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4

최전방서 눈물의 '야전식사' 함께 한 소년

[한호석의 개벽예감] (45)
자주민보 2013년 01월 12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로동신문>에 실린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

북에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는 <로동신문>은 일반적인 일간지가 아니라 당보다. 당보는 단순한 사실보도를 싣는 게 아니라 북측 인민들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사상정신적 량식”을 주기 위한 글을 싣는다. <로동신문>에 실린 글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의도에 따라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해 기사화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월 7일 <로동신문>에 실린, ‘우리가 사는 시대’라는 제목의 ‘정론’도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한 글이다.

그런데 그 ‘정론’에 들어있는 특별한 내용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회상한 글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북이 1990년대에 겪은 ‘고난의 행군’은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힘든 시련이었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혹심했던 시련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회상한 내용이 인용문 형식으로 그 ‘정론’에 담긴 것이다. 인용문은 아래와 같다.

“나는 고난의 시기 전선시찰의 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장군님을 수행하면서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무한한 헌신성, 송고한 인민적 풍모를 가슴 뜨겁게 새겨 안게 되었으며 장군님의 그 강행군길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어 나갔다. 나는 고난의 행군 시기 풋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에울 때도 있었으며 거의 매일과 같이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나는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장군님을 모시고 인민들과 함께 있었고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었다. 만일 후날에 력사가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은은 어떻게 지냈는가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떳떳이 말해줄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나는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나는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

북에서 발간되는 모든 종류의 글에 최고영도자의 발언이 실리는 경우 예외 없이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는 인용의사를 명시한 뒤에 이중꺾쇠 인용부호를 붙이는데, 서술이 아니라 담화의 경우에는 존댓말로 표기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내용은 예외적으로 인용의사도 명시되지 않았고, 이중꺾쇠 인용부호도 없으며, 존댓말로 표기되지도 않았다. 존댓말로 표기되지 않은 것을 보면, 위의 인용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담화가 아니라 회고서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을 왜 그처럼 예외적인 형식으로 기사화하였는지 북측 외부에서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서술한 글을 기사화하는 경우 그런 형식으로 표기하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은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쓴 글로 생각된다.

회고서술에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 전 기간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당시 북측 인민들이 겪고 있었던 고생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에 대해서는 악담과 거짓말밖에 할 줄 모르는 <조선일보>가 2013년 1월 7일 보도기사를 통해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다.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조선일보>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 유학생활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다른 반북수구언론들도 일제히 그렇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거듭된 보도사례를 돌아보면, 반북수구언론이 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으며,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심지어 없는 일까지 날조하면서 북을 헐뜯으려는 악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한 반북수구언론의 주장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의 유학생활

가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지도자의 사생활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법이다. 특히 북에서는 최고영도자의 ‘혁명활동’만 보도하는 것이 철칙으로 지켜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되었을 때, 남측, 미국, 일본의 수구언론매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자본주의나라들의 수구언론매체들까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 일제히 보도한 바 있어서, 북측 외부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반북수구언론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해외유학에 관해 너무 심하게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데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연방수도인 베른(Bern)의 쾨니츠(Köniz) 지역의 리베펠트(Liebefeld)에 있는 슈타인휠츨리(Steinhölzli) 공립학교에서 3년 동안 유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학교에 입학한 때는 1998년 8월이다. 스위스 학제에 따르면, 새 학기는 8월에 시작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8년 8월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 7학년(남측 학제로는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고, 3년 동안 그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2000년 가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02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여 5년 학과과정을 마치고 2007년에 졸업하였고, 야전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한 때가 1998년 8월이라는 사실은, 미카엘로(Micaelo)의 회고발언에서 확인된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Telegraph)> 2010년 9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앉아 함께 공부한 급우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1995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3년이다. 북은 1997년 말까지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였고, 1998년 1월 1일부터 2년 동안은 일종의 조정기인 ‘사회주의강행군’ 시기를 거쳤으며, 2000년 1월 1일에 발표한 공동신년사설에서 ‘사회주의강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 인민들에게 ‘강성대국 건설구상’을 처음 밝힌 것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고 ‘사회주의강행군’을 시작하였던 1998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다.

위와 같은 시기구분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엉터리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한 뒤 약 7개월이 지난 1998년 여름에 스위스로 해외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대북악담에 중독된 <조선일보>의 사실왜곡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스러운 유학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 역시 왜곡이다. 아래와 같은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스위스 연방수도 베른에는 그 도시에 장기체류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 자녀들이나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베른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가 있다. 베른의 무리 베이(Muri bei) 지역에 있는 스위스 주재 북측 대사관저에서 ‘베른 국제학교’까지 직선거리는 동쪽으로 1.3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북측 대사관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가 4.1km나 떨어진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측 대사관저에서 생활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까지 통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먼 곳에 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일까?

2013년도 ‘베른 국제학교’ 학비사정을 알아보면, 6-8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27,900 달러이고, 9-12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31,350 달러다. 학비 이외에 생활비까지 계산하면, 1인당 연간 50,000 달러 이상 지출할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나 그 ‘귀족학교’에 다닐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유학하였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공립학교는 근로대중 자녀들이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니는 서민학교이며,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녔던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는 다른 나라들에서 스위스에 갓 건너온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전형적인 서민학교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그 공립학교 전교생 가운데 무려 45%가 외국인 자녀들이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베펠트 키르흐슈트라쎄(Kirchstrasse) 10번지에 있는 연립주택에 방을 얻어 살면서 약 200m를 걸어서 통학하였다. GPS 위성지도로 찾아보면, 그 연립주택은 근로자들이 사는 검소한 거주공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닌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던 급우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임호프(Imhof)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밤에 절대로 외출하지 않고, 파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유학하는 기간 대사관저가 아니라 검소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서민학교에서 공부하며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한 것은, 인민적 풍모를 지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급우였던 미카엘로는 포르투갈 이민자의 아들이어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가족’들이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중학생 시절에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CNN> 방송 2010년 9월 28일 보도에 나온 미카엘로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학교 유학시절에 특별히 농구와 컴퓨터를 아주 잘 했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텔레그라프> 2010년 9월 2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유학생활을 할 때 북측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특히 북측 애국가를 자주 불렀다고 회상하면서, “지금도 그 노래(북측 애국가를 뜻함 - 옮긴이)를 기억하고 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얼마나 애국가를 자주 불렀으면, 외국인 급우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먼 나라에 가서 유학하면서도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심을 지니고 생활하였음을 말해준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지난 냉전시기부터 북이 서방세계와 접촉하는 통로였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바로 그 통로에서 3년 동안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서, 서구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였고 외국어 실력을 쌓았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활지침은 이미 소년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학생활지침이기도 하였다.

최전방에서 눈물의 ‘야전식사’를 함께 나눈 소년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었다고 술회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5년 초부터 1997년 말까지 이어진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북측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외부사람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회고서술을 무심히 대할 수 있지만, 북에서는 그 회고서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까닭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북측 자료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경제 생산현장들에 대한 시찰을 뒤로 미루고 인민군 야전부대들에 대한 시찰에 집중하였다. 산짐승도 오르기 힘든 고지 위에, 바람 세찬 작은 섬 언덕에, 적진 가까운 긴장된 해안지대에 자리 잡은 야전지휘소, 경계근무초소, 전투훈련장, 병사들의 숙소와 세목장, 식당과 부식창고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간 시찰대상이었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강도 전선시찰은 ‘북한 정권 붕괴’를 노리며 대북침공을 물리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미국의 선제공격위험으로부터 북을 지키고 사회주의의 미래를 수호하기 위한 실로 간고한 혁명투쟁이었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16일 기사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그 길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총포성 없는 싸움이였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간고한 반제혁명투쟁을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3년 동안 수행하였던 것이다.

둘째,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은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시찰한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퍽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북측 인민들은 철령, 초도, 오성산, 대덕산, 351고지 등 수많은 인민군 야전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의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 자신이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고 회상하면서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였으므로 당시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은 자기 부대를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10대 소년시절 모습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회고서술에서 말한 증견자들이 바로 그 야전지휘관들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민군 야전지휘관들은 ‘고난의 행군길’에서 그렇게 상봉하였던 것이다.

그 특별한 상봉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인민군대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까닭은, ‘고난의 행군’ 시기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이 줴기밥(남측에서는 주먹밥)으로 ‘야전식사’를 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였던 초강도 전선시찰은 적들과 첨예하게 대치한 최전방을 돌아보는 것이므로, 그런 전선시찰길에서 식사시간에 맞춰 대중식당에 가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최전방에 대중식당이 있을 리 없으며, 더욱이 식량부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각지의 대중식당들도 때로 문을 열지 못했거나 단축봉사를 해야 하였을 것이다.

그런 시련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택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당시 북측 인민들이 먹었던 죽 한 공기를 아침식사로 들고 문을 나섰을 것이며, 부인이 싼 밥곽(남측에서는 도시락)을 야전차에 싣고 전선시찰을 떠났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에 따르면, 밥곽 안에는 줴기밥이 들어있었고, 줴기밥도 먹을 수 없는 때는 삶은 풋강냉이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남측 독자들은 전선시찰 도중 줴기밥을 나누는 ‘야전식사’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전식사’를 말해주는 북측 자료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 어느 날 동해안 쪽으로 전선시찰을 떠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점심시간에 야전차를 세우고 길가에 있는 너럭바위에 수행원들과 둘러앉았는데, 한 사람마다 줴기밥이 두 덩이씩 주어졌다. 줴기밥 두 덩이와 함께 “무오가리와 절인 오이에 까나리”가 밥반찬으로 나왔다. 무오가리는 말린 무를 잘게 썰어 무친 것으로 보이고, 절인 오이는 오이장아찌인 것으로 보이고, 까나리는 바다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날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나눈 ‘야전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곤 합니다.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습니다. 나하구 함께 다니느라면 이제 줴기밥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줴기밥은 감도 특별한 것이 필요 없고, 만드는 데 품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급히 길을 떠나야 할 때 준비하기 쉬워서 좋고, 가다가 아무데서나 펼쳐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얼마 떼우지 않고, 현지 일군들이나 주민들에게 폐도 끼치지 않아서 좋습니다. 줴기밥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도중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북측 자료도 있다. 1998년 4월 15일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최전방 군부대를 시찰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마침 점심시간이 되자 “변변치 못하지만 내가 싸온 점심밥도 함께 들자고 하시며 마련해가지고 오신 점심곽을 풀어놓으시였”는데, “밥곽들에는 크지 않은 줴기밥 몇 덩이와 몇 가지 나물채가 들어있었”다.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이 설마 “이런 밥곽을 싸가지고 다니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군부대 지휘관들은 “왈칵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울음을 삼키는 군인들 앞에 밥곽을 밀어놓으시며 어서들 들라고, 그래야 나도 먹을 게 아닌가고 하시면서 오늘은 뜻깊은 명절날이니 한 잔씩 들자고 하시며 축배도 부어주시였다”고 한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야전부대 지휘관들이 눈물 속에서 나누던 ‘야전식사’ 현장에서 함께 줴기밥을 들었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눈물 어린 체험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고 술회하였던 것이다.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

북의 최고영도자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문제는, 북에서 매우 중대한 정치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북측 시각에서 바라볼 때, 최고영도자는 자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혁명활동을 통해서, 그런 간고한 투쟁 속에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상호결합되고, 그런 운명공동체 안에서 최고영도자로 추대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북에서 말하는 ‘혁명적 수령관’의 핵심내용이다.

북에서 간행된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김일성 주석은 1930년대 항일혁명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25 전쟁시기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한 평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1950년대 후반 전후복구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과 함께 전후복구의 구슬땀을 흘린 노동현장들이 숱하게 많지만, 그 가운데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가한 대규모 건설공사만 손꼽으면 1958년에 있었던 평양시 2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위한 경상골 부재생산 전투와 해주-하성 광궤철도 부설공사, 그리고 1958년과 1959년에 있었던 대동강 호안 공사 등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한 시련이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소년기에 혁명활동에 동참하면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 속에 들어선 것으로 된다. 만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한 것과 ‘혁명적 수령관’은 서로 합치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기 때문에, ‘혁명적 수령관’에 의거하여 후계자로 추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북에서 후계자가 단지 혈연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북의 혁명적 후계추대를 봉건국가의 혈연적 세습책봉으로 단정해버린 북측 외부의 주장이 왜 이치에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3년 동안 수행한 경험은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계관 및 인생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최고사령관과 야전지휘관들이 최전방에서 함께 나누던 그 눈물의 줴기밥은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이었다.(2013년 1월 11일)

2013/01/09

승패는 지도핵심에게 달렸다


변혁과 진보 (10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지도핵심, 정파집단, 전선체로 구성된다
 
생물학 지식을 통해서도 사회변혁운동의 존재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 생물학에 따르면, 생명활동을 벌이는 모든 유기체의 기본단위는 세포인데, 세포구조의 성장, 신진대사, 분열, 합성 같은 활동으로 유기체의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포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포핵(nucleus)이다. 세포핵은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게 유지해주고, 세포조직의 활성, 분열, 유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포핵이 없으면, 세포가 존재할 수 없고, 세포조직이 없으면, 유기체가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생명체는 세포핵세포조직유기체로 구성되어 존재하며 자기의 고유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의 활동원리를 그러한 유기체 생명활동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핵세포조직유기체로 구성되어 생명활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도핵심정파집단전선체로 구성되어 사회변혁운동이 발생하고 성장하고 확대되는 것이다.
 
유기체의 생명활동에서 세포핵이 중요한 것처럼, 사회변혁운동에서도 지도핵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포핵이 유전자 변형을 막아주는 것처럼, 지도핵심은 사회변혁운동의 좌우경적 편향과 변질을 막고 변혁원칙과 변혁노선을 수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포핵이 세포조직의 활성, 분열, 유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지도핵심은 사회변혁운동의 장성, 발전, 계승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지도핵심이 사회변혁운동의 좌우경적 편향과 변질을 막고 변혁원칙과 변혁노선을 수호할 수 있는 것은, 지도핵심이 과학적인 변혁사상으로 무장하고, 오랜 변혁운동과정에서 단련되고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에 쭉정이와 알곡이 추려졌다
 
그런데 학생운동시기에는 한때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위해 자기 청춘을 바쳤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신심과 의지가 차츰 흐지부지되어 소시민으로 전락하거나 보수야당 또는 시민운동에 슬그머니 편입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활동가들의 연령분포를 살펴보면, 나이가 들수록 그런 정치활동가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20대의 혈기왕성한 출발은 좋았으나, 오랜 변혁운동과정에서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핵심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중도에 변질, 탈락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변혁운동에서 50대와 60대 장노년층 활동가가 매우 적은 것은 바로 그런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현상이다.
 
지금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50대와 60대 활동가들이야말로 학생운동시절부터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한눈 팔지 않고 투쟁해오며 단련된 투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변혁운동을 이끌어 가는 지도핵심은 30여 년 동안 투쟁과정에서 단련되고, 투쟁경력으로 검증을 받은 선진적 진보정치활동가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도핵심은 각기 자기 정파집단을 이끌고 있고, 그런 정파집단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단일전선체를 이루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바로 그런 당적 체계로 결합된 전선체다. 오늘 통합진보당에는 어느 정파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당원들도 많지만, 그 당을 창당하고, 실질적으로 끌어오는 지도력은 당연히 정파집단에서 나온다. 이것이 진보적 대중정당의 현실이다.
 
정파를 무조건 파벌주의 산물이라고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의 현실을 모르는 무지의 노출이다. 정파집단이 무너지면, 진보정당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정파집단에 있는 게 아니라, 정파집단을 이끄는 지도핵심에게 있다. 지도핵심이 진보정치의 대의와 사회변혁의 원칙을 내던진 야심가로 변심하여 자기 정파를 무모한 당권장악음모에 내모는 경우, 당내분쟁을 일으키는 파벌주의 병폐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20124.11 총선 직후에 터져 나온 통합진보당의 정파대립과 분당사태는 각 정파의 지도핵심들 가운데 누가 진정한 지도핵심이고 누가 비열한 야심가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정파대립을 불러일으키고 분당사태로 끌어간 비열한 야심가들이 활동가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추악한 몰골을 드러냈고, 온갖 모략과 비방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당을 사수한 활동가들은 진정성을 검증받았다. 평소에는 서로 뒤섞여서 누가 누군지 잘 몰랐지만, 호된 시련을 거치면서 쭉정이와 알곡은 추려졌고, 가짜와 진짜는 판별되었다.
 
 
내 서재에 남아있는 학습자료에 얽힌 사연
 
1990년 후반기 소련 붕괴로 발생한 강한 사상혼란의 여진이 아직 계속되고, ‘고난의 행군에 들어선 북의 힘겨운 모습을 바라보며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이 마구 흔들리고 있을 때, 당시 유일한 전선체로 존재하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지도핵심이 와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일부는 전선에서 이탈하여 정적에게 투항하였고, 일부는 시민운동으로 넘어가버렸다. 전선체의 지도핵심이 그처럼 와해된 비극은, 사회변혁과 조국통일에 대한 그들의 사상과 신념이 무너지면서 생겨난 걷잡을 수 없는 사태였다.
 
1990년대 말, 전선체의 지도핵심이 와해된 위급한 상황에서 전선체의 지도력을 복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던 정파가 인천연합이다. 원래 인천연합이라는 정파집단은 1989년 인천민주청년회에서 투쟁을 시작하여 10년 동안 인천지역에서 진보운동세력을 키워온 어느 한 활동가를 지도핵심으로 하여 결집된 것이었다. 와해된 전선체 지도부가 인천연합의 주도로 복구되는 과정에서, 그 지도핵심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치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런데 그런 중책을 맡은 지도핵심이 뇌출혈로 쓰러져 2003413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한창 일할 나이인 42살에 그가 너무도 뜻밖에 세상을 떠난 것은 무엇으로 메울 수 없는 손실이었다.
 
지도핵심을 잃은 인천연합은 자기 진로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더니,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사태에 주동적으로 가담하였고 결국 탈당하고 말았다. 만일 그 지도핵심이 살아있었더라면, ‘인천연합은 탈당소동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아무도 대신하지 못했던 불행한 사태는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길에서 지도핵심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19944월부터 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지도부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지도핵심이 와해되는 사태를 막아보려고 나름대로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1999년 초 인천연합의 주도로 시작된 전선체 복구사업에 나는 각지를 순회하는 강연연사로 동참하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인천연합 지도핵심을 만나게 되었다.
 
2000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전철에 인천연합 지도핵심과 함께 타고 있었다. 달리는 전철 안에서 내 귀에 울려온 인천연합 지도핵심의 나지막한 음성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전선체의 학습체계를 복구해야 하겠는데, 마땅한 학습자료가 없다고 하면서 그는 나에게 학습자료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뉴욕으로 돌아온 나는 그가 부탁한 학습자료를 구하여 그에게 전해주려고 20019월 서울로 떠났는데,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국정원 요원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추방당하였고, 20056월까지 5년 동안 입국하지 못하였다. 그에게 전해주려던 학습자료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11년이 흐른 오늘도 내 서재에 아직 남아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서 일어났던 정파대립과 분당사태를 돌아보면, 전선체를 이끌어 가는 정파집단이 자기의 지도핵심을 중심으로 학습에 열중하여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에 대한 과학적 전망과 불변의 신념을 간직하지 못하는 경우, ‘인천연합처럼 자연도태의 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느 한 순간에도 학습과 사색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열정적인 실력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손발이 닳도록 현장에서 현장으로 뛰어다니는 완강한 실천가, 오랜 투쟁과정에서 사소한 동요도 모르고 오로지 진보와 변혁의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온 올곧은 활동가, 전선체의 이익에 자기 정파의 이익을 복종시키고 다른 정파들과 손잡고 전선을 강화시키는 폭넓은 포용자, 바로 그런 진짜배기 활동가가 전선의 지도핵심으로 나설 수 있으며, 그런 진짜배기 활동가 주위에 당원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이 전진하고 승리하느냐 아니면 퇴보하고 패배하느냐 하는 전략적 승패는 지도핵심에게 달려있다. (2013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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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심상치 않은 변화조짐 보이는 한반도 정세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42)
통일뉴스 2013년 01월 07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재정절벽’ 위험과 ‘복무정상화 계획’ 중단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가 곧 시작된다. 앞으로 재임기간 4년 동안 미국을 통치하게 된 그에게는 ‘재정절벽(Fiscal Cliff)’에 떠밀린 위험에서 미국을 구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구국임무’가 주어졌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매우 어렵다고 했지만,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생겨나는 대공황의 필연성을 생각하면, 미국을 ‘재정절벽’ 위험에서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가 2013년 1월 2일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기고한 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는 2월 말 미국 정치권에서 다시 불붙게 될 부채상한선과 재정지출삭감에 관한 격돌은 오바마의 ‘구국임무’가 왜 불가능한지 잘 말해준다.

만일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재앙이 일어나면, 정상국가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으며, 미국이 관리해오는 세계적 범위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이전처럼 존속할 가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백악관과 연방의회는 미국인들이 느낄 심리적 충격과 공포를 의식해서 ‘재정절벽’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어물어물 넘어가지만, 재앙위험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고 말았다.

미국이 직면한 위험은 단계적으로 악화되는 몰락경로를 따라 종말단계에 들어서고 말았다. 몰락경로를 단순화하면, 발생단계(과잉생산 및 과잉신용 극대화)→악화단계(‘거품경제’ 붕괴)→위험단계(금융자본 파산)→종말단계(국가재정 파산)로 이어졌고, 결국 재앙이 다가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재정절벽’에 떠밀린 것은 재앙이 임박한 종말단계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의회는 ‘재정절벽’에서 벗어나려는 모질음을 쓰고 있지만, 탈출방도는 없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며 시간문제인 것이다.

미국이 ‘재정절벽’에 떠밀린 사상 최악의 위급하고 위험한 시기에 대통령에 재선된 오바마는 재앙과 몰락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불행한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미국이 북에서 일어나기를 고대하던 이른바 ‘급변사태’는 북이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다.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무너질 것이고, 그 거대한 붕괴의 충격파가 세계 곳곳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켜 국제정세가 격변을 겪을 것이다. 세계격변의 중심에 한반도 정세가 놓여있다.

한반도 정세는 준전시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 그리고 지배와 추종의 굴레를 씌운 남과 미국의 ‘동맹관계’에 의해 지난 60년 동안 고착되었는데,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면, 그처럼 장기적으로 고착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며 해체되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이 ‘재정절벽’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처럼, 한반도 정세도 근본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013년 새해 분위기는 마치 폭풍 전야의 정적과 방불한 듯 조용하지만, 분석의 시선을 집중하면 일련의 심상치 않은 현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 보인다. 특히 요즈음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반도 정세에 관련된, 주목할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일련의 현상들은 무관하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서로 연관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과 미국의 적대관계에 의해 고착된 한반도 정세가 격변을 앞둔 시점에 이르면, 우선 군사부문에서부터 변화조짐이 나타나는 법이다. 한반도 군사정세와 관련하여 최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조짐은 아래와 같다.

미국군 소식지 <성조(Stars & Stripes)> 2012년 6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관계자들이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시(Camp Casey)에 주둔하는 제210포병여단(210th Fires Brigade)을 경기도 평택에 확장건설 중인 캠프 험프리즈(Camp Humphreys)로 이전하지 않고 남아있기로 하였다고 한국군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다련장로켓포로 중무장한 제210포병여단은 주한미2사단 핵심부대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한반도 전선 최전방에 전진배치한 주한미2사단을 2016년까지 남쪽으로 이전하여 재배치하기 위해 평택에 캠프 험프리즈를 확장건설하는 중이다. 그런데, 주한미2사단 핵심부대가 평택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두천에 계속 남겠다니, 이건 무슨 소리일까?

2012년 10월 6일 주한미국군 관계자는 <연합뉴스> 취재기자에게 미국 육군성이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Joint Base Lewis-McChord)에 주둔하는 제23화학대대(23rd Chemical Battalion)를 2013년 3월까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최전방 기지 캠프 스탠리(Camp Stanley)로 이전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원래 제23화학대대는 캠프 스탠리에 주둔하였던 화학전 부대인데, 주한미국군이 장악했던 ‘10대 군사작전임무’를 한국군에게 순차적으로 하나씩 넘겨주는 과정에서 화학전 임무도 넘겨주면서 2004년에 미국 본토로 철수한 부대다. 그런데 8년 전에 철수한 부대가 다시 의정부로 돌아간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평택으로 이전하려던 제210포병여단이 동두천에 계속 주둔할 뿐 아니라, 미국 본토로 철수했던 제23화학대대가 다시 의정부로 돌아가는 것은 최전방에 배치된 주한미2사단이 평택으로 옮겨가지 않고 현 위치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국 군부가 주한미국군을 후방으로 이동해 재배치하려던 이른바 ‘복무정상화 계획(tour normalization plan)’을 중단하였음을 말해준다. ‘복무정상화 계획’이란 주한미국군 28,500명 가운데 50%에 이르는 14,250명이 자기 가족을 동반하여 복무기간 3년 동안 남측에 주둔할 수 있도록 평택에 대규모 기지를 건설하고 최전방에 배치된 주한미2사단을 평택기지로 이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군부는 왜 ‘복무정상화 계획’을 중단하였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2008년부터 미국 군부가 추진해온 ‘복무정상화 계획’이 미국이 직면한 ‘재정절벽’ 위험 때문에 4년 만에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주한미국군 감군방안과 고고도 무인정찰기 판매

미국 군부가 ‘복무정상화 계획’을 중단한 사태와 관련하여 미국 정치권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

2013년 1월 2일 미국 연방의회 상원과 하원은 주한미국군의 ‘복무정상화 계획’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그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라고 결정하였다. 이 결정과정에서 연방상원은 연방하원에 비해 더 단호한 태도를 취했는데, 연방상원은 백악관에게 ‘복무정상화 계획’ 자체를 아예 폐기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복무정상화 계획’에 대해 연방상원이 그처럼 단호한 폐기요구를 결정한 까닭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가 그 계획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연방상원 군사위원장 칼 레빈(Carl Levin)은 2011년 6월 9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국방장관 내정자에 대한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주한미국군 기지이전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둔 미국군 재배치 계획이 “현실적이지 않고, 실현될 수도 없고, 실행할 형편도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연방상원 군사위원장이 그렇게 반대하였으니, 연방상원 군사위원회가 ‘복무정상화 계획’을 승인할 리 없다. 2011년 6월 18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국군의 ‘복무정상화 계획’을 보류하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이 직면한 ‘재정절벽’ 위험이 계속 악화되는 것에 따라서,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의 보류결정이 이번에는 연방상원 전체의 폐기결정으로 확대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방의회가 주한미국군의 ‘복무정상화 계획’을 반대하는 까닭은, 그 계획을 추진하는 데 들어갈 예산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6월 12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 있는 전국기자협회(National Press Club)에서 열린 안보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연방상원 군사위원장 칼 레빈은 ‘복무정상화 계획’과 관련하여 발언한 대목에서 주한미국군 한 가구당 매달 10,000달러씩 대줘야 하는 경비지출을 미국 연방정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미국 군부는 주한미국군의 ‘복무정상화 계획’을 중단하였고, 연방상원은 그 계획의 완전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 계획을 폐기하는 경우, 백악관은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백악관은 ‘복무정상화 계획’ 폐기에 따른 대안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 계획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칼 레빈 상원의원의 입에서 대안이 나왔다. 2012년 6월 12일 워싱턴 디씨에 있는 전국기자협회에서 열린 안보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주한미국군 병력을 감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복무정상화 계획’의 폐기에 따른 대안이 주한미국군 감군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은 칼 레빈 상원의원이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백악관은 2004년 6월에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실행에는 옮기지는 못하였다. 백악관이 8년 전에 검토한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은 주한미국군 현 병력 28,500명 가운데 12,500명을 철수하는 것이다.

8년 전에 검토되었다가 흐지부지된 주한미국군 감군문제를 칼 레빈 상원의원이 다시 꺼낸 것은,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재앙위험이 조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복무정상화 계획’을 폐기하는 경우, 주한미국군을 현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병력을 대폭 감축하여 주둔경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백악관이 8년 전에 검토하였던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백악관이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에 시동을 다시 걸려면, 감군에 따른 군사적 보완책과 정치적 사전준비가 선행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주한미국군 대폭 감군을 위한 군사적 보완책이란 미국이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한국군에게 가장 취약한 공중정찰능력을 강화시켜주어야 한다. 2012년 12월 21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 4대를 남측에 팔겠다고 미국 연방의회에 통보한 것은 바로 그러 배경에서 나온 행동이다.

원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미국에서 사오려고 시도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군의 공중정찰을 전적으로 미국군에게 의존하는 답답한 현실을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글로벌 호크’를 팔아달라고 미국에게 요청했지만, 미국은 2005년 6월에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 ‘글로벌 호크’는 해외에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판매요청을 거부하였다.

7년 전에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잡아뗐던 미국이 이제는 ‘글로벌 호크’를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 2012년 12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에 따라 (한국군의) 정보수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한국에 글로벌 호크가 필요하다”고 연방의회에 판매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미국이 그 동안 ‘글로벌 호크’를 남측에 판매하지 않았던 까닭은, 한국군이 미국군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공중정찰을 실시하고 작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도록 한국군 지휘부를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중정찰을 통한 군사정보수집능력이 없으면 작전계획도 수립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글로벌 호크’를 남측에 판매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허락한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공동작전계획은 ‘공동작전계획 5015’라는 가칭으로 불리는데, 이미 4년 전에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연합뉴스> 2009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는 2008년 7월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하였고, 2009년 7월까지 공동작전계획 수립을 완료하기로 하고, 그 해 8월에 실시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합동전쟁연습에서 새로운 공동작전계획을 연습하고, 그런 식으로 연습을 계속한 뒤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한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오바마의 국무장관, 국방장관 지명

‘재정절벽’ 위험에 빠진 백악관은 주한미국군을 대폭 감축하기 위해 군사적 보완책만 추진해야 하는 게 아니다. 백악관은 군사적 보완책과 함께 정치적 준비도 서두를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군사와 정치는 분리되지 않는다.

요즈음 백악관이 대북관계에서 생각하는 정치적 준비란, 위에 인용한 칼 레빈 상원의원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하는 것이다. 북미 적대관계가 지금처럼 첨예한 상태에 있으면, 주한미국군 대폭 감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재정절벽’ 위험에 빠진 백악관은 주한미국군을 대폭 감축하기 전에 북미 적대관계를 완화할 정치적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하려면, 그런 조건에 맞는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명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이나 리언 패내타처럼 툭하면 취재기자들에게 자극적인 대북 적대발언을 꺼내는 사람을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에 기용하였다가는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하기는커녕 되레 더 악화시키기 십상이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2월 21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존 케리(John F. Kerry)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지명하였다. 다선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거물급 정치인 존 케리는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할 때,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시킬 ‘적임자’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1기 내내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적대정책을 고집하고 있을 때, 케리 상원의원은 북미 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하였다. 이를테면, 2011년 3월 1일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있은 외교위원장 모두발언에서 케리 상원의원은 한반도에서 현상유지를 계속하는 것은 북이 핵과 미사일을 더 많이 만들어낼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북미 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한 바 있다. 모두발언에서 그는 “미국이 북과 대화하는 것이 북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하는 것이라는 정치논쟁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북과 대화하기 위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며, 선의를 갖고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를 비판하고 북미 양자회담을 주장한 케리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북미 적대관계를 완화하려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백악관이 북미 적대관계를 완화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재정절벽’ 위험, ‘복무정상화 계획’ 폐기, 주한미국군 대폭 감축에 따른 불가피한 행동이다.

미국의 온라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 2013년 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1월 7일 척 헤이글(Chuck Hagel)을 국방장관에 지명한다. 헤이글이 차기 국방장관 물망에 올랐다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퍼지기 시작한 때는 2012년 12월 초였다. 헤이글은 2008년까지 공화당 소속 네브라스카주 연방상원을 지냈고, 2009년부터 대통령 정보자문회의(President's Intelligence Advisory Board) 공동의장으로 일해 왔다.

주목하는 것은 헤이글의 정치성향이다. 헤이글은 2005년 8월 당시 부쉬 행정부의 이라크 무력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2007년 7월에는 이라크 무력침공에 동원된 미국군을 120일 안에 철군하라고 요구한 민주당 결의안에 찬성한 세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철군론을 주장하였고, 2011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무력침공에 동원된 미국군을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미국의 이란 제재조치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하였다.

비록 헤이글의 당적은 공화당이지만, 그는 무력침공, 군사점령, 제재조치에 매달렸던 부쉬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던 매우 특이한 정치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헤이글은 철군론자이며 제재반대론자인 것이다. 헤이글에게 그러한 정치경력이 있기 때문에 2013년 1월 6일 미국의 저명한 진보성향 영화감독인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가 개혁성향의 온라인 언론매체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에 헤이글의 국방장관 지명을 지지하는 기고를 발표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존 케리를 국무장관에, 척 헤이글을 국방장관에 각각 지명한 것은, 백악관이 올해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백악관이 대북 적대관계를 완화하면, 당연히 주한미국군 감군방안도 추진할 것이다.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지냈고 방북경험이 많은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이 구글(Google)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와 함께 2013년 1월 초에 방북길에 오르는 것은 이러한 변화조짐과 무관한 게 아니다.


‘통일의 날’을 바라보는 민족, ‘천하제일강국’을 꿈꾸는 북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북도 최근 워싱턴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와 같은 변화조짐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북은 주시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재앙이 일어나면, 북은 자기의 주적이 재앙에 빠진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북은 100년 만에 찾아올까 말까 한 그런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반도 정전체제 종식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대응행동을 이미 세상에 선포한 바 있다. 2012년 8월 25일 동부전선 시찰길에 진행한 8.25 경축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선포한 것은, ‘재정절벽’에 떠밀린 주적을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것이며, 미국이 지난 60년 동안 고착시켜온 한반도 정전체제를 무력으로 완전히 종식시켜 버리겠다는 실로 대담무쌍한 전략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2013년의 북미관계는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재정절벽’ 위험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상호연관적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절벽’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상호연관적으로 인식하면서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식을 전망하면, 정전체제는 북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고, 미국은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방식으로 급속히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이 2012년 4월과 8월에 각각 밀사를 평양에 보낸 대북 ‘애걸외교’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야말로 북의 완강한 기세 앞에서 미국의 ‘콧대’가 꺾이고 말았음을 말해주는 명백한 사례다.

분석의 시선을 ‘재정절벽’에 떠밀린 미국에게만 고정시킬 게 아니라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공언한 북으로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북에서 나오는 언론보도에는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조어가 자주 쓰이는 현상이 보인다. 시선을 끄는 신조어는 ‘천하제일강국’이라는 말이다. ‘천하제일강국’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뜻인데, 북은 왜 그런 말을 쓰기 시작하였을까?

최근에 나온 북의 언론보도를 분석해보면, ‘천하제일강국’이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계정세인과 전략구상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재정절벽’에 굴러 떨어지고, 그 충격파로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무너지는 재앙에 대비하여, 제국주의지배질서와 자본주의세계체제의 ‘폐허’를 딛고 올라서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고 세계무대에 ‘천하제일강국’으로 등장하려는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계정세인식과 전략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에게 선포한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에 담긴 의미는, 바로 그러한 세계정세인식에 근거하여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북이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한 것은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에 성공하여 첨단과학기술로 추진하는 우주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시동이 걸렸음을 말해준다.

북은 이처럼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고,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재정절벽’ 위험에 빠져있으니,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가 국무장관, 국방장관 인준절차를 마치고 나면, 북미 양자회담을 추진하게 될 것인데, 북은 그 기회에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으로 미국을 끌고 갈 것이다. 특히 2013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날인데, 이를 계기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려는 각계각층의 요구가 서울, 평양, 워싱턴 디씨에서 제기될 것이다.

북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은 주한미국군 철군을 결정적으로 촉진시키기 위함이다.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는 ‘복무정상화 계획’을 폐기하고 주한미국군 감군방안을 추진하게 될 것이지만, 북은 그 기회에 감군이 아니라 철군을 위한 담판으로 미국을 끌고 갈 것이다. 만일 백악관이 북의 평화회담과 철군담판 요구를 끝내 거부하는 경우, 미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준비완료를 선포한 ‘조국통일대전’을 피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북이 미국을 상대로 추진하려는 평화회담과 철군담판은 ‘재정절벽’ 위험에 떠밀린 백악관에게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엉터리 분석가들이 6자 회담 재개를 언급하는 것은 무지몽매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평화회담과 철군담판은 평화통일 실현을 촉진시킬 결정적인 요인이다. 평화회담과 철군담판에 의한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는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통일 실현을 성큼 앞당길 것이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을 주장하는 남측의 유일한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이 분당사태와 종북모략에 휘말려 약화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겠노라고 선언한 민주통합당 후보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더라면,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통일 실현은 그야말로 급속도로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아무리 반대해도, 오바마 행정부 임기 4년 안에 북미관계는 평화회담과 철군담판으로 진전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게 전망하는 논거는, 미국이 직면한 ‘재정절벽’ 위험과 북이 완료한 ‘조국통일대전’ 준비가 지난 20년 동안 줄곧 공방전만 거듭해온 북미관계를 뒤집어놓고, 미국을 평화회담과 철군담판으로 끌어갈 것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갈등관계를 중심에 놓고 한반도 정세를 인식하는 시각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시야처럼 너무 협소하다.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한 북은 전쟁이냐 평화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미국에게 보냈고, ‘재정절벽’ 위험에 빠진 미국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재앙의 날’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며 횡포를 일삼던 미국에게 지금 다가오는 것은 ‘재앙의 날’이지만, 분단의 시련과 고통이 많았던 한반도에게 다가오는 것은 ‘통일의 날’이다. 100년이 넘는 기나긴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헤쳐 오며 너무 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 민족에게 2013년 새해는 가슴 벅찬 통일의 희망을 안겨주며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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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친솔악단'의 경축연주와 평양의 새해맞이

[한호석의 개벽예감] (44)
자주민보 2013년 01월 05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2013년 새해를 맞은 평양

2012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시각, 수많은 인종들과 나라들만큼이나 형형색색 다양한 새해맞이 행사들이 세계 각국 대도시들에서 진행되었다. 원래 새해맞이 행사에는 새해 첫 시각을 맞는 환희와 희망이 넘쳐나야 하는 법인데, 이른바 ‘재정절벽(Fiscal Cliff)’이라는 국가재정파탄의 벼랑 끝에 몰린 미국은 미증유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새해를 맞았다.

미국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재정절벽’이란 감세혜택이 끊기고, 정부예산 지출이 대폭 삭감되면서 미국의 국가재정체계 전반이 붕괴되는 것을 뜻한다. 북이 1990년대 후반기에 ‘고난의 행군’을 헤쳐갈 때,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말을 쓰곤 하였는데, 이제는 ‘재정절벽’으로 떠밀린 미국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말이 쓰이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의회는 ‘재정절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숨가쁜 협상을 계속한 끝에 겨우 새해 첫날밤에 가서야 ‘2개월짜리 미봉책’을 합의하고 파산위험을 간신히 모면하였으니, 워싱턴 정가와 뉴욕 금융가가 어떤 분위기 속에서 2013년을 맞았는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만일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면, 앞으로 2년 안에 미국에서 일자리 600만 개가 사라지며 실업률이 12%로 치솟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자, 그 사정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연말연시를 불안과 공포로 떨며 보내야 하였다. 또한 만일 미국이 ‘재정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면, 몰락의 거대한 충격파가 즉각 세계시장을 강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여기저기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주의 나라들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2013년을 맞고 있었던 긴장된 시각에 그런 나라들과는 아주 극적인 대조를 보이며 2013년을 맞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스스로를 ‘백두산 대국’이라 부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은 미국이 설치한 ‘세계화’라는 거대한 고리에 결착된 세계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단절되어 자립적 사회주의계획경제로 살아가는 나라이므로, 미국의 ‘재정절벽’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식 사회주의는 세계적인 대정치파동 속에서도 끄떡없이 서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요즈음 북은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를 들고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북이 전략적 구호로 내건 ‘새 세기 산업혁명’은 북이 세계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던 1970년대의 ‘기술혁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신년사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과학기술혁명이며 첨단돌파에 경제강국 건설의 지름길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하고,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려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강국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요즈음 북측 각지의 생산현장들에서는 생산공정을 CNC화, 무인화하고, 자체역량으로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돌파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하는 발전전망에 대해 널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사회주의문명국이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건설되는 것이며,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지휘하는 북의 우주개발 국책사업이야말로 북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을 강력하게 촉진시키는 결정적 요소인 것이다. 북이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에 대해 그토록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2012년 4월에 실패하였던 광명성 3호 발사를 연말에 성공시킨 극적인 반전은 2013년 새해를 맞는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을 격정으로 들끓게 하였다. 북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았으니, 올해 새해맞이 행사가 이전의 새해맞이 행사와는 달리 격정적으로 진행된 것은 당연하였다.

축포가 발사되는 새해 첫 시각, 특별한 신년축하회가 열렸다

2013년 1월 1일 0시에 맞춰 진행된 북의 격정적인 새해맞이 현장을 북측 외부에 보여주는 동영상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 2013년 1월 1일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게시된 동영상 ‘강성번영할 2013년 시작을 알리는 불보라’라는 영상물과 1월 2일 ‘유투브(You Tube)’에 게시된 ‘록화보도 새해 2013년을 맞는 평양의 0시’라는 영상물이다.

둘째, 2013년 1월 2일 ‘유투브’에 게시된 ‘기록영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평양시민들, 주조 외교대표들과 함께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연을 관람하시였다 주체 102(2013). 1. 1’이라는 영상물이다.

셋째, 2013년 1월 2일 ‘유투브’에 게시된 ‘실황록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모시고 진행한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연 <당을 따라 끝까지>’라는 영상물이다.

위에 열거한 영상물들을 함께 시청해야 북의 새해맞이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위에 열거한 영상물들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다.

위의 영상물이 보여주는 것처럼, 2013년 1월 1일 0시 제야의 종소리가 평양 시내에 울려 퍼지면서, 평양 시내 여러 곳에서 일제히 축포발사(남측에서는 불꽃놀이)가 개시되었다. 형형색색 축포가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을 때마다 곳곳에 모여든 수많은 평양 시민들은 탄성을 연발하였고, 새해맞이 분위기는 축포발사로 한껏 고조되었다.

그런데 축포발사보다 조금 앞선 시각, 건물 외부에 새해경축 불장식을 밝힌 음악공연장의 구내식당에서는 특별한 신년축하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특별한 신년축하회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에 주재하는 세계 각국 대사 부부들, 국제기구 대표 부부들, 무관 부부들을 만나 축하인사를 나눈 자리였다. 기록영화에는 만면에 미소를 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새해축하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과 세계 각국 언어를 쓰는 국제인사들의 축하인사말을 현장에서 동시통역해야 하였으므로, 여러 언어를 통역하는 동시통역사들이 여러 명 동원되었다. 이윽고 평양 시내 곳곳에서 축포발사를 개시한 0시 정각,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년축하회장 벽에 걸린 대형화면에서 생중계되는 축포발사 동영상을 바라보면서 신년축하회 참석자들과 함께 축배를 드는 장면이 나온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세계 각국 대사들, 국제기구 대표들, 무관들과 함께 새해를 맞은 것은 북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세계 각국의 국가지도자들 가운데 자기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 국제기구 대표들, 무관들과 함께 새해 첫 시각을 맞는 국가지도자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북의 2013년 신년축하회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구상이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구상은, 요즈음 북측 언론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주체의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여 세계가 우러러보는 천하제일강국으로 일어서려는 조선식 국가발전전략”이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위대한 당, 김일성 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게 하라!”고 말하였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나가자”에서 “우리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볼 데 대한 장군님의 뜻대로 높은 목표와 리상을 가지고 투쟁하며 모든 면에서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야 합니다”라고 말했으며, 2013년 신년사에서 “우리 당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에 의거하여 우리 식, 위대한 장군님 식으로 이 땅 우에 사회주의강성국가, 천하제일강국을 보란 듯이 일떠세울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북의 견해에 따르면, 북은 정치사상적으로, 군사적으로 이미 강국의 지위에 올라섰으므로, 과학기술분야에서 최첨단 돌파전으로 패권을 쥐면 “세계가 우러러보고 인류가 부러워하는 천하제일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조선식 국가발전전략을 자신만만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북측 외부에서 볼 때, 이것은 북측의 오늘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이 아니다.

북의 기아인구가 350만 명이나 된다는 대북악담 중독자들의 헛소문을 듣고 있는 북측 외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북의 국가발전전략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황당한 헛소문을 걷어내고 북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면 북이 ‘사회주의강성국가, 천하제일강국’을 세우려는 국가발전전략을 성과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국가발전전략을 추진하는 정치사상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김정일 애국주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김정일 애국주의를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모란봉악단은 ‘친솔악단’이다

모란봉악단이 출연한 신년경축공연장의 대형 원형무대 뒤쪽에는 음악공연 내용에 맞춰 기록영화장면이나 주제관련 동영상을 비춰주는 초대형 동영상 화면이 설치되었고, 그 양옆으로는 연주장면을 비춰주는 대형 동영상 화면이 설치되었고, 바로 그 아래에는 긴 직사각형 꼴의 대형 동영상 화면이 설치되었다. 말하자면, 무대 전체를 동영상 화면으로 둘러싼 것이다.

또한 초대형 동영상 화면 양쪽에는 은하 3호 모형과 은하 9호 모형이 각각 서 있었고, 원형무대 양쪽에는 은하 9호 모형과 은하 3호 모형을 각각 손에 들고 있는 대형 눈사람이 서 있었다.

<로동신문>은 2013년 1월 1일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연 보도기사에서 “모란봉악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위대한 당, 위대한 군민을 칭송하는 시대의 송가, 승리의 행진곡을 새롭고 특색 있게 형상하여 환희로운 신년경축무대에 펼쳐놓았다”고 격찬하였는데, 모란봉악단의 신년경축공연을 본 북측 인민들은 때로는 폭풍처럼 드세게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을 받아안았고, 때로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받아안았고, 때로는 기쁨과 감격으로 격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모란봉악단의 신년경축공연은 ‘애국가’가 연주된 다음, 여성7중창 ‘빛나는 조국’이 첫 무대를 장식하였고, 경쾌한 선율의 경음악 연주와 여성7중창 ‘설눈아 내려라’가 그 뒤를 이었다. 경음악 연주와 여성7중창 ‘설눈아 내려라’는 공연의 말미를 장식한 종곡으로 또 다시 연주되었다.

노래 ‘빛나는 조국’이나 ‘설눈아 내려라’는 모두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음악으로 형상한 곡들이므로, 모란봉악단이 펼친 신년경축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에게 제시한 ‘김정일 애국주의’를 음악으로 형상한 공연주제였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처럼 ‘김정일 애국주의’를 음악공연 전반에 걸쳐 예술적으로 형상한 것은, 모란봉악단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상과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모란봉악단의 음악공연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상과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것은, 그 악단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를 받는 ‘친솔악단’이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31일 모란봉악단에 전달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감사문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원대한 구상과 직접적인 발기에 의하여 조직된 우리 당의 친솔악단이며 국보적인 예술단체”이고, “예술창조사업의 원칙과 방법으로부터 공연의 주제와 형상요소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모란봉악단을 조직하여 조선로동당의 친솔악단으로 내세워주고, 친히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시한 음악정치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음악정치는 ‘김정일 애국주의’를 모란봉악단식 전자음악으로 표현하고 전파하는 ‘21세기 음악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네 편의 구성부분으로 정밀하게 짜여진 음악공연

모란봉악단이 펼친 신년경축무대는 네 편의 구성부분으로 정밀하게 짜여진 음악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자기 영도자에 대한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의 충정을 예술적으로 형상한 음악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은 전체 공연순서에서 맨 앞과 맨 뒤에 각각 배치되어 중요성을 더하였다. 공연순서 가운데 맨 앞에 배치된, 경음악 연주와 여성중창으로 무대에 오른 ‘장군님을 우러러 부르는 노래’라는 연곡형식의 공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공연순서에서는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10곡이 비반복적인 연곡형식으로 연주되었는데, 전곡을 연주한 것이 아니라 악곡 가운데 선별하여 전자음악풍에 맞춰 편곡한 주제선율만 연곡형식으로 연주하여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의 절절한 감정을 펼쳐보였다.

다른 한 편, 공연순서 가운데 맨 뒤에 배치된 것은 여성중창으로 연주한 노래 ‘인민은 일편단심’이었는데, 그 노래가 연주될 때, 무대 뒤편에 있는 초대형 동영상 화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하는 모습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하는 모습이 연이어 비춰졌다. 그 순간, 관람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한 기립박수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그리움과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충정을 표시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북측에서 음악과 정치가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결합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북에서는 ‘음악정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둘째,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이 즐겨 부르는 조선식 대중가요와 조선민요를 무대에 올린 음악공연이 있었다. 특히 경음악으로 연주한 노래 ‘단숨에’의 강렬한 선율이 울려나올 때는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장면이 동영상 화면을 가득 채웠고, 관람자들은 모두 환성을 올리며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관람자들 가운데 젊은이들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관람자들의 열화 같은 재청으로 경음악연주 ‘단숨에’는 두 차례 연속하여 반복연주되었다.

또한 모란봉악단이 내세우는 여성가수 김유경이 열창한 조선식 대중가요 ‘불타는 삶을 우린 사랑해’도 관람자들의 감흥을 북돋아주었고, 김설미, 리명희, 김유경이 전자음악형식으로 편곡된 민요 ‘노들강변’을 꽹과리 가락에 맞춰 민요창법으로 노래할 때는 우리 노랫가락에 어느덧 흠뻑 취한 관람자들이 너도나도 흥겨운 춤판을 펼쳤다.

셋째, 외국곡 주제선율을 전자음악형식으로 편곡하여 선보인 이채로운 음악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순서에는 “경음악과 노래연곡 세계명곡묶음”이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세계 각국에서 연주되는 애창곡과 명곡들의 주제선율을 뽑아 무려 19곡을 비반복적인 연곡형식으로 연주하였다. 모란봉악단이 연주한 세계 각국의 애창곡과 명곡들 가운데는 서양고전음악,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대중가요와 민요, 이탈리아의 가곡, 라틴아메리카의 탱고, 유럽의 무도곡, 외국영화 주제곡, 중국 노래가 포함되어 그야말로 세계음악공연을 보는 듯하였다.

이 공연순서에서 모란봉악단은 예술음악, 대중음악, 전통음악으로 분류되는 동서고금의 각이한 음악장르(music genre)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연주기량을 뽐냈으며, 뛰어난 실력으로 편곡한 전자음악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동서고금의 각이한 음악장르를 넘나드는 공연을 보노라면, 지구를 휘감고 도는 광명성 3호 2호기처럼 음악연주로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본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외국곡 주제선율을 연곡형식으로 연주하기 시작할 때와 연주를 마칠 때 북측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가 반복적으로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51년 전에 창작된 노래이므로, 공연장을 가득 메운 각계각층 관람자들 가운데 60대 이하 연령층은 누구나 그 노래를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 노래는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세계 각국의 애창곡과 명곡들을 연주하는 공연순서에서 왜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노래를 앞뒤에서 반복적으로 연주하였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모란봉악단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활지침에 따라 세계 각국의 애창곡과 명곡들을 공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2년 12월 31일 모란봉악단에 전달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감사문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볼 데 대한 당의 요구를 심장에 새기고 창작창조실력과 예술적 기량을 부단히 높여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며 우리 인민의 재능과 슬기를 만방에 빛내여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조국통일의지를 발산하는 통일노래를 연주한 공연순서가 있었다. 모란봉악단이 통일노래를 집중적으로 연주한 것은 창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서, 특히 통일노래 연주가 북측 외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모란봉악단의 통일노래 연주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천명한 조국통일의지를 음악적으로 형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1월 1일 오전 9시 생중계 방송을 통해 발표한 신년사에서 “우리는 조국통일의 앞길에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인다 하여도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삼천리 강토 우에 통일되고 번영하는 강성국가를 기어이 일떠세우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강한 조국통일의지를 천명하였고, “올해에 온 민족이 단합하여 거족적인 통일애국투쟁으로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여성7중창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이 연주될 때는, 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한반도 지도가 공연무대 뒤쪽에 있는 초대형 화면 정중앙에 나타나고, 푸른 동해 한 복판에 울릉도와 독도가 뚜렷이 표시되고, 민족공동행사에 남북해외 동포들이 통일열망을 안고 모여들었을 때 휘날리고, 국제경기대회에 남북단일선수단이 입장할 때 휘날린 통일기가 관람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때, 공연장은 뜨거운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우리 민족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슴으로 부르는 민족공동의 통일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공연장에 울려 퍼질 때, 그리고 6.15 공동선언이 안겨준 통일의 신념을 경쾌한 선율에 담은 통일노래 ‘통일 6.15’가 연주될 때는 박정희 정권이 군사분계선에 축성한 콘크리트 분단장벽이 초대형 화면에 나타나고, 그 분단장벽을 넘어 “조국통일!”을 절규하는 남, 북, 해외 동포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노래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가 연주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각각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이 나오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 관람자들 속에서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처럼 모란봉악단이 새해 첫 시각에 조국통일의지를 발산하는 통일노래를 연주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천명한 조국통일의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며, 북이 올해 2013년에 조국통일을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모란봉악단은 뛰어난 음악연주기량과 참신한 음악공연활동으로 북측 인민들과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유투브’를 통해 국제사회에도 알려지면서 차츰 세계 각국 음악애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12월 31일 모란봉악단에 전달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감사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지는 “모란봉악단을 축으로 세우고 그것을 본보기로 주체예술의 새로운 개화기를 열어나가며 핵폭탄보다 더 위력한 예술의 힘으로 천만군민의 정신력을 총폭발시켜 주체혁명의 최후 승리를 이룩해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친솔악단’이 펼친 신년경축공연은 핵폭탄보다 더 강한 저력이 북측 내부에 축적되고 있음을 세상에 과시한 계기인 것이다.(2013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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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

은하 9호에 인공달위성이 실린다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41)
통일뉴스 2012년 12월 31일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노래가 울려나올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눈물 흘렸다

지금 북에서는 자국산 첫 실용위성인 광명성 3호 2호기를 쏘아올린 성과를 “5천년 민족사의 특대사변”으로 높이 칭송하고 있다. 또한 첫 실용위성을 쏘아올린 우주개발사업 공로자들의 공훈을 경축하는 노래와 춤으로 축하무대를 장식하였고, 우주강국대오에 당당히 진입한 민족적 긍지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우주개발사업 공로자 101명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에 가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였고, 각계각층 인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2012년 12월 2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국가연회장인 목란관에서 우주개발사업 공로자 101명에게 베푼 성대한 연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주개발사업 공로자 101명은 연회장 입구에 정렬한 인민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의 영접을 받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뒤를 따라 입장하였고, 당, 정, 군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연회가 열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연회에서 연설하였다. 또한 북측 최고의 음악연주단으로 절찬 받는 모란봉악단이 화려한 축하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 글에서 12.21 연회에 관해 논하는 까닭은, 우주정복을 향한 북의 원대한 전망과 확고한 의지를 그 연회에서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주개발이라는 용어보다 더 강한 인상을 안겨주는 우주정복이라는 용어를 쓰는 까닭은, 우주를 정복하려는 북의 전망이 원대하고, 우주를 정복하려는 북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주정복을 향한 북의 원대한 전망과 확고한 의지에 관한 이 글의 서술은 집필자의 주관적인 인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 논거는 아래와 같다.

2012년 12월 27일 <로동신문>에 실린 ‘방방곡곡에 꽃피는 <광명성>호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12.21 연회에서 ‘단숨에’라는 제목의 노래가 만장의 열렬한 재청을 받고 네 차례나 울려나왔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노래가 울려나올 때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았다고 한다.

노래 ‘단숨에’는 이전부터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오는 노래로, 북의 표현을 빌리면 ‘시대의 명곡’이다. 그 노래에는 “타격목표도 단숨에, 적함돌입도 단숨에” 또는 “위훈 세워도 단숨에, 승리 떨쳐도 단숨에, 번개 같이 불이 번쩍 단숨에” 같은 노랫말이 들어있어서, 인민군의 전격적인 조국통일대전 의지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노래 선율도 매우 박진감 넘치고 빠르고 힘찬 군가풍 선율이다. 12.21 연회에서 모란봉악단이 연주한 ‘단숨에’는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른 게 아니라, 전자음악에 맞게 편곡한 경음악곡을 연주한 것이다.

그런데 왜 연회 참석자들은 그 경음악에 열렬한 재청을 네 차례나 보냈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선율이 울려나올 때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일까? 경음악 ‘단숨에’가 연주될 때, 무대 뒤편 배경화면에 비친 동영상 장면이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명성 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리기까지 전 과정을 세심하게 이끌어온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온갖 노고가 그 동영상 화면에 흐르고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우주개발사업에 얼마나 많은 노고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려면, 2012년 12월 20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령도 밑에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 성과적으로 발사’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시청할 필요가 있다. 기록영화에는 2012년 11월 22일 서해위성발사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대형시설 안에 수평으로 눕혀놓은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를 돌아보면서 거대한 동체를 손으로 쓸어보는 장면, 탑재를 곧 앞둔 광명성 3호 2호기 앞에서 과학자, 기술자, 동행한 당간부들과 담화하는 장면, 강추위 몰아친 서해위성발사장을 돌아보는 장면 등이 나온다.

또한 기록영화에는 2012년 12월 6일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과학자, 기술자, 동행한 당간부들과 담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그 기록영화에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가 상신한 수많은 보고서들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많은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하고 모든 겉표지마다 자신의 친필로 지시사항이나 명령을 적어 내려 보낸 것이다.

원대한 우주정복구상이 은하 9호 모형에 비껴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12.21 연설을 들으면, 우주정복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2012년 12월 21일 북에서 방영되었고, 12월 23일 ‘유투브(You Tube)’에 오른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과적으로 발사하는데 공헌한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 일군들을 위하여 마련한 연회에 참석하시였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연설 전문이 동영상과 함께 육성으로 수록되어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2.21 연설에서 “동지들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과적으로 쏴올린 그 정신, 그 기백으로 통신위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실용위성들과 보다 위력한 운반로케트들을 더 많이 개발하고 발사하여야 합니다”고 말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연설대목에서 밝힌 것은, 이번에 지구관측위성을 쏘아올렸으니, 다음에는 통신위성도 쏘아올리고, 통신위성을 쏘아올린 뒤에는 다른 실용위성들도 쏘아올려야 한다는 자신의 우주정복구상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12.21 연설에서 지적한 통신위성은 적도 상공 35,786km의 지구정지궤도(geosynchronous orbit) 위에서 지구자전속도로 회전하는 정지위성인데, 지구관측위성을 쏘아올린 뒤에 통신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은 선진우주강국들이 밟아간 전형적인 발전경로이며, 북이 들어선 발전경로다.

<로동신문> 정치보도반은 2012년 12월 22일부 보도기사에서 “연회 참가자들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지니신 우주강국건설의 웅대한 포부와 구상을 전면적으로 실현하여 백두산 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더욱 힘있게 과시해나갈 혁명적 열의에 넘쳐있었다”고 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정복구상을 “우주강국건설의 웅대한 포부와 구상”이라고 서술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정복구상을 알려주는 일화는 2012년 12월 28일 <로동신문>에 실린 ‘우주에 더 많은 <광명성>호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는데, 12.21 연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주개발사업 공로자들에게 “우주정복의 목표를 더 높이 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고무해주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정복구상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또 다른 일화는 2012년 12월 28일 <로동신문>에 실린 ‘우주정복의 원대한 구상과 포부’라는 제목의 기사에 들어있는데, 12.21 연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주개발사업 공로자들에게 “운반로케트 <은하-9> 모형을 가리키시며 자세히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고 한다.

12.21 연회장을 촬영한 보도사진들이나 기록영화를 보면, 연회석에서 정면을 바라볼 때 연회장 무대 오른쪽에는 이번에 쏘아올린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 모형이 서 있고, 연회장 무대 왼쪽에는 은하 3호 모형보다 더 큰 위성운반로켓 모형이 서 있는데, 그 동체에 은하 9호라고 큼지막하게 쓴 글씨가 돋보인다.

그런데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은하 9호 모형을 손으로 가리키며 우주개발사업 공로자들에게 그 모형을 “자세히 보았는가?”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은 무슨 뜻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위성운반로켓 은하 9호를 만들어 쏘아올려야 한다는 뜻이 그 질문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은하 9호 모형을 “보았는가?”고 묻지 않고 “자세히 보았는가?”고 물은 것은, 그 모형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제작되어 연회장 무대에 설치되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첫 실용위성 발사에 성공한 환희와 격동으로 들끓고 있는 공로자들에게 앞으로 쏘아올릴 위성운반로켓 모형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우주정복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그 순간, 은하 9호 모형에 비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정복구상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과학자, 기술자들의 가슴마다 자기 영도자의 우주정복구상을 실현하려는 열정과 의욕이 얼마나 뜨겁게 솟구쳤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구태여 서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로동신문> 기사에는 “운반로케트 <은하-3>과 <은하-9>, 그 두 모형을 다시금 바라보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받아안은 충격은 참으로 컸다”고 쓰여 있다.

북이 이번에 쏘아올린 은하 3호 다음에 쏘아올릴 은하 계열의 각종 위성운반로켓은 당연히 은하 4호, 5호, 6호, 7호, 8호 순으로 될 것이다. 은하 3호와 마찬가지로, 은하 4, 5호는 지구관측위성을 운반하게 될 것이고, 은하 6, 7, 8호는 통신위성을 운반하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원래 ‘광명성’이라는 말은 빛나는 별이라는 뜻인데, 빛나는 별이 촘촘히 밀집한 천체현상을 ‘은하’라 한다. 오늘 북이 긍지 높이 부르는 인공위성 이름 ‘광명성’과 운반로켓 이름 ‘은하’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처럼 수많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려는 강렬한 우주정복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면 12.21 연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형으로 전시한 은하 9호에는 어떤 위성이 실릴 것인가? 은하 9호는 지구관측위성이나 통신위성을 싣고 지구궤도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달탐사위성을 싣고 지구궤도를 벗어나 우주공간 저편에 있는 달궤도(Selenocentric Orbit)로 날아갈 것이다. 은하 9호에 달탐사위성을 싣고 달궤도로 쏘아올리는 우주정복의 길, 바로 이것이 12.21 연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시한 우주강국건설구상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구궤도를 정복할 뿐 아니라, 달궤도까지 정복하려는 원대한 우주강국건설구상을 올해 2012년을 기점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인공위성이라 하지만, 북에서는 인공지구위성이라고 하는 까닭은 인공지구위성과 인공달위성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1966년 4월 3일 인류사 최초로 달궤도 진입에 성공한 인공달위성은 소련이 쏘아올린 ‘루나(Lunar) 10호’였다. 질량이 1,582kg인 그 인공달위성은 달표면으로부터 원지점 2,738km, 근지점 2,088km의 타원궤도를 따라 178분05초 주기로 달 주위를 회전하였다.

이번에 첫 지구관측위성을 쏘아올린 북이 앞으로 달탐사위성도 쏘아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아래의 정보를 살펴보면 논리적 비약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선진우주강국들이 쏘아올린 인공달위성과 그 운반로켓에 관한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공달위성을 처음으로 쏘아올린 나라는 소련이었지만, 요즈음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2009년 6월 18일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은 애틀러스(Atlas) 5호에 ‘달정찰위성(Lunar Reconnaissance Orbiter)’이라는 이름의 신형 달탐사위성을 실어 달을 향해 쏘아올렸다. 2단형 위성운반로켓인 애틀러스 5호는 길이가 58.3m이고, 1단 추진체 지름이 3.81m다. 질량이 1,900kg인 ‘달정찰위성’은 지구를 떠나 나흘 반 동안 우주공간을 비행한 끝에 달궤도에 진입하였다.

그보다 9개월 앞선 2008년 10월 22일 인도가 자국 최초의 달탐사위성 챈드레이안(Chandrayaan) 1호를 4단형 위성운반로켓인 ‘극위성발사체(PSLV)’에 실어 달을 향해 쏘아올렸다. 인도가 쏘아올린 ‘극위성발사체’는 길이가 44m, 1단 추진체 지름이 2.8m이고, 탈탐사위성 챈드레이안 1호의 질량은 1,380kg이다.

미국과 인도가 각각 쏘아올린 달탐사위성에 관한 정보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처럼 위성운반로켓을 2단형으로 만들면 추진체 길이가 50m 이상으로 길어지고, 1단 추진체 지름도 3m보다 훨씬 길어지는 반면, 인도의 경우처럼 위성운반로켓을 4단형으로 만들면 추진체 길이가 50m 이하로 짧아지고, 1단 추진체 지름도 3m 이하로 짧아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북이 만일 달탐사위성을 싣는 위성운반로켓 은하 9호를 3단형으로 만든다면, 추진체 길이가 40m 이상 되어야 하고, 1단 추진체 지름이 3m 정도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은 그처럼 동체가 크고 강한 추력을 내는 위성운반로켓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북이 이번에 쏘아올린 은하 3호는 길이 30m, 1단 추진체 지름 2.4m, 질량 91t, 발사추력 120t이다. 2012년 4월 13일에 쏘아올린 은하 3호도 똑같은 위성운반로켓이었고, 북이 2009년 4월 5일에 쏘아올린 은하 2호도 길이가 30m, 1단 추진체 지름이 2.4m인 똑같은 위성운반로켓이었다.

북은 왜 지난 3년 동안 똑같은 위성운반로켓을 3기나 쏘아올린 것일까? 은하 2호 또는 은하 3호로 불리는 똑같은 위성운반로켓을 여러 기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현상이 암시하는 것은, 북의 우주개발사업에서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위성운반로켓 제작이 아니라 위성 제작이라는 점이다. 지금 북의 우주개발사업에서는 고성능 위성을 만드는 기술이 아직 좀 부족할 뿐이고, 위성운반로켓을 만드는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길이가 40m 이상이 되고, 1단 추진체 지름이 3m 정도 되는 초대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북은 이미 은하 9호를 만들어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북의 위성운반로켓 제작기술을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근거는, 2012년 4월 4일 <조선일보> 보도기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미국 정찰위성이 북측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자료에 관해 보도한 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을 집중감시하던 미국 정찰위성이 평양에 있는 미사일 공장 경내에서 은하 3호(미국은 ‘대포동 2호’라고 제멋대로 부름)보다 크기가 더 큰, 길이 40m의 대형 미사일을 포착하였다는 것이다. 북이 길이 40m의 대형 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길이가 40m 이상이 되고, 1단 추진체 지름이 3m 정도 되는 대형 위성운반로켓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북이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직후인 1998년 9월 8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기사에서 당시 우주개발사업에 참가한 북측 과학자인 권동화 박사가 말한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조선에서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인공지구위성을 운반할 수 있는 다계단 로케트가 벌써 1980년대에 개발되었으며 인공지구위성 연구분야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다”고 하였다. 위성을 운반할 수 있는 다단계 로켓을 1980년대에 개발하였다는 말은, 4반세기 전에 이미 고도의 로켓설계기술을 보유하였다는 뜻이다.

2012년 12월 28일 <로동신문>에 실린 ‘101개의 금별메달’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우리 위성의 궤도진입 시 여러 수값들은 그 오차가 불과 수m에 달함으로써 세계의 경탄을 자아내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과장어법이 아니다. 북은 1980년대에 이미 높은 수준에 오른 로켓설계기술을 지난 4반세기 동안 더욱 발전시켜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일보> 2012년 12월 12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권세진 교수는 “현재 북한의 로켓기술력으로 볼 때 1,000kg의 탄두를 탑재해도 미사일을 11,000여 km까지 보낼 수 있는 수준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은하 3호의 현재 성능만으로도 광명성 3호 2호기보다 질량이 10배나 더 무거운 대형 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위성설계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인공달위성을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인도가 쏘아올린 자국의 첫 탈탐사위성 챈드레이안 1호의 질량이 1,380kg이므로, 북은 광명성 3호 2호기보다 약 14배 정도 더 무거운 광명성 9호를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1994년 10월 13일 ‘극위성발사체’ 발사에 처음 성공한 인도는 그로부터 14년 뒤에 달탐사위성을 쏘아올렸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이번에 북에서 방영된 기록영화에 나타난 광명성 3호 2호기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지난 4월 발사에 실패한 광명성 3호 1호기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 보인다. 동영상에서 얼핏 보기에도, 광명성 3호 1호기에 비해 광명성 3호 2호기에는 더 복잡한 장치들이 들어있고, 더욱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의 위성제작 기술자들이 지난 4월 실패 이후 8개월 동안 더욱 분발하여 지구관측위성 성능을 상당히 개량하였음을 말해준다. 북의 우주개발사업을 담당한 과학자, 기술자들이 그런 정신과 기백을 가졌다면, 인도우주연구기구(ISRO)가 14년 걸린 일을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는 7년 만에 해낼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광명성 3호 2호기를 쏘아올린 정신과 기백으로 실용위성들을 더 많이 개발하여야 한다고 12.21 연설에서 강조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00t급 초대형 운반로켓을 쏘아올릴 발사대가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1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유엔총회 제67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북측 대표는 연설에서 북이 “국가우주개발계획에 따라 우주개발기관을 확대강화하고 정지위성을 포함하여 나라의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각종 실용위성들을 계속 쏴올릴 것”이라고 밝혔으며, <조선신보>는 2012년 12월 12일 보도에서 북이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올해 2012년에 광명성 3호 2호기를 쏘아올렸으므로,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추진하는 과정에서 광명성 4호부터 9호까지 계속 쏘아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난 2017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순차적 추진을 예상하면, 북은 2017년에 제2차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광명성 10호를 실은 은하 10호를 쏘아올리게 될 것이다. 물론 북이 2017년에 시작할 제2차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은 제1차 우주개발 5개년 계획보다 더욱 발전된 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계획일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12년 4월 8일 서해위성발사장 현장에서 취재한 <조선신보> 2012년 4월 10일 보도기사에 나온 장명진 서해위성발사장 총책임자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가 취재진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북은 “가까운 앞날에 정지위성을 발사하게 될 것”이고, “전망적으로는 유인우주비행선까지 쏘아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북의 우주개발계획이 지구관측위성 발사와 정지위성(통신위성) 발사에서 장차 달탐사위성 발사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유인우주비행선 발사까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북이 유인우주비행선을 발사할 것이라니, 그가 취재진 앞에서 과장법을 쓴 것일까?

유인우주비행선 발사에 관한 그의 전망적 발언이 과장이 아니라는 점은 서해위성발사장 설비규모에서 엿볼 수 있다. 그가 취재진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는 400t급 초대형 운반로켓도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발사대의 높이는 50m 이상이다. 그는 초대형 운반로켓이라고 표현했지만, 400t급 운반로켓이라면 인공위성을 싣는 운반로켓이 아니라 유인우주비행선을 싣는 운반로켓이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 1934-1968)을 태우고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1시간 48분 동안 우주비행을 하였던 소련의 유인우주비행선 보스톡(Vostok) 1호의 질량은 5.9t이었고, 그 유인우주비행선을 우주로 실어나른 2단형 보스코드(Voskhod) 운반로켓은 길이 30.84m, 1단 추진체 지름 2.99m, 질량 298.4t이었다. 이것은 당시 소련이 총질량 304.3t의 유인우주비행선 운반로켓을 쏘아올리는 추력을 뿜어내는 강력한 로켓엔진을 개발하였음을 뜻한다.

그런데 서해위성발사장 발사대에서는 질량이 400t이나 되는 운반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장차 유인우주비행선을 쏘아올릴 전망을 가지고 그처럼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주정복구상에는 달탐사위성은 물론이고 유인우주비행선까지 쏘아올릴 전망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12.21 연회장 무대 옆에 세워진 은하 9호 모형은 유인우주비행선을 싣는 운반로켓 모형이 아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은하 9호 모형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새로운 유형의 운반로켓 은하 10호에 유인우주비행선을 실어 쏘아올릴 원대한 우주정복구상을 단계별로 실행에 옮기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우주강국건설 유훈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기간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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