위한 현존 경제정책이 민생경제를 완전파탄에 몰아넣어 인구비율 20 대 80의 극단적 빈부격차가 전면화되는 상황에 빠질 때, 그리하여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은폐해온 무능과 부패의 실상이 계속 폭로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중도좌파정당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때, 정치정세는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하게 전변되는 것이다. 2010년 10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위에 열거한 몇 가지 현상들이 전면적으로 나타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와 유사한 지경에 근접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 한반도 정세가 평화체제로 급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되는 것에 상응하여 북측과 미국의 평화회담이 실현되고, 결국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급변은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고집해온 대북 적대정책이 완전히 파탄되고, 그 세력이 정치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1953년 7월 북측, 중국, 미국이 판문점 정전회담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냈을 때, '북진통일'을 외치며 정전협정 체결을 완강히 반대하였던 이승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완전히 고립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다. 

수구우파 집권세력이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한반도 안보환경'이 평화협정 체결에 의해 급변하여 그들에게 마치 칼을 겨누는 형국처럼 매우 불리해질 때, 정치정세는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하게 전변될 것이다. 2010년 10월 현재,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뚜렷한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머지 않아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양자회담을 재개하면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항쟁이 일어날 가능성보다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셋째,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전술이다. 정당 이름을 꼭 찍어서 말하자면, 중도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중도우파정당들인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5당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한나라당에 맞서는 것이다.

국회에서 다섯 석밖에 차지하지 못한 중도좌파정당이 독자역량으로는 도저히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만한 정세를 조성할 수 없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실현 가망이 전무한 독자발전론을 막연히 붙들고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주주의변혁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런 돌파전술을 연합정치라 부른다.

그러므로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손잡고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일각에서 터무니 없이 말하는 식으로 중도좌파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해행위 따위가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이 과도기에 진입하는 돌파전술이다. 두 단계 변혁론에서 말하는 과도기란 민주주의변혁에 유리한 정세로 돌파해 나가기 위한 역량축적기다. 역량준비가 부족해서 정세를 돌파하지 못하는 중도좌파정당이 주동적인 노력으로 역량축적기에 진입하는 것이야말로 과도기 돌파전술이 아닌가!

과도기 돌파전술은 5당 공동전선이 이루어내는 연합정치의 유력한 전술이며, 두 단계 변혁론의 공동전선전략이 운용하는 여러 전술들 가운데 하나다. 명백하게도, 과도기 돌파전술은 민주주의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것은 현 정세를 바꿔놓을 유일한 전술일지 모른다. (2010년 9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